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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탁석산 지음 | 웅진닷컴
사회자 : 민족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민족이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사학자 : 먼저 민족이란 말이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쓰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족이란 말은 1900년 이후에 만들어지거나 일본에서 들어온 말로 생각됩니다. 1896년에서 1899년까지의 「독립신문」에는 민족이란 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1905년에서 1910년까지에 나온 「대한매일신보」를 보면 민족이란 용어가 177건 나옵니다. 즉 이 당시 민족이란 말이 꽤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요.



철학자 : 저는 『조선왕조실록』 국역 CD에서 민족이란 말을 몇 번 본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종 004 01/07/06(기유)을 보면 "섬에 있는 왜인은 우리나라 민족과 종류가 다르오니…"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원전을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용어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있었다고 해도 많이 쓰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일본인 : 제가 알기로 일본에서 민족이란 말은 민(民)과 족(族)을 합쳐서 근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즉 니시카와 나가오는 『국민이라는 괴물』에서 "민족에 관해서는, 이것도 민과 족을 합쳐 일본에서 만든 용어이기 때문에(본래의 한자에는 없습니다) 유럽 언어와의 대응이 어렵습니다만, 독일어 Volk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사학자 : 『상상의 공동체』를 쓴 베네딕트 앤더슨의 정의에 따르면 "민족은 본래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공동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민족이 상상된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즉 실재하지 않으며 단지 상상으로 만들어낸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철학자 :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라는 주장은 이후 많은 파문을 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민족이란 문화공동체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동료라는 의식이 생기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런 원인이나 이유 없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사회자 : 이제 민족의 정의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민족주의에 대해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든 실재하는 문화공동체든 어떤 주의가 붙으면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민족주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백과사전의 정의는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의 형성을 지상목표로 하고, 이것을 창건·유지·확대하려고 하는 민족의 정신상태나 정책원리 또는 그 활동"이군요.



사학자 : 민족주의가 결국 국가에 기반을 둔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동의합니다. 문제는 민족주의가 지닌 부정적 측면입니다. 즉 정의에 나오는 것처럼 창건이나 유지에 그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테지만 확대를 시도한다면 침략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된다면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입니다. 즉 민족주의는 자민족 중심주의가 되기 쉽다는 말입니다.



철학자 : 민족주의가 무엇인가는 비교적 분명한 것 같습니다. 민족을 단위로 해서 독립된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서구의 민족주의 개념을 한국이나 일본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과 국가의 관계 정리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서양의 통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양에서는 국가와 민족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절대 왕정이 붕괴되면서 인민이 주인이 되는 국가를 건설하게 되었는데 이때 국가를 이루는 기본 단위는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국가 건설은 서양에서는 보통 근대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근대민족국가'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입니다.



사학자 : 한국은 일본과 달리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데 구심점이 없었습니다. 준비도 없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일본의 강점기를 거치게 됩니다. 강점기를 통해 국가보다는 민족이란 말이 일반 백성에게 더욱 설득력이 있었다고 봅니다. 이런 연유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국가주의는 약했지만, 민족주의는 강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회자 : 첫 시간인데 내용이 좀 무겁지 않나 걱정되는군요. 다음은 민족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말해보죠.



철학자 : 최근 박노자 씨가 한국에는 민족주의는 있으나 국가주의는 없다고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즉 한국에는 민족주의가 만연해 있지만 국가를 이루진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일본의 경우는 반대로 국가는 강력하게 구성되었고 민족은 사라진 느낌입니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모든 것을 집어삼킨 것이 되겠지요. 하지만 내면으로는 강한 민족주의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학자 :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한국이 더 심하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은 같은 민족, 즉, 같은 핏줄이 아니면 적응하기 매우 어려운 나라입니다.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바탕에는 같은 피를 나눈 우리 민족만의 국가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고 봅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화교가 뿌리내리지 못한 나라라는 오명을 지닌 나라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분명히 민족주의가 넘치는 나라입니다.



일본인 : 저도 그런 것을 느낀 적이 많습니다.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애국심인데요.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국가를 사랑한다기보다 민족을 사랑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 민족은 근대 이후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져 확산된 엔티티(entity)이다. 엔티티는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떠나 우리가 존재한다고 여긴다는 뜻에서 붙여본 것이다. 민족을 규정할 만한 요소는 별로 없다. 그런데도 강렬하게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민족의 이름으로 통일이든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이 시대를 덮고 있다. 하지만 따져보면 민족은 만들어진 것이고 시한을 갖는 임시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임시적이고 도구적인 민족주의가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는가? 그것은 국가 건설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란 통일된 독립국가이다. 남북으로 갈라져있고, 북한은 중국, 남한은 미국의 영향에 있는 한반도는 통일과 독립 두 가지 어떤 요건도 갖추기 못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한데 민족이 이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사회자 : 일주일이 잠깐 사이에 지나간 것 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시간의 주제는 민족주의와 일본의 관계입니다. 우선 각자의 입장을 밝혀주시는 게 어떨까요?



사학자 : 저는 일본을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극일과 함께 일본에 대해 따질 것은 이제 단호하게 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협력은 하되 짚고 넘어갈 것은 확실하게 짚어야 합니다.



철학자 : 매우 단호한 입장이신데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제는 성숙한 자세로 일본을 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해방이 된 지도 50년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일본을 탓하는 것은 미성숙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일본은 세계 여러 나라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 : 한국에서 일본인이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말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한국의 반일 감정은 여전히 높고 한 개인이 아니라 일본의 대표로 발언한 것처럼 인식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일본에서도 비교적 솔직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회자 : 그런데 왜 유독 한국에서는 반일 감정이 강할까요? 외세라면 중국도 있고 미국도 있으며 프랑스도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요?



철학자 : 그것은 정치적 원인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1953년 10월 19일자 일본의 「지지신보」 사설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되풀이해서 말하면 일본에 대해 한국인이 지닌 악감정의 유래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가라는 사람들이 그것을 선동하고 이용하는 악랄한 태도에 대해서는 절대로 승복할 수 없다."



사학자 : 정치가들이 선동하고 악용한다는 면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해방 후에 국가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반공과 반일을 내걸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지신보」의 지적은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잘못이 제대로 지적되지 못한 상태라고 하는 것이 더 옳습니다. 마치 일본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한국 정치가들이 악의적 선전 탓에 반일 감정이 생겼다는 듯이 말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일본인 : 학문적으로 따져도 한국의 학자들은 다소 애국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태까지 한국의 학자들은 일본을 문화적으로 무시하는 주장을 많이 했습니다. 즉 일본이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일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한국보다 한 수 아래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과연 그런가요? 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씨는 "일본은 과거, 현재 모두 문화적으로 우월감을 가질 수 있는 수준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에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발언합니다.



철학자 : 많은 학자들이 일본의 한국연구가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한국 연구보다 더 활발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사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이 아니라 일본으로 가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물론 현장을 보러 한국에 자주 올 필요는 있지만요. 이런 말은 한국학을 연구하는 외국 연구자에게 들은 말입니다.



사학자 : 조금 논의를 구별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국가 차원, 학문 차원, 일반 시민 차원에서 일본을 다룰 때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 차원에서 일본은 정치, 경제의 파트너임과 동시에 국가 단결을 위해 아주 유용한 존재입니다. 학문 차원에서 일본은 두려운 상대입니다. 학자들은 사석에서는 거의 모두 일본의 학문 수준을 인정합니다. 일반 시민 차원에서 일본은 미움이란 감정의 표적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호감이 가는 존재입니다. 정리하자면, 국가와 시민이 같은 성향을 보이고 학자들은 조금 다른 태도라고 할 수 있지요.



철학자 : 국가와 시민이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것은 국가가 일본에 대한 태도를 교육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공적이라고 봐야지요. 일본에 관한 책들 중 잘 팔리는 것은 역시 일본을 비하하는 내용의 책입니다. '일본은 없다' 식이 잘 먹힌다고 할 수 있지요. 전여옥도 일본을 비하한 사람 중 한 명인데 어떤 사람은 "전여옥의 일본 체험은 얼핏 의기양양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아픔이며 깨지기 쉬운 것이고 종이 한 장 정도의 무게밖에 지니지 못한 것이다."라고 평가합니다. 자신이 잘못해놓고 일본인 탓, 일본 문화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합니다. 문제는 일본에 대해 잘 몰라도 일본을 깎아 내리고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우는 방향으로 간다면 일반인의 호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대 한국이 만들어낸 모습 중 하나입니다.



사학자 : 그렇다 해서 일본이 근대에 저지른 갖가지 잘못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이 국가적 단결을 위해 일본을 이용했다는 것과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면서 저지른 잘못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사로 다른 문제입니다.



사회자 : 토론이 조금 과열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정리하는 의미에서 앞으로 바람직한 한일 관계에 대해 말씀을 나눠주시지요.



사학자 : 아무래도 양국이 선린우호로 가려면 이해를 증진해야 하는데, 이해 증진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이 태도를 정리해서 과거사에 대해 좀더 진실에 접근해주길 바랍니다. 물론 우리도 민족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좀더 세계사적인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일본인 : 저는 예전에 보았던 기사가 생각납니다. 「아사히 저널」에 재일화가인 이우환 씨의 의견이 실렸습니다. "서로 훌훌 벗어 던질 수는 없다고 해도 조금 거리감이 있는 외국인으로 서로를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오랜 역사를 통해 양측의 교류와 교류 방식은 불가분의 관계를 넘어서서 이상할 정도의 밀착의 정도를 강화해왔고, 또 그만큼 터무니없는 근친 증오를 낳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타자를 인정할 만큼 자기가 가진 것이 넉넉하지 못한 인종에게, 자기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증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저는 이 의견에 동의합니다. 거리를 갖는 외국으로 서로를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자 : 저도 일본을 외국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단순한 사실은 일본을 좀더 객관적으로 보게 해줍니다. 물론 애증 관계가 있지만 애써 거리를 두고 외국으로 본다면 서로를 인정하는 마음도 생길 것으로 봅니다.



* 이제 일본을 보통 국가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성장했고 세월도 많이 흘렀다. 민족주의를 탈색하고 보면 일본은 우리와 가까운 외국일 뿐이다. 민족주의에는 일본에 대한 증오가 담겨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독립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 우리의 민족주의라면 일본에 대한 민족주의는 독립의지보다 시기심과 멸시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일본에 관한 한 이제 민족주의는 그 역할을 다한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개항부터 추구했던 근대민족국가 건설은 통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과 북은 탄탄한 국가체제를 형성, 유지하고 있으므로 어느 정도는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민족주의라는 사다리를 한 칸 한 칸 올릴 때마다 일본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하지만 이제 심리적 장애를 극복하고 일본을 외국으로 보아야 한다. 일본을 외국으로 볼 수 있다면, 사다리에 깃들어 있었고 일부가 되었던 일본도 색이 변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감이 양국의 우호를 증진시킬 것이다.사회자 : 오늘은 마무리하는 의미로 한국 민족주의의 앞날에 대해 토론해보겠습니다.



사학자 : 저는 민족주의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적으로는 전체주의 내지 파시즘을 낳고 대외적으로는 배타주의 또는 침략주의를 낳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민족주의는 폐기되거나 완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자 : 의외군요. 지금 말씀은 민족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민족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다른 분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철학자 : 입장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요. 저는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폐해는 경계해야겠지만 민족주의는 사다리와 같은 것으로 높은 곳에 이르기 위해 아직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본인 :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합니다. 세계시민주의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여깁니다. 국가라는 경계가 과연 인간의 행복과 존엄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저는 회의적입니다. 이제 국가라는 경계선을 넘어서 세계시민이 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민족주의가 사다리라면 어디에 놓으려는 것인가? 어디를 향하여 놓고자 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우리는 사다리를 놓는 상황을 밖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근대세계체제 I』을 쓴 월러스틴의 주장대로, 나는 구한말 이후 지금까지 진행해온 근대화 과정, 통일로 민족국가를 이루려는 열망, 세계화 속에서 주체성을 지키려는 노력 등 모든 것이 세계체제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화는 우리에게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일을 '부족' 단위로 연구하듯이 들고 판 결과 우리 밖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온 세계화를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만 몰랐던 것이다. 유럽에서 약 500년 전에 시작된 세계체제가 이제 우리 앞에 등장한 것인데, 사실은 이제 우리가 인식한 것뿐이지 실제로는 구한말부터 이미 세계체제에 편입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와중에 러시아, 일본, 미국, 중국이 등장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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