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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일본은 무엇인가

정대균 지음 | 도서출판 강
서론 - 일본이란 무엇인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일본은 한국인에게 특별한 존재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된 시초는 먼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나라 사이에는 사람과 오랜 문물 교류의 역사가 있으며, 언어와 신화, 두개골의 형태와 혈액형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위의 교류라고 한 말에 있어, 오늘날 한국인은 그것은 교류가 아니라 '전파'나 '전수'라고 말한다. 즉, 과거의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문화적 선진성과 우월성이다. 오늘날 일본인은 그런 역사적 사실을 '주어진 문화'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면서 자기 문화에 대한 인식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반면, 한국인은 문화적 전파자라는 역할에만 주목하기 때문에 그것을 자기 인식의 문제로 파악하기보다는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로 접근하려고 한다.

또한 한국인에게 있어 일본은 가해자로서도 특별한 존재다. 사실 일본만이 유일한 가해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인이 일본의 침략에 대해 말할 때의 말투는 그것보다 더 오래된 중국의 침략이나 더 가까운 시기에 일어난 북한의 침략에 대해 말할 때에 비해 훨씬 더 열정적이다. 근대 이전의 역사든, 근대 이후의 역사든, 일본은 한국인이 국민적인 정체성을 확립할 때마다 중요한 참고항으로 활용되어 왔다. 오늘날 한국에서 영웅이나 위인으로 칭송 받는 사람이 일본과의 관계에서 규정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1. 여론조사의 결과



1995년 전후 50주년을 맞이하여 요미우리 신문이 실시한 '아시아 7개국 여론 조사'를 보자.

중국 말레이지아 한국



1 예절 바르다 26 근면, 지나치게 일한다 68 식민지 지배, 2차 세계대전 322 근면, 지나치게 일한다 25 지적 36 간사하다, 야비 293 첨단 기술 17 예절 바르다 23 잔인, 무섭다 154 스트레스, 긴장을 느끼는 생활 16 첨단 기술 19 근면, 성실 115 생산성이 높다 14 유복 9 친절, 예절, 질서 11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1 근면, 지나치게 일한다 24 지적 46 근면, 지나치게 일한다 502 안정된 경제 환경 18 첨단 기술 46 첨단 기술 493 첨단 기술 17 근면, 지나치게 일한다 37 지적 444 애국심, 단결 14 예절 바르다 17 유복 265 시간에 엄격하다 13 유복 17 경제 우선 24

표 1 '일본인'이란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단어



6개국에 대한 설문은 "'일본인'이란 말을 들으면 어떤 단어가 떠오릅니까?"라는 연상 게임식의 설문이다. 결과를 놓고 보면, 한국을 제외한 5개국에서는 긍정적인 단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부정적인 단어가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를 묻는 질문에도 거의 비슷한 결과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수치들이 말해주는 것은 반일적인 한국과 친일적인 동남아, 그 중간에 중국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인은 일본인에 대해 '악당'과 '선인'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 위에 나와 있는 단어 외에 한국인의 응답 결과 전체를 보면 응답률 1%가 넘는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쪽발이 7.8%, 근면 7.5%, 간사하다 6.8%, 친절 5.4%, 정신대·위안부 4.2%, 단결력 3.9%, 경제대국 3.8%, 일제시대 3.7%, 잔인·잔악·잔혹 3.6%, 일제시대에 핍박당한 것과 야비 각각 3.5%, 일체 치하의 억울함과 식민지와 이기적인 국민·이기적·이기주의 각각 3.3%, 성실 3%, 나쁜 사람·나쁜 놈 2.9%, 왜놈과 침략 각각 2.8%, 36년 간의 통치 2.7%, 독한 면이 있다·독종과 경제 동물 각각 2.3%, 검소 2.2%, 약삭빠르다 2.1%, 이중성 2%, 질서를 잘 지킨다와 기모노 각각 1.9%, 지진 1.8%, 실리주의 1.4%, 벚꽃·사꾸라 1.3%, 예절 바르다와 깨끗한 나라 각각 1.2%, 경계대상 1.1%, 절약과 생활력이 강하다와 기회주의자 각각 1%."

집계표에 따르면 한국의 응답 결과에 나타난 313개 단어들의 특징은 부정적인 응답이 102.3%(복수응답허용), 긍정적인 응답이 53.8%, 중립적인 응답이 13.6%이다. 이 다양한 단어들을 그 성격과 시제에 따라 분류하면 한국인이 일본을 보는 이미지는 대략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 침략 국가 : 일본인보다는 일본의 과거 부정적인 면을 표현한 단어들② 악당 : 일본보다는 일본인의 과거 및 현재의 부정적인 면을 표현한 단어들③ 선인 : 일본인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단어들④ 경제 대국·선진 국가 : 오늘날 일본 국가와 사회의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속성을 표현한 단어들

즉, 여론 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이미지와 감정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이 단순한 반일이 아니라 반일과 친일이 교차하는 양면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몇 가지 여론 조사의 결과를 보자. 동아일보사와 아사히 신문사가 1984년부터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이 '좋다'는 응답은 1984년 22.6%, 1988년 13.6%, 1990년 5.4%, 1995년 5.5%로 감소했으며, 반대로 '싫다'는 응답은 1984년 38.9%였던 것이 1988년에는 50.6%, 1990년 66%, 1995년 68.9%로 증가했다. 반면 긍정적인 시각의 여론조사도 있다. 1989년 '고려대학교 신문방송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가장 많이 배워야 할 나라'라는 항목에서 일본은 1989년 49.85%, 1995년 60.1%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1993년 중앙일보사 조사에서도 '배워야 할 나라'는 일본 50.2%, 독일 12.4%, 미국 5.6%였다.

2. 세대 차이



① 식민지 시대



오늘날 60대 중반을 넘어선 식민지 세대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은 일본 통치기에 초등학교에 다녔거나 일본의 활동 사진이나 만화에 빠진 적이 있거나, 일본인과 싸움을 해본 적이 있다는 체험일 것이다. 식민지 세대의 추억에는 다양한 일본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다양한 일본인을 만났고 당연한 말이지만 거기에는 '좋은 일본인'도 있고 '나쁜 일본인'도 있었다. 그러나 이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식민지 시대로부터 해방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민족과 역사와 가치관의 큰 전환을 체험했다는 점이다. 즉 한쪽에는 식민지 시대에 대해 향수에 젖어 말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끔찍한 과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며, 한쪽에는 자기 갈등의 체험을 바탕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는 이데올로기적인 규탄·고발의 대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식민지 세대의 과거에 대한 말투에는 이처럼 몇 가지의 다양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는데, 해방 이후의 위정자나 문화 엘리트가 후세에 전해지기를 희망하는 쪽은 후자로, 그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예가 역사 교과서다. 한글 세대에게 부여된 것은 이처럼 적의와 증오에 바탕한 일본에 대한 시각이며, 그들은 이런 시각을 출발점으로 삼아 일본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② 한글 세대



식민지 세대와 비교하면 한글 세대의 일본에 대한 시각에는 마음의 흔들림이 적다. 그들은 사회화 과정에서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머리 속 깊이 새겼고, 식민지 세대가 겪는 자기 갈등이나 자기 회의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해방 이후 새로운 정치적 규범 - 일본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 은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깊이 새겨졌다. 그러나 한글 세대가 언제나 정치적 규범에 충실한 것은 아니다. 한국의 한 여대생의 작문을 하나 보자.

"우리 나라에는 일본이라고 하면 무조건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우리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직접 일본인과 만난 경험이 없지만 반일 교육과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인해 일본과 일본인을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일본인과 깊이 사귀지는 않았지만 잘못된 편견 때문에 인간 관계를 망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여대생의 작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규범과의 갈등이다. 이런 종류의 갈등을 더 극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경우는 한글 세대가 일본을 체험했을 때다. 한글 세대는 일본을 보기 전부터 일본에 익숙해져 있다는 이상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데, 실제로 만나는 일본과 일본인이 이미 알고 있는 이미지나 관념과 그대로 일치하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일본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공유하고 있는 한글 세대가 일본의 참모습을 만났을 때 대부분 겪게 되는 것은 부정적인 시각의 교정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최인호의 『잃어버린 왕국』에서 최인호는 일본 체험이 문화적 우월성을 재확인하는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 체험을 통해 일본의 부정성을 발견한 사람도 있다. 『일본은 없다』를 저술한 전여옥의 경우가 좋은 사례다. 하지만 일본을 체험하고도 자기 존중이란 생각이 흔들리지 않은 것은 최인호와 전여옥은 예외적인 예다. 일본을 체험하고 나면 타자에 대한 회의는 자신에 대한 회의로 그 방향이 바뀌고 또한 자기 긍정은 자기 부정으로 흔들리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일본을 대할 때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일본에 대한 적의나 멸시가 자존심을 지탱하고 이와 반대로 경의나 공감이 자조의 감각과 함께 존재하는 일종의 제로섬적 상황으로 이를 뛰어넘는 심성은 좀체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신 분석학의 용어로 양면성 콤플렉스라고 불리는 이 문제는 일본인들에게도 나타난다. 문명 개화 이후 일본인의 구미 체험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어떤 때는 상대를 이상화하면서 거기에 심취하고 동화하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상대에게서 위협감과 혐오감을 느끼면서 멸시하고 이질화하려는 태도이다. 그러나 한국인과 일본인의 관계에서 이 양면성 콤플렉스가 좀더 심각한 의미를 지니는 쪽은 한국인의 경우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에 대한 공감 훈련이 결여되어 있는 한글 세대의 경우에 의외로 큰 딜레마의 원천이 될 수 있다.

3. 상호 조망의 궤적



해방 이후의 한일 관계를 대략 세 시기로 나누어, 주로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의 궤적을 개관해보자.

① 첫 번째 시기(1945∼1965년)



첫 번째 시기는 일본의 한반도 통치가 종언을 고한 1945년부터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된 1965년까지 20년 간으로, 이 시기에 두 나라 사이에는 국교 관계가 없었다. 한일 관계가 단절되어 있던 이 시기, 이웃나라에 대한 일본인의 시각에서 특징적인 것은 무관심과 관심 회피의 조합에 의한 망각이라는 상황이었다. 잘 알고 있듯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 간 한반도는 일본 제국의 일부였고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는 사람들의 이동이 있었으며, 또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는 착취와 차별의 관계와 더불어 우정과 협력의 관계가 존재했다. 그러나 한반도와의 이처럼 다양한 유대는 일본의 패전을 기화로 한순간에 쓸모 없어져버렸고, 이웃나라의 존재 역시 빠른 속도로 일본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한편 한국인에게 식민지 지배에서의 해방은 인생과 역사, 민족이 지니는 의미의 큰 전환을 뜻했다. 그러나 변화는 과거의 깨끗한 청산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해방 이후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진보라는 실질적인 감각을 국민들이 공유할 수 없었던 점도 이 청산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반일과 향수, 증오와 애착은 많은 한국인의 마음 속에 공존하는, 식민지 시대나 일본에 대한 두 가지 형태의 시각이며, 그것은 오늘날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 지니고 있는 양면성의 원형이 되었다.

1948년 마침내 이 땅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반공'과 '반일'을 국시로 하는 이승만 정권시대가 시작된다.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고 등장한 박정희 군사 정권은 18년 동안 한국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지만 반일과 향수, 증오와 애착의 경합이라는 상황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② 두 번째 시기(1965∼1982년)



두 번째 시기는 1965년 국교 정상화에서부터 '교과서 문제'가 발생한 1982년까지 17년 간이다. 이 시기의 일본은 한국에 대해 정치적 관심은 높았지만, 두 번째 시기 전반만 본다면 무관심과 관심 회피하는 상황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상황이 변한 것은 김대중 사건(1973) 이후다. 사건이 일어나자 대중매체들이 한국의 독재 정권을 맹렬히 비난하고 '한국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사명감을 동반한 것이었다. 여기서 사명감이란 한국을 조종 가능한 지역으로 보는 사고, 즉 일본판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을 주도한 이들은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이 두 번째 시기의 후반부는 세 번째 시기를 기다리는 변화의 준비 기간이기도 했다. 학교 교과서에 한국·조선에 관한 서술이 없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재일한국인·조선인의 제도적 차별에 대한 이의 제기 운동이 시작된 때가 이 시기다. 또한 국제화론과 공생론의 형태로 일본식의 다문화주의를 말하게 된 때도 이 시기다. 한편 이 시기 한국에서 특징적인 점은 새로운 한일 관계의 전개와 함께 나타난 이끌림과 반발, 관심과 반(反)관심, 모방과 적의가 경합하는 상황이다. 새로운 한일 관계의 특징은 일방통행이란 관계였다. 일방 통행의 관계란 국교 정상화와 더불어 사람과 물자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일방적으로 흘러드는 상황을 가리킨다. 이런 상황은 한국 지식인들이 '경제 침략'이나 '문화 침략'에 대해 소리 높여 비판하게 만들었고 박정희는 '친일파', '매국노'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후의 역사는 1979년 박정희의 암살로 끝나고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거친 뒤 전두환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전두환 정권이 박정희와 다른 점은 그들이 일본에게 요구한 내용을 통해, 일본인이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이들이 종래의 한국인과는 이질적인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③ 세 번째 시기(1982∼현재)



세 번째 시기의 기점이 된 '교과서 문제'는 전두환 정권이 요구한 차관 교섭이 이루어지고 있는 도중에 발생했다. 아사히 신문을 비롯한 일본의 각 신문들은 1983년도 사용예정인 고교용 교과서의 검정 내용에 대해 다루면서 중국에 대한 '침략'이라는 서술 내용이 검정 후에 '진출'로 바뀌었다고 보도했고, 이것이 한국 신문에 실리면서 3주일 정도 한국 신문의 1면 톱 기사는 교과서 문제로 채워졌고 광복절이 다가오자 반일 캠페인은 '극일 운동'이라는 형태로 궤도가 수정되었다. 나아가서는 독립기념관 건설을 위한 모금 운동이라는 국민 운동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사실은 단순한 오보였다. 문제가 된 부분은 한국이 아닌 중국이 대상이었고, 이를 한국 신문이 오보를 냈고 그 오보를 일본의 신문들이 그대로 호응하여 보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고, 그것은 이후 한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고 일본 수상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관례가 되었다. 한국은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걸쳐 민족주의를 구가했다. 이 시기의 신문과 잡지에는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약진하는 한국', '선진국 대열에 참가', '한국의 저력' 등의 문구가 춤추고, 역사학자는 고조선의 판도를 확대했다. 반미가 나타나기도 했으나 가장 전형적인 민족주의의 표현법은 반일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1990년대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일본은 없다』 등의 선동적인 반일 서적이 차례로 출판되었다. 이 시기는 한글 세대가 사회의 중견이 된 시기이자 민족주의가 상품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활성화된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미약했다.

세 번째 시기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사람과 정보의 상호 교류와 상호 침투가 시작된 시기로 1990년대 후반인 오늘날 두 나라 사이에는 연간 300만 명을 헤아리는 여행자가 왕래하며 유학생이나 주재원 등 상대 지역에서 장기 체류하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한일 관계는 적어도 현재 상황에서는 우리에게 상호 인식의 풍요로움을 안겨주기보다는 두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상의 차이를 찾아내 갈등의 기회를 증가시키고 있는 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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