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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된 희망

폴리 토인비 지음 | 개마고원
이게 어디야, 감지덕지한 취업나의 일자리 탐색은 아침 일찍 취업센터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취업센터에서 컴퓨터를 검색해 몇 가지 직종을 한 묶음 출력한 뒤 집에서 고용서비스로 전화를 걸기 위해 취업센터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고른 병원 잡무 일에 대해 문의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고용서비스 담당자는 이름과 국민보험번호를 묻고는 내가 고른 병원의 구인광고를 낸 용역회사의 위치와 면접 시간, 필요한 서류 등을 알려주었다. 용역회사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가자 안내창구 근처는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입사지원서 양식에 나온 엄격한 규정이라고는 양식을 작성하려면 노동허가증이나 영국시민권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뿐이었다. 이민자 지위는 어딜 가나 엄격히 검사하는 항목이었다.



나는 서명을 해야 하는 양식에 기재된 약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내용에는 왜 국립보건서비스(NHS : 한국의 건강보험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와 같은 보험이 아닌 조세를 통한 사회부조 형태로 제공되는 영국의 국영 의료서비스 체제, 또는 그에 속한 병원)가 공개적으로는 도저히 제시할 수 없는 급여와 근무조건으로 용역회사를 통해 자유노동자를 고용하는지, 그 설명이 나와 있었다. '자유노동자협정'은 '비정기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정'이며, 다시 말해 '0시간 계약(노동시간을 상황에 따라 조절하는 계약 형태)'이다. 일주일에 최대 48시간 노동이라는 노동자 보호법을 그대로 무시하는 조항도 있었다. "이로써 임시노동자는 주당 근로시간 제한을 적용받지 않기로 동의한다."



몇 차례 취업센터 컴퓨터를 찾아간 나는 심사가 점점 뒤틀렸다. 그곳에 나온 일이라도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용역회사는 일자리가 확실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애초의 구인광고보다 못한, 대개는 훨씬 못한 일을 있는 대로 모아놓고 무작정 저임금 노동자를 끌어 모았다.



나는 꽤 오래 기다려서 간단한 면접을 마친 후 내일 아침 첼시앤드웨스트민스터 병원에서 운반 일을 시작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용역회사의 담당자가 준 종이 꾸러미에는 앞으로 일자리를 구할 때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지시사항이 적혀 있었다. 맨 앞 장에는 가장 중요한 지시사항이 대문자로 적혀 있었다. "개인 전화 번호를 직장에 '절대' 알리지 말 것."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자기네 용역회사를 위한 권고였다. 내가 직장을 새로 얻더라도 직접적인 거래를 막아 수수료를 챙기기 위한 수법이다. 지시사항은 또 있었다. "항상 예약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할 것." 일주일에 총 1시간 15분은 급여도 받지 못하며 일하는 셈이다.



비록 한 시간에 4.35파운드짜리 일이지만 나는 성취감에 상기되어 용역회사를 나왔다. 노동시장이 아무리 경직되었다고 해도 구직자는 언제나 넘쳐났고,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사용자가 아닌 구직자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서류를 다시 넘겨보았는데, 이제까지 보지 못한 조항 하나를 발견했다. 용역회사는 임금을 2주가 지나서야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2주 뒤에야 돈을 만져볼 수 있으므로 결국 내 빚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돈을 받기 전에 2주씩이나 굶어야 한다면 누가 직장을 옮길 수 있으며, 누가 정부 보조금을 포기하고 취직을 하려고 하겠는가? 나중에 잡은 직장 중에는 한 달이 지나서야 급여를 주는 곳도 있었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최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회사 간부에게 월급을 주는 식이었다. 나와 면접을 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가불이 가능한지 물어보았지만, 단박에 거절당했다.20세기 경제에서 국민소득은 7배 증가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소득 격차는 서서히 좁혀졌고,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그 격차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소득뿐만 아니라 재산의 분배도 어느 때보다 공평하게 이루어졌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소유하고 연금과 저축을 쌓아갔다. 그러나 위대한 사회정의를 향한 역사적 진보는 대처 총리 시대에서 돌연 멈춰버렸다. 소득으로 보나 재산으로 보나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뒤쳐졌다.

빈곤층 자녀라도 똑똑하기만 하면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사회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구실이 되어 왔지만, 이제 그 믿음이 깨지기 시작했다.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일찌감치 끊어졌다. 중산층은 이제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전에 없던 지속적인 부와 지위와 성공을 확보했다. 반면 저임금 노동자의 자녀들은 좋은 직장을 얻기가 30년 전보다도 더 어려워졌다. 또 부유한 집안의 자녀가 비슷한 집안 자녀와 결혼하는 경우도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다. 최근의 조사를 보면 중산층 젊은이와 노동자 계층의 젊은이가 결혼하는 일이 매우 드물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저임금 노동자 가운데 지위 상승의 사다리 위로 올라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소득이 하위 10%에 속하는 사람은 더러 위로 뛰어오르기도 하지만 곧잘 다시 아래로 떨어진다. 결국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얘기다. 이들은 실직과 저임금의 악순환 속에서 매우 불안정하게 살아간다.



최저임금을 보장해주었지만 그것이 너무 낮았던 까닭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결코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노동당이 내놓은 대안은 노동자가족 세제혜택(자녀가 있는 저소득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것으로서 상시고용의 경우 가족의 순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일 때 임금의 부족액을 모두 보충해주는 제도이다. 주 단위로 지급됨)이었다. 실업수당에 의지한 삶보다 노동이 더욱 가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세제개혁이었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끌어올려 재계를 놀라게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국가가 지급하는 특별 보조금으로 엄청난 소득 불균형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장 큰 문제는 기본적인 공정성이다. 임금은 노동의 가치와 존엄성을 반영해야 한다. 저임금은 곧 저평가를 의미한다. 높은 급료를 받은 이들은 돈의 액수에서 자부심을 느낄 것이고, 시간당 4.10파운드짜리 일을 찾는 사람들은 적은 액수에 모욕감마저 느낄 법하다.



350만 명의 빈곤층 사람들이 일자리가 있는 가정에서 산다. 빈곤층 가운데 실직자보다는 직업이 있는 사람이 더 많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이 연금을 받는 사람보다 더 많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 장애인, 그 외에 일할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일터로 나가고, 또 나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빈곤층 사람들은 무능하지도, 희망이 없지도, 무기력하지도 않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장시간의 매우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식적인 빈곤선보다도 낮은 수입으로 살아간다. 이런 근로조건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노동이 최선의 복지가 아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공공서비스의 기반이며 발전하는 서비스 경제의 버팀목이지만 전반적으로 그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들이 빈곤한 이유는 바로 저임금 탓이다.



좀더 공정한 가치와 보상의 균형을 찾아보자는 제안은 그리 혁명적인 제안이 아니다. 국가 전체의 부를 손상하지 않으면서 소득 격차를 줄이는 제도를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에서도 오히려 일인당 부는 영국보다 높다. 사회민주주의적 점진주의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정성 달성에 기여했다. 그리고 이들 국가의 사회 정의는 영국과 달리 경제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았다.



나는 고민 끝에 빈곤퇴치교회운동이 제안한 사순절 기간 동안 최저임금인 시간당 4.10파운드(2002년 5월 평균 환율 : 1파운드=1850원)의 기본급을 받으면서 일을 해보기로 했다. 나는 일할 능력을 잃었고, 집도, 연금도, 저축도 없으며, 가족과 친구도 모두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이 책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정당한 대가를 받을 만한' 빈곤층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은 일주일에 48시간이 넘게 일을 하지만, 이 수입으로는 현재의 환경에서 결코 탈출하지 못한다. 이들은 앞으로도 집을 장만하지 못할 것이며, 저축할 수 있는 돈은 극히 적은 액수에 불과하고, 노후에도 연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1970년보다 3배가 증가했다. 국가 전체는 2배로 부자가 되었지만, 빈곤층은 내내 그 자리다. 왜 이들은 여전히 뒤쳐져 있을까? 상위 10개 직종의 임금이 작년에 7.3% 오른 데 비해, 하위 10개 직종은 고작 4.5% 올랐으며, 이런 현상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내가 30년 전 성 스테판 병원에서 일할 때 그 병원은 매우 불량한 위생상태였지만 웨스트민스터 부속병원과의 통합으로 병원은 과거를 연상하기 힘들 정도로 개선되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은 아주 낮았고, 직원의 이직률이 매우 높았으며, 소모적인 저임금 노동이 넘쳐났고,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다니면서 임시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다. 그때도 지금처럼 저임금 노동은 싸고 소모적인 노동으로 취급받았다.



병실 보조원으로 일하던 1970년에 내 임금은 일주일에 12.50파운드였다. 지금 새로 생긴 병원에서 운반 일을 하며 받을 임금은 시간당 4.35파운드, 즉 일주일에 174파운드다. 재정연구소(IFS)의 계산에 따르면 일반 임금상승 수준으로 볼 때 당시 주당 12.50파운드는 지금으로 따지면 210파운드가 되어야 한다. 1970년대에 비해 영국의 국내총생산은 2배로 성장했고, 국민소득은 2배가 뛰었지만, 병원 내의 저급 노동의 실질적 가치는 주당 36파운드나 떨어졌다. 병원은 새로워졌고, 작업환경도 훨씬 좋아진 게 사실이지만 임금과 근로조건은 더욱 열악해졌다. 내가 맡은 일은 30년 전보다 비단 임금만 낮은 게 아니라 고용 자체도 유연성이 커져서 그때그때 용역회사의 고용 여부에 따라야 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개 가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어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가능한 한 여러 차례 교대근무를 하려고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일을 겸업하기도 했다. 운반원들은 병원 내 비의료인 직원을 고용한 '카릴리온' 회사 로고가 새겨진 브이형 셔츠를 입었다. 이 병원에서 간호사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 즉 청소원·조리사·운반원·기술자, 그 외 비의료인 전원이 카릴리온 소속이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는 카릴리온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용역회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많은 사람들은 카릴리온 소속 노동자들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고, 더 불안한 고용상태에서 일했다. 명령이 전달되는 무전기를 담는 가죽 주머니와 휠체어 등 병원 내 운반 부서와 건물관리 부서의 총체적 장비 부족이 문제였지만 건의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모든 건의사항은 카릴리온 내부에서 관리자와 노동자 사이에 처리될 뿐, 국립보건서비스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급여가 너무 낮아서 그렇지, 그것만 아니면 일은 그런 대로 할 만했다. 운반원의 업무 규칙에 따라 모든 일은 15분 안에 끝내야 했으므로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일해야만 했다. 환자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따위는 내가 맡은 일에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환자를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 그로 인해 환자가 다치면 카릴리온이 고소를 당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30년 전에는 운반원이 늘 간호사를 도와 환자를 도왔지만 외주계약이 생기면서 이런 훈훈한 협력관계는 계약서의 세부사항에서 완전히 빠져나갔다. 우리는 냉정한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되었다. 규정에 없는 행동을 해가며 환자를 돕는 운반원들이 많았지만 환자를 도와주는 모습이 발견될 때는 징계를 받기 십상이라고 했다.



내가 이곳에 계속 머문다면 정식직원이 될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궁금했다. 이론상으로는 석 달 뒤면 내가 소속된 용역회사에서 벗어나 카릴리온에서 면접을 볼 수 있으며, 카릴리온의 직원에 해당되는 권리와 근무조건을 적용받을 수 있었다. 카릴리온은 용역회사 사람을 고용하는 대가로 시간당 7∼8파운드를 용역회사에 지불했고, 반면 노동자에게는 고작 4.35파운드를 지불했다. 그나마 카릴리온의 정식 직원이 될 수 있는 기회도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를 지원하는 일은 전적으로 기업에 맡겨진 상황에서 기업은 모든 문제를 비용이 적게 들고 가장 빠른 방법으로 그날그날 해결하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만족감과 성취감을 주고 동기부여가 되는 지위 상승 사다리가 존재하는 작업장을 만들지 못한다. 병원 잡무가 민영화되어 병원에서 분리되어 나가면서 계발되지 않은 운반원의 잠재능력을 어느 누구도 활용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엄격한 계약서에 미리 약정해놓은 대로만 움직였다. 과거 노조와의 협약이 아무리 엄격하고 재협상이 어려웠다 해도 현재 운반원의 임무를 정확히 명시한 병원과 카릴리온 간의 협상불가 계약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병원을 떠난 바로 그날, 토니 블레어 총리는 공공서비스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치하하면서도 더 많은 '개혁'과 '유연성'을 요구했다. 밑바닥 노동자에게는 위협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 이야기였다.임금 인상은 빈곤 퇴치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좋은 방법이다. 이 사실을 무시하고 임금과 근로조건을 쥐어짠다면 서류상으로는 생산성이 높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빈곤층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나는 휴식이라고는 고작 30분밖에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하루 8시간을 걸어다니면서 부족한 간호사를 대신해 병원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일을 열심히 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은 세금을 제하면 주당 150.67파운드다. 결국 시간당 임금은 세금을 제하면 고작 3.76파운드인 셈이다. 일할 때 신을 값싸고 편안한 신발 한 켤레 사려면 8시간을 일해야 하고, 값싼 안경을 새로 장만하려면 이틀을 일해야 한다.

내가 외주계약이 노동자에게 끼치는 피해를 설명하면, 국가가 예전처럼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게 될 때 보수적이며 경직되고 살벌한 노조가 다시 힘을 얻지나 않을지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노조는 예전처럼 정치적 성격을 띤 대결이 아닌 관리자와 노조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전략을 구사하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또한 노조의 세력은 매우 약해서 공공부문에서는 65%, 민간부문에서는 고작 19%의 노동자만이 노조에 가입했다. 주방이나 보육시설 등에 고립되어 일하는 저소득층이야말로 자신을 보호할 노조가 절실히 필요한데도 노조는 좀처럼 결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공공부문에서 관리자가 손을 뗀 이후 최근 몇 년 사이에 공공서비스 관리의 질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렇다면 민영화로 공공부문 서비스가 향상되고 비용이 절감되었을까? 그렇지 않아도 바닥인 노동자의 임금이 더욱 낮아진 것을 두고 '절감'이라고 하지 않는 한, 비용절감의 증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이번에는 화이트 홀에 있는 외무부에서 이제 막 연 놀이방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이곳에서의 임시직은 사람이 필요할 때 하루나 이틀 전에 통보하면 어떤 교대시간이든 나와서 일해야 했다. 필요할 때 부르면 언제든지 나와야 했다. 수입도 들쭉날쭉했다. 이번 주에는 한 차례의 교대근무가 있어서 급여가 나오지 않는 점심시간 한 시간을 포함해 총 8시간을 일해야 했고, 그렇다면 시간당 총 급여는 고작 42파운드였다. 다음 주에는 세 차례 교대근무가 있을 예정이고, 그렇다면 총 126파운드를 받는다.

이 놀이방은 운영과 감독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었고, 매우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나는 린과 함께 아이들 8명이 있는 방에 배정되었다. 하루 일과는 늘 정해져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일정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아이들은 다음 순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산책은 하루 일과 중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마치 군부대가 행군하듯 능률적이고 계획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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