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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이야기

이성기 지음 | 학민사
겐트는 벨기에 4대 프레미쉬 도시의 하나로 험난한 역사 속에서도 굳건히 자존심을 지켜온 곳이다. 벨기에의 플란더런은 대서양과 인접한 서부지역을 말한다. 뒤집어 놓은 직삼각형에 선을 긋는다면 네 도시의 위치는 그 선상에 있다. 곧 북쪽 직각 부분에 안트베르펜, 왼쪽 평행한 선을 따라 모서리 부근에는 브뤼헤, 안트베르펜 동쪽에 브뤼셀이 있다. 겐트는, 유럽에서 벨기에 지역이 그렇듯이 벨기에의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로마제국 때부터 점령군 본부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겐트의 역사는 630∼50년부터 시작되었다. 성 피터스 수도원과 성 바보 수도원을 이곳에 건설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겐트는 끊임없는 외침에 저항해 왔거나 지배를 받아온, 고난의 역사를 함께 한 도시이다. 879∼83년에는 바이킹족이 이곳을 공격하였으며, 1300년대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종교적 갈등으로 인하여 1566, 1677년 두 차례에 걸쳐 가톨릭 관련 종교기물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가톨릭을 신봉하는 지역이므로 독립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네덜란드의 신교도(Protestant) 칼빈주의와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1700년대에 잠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었고, 그 후 네덜란드와 함께 프랑스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브뤼셀 남쪽 워털루라는 작은 마을에서 영국, 프러시아, 네덜란드(당시 벨기에는 독립하기 전이었다) 연합군에게 패하자, 네덜란드는 벨기에를 포함하는 독립국으로 남아있게 된다. 벨기에인들은 외세에 의해 200년 넘게 분리되어온 양 지역을 강제로 통합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중세시대부터 4곳의 도시를 중심으로 프레미쉬 예술과 문화라는 독창적인 영역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해상을 통하여 지중해 연안, 아프리카 북부, 동방까지 진출하였다. 해상무역에서 가장 중요한 운송로는 수로이다. 수로의 건설은 곧 무역업의 발달을 의미한다. 길드라는 상인조합을 만들어 조직적인 거래행위와 상품의 질을 균일화하도록 자체적으로 엄격히 관리하였고, 그 결과 얻은 길드의 막대한 부는 권력을 후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벨기에 4대 도시에 가면 길드 상이 만든 조합이나 의류상가 건물이 읍 청사와 나란히 서 있는데, 오늘날에는 예술성이 높은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무역을 통해서 원료를 수입하고, 그 가공산업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것이 금세공 산업과 다이아몬드 세공산업이다. 특히 브뤼헤에서 시작된 다이아몬드 가공산업은 유럽 전역에서 그 명성이 높았고, 겐트는 운하를 통해 영국에서 목화, 섬유를 수입하여 섬유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길드상의 상인정신을 이어 받아서 안트베르펜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과 함께 서유럽의 물류 중심 무역항이 되었다.플란더런(Vlaanderen, Flanders) 지역에는 이곳만이 가지는 독특한 예술이 있어 한 장르로서 분류되고 있다. 이들을 프레미쉬 예술이라고 부른다. 프레미쉬 예술품으로는 건축, 이탈리아와 쌍벽을 이루는 각종 회화(페인팅), 섬세한 장식품 등이 유명하다. 벨기에에서 프레미쉬 예술품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도시는 브뤼헤, 겐트, 브뤼셀, 안트베르펜이다. 따라서 이 도시를 프레미쉬 도시라고 부른다. 브뤼헤는 오늘날까지도 중세시대 건물이 가장 많이 남아 있어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00년대까지 즈바인(zwijn) 강을 따라 해상무역이 발달하여 호황을 누렸을 때, 이곳에는 52개의 부유한 공예 길드 상이 있어 각종 세공 예술품, 다양한 건축술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브뤼셀은 예술을 사랑하는 부가디언(Burgundian) 왕자 시대 이후로 줄곧 수도였으며, 안트베르펜은 플란틴(Plantin) 시대에 있어서 인본주의의 중심이자 발상지였다. 네덜란드 남부지역이었던 이곳은 중세부터 17세기까지 모든 방면의 예술이 크게 발달되었다. 겐트의 백작성은 잘 보존된 벨기에의 대표적 고성(古城)이다. 각 도시마다 우뚝 서 있는 성당들은 12∼13세기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 고딕 양식으로 출발하여 나중에 로마네스크 양식과 혼합하여 세워졌다. 종루는 도시의 중앙광장 옆에 높이 솟아 있다. 벨기에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 1401∼55년에 지어진 브뤼셀 대광장에 있는 읍 청사이다.



프레미쉬 도시는 대형 공예품부터 세공품가지 다양하게 공예예술이 발달하였다. 특히 세공은 중세시대 지중해와 동방에서 자유무역을 하던 길드 무역상과 이들로부터 구입한 금을 가공하는 장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금 세공품 외에도 13∼14세기에는 나무를 재료로 한 프랑코-프레미쉬(Franco-Flemish) 목각품이 많았다. 14세기 말에는 종교적인 소재에서 벗어나 현실의 소재를 형상화하여 제조하기 시작하였으며, 돌을 조각하는 기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안트베르펜 성모대성당 안의 석관 위에 두 손을 모으고 누워 있는 '이사벨라 여인의 동상'을 보면 마치 살아 있는 듯 생동감 나게 조각되었으며, 이사벨라는 슬픔보다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브뤼셀 왕립박물관에 가보면 유명한 칸막이 장식(1470)을 볼 수 있다. 프레미쉬 예술 중에서 세계 여러 곳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 미술이다. 회화는 고딕시대 말기부터 서서히 독창적인 모습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 전통의 기풍에서 벗어나 프레미쉬 회화라는 현실적인 기풍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프레미쉬 미술에서는 종교적 소재에서 탈피하여 좀더 자유롭게 전원 풍경이나 사계절에 따라 노동하는 모습, 서민들의 일상사를 담은 작품이 대두되었다.



겐트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화가가 잔 반 에이크이다. 그의 그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신비한 양의 숭배'이다. 이 그림은 겐트시 바보 성당에 소장되어 있다. 15세기 프레미쉬 최대 걸작품으로 꼽힌다. 벨기에가 낳은 최고의 미술가 피터 파울 루벤스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는 안트베르펜의 궁중화가로 있으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종교화나 역사적인 사실을 그림으로 그렸고, 인물과 풍경도 그렸다. 안트베르펜의 루벤스 동상 뒤에 위치한 성모대성당 정면에는 '승천하는 마리아'가 있고, 정면 좌우벽에는 '십자가로 올려지는 예수'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가 각각 그려져 있다.겐트 시내 동쪽에 위치한 성 바보 성당(St. Bavo's Cathedral)은 고색창연한 건축물이며, 멀리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 종 탑(82m)이 하늘 높이 서 있다. 발음이 '바보'라서 우습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바보 성당이 아니라 세인트 바보 성당이다. 벨기에에는 가톨릭 국가답게 지명이나 건물 이름에 'St.'가 붙는 예가 많다. 바보 성당은 942년에 처음 세워져 16세기까지 성 존스 교회(St. John's Church)로 불리었으나 이후 바보 성당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상건물은 고딕과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그 전시대의 건축된 지하실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두 개의 석주와 복도가 있다. 바보 성당이 유명한 것은 벨기에가 자랑하는 화가인 반에이크와 그의 동생이 그린 '신비한 양의 숭배(Adoration of the Mystic Lam, 1432)'라는 그림이 소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성당 내 독립된 방에 따로 엄중하게 보관하고 있으며, 입장료를 내고 관람할 수 있다. 프레미쉬 예술을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이다.



지하실은 벨기에에서 가장 넓고 내부 장식이 으뜸이라고 한다. 복도는 두 개의 석주가 있는데, 로마네스크 초기의 것으로 추정한다. 재건축, 개축 과정에서 지하의 석주를 그대로 살려두었다는 증거다. 지하실 넓은 방 측면에는 부속 성당과 많은 무덤, 묘비가 눈에 띈다. 음침한 대형 무덤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지하실 벽은 프레스코화로 선명하게 장식되었다. 프레스코화는 석회를 갓 칠한 벽에 물기가 마르기 전에 수채화로 그리는 화법이다. 안쪽 공간에는 죽음과 관련한 기구,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금과 에나멜로 세공한 성골상자도 여럿 전시되고 있었고, 역대 성직자들이 사용하던 미사도구, 제의 서적들도 있었다.벨기에에서 여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뭐니뭐니해도 언어의 장벽이다. 벨기에는 작은 나라지만 서쪽 지역인 브뤼헤, 겐트, 안트베르펜에서는 네덜란드어를, 동부 지역인 리에쥬(Liege), 나뮈르(Namur)에서는 불어를, 중간 지역인 브뤼셀은 두 개 언어를 함께 쓴다. 동일한 국가에 동일한 도시일지라도 부르는 이름이 달라서 흥미롭다. 벨기에는 조그마한 나라이기 때문에 국내 여행을 하려면 잘 발달된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벨기에에는 4종류의 기차가 있다. 큰 도시끼리만 연결하는 IC(intercity) 열차는 정차하는 역이 몇 개 안 되기 때문에 빠르다. 그 중간 크기의 역도 정차하는 IR(interregiotrinen) 열차가 있다. 그리고 시골역까지 모두 정차하는 L이나 LP 열차가 있다. 동일한 기차에서도 1등급과 2등급이 있으므로 잘 선택하여 탑승해야 한다.



그리고 10회 탈 수 있는 기차표(Rail pass)를 사면 벨기에 어느 지역이라도 동일한 가격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싸다. 26세 이하의 청년은 더 싼 기차표(Go pass)를 사면된다. 이 표를 사용하려면 요일, 날짜, 출발지, 목적지를 본인이 직접 적은 다음 승무원에게 내밀어 도장을 받아야 한다. 요금도 주중에는 비싸고 주말에는 대폭 할인해 준다. 주말이 더 비쌀 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이다. 시간표보다 더 편리한 것이 조그만 책자로 되어 있는 트레인바이스(Treinwijs)다. 이 책은 역이나 관광정보센터에 가면 무료로 구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나려면 먼저 시간표 책을 보고 가고자 하는 노선과 소요시간을 확인한다. 목적지 역에 내리면 서둘러 밖으로 나가지 말고 역사의 내부구조를 차근히 파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시내 방향으로 나가는 지형을 익히고 돌아갈 때에 대비하여 미리 시간을 알아보고 플랫폼 번호와 위치도 확인해 두어야 한다. 식당, 화장실, 대기실, 짐 맡겨두는 곳, 기차시간 표시판, 표 사는 곳, 관광정보 알려주는 곳을 알아둔다. 그리고 공중전화, 시내버스나 트램표 사는 자동기계도 사전에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관광안내소에서 그 도시의 간단한 정보와 지도를 구하면 된다. 지도는 공짜가 아니라 사야 한다. 관광안내소에는 영어로 된 책자가 있지만 가끔 없는 경우도 있다. 사전 정보가 많지 않은 여행자는 외국어 안내 책이라도 사야 한다. 인터넷을 이용하여 정보를 미리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길을 잃었을 때 찾는 방법을 터득하자. 우선 목적지 주위에 높은 탑이나 건물이 있는지 항상 확인하자. 이를 중심으로 방향감각을 잡을 수 있게 된다. 가장 확실하게 쫓겨나지 않는 곳이 성당이다. 성당은 낮 시간은 누구에게나 개방을 한다. 성당은 폐쇄적이지 않고 관광객에게나 현지인들에게 개방적이다. 관광을 마치고 역으로 되돌아 올 때는 갈 때와 중복되지 않도록 다른 길을 잡아야 재미있다. 피곤할 것 같으면 버스나 트램을 이용하면 된다. 벨기에 서부지방에서는 각 도시간 트램 가격이 같기 때문에 겐트에서 쓰던 카드를 함께 사용할 수 있으나, 리에쥬와 같은 동부지방에서는 겐트 카드가 통용되지 않아 현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브뤼헤(Brugge)는 언어에 따라, 외국인들의 발음에 따라 부르지, 브루헤, 브루게, 브루거 등으로도 불린다. 벨기에인들의 발음을 몇 번 듣고 가장 가깝다고 생각해서 브뤼헤로 정하였다. 브뤼헤는 벨기에 제1의 역사 문화 도시이다. 2000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다. 2002년에는 유럽의 문화 수도, 문화 중심지로서 축제를 벌일 정도로 도시 전체가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었다. 도시 외곽은 강물(운하)이 흘러 도시 전체를 계란 모양처럼 감싸고 있다. 물론 도심에도 작은 운하가 여러 갈래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계란 모양을 한 도시의 아래 끝에 브뤼헤 역이 있고, 노른자 중심 부위에 해당되는 곳에 옛 자치정부 궁전이 있다. 시내 정부궁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광장 입구에는 높은 종 탑이 있다. 정상에는 총 27톤에 달하는 47개의 종이 있다. 여기서 브뤼헤 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종탑 옆에 브뤼헤 시청이 있다. 서유럽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 된(1376∼1420) 시청 건물로 유명하다. 600여 년 전에 설계한 도시 구조가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중앙 광장을 지나 발길이 뜸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북으로 강물이 흐르고, 양쪽 강변에는 중세 고가들이 즐비하다. 북쪽 강변을 따라 1km 정도 걸어서 포토리 박물관을 찾아갔다.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박물관이었다. 대표적인 중세 유물인 카펫, 생활도구들, 자기, 14∼17세기의 그림, 고딕과 바로크 양식을 한 조각이나 각종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운하를 따라 조금 더 북쪽으로 가면 도심을 감싸 흐르는 강물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는 네덜란드에서 볼 수 있는 풍차가 몇 개 서 있다. 중앙광장까지 와서 다시 관광을 시작하였다.



각종 쇼핑몰 단지를 지나 브뤼헤 역을 향해 왼쪽 방향의 길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맥주 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맥주 박물관은 개인 소유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단다. 한 잔 더 하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이아몬드 박물관으로 향했다. 벨기에 사람들은 중세부터 지중해, 터키, 그 너머의 동방까지 진출하여 다이아몬드 원석을 수입, 브뤼헤와 안트베르펜에서 가공하였다고 한다. 이 두 도시는 다이아몬드 가공산업의 중심지로 명성이 높았으며, 두 도시에 각각 다이아몬드 박물관이 있다. 이곳을 나와 기차역 방향으로 조금만 걸으면 호수가 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면 1245년에 건립한 수도원이 있다. 넓은 뜰은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어 흰눈이 아직도 곱게 깔려 있었다. 세월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 큰 나무들이 겨울을 맞아 앙상하게 촘촘히 서 있다.브뤼셀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줌 싸는 소년 동상이 있는 곳이다. 브뤼셀은 벨기에의 수도이자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도시이다. 남쪽으로 프랑스 릴리, 파리, 북으로는 네덜란드와 독일, 동으로는 룩셈부르크로 연결하는 비행기, 기차, 고속도로가 거미줄을 이루는 교통 요지이다. 지형적으로 서유럽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면에서도 핵심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인이 어울려 살고 있다. 브뤼셀에는 3곳의 기차역 - 남부역, 중앙역, 북부역 - 이 있기 때문에 여행하기 전에 정보를 알아두는 것이 편리하다. 이름 그대로 중앙역에 내려야 브뤼셀 중심부에 가깝다. 공항이나 프랑스, 룩셈부르크 방면으로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중앙역보다 남부역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현지인조차 충고한다. 남부역은 Brussels Midi라 쓰여 있어 처음 가는 사람은 Midi가 중간이라고 생각하여 중앙역으로 착각한다. 중앙역에서 북쪽으로 언덕을 조금 내려가면 시가지가 시작되면서 높은 첨탑 끝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면 넓은 광장이 나타난다. 이곳이 그랑 쁠라스라고 부르는 대광장이다.



광장 건너편에 아름다운 건물, 왕궁이 있다. 4층의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브뤼셀 관광은 대광장을 중심으로 시작한다. 첨탑을 중심으로 네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관광을 즐긴다. 먼저 북쪽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면 성 니콜라스 성당을 만난다. 성당 바로 뒤쪽에는 큰 도로가 동서로 지나가고 도로를 건너가자 대성당과 광장이 나타났다. 성당 옆에서는 야시장이 열리고 있어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도시마다 상설 야시장이나 임시 야시장이 연중 개설된다. 대광장 동북쪽으로는 상업 단지이다. 왕궁 뒤편은 해산물 전문 음식점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갤러리 상가가 있다. 대리석 건물이 웅장하게 양쪽으로 길게 서 있는 고급 쇼핑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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