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의 비밀회의 콘클라베
존 앨런 주니어 지음 | 가산출판사
바티칸의 비밀회의 콘클라베
존 앨런 주니어 지음/김하락 옮김
가산출판사/2003년 11월/317쪽/12,000원
제1장 교황의 직무
교황을 선출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황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불행히도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설명서는 없다. 그 직책에는 많은 명칭(대제사장, 하느님의 종들의 종,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목자, 베드로의 후계자, 로마 주교, 서구의 총대주교)이 붙어 다니지만 이런 명칭이 당장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가톨릭 신자들은 때때로 교황은 ‘어부의 신발을 물려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를 불러 교회를 이끌어가라고 하기 전까지 어부였던 베드로를 교황이 이어받는다는 뜻이다. 불행히도 이 말은 사실을 말한다기보다는 은유적으로 쓰이고 있다. 20세기 식으로 서술하자면 교황은 신도가 10억이 넘고 수직 통합적인 조직을 갖춘 세계 최대 기독교 교파의 법적, 정신적 수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교황이라는 지위가 요구하는 것은 훨씬 더 많다. 현대의 교황은 지성인이자 정치인이고 정신적 지도자이자 미디어를 타는 슈퍼스타이다. 교황은 정치가이자 행정가 외에도 매우 성스러울 것이 기대된다는 점이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다.
대통령이 저지른 여러 가지 도덕적 실패를 용서할지 몰라도 교황에게는 보다 높은 도덕 수준을 요구한다. 교황에게 은퇴란 있을 수 없고 회고록이나 쓰고 외국의 정책 세미나에서 돈이 되는 연설을 하는 노 정객처럼 편안한 시기도 있을 수 없다. 교황은 죽을 때까지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교황도 원하면 은퇴할 수 있다는 생각은 부질없는 일이다. 가톨릭 교회의 최고법인 교회법 332조에 그런 규정이 있다. 개혁적 성향의 일부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도 은퇴할 수 있기를 원하지만 그것도 실제로는 임기를 제한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교황직은 종신직이다).
사제와 주교
교황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단어 자체에서 출발해 보자. 교황을 뜻하는 영어 ‘pope'은 ’아버지‘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papa'에서 나왔다(악센트는 다르지만). 이 말은 교황이란 어떤 의미에서 전 세계에 10억여 명이나 되는 가톨릭 신자를 포함하는 가톨릭 집안의 정신적 아버지란 뜻이다. 교황은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교황은 다른 사제와 마찬가지로 무엇보다는 먼저 정신적 지도자여서 정신적인 길잡이 역할을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설교하며 가톨릭 교회의 성사를 집전한다. 또한 가톨릭 신자들이 성스럽게 생활하고 내세에서 하느님과 교분을 맺도록 준비하는 것을 도와 준다. 교황은 또한 주교이기도 하고 로마 대주교 관구의 첫 번째 목자이기도 하다. 로마의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를 볼 때 “우리의 주교인 요한 바오로여.”라고 기도한다. 사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교황직에 따르는 다른 모든 역할은 로마 주교로서의 지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교황의 수위권(首位權)은 로마가 원시 기독교회의 기둥 가운데 하나이고 12사도의 지도자인 베드로와 위대한 전도사인 바오로가 투옥되고 사형 당한 곳이라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사실상 지방 주교로서의 교황의 지위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현대의 교황이 정해 놓은 모델을 따른다면 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 정치적․외교적 연기자
․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 지도자
․ 가톨릭 교회의 수장
정치 지도자
교황이 교황령이라는 이탈리아 중부의 꽤나 넓은 땅을 지배했던 1870년 이전에 교황의 정치적 지위는 훨씬 두드러졌다. 교황은 이 영토가 가톨릭 교회의 독립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교황령을 지배했던 마지막 교황이었던 비오 10세는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옷’에 비유한 적이 있다. 1870년 9월 20일, 프랑스군이 프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로마를 버렸을 때. 이탈리아 혁명가들은 로마에 들어가 비토리오 엠마누엘레(Vittorio Emmanuele)를 통합 이탈리아의 초대 왕으로 추대했다. 교황은 교황궁 안에 틀어박혀 새 이탈리아 인준을 거부하고 자신을 ‘교황청의 죄수’라고 선언했다. 이때 교황의 정치적 역할은 영원히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영토를 잃었기 때문에 교황은 그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모습으로 세계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교황은 더 이상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군주가 아니라 세계를 위한 양심의 소리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게다가 초국가적인 교황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전 세계의 수십 억 가톨릭 신자의 지지에 힘입어 어떤 국가도 무시할 수 없는 힘, 다시 말해서 여론을 움직이는 힘을 갖게 되었다. 20세기에는 세계 역사를 움직인 교황도 있고 정치적 영향력으로 역사를 움직이려고 했지만 실패한 교황도 있다.
종교 지도자
종교는 아직도 문화를 결정짓는 강력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서구에서 문화를 지배하지는 못한다. 현대는 세속화와 다원주의가 판치는 시대이다. 정부는 더 이상 국민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못한다. ‘통치자가 종교를 결정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세계화가 충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정도로 서로 간에 접촉하고 있다. 다양한 종교는 현대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엄연한 사실이고 현재로서는 복합된 축복이다. 다른 종교 간의 상호 작용으로 문화가 풍부해지고 강화된 면도 있지만 종교는(언어, 민족, 문화 및 지리와 함께) 결국에는 사회를 동일화하는 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종족주의가 판치고 있는 세계에서 종교는 인간 영혼의 어두운 면을 자극하는 대단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정신적 지도자들은 종교적 확신으로 신성시된 폭력을 거부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기독교도끼리나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끼리 협력해야 대화를 계속할 수 있다. 교황은 제도상으로나 미디어에 끼치는 영향력으로나 그런 대화를 주도할 위치에 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후계자는 더욱 지속적이고도 복잡한 방식으로 그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다.
제2장 교황 선거의 쟁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후계자를 뽑을 투표 자격을 가진 134명의 추기경을 임명했다(2003년 11월 현재 전체 추기경은 194명이며, 이중 교황 선거 투표권이 있는 추기경은 134명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추기경들은 현재의 교황을 닮은 사람을 차기 교황으로 뽑게 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다른 생각이 든다. 죽은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으로 구성된 콘클라베에서는 자신을 임명해준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선출되지 않고 다른 정책을 추구할 교황이 뽑히는 반대되는 결과가 더 자주 나온다. 이탈리아의 저널리스트 지안카르도 치촐라와 미국의 신학자 리처드 맥브라이언 같은 교황사 연구가들이 풍부히 제공한 증거에 따르면 이런 경향을 콘클라베 심리학에서는 진자의 법칙이라고 한다.
진자의 법칙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선 대부분의 교황 임기를 보면 창조적으로 일한 대부분 시기는 10년을 넘기기 어렵고 그 후에는 타성에 젖게 된다. 활기찬 정열은 반복으로 바뀌고 교황청 관료들이 이미 정해진 틀을 답습하여 새로운 사상은 막힌다.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새로운 교황을 기다려야 해.”라고 판에 박은 말을 한다. 그래서 오래 존속된 제도가 말기에 이르면 어느 정도의 불만은 있게 마련이다. 진자 역학을 설명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다른 두 가지 현실 문제가 있다. 하나는 많은 추기경들이, 위대한 로마의 전통에 따라, 오래 전의 일을 기억하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추기경들은 콘클라베에 가서 방금 죽은 교황의 결점을 바로잡을 수 있는 후보자를 찾는다는 것이다. 옛 교황이 한 일에 95% 동의했다 하더라도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5%를 고칠 방법이 머리 속에 맴돌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추기경들은 현재의 교황이 할 수 없었거나 하려고 하지 않은 문제에 달라붙을 수 있고 현 교황이 지나친 점을 수정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 그들은 현 교황의 접근 방법으로는 결실을 맺는 데에 수 년이 걸리므로 다른 방법으로 균형을 잡을 때라고 본다. 이것은 거의 언제나 사람을 바꾸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교회의 단체성
단체성(collegiality)이란 말은 비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교회의 정책을 엄밀하게 따르지 않는 많은 가톨릭 신자까지 당황하게 한다. 이 용어는 ‘동료(colleague)'라는 말과 매우 가까운 ’단체(college)'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황, 교황청, 전 세계 주교들 간의 관계에 대하여 논쟁이 일어났을 때, 단체성은 주요 주제가 되었다. 그 관계가 상호 협동적이라면 주교와 지역 교구민들은(주교를 통해서) 지역 교회와 전 세계 가톨릭 교회의 정책 결정에 관계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단체성이란 교황청의 힘을 줄여서 주교를 주교답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으로 교회가 완전히 민주체제로 되지는 않지만 보다 민주적으로 될 수는 있다. 단체성은 이번 콘클라베를 향한 첫 번째 쟁점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국가 주교회의에 정책 결정권을 주었다. 그 때까지 거의 전적으로 라틴어로 집전하던 가톨릭 전례를 여러 세속어로 옮기는 책임을 주교회의에 넘겼다(전례는 미사, 결혼식, 세례 등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의식과 성사(聖事)를 가리키는 보편적인 말이다). 게다가 주교 시노드라는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전 세계에서 주교 대표를 모아 정기적으로 교황에 조언할 수 있도록 했다. 시노드 자체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고 오로지 교황의 자문에 응할 수 있을 뿐이다. 교회의 단체성 문제는 교황과 주교 간의 관계보다 더 넓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평신도의 목소리를 교회의 통치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권유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많은 문제, 즉 산아제한이나 사제의 결혼 등에 대해서 대다수의 가톨릭 신자들은 현재의 바티칸의 입장에 반대한다는 것을 여론조사는 판에 박은 듯이 보여준다고 한다.
콘클라베에 참가할 추기경들은 단체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시노드에 새로운 절차를 적용하는 것과 같은 작은 변화를 추구할 추기경도 있고 주교와 교황 간의 세력 균형 문제에서 전면적인 변화를 원하는 추기경도 있다. 이런 추기경들은 자기 견해를 대변할 후보자를 찾을 것이고 그들 간의 상호 작용에 따라 투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교회일치와 종교 간 대화
가톨릭이 세계의 다른 기독교 교회와 비기독교 종교 간에 어떤 관계를 정립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는 최근 가톨릭 신화 내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문제이다. 요한 바오로는 세 번째 밀레니엄은 재통합의 밀레니엄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첫 번째 천년은 통일기요, 두 번째 천년은 분열기였다).
근년에는 가톨릭 교회가 종교 간 관계로 나아가는 몇 가지 중요한 조치를 취한 것처럼 보인다. 교황은 2000년 5월에 이스라엘을 방문해서 야드 바셈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찾아가 목숨을 잃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에게 경의를 표했다. 또한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찾는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에 가서 수세기 동안 기독교가 유대인을 박해한 것을 뉘우친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이슬람교와도 전진적인 관계를 추구해서 재위 기간 중에 쉰 번도 넘게 이슬람교도를 만났다. 이러한 교황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때도 많이 있었다. 대화의 요체는 의견의 차이가 없는 것처럼 하는 데에 있지 않고 의견이 다름에도 협력할 방법을 찾는 데에 있다. 게다가 바티칸은 실제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번 콘클라베에 참가할 추기경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가톨릭이 세계의 다른 종교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후보자의 태도를 보고 후보자를 평가할 것이다.
세계화, 빈곤 그리고 정의
새로운 교황이 만인, 특히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에게 영적 아버지로서 권능을 행사하려면 엄청난 세계의 불의를 떠맡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정의와 사회 발전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가톨릭 주교에게 부여된 책무이다. 요한 바오로가 가톨릭이 정의에 관여할 것을 고취한 방법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예는 2001년 7월에 G-8 국가 지도자들이 이탈리아 북부의 항구 도시 제노바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던 때였다. 약 3천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그들 중 대부분은 로마에서 열린 청년 집회에 요한 바오로 2세와 같이 참석한 젊은이였다) 제노바에 가서 점증하는 빈부 차이에 항의했다. 그들은 ‘가톨릭 선언’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정치 경제적 개혁을 요구했다. 한편 교황이 교회 내에서 정의라는 명분에 호소한 사람들을 후원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사회 변화를 위해 대중적 가톨릭을 좌익 운동과 연관지으려고 하는 ‘해방 신학(Liberation theology)'에 뿌리를 둔 운동이 힘을 모으고 있었다. 교황은 해방 신학자들을 엄중히 단속하고 저서를 조사하고 신학교를 폐쇄하고 그들을 동정하는 주교를 바꾸어버렸다.
교황과 그의 외교관들이 한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차기 교황은 사회 정의를 말로만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체제를 위해 그것을 구체적인 제안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심각한 지적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그는 빈부의 격차를 비난하는 차원을 넘어 믿을 만한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세계는 시장이란 면에서가 아니라 가치라는 면에서 세계화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그 말을 공허하게 하는 특별한 것들을 남겨두었다. 차기 교황은 세계화된 경제에 대한 가톨릭교의 비전에 대하여 어렵고도 긴급한 고려를 해야 할 것이다. 그가 내놓는 답은 현실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보잘 것 없고 잊혀진 사람들을 옹호하는 데에 절대 필요한 복음에 뿌리를 둔 것이어야 한다.
생명 윤리, 성 그리고 가족
성도덕과 가족도덕에 대한 문제는 수십 년 간 가톨릭과 함께 해왔다. 최근에는 다른 문제들이 생겼다. 인공 재생산에 대한 여러 가지 선택, 복제의 도덕적 적용과 같은 몇 가지 문제는 기술 혁신에 따라 생겼다. 동성애자의 결혼 문제와 같은 것은 사회 변화에 따라 나타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새로운 도전에 응하기 위해 교황청에 가족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했다(그는 위원회 창설을 발표할 예정이던 1981년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총격을 당했다). 전반적으로 보면 그는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바꾸려는’ 유익한 제안을 하기보다 그것을 ‘지키려는’ 더 낮고 근본적인 주장을 확인하려고 했다.
바티칸이 보호하려고 애쓰는 가치, 무엇보다도 생명에 대한 권리는 확실히 보존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차기 교황은 점차 덜 엄격한 입장을 취하도록 압력을 받을 것이라는 징후가 있다. 예를 들면 이혼 문제는 입장을 바꾸라는 압력을 계속 받고 있다.
1994년 바티칸의 신앙교리성은 문서를 발표하여 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다른 주교들은 계속 변화를 요구했다. 주교들이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은 전통적 입장을 긴장케 하는 뚜렷한 조짐이다. 도덕 논쟁이 계속 과학을 따라가려고만 한다면 새 교황은 많은 생명윤리 문제에 대해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다. 전통에 극단적으로 충성하려고 하는 교황의 고문들조차도 오늘날에는 고민이 많다. 차기 교황은 단순히 ‘노’라고 말하는 정책을 넘어 새로운 기술적 선택이 제기한 심각한 딜레마와 씨름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식으로 교황은 서서히 발전하는 사회적 기준에 비추어서 일부의 가르침을 재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자와 평신도
‘평신도(laity)'라는 말은 단순히 ’사람(the people)'을 뜻하는 그리스어 ‘laos'에서 나왔다. 일반적으로 사제나 부제나 수사, 수녀가 아닌 절대 다수의 가톨릭 신자인 보통 신자를 말한다(정확히 말하자면 수사나 수녀도 평신도이지만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