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용, 중국
김하중 지음 | 비전과리더십
떠오르는 용, 중국
김하중 지음
비전과리더십/2003년 11월/358쪽/15,000원
제1부 중국을 이해하는 키워드 - 선입견과 오해의 장막들
중국의 두 얼굴, 풍요와 빈곤
본격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트인 1992년 8월은 중국과 공식적인 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중국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한국인에게는 실로 역사적인 시간이었다. 한중 수교 이전에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들은 대부분 서방 언론이나 자료, 또는 타이완이나 홍콩에서 발간된 자료에 의존한 것뿐이었는데, 이 자료들이 중국을 포괄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이처럼 제한된 자료에 근거한 한국인의 중국관이 부정확하고 잘못된 것은 당연한 결과이지만 이는 또한 과거 한국과 중국의 역사만 조망해 보아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오류의 방어벽인 셈이다.
병자호란, 청일전쟁 등 한반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과 오랜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지배층 간의 전통적인 교류 역시 한국인의 부정적인 중국관에 영향을 미쳤다. 그간 중국과 중국인들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수의 한국인들은 고정된 선입견과 편견의 눈으로 중국을 보고 있는 것이다. 가령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이 무슨 일만 하면 만만디(느릿느릿, 천천히)일 것이고, 비위생적이며, 대국 근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당연히 오만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들도 철저하게 양분된다. 한국인 못지 않게 성격이 급한 베이징 시민들과 마치 한국의 강남에 온 듯 상업적이고 세련된 상하이인들이 있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경제 발전을 이룬 이웃의 작은 나라 한국에 찬사를 보내는 대다수의 중국 시민들도 있다.
한국인들 중에는 중국에 와서 중국의 광활만 면모와 각 도시들의 발전된 모습을 보면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중국의 가난하고 낙후된 면을 보고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 한반도 크기의 44배에 달하며 대한민국 인구의 27배에 달하는 12억 6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임을 감안한다면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다양함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느 일부분만을 보고 판단하기에는 중국이 너무 크고 다양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현재 중국은 총인구 12억 6천만 명 중에서 농촌 인구를 8억 명, 도시 인구를 4억 6천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 인구의 7%인 3,200만 명 정도가 고소득층, 그리고 9%인 4,100만 명 정도를 중상층으로 보고 있다. 중상층 이상에 속한 중국인 7,300만 명 정도는 중국 사회에서 상당한 지위와 부,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서 막상 한국인이 이들 중산층 중국인만을 접하게 되면 중국이 상당한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그룹에 속하지 않는 대다수의 중국인들을 만나게 되면 중국은 아직도 많은 문제점과 개선의 여지를 안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을 이해하고자 할 때는 현재 내가 만나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중국의 어디인지를 잘 살펴보고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제2부 중국인의 기질 - 모호성에 가려진 대륙의 기질, 세계의 중심
중국적 기질의 다양성
복잡하고 다양한 중국인들의 기질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이들의 기질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분류할 필요가 있다. 봉건적 소농 경제 제도의 영향을 받은 소농 기질, 윗사람(또는 힘 있는 자)의 비위를 맞추고 아랫사람(또는 약한 자)을 함부로 대하는 양면성을 가진 관리 기질, 큰 것과 공명을 좋아하며, 무슨 일이든지 극단적으로 치우치기 쉬운 황제 기질이 바로 그것이다.
- 소농 기질, 계산에 밝고 성질이 급한 소박한 농사꾼
중국 농민을 가리킬 때 소박하다는 표현을 잘한다. ‘소박하다’는 말에는 ‘촌스럽다, 보수적이다. 만족함을 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봉건 지배가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소농 경제가 발달하고, 이에 따라 소농 기질은 전 중국인들의 의식에 젖어들어 중국 문화를 대변하게 되었다. 소농 기질의 특징은 첫째, 계산에 밝다. 중국 인구의 대부분인 농민은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사회 환경, 재해가 잦은 대자연 앞에서 계산을 잘못하면 농사가 잘못 되거나 여러 가지 재앙이 찾아올 가능성이 많아 매사에 계산을 철저히 한다. 계산은 농민들에게 있어 가장 실제적인 지식 운영이었으며, 힘든 환경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산이었다.
둘째, 성질이 급하다. 오랜 가난과 대외적으로 폐쇄된 생활, 압박 받지 않은 생활 때문에 화를 잘 내고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욕을 하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버릇이 형성되었다. 중국이 부유해지고 대외적으로 개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급한 기질은 여전히 남아 있다.
셋째는 미신을 믿는 것이다. 믿는 신도 많아지다 보니 미신도 깊어지고 금기시하는 것들도 많아졌다. 중국인들이 금기시하는 사항들은 곧 법률적인 의미를 가지며, 사람들의 행위를 통제하는 최고의 기준이 되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감독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이를 준수하였으며, 이와 같은 습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禮)라는 원칙을 만들어냈다.
- 인색하고 이해타산에 밝은 시민 기질, 이익이 있는 곳에는 천하가 달려간다
수천 년에 걸친 봉건 전제주의의 어려움 속에서 형성된 중국인 특유의 시민 기질은 인색하고, 이해타산에 밝으며,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익이 있는 곳에는 천하가 달려간다(利之所在, 天下趨之)"는 말처럼 시민들은 이해타산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중국인들이 결혼을 할 때 “대가(大家)집 노비에게 장가를 갈망정 소가(小家)집 딸하고는 결혼하면 안 된다.”는 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 관리 기질,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중국의 관료 사회는 규율이 엄격해 관료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하거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중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 중에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는 복지 부동하는 중국 관료 사회의 일면을 여실히 보여 준다. 관리 기질이 중국 사회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의 대부분은 관리들의 횡포에서 기인한다. 일단 관리가 되어 출세한 다음, 관리로서 위풍을 보이지 않으면 격이 떨어진다고 여겼다. 그래서 옛날 관리들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더욱 횡포를 부렸으며, 이런 악순환에 시달린 백성들도 무슨 일을 당하면 지나치게 화를 잘 낸다. 모두 어긋난 관리 기질이 빚어낸 결과이다.
- 황제 기질, 중국인 개인은 모두 순민이지만 개개인 모두 황제이기도 하다
중국 고사 성어에 “중국인 개개인은 모두 순민이지만 개개인 모두 황제이기도 하다(中國人個個都是順民, 亦個個都是皇帝).”는 말이 있다. 순민은 힘 있는 사람에게 영합하는 것을 말하며, 황제가 의미하는 것은 ‘그 힘에 의지한다’는 뜻이다. 순민은 밖으로 나타난 현실이며, 황제는 마음속에 숨어 있는 진실인 것이다.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황제 기질의 공통적인 속성으로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그 하나가 큰 것과 공명을 좋아하는 기질이다. 따라서 중국인은 일을 할 때 과정은 중요시하지 않고 결과만을 중시한다. 황제 기질의 두 번째 속성은 무슨 일이든지 극단으로 치우치기 쉽다는 점이다. 과거 황제는 무엇을 하든지 뒷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 따라 극단적인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로는 황제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중용지도(中庸之道)를 배우려 노력했지만 중국적인 사회 환경은 이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제3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 모양보다는 실속이 중요한 경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덩샤오핑(鄧小平)이 주장한 중국의 독자적인 사회주의는 이론적으로 중국 공산당 영도 하에 중국이 하나의 새로운 사회주의 노선을 건설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절대적인 평균주의를 실시하여 빈부 격차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는데, 이것이 바로 사회주의 원칙인 ‘큰 밥통(大鍋飯)’이었다. 노동자 계급과 도시 시민들은 의료 제도, 근무 보장 제도 등을 향유했으며, 이들 보조로 인한 국가의 부담이 상당히 과중했다. 그러나 덩샤오핑 시대에 이와 같은 ‘큰 밥통’ 개념은 깨어졌으며, 경쟁 개념이 도입되었다.
기업 파산법이 생겨났고, 국가가 의료비를 부담하는 것도 부분적 혹은 전면적으로 취소됐으며, 국가의 생활 보조도 감소됐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다원적인 영도 체제로 나가면서 정부는 점진적으로 공무원 공개 채용 제도를 도입하고, 사회적으로는 경쟁 체제를 도입하며, 평균주의를 반대하게 되었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국민들에게 공평무사와 고생하면서 검소할 것을 강조했지만 이제는 생활 수준 향상을 독려하고 있다.
공산당 일당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시장 경제의 종착점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중 어느 쪽이 될지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는 중국이 아무리 개혁 개방을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구별 기준인 개인의 사유 재산권을 인정할 것인가의 여부와 관련이 깊다. 중국 공산당의 대답은 간단하다. “중국은 아직 빈곤하다. 사회주의는 원래 풍요로운 사회를 의미하는데, 아직 그런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사회주의에는 여러 단계가 있고, 중국은 초급 단계로 이러한 상황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은 자본주의 사회로의 변화를 부정한다.”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은 원래 1987년 제13차 당대회 정치보고에서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으로, 천안문 사건 이후 사라졌다가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당시의 정치 보고는 “사회주의 하부 구조는 형성됐으나, 생산력이 낙후되어 상품 경제가 발달하지 못한 상황이라 전제하고, 중국이 사회주의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특정 단계가 사회주의 초급 단계”라고 명시했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은 마크르스 레닌주의를 중국의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모순, 특히 경제 건설을 위한 체제 개혁 과정에서 도입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요소들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등장한 것이다.제4부 경제 발전과 중국의 고뇌 - 정체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장벽들
소득 격차로 인한 불만
개혁 개방이 본격적인 단계로 접어들면서 도시와 농촌, 지역과 지역, 남과 여 사이 등 각 방면에서 소득 격차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역 간의 격차를 보면 2002년 일인당 GDP가 광저우는 약 5,000달러, 상하이는 4,900달러, 베이징은 3,300달러로 발표되었는데, 이는 전 국민의 일인당 평균 GDP 970달러와 비교할 때 빈부의 격차가 상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도시 주민의 각종 복지를 감안하면 이 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
도시 주민들의 소득에도 차이가 심해 베이징의 경우 2000년 중 최고 부유층 20%의 소득이 낮은 최고 빈민층 20%의 소득보다 11배나 높았다. 업종별로 평균 봉급이 제일 높은 업종은 금융 보험업, 제일 낮은 업종은 농림․축목업․어업으로 양자 간의 비례는 2.49배였으며, 소득이 제일 높은 업종과 제일 낮은 업종의 연평균 봉급의 절대 차액은 1978년, 458위안에서 1999년, 7,214위안으로 확대되었다.
남녀 간에도 소득 차가 존재하는데, 1999년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중국 여성들의 수입은 남성들 수입의 평균 70%에 불과하다. 많은 여성들이 봉급이 적은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고, 동일한 직장이라고 하더라도 여성들의 직급이 남성들보다 현저히 낮다. 공무원의 봉급은 최고 봉급과 최저 봉급의 차이가 6배 정도에 달한다.
2002년 1월 중국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이미 도시에 1,580만 명에 달하는 절대 빈곤층이 생겨났고, 이는 전년도에 비해 2배나 증가한 숫자이며, 1997년에 비해서는 14배 증가한 숫자이다. 이는 농촌 유휴 노동력의 무단 도시 유입이 크게 증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중국이 경제 발전에 따른 소득 분배의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는 원인으로는 금융, 보험 및 통신 등 3차 산업 부문의 빠른 발전, 그에 따른 소득 상승으로 인한 업종 간의 소득 격차를 들 수 있다. 개혁 초기 ‘유도탄 개발자가 계란 장사꾼보다도 못한’ 상황과 달리 고등 교육과 훈련을 받은 지식 근로자의 수입이 뚜렷이 구분되어 교육의 차이에 따른 소득 불균형이 시작됐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불합리한 소득과 불법 소득도 소득 불균형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불합리한 소득이란 일부 단위(單位)들이 소수 업종을 독점함으로써 지나치게 많은 소득을 얻는 것을 의미하며, 불법 소득이란 일부 공무원들이 권력에 의해 사리사욕을 채우고 뇌물, 밀수, 가짜 제품 생산 및 판매, 탈세 등으로 불법적인 소득을 얻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최근 중국에서는 60세 은퇴를 앞둔 공무원들이 여러 가지 부정 행위를 한다고 하여 ‘59세 현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공무원들의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소득은 중국 국민들의 불만과 원한을 사는 등 사회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회주의 시장 경제 모델을 추구하고 있는 중국에 있어 소득 격차의 확대는 자본주의의 국가에서의 소득 격차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점점 심화되는 소득 불균형은 결국 사회가 불공정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으며, 아무리 국가 경제가 성장한다 하더라도 국민 스스로 그 성장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면 국가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소득 격차의 확대는 앞으로 중국 사회의 불안을 고조시킬 수 있는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제5부 사회적 모순과 충돌 - 변화의 소용돌이에 서 있는 중국
중국 인구의 반쪽이 직면한 문제
옛날 중국의 여인들은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에게, 결혼한 다음에는 남편에게, 그리고 남편이 죽은 다음에는 자식에게 복종해야 하는 3종(三從)과 여성으로서 덕과 말과 행동의 지침인 4덕(四德)을 강요당했다. 특히 여인들의 전족(纏足) 관습도 봉건적인 남성 중심 사회가 여성들에게 행한 압박의 증거라 할 수 있는데, 오랫동안 이러한 남존여비 사상이 사회를 지배해 왔다. 하지만 신중국 성립 이후 마오쩌둥은 남녀 평등을 제창하였으며, 사회 각 분야에서 남녀가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됐고, 정부 각 부문에서는 반드시 일정 비율의 여성을 고용해야 했다. 이후 중국에서는 여성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중국 여성들은 남편과 똑같이 직장에 나가 일을 하며,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가정부를 두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가 똑같이 밖에 나가 일을 하는 상황에서는 가사 일을 둘이서 균등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어서 남편들이 식사나 요리를 준비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다. 많은 수의 남편이 먼저 퇴근을 하면 아내를 위한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이러다 보니 남편들의 지위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공처가를 뜻하는 '처관엄(妻管嚴)'이란 단어가 유행한다. 공처가의 가장 대표적인 유형을 삼전장부(三全丈夫)라고 하는데, 집안 일은 모두 도맡아서 하고, 돈을 벌면 전부 갖다 주며, 남은 음식은 전부 먹는 남편을 빗댄 말이다.
하지만 표면적인 남녀 평등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아직도 남권 사회로 남존여비 사상이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록 사회적으로는 남녀 평등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아직도 전통적인 성별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사업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구 외에도 가정을 가지고 싶은 욕구도 있다. 가정을 가지게 되면 자신의 능력과 관계 없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므로 일과 가정 중에서 택일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사회적인 환경도 여성들에게 취업을 권장하기는 하지만 취업시 여전히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 고학력 여성들도 직업을 구할 때는 남성과 차별 대우를 받게 되는데 수많은 저학력 여성들의 상황이 어떤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취업뿐 아니라 승진과 보수에도 남녀 간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국유 기업 개혁의 가속화로 많은 근로자들이 정리 해고 되는데, 우선 정리 해고의 대상이 바로 여성이다. 농촌 여성의 위치도 도시 여성의 위치보다 나을 게 없으며, 농촌 여성의 지나치게 낮은 교육 수준은 남녀 평등의 길을 요원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