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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게로치 교수의 물리학 강의

로버트 게로치 지음 | 휴머니스트
로버트 게로치 교수의 물리학 강의

로버트 게로치 지음/김재영 옮김

휴머니스트/2003년 9월/396쪽/15,000원



Part A. 시공간이라는 관점 The Space-Time Viewpoint

기본적인 틀 - 사건과 시공간의 개념

상대성이론은 무엇에 관한 이론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해 많은 상대성이론 연구자들은 상대성이론의 대상이 ‘사건’과 ‘시공간’(시간-공간)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일반 상대성이론이 사람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끄는 까닭은, 그것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여기는 대상을 주로 다룬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일반 상대성이론이 그 이전의 다른 이론들과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성이론이 ‘사건’과 ‘시공간’에 관한 이론이라는 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언뜻 ‘사건’이나 ‘시공간’과 같은 개념은 일상적인 말속에서 너무나 뻔한 것처럼 보인다. 흥미롭게도 상대성이론의 매력은 바로 이렇게 지극히 일상적이고 뻔해 보이는 개념을 근원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점이다. 이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나면 상대성이론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뿐더러, 상대성이론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길 것이다. 저자가 이 첫 번째 강의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바로 이 ‘사건’과 ‘시공간’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책에서 계속 다룰 ‘세계선’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이다.

- 사건과 시공간의 개념 : 사건(事件, event)은 물리적 세계에서 발생하는 일을 시간의 폭이나 공간의 크기를 갖지 않도록 이상화한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폭죽의 폭발’이나 ‘손뼉을 치는 것’은 사건을 나타냅니다. ‘폭죽의 폭발’을 생각해볼까요? 폭발은 일정 시간 동안 잠시 지속됩니다. 그 시간을 0.1초라 합시다. 물리적 세계에서 발생한 일은 이렇게 시간의 폭을 가집니다. 또 폭발은 어느 정도 범위의 공간 안에서 일어납니다. 이 영역의 크기를 1cm 정도라고 합시다. 그러면 물리적 세계에서 발생한 일은 공간 안에서도 크기를 갖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작고 더 빠르게 타버리는 폭죽을 사용한다면, 시간과 공간에서 폭발의 영역이 차지하는 크기는 더욱 작아집니다. 사건은 이렇게 실제로 발생한 일 그대로가 아니라, 굉장히 작고 빠르게 타버리는 폭죽이라는 가상의 개념을 끌어들여 극한적으로 설정한 이상화된 상황입니다. 이제 사건을 어떻게 표시할지(예를 들어, ‘폭죽의 폭발’이나 ‘손뼉을 치는 것’으로)에는 관심을 두지 말고, 대신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는 점 자체에만 관심을 두자는 뜻입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사건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사건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론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시공간 도표와 세계선 : 원래의 사건 묘사와 관련해 시공간의 용어로 이상화를 설명해보겠습니다. 폭죽을 터뜨리고 폭발 자체 안에 있는 사건들 전체를 생각해봅시다. 만일 더 작고 빠르게 타버리는 폭죽을 실제로 있는 폭죽 대신 사용한다면, 시공간 안에서 해당 영역은 줄어듭니다. 그렇다면 이상화란 “이런 영역들을 시공간의 한 점으로 오그라들게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입자가 하나 있다고 하고, 이것을 시공간 개념을 써서 나타내려고 합니다. 그 입자를 M의 한 점으로, 다시 말해 하나의 사건으로 나타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입자에는 “시간의 폭”이 있기 때문이죠. 순간마다 입자가 존재하는 위치를 따라가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모두 모아봅시다. 다시 말해, 입자 한가운데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불꽃이 계속 터진다고 할 때, 이 불꽃으로 나타나는 사건들을 모두 모아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일 누군가가 입자가 생겨나서 사라질 때까지 입자 옆에서 손뼉을 치거나 손가락을 튀기면서 계속 입자를 추적할 수 있다고 할 때, 그 추적을 통해 서술할 사건들의 모음입니다. 그 결과로 얻는 사건의 집합을 시공간에서 그려보면, 하나의 곡선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곡선’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사건들을 정확히 지나갈 수 있도록 그린 선을 가리킵니다. 중간에 갈라지지 않는 이 곡선을 입자의 ‘세계선(worldline)'이라고 부릅니다. 시공간의 관점에서 볼 때, 입자는 “점”이 아니라 일종의 곡선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건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이론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이러한 노력 속에서 시공간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사건이 M 안의 점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사건 사이의 관계는 M 안에 있는 여러 점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들의 집합은 M에 주어진 일종의 내적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표는 시공간 M 위에 세울 수 있는 구조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적인 틀 - 아리스토텔레스 관점

제2강에서 특기할 만한 점 하나는, 흔히 상대성이론이 신비한 4차원의 세계를 다루는 것처럼 서술되곤 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고 올바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공간의 위치를 특정하기 위해서는 가로, 세로, 높이라는 세 숫자가 필요하며, 시간상으로도 또 다른 숫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대성이론 이전에도 이미 4차원 세계라는 관념은 처음부터 전제되었다는 것이다. 4차원 세계가 무슨 신비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관념일 뿐이라는 지적은 상대성이론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꼭 전제해야 할 사항 중 하나이다.

제2강에서 다루는 또 다른 주제는 시간과 공간이 ‘실체적’인가 하는 질문이다. 시간과 공간에 관한 철학적 논의는 라이프니츠와 뉴턴(클라크)의 논쟁 이래 실체론(substanialism)과 관계론(relationism)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어 왔다. 실체론은 시간과 공간이 물질이나 다른 구조와 관계없이 실재하는 것임을 주장하고, 관계론은 시간이나 공간은 결국 물질의 운동에 대한 관계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비실재임을 주장한다. 제2강의 끝 부분에는 시공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에 관해 몇 가지 중요한 논의가 들어 있다. 먼저, 여기에서 저자가 말하는 ‘관점’은 ‘물리학 이론’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상 예측이란 측면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시시콜콜하게 모두 얘기해주어야 하는 ‘이론’과 달리, ‘관점’은 기본 틀을 제시하고 테두리를 정해주는 역할을 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한 시공간에 대한 특수한 어느 하나의 관점과 시공간 자체와 관련된 일반 논의를 구분할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나아가 저자의 접근이 역사학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것임을 밝힌다. 따라서 제2강뿐 아니라 책 전체에서 과학사적인 정확함은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끝으로, 시공간 관점이 과거의 접근에 비해 무엇이 다른지 분명하게 말한다. 제2강은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의 한계를 정리하면서 맺는다.

- 4차원의 세계 : “평면은 2차원이다”라는 말의 본질적 의미는 평면 위에 있는 한 점의 위치를 밝히기 위해서는 두 실수 값(x값과 y값)만 정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물리적 공간은 3차원이다”라는 말도 마찬가지죠. 그러면 이제 시공간에서 한 점(사건)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 네 개의 숫자만 알면 되므로, 마찬가지 양식으로 시공간은 4차원입니다. 이제까지 우리에게 익숙하던 방식보다는 좀더 조심스럽고 좀더 정확하게 논의를 전개해온 것 같긴 합니다만, 여전히 다음과 같은 사실이 남습니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물리적 정보에 조금의 새로움도 보태지 않은 채 4차원으로 서술하는 법에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4차원”이란 (무슨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서술하려고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네 번째 차원”은 실재할까요? 물리학은 그런 질문에 답하지 않을 것이며, 물리학자들이 취할 태도는 그런 종류의 질문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임을 이제는 분명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자연을 4차원의 시공간에서 표현하려고 할 때, 그 표현이 합리적인 관점에서 분명하고 정확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며 그것이 전부입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이 지닌 문제점들 : 이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에 대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이 관점이 지니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을 일반적으로 언급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밝힌 다음에, 마지막으로 이 관점이 적절하지 못한 이유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첫 번째로 지적할 문제점은, “관점”은 “물리학 이론”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점입니다. 물리학 이론은 물리적인 세계 속에 있는 물체나 물체들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 말해주는 반면, 관점이라는 것은 대단히 넓고 포괄적이어서 거의 어떤 “작동 방식”이든 허용합니다. 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은 단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또는 과거에 일어났는지, 미래에 일어날지)를 원론적으로 서술할 수 있게 하는 장치에 지나지 않으며, 그 자체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어떤 특정한 제한 조건도 주지 않습니다. 핵심은 우리가 시공간에 부여하는 구조는 물리학 이론들을 그 안에서 표현하고 생각해보고 시험할 수 있는 넓은 틀을 마련해준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 지적할 점은 아리스토텔레스 관점과 시공간 자체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언급한 몇 가지는 특별한 “관점”을 가리키지 않은 채 단지 시공간에 대한 일반 개념이지만, 어떤 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을 분명하게 가리킵니다. 전자의 예로는 “입자는 그 세계선으로 서술된다”, “끈은 그 세계면으로 나타낸다”, “세계선들이 만나는 점은 입자의 충돌에 대응한다”와 같은 것입니다. 후자의 예로는 “특정 순간에 끈의 모양을 알려면 그 세계면이 적당한 3차원 평면과 만나는 점들을 찾으면 된다”, “이 두 사건은 동시에 일어난다”, “이 세계선으로 표현되는 입자는 정지해 있고, 저 세계선이 나타내는 입자는 일정한 빠르기로 움직인다”와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표현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건들에 대해 그 공간적 위치뿐 아니라 사건이 발생한 시간도 함께 확정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지적할 점은 역사적인 것입니다. 이 강의에서는 역사적인 흐름을 따를 의도가 없습니다. 어떤 사건의 발생을 규정하려면 공간 속의 위치와 함께 발생한 순간의 시간을 말해주면 된다는 관념은 아마도 매우 오래된 생각일 겁니다. 그 외의 것은 모두 사실 더 현대적인 관념이죠. 예를 들어, 사건이라는 개념을 따로 다루는 것이라든가, 시간-공간을 생각하는 것이라든가, 물리적 세계 속에서 진행되는 일을 사건들의 집합으로 표현하는 것 따위 말입니다.

네 번째는 혁명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프롤로그에서 시공간의 관점이 물리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 일어난 일종의 혁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혁명이 다음처럼 세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보고 싶습니다.

① 사건과 시공간을 도입하고, 사건과 시공간의 틀 안에서 세계를 나타내기로 결정한 것

② 무엇이 적절한 시공간의 구조인가 하는 물음이 의미 있는 질문이며, 그 답을 찾으려고 애써야 한다고 결정한 것 ③ 그 적절한 시공간의 구조는 일반 상대성이론을 통해 알 수 있다고 결정한 것

지금까지 우리가 다루어온 것은 혁명을 구성하는 첫째 요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은 쉽고 편안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문제가 되는 점은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에서 허용되는 사건들 사이의 관계들 중 어떤 것은 관찰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은 전체적으로 내화시켜야 할 것과 외화시켜야 할 것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갈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언제나 마지막 쟁점은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보는가, 또는 경험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실제 가공되지 않은 경험들을 사람에게서 비롯된 부분과 “자연 자체”에서 비롯된 부분으로 나누는 문제에 어떻게든 직접 대면하지 않고는 물리학의 어느 영역에서든지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점 말입니다. 여하튼 물리학에서는 그런 분리가 이루어집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계선이 어느 정도 분명해지고, 주제가 선명해집니다.

우리의 주장은 “개인주의적인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이라는 태도가 암시하는 경계선은 부자유스럽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관점은 근본적으로 시공간에 어떤 “보편적 구조”도 남겨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은 일부분 시공간 자체의 보편적 구조를 담고 있으며, 또한 일부분 관찰자에 관한 내부적인 특징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처럼 관찰자를 시공간 속의 세계선으로 나타낼 것입니다. 관찰자의 세계선에 대한 정보를 시공간의 “보편적 구조”와 연결시키면 관찰자들의 다양한 실제 경험을 재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아리스토텔레스 설정”에서 관찰자는 “하나의 세계선”으로 환원될 것이며, 이 환원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정보는 시공간 속에 영구히 새겨질 것입니다.

민주주의적인 틀 - 갈릴레오 관점

제3강은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은 자칫 유아론적인 주장으로 빠질 수 있다는 걱정에서 출발한다. 모든 사람이 물질 세계 속의 사건들을 서술하기 위해 각자 자신의 시공간을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에서 설정하는 것은 언제든 가능한 일이지만, 이를 다른 사람이 설정한 시공간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그 다른 사람이 움직인다면 정지해 있는 사람과는 시공간 설정이 달라야 하며,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서로 다른 시공간 설정을 서로 교환할 표준이 필요해진다. 이런 표준을 포함하는 시공간에 관한 관점이 바로 ‘갈릴레오 관점’이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관점과 갈릴레오 관점을 각각 개인주의와 민주주의에 비유한다. 어떤 면에서는 물리학 이론에서 가장 표준으로 널리 인정해온 고전역학이 전제하는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이라는 관념도 이 관점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언뜻 고전역학은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에 한정해서는 물리학적 서술을 할 수가 없다. 물론 역사적으로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논의한 것은 19세기 후반 이후의 일이지만, 사후적으로 볼 때 고전역학이 전제하는 시공간은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이라기보다는 갈릴레오 관점에 더 가깝다. “움직이는 배 안”이든 “멈춘 배 안”이든 물체의 운동 양식은 똑같다는 것이 바로 갈릴레오의 지적이다. 이것을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라고 한다. 시간과 공간에 관한 갈릴레오 관점은 바로 이 갈릴레오의 상대성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움직이는 배”와 “멈춘 배”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갈릴레오 관점의 시공간이다. 갈릴레오 관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관점에서와는 달리 위치나 거리, 속도 등이 고유한 의미를 갖지 못하고, 관찰자에 따라 달라진다. 경과 시간, 동시, 충돌, 직선 등은 갈릴레오 관점에서도 의미 있는 지칭이다.

- 갈릴레오 관점에서 의미 있는 진술들 : 갈릴레오 관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 사이의 관계란 정확히 이 관점에서 의미를 준 3차원 평면의 집합과 무수한 선들로 표현되는 시공간의 구조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일어난 두 사건”이라는 말은 갈릴레오 관점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구조적인 면에서 우리는 “이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은 기하학적으로 “이 시공간의 두 점은 같은 3차원 평면 위에 있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두 사건 사이의 경과 시간은 수 초가 걸린다.”는 말도 갈릴레오 관점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이 경과 시간은 해당 수평면 사이의 수직 거리를 말합니다. 앞에서 논의한 내용은 사건 사이에 가능한 몇 가지 관계를 정리해 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우리가 갖는 관점과 관계없이 물리적 세계의 모든 것을 사건으로 서술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어떤 경우라도 이 서술에서 사건 사이의 관계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사건 사이의 관계들 중에 어떤 것이 의미를 갖는지 결정하고 나면, 시공간 안에서 역시 의미를 갖는 다른 물리적 개념들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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