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보는 서양 미술사 이야기
임두빈 지음 | 가람기획
미술의 기원인간은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프랑스 남부의 니스에 있는 구릉유적지 테라 아마타에는 약 40만 년 전에 원시인류가 주거지를 세운 흔적이 있는데, 이곳에서 물감의 원료가 되는 노간주와 끝이 뾰족하게 다듬어진 주황색 물감, 그리고 나무 그릇이 발견되었다. 이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 이르러 놀라운 미적 감각을 지닌 그림들이 그려진다. 이 그림들이 바로 3만 5천 년 전에서 1만 년 전 사이에 그려진 후기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다. 이 시대 미술의 최대 장관이자 걸작인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스페인의 귀족 사우투올라에 의해 발견되어 인류 최초의 구석기시대 미술로 1880년 발표되었다. 후기 구석기시대 미술에는 동굴벽화 외에 조각도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2만 5천 년 전에 만들어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란 이름으로 불리는 오스트리아에서 출토된 11.1cm의 작은 돌조각 작품이다. 이 여인 조각상은 복부와 유방이 크게 강조된 반면 팔과 다리는 축소되어 있다. 사실적인 여인의 상이 아니다. 왜 이렇게 조각한 것일까? 후기 구석기시대 여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를 잘 낳는 것이었다. 아이를 잘 낳아야 씨족이 번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여인 조각상의 배가 크게 되어 있는 이유는 바로 아이를 잘 낳기를 바라는 주술적인 염원 때문이었다.
이집트 미술이집트의 미술은 이집트인의 영혼과 육체에 대한 관념 및 종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집트인들은 인간은 육체가 죽은 뒤에도 살아남는 '카'라는 반신(半身)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피라미드나 미라, 그리고 죽은 사람을 위한 초상화나 조각상들은 모두 '카'를 만든 것이었다. 이집트 미술은 회화와 조각, 건축 분야에서 각기 독특한 성과를 이루어 놓았다. 이집트의 그림이나 조각은 다른 지역의 그것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첫눈에 강렬한 개성을 느끼게 한다. 즉, 이집트 미술은 그 자신의 고유한 양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 화가들은 사람의 얼굴을 그릴 때, 옆모습이 얼굴을 표현하는 가장 주요한 측면이라고 생각했으며, 또한 눈은 정면에서 본 형태가 가장 완전한 눈의 모양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옆얼굴에 정면에서 본 눈이 결합되어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가슴은 정면상이어야만 두 팔이 다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정면에서 본 가슴이 그려졌고, 두 다리와 발은 옆모습이 가장 중요한 측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옆에서 본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집트 화가들이 원근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는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물의 완전한 형태라고 믿고 있는 것을 그리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집트 화가들은 사람들을 그려 넣을 때, 그들 중에서 지위가 높고 중요한 사람을 크게 그리고, 그 외의 사람은 작게 그리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원근에 따라 사람의 크기를 크게 하거나 작게 하는 원근법은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에게 미술에게 문명은 고대 그리스 문명이 탄생하기 이전에 에게 해에 있던 여러 섬들과 그리스 본토에서 번창했던 문명을 말한다. 에게 문명은 세 개의 각기 성격이 다른 문명을 통칭해서 부르는 것인데, 여기에는 크레타 문명과 키클라데스 문명, 그리고 미케네 문명이 포함된다. 에게 문명은 대략 기원전 3000년경에서 기원전 1100년경 사이에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에게 미술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미술과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자연스럽고 명랑하며 신선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것도 있다.
· 크레타 미술 : 크레타 미술은 미노스 미술이라고도 부른다. 미노스 미술을 꽃피웠던 미노스 문명은 외부의 영향에 의해 발아된 문명이 아니라 거의 독자적으로 발생해서 번창했다가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린 문명이다. 미노스 미술은 명랑하고 유희적이며, 자연에 대한 깊은 친화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즐겨 그린 주제는 돌고래와 물고기 등 바다에 사는 생물들이었다. 우리는 돌고래와 물고기와 문어 등을 미노스 회화에서 자주 보게 된다. 크레타가 섬이었기에 미노스인이 해양생물과 친숙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미노스의 대표적인 조각상에는 크노소스에서 출토된 여신상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테라코타 작품이 있다. 하나는 머리에 장식이 있으면서 두 팔과 몸에 세 마리의 긴 뱀이 휘감긴 채, 원추형의 치마를 입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의 여신상이고, 또 다른 상은 두 팔을 벌려 어깨 위로 들어올리고는 양손에 각기 꿈틀거리는 뱀을 한 마리씩 잡고 있는 모습의 여신상이다. 두 조각상 모두 정면을 응시하는 큰 눈에 노출된 젖가슴, 원추형의 치마를 입고 있는 형상이다. 큰 눈과 원추형을 기본으로 하는 전체 형태는 두 여신상을 희미하게나마 메소포타미아의 신상 조각과 연결시켜 준다.
그리스 미술그리스 문명의 태동은 기원전 1100년경에 북쪽에서 반도로 이주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 중 도리아인이 가장 중요한 이주 집단으로서, 그리스 본토에 정착하여 오늘날 우리가 찬탄해 마지않는 위대한 고대 그리스 문명을 일으켰다. 이들 고대 그리스인의 정신세계를 그 뿌리에서부터 살펴보려면, 우리는 당연히 저 유명한 그리스 신화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일까? 그리스 신화는 다른 신화와는 우선 그 성격부터가 판이하게 다르다. 그리스의 신들은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도덕적 완벽함을 갖춘 신들이 아니다. 그들은 신이면서도 인간적인 약점과 문제점을 그대로 지닌 특이한 신인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신들의 모습은 세계와 삶을 바라보는 고대 그리스 인들의 사유방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 고전기의 회화 : 고전기에 제작된 도기화를 보면 공간감과 입체감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자연스런 인물의 움직임과 현실감 있는 형태 감각 및 우아한 분위기는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거위를 타고 있는 아프로디테>에서 우리는 아케익기의 도기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적 정취를 지닌 우아한 내면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에서는 이집트 회화의 법칙이 대부분 파기되고 화가가 새로운 시각으로 인물을 포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속의 헤르메스는 옆얼굴에 옆에서 본 눈이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고, 가슴과 두 팔도 현실감 있게 처리되어 이집트 회화에서와 같은 정면상의 가슴이 아니라 측면상에 자연스레 왼쪽 팔은 감추어져 있다.
· 고전기의 조각 : 고대 그리스 미술의 고전기는 기원전 480년경에서 기원전 400년경까지를 말하며, 기원전 400년에서 기원전 323년경까지를 고전기 후기로 부른다. 이 시기는 고대 그리스 문화의 전성기다. 작은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던 그리스는 침략해온 페르시아 제국의 대군을 격퇴시키고, 아테네는 그리스의 주도적 도시국가로서 페리클레스의 영도 아래 민주정치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기원전 480년경에 이르면서 그리스 조각예술은 고전기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기게 된다. <크리티오스의 코우로스>로 알려진 조각상이 그것인데, 이 조각상은 페르시아군이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휩쓸고 지나간 뒤에도 다행히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던 조각상들 중 하나였다. 이 조각상의 자세를 자세히 살펴보면, 뻣뻣하게 양쪽 다리에 힘을 주고 서 있는 경직된 자세가 아니다. 또한 미묘한 신체 움직임의 변화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언급해야 할 것은 이 조각상은 실감이 나면서도 결코 세속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실제 대상에 대한 예리하고 주의 깊은 관찰력과 숭고한 이상미가 이 작품에서 하나로 결합되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기 그리스 조각상의 얼굴에는 내면화된 아름다움을 지닌 시적 영원성이 담길 수 있었던 것이다.
· 고전기 후기 조각 : 기원전 400년에서 323년경까지의 그리스 미술을 고전기 후기 미술이라고 부른다. 고대 그리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른 후, 반세기 동안 허다한 동맹들의 흥망성쇠와 크고 작은 전쟁으로 이어졌던 시기다. 미술 역시 그리스 정신을 상징하는 훌륭한 표본으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 시기는 그리스 미술이 고도의 발전을 이루어 숭고한 정신미와 풍요로운 관능미가 탁월한 조화를 이루었다. 화가와 조각가들은 모든 기술적 제약을 극복하고 어떠한 대상이라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힘과 그 표현된 대상에 놀라운 생명감을 부여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니게 되었다. <어린 디오니소스를 안고 있는 헤르메스>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를 압도해오는 뛰어난 아름다움이 있다. 인체 비례의 정확성은 물론이고, 자세의 미묘한 변화가 가지는 동세는 한없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밀로의 비너스> 상도 유명한 고전기 후기의 조각 작품이다. 시적인 정조가 감도는 우아한 아름다움과 따뜻한 관능적 서정미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이 작품에서 우리는 고전기의 이상미와 헬레니즘기의 관능적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교차하는 것을 느낀다.
· 헬레니즘기의 조각 : 헬레니즘이란 헬라스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리스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역사학자들은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했던 이전 시대와 그들이 죽은 이후의 세계를 구분해, 전자를 '그리스의(Hellenic)'라고 부르고 후자를 '헬레니즘의(Hellenistic)'라는 말로 지칭하고 있다. 헬레니즘 문화의 원천은 그리스였으나 헬레니즘 문화에는 그리스 문화와 같은 명랑함과 건강한 기운을 찾기 힘들다. 그리스 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이미 종래와 같은 종교적 관념은 많이 사라진 상태이며 세속적 욕구가 더 지배적이다. 이 시기의 신상들은 더 이상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감상을 위한 조각상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하여 헬레니즘기의 조각상에는 격동하는 감정의 움직임이 즐겨 표현되고 있다. 만취한 채 잠에 빠진 사티로스의 모습이라든가, 죽어가는 갈리아 인의 모습, 신과 거인족이 싸우는 장면, 거대한 뱀에 휘감겨 고통 속에 죽어가는 라오콘과 두 아들의 모습 등 종래의 고전기 작품이 지녔던 정신적 조화와 품위는 점점 사라지고 그 대신 격렬한 감정의 울림이 작품을 지배하게 되었다.
로마 미술로마 문명은 고대세계의 그 어떤 문명보다 외래 문명에 대해 관대했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이민족들 모두 자신들의 신과 종교를 믿을 수 있었고, 여러 지역의 다양한 신과 종교 역시 배척받지 않았다. 로마의 조각가들은 헬레니즘 시대에 융성했던 개성적인 초상조각의 영향을 그대로 이어받고, 거기에 로마 특유의 사실주의적인 정신을 불어넣어 헬레니즘 시대보다 훨씬 더 사실적인 초상조각을 만들어냈다. 거기에는 미화하거나 이상화한 흔적이 없다. 황제의 흉상조차 있는 그대로 묘사하도록 했다는 것으로 로마인들의 사실주의적 취향을 엿볼 수 있다. 기원전 2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유명한 <아우구스투스> 상은 로마식 초상조각의 가장 우수한 예로 불릴 만한 작품이다. 실제 인물이 지닌 개성적인 인상을 충실히 묘사하면서도 고상한 품격의 이상미를 느끼게 한다. 로마의 설화적 부조로 유명한 것은 <트라야누스의 기념주>다. 트라야누스 황제가 다키아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기념주는 38m의 높이에 연속적인 나선형의 부조대로 표면이 장식되어 있다. <트라야누스의 기념주>의 설화적 부조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전쟁의 상황을 자세히 알리기 위한 정확한 세부 묘사와 사건의 시각적 설명이었다.
초기 기독교 미술과 비잔틴 미술초기 기독교 미술은 기원후 5세기까지의 기독교 미술을 말하는데, 이 시기의 기독교 미술은 그리스· 로마 미술을 모방하고는 있으나 현저히 그 수준이 저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 미술이 당시의 이류 화가들에 의해 그려진 데다, 미술의 전반적인 수준이 저하된 데에도 원인이 있고, 기독교 미술이 자연스러운 가시적 현실상을 표현하는 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성서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두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타콤(catacomb)이라고 하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지하묘지이자 예배장소에서 초기 기독교 미술의 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로마의 산티 피에트로 에 마르첼리노의 카타콤 천장화나 프리스킬라 카타콤의 벽화는 초기 기독교 미술의 성격과 수준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그리스, 로마 벽화의 화법을 이어받아 그리고는 있으나 그 기법이 치졸하고 단순하다. 삼류 화가들이 그린 것이 분명한 이들 그림은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이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근본적으로 세련된 화법이나 기술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성서 이야기의 효과적인 전달이었던 것이다.
르네상스 미술르네상스(Renaissance)는 이탈리아어 리나시타(Rinascita)에서, 그리고 더 소급해보면 라틴어 레나스키(Renasci)에서 유래한 말이다. 레나스키는 재생(再生)을 뜻한다. 즉,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학의 재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르네상스의 싹은 중세 말기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 회화 : 미술에 있어서 최초로 르네상스의 문을 연 사람은 화가 지오토(1266∼1337)였다. 지오토의 작품으로 유명한 것은 파도바의 델아레나 성당 벽에 그려진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를 주제로 한 벽화다. 지오토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발상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으리라. '죽은 예수와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의 실제 모습을 어떠했을까? 예수의 죽음이 있었던 당시의 현장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오토의 이러한 생각은 그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중세의 화가들은 전해 내려오는 도상의 틀에 따라 성서의 이야기를 그리면 되었으나, 지오토는 그것을 파기하고 새로운 발상에 의해 그림을 그림으로써 르네상스 회화의 문을 연 선구자가 된 것이다. 이 새로운 회화법은 많은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이탈리아에서는 15세기 초엽 마사치오(1401∼1428)라는 천재가 지오토의 전통을 계승하여 혁신적으로 발전시킨 새로운 미술이 대두했다. 마사치오는 지오토 회화의 풍부한 양감을 더욱 발전시켰으며, 짜임새 있는 구도에 훨씬 자연스러운 공간 구성을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과학적 원근법을 활용하여 그림 전체에 공간적 생기를 불어넣었다. 과학적 원근법인 선원근법은 르네상스 건축의 창시자인 브루넬레스키(1377∼1446)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이것을 그림에 훌륭하게 활용한 최초의 화가가 마사치오였다.
· 조각 : 르네상스 조각의 진정한 첫 출발은 도나텔로에 의해 이루어졌다. 중세의 조각상은 항상 배경의 건축 구조와 함께 붙어 있는 것이어서 건축적 배경이 없이는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도나텔로는 이러한 중세 조각의 한계를 과감하게 넘어섰다. 피렌체의 오르 산 미켈레 성당에 놓여진 도나텔로의 <성 마르코> 상이나 <성 조르지오> 상은 더 이상 건물에 예속된 조각상이 아니라 홀로 떼어놓아도 당당하게 그 위용을 자랑하는 독립된 조각상이다. 고대 그리스 조각의 독립적 성격이 도나텔로에 이르러 새롭게 부활했던 것이다. 도나텔로는 보기 좋은 구성에 신경 쓰기보다는 사건의 생생한 현실성을 충격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인물들의 뒤에 있는 반원형 아치와 기둥들의 원근법적 배치는 실내 공간을 보다 넓게 보이게 한다.
· 전성기 르네상스 : 이탈리아어로 '500년대'를 뜻하는 친퀘첸토의 초기에는 수많은 천재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이 시대를 전성기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전성기 르네상스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까지 예술 분야의 상황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 시기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라파엘로, 티치아노(1488∼1524) 등 불멸의 거장들이 수많은 걸작을 창조했다. 예술가를 단순한 기술자나 장인이 아니라 천재로 여기는 르네상스인들의 생각은 전성기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에게 더욱 큰 도전정신과 힘을 불어넣어 새롭고 놀라운 작품을 만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