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
이장훈 지음 | 미래M&B
죽은 스트라우스와 월스테터가 산 미국을 지배한다네오콘의 전술과 자금줄3부 새로운 제국의 출범
새로운 제국으로 가는 길네오콘의 궁극적 목표는 중국미국식 민주주의 체제를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네오콘들의 지도자 겸 이데올로그이다. 9·11테러 후 부시 행정부가 이 사건을 주도한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조직 알 카에다 및 이들을 비호해온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공격하고, 알 카에다와 연계한 세력이며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하게 만든 전략의 설계자가 바로 울포위츠였다.
1998년 당시 클린턴 대통령과 하원의장에게 이라크를 공격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을 정도로 이라크 공격과 사담 후세인 제거는 울포위츠의 오랜 신념이었다. 럼스펠드와 함께 보낸 이 편지를 통해 "미국의 정책은 사담 후세인을 권좌에서 축출하고 이라크에 평화적이며 민주적인 정권을 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편지에는 이미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논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려 하고 있으며, 사담 후세인은 독재자이고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으므로 선제공격과 예방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UN안전보장이사회의 만장일치가 필요 없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으며, 이라크에 민주주의 정부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도 그 이유로 제시했다.
울포위츠는 2002년 10월 한 모임에서의 연설을 통해 사담 후세인의 제거와 이후 이라크의 미래는 중동지역에서 자유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울포위츠의 가슴속에는 독재자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과 함께 이 독재자 때문에 억압받고 핍박받는 국민에게 자유라는 선물을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꽉 차 있다. 그리고 독재자를 제거하는 것은 언제나 선한 사마리아인인 미국이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갖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울포위츠의 독트린'에는 미국의 국익이라는 전략이 숨어 있다. 또 이는 아랍권과 중동지역의 민주화를 통해 이스라엘의 안보 위협을 제거하겠다는 이중포석이기도 하다.
울포위츠는 현재 부시 행정부에서 체니와 럼스펠드를 제외하면 고위 관료들 중 가장 오랜 기간 요직에 근무한 인물이다. 비록 국방부 부장관이라는 직책에 있지만 그는 국방부의 3개 요직과 국무부의 3개 요직을 섭렵하는 최고의 정책 브레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960년대 시카고 대학 대학원에서 자신을 가르쳤던 은사 월스테터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 월스테터는 비록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소련의 위협을 연구해온 핵 전략가로서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다.
울포위츠는 1998년 미국의 잠재적인 위협 국가들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0년 대선에서는 텍사스 주지사였던 부시의 캠프에서 '힘과 군사력에 기초한 강력한 미국'을 기치로 내건 선거 공약 이론을 체계화했다. 그 후 국방부 부장관으로 입각하지만 9·11 이전만 해도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를 공격할 필요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별로 각광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9·11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9·11을 계기로 부시 행정부 내의 요직에 있던 상당수 네오콘들은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을 단호히 척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나 수단이라도 동원해야 하며, 선제공격이나 예방공격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입에 담기 시작했다. 사담 후세인 축출을 오랫동안 주장해온 울포위츠는 이라크 공격 명분을 대 테러전과 은밀하게 연결시켰으며, 결국 이라크를 침공,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켰다. 체니와 럼스펠드는 비록 울포위츠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이라크를 공격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에는 똑같은 생각이었다. 울포위츠는 이처럼 체니와 럼스펠드의 후원과 부시 대통령의 뒷배경에 힘입어 '미국을 위한, 미국에 의한, 미국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전면에 등장했다.부시 행정부의 외교·국방 정책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는 네오콘들은 과연 누구인가? 네오콘들은 대부분 동부 해안 지역과 일부 캘리포니아 지역 출신이며 그 중 상당수는 뉴욕 출신이고 유대인들이다. 초기 네오콘들 상당수가 한때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었던 인물들인데, 이들은 베트남 전쟁 패배와 민주당 내 반전·평화주의에 좌절했고 공화당의 반공·반소 노선을 지지하면서 우파로 돌아섰다. 그리고 반소·친이스라엘 성향의 인물들은 소련과의 데탕트를 지지하는 민주당 주류의 성향에 반발하여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기거나 친공화당으로 돌아섰다. 또한 1977년 소련과의 관계 개선과 팔레스타인에게 우호적인 민주당의 지미 카터 행정부가 출범하자 네오콘들은 대거 민주당을 탈당하고 공화당으로 옮겨갔다.
네오콘들은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레이건을 밀기로 하고 럼스펠드 등 공화당 우파들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레이건 행정부가 출범하자 네오콘들 상당수가 입각하여 세력을 크게 확장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정책으로 관철시켰다. 그리고 '스타워즈'와 같은 우주 요격 미사일 체제, 중남미에서의 반공 투쟁, 이스라엘과의 전략적 동맹 관계 구축 등을 주장했으며, '공급 주도 경제이론'을 지지했다.
1991년 소련 붕괴로 세계는 평화의 시대를 맞게 되었고, 이는 네오콘들 및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군산 복합체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이때 소련을 대신할 새로운 악으로 등장한 적대세력이 바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급진적인 아랍 민족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였다.
기대했던 부시 행정부가 온건 노선을 걸음에 따라 공화당의 전통 보수주의 세력에 밀려난 네오콘들은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아예 찬밥 신세가 되었다. 재기를 위해 고심하던 이들은 지지했던 매파 존 맥케인 상원의원 대신 부시가 공화당 후보 경선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자 한때 위기를 맞았으나 이들의 지도자격인 체니가 부통령이 되면서 건재할 수 있었다. 이들은 부시 행정부 초기 파월 국무장관 등 온건파들의 견제를 받았으나 9·11이 터지면서 마침내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하게 된다.
네오콘들은 가족 관계 등을 통해 서로 수십 년간 끈끈한 유대로 맺어져 있다. 그들은 남편, 아내, 부친, 사위, 아들 등으로 각종 연구소, 행정부의 조직에 연계되어 있다. 특히 중동 문제의 경우 국방부와 국가안보회의 및 국무부 등의 모든 실무자가 네오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방부의 고위 관료들 중 장관인 럼스펠드는 네오콘은 아니지만 네오콘과 유사한 성향의 인물이며, 그의 뒤를 받쳐주는 인물은 네오콘의 리더이자 이데올로그인 울포위츠 부장관이다. 2003년 3월 11일 신설된 정보담당 차관직에 임명된 스티븐 캠본 역시 네오콘이다. 재무담당 차관보, 국제안보담당 차관보, 근동아 남아시아 및 특별계획담당 부차관보도 네오콘이다. 국방부 이외의 행정부 요직에도 네오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국가안보회의는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과 네오콘인 스티븐 해들리 부보좌관이 이끌고 있으며, 실무자들은 대부분 네오콘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네오콘들은 뉴욕을 중심으로 한 동부와 이스라엘이라는 지연, 아이비리그 출신의 엘리트라는 학연, 유대인이면서 부부, 부자, 장인과 사위 등으로 연결되는 혈연을 통해 서로 밀고 당겨주면서 자기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왔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폐쇄적인 이들의 네트워크를 보면 놀라울 정도다. '한 지붕 세 가족' 같은 관계를 맺고 있는 네오콘들은 거대한 대중적인 조직을 갖고 있지 않지만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모두 모여 피크닉을 갈 정도로 결속력을 과시한다. 가족과 인간적 유대로 탄탄하게 짜여 있는 이들은 부시 행정부의 안팎에서 미국의 미래와 대외정책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4부 W의 세계
한 손에는 총, 다른 손에는 성경네오콘의 사상적 기원은 레오 스트라우스 시카고 대학 교수의 정치철학이다. 토머스 홉스를 신봉한 스트라우스는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투쟁해야 하며, 평화는 인간을 타락시키기 때문에 영구평화보다는 영구전쟁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인물이다.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 『폭군론』, 『자연권과 역사』 등의 저서를 남긴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은 『미국 정신의 종막』을 쓴 앨런 불룸 시카고 대학 교수에 의해 확산되었다. 그는 미국적 가치의 세계화를 주창하면서 '도덕적·문화적 우월주의'를 내세웠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미국식 민주주의만이 대량학살과 같은 국제적 비극을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이며 민족, 국가, 주권이란 개념은 자칫 전체주의 독재체제를 비호하는 보호막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과 사상은 기존의 보수주의와는 달랐다. 정통 보수주의가 국가 개입 최소화, 개인적 자유 극대화, 반공주의, 작은 정부, 소극적 국제 개입주의를 이념적 특징으로 삼는 반면, 네오콘은 사회 문제 해결에 대한 연방 정부의 적극적 역할과 국제 현안에 대한 능동적인 개입을 주창한다.
네오콘의 대부라고 일컬어지는 어빙 크리스톨이 『한 신보수주의자의 회상들』이라는 책에서 자신을 포함한 새로운 보수주의자들에게 '네오'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최초로 '네오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 네오콘들은 자신들의 사상적 스승을 레오 스트라우스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스트라우시언'이라고 내세운다.
정치체제의 중요성, 공격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찬양, 미국의 가치에 대한 광신적인 찬양, 전체정치에 대한 강력한 반대 등은 모두 네오콘들이 자주 거론하는 말들인데, 이는 스트라우스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들이다.
네오콘들의 정신 세계가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과 사상으로부터 출발했다면 외교 군사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은 월스테터이다. 1960년대 초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케네디 대통령을 자문하기도 했으며, 1964년부터 1980년까지 시카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핵 문제 전문가이자 전략가였던 월스테터의 생각은 오늘날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이나 선제공격에 입각한 새로운 군사 전략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은 핵 문제 자문역을 맡았던 월스테터의 조언을 받아들여 '스타워즈'라고 명명된 전략방어체제(SDI)를 추진했다. 이는 미국이 현재 구축하고 있는 미사일방어체제의 원조다. 이처럼 생전에 연구의 대부분을 소련의 위협을 제거하는 방법에 몰두했던 그는 말년에는 냉전 이후 미국의 세계 전략을 연구했다. 그는 UN과 각종 군축 조약들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미국이 다른 방어체제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구속하고, 부시 대통령이 2002년 폐기한 ABM(1972년 미국과 소련이 체결한 탄도요격미사일 조약) 같은 군축 조약을 일방적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 울포위츠와 펄 등이 주요 직책을 맡으면서 월스테터도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울포위츠는 월스테터의 전략을 발전시켜 소련과 중국 이외에 핵 확산 문제를 미국에 대한 위협의 범주에 포함시켰으며, 선제공격의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는 부시 독트린의 주요 내용이 되었다.네오콘들이 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포섭한 유능한 고급 인력들은 미국기업연구소 등의 싱크탱크는 물론 각종 기업의 연구소 및 정부 연구소에 대거 진출했다. 또 미국의 군산 복합체들은 이들에게 연구비용을 제공했고 각종 프로젝트를 위탁했다. 정치인들도 미국에서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치부되는 이들을 이용했으며, 네오콘들 또한 이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정책으로 실현했다. 이들은 후보들의 연설문 작성은 물론 선거운동 때는 신문 기고나 TV 좌담 등을 통해 특정 후보를 지원했다.
네오콘들은 자신들의 이념을 정책화하기 위해 언론을 능숙하게 이용했다. 네오콘의 대부 어빙 크리스톨과 노멘 포드레츠는 「퍼블릭 인터레스트」를 비롯해 「코멘터리」 등 각종 잡지의 발행인과 편집인을 역임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마음껏 선전했다. 네오콘들을 강력하게 후원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언론 재벌 머독의 폭스 TV는 아예 네오콘들의 선전방송이 되고 있다. 또한 ABC, CBS, NBC, CNN 등 주요 방송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 사회자, 해설자, 패널리스트로 적극 참석하고,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각종 신문, 잡지 등에서 칼럼니스트와 후원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도 네오콘이다.
네오콘은 주요한 정치적 이슈를 언론 매체에 제공하여 파장을 일으킴으로써 워싱턴 정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홍보 전문가까지 동원하기도 하는데, 그 가운데 유명한 인물이 페루 출신 홍보 전문가인 엘레아나 베나도르이다. 베나도르의 고객 28명 중 아홉 명은 미국기업연구소, 워싱턴 연구소, 중동 포럼과 관계 있는 인물이다. 2002년 9월 19일자 영국 「가디언」 지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워싱턴 연구소가 2001년 발표한 글들 가운데 90건이 각종 신문들의 여론 독자 면을 장식했다.
네오콘들은 활발한 활동을 위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한데,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채널은 매우 다양하다. 각종 우익 재단, 유대인 재력가는 물론 군산 복합체도 네오콘의 주요 자금줄이다. 네오콘이 지원받는 자금은 대략 10억 달러 규모라는 설이 있다. 미국 법에 따르면 싱크탱크와 같은 비영리, 비당파적인 기관에 지원하는 자금은 '서식 990호'에 따라 국세청에 신고해야 하지만 기부자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이 특정 이익을 위해 상당액의 자금을 기부하고 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미국기업연구소의 2000년 자산 규모는 3,580만 달러이고 수입은 2,450만 달러이다. 미국기업연구소는 100만 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일곱 번이나 지원받았는데, 이중 최고 기부금은 335만 달러였다. 워싱턴 연구소의 경우 2000년 자산 규모는 1,120만 달러였으며 수입은 410만 달러였다. 중동포럼의 경우 2000년 수입은 150만 달러였다.
싱크탱크들은 이 돈으로 연구원을 채용하고 각종 정책 자료들을 발간한다.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직접 연구팀을 조직하고 책을 출판하거나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 역시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그들의 저서나 연구 프로젝트는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된다. 네오콘들은 이처럼 탄탄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지원하면서 정부와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부시 대통령은 네오콘의 전략을 바탕으로 2002년 9월 17일 미국의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되는 어떤 국가에도 예방전쟁 차원에서 핵과 재래식 전략을 동원해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국가안보전략」(이하 NSS 보고서)을 발표했다. 부시 대통령은 9개 항목 33쪽 분량의 이 보고서를 통해 "미국은 과거 냉전 시대의 억지와 견제에 의지하던 전략에서 벗어나 필요하다면 자위권 차원에서 적대적인 세력들에 대해 먼저 군사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 보고서에서 언급한 선제공격의 범위는 국제법상 정당한 행위로 인정되어 왔던 '임박한 적의 공격에 직면했을 때 사전공격'에서 '적의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 임박한 공격 증거가 없더라도 공격할 수 있다'는 예방전쟁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적이 대량살상무기를 사전 경고 없이 사용할 가능성이 높을 때, 위협이 점증함에 따라 적극적이고 예방적인 조치가 필요할 때를 포함한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대목 중 하나는 일방적인 조치를 하는 데 국제사회의 동의가 필요 없다는 것인데, 보고서는 일방적 행동의 근거로 '미국과 국내외 미국민과 미국의 이익을 방어한다'는 자위권을 들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NSS 보고서를 토대로 새로운 전략에 맞는 전술과 개입을 도입, 적용하고 있는데 대량살상무기의 개념도 달라져 9·11에서 보듯이 인구밀집 지역 혹은 산업집중 시설에 대한 공격이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