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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최전선

박노자 지음 | 푸른역사
서설 - 역사는 반복되는가 : '미국 이후'를 제대로 대비하려면



'중국 이후' 대비 못한 100년 전의 실패 반복 말아야




100년 전의 잡지나 신문을 보면 한 세기 이전의 문제가 아닌 '지금 여기'의 문제들에 대해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역사는 물론 그대로 반복되지 않습니다만, 새로운 차원에서 전개해나갈 때 이전의 발전 패턴들이 구조적으로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100년 전 서구 열강과 청·일 두 나라가 국가 존립을 위협했다면, 이제는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으며, 근대의 길목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던 우리 선조들처럼 오늘날 우리도 나아갈 바를 두고 고심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100년 전 극동에서 중국의 헤게모니가 약해졌듯이 지금 약해지고 있는 미국 헤게모니라는 새 상황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또 이미 100년 전에 기존의 패권국가(중국)와 신흥 세력(일본)의 각축장이 되었던 국토를 다시 한 번 기존의 패권 세력(미국)과 신흥 도전자(중국)의 싸움터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두 번째 과제는, 100년 전의 농업사회가 그랬던 것처럼 점차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물량 중심의 공업 경제에서 지식 중심의 미래형 경제로 이행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100년 전 일본에 쌀과 콩을 대량으로 수출했듯이 우리는 지금 전 세계에 반도체와 자동차 등의 공업 제품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경제는 이보다 부가가치가 훨씬 더 높은 지식, 문화상품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100년 전에는 공장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였지만, 이제는 외국 학생들이 몰려올 만한 대학교를 만들고,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나 음악 등을 창작하는 일이 시급하지 않겠습니까?

다양한 이념이 각축을 벌이던 개화기에 이념적 공통점이 없었던 인물들 - 박은식, 최익현, 윤치호 - 의 대다수가 공적(公的) 영역의 확립을 조선 사회가 해결해야 할 급선무로 보았습니다. 구한말의 외국 논객인 청나라 사람 량치차오 역시 사적 관계 중심의 전통 농경사회의 윤리가 보편적인 국가 차원의 법치 논리로 바뀌지 않는 한, 서구의 물질문화 수입은 재앙만 낳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상업사회로 전환됐음에도 불구하고 관계 위주주의, 즉 진정한 공적 영역의 미발달이 계속 문제로 남아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면에서 개화기 인물들이 사회에 당부했던 말씀들이 지금도 유효한 셈이지요.

국제 문제에서도 당시의 모색과 생각들은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를 줍니다. 유길준은 1880년대 초부터 인접 강국들의 각축장이 돼가는 한반도를 중립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형태는 그때와 다르지만 지금 동아시아의 긴장감은 100년 전에 비해 결코 덜하지 않습니다. 신흥 도전자 중국에 대해 기존의 패권국가인 미국이 은근히 '포위전략'을 쓰는 듯 하기도 하고, 잘못하다가는 한반도가 중·미 갈증의 무대가 될 소지도 없지 않습니다. 유럽의 분석가 이야기로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수많은 동기 중의 하나가 중국 길들이기랍니다. 북한의 핵 개발을 자극하는 최근 미국의 북한 따돌리기 정책도 결과적으로는 중국의 동맹국인 북한을 고립시킴으로써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포석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의 한·미 안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정말 한국의 국익에 부합할까요? 유길준 시절과 지금의 다른 점은, 당시 잠재적 전쟁 도발자는 기존의 패권국가인 중국이 아닌 신흥 세력인 일본이나 러시아였다는 점입니다. 이를 우려했던 유길준은 한반도를 중립화시켜 주변 열강의 이권을 보장하면서 그들의 노골적인 무력충돌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전통적 조공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되, 한반도에 중국군이 주둔하는 것은 반대했습니다. 지금은 신흥세력(중국)이 아닌 기존의 패권 세력(미국)이 극동에서의 전쟁 도발자로 나설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잠재적 갈등의 한 당사자가 한반도에 군을 주둔시키는 것이 한반도의 안정을 위협하고 차후 한반도를 전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구한말 국내외 상황과 그때 지성인들의 생각이 지금의 우리에게 꼭 무언가를 시사해주고 조언해주는 것 같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논하면서 동시에 오늘의 문제들도 하나씩 풀어나간다고나 할까요. - 아직도 눈 내리는 오슬로에서 박노자 드림.

실패의 1차적 책임은 당사자에게, 내부에서 원인 찾아야



100여 년 전 우리는 제국주의 열강이 벌인 각축전의 희생양이 되어 근대 국민국가와 시민사회를 수립하지 못했으며, 일제 패망 이후에도 미·소 양 강대국의 냉전 논리에 의해 분단국가로 전락하고 만 참담한 실패의 역사를 맛보았습니다. 모든 실패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며, 그 책임은 1차적으로 당사자에게 있는 것이지요.

개회가 당시 공적 영역 문제에 대해서는, 당시 한국의 현실을 목도한 외국인들조차 한 목소리로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한국 사회 그 어디에서도 사회정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통박하였습니다. 하지만 비숍 여사는 "한국인들이 정직한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천천히 진정한 의미의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해방 이후 '한강의 기적'에 대해서 카터 에커트나 브루스 커밍스와 같은 몇몇 외국 학자들은 한국의 성공을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미국의 원조 덕분에 이룬 종속적 발전이라고 깎아내립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의 근현대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이 수정주의, 세계체제론,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목적론적 구조주의 이론의 편향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더욱 활발해진 시민운동을 볼 때, 한국인들은 물질적인 면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압축 성장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요즘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한반도를 둘러 싼 정세를 보면, 한반도가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세력 각축장이 될 수 있으며, 그 최선의 해결책이 중립화일 수 있다는 선생님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유길준이 "우리 나라가 의뢰하여 나라를 보전하는 것은 중국이 돌보아주는 데 달려 있다."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진짜 속내는 자국의 군사력에 의해 유지되는 중립이 아니라 중국에 기댄 중립이었다는 사실과 이 글이 씌어지자마자 서재에 사장되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던 유길준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중국이라는 외세를 무시할 수 없었듯이, 오늘의 한국인들이 스스로 이룩한 물질적 성공의 이면에 버티고 있는 미국이라는 존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저는 박노자 선생님과 함께 한 세기 전 우리의 실패의 역사 속에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찾아, 한국 근현대사의 여러 문제들을 때론 같은 시각에서 때론 서로 다른 잣대로 보려 합니다. 선생님과 저의 작업이, 우리에게 닥친 현안이 재앙이 되지 않도록 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연구실 창 밖으로 눈 내리는 캠퍼스를 바라보며 허동현 드림.

빈 라덴과 최익현 : 위정척사운동은 정의인가 몽상인가



전통 엘리트의 보수 자구책 강구는 당연




우리는 빈 라덴이나 그 측근들을 이슬람 근본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그들을 이슬람의 열성분자나 이슬람적 보수주의자, 전통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근본주의라는 말은 그들과 너무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근본주의란 본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기독교 내에서 일어난 한 운동의 이름입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이슬람을 적으로 알고, 예수의 재림 이전에 기독교와 이슬람이 대대적인 전쟁을 벌여 이슬람이 소명돼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슬람의 전멸을 요구하는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와 달리, 이슬람 단체들은 서구인의 이슬람 귀의를 환영하면서도 기독교 자체를 멸망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독교권으로 분류되는 미국과 서구의 이슬람 지역 내 약탈행위(불평등 무역 등)와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기를 요구할 뿐입니다.

보통 미국이나 서구 언론들은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하지만, 이집트의 '이슬람 형제의 공동체'나 파키스탄의 '이슬람 정당'과 같은 굴지의 이슬람 정치단체들은 의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향하면서 주로 빈민에 대한 식료품 조달이나 의료 및 교육 봉사 등 민초들에 대한 갖가지 구휼 사업을 전개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들은 이슬람이 요구하는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정부의 부당한 탄압이나 외국의 침략에 응전(應戰)하는 것도 그 예입니다. 실제로 빈 라덴이 '성전'을 선포한 동기는, 그가 침략으로 간주한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둔이었습니다. 이질적 외래 문명의 침해를 좌시할 수 없는 도전으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 역사 속에서도 목격된 현상입니다. 대원군 시대의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면 싸우지 않고 평화를 주장하는 것은 곧 매국이다."라는 말을 떠올려보십시오. 과정이야 다르지만,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부와 불평등한 자원 무역을 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발전되지 못한 주변부 사회가 황폐화됐다는, 필연적인 역사적 결과에서는 같은 셈입니다. 이 국가적인 비극을 앞두고 최익현과 빈 라덴이라는 전통적 엘리트의 대표자가 보수적인 자구책을 강구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닌가요?

최익현과 빈 라덴의 또 다른 공통점은 두 사람이 거의 똑같은 말로 자본주의 핵심부의 비윤리성과 비도덕성을 질타하고, 자신들의 반대편(일본과 미국)을 섬멸하기보다는 그들이 윤리적인 가치에 귀의하여 예의·염치·청경(빈 라덴)이나 인의예지(구한말 의병)의 정신을 되찾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보수'라는 말은 기득권의 보존과 기존 가치체제의 보존이라는 서로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보수를 자칭하는 사람들 중에서 반대쪽 사람들에게까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가치보다 기득권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 한국 '보수'의 최대 약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 안개가 짙은 오슬로에서 박노자 드림.

그들이 지키려 한 건 시대착오적 구체제



저도 빈 라덴과 의병 지도자들의 도덕주의와 지사정신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저는 조선시대의 의병과 오늘날의 빈 라덴을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한국 독립운동 시기의 의열 투쟁은 일제의 군경과 군사시설물, 그리고 침략에 책임이 있는 자들만 응징했다는 점에서 인류 공통의 양심과 보편적 도덕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의병들이 보인 고결한 기개와 자긍심, 약자와 패자임에도 불구하고 적에게 굽히지 않는 불굴의 지조, 멸사봉공의 정신 등이 천민자본주의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이기심과 탐욕을 정화해줄 소금으로 기능한다는 데에 선생님과 생각을 같이 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명분과 가치만을 배타적으로 높이려는 이들의 태도가 이들이 속한 사회 내부에서 억압의 기제로 작동했다면, 이들의 행동까지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개화기 농민들의 빈곤과 피폐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내부의 봉건적 요인, 즉 조선왕조의 양반 지배체제가 갖고 있던 모순에 기인하는 바가 더 컸지요. 저는 유교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신념과 도(道)만이 아닌 나라와 백성 전체를 지켜낼 방법을 강구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선비들이 죽음으로 지키려 한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요? 혹시 양반들만의 세상은 아니었을까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평등과 인권사상을 존중하는 오늘날 우리들이 그들과 생각을 같이할 수 있을까요?

빈한함 속에서 도를 즐긴다는 선비들의 경제관은 검약을 미덕으로 삼는 질박한 자급자족의 경제 체제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상공업을 천시하고 농업을 중시하는 조선왕조의 전통적 경제관을 대변하는 이러한 경제관은, 개화사상가들이 도입하려 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저는 개항 이후 한국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주변부로 예속된 것이 숙명적인 과정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때 우리 선조가 '시간의 경쟁'에서 뒤쳐졌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명분과는 달리 석유와 영토를 탐한 미국 우파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빈 라덴과 의병 지도자들이 그들의 상대보다 도덕적이라 해서, 혹은 약자나 패자라는 이유로 그들의 잘못까지 모두 감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알라 또는 공자와 맹자)만을 고집해 상대를 배척했다는 점에서, 신에 대한 믿음이나 사람들의 의지가 무기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전쟁관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급자족 경제 체제의 유지와 지식인들만의 권력 독점을 꿈꾼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인 몽상가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눈발이 잦아드는 오후에 허동현 드림.

변방 세력의 혁명 : '중심의 교체'가 꼭 진보만을 뜻하진 않는다



혁명 결과보다는 방법과 과정이 중요해




안정된 사회에서는 새로운 사상을 꿈꾸는 주변인들이 힘을 갖기란 불가능하지요. 기존의 권위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변혁기는 주변인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갑신정변, 갑오경장,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그리고 2002년의 '선거혁명'은 변방에 머물던 주변인들이 중심으로 진입한 역사적 사건들이지요.

33세의 김옥균을 필두로 29세의 홍영식, 25세의 서광범, 23세의 박영효, 20세의 서재필 등은 약관의 나이에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갑오경장을 주도한 이들 역시 예전에는 권력의 핵심에 진입할 수 없었던 서자 김가진·안경수, 중인 정병하·고영희, 함경도와 평안도 출신 김학우·장박 그리고 기독교 신자 서재필·윤치호였습니다. 4.19혁명 때에는 또 어땠습니까? 혁명에 힘입어 정권을 잡은 민주당 신파는 평안도 출신 기독교인들과 흥사단 계열의 인사, 그리고 1952년 부산정치파동 이후 이승만과 결별한 관료나 법관 출신 인사들로, 전라도 지역의 지주 출신 정치인들이 대다수인 구파에 비해 10여 년 연하의 비주류 신진 소장 세력들이었습니다. 5.16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 역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주류 사회에 편입할 수 없는 농민의 아들들이었습니다. 20∼30대가 주도한 선거혁명 덕에 요즘 신주류로 떠오른 운동권 인사들도 한때 사형을 언도 받을 만큼 핍박받은 바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 과정과 절차가 옳지 않아도 결과만 좋으면 되는 것일까요? 이번 2002년 선거혁명은 그 주도 세력이 20∼30대였다는 점에서 갑신정변과 유사하고, 청나라와 미국 같은 외세와 동등한 관계 수립을 지향했다는 점에서는 갑신정변·갑오경장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기성 질서에 대한 개혁을 외친다는 점에서는 갑신정변·갑오경장·5.16군사쿠데타와 유사합니다. 그러나 변혁을 위한 수단이 총칼이 아닌 투표라는 평화적 방법이라는 점에서, 또 촛불 시위가 상징하듯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자존을 꿈꾼다는 점에서, 과거의 혁명과 크게 다릅니다.

중심의 교체 그 자체가 개혁이고 발전이 될 수 없음은, 이른바 '개혁'이 과거의 탄압과 차별에 대한 한풀이 수단으로 악용된 우리 역사의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주도 세력의 수(갑신정변 100여 명, 갑오경장 1,000여 명, 5.16군사쿠데타 3,600여 명, 선거혁명 전체 유권자 3,499만여 명의 48.9퍼센트에 해당하는 1,201만 4,277명)가 상징하듯, '신주류'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이 제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며, 자신들은 20∼30대의 꿈을 이루어줄 대표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총칼이 아닌 인터넷을 무기로 선거혁명을 주도한 20∼30대의 성취 이면에는, 남북분단의 비극과 군사독재의 질곡 아래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한 50∼60대 국민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봄이 다가오는 수원의 연구실에서 허동현 드림.

평등사상 없는 혁명은 '진보'가 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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