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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

최준식 지음 | 효형출판사
우리 나라의 전통 음악은 대체로 크게 정악과 속악으로 나뉜다. 정악은 왕실이나 귀족들이 즐기던 음악이고 속악은 일반 민중들이 가까이하던 음악이다. 우선 정악에는 궁중에서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제례악이 있다. 정악에는 또 양반들이 즐기던 영산회상과 같은 풍류음악이나 시조, 가곡, 가사와 같은 성악곡이 있다. 또한 정가(正歌)라 불리는 성악곡들 가운데 가곡과 시조는 기존의 시조에 곡을 부쳐 부르는 노래로, 긴 사설에 노래를 부쳐 부르면 가사라고 한다. 이 중에 가곡과 시조만이 조금 남아 있는데, 시조는 우리 나라 사람이면 아무리 관심이 없더라도 한두 번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태 사안-이 이히이히 높다 아아아 하아 되-." 이렇게 시작하는 시조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게다. 속악은 아직도 우리가 즐기는 음악이기 때문에 비교적 친숙하다.



성악곡은 간단하다. 판소리를 대표적인 것으로 꼽을 수 있고 판소리하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단가나 민요 등이 포함된다. 기악곡에는 물론 산조와 시나위가 있고 여기에 반드시 풍물(농악)이 포함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 사람들 가운데 사물놀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물놀이'라는 용어가 새로운 용어라면 믿을 수 있을까? 사물놀이는 오래된 예술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기악곡이 생겨난 것은 2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사물놀이는 1978년 무렵 김덕수를 중심으로 한 몇몇 귀재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음악이다. 원래의 농악에서 앞치배니 뒤치배니 하는 것들을 다 잘라내고 가장 중심이 되는 네 가지 악기만을 뽑아내어 4인조 타악기 악단으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사물놀이는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 신명성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그 변화무쌍함, 숨막히게 진행되는 클라이맥스의 연속, 역동감…. 사물놀이의 성공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에는 음악이 사물놀이밖에는 없는 줄 알게 된 것이다.개성을 중시하고 자유분방한 감정을 표출하는 한국인의 예술정신은 속악으로 오면 극에 달하게 된다. 우리 속악의 특징은 한마디로 즉흥성이라는 개념으로 집약할 수 있다. 시나위의 가장 큰 특징은 악보 없는 즉흥곡이라는 것이다. 연주자들이 모여 아무 사전 약속도 없이 "시작해볼까?" 하고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처음에는 서로가 맞지 않는다. 불협음 일색이다. 그렇게 진행되다 중간에 호흡이 맞아떨어지면 협음을 낸다. 그러다가 또 각각 제 갈 길로 가서 혼자인 것처럼 연주한다. 이게 시나위의 묘미다.



불협음과 협음이 오묘하게 서로 들어맞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음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즉흥곡이라고 하지만 '촛자'들은 꿈도 못 꾸는 음악이다. 기량이 난숙한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한 음악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 한국인들은 혼자 하는 예술에 익숙한 것 같다. 특히 음악과 춤이 그렇다. 우리 음악과 춤 가운데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에는 혼자 하는 것이 많다. 판소리·산조·살풀이춤·승무와 같이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것들은 모두 혼자 하는 예술이다. 시나위는 명목상 합주이지 실제로는 독주나 다름없다. 시나위가 나오면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음악이 바로 산조다. 이생강이나 원장현의 대금 산조를 듣고 있노라면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강한 기운을 느낀다. 또 김죽파나 김일륜의 가야금 산조를 - 그 중에서도 자진모리나 휘모리를 - 듣고 있으면 격정적인 파고(波高)에 한참동안 얼이 빠진다. 산조는 참 대단한 음악이다. 전 세계 음악에서 그 유례를 쉽게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산조와 같은 형식의 독주곡은 같은 문화권인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인도나 중앙아시아 등지에서나 다소 비슷한 예가 발견된다고 한다.극도로 자유분방한 한국의 민화우리 나라의 그림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 조선 시대 최고의 화가를 꼽으라 하면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를 드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언제 보아도 그들의 그림은 좋다. 아니, 보면 볼수록 좋다. 그림이 좋으냐 나쁘냐를 판별하는 기준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오래 곁에 두어도 싫증이 안 나면 그게 바로 좋은 그림일 게다. 이 두 화가의 그림은 알면 알수록 그 진가가 다시 느껴진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들은 모두 진경시대에 속한 화가들이다. 진경 시대의 그림, 그 중에서도 특히 산수화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그 대상이 우리 나라에 실제로 존재하는 산천이다. 두 번째 특징은 화풍이다. 중국과 우리의 자연이 다르기 때문에 그 묘사 기법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겸재가 조선의 다른 화가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 화가들과 비교해 보아도 독창적인 점이 있다면 이 두 화법을 한데 합한 데 있다. 서릿발이나 도끼날처럼 날카롭게 그린 암석과 부드럽게 처리한 흙이나 나무가 한 그림 안에서 양과 음처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김홍도도 예외는 아니다. 단원은 겸재보다 더 한국적인 화풍을 구사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우선 단원은 대상 선택에서도 겸재보다 훨씬 다양했다. 산수화로 한국적인 소재를 선택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풍속화 ·인물화 등에서도 그 대상으로 철저하게 조선적인 것을 택했으며 그만의 독창적인 화법을 개발해 냈다. 단원의 작품 가운데 이런 관점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작품이 「남해관음도」다. 이 그림을 보면 조선의 그림이 중국의 아류라거나 모방에 그치고 있다는 말이 그릇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김홍도를 가장 조선적인 화가라 하는 데는 바로 이런 사정이 있다. 김홍도의 관음도로 오면 고려 불화와 달라도 너무 달라진다. 우선 한눈에도 알 수 있듯이 전체적인 그림 분위기가 한국적이다. 중국인(혹은 인도인)의 얼굴을 하고 있던 관음보살의 얼굴이 김홍도의 그림에서는 한국인의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그것도 확실한 여자의 모습일 뿐 아니라 여자 중에서도 푸근한 아낙네의 얼굴이다. 전통적으로 관음의 체형은 아주 섹시하게 그려지거나 조각되는데, 여기서는 근엄하거나 경직된 기운이 전혀 없는 아주 편안한 조선의 어머니 모습이다. 그러면 그림 자체의 미에는 어떤 조선적인 정취가 있을까? 오주석 교수에 의하면 단원의 많은 그림에는 그만이 구사하는 특징적인 '붓질'이 있다. 붓질을 할 때 단원은 그냥 죽죽 내려긋는 것이 아니라 출렁거리고 넘실거리게 한다. 단원의 조선적인 붓질은 소매 옷주름에 나타난 윤곽선을 보면 된다. "그 첫 붓질에는 우리 음악 첫머리와 합장단처럼 옹골찬 힘이 들어 있고, 이어지는 목선의 흐름은 굵고 가늘게 또 길고 짧게 넘실거리며, 소매 끝 부분에서 연속으로 세 차례 힘차게 후려친 선묘의 리듬감까지 모두 우리 옛 가락의 능청거림을 연상케 하는 것들이다." 단원의 한국성은 그가 그린 것으로 전하는 「무동(舞童)」, 「씨름」, 「서당도」 등과 같은 풍속도에서도 유감 없이 드러난다. 단원 이전의 화가들도 풍속화를 그렸지만 서민의 생활 모습이나 일하는 광경을 간략하면서도 해학과 한국적 정감이 흐르게 그린 화가는 단원이 처음이다.



단원이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주로 그렸다면, 풍속화에 있어서 그와 쌍벽을 이루는 혜원은 서민들의 드러나지 않은 색태(色態)적인, 다시 말해 에로틱한 광경을 그렸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혜원도 서민생활의 일상적인 모습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대표적인 그림은 냇가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을 남정네들이 몰래 보고 있는 것을 그린 그림이나 밤에 남녀가 몰래 만나는 그림, 또는 한량과 기녀들이 중심이 된 에로틱한 그림들이다. 이것은 혜원 자신의 자유분방한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러한 대담 솔직한 표현이 어느 정도는 먹혀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한 요인이 될 것이다.조선 후기 예술 정신의 특징인 '자유분방함'은 민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아니, 오히려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 정신이 한국 민중예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소박성·단순성·파격성·천진성·해학성 등과 함께 한국 민화의 전체적 특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민화 하면 떠오르는 것은 치졸할 정도로 소박하고 단순한 표현법들이다.



민화의 단순·생략미는 많은 부분이 이런 한국인들의 내적인 성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민중들에게는 양반처럼 제약받아야 할 사상이나 규범 같은 것도 별로 많지 않았다. 따라서 예술적 표현에 있어서도 양반들보다 훨씬 자유로울 수 있었다. 민화는 이처럼 작가의 취향대로 과감히 생략하고 과장해서 그려진 것이다. 민화들은 모가 나거나 막힌 데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너그럽고 둥글둥글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 민화의 천진함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언급이 필요 없다. 세계 어느 민족이 호랑이를 과연 저렇게 천진난만하게 그릴 수 있을까? 한국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는 귀엽다 못해 얼핏 보면 고양이에 가깝다. 나는 이 점이 '못내' 불가사의하다. 도대체 우리 민족의 심성에는 어떤 요소가 있어 저 용맹스럽고 무서운 호랑이를 익살스럽게 그려 놓을 수 있었을까? 또 그런 해학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저 불가사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우리 예술에는 어느 것을 보든 자유분방함에서 파생되는 해학, 익살이 짙게 깔려 있다. 물론 해학성이 우리 예술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남다른 데가 있는 것 같다.조선 후기의 민중 예술 작품으로 민화와 더불어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작품이 있으니 이것은 다름 아닌 장승이다. 장승은 그 모습이 하도 천차만별이라 정형화하여 일률적으로 말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지방마다 그 모습이 다르니 설명이 쉽지 않다. 그야말로 한국 민중들의 모든 것이 표현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철철 넘치는 익살이 있는가 하면 불거져 나오는 강한 힘을 느낄 수 있고 그냥 이웃집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친근함이 감돌기도 한다. 그 친근함에 마음을 놓고 있다가 옆의 다른 장승을 보면 이번엔 기괴하고 근엄해 순간 긴장감이 스친다. 눈은 툭 불거져서 퉁방울눈 같은 경우도 있고, 누가 몽골리안 아니랄까봐 좌우로 심하게 찢어진 눈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장승이 지닌 미학적 특징은 어떻게 정리될 수 있을까? 국립민속박물관장을 역임했던 이종철 박사는 장승을 "순박한 토속미, 마음을 비운 제작 태도, 멋 부리지 않으려는 단순성, 사상성과 상징성의 은근한 반영, 자연주의적인 감성, 양식화의 거부, 과감한 생략, 추상적 신비의 표현"이라고 언급했는데, 자승의 미학적 특징은 물론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한국적인 고유미가 모두 들어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과감한 생략, 단순성, 자연주의적인 태도, 양식의 거부 등이 모두 가장 한국적인 미를 표현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 이런 미적 감각은 민중 예술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민중 예술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장승에 이러한 미 감각이 표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승은 18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르는 동안 한껏 신장된 민중들의 자의식이 예술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 민중들의 자의식은 장승을 조각함에 있어 역동적인 힘과 생명의 힘을 느끼게 하고 파격적인 기법의 미를 통해 마음껏 표현되었다. 게다가 이 장승은 예술작품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종교적인 성물로서 신비적인 힘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장승에 나타나는 미의식은 우리 예술에서 보이는 고유의 미의식과 같은 맥락에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예술사를 공부할 때 도자기만큼 좋은 자료는 없다고 한다. 도자기만큼 전 시대에 걸쳐 나타나는 예술품이 없기 때문이다. 유명한 선사시대의 무늬 없는 토기나 빗살무늬토기부터 고려시대의 청자를 거쳐 조선시대의 백자까지 모든 시대의 그릇들이 남아 있어 한국예술의 변천을 알아보는 데는 도자기만큼 좋은 게 없다.



조선시대 도자기의 대표작으로 분청사기(혹은 분청자)와 백자를 꼽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런데 자유분방한 형태의 달 항아리와 같은 백자들은 조선 후기에 모습을 드러내는 반면 분청사기는 조선 전기에 모습을 드러내니 내 가설이 분청사기에는 적용이 안 되는 것이다. 분청사기는 우리 나라의 수많은 예술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한국적인 미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오늘날의 미감과도 어울리는 현대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전통적인 특징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게 바로 분청사기다. 분청사기가 갖고 있는 조선적인 특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분청사기를 가장 조선적인 그릇이라고 한 윤용이 교수는 그의 책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에서 이 특징을 다음과 같은 용어로 정리했다. 정돈되지 않아 수더분하고 구수한 모습/무엇에도 구애받을 것 없는 듯한 자유분방함/익살스러움/천진스러움.



바로 내가 이 책에서 일관되게 주장했던 한국적인, 혹은 조선 민중적인 미와 상통하는 바가 많은 것들이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똑같다. 이런 한국적인 고유미를 가진 분청사기는 이미 15세기라는 조선 전기에 나타났다.수더분하고 자유분방한 분청사기인간이 만든 것 같지 않다는 막사발조선적인, 너무나 조선적인 백자분청사기(粉靑沙器) 혹은 분청자라는 이름은 우현 고유섭이 1940년대에 처음으로 사용했다. 간단히 말해서 고려청자의 전통을 이어받아 거기에 백토로 분장한 것, 즉 흰 계통의 흙을 청자에 바른 그릇이 분청자다. 분청사기에 나타나는 미의식을 살펴보자. 우선 그릇의 겉면을 장식한 문양이 불가사의하다. 대표적인 것에는 보통 선으로 그린 추상적인 도형과 물고기 문양 등이 있다. 우선 선각으로 된 분청자의 문양은 너무 자유로워서 마치 현대의 추상화를 연상케 한다. 어떻게 보면 마구 그린 것 같지만 그 안에는 투박하면서도 대범한 미 감각이 엿보인다. 또 나름대로의 기하학적인 구성도 눈에 띄는 등 매우 현대적이다. 조선 초기라는 엄격한 유교 사회에서 어떻게 저런 극도의 자유분방한 생각과 예술적 표현이 가능했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물고기 문양도 자유분방함과 익살에 있어 선각 문양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분청자에는 선각보다 물고기 문양이 훨씬 더 많이 발견되는데 왜 물고기를 많이 그리는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그런데 이 물고기 그림들이 가관이다. 매우 거칠게 그렸을 뿐 아니라 죽은 물고기처럼 배를 위로해서 그린 것, 서서 있는 것 등등 그 표현의 자유로움이 상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전혀 정형화되지 않은 병의 모습도 주목을 끈다. 도자기의 양쪽을 눌러서 편병을 만든다든가 긴 원통형으로 만드는 등 분청자 병의 양식에는 규격적이고 대칭적이지 않은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띈다. 과감한 생략과 파격이다. 어떻게 해서 도자기는 이렇게 이른 시기부터 자유분방한 디자인이 가능했을까? 일단 가능한 설명은 당시가 아직 유교가 완전히 정착되기 이전의 시기라 예술에 있어서도 딱딱한 규범성만을 강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분청사기는 사대부뿐 아니라 서민들도 사용하던 그릇이라 서민들의 자유 분방하고 꾸밈없는 성품이 그대로 반영되어 이러한 특징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막사발이란 말 그대로 '막' 만든 사발을 말한다. 조선의 이름 없는 도공들이 별생각 없이 만든 그릇이 막사발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그릇이 너무나 친숙했던 나머지, 아니면 우리 문화에 관심을 두지 않는 습관 때문인지 막사발의 아름다움을 최근까지도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는 문화적 열등감에 사로잡힌 민족답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막사발의 예술성을 찬탄하자 그제서야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이런 막 사발들은 말할 것도 없이 조선의 이름 없는 도공들이 만든 것이다. 이들은 그저 그릇 만드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해 욕심 없이 그릇 만드는 일에만 몰두했다. 가업을 계승해야 했으며, 흙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갔다. 그러니 흙에 관한 한은 최고도의 기술을 구사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흙이 생활 그 자체였다. 이런 도공의 손에서 나온 작품들이 자연스럽지 않으면 자연스러운 작품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일본인들이 조선의 그릇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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