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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전쟁

정기종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석유전쟁

정기종 지음

매일경제신문사/2003년 4월/284쪽/10,000원



1부 석유 없는 세계가 오는 날

이라크 전쟁의 진짜 목적

미국이 수행하는 이라크 전쟁의 명분은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는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고 9.11 테러의 주모자인 빈 라덴을 지원하는 이라크를 응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의 진짜 목적은 미국이 세계 석유매장량의 10%에 달하는 이라크의 유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향후 10년 이내에 고갈될 미국 내 유전을 대치하기 위해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보유한 중동의 유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21세기 지구촌의 위기는 중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은 바로 그 서막과도 같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를 3차 세계대전의 징조로 분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쿠웨이트 유전에 대한 이라크의 욕심이 원인이었다. 이라크를 위시한 공화정 국가들은, 같은 아랍국가로서 국왕이 통치하는 아라비아 반도의 왕정 국가들을 반 이슬람이며 반민주적인 정치체제라고 비난하면서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석유수익을 부패한 소수 왕족들이 착복, 치부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해 왔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의 쿠웨이트 탈환 작전은 쿠웨이트와 사우디 등 아라비아 반도의 왕정 국가들이 보유한 석유자원에 대한 기득권을 상실하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1991년 1월 17일, ‘사막의 폭풍’이라고 불리는,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다국적군의 걸프전이 시작되었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유엔 차원에서의 응징이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쿠웨이트가 보유한 막대한 유전 때문이었고, 미국이 쿠웨이트의 해방을 위해 걸프전을 치른 이유도 쿠웨이트를 비롯한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에서의 미국 석유 회사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걸프전도 석유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걸프전에는 약 600억 달러가 들었고 이 중 약 426억 달러가 미국의 전비였다. 하지만 미국은 이 중에서 150억 달러를 자체 부담했고, 나머지는 독일, 한국, 일본 등 우방국에 부담시켰는데, 우리 나라는 약 5억 달러 가량의 물품 및 현금 지원을 부담했고 154명으로 구성된 의료지원단과 C-130 수송기 5대와 관련 조종사 등 150명으로 이루어진 공군 수송단을 파견했다.

아직까지 지구에는 석유가 있지만 모든 것에 끝이 있듯 석유자원도 없어지는 날이 온다. 영국의 석유 회사인 BP의 조사에 의하면 1990년을 기준으로 세계의 석유 가채년수는 42년이었다. 즉, 2010년부터 세계는 점차 석유채굴량의 감소기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석유 생산이 감퇴기에 들어선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석유의 생산량 감소가 지역별로, 또 국가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사우디 등 중동지역에서는 길게는 100년 이상 채굴이 가능하지만 미국이나 영국 등 유럽지역에서는 채굴 가능한 기간이 향후 10년 미만이다.

석유의 고갈, 그 이후

세계적으로 석유가 고갈되기 시작할 때, 그것도 고갈기가 급격히 닥쳐올 때에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뿐 아니라 당연히 정치적으로도 일대 파장을 겪게 될 것이다. 전쟁 불사론까지 등장할 정도로 석유를 구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심화될 것이다. 현재 천연가스를 대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방안이 강구 중이지만 자동차에서 비행기까지 석유를 사용하는 모든 운송수단과 공장, 발전소 그리고 산업용 원자재까지 모든 것을 천연가스로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는 지금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금융과 군사력 중심의 산업구조로 변화시켜 가고 있다. 이것은 일면 자국 내 공해산업의 추방과 3D업종의 종사자 부족 등을 이유로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장차 다가올 석유 부족기, 즉 현재 세계 제조업의 혈액인 석유의 고갈 시기를 내다본 정책변경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석유를 사용하는 산업이 이제는 세계환경 협약과 같은 범 지구적 환경보호를 위한 압력에 직면하고, 석유가가 폭등하게 될 석유 고갈 시기를 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각한 위기를 한국과 일본 등 제조업 중심 국가의 책임으로 떠맡기고 자신들은 국제 금융과 군사력을 강화시켜 가면서 석유위기에 의해 국내 산업에 가해질 일대 타격을 회피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부 검은 황금, 석유

현대문명, 석유의 바다 위에 뜬 배

우리가 따뜻한 아파트에서 편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출퇴근이나 통학하고, 또 휴일에 유원지에 놀러가기 위해 자동차를 움직이고 비행기를 날게 하고, 한밤의 도시를 밝혀 주는 전기를 만들어 내는 등 현대인의 일상생활을 유지시켜 주는 이 모든 일은 바로 자원 에너지 덕이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석유 덕이다. 석유는 이렇게 문명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자원인 반면, 20세기 인류가 저지른 대부분의 전쟁은 석유 때문이었고, 그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어 주었던 것도 석유였다. 실로 현대문명국가에서의 생활은 석유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한마디로 현대문명은 석유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와 같다. 석유의 역사는 성경에 나올 만큼 오래되지만 검은 황금이라고 불리는 석유가 그 진정한 가치를 찾게 되어 현대문명을 구축하게 된 것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석유 산업은 원유 관련 산업과 석유제품 관련 산업을 포괄적으로 말한다. 전문적으로는 상류 부문(Up-Stream) 사업과 하류 부문(Down-Stream) 사업으로 구분된다. 상류 부문은 원유의 탐사, 시추, 개발, 생산까지의 단계를 말하고, 하류 부문은 그 이후의 단계, 즉 원유 수송, 정제, 석유제품 판매, 기타 단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주요 다국적 기업 석유 회사들은 상류 부문과 하류 부문을 망라해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이렇게 상․하류 부문을 동시에 경영하는 대규모 회사를 일관조업회사라고 한다. 석유의 채굴, 수송, 정제, 판매에 이르기까지 석유의 모든 부문에 손을 대고 있는 거대한 석유 회사를 보통 메이저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석유는 사우디와 같은 중동의 사막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석유는 지구의 여러 곳에서 나온다. 알래스카 같은 동토에서도 상당히 많은 분량이 나온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와 남미의 베네수엘라나 멕시코,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도 석유는 생산된다. 현재 세계의 석유 생산국은 대략 60여 개국으로 상당수의 국가들이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2001년도 노르웨이의 일일 석유 생산량은 341만 배럴로 중동의 이란과 이라크에 못지 않은 양을 생산하는 쾌거를 올렸다. 문제는 매장량이 작아 향후 가채년수가 9년 가량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현재의 생산량은 세계 총생산량의 4.5%에 달한다. 다만 노르웨이나 영국의 문제는 석유가 고갈된 이후의 국가 경제다. 우리 나라도 산유국이 될 수 있을까

실제 우리 나라에서도 석유가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서기 1590년 명나라 때 편찬된 박물지 『본초강목』에도 고려 땅에 석유가 나오는데, 바위 틈에서 샘물과 같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는 기록이 있다. 기름의 진기가 고기국물 같아 사람들은 풀잎으로 그 기름을 떠서 그릇에 담는다. 빛깔의 검기가 칠과 같고 유황 냄새가 난다. 고려인들은 이를 불붙여 등불을 켜는데 매우 밝아 좋다. 물을 끼얹으면 불꽃이 더 심해지고 음식에 들어가면 안 된다. 연기가 진하여 연기 그을음을 모아 먹을 만들면 칠처럼 윤이 나고 송진 그을음으로 만든 먹보다 훨씬 낫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도 석유를 암시하는 기록이 나온다. 본기 제4신라 진평왕조에는 경주 동해안 쪽의 모여악이란 곳에서 폭 4보 5척의 별로 크지 않은 구덩이에서 불이 타기 시작하더니 비바람에 관계없이 연중 타오르다가 10월에야 그쳤다고 적혀 있다. 신라 태종 무열왕 때 토함산 기슭의 땅이 타다가 3년만에 꺼졌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세종 때 영해부에서 땅이 탔다는 기록이 있고, 성종 14년에도 영해 땅의 어느 구덩이가 주야로 불을 뿜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는 불구덩이의 깊이가 8척이요, 폭이 20척인데 낮에는 연기만 나고 밤에는 불빛이 보인다. 낮에도 불구덩이에다 나무토막을 던져 넣으면 불길이 오르곤 한다고 되어 있다. 우리도 한반도 인근의 대륙붕 해저 유전 개발 계획이 있으니 석유가 나오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시도한다면 산유국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노아의 방주에 사용된 석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의 기록을 보존하고 있는 성경에 나타난 석유의 모습을 살펴보자.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노아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은 이제 막판에 이르렀다. 땅 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저것들을 땅에서 다 쓸어버리기로 하였다. 너는 전나무로 배 한 척을 만들어라. 배 안에 방을 여러 칸 만들고 밖을 역청으로 칠하여라(「창세기」 8장 13~17절)."

인간의 악함 때문에 세상을 심판하실 때 하느님은 600살 먹은 노아에게 친히 배의 건조 방법을 일러주신다. 방주를 만들 때 칸을 막으면서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수용으로 사용한 역청(bitumen)이 바로 석유인 것이다. 역청은 진흙 속에 아스팔트처럼 섞여 있는 원유 성분의 물질이며 점청, 도청도 역시 상태만 다를 뿐 지상에 나와 점액질로 변한 석유의 동소체이다. 고대 수메르, 아시리아, 바빌론 사람들은 땅 위로 흘러나온 역청질 성분을 방수제로 쓰고, 도로 건설에도 사용했으며, 소독이나 눈과 손발의 통증 치료에 의약품으로도 썼다. 불을 만드는 게 가장 기본적 임무인 석유는 역사상 전투용으로도 빠질 수 없었다. 기원전 1000년경에 아시리아인들은 석유를 이용한 화공법을 개발했으며, 기원 400년경 페르시아군도 돌격전 때 유황과 피치의 혼합물을 사용했고, 알렉산더 대왕도 인도군과 대치하면서 피치를 이용한 화공을 썼다. 12~13세기 세계 최대 제국을 건설한 몽골 군대의 서방원정에는 석유와 유황을 사용한 화약, 폭죽, 화염폭탄 등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 이로써 석유를 이용한 화공법이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다.

석유와 1, 2차 세계대전

1941년 12월 8일 새벽, 하와이 진주만 기습작전을 성공한 후 일본은 미국의 석유 금수 조치에 대항해 전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개전의 변을 밝혔다. 석유가 국가 경제의 동맥과도 같았으니 미국에 의해 석유 금수 조치를 당한 일본이 위기의식을 느낀 것은 당연했다. 결국 2차대전에서 석유 보급기지인 바쿠 유전 및 북아프리카를 빼앗긴 독일과 동남아시아를 빼앗긴 일본은 패전한다.

석유는 1차대전에서도 전쟁의 발발과 승패를 좌우했다. 1911년 7월, ‘아가디르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단지 한 척의 포함이 국제적 분쟁 위기를 촉발시킨 도화선이 되었던 사건으로 당시 세계적인 화제였다. 독일이 파견한 한 척의 군함이 아프리카에서의 영국의 영향력을 견제한 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 이후 독일 해군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 위협을 느낀 영국은 해군장관으로 윈스턴 처칠을 임명하였고, 처칠은 해군 전투력 증강을 위해 해군 함정의 연료를 그때까지 사용해 왔던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는 중대 결정을 내린다. 석탄에 비해 소량으로 막대한 열량을 낼 수 있는 석유야말로 선박용, 특히 군함용 연료로는 최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1912~1914년 사이 세 차례 영국 해군력 증강 프로그램으로 영국해군은 모두 석유로 전환되었다. 처칠의 결정은 올바른 것이었다. 석유 엔진의 사용은 군대에 기동성을 부여해 줌으로써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석유를 사용하는 군대가 석탄을 사용하는 군대를 이긴 것이다. 히틀러가 2차대전에서 소련을 적으로 돌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침공 작전을 전개한 이유는 코카서스,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등의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석유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국가는 망한다

인류가 석유 없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학자들에 따라 다양하다. 현재 세계 각국은 대체에너지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석유로 이루어진 현대문명을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는 국가는 그만큼 석유를 오랫동안 보유하거나 조달할 수 있는 국가일 것이다. 전세계적인 석유 부족기가 닥쳐오면 약소국은 선진국가에 진입하기 그만큼 어려워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다른 모든 지하자원과 마찬가지로 석유 역시 한정된 자원으로 언젠가는 고갈되게 돼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지하자원과 달리 석유는 대략적이나마 고갈 시기를 인류가 추정할 수 있다는 정도다. 석유가 인류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생산량으로 석유를 채굴한다면 조만간 지구상의 석유자원은 고갈될 것이다. 인류는 과거 3억 년에 걸쳐 축적된 석유자원을 겨우 200년 남짓한 시기에 모두 써버리려 하고 있다. 우리 세대는 그럭저럭 석유 문명을 유지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문제는 다음 세대다. 앞으로 30년 후 다음 세대의 문명은 무엇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새로운 에너지 자원을 찾아내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을까? 이런 준엄한 물음이 인류 앞에 놓여 있다.

에너지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과 캐나다로 그 소비량은 석유로 환산해서 1인당 26리터나 된다. 일본의 1인당 에너지 소비는 아홉 번째로 11리터인데 미국의 40%에 해당하고, 서유럽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그에 비해 중국이나 아프리카 나라들의 1인당 에너지 소비는 1일 1리터 정도로 미국의 2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가채 매장량이 50억 배럴 이상인 거대 유전이 발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새로 개발 가능한 지점은 정글이거나 극지, 심해 또는 빙해 등으로 기술적으로 채굴 조건이 나쁘고 막대한 개발 경비가 소요되는 곳일 수밖에 없다.

자원 고갈에서 오는 석유 위기는 1970년대의 OPEC의 자원 내셔널리즘의 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다. 1970년대의 석유 위기는 산유국이 정치적인 목적에서 보유하고 있는 석유자원을 통제한 것뿐이었지만 자원 고갈 시기에는 주려고 해도 줄 수 있는 석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의 석유 쟁탈전은 그야말로 국가의 흥망을 건 싸움이 될 것이다. 특히 미국과 EU국가의 석유는 향후 10년 여밖에 남아 있지 않아 이후 두 국가 간의 석유 쟁탈전은 대단히 가열될 것이다. 이때 우리 나라와 같이 자원이 부족하고 미국이나 EU만큼 국제적 영향력이 없는 자원빈국들은 석유 확보야말로 국가의 존망을 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시기에 석유는 희소자원이 되고 가격은 상승할 것이며 대체에너지 개발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될 것이다.



3부 석유의 무대, 중동

문명의 교차로, 중동

중동이라 해도 좀더 세분해 보면 중동, 근동, 그리고 마그레브(maghreb)로 나뉜다. 이것은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 경쟁하듯 중동으로 진출하던 20세기 초 유럽식 분류 방법으로, 준동의 중심지를 예루살렘으로 보고 그로부터 중동 그리고 근접한 지역을 근동으로 부른 데서 유래한다. 마그레브는 아랍어로 가리브(Ghreb), 즉 내려간다, 해가 진다는 의미의 동사에 아랍어의 동명사화 접두사인 마(Ma)가 붙은 것으로 ‘해가 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중동에서 본 서쪽, 즉 아프리카 북방 지역을 말한다. 오늘날의 리비아,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모리타니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 5개국은 요즘 마그레브 경제 공동체를 구성하여 지역공동체 운영을 도모하고 있다.

중동 국가는 정치적으로 왕정 국가와 공화정 국가로 나뉘고 경제적으로는 석유부국과 석유빈국으로 나뉠 수 있다. 왕정 국가로는 요르단, 사우디,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오만, 모로코가 있다. 독특한 형식의 왕정 국가로는 7개 도시국가가 연합해 국가를 구성한 아랍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가 있다. 공화정 국가로는 이집트,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예멘, 수단,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리타니, 이란, 이스라엘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가치관을 존중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국가는 중동에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가 정치 경제적인 근대화 과정을 거쳐 현대국가로 면모를 일신했지만 중동만은 예외인 것 같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도시의 외관이야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같은 석유부국은 미국이나 유럽에 못지 않다. 그러나 정치제도나 사회제도 면에서 살펴보면 중동 아랍국가는 여전히 근대 이전의 7세기 이슬람이 탄생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국가 권력의 일인 집중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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