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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발견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 푸른숲
옛날 사람들이 수백 년 이상에 걸쳐 본 하늘의 모습은 돔 모양이었고(그래서 흔히 '천구'라고 부른다), 그 움직임은 규칙적이었으며, 예측 가능했다. 태양의 경로와 달의 움직임도 규칙적이었고, 밤하늘에서 움직이는 수많은 별들도 고정된 길을 따라 움직였다. 별들과 행성들에 대한 이러한 선입견은 종교적 믿음에서부터 달력의 개념과 불가사의한 거대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고대인들이 만들거나 생각한 거의 모든 것에 반영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인은 초기 문명 중에서 가장 먼저 별과 행성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하늘의 지도도 최초로 작성했다. 별들을 바라보던 메소포타미아인은 무엇보다도 계절 변화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고 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가장 먼저 살았던 수메르인은 최초로 하늘의 움직임을 기록한 민족인데, 700년 동안 계속 기록했다. 그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 수집된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들은 달의 주기적인 패턴, 태양과 행성들의 질서정연한 주기적인 리듬을 알아냈다. 곧 그들은 최초의 달력을 발명한 것이다.



태양과 달의 관측은 자연의 패턴을 예측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때맞춰 씨를 뿌리는 일과 농사 활동을 중심으로 전개된 종교 의식은 태양과 달의 경로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러나 달은 인간의 생물학과는 아무 관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시간의 기준으로서도 불완전했다. 달의 위상 변화에 기초한 태음력은 태양년(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 약 365.25일)을 정확하게 나타낼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은 문화의 음력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윤달을 추가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성직자들이 달력을 통제했기 때문에 윤달은 성직자 마음 내키는 대로 추가되곤 했다. 그러나 초기 농경 사회에서 농업의 중요성이 커지자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시기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 필수였다.



사람들은 점차 계절의 변화는 달보다는 태양과 별들의 움직임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태양년에 바탕을 둔 달력이 최초로 만들어진 곳은 태양신을 가장 높이 숭배하던 고대 이집트였다.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나일 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농경지 주변에 발달한 이 고대 문명에서 태양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이유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집트인은 매년 나일 강의 범람에 의존해 살아갔다. 나일 강의 범람은 농경지에 물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강물에 실려온 비옥한 흙은 밀과 그 밖의 작물에 풍작을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매년 규칙적으로 일어나던 나일 강의 범람은 이집트인의 생활에 매우 중요했다. 태양신의 경로와 나일 강의 범람이 지닌 중요성 때문에 이집트인은 하늘을 자세히 관측하게 되었다.



세월이 더 흐르자 파라오는 거대한 무덤을 짓게 했는데, 피라미드는 단순히 파라오를 위한 안식처이자 애도의 장소가 아니라 하늘나라 여행을 시작하는 출발점이었다. 나일 강 근처에는 지금도 거대한 피라미드 35개가 남아 있다. 피라미드의 밑면은 기하학적으로 아주 정확하게 놓여 있어 현대적인 측정 도구가 전혀 없던 고대 문명의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최근에 피라미드의 건설과 관련하여 대중의 관심을 끈 새 가설 중에 피라미드가 별들의 지도, 특히 오리온자리에 있는 오리온의 허리띠에 해당하는 3개의 별을 나타내도록 지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이집트인은 이 별들을 부활의 신인 오시리스와 연결시켰다. 이 가설에 따르면 기자(Giza)에 있는 세 개의 대 피라미드는 이 세 별(그중 한 별은 이집트에서 '투반'이라고 부르는 별이다)을 향해 늘어서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리온자리에 있는 이 세 별이 피라미드들과 일치하는 방향에 있었던 시기는 1만 2000년도 더 전이다. 2000년 11월에 한 연구자가 피라미드의 밑면과 일치하는 별들의 위치를 이용해 계산한 결과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기원전 2478년에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것은 외계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이 피라미드를 지었다는 기존의 학설과 일치한다.서양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과 두 개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 사과는 『성경』의 에덴 동산에 있었다는 선악과이다. 「창세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금단의 열매가 사과가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그것은 무화과일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사과는 뉴턴이 그것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의 법칙을 생각해냈다는 전설에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뉴턴의 조카딸로부터 들었다는 프랑스 작가 볼테르가 처음 한 것으로 전한다. 뉴턴이 노인이 되고 나서 그 이야기를 반복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할아버지가 백 리가 넘는 산길을 걸어 학교를 다녔다고 하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뉴턴은 요샛말로 하면 왕따였다. 폭풍이 세게 몰아칠 때면 그는 밖으로 나가 바람의 힘을 측정하기 위해 바람을 향해 팔딱팔딱 뛰곤 했다. 당연히 급우들은 뉴턴을 좋아하지 않았고, 결국 어머니는 뉴턴을 자퇴시켰다. 그러나 뉴턴은 농부 생활을 할 체질이 아니었고, 교장 선생님과 삼촌이 어머니를 설득해 뉴턴을 대학에 보내게 했다.



1661년,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한 뉴턴은 사이저(sizer), 즉 대학에서 신분이 가장 낮은 계층으로 여겨지던 가난한 장학생이었다. 사이저는 다른 사람의 시중을 드는 일도 해야 했고, 식당에서도 남은 음식만 먹을 수 있었다. 1665년에 학위를 받았지만 트리니티 칼리지는 그 해에 페스트가 창궐하는 바람에 문을 닫았고, 그는 그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 지냈다. 달리 할 일이 없었던 뉴턴은 과학의 법칙을 고쳐 썼다. 미적분을 창시했고, 프리즘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스펙트럼과 빛의 본질을 발견했다. 전설적인 사과가 떨어진 것도 이때였다. 뉴턴은 사과를 보고 왜 달은 사과처럼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결과로 나온 답이 만유인력의 법칙이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모든 개념은 그후 20년 동안 그의 마음속에만 담겨 있다가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와 대화를 나누다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핼리는 뉴턴에게 그 개념을 책으로 쓰라고 설득했고, 그 결과 1687년에 『프린키피아(Principia, 원제 :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뉴턴이 내놓은 개념들은 너무나도 혁명적이고 복잡한 것이어서 그것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극소수뿐이었고, 그후 50년 동안은 널리 가르쳐지지도 않았다.



비교적 온후한 성격의 뉴턴은 말년이 되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이나 경쟁자를 격렬하게 공격했다. 특히 애드먼드 핼리에게 행성의 운동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했노라고 으스대기도 했던 천문학자 로버트 훅이 자신을 비난하고 나서자 뉴턴은 『프린키피아』의 재판본부터는 참고 문헌에서 훅의 이름을 모조리 삭제해버렸다. 훅이 죽고 나서 그 뒤를 이어 왕립학회 회장이 된 뉴턴은 왕립학회에 걸린 훅의 초상화를 떼내게 했다. 뉴턴은 말년에는 『성경』을 토대로 하여 그리스와 이집트의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의 연대기를 작성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스타 트렉>에 나오는 연방이나 <스타 워즈>의 제국이 실제로 존재하기 전까지는 우주는 기본적으로 우리 모두의 공동 소유이다. 1967년에 체결된 UN 외부우주공간조약은 우주와 달과 그 밖의 천체를 평화적으로 탐사하고 이용하는 데 따르는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 조약은 우주는 모두의 소유이며, 모든 국가가 그것을 탐사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인도주의적인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1990년 7월, 빈에서 열린 외부 우주 공간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제3차 국제연합회의에서는 외부 우주를 실용적,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청사진을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1999년 빈 회의 에서는 21세기에 우주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분야들의 윤곽이 그려졌다.



우주가 국제 문제에서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미국에서 아직도 논쟁 중인 우주 미사일 방어 계획 때문이다. 냉전이 한창 고조되던 시절에 미국과 소련은 핵 억제 전략에 바탕한 방어 계획, 즉 '상호 확실 파괴' 계획을 짰다. 이것은 전면적인 핵전쟁이 일어날 경우 선제 공격을 가한 쪽도 보복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체결된 일련의 조약들은 그러한 전면전 발발의 가능성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우주에 방어 시스템을 설치하여 날아오는 적의 미사일을 파괴한다는 전략 방위 구상(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을 세웠다. 이 계획은 회의적인 비판론자들이 경멸조로 '스타 워즈'라고 불렀다.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소련의 위협은 감소했지만 다른 국가나 구소련 시대의 기술을 구입한 테러리스트가 미사일을 발사할 잠재적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2001년에 들어선 부시 행정부는 미사일 방어 체계의 개발은 여전히 군사적으로 최우선 고려사항이라고 천명했다. 과학계를 양분시키고 있는 이 기술의 운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막대한 기술적 난관에도 불구하고 개발을 계속 강행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또 회의론자들은 미국과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에 미치는 손실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개발에 반대하는 다른 논거는 역사상 어떤 훌륭한 방어 무기도 결코 완벽하지 못했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그리고 많은 과학자들은 우주를 '비무장 지대'로 남겨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 사이에 벌어진 우주 경쟁이 막을 내린 것 외에, 우주에 관한 과거의 관심사와 현재의 관심사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우주 개발 논의에 민간 기업들이 적극 참여한다는 점이다. 우주는 큰 사업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과연 어떤 기업이 최초로 상업적인 우주 왕복선을 쏘아올리거나 화성 착륙선을 보내게 될까?우주 공간과 화장실, 그리고 섹스 : 우주정거장에서의 일상은?종종 대폭발로 표현되는 빅 뱅(Big Bang)은 크지도 않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것은 또 폭발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



빅 뱅 이론의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나오던 무렵인 20세기 초에 나왔다. 그렇지만 '빅 뱅'이라는 이름은 그로부터 수십 년 뒤에야 붙여졌다. 영국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이 1950년대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당시 일부 천문학자들이 논의하고 있던 우주 탄생 이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재치와 익살이 넘치던 호일은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공간과 모든 물질이 갑자기 "빵!"하고 태어났을 리 없다고 하면서 그 이론을 빈정대기 위해 "빅 뱅"이라고 불렀는데, 그 때부터 빅 뱅이라는 이름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빅 뱅 이론, 또는 일부 우주론자들이 '우주론의 표준 모형'이라고 부르는 이 이론의 요지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약 150억 년 전에 우주는 빅 뱅의 '특이점'에서 탄생했고, 거기서 시간과 공간과 모든 물질이 생겨났다. 따라서 이것을 폭발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무(無)가 폭발을 할 수는 없다. 실제로 빅 뱅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또 그 사건은 어떤 한 장소에서 일어나지 않고, 모든 곳에서 일어났다. 다시 말해서 공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빅뱅이 일어날 장소 자체가 없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다.



100만 분의 1초가 지나기 전에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생겨났다. 그 전에는 모든 것이 하나의 우주의 '씨' 또는 '알'로 통합돼 있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수백만 분의 1초 동안에는 우주의 온도는 무지무지하게 뜨거웠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과학 참고 문헌』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빅 뱅에서 1조*1조*1조 분의 1초가 지났을 때 우주의 크기는 콩만 했고, 온도는 1만*1조*1조℃였다고 계산했다. 그리고 빅 뱅에서 1초가 지났을 때 온도는 약 100억℃로 떨어졌다."



우주가 계속 팽창하고 식어감에 따라 최초의 원시 물질(쿼크라고 부르는)이 서로 결합하여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원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물질은 커다란 덩어리들도 쪼개져나갔다. 그것들은 은하의 별, 그리고 결국에는 행성이 되었다. 그 가운데 일부가 여러 행성과 태양을 거느린 우리 태양계가 되었다.



빅 뱅 이론은 모든 이론과 마찬가지로 증명이 가능하다(물론 틀렸다고 증명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까지 나온 많은 증거는 빅 뱅 이론을 지지해주기 때문에 빅 뱅 이론은 대다수 과학자들이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빅 뱅 이론을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증거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다.



-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 이것은 1929년에 허블이 처음 관측한 이래 많은 관측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 빅 뱅 직후의 뜨거운 우주의 복사가 식어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우주 배경 복사가 우주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 우주에는 중수소와 헬륨이 풍부하게 존재하는데, 이것은 우주가 한때 아주 뜨거웠다는 가정과 일치하는 결과이다.- 달의 한 달은 27일인가, 29일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달을 29.5일인 삭망월로 생각한다. 이것은 그믐달에서 다음 그믐달이 되기까지의 시간으로, 달이 태양을 기준으로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만약 달이 지구와 태양을 잇는 일직선상에서 궤도를 돌기 시작했다면, 그 다음 번에 다시 일직선상의 위치에 오기까지는 29.5일이 걸린다. 반면에, 항성월(약 27.33일)은 항성들을 기준으로 볼 때 달이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삭망월이 항성월보다 더 긴 것은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동안 지구도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이다. 달이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지구는 태양 주위의 궤도를 1/13 가량 돈다. 따라서 달이 태양과 지구에 대해 이전과 같은 위치에 오려면 그보다 약간 더 돌아야 한다.



- 달 표면에 보이는 사람 얼굴은 무엇인가?

달과 지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면서 영원히 빙빙 도는 춤을 추고 있기 때문에, 지구에서 볼 때에는 항상 달의 옆면만 보이고, 뒷면은 보이지 않는다. 역사를 통해 사람들은 달에서 '사람의 얼굴'(우리 나라에서는 옥토끼를 보았다). 구름의 바다는 사람의 입, 고요의 바다와 비의 바다는 눈에 해당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사람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실제로 달나라로 끌려가 그곳에 못박힌 것이라고 한다.



- 달은 지구의 유일한 위성일까?

행성 주위의 궤도를 도는 물체를 위성이라 하고, 태양계에는 다른 행성들의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이 많이 있다. 지구 궤도 위에 올려진 허블우주망원경도 위성이라고 할 수 있다(비록 인공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지구 궤도를 도는 물체를 쏘아 올릴 때마다 그것은 새로운 위성으로 간주된다.

인류는 우주 시대가 개막된 이래 수많은 위성을 쏘아 올렸다. 미국의 우주사령부는 2000년 9월에 지구 주위를 도는 인공 위성이 모두 2,698개가 있다고 보고했다. 그중 1/3만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고, 나머지는 연료가 바닥난 '죽은' 인공 위성이다. 우주에 떠 있는 이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들의 궤도는 결국에는 불안정해지기 시작해 지구의 중력에 끌려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면서 불타 없어진다. 대개는 그렇다. 그러나 소련의 우주정거장과 미국의 스카이랩은 완전히 타 없어지지 않고 각각 안데스 산맥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에 떨어졌다. 2001년 4월, 러시아는 15년 동안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해 온 미르우주정거장을 끌어내려 태평양에 수장시켰다.중력은 물질의 기본성질 중 하나로 질량을 가진 모든 물질 사이에서 서로 끌어당기는 힘으로 작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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