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으로 읽는 중국
이익희 등저 지음 | 일빛
한권으로 읽는 중국
이익희 등저
일빛/2003년 8월/456쪽/20,000원
문화
때로는 순박하게, 때로는 영악하게 - 중국인의 기질
한 민족의 문화적 성격은 대체로 지리적 요인, 그 중에서도 기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뿐만 아니라 기후의 차이에서 시작된 문화의 차이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기질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인을 두고 풍류와 음주가무에 능하다거나 한의 정서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하고, 일본인은 냉정하며 배타 의식이 강하고 조화와 집단을 중시한다고 하는 이유도 곰곰이 따져보면 그 지역의 지리적 요인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중국 사람들의 기질을 일컫는 표현은 실용주의와 적당주의, 체면이나 관계 중시 등의 표현으로 집약되어 왔다. 하지만 광활한 국토와 다양한 지리적 조건에서 살아가는 중국 사람들을 통틀어서 한두 마디로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화북, 화남, 서북, 서남, 동북 지역들이 저마다 독특한 지리․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해보면 중국의 각 지역에 대한 좀더 세밀한 탐색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화북 지방의 중심은 두말할 것 없이 베이징이다. 베이징은 중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지역이니 만큼 이 지역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고, 높은 문화수준을 가지고 있으며, 대인 관계에서 예절을 중시한다. 아울러 실리적이어서 외면을 치장하는 것보다는 먹는 일에 관심과 정성을 쏟는다. 베이징을 둘러싸고 있는 허베이(河北) 사람들은 풍부한 재치와 유머, 상업적 분야에서 두드러진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내몽고 지역은 대단히 직선적이고 호방한 사람들이다.
화동 지역은 중국에서도 물산이 풍부하고 기후가 따뜻한 곳인데, 상하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경제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 쟝쑤(江蘇) 지역은 전형적인 중국인이라고 할 만큼 정적이며, 온화하고 사리에 밝다. 푸젠(福建) 사람들은 전형적인 남방형으로 체격이 작고 근검 절약형이 많으며, 신중한 편이다. 내륙의 산간 지역 사람들은 보수적이고 배타적인데다 확실한 이익이 없는 투자를 잘 하지 않는 데 비해 연해 지역 사람들은 개방적이며 모험심도 강하고 임기응변에도 능하다.
동북 지방은 추운 기후에 대체로 척박한 자연조건을 지니고 있다. 동북 지역의 세 성을 묶어 ‘동북삼성’이라는 표현을 곧잘 쓰는데 랴오닝(遼寧), 헤이룽쟝(黑龍江), 지린(吉林)이 그곳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순박하고 부지런하며 개방적이다. 그리고 내륙의 중심에서 남부 해안까지 이어지는 화중과 화남의 허난(河南) 사람들은 대단히 보수적이다.
서남 지역은 내륙으로서 험한 자연 환경을 지니고 있다. 쓰촨(四川) 지역 사람들은 문화적 자존심이 강하고 예절을 중시하며 일 처리를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소박하고도 온화한 성격이기도 하다.
내륙 중에서 내륙이라 할 수 있는 서북 지역 중 산시(陝西) 사람들은 무역업과 금융업에 뛰어난 자질을 보일 정도로 숫자 관념이 발달했다. 고대 문명의 유물들이 가장 잘 보존되고 가장 많이 출토되기도 하는 간쑤(甘肅)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의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려는 강한 인내심을 소유하고 있다.
각 지역의 중국인들은 지리와 기후, 문화적 풍습에 따라 저마다 색다른 특질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의 중국, 혹은 단일한 모습의 중국 사람만을 염두에 두고 중국인과 교류한다면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다. 각 지역별 특징에 따라 그에 걸맞는 대응이 필요하다.
사합원(四合院), 그 금기와 상징의 집
중국 영화의 거장 장이머우의 역작 가운데 하나인 <홍등>은 전통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 아래에서 억압당했던 여성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결국 욕망의 연쇄적인 좌절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고 마는 이 영화의 분위기와 주제 의식을 잘 뒷받침해준 형식미학적 장치 가운데 하나가 바로 폐쇄된 사합원 구조였다.
사합원은 말 그대로 사방이 막혀 있고 대문으로만 통로가 나 있는 전형적인 베이징 지역의 전통 주택 양식이다. 그런데 이 사합원은 베이징의 전통적인 골목 양식이면서 사합원의 벽들이 만나 형성된 골목인 후퉁(胡同)과 따로 생각할 수가 없다. 후퉁과 사합원은 대체로 원 왕조 시대를 전후하여 형성되었다고 한다. 사합원은 대체로 남향으로 지어졌는데, 전체적으로 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고, 그 가운데에는 ‘원(院)’, 즉 정원 혹은 뜨락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네 벽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에는 주거용으로 지어진 다양한 용도의 방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대체로 사면의 건물들에 난 창문과 출입문은 뜨락을 향해 열려 있고, 남쪽과 북쪽은 다섯 간, 동쪽과 서쪽은 세 간으로 꾸며져 있다. 이와 같이 엄격하게 바깥과 차단된 건축 양식 속에서 전통 중국인들은 가정과 가족을 기초로 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시켜왔으며, 그 안에서도 상하 간의 수직적 질서를 익혀왔던 것이다.
사합원을 만들 때는 몇 가지 금기가 있다. 우선 베이징 사람들은 뜨락의 바닥을, 이곳을 나서면 바로 연결되는 후퉁의 바닥 높이보다 낮게 만들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비나 눈이 내렸을 때 배수하거나 밖으로 퍼내기가 힘들다는 실용적인 까닭이 전제되어 있겠지만 더 나아가 집에서 문밖으로 나설 때 마치 등산을 하는 듯 높은 곳으로 올라서려는 행위를 상서롭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뽕나무와 배나무 등도 사합원에 들이지 않았다. 뽕나무는 중국어로 ‘상수(桑樹)’라 하는데, 이때 ‘상’ 자가 장사지낸다 할 때의 '상(喪)‘ 자와 독음이 같고, 배나무는 ‘리수(梨樹)’라 하는데, 이때 ‘리’ 자 또한 헤어진다고 하는 ‘리(離)’ 자와 독음이 같아 꺼리는 것이다. 대신 화려한 봄에는 화려한 꽃이 피고, 가을에는 풍성한 열매를 맺어 왕성한 생명력과 풍요로운 번창을 의미하는 대추나무, 석류나무, 해당화 등은 사합원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주거 형태도 사회주의 중국이 수립된 이후에는 모두 정부나 직장에서 배급한 집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또한 개혁개방 이후에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1999년 제도개혁으로 개인이 주택을 소유할 수 있게 되자 베이징 곳곳에서 철거와 개발이 시작되면서 전통 중국의 상징이었던 후퉁과 사합원은 더 이상 중국과 베이징의 상징으로 남지 못한 채 헐리게 되었고, 이제는 낡은 사진첩에서만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문학
이데올로기와의 충돌 - 근․현대 문학
우리가 보통 ‘중국 현대 문학’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191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일련의 문학 현상들을 통칭한다. 그러나 중국어로 ‘현대’, 즉 ‘센다이(現代)’라고 말할 때 그 시간의 종착점은 대체로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의 수립이다. 그 이후의 시간을 중국어로는 ‘당다이(當代)’라고 부른다.
약 100년이 못 되는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중국 근․현대 무학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여섯 시기로 구분된다. 첫째 시기는 1917년~1927년으로 중국 근․현대 문학의 다원적인 가능성을 꽃피우며 그 기초를 닦은 기간이다. 둘째 시기는 1928년~1937년까지로 문학 현상이 점차로 주류 문학과 비주류 문학으로 나뉘며 이른바 ‘혁명 문학’이 주류 문학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기간이다. 셋째 시기는 1937년~1949년까지로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을 거치는 동안 ‘전쟁 문학’이 활발하게 창작된 기간이다. 넷째 시기는 1949년~1966년까지로 대체로 사회주의 중국의 수립과 더불어 사회주의 문학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기간이다. 다섯째 시기는 1966년~1976년까지로 문화혁명과 더불어 중국의 문학 예술 활동이 정치적 억압을 견뎌낸 기간이다. 여섯째 시기는 1976년부터 현재까지로 문화혁명이 끝나고 이른바 개혁개방과 더불어 ‘새로운 시기(新時期)’가 시작되면서 다시 다양한 문학 현상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 기간이다.
1917년 후스의 「문학 개량에 대한 소견」이 당대의 근대적 진보 진영을 표방한 「신청년」에 실리면서 중국의 근․현대 문학의 본격적인 서막이 올랐다. 중국의 전통 문학이 가지고 있던 형식주의적 폐해를 언급하고, 이를 언문일치와 사실주의적 창작 이념 등으로 극복하자는 그의 주장은 직후 발생한 5․4운동이 문화 운동과 문학 운동으로 확산되어 천두슈와 리다자오 등의 지원을 받으면서 더욱 번져갔다. 이와 같은 새로운 문학관은 문학연구회․창조사 등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문학 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실제 창작으로도 뒷받침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 가장 주목할 만한 이는 루쉰이다. 중국 근․현대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는 1918년 「광인일기」부터 시작하여 「아Q정전」, 「축복」, 「약」등을 통해 ‘식인’으로 상징되는 당시 중국인들의 전근대적인 의식에 일침을 가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불어넣음으로써 이후 자신의 문학적 위상을 확고히 하였다.
둘째 시기는 1928년에 시작된 혁명 문학 논쟁이 중심이다. 이것은 당시 중국 사회의 최대 화두였던 ‘혁명’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논제를 전제로 하여 창조사와 태양사 등과 같은 문학 단체를 주축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 문학’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혁명 문학의 제창에 힘입어 1930년 발족한 중국좌익작가연맹(좌련)을 중심으로 한 문학 현상이 주류 문학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일련의 자유주의적 문학 사상이나 현상 등이 나타났다. 이 시기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창작 이념 혹은 창작 기법으로서 리얼리즘이 주류의 반열에 오르면서 구체적인 문학 현상들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로 시작된 셋째 시기는 ‘전쟁 문학’의 시기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 드러난 문학 현상은 다양한 정치적 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대체로 이 시기에는 중국을 침략한 일본에 대한 저항이 주류를 이루었다. 한편 1942년 공통구인 옌안에서 마오쩌둥이 좌담회에서 연설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중국의 문예가 노동자와 농민, 군인을 위해 봉사해야 하며, 따라서 문예의 수준을 향상시키기보다는 이를 보급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밝혔다. 이후 중국공산당의 주도 아래 사회주의 중국이 수립되었으니 이 연설은 중국 근․현대 문학의 기본 강령처럼 인식되어왔다.중국 근․현대 문학의 넷째 시기는 사회주의 중국의 수립과 더불어 시작된다.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의 수립과 때를 같이하여 개최된 1차 문학예술활동가대표대회의 개최는 사회주의 문학 예술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이와 동시에 ’사회주의 문학‘이 그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시기 동안 중국 문학, 특히 소설은 장편 소설이 다수를 차지하였고, 그 소재와 주제가 1930~1940년대의 혁명 투쟁을 회고하고 칭송하는 데 치우쳐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의 시 창작은 그다지 큰 성과를 보이지는 못했으나 전반적으로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과 송가가 주를 이루었다.
문화혁명 시기에는 수많은 작가들이 숙청당하고 하방되어 노동 개조에 참여하였으며, 문학혁명이 종식되고 이른바 덩샤오핑 집권의 시대가 열리면서 그 동안 억압되어 있던 문학․예술계 또한 활발한 창작 활동을 시작, 5․4 이래로 다원화 시기를 꽃피우게 된다. 이 새로운 시기의 문학은 인간성 회복, 주체의 재발견, 서구 문학을 모태로 하는 다원화된 창작 기법의 도입 등을 토대로 발전한다.
중국 근․현대 문학의 총체적 특징은 결국 문학과 정치, 혹은 문학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어떻게 해명하는가에 의해 규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곧 결국 다시 문학의 본질적 사명,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2000년에는 프랑스에 체류 중인 반체제 작가 가오싱젠이 중국 출신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이러한 변화를 포함하여 앞으로 중국 문학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나 돌아가리, 낙원은 어드매뇨 - 도연명과 육조 시가
계속되는 군벌의 득세와 황제의 무능함으로 인해 동진의 정치는 점차 문란해졌다. 반란군이 일어나고 황제의 복위와 폐위가 반복되며, 송을 건설하는 혼탁한 시대를 살았던 시인 도연명은 진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들어서자 은거하기로 마음 먹고 이름을 도잠으로 바꿨다. 41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손수 농사를 지으며 산수와 시와 술과 벗하며 20년을 은거했다.
도연명의 작품 속에는 술이 많이 등장한다. 위진 시대 일부 문인들은 불로장생한다는 선약을 구해먹으면서 그 효과를 촉진하기 위해 술을 마셨고, 어떤 문인들은 술을 빌어 극도로 방탕한 생활을 함으로써 세상의 시름을 잊고자 했다. 이들의 방탕한 생활 이면에는 어지러운 세상을 탓하고, 뜻을 이루지 못한 선비의 울분이 깔려 있다. 그러나 도연명에게 술은 인간의 삶을 자연 현상의 하나로 파악한 인생관과 연결된다. 그는 술을 통해 인간의 잡된 욕망이나 감정을 잊음으로써 자연과 합치되는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시험삼아 마셔보니 온갖 정욕 멀어지고, 잔을 거듭하니 문득 하늘도 잊게 된다.”
도연명은 전원 생활의 기쁨에서 시작하여 자연과 융화된 인간을 추구하는 데 모든 창작의 정열을 바쳤다. 이 때문에 도연명은 중국 시의 발전에 있어 전원시(田園詩)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대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도연명보다 약간 뒤에 등장한 사령운은 자연의 경치를 세밀하고 진실하게 그려내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냄으로써 산수시(山水詩)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사령운의 시는 산수의 묘사에 있어 풍부한 수사를 동원하여 언어의 폭을 넓혔고, 한 글자에 심혈을 기울여 그 표현이 매우 뛰어났다. “연못가에는 봄풀이 돋아나고, 정원 버들엔 새소리도 때를 탄다.”라는 구절은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사령운은 산수시로 대자연의 신비한 미를 재현함으로써 시의 영역을 넓히고, 언어의 감각성과 참신성을 살려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공을 세웠다.
역사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 중일전쟁, 제3차 국내 혁명 전쟁
1931년 9․18 사변으로 만주를 점령한 일본은 1932년 1월에 상하이를 공격하고 3월에 만주국을 건국함으로써 만주 지배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쟝제스는 공산당에 대한 토벌을 계속하면서 일본과는 타협을 꾀하고 있었다. 1935년과 1936년, 항일 구국 운동이 벌어지고, 내전의 중지를 요구하는 단체가 결성되던 와중에 1936년 12월 시안을 방문한 쟝제스가 동북 지역을 세력 근거지로 하고 있는 군벌 장쉬에량(장학량)에게 구금당하는 ‘시안사변’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내전 중지 등의 요구에 합의하여 제2차 국공합작이 실현되었으며, 1937년 중일전쟁이 본격화되면서 9월 22일 제2차 국공합작 협정안이 발표되었다. 1937년 7월 7일 밤, 베이핑의 서남쪽 노구교 근방에서 일본군이 훈련하던 중에 원인 불명의 총성 몇 발이 울린, 이른바 노구교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은 이것을 중국의 공격으로 간주했고, 이로써 중일전쟁이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그해 8월에 베이징을 점령하고, 10월에는 주요 대도시와 상공업 지대를 거의 장악하였으며 12월에는 ‘난징대학살’을 자행하였다. 국공합작에 의해 항일전을 수행하던 국민당과 공산당은 완전히 결별하여 국공합작은 물거품이 되었고, 중일전쟁은 1945년 8월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났다.
전후 처리를 둘러싸고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대립이 심화되자 8월 쟝제스와 마오쩌둥이 내전 회피, 정치 협상 회의 소집을 합의하였으나 1946년 7월 국공내전이 본격화되고 제3차 국내 혁명 전쟁이 시작되었다. 1947년부터는 수세에 있던 홍군이 공세에 나서면서 만주, 동북 등을 차지했으며, 1949년 4월에는 난징을 함락했고, 12월에 이르러 국민당은 타이완으로 패주하였다.
1949년 9월 21일 베이징에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개최되어 인민정부 조직법․국기․국가 등을 정하였으며, 중앙인민정부위원회의 주석에 마오쩌둥을 선출하였다. 마침내 1949년 10월 1일 텐안먼 단상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포함으로써 아시아에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