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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요람으로

윌리엄 맥도너 지음 | 에코리브르
요람에서 요람으로

윌리엄 맥도너․미하엘 브라운가르트 지음/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2003년 3월/364쪽/15,000원



서문 - 이 책은 나무로 만든 것이 아니다

흔히 사람들은 산업과 환경을 상충하는 개념으로 생각한다. 자원을 채취해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자연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환경보호주의자들은 비즈니스를 사악한 것으로 규정하며, 산업 발전 자체는(혹은 산업에서 요구되는 성장은) 불가피하게 파괴를 몰고 온다고 여긴다. 반면에, 기업가들은 환경보호주의가 생산과 성장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시스템이 동일한 세계에서 함께 번창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환경보호주의자들은 이렇게 외친다.

“제발 나쁜 짓 좀 그만하고,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히지 말며, 탐욕을 버려라. 삶이 얼마나 불편해질지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말고 그저 ‘소비’를 제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라. 적게 사고, 적게 쓰고, 차를 몰고 멀리 가지 말며, 아이는 적게 낳거나 아예 낳지 말아라. 오늘날의 주된 환경 문제 - 지구 온난화, 산림 벌채, 오염, 쓰레기 - 는 퇴폐적인 서구식 생활의 부산물이 아니던가. 지구를 살리는 데 힘을 보태려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하고,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하며, 어쩌면 아예 아무것도 없이 지내야 할지 모른다. 앞으로 모든 자원이 한계에 이를 것이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들이 농담처럼 들리는가? 자연과 비즈니스에 관련한 일을 해온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중 한 명(빌)은 건축가이고, 다른 한 명(미하엘)은 화학자이다. 우리는 이 세상이 제한적이거나 한정된 곳이 아니라 풍요로운 곳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자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으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차라리 인간의 창의성, 문화, 생산성을 충분히 이용하는 제품과 시스템을 설계하면 어떨까? 그것이 훨씬 지적이며 안전한 길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인간이라는 종족은 생태계에 비탄의 흔적이 아닌 환희의 흔적을 남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한번 생각해보자.



1. 디자인에 대한 의문

요람에서 무덤으로

오늘날 매립지에서 발견되는 것들을 떠올려보자. 오래된 가구․장식품․카펫․텔레비전․옷․신발․전화기․합성제품․플라스틱 포장지를 비롯해, 기저귀․종이․목재․음식 찌꺼기 같은 유기물질이 함께 뒹굴고 있다. 이런 제품들은 대부분 귀중한 재료로 만들었으며, 원료를 추출해 내거나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엄청난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 돈으로 환산하면 수십 억 달러에 이르는 유형 자산이다. 음식물이나 종이 같은 유기 분해성 물질도 실상은 다른 것에 못지 않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제대로 분해된다면 토양의 생물학적 영양 물질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 모든 것들이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매립지에 그저 수북이 쌓여 있다. 이는 곧 선형적이고 일방향적인 ‘요람에서 무덤으로(cradle to grave)' 모델에 따라 디자인한 시스템의 최종 생산물인 것이다.

자원을 채취해 만든 제품이 얼마동안 사용되다가 매립지나 소각로 등의 ’무덤‘에서 폐기 처리된다. 아마도 이 과정의 종착지가 익숙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소비자인 당신이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마지막 과정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당신은 소비자라 불리지만, 사실 제대로 ’소비한‘ 것은 거의 없다. 완벽하게 소비한 것이란 고작해야 음식이나 음료 몇 가지 정도일 것이다. 그 밖의 다른 물건들은 다 사용하고 나면, 멀리 던져버리게끔 디자인되어 있다. 그 ’멀리(away)'는 도대체 어디일까?

산업혁명기의 디자인은 ‘요람에서 무덤으로’ 모델을 밑바탕으로 삼았다. 제품을 디자인하면서 보편적 디자인, 정확히 말하자면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을 적용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량 생산되는 세제다. 비누 제조업체들은 지역에 따라 수질 기준이나 요구 사항이 각기 다른 미국이나 유럽 전역에 단 한 가지 세제만을 공급한다. 예를 들어, 미국 북서부처럼 연수가 흐르는 지역에서는 적은 양의 세제로도 빨래가 가능하지만, 남서부와 같은 경수 지역에서는 더 많은 세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경수든 연수든, 도시 지역이든 용수지역이든, 물고기들이 떼 지어 살고 있는 하천으로 흘러가는 물이든 하수 처리 식물로 향하는 물이든 상관없이 세제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동일한 방식으로 거품을 내어 때를 제거하고 세균을 효과적으로 박멸하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제조업자들이 하는 일을 보면 마치 생태 환경을 궤멸시키고자 더 많은 화학 부대를 투입하는 모습 같다.

기름으로 얼룩진 팬에 하루 종일 엉겨 붙어 있던 음식 찌꺼기를 벗겨내려면 세제가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세제가 강에 흘러 들어가 물고기의 미끄러운 표피나 식물의 연한 외막에 닿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자. 처리되거나 처리되지 않은 폐수와 땅 위를 흐르는 빗물이 모두 함께 호수, 강,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혼성 화학물․주방 세제․세척제․의약품․산업 폐기물 등이 뒤섞인 혼합물은 하수 종말 처리장까지 흘러들어 수중생물에게 해를 입히는데, 그 결과 돌연변이나 불임이라는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현대의 산업구조는 경제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이로 인해 여러 가지 귀중한 것들이 사라져버렸다. 그 중에는 인간과 생태계의 안전, 문화적․자연적 풍요로움, 심지어 기쁨과 환희 같은 중요한 가치들이 포함되어 있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산업 방식과 물질은 부지불식간에 자연을 고갈시키고 있다. 과거의 기업가․엔지니어․디자이너․발명가 등이 이러한 폐해를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이 아니듯이, 오늘날 이 패러다임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 이 세상에 해를 입히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말한 쓰레기․오염․조잡한 제품 등의 여러 부정적 영향들은 기업들이 비도덕적으로 행동하려고 일부러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다. 그저 낡고 어리석은 디자인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2. ‘덜 나쁜’ 것이 왜 문제인가

보다 덜 파괴적인 방향으로 산업을 이끌어가려는 시도는 산업혁명 초창기부터 있어왔다. 그 당시에도 너무나 많은 피해와 심각한 오염을 불러와 질병 발생률과 급격히 증가시킨 공장에 대한 규제를 가했다. 그 후 산업화의 폐해에 대한 전형적인 대책은 ‘덜 나쁜’ 방식을 찾는 것이었다. 여기에 줄이고, 피하고, 최소화하고, 억제하고, 제한하고, 저지한다 등의 친숙한 용어들이 등장했다. 이 용어들은 그간 오랫동안 환경에 관련된 제안이 나올 때마다 늘 중심에 자리했으며, 현재 산업계에서 채택하고 있는 환경 의제의 핵심을 이루었다. 최근 나온 책들 중에서 이와 관련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는 1998년 로버트 릴리엔펠드와 윌리엄 라트제가 공동 저술한 『덜 소비하라』를 들 수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들은 소비자가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줄이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사이클링이란 지나친 소비로 인한 숙취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한 아스피린”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욱 많이 재생하고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적게 생산하고 적게 버리는 것이다.”

지구정상회의가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 후 기업가들 사이에서 한 가지 중요한 전략이 등장했다. 산업 설비에 보다 깨끗하고 빠르고 조용한 엔진을 부착하는 것과 같은 ‘생태적 효율성(eco-efficiency)'이 등장한 것이다. 이를 통해 산업계는 급격한 구조 변화 없이, 그리고 이윤 추구에 대한 양보 없이도 실추된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생태적 효율성이란 원료를 채취해 제품을 만들어 사용하다 버리는 인간의 산업을 경제, 환경, 윤리적 문제를 두루 고려하는 산업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기업들은 변화를 위한 전략으로 생태적 효율성을 선택하게 되었다.

4R : 감소(Reduce), 재활용(Reuse), 재생(Recycle), 규제(Regulate)생산 또는 배출되는 독성 폐기물의 양이든, 사용하는 원자재 양이든, 혹은 제품 자체의 크기를 줄이든, 뭐든 상관없이 ‘감소’는 생태적 효율성을 지탱하는 중심 원리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감소로는 고갈이나 파괴를 막아내지 못한다. 고갈이나 파괴의 기간을 연장시키고 그 영역을 좁히는 것은 단지 속도를 늦추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폐기물 감소 전략은 소각이다. 사람들은 매립보다 소각이 안전한 방식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에너지 효율 주창자들도 “쓰레기를 에너지로 바꾼다.”며 칭송하고 있다. 종이나 플라스틱 같은 귀중한 자원들이 가연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소각로에서 태워진다. 이 물질들은 안전 연소에 대한 고려 없이 만들었기 때문에 연소 과정에서 다이옥신을 비롯한 다른 독성 물질을 배출하고, 이는 독일 함부르크의 예처럼 소각로 주변의 나무에 쌓인다. 중금속처럼 귀중한 물질이 자연계에 축적됨으로써 생물학적 악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산업에서 다시 활용될 기회를 영원히 상실하는 것이다.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시장이 등장한 후 결국 쓰레기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독성 물질, 오염 물질은 모습을 바꾸어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몇몇 개발도상국에서는 하수 찌꺼기를 가축 사료로 재활용하는데, 일반적인 하수 처리 시스템에서는 가축에게 해로운 화학 물질이 포함된 찌꺼기가 만들어진다. 궁극적으로 자연에 안전한 영양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지 않은 물질로 퇴비를 만드는 것 역시 문제가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재생은 사실 ‘다운사이클링’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재생되는 물질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탄산음료 병이나 물병을 제외한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재생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과 혼합되어 질 낮은 합성 물질이 되고 만다. 금속도 대부분 다운사이클 된다. 차량에 사용하는 양질의 철강, 즉 탄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는 고장력강(高張力鋼)은 차량 케이블의 구리․페인트․플라스틱 코팅 등의 다른 차량 부품들과 함께 녹여진다. 그 결과 재생 철강의 품질은 극도로 떨어진다.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품질이 좋은 철강을 이 혼합물에 첨가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재생한 물질로 새 차를 만들 수는 없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상실된 가치와 잃어버린 물질들만이 아니다. 다운사이클은 생물권의 오염을 증가시킨다. 재생된 철강 속에 함께 녹아든 페인트와 플라스틱에는 유해 화학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다운사이클 물질은 원래 물질보다 순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용 가치를 다시 끌어올리려면 더 많은 화학 물질을 첨가해야 한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을 녹여 혼합물을 만들 때는 플라스틱 내의 폴리머 강도와 탄력성을 높여주는 사슬고리가 짧아진다. 이 재생 플라스틱은 물질적 특성이 변했기 때문에(탄성․투명도․장력이 감소한다), 원하는 수준의 품질을 얻기 위해서는 화학 첨가제나 금속 첨가제가 들어가야 한다. 그 결과 다운사이클링 플라스틱에는 ‘순수한’ 플라스틱보다 더 많은 첨가제가 함유되어 있다.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규제 당국이 선호하는 것은 대규모로 적용할 수 있는, 소위 말하는 결과론적인 해결책이다. 즉, 공정이나 시스템에 있어 오염물이나 폐기물이 발생할 경우 시설을 갖추거나 제품의 성분비를 조정하는 등의 규제를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해결책, 즉 ‘공해 희석’은 시대에 뒤떨어진 별효과 없는 대응에 지나지 않는다. 오염을 야기한 근본적인 문제, 즉 디자인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근원적인 문제다.

규제는 문제의 근원인 디자인에 대한 재고보다는 천편일률적이고 결과론적인 해결책만을 요구한다. 생태적 효율성이란 외견상으로는 존경할 만하고 고귀해 보이는 개념이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확실한 성공 전략이라 할 수 없다. 문제의 근원에 접근하지 못하고 그저 문제를 야기한 똑같은 시스템 내에서 작용한다. 도덕적 추방과 처벌이라는 수단을 통해 환경이 파괴되는 속도를 조금 늦출 뿐이다. 생태적 효율성은 오래되고 파괴적인 시스템을 그저 조금 덜 파괴적으로 만들뿐이다. 그러나 그 미묘하고 장기적인 효과 때문에 오히려 생태계에 더 유해할 수 있다. 천천히, 신중히, 효율적으로 파괴된 환경이 다시 건강해지고 온전해지는 데는 급격한 파괴를 겪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3. 생태적 효과성

세 권의 책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첫 번째 책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크림색 종이 위에 검은색 잉크가 반짝거리며 인쇄되어 있다. 화려한 표지는 물론 튼튼한 마분지로 양장까지 했다. 여러 면에서 지능적으로 고안된 물건이고 수백 년 전 자신의 조상과 거의 유사한 모습이다. 이런 책은 매력적이고 기능적이며 내구성도 있지만, 영원히 보존할 수는 없다. 종이는 나무로 만든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읽는다면, 우리는 이미 자연의 다양성은 물론 토양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종이는 생분해성이지만 종이 위에 선명하게 인쇄된 잉크와 겉표지에 인쇄된 멋진 그림에는 탄소와 중금속이 함유되어 있다. 책표지는 진짜 종이가 아니라 나무 펄프, 폴리머, 코팅, 잉크, 중금속, 할로겐화 탄화수소 등 각종 재질의 혼합물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런 물질들은 제대로 썩지 않을뿐더러 소각하면 인간이 지금껏 만들어낸 가장 위험한 발암 물질인 다이옥신을 배출한다.

두 번째 책을 살펴보자. 일반적인 책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희미한 베이지색 종이는 얇고 표면이 거칠다. 단조롭지만 소박한, 환경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환경 친화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생태적 효율성을 고려한 총체적인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재활용 종이에 콩기름으로 인쇄한 이런 책을 디자인한 사람은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덜 소비하려 애쓰고 있다. 이런 책을 디자인한 사람은 어떤 종류의 종이를 사용할 지 오랫동안 고심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건 결점이 있게 마련이다. 우선 염소표백을 하지 않은 종이를 고려했을 것이다. 염소는 생태계와 인간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예를 들어 다이옥신을 배출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염소가 완전히 배제된 종이를 구하려면 초지를 구하는 수밖에 없다. 여러 종류의 종이들을 한데 섞어 재활용한 종이는 이미 표백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무 펄프로 만든 종이도 염소를 함유하고 있다. 나무 속에서 염소 성분을 함유한 소금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가. 강물을 오염시킬 것인가 아니면 숲을 파괴할 것인가. 결국 덜 위험한 것을 선택하기 위해 재활용도가 높은 종이를 골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재활용한 종이 섬유들은 다시 재활용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한다. 다시 한번, 조금 덜 나쁘게 하는 것이 실질적․미학적․환경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선택임이 드러났다.

이제 세 번째 책, 즉 미래의 책에 관해 생각해보자. 전자 책을 말하는 것인가?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책은 아직 초기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직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은 또 다른 형태의 책일 수도 있다. 나무로 만들지 않은 책을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책은 종이 대신 전혀 다른 패러다임에서 생산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동일한 품질을 유지하며 무한히 계속 재활용할 수 있는 폴리머(중합체)로 만든 것이다. 뒤늦은 대안으로서가 아니라 미래의 재활용을 예견하고 디자인한 것이다.

이런 ‘종이’는 나무를 잘라 쓰러뜨릴 필요도 없고 염소를 수로에 흘려보낼 필요도 없다. 독성이 없는 잉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간단하고 안전한 화학 과정이나 아주 뜨거운 물을 사용해 쉽게 씻어낼 수 있다. 어떤 방식이든 원래의 폴리머를 회복할 수 있으며 다시 사용할 수 있다. 페이지들은 하얗고 관능적일 정도로 매끄러우며, 재활용 종이와 달리 세월이 흘러도 누렇게 바래는 일이 없다. 책장을 넘기는 독자의 손에 잉크가 묻어나는 일도 없다. 한 번 사용한 다음 어떤 생을 보내게 될지 미리 예상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몇 세대를 거쳐도 끄덕 없을 정도로 내구력이 강하다. 또한 방수가 완벽해 해변은 물론 욕조에서도 읽을 수 있다. 절약의 상징인 것은 물론이고 그 특별한 촉감 때문이라도 당신은 이 책을 사서 들고 다니며 읽을 것이다. 책의 재료 때문에 미안해하기보다는 그 재질을 즐겁게 찬미할 수 있다. 책이 다시 책이 되고 그 책이 또다시 계속해서 책이 되는데, 이런 환생은 새로운 그림과 사상을 담는 빛나는 수단이 되기에 충분하다. 형태는 그저 기능을 따르는 것만이 아니다. 인쇄된 글의 형태로 정신을 끝없이 전파하는 것을 고려할 때 형태는 미개체의 진화 그 자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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