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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속임수

버나드 골드버그 지음 | 청년정신
뉴스 마피아"기자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미국을 반영하는 미디어배가 침몰하고 있다물론 나는 진보적 가치를 반대하지 않는다. 보수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대한 사회이고, 모든 종류의 의견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다만 나는 공정과 균형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1996년에 <자유포럼 & 로퍼 센터>는 미디어 워싱턴 지국장 및 의회 특파원 139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자유포럼>은 미디어에 관계된 이슈를 조사하는 독립된 협회이며, <로퍼센터>는 견고한 명성을 갖고 있는 여론조사 기관이다. 그 자료는 언론을 비난하는 우익 인사들의 작품이 결코 아니다. 이 두 연구기관이 밝혀낸 사실은 워싱턴의 저널리스트들이 전형적인 미국의 유권자들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고 민주당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것이다.



· 89%의 저널리스트들이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고 말했는데, 저널리스트가 아닌 일반 유권자들은 43%가 클린턴 후보에게 투표했다.

· 저널리스트의 7%가, 일반 유권자들은 37%가 부시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

· 저널리스트들의 2%가, 일반 유권자의 19%가 패롯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



<자유포럼>이 겨우 139명의 워싱턴 저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조사 결과가 우연이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이것이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얼마나 진보적인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조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1972년의 조사에 의하면 투표를 한 기자들 중에서 70%가 민주당의 맥거번 후보에게 투표를 했고, 25%는 공화당의 닉슨 후보에게 투표했다. 닉슨 후보는 메사추세스를 제외하고 모든 주의 선거인단을 가져갔다. 맥거번 후보는 우리가 기억하는 최근의 대통령 후보 중에서 가장 진보적이었다.



1985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약 3천 명의 저널리스트들과 동일한 수의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당시의 주요 이슈에 관하여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전국적인 조사를 실시했다.



· 일반인 23%, 저널리스트 55%가 진보적이라고 대답했다.

· 일반인 49%, 저널리스트 82%가 여성들의 낙태 권리를 지지했다.

· 일반인 74%, 저널리스트 25%가 공립학교에서 기도하는 것을 찬성했다.

· 일반인 56%, 저널리스트 81%가 소수계층에 대한 우대조치를 지지했다.

· 일반인 75%, 저널리스트 47%가 사형을 지지했다.



2000년 3월 실시된 조사도 저널리스트들과 보도의 대상이 되는 일반인의 성향이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플로리다 주의 「올랜도 센티널」의 편집인인 피터 브라운이 저널리스트 3,400명을 대상으로 미니 센서스를 실시한 바에 의하면, 언론인들은 그 지역 사회에 사는 다른 사람들보다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적고, 주택을 소유할 가능성이 적으며, 교회를 다닐 가능성도 적었다.



CBS 뉴스가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말하고는 있지만(CBS 뉴스는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수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채용해왔다)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자들의 할 일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소수계층 우대조치를 지지하고 있고, 우대조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네안데르탈인이나 편협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미디어 언론인들이 언론계의 소수계층 우대조치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보수적인 언론인들에 대한 몫을 분담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뉴스 제작실에 좀더 많은 보수주의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약간의 목표와 스케줄 조정이면 충분하다.



보수적인 언론인들을 위한 소수계층 우대조치는 무늬만 그럴듯한 다양성이 아니라, 내용적으로 진정한 다양성을 뉴스 제작실에 불어넣어줄 것이다. 우리는 새로 뉴스 제작실에 들어오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치 및 사상적인 문제들은 뉴스 제작실 안에 들여오지 못하도록 하겠지만, 그들이 언론계에 공급하게 될 새롭고 상이한 관점들에 대해서는 환영할 것이다.



물론 이상적인 세계라면, 억지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없다. 이상적인 세게라면 고용될 사람이 보수주의자인지, 진보주의자인지 묻지 않을 것이다. 이상적인 세계라면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 우리는 이상적인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HBO의 <소프라노 가족> 시리즈를 보고 있던 어느 날 저녁, 나는 '마피아의 똑똑한 놈들'과 공중파 TV의 뉴스장이들이 사람을 다루는 기술에 있어선 같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트럭을 납치하고 다리에서 사람을 떨어뜨리면서도, 마피아 세계의 '똑똑한 놈들'은 항상 명예와 충성 그리고 조직에 관하여 되풀이해서 말한다. 그들은 근본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들에만 신경 쓰며, 자신들을 위협하는 사람들만 해치우는 명예로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 똑똑한 놈들은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박살낸다.



뉴스 마피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마피아 세계의 '어른들(The Don)'은 사실상 CBS 뉴스의 댄 사람들(The Dan)과 같다. 그는 마피아 킬러처럼 정확한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다. 1996년 2월 13일은 내가 댄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러 나의 죽음을 자초한 날이었다. '댄 사람들'에게 나는 오메르타(Omerta)를 위반했던 것이다. 이것은 신성한 침묵의 계율에 관한 코드이다. 나는 공중파 TV 뉴스가 진보적인 편견을 가지고 보도한다는 칼럼을 미국 전역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했다. 게다가 그 신문은 진보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설을 싣는 신문이었다.



나는 CBS 저녁뉴스에서 크롱카이트와 댄을 위해 천 번 이상 뉴스를 보도했고, 댄이 주도하는 <48시간> 매거진 쇼에서 선임 특파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내가 「월스트리트저널」에 쓴 칼럼은 대기업이나 군대, 교회나 다른 대상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기업이나 군대 또는 교회의 잘못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은 공원을 산책하는 것만큼이나 안전하다. 나는 공원이 아닌 지뢰밭을 걸었던 것이다. 미디어 엘리트들에 대한 공격은 교황을 비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게다가 미디어 내부에서 미디어 엘리트들을 공격하는 것은 오메르타를 위반한, 도덕적인 죄이다.



1996년 2월 8일, 집에 찾아온 이웃, 켈리가 CBS 뉴스 댄의 <현장점검>을 보고 와서는 그런 뉴스가 어떻게 방송될 수 있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 날 나는 그 뉴스를 보기 위해 마이애미 지국으로 갔다. 그 뉴스 보도는 대통령 후보인 스티브 포브스와 그의 일률과세에 관한 선거공약을 다루고 있었는데, 그 공약은 포브스 후보의 선거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나는 뉴스 테이프를 보면 볼수록 그 뉴스가 한 대통령 후보와 선거공약을 다루기 위한 보도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거만한 TV 방송 저널리즘과 관련된 것이었으며, 잘난 체 하는 미디어 언론인들이 혐오하는 특정 사상과 인물들에 대한 경멸을 숨기려들지 않는 노골적인 보도였다.



앵커였던 엥버그는 귀에 거슬리는 조롱하는 말투로 객관성 없이 그 뉴스를 보도했고, 일률과세를 지지하는 전문가들을 고의로 인터뷰에서 배제시켰다. 결국 그의 뉴스는 포브스 후보의 일률과세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후원하는 선거운동 광고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CBS 뉴스는 그것을 어떻게 방송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저널리스트들의 시시하고 지저분한 비밀이 숨어 있다. 기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말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을 수 있다. 기자들은 객관적인 뉴스 보도를 가장해서 자신들의 개인적 견해를 뉴스에 슬그머니 포함시킨다.



뉴스 왜곡은 언제나 내게 괴로운 문제였지만, 조직 내의 어느 누구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고민한 문제는 진실한 뉴스 보도를 가로막는 진보적인 편향 보도였다. 나는 물론 '댄 사람들'이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저녁 뉴스와 기타 TV 프로의 편파 보도에 관해서 헤이워드 CBS 뉴스 사장과 몇몇 사람들에게 수년 동안에 걸쳐 여러 차례의 이야기를 했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앵커들에게 내가 직접 말할 수는 없었다. 앵커들은 일반적으로 비판을 잘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느 기자가 '댄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면 그들은 그 기자의 방송 출연을 막을 수도 있다. 그건 TV 기자로서는 치명적인 일이다.



기자들이 노숙자들의 숫자를 부풀려 결국 노숙자를 위한 로비 활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숙자 대부분이 알코올중독자, 마약중독자,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자들은 왜 노숙자들을 보통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일까? 기자들은 왜 공포의 전염병인 에이즈가 동성연애자가 아닌 보통 미국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파될 것인지를 과장하여 보도함으로써 에이즈에 대해 로비성 홍보를 하는가? 에이즈가 동성이 아닌 이성 간의 섹스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저녁 뉴스 시간에 NOW(진보적인 전국여성조직)와 같은 여권주의 조직에게는 많은 방송시간을 내주면서도 낙태를 반대하는 보수진영 여성들에게는 왜 좀처럼 방송시간을 주지 않는가?



공중파 방송의 언론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진보적이라기보다는 사물을 관찰하고 통찰하는 올바른 방식으로 분류한다. 한마디로 모든 선은 그들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중도파(격노한 중도파)이며, 다른 모든 사람들(조지 W. 부시 후보를 지지한 주(州)에 사는 사람들)은 극우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실명으로 「월스트리트저널」에 칼럼을 썼다. 일률과세를 싫어하는 것은 민주당원들과 공화당의 일부 대통령후보들만이 아니다. 성공한 많은 기자들도 마찬가지로 일률과세를 반대한다. 일률과세는 기자들을 짜증나게 만든다. 물론 그 짜증이 뉴스 보도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괜찮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는 진보적인 편향 보도를 상세하게 거론했을 뿐 아니라, 엥버그 기자의 뉴스 보도를 꼼꼼히 분석하여 그 보도가 얼마나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밝혔다. 그런 다음 공중파 뉴스들이 신문에서 모든 논제를 도둑질한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사실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가 일률과세를 반대하면 TV 뉴스는 신문이 주장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벗어나려고 애를 쓰지도 않는다.1995년에 앨라배마 주에서는 죄인들의 발을 쇠사슬로 묶는 옛 제도가 부활되었다. 이것은 대단한 이야깃거리였다. 댄 래더와 함께 CBS 저녁뉴스를 만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민감하고 진보적인) 뉴욕의 뉴스제작자들이 흥분 상태에 빠진 것은 당연했다. CBS 뉴스는 마이애미에 있던 래리 도일을 앨라배마 주로 즉시 파견하여 이 사건을 취재하게 했다. 도일은 해군 대령 출신으로, 강단 있고 원칙적인 사내였다. 또한 CBS 뉴스를 포함한 TV 뉴스 방송계에서,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뉴스에 있어서는 가장 우수한 제작자 중 하나였다.



도일과 다이애나 곤잘레스 기자는 앨라배마로 날아갔다. 교도소의 농장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도일과 곤잘레스를 기쁘게 받아들였으며 쇠사슬에 묶인 죄수들을 촬영하는 것도 허용했다. 죄수들은 CBS 뉴스 카메라를 정면으로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것 때문에 당신들을 증오한다." "나는 제기랄, 개가 아니고 인간이다."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다니, 나는 노예와 마찬가지다." 도일과 곤잘레스는 제임스 주지사와도 인터뷰를 했다. 그는 앨라배마 주의 전역에 걸쳐, 죄수들의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는 수형제도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제작자인 도일은 곤잘레스 기자의 원고에 쇠사슬로 묶인 죄수의 사진을 넣었고, 보도내용을 비디오로 편집하는 과정을 감독한 다음, 완성된 비디오를 위성을 통해 뉴욕으로 보냈다. 이 비디오는 CBS 저녁뉴스로 방송되었다. 도일은 그것으로 일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선임 제작자 앨 버맨은 이 보도가 죄수들을 공정하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도일에게 물었다. 도일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버맨은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는 더 조심해야 한다. 거기에 있는 죄수들이 모두 흑인이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곤란하다." 도일은 날카롭게 날선 목소리로 버맨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앨라배마 주에서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찍었다."



버맨이 도일에게 다음에는 더 주의하라고 말한 것은 다음에는 더 많은 백인 죄수들을 뉴스 보도에 포함시키라는 말이다. 하지만 도일이 그곳에서 본 백인 죄수는 한 명뿐이었다! 그러니 그가 어떻게 촬영을 했어야 한단 말인가? 거긴 (흑인들이 많이 사는) 미국의 앨라배마 주이지, 스위스는 아니지 않은가!



도일이 인종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앨라배마 주 당국은 불공정하게 흑인들만을 골라 체포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질문하거나, 또는 "앨라배마 주 당국은 단지 흑인이란 이유 때문에, 흑인 죄수들의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기 위해, 흑인 죄수들에게 '문제 있는 죄수들'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은 아닌가? 그 때문에 쇠사슬을 찬 흑인 대 백인 죄수의 비율이 10대 1인가?"라고 질문했을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예."였다면, 그날 뉴스는 대단한 이야깃거리가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실제로 좋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보도에 대해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힘들다.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 작업이다. 뉴욕에 있는 CBS 저녁뉴스 제작자들이 도일 기자를 앨라배마로 보낸 이유는, 좋은 장면이 나오는 보도를 가급적 빨리 만들기 위해서였다. 즉, 그들이 도일을 그곳에 보낸 건 '쇠사슬을 끌고 다니는 죄수들'을 찍기 위해서다. TV 뉴스 시간에 직접 방송하기 위하여 도일은 기자로서의 통상적인 의구심만 발휘하면 되었다. 즉, 주지사는 죄수의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는 수형제도의 장점을, 반대자들은 단점을 말하는 것을 그가 촬영하는 것이다.



CBS 뉴스제작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단지 이미지뿐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흑인 죄수들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라! 그렇게 보이면 CBS 뉴스는 무감각하고 동정심이 부족해 보일 것이다. 이미지를 뒤틀어라. CBS 뉴스는 차라리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종에 대한 민감성을 보여줬어야 했다. 만약, 인종문제에 민감하고 무언가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CBS 뉴스는 (이미지를 조작하기보다) TV 등장 인물들을 리스트로 만드는 롤로덱스(Rolodex)를 확장해서 흑인들의 이름을 더 많이 포함시켰어야 했다. 즉, 뉴스에서 더 많은 흑인 환경론자들, 더 많은 흑인 과학자들, 더 많은 흑인 사업가들과 흑인 여성들을 등장시켜야 했다. 흑인들이 뉴스에 등장해서 인종문제 이외의 다른 문제들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스포츠를 제외하고) 흑인들이 TV에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흑인들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TV에 등장할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TV 화면에서 보는 흑인과 백인 범죄자가 수적으로 균형이 잡히도록 인종을 할당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솔직할 것이다.



1995년 9월, 쇠사슬을 끌고 다니는 죄수들에 관한 사건 보도가 있은 지 몇 달 후, 도일 기자는 버진 아일랜드의 세인트 토머스에서 '메릴린 허리케인'을 취재했다. 그 섬에서의 문제는 절도였다. 그때 마침 도일 기자와 카메라맨들은 경찰이 도둑들을 체포하여 감옥으로 끌고 가고 있는 순간을 목격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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