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임수
버나드 골드버그 지음 | 청년정신
뉴스 마피아HBO의 <소프라노 가족> 시리즈를 보고 있던 어느 날 저녁, 나는 '마피아의 똑똑한 놈들'과 공중파 TV의 뉴스장이들이 사람을 다루는 기술에 있어선 같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트럭을 납치하고 다리에서 사람을 떨어뜨리면서도, 마피아 세계의 '똑똑한 놈들'은 항상 명예와 충성 그리고 조직에 관하여 되풀이해서 말한다. 그들은 근본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들에만 신경 쓰며, 자신들을 위협하는 사람들만 해치우는 명예로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 똑똑한 놈들은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박살낸다.
뉴스 마피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마피아 세계의 '어른들(The Don)'은 사실상 CBS 뉴스의 댄 사람들(The Dan)과 같다. 그는 마피아 킬러처럼 정확한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다. 1996년 2월 13일은 내가 댄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러 나의 죽음을 자초한 날이었다. '댄 사람들'에게 나는 오메르타(Omerta)를 위반했던 것이다. 이것은 신성한 침묵의 계율에 관한 코드이다. 나는 공중파 TV 뉴스가 진보적인 편견을 가지고 보도한다는 칼럼을 미국 전역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했다. 게다가 그 신문은 진보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설을 싣는 신문이었다.
나는 CBS 저녁뉴스에서 크롱카이트와 댄을 위해 천 번 이상 뉴스를 보도했고, 댄이 주도하는 <48시간> 매거진 쇼에서 선임 특파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내가 「월스트리트저널」에 쓴 칼럼은 대기업이나 군대, 교회나 다른 대상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기업이나 군대 또는 교회의 잘못에 관해 글을 쓰는 것은 공원을 산책하는 것만큼이나 안전하다. 나는 공원이 아닌 지뢰밭을 걸었던 것이다. 미디어 엘리트들에 대한 공격은 교황을 비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게다가 미디어 내부에서 미디어 엘리트들을 공격하는 것은 오메르타를 위반한, 도덕적인 죄이다.
1996년 2월 8일, 집에 찾아온 이웃, 켈리가 CBS 뉴스 댄의 <현장점검>을 보고 와서는 그런 뉴스가 어떻게 방송될 수 있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 날 나는 그 뉴스를 보기 위해 마이애미 지국으로 갔다. 그 뉴스 보도는 대통령 후보인 스티브 포브스와 그의 일률과세에 관한 선거공약을 다루고 있었는데, 그 공약은 포브스 후보의 선거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나는 뉴스 테이프를 보면 볼수록 그 뉴스가 한 대통령 후보와 선거공약을 다루기 위한 보도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거만한 TV 방송 저널리즘과 관련된 것이었으며, 잘난 체 하는 미디어 언론인들이 혐오하는 특정 사상과 인물들에 대한 경멸을 숨기려들지 않는 노골적인 보도였다.
앵커였던 엥버그는 귀에 거슬리는 조롱하는 말투로 객관성 없이 그 뉴스를 보도했고, 일률과세를 지지하는 전문가들을 고의로 인터뷰에서 배제시켰다. 결국 그의 뉴스는 포브스 후보의 일률과세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후원하는 선거운동 광고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CBS 뉴스는 그것을 어떻게 방송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저널리스트들의 시시하고 지저분한 비밀이 숨어 있다. 기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말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을 수 있다. 기자들은 객관적인 뉴스 보도를 가장해서 자신들의 개인적 견해를 뉴스에 슬그머니 포함시킨다.
뉴스 왜곡은 언제나 내게 괴로운 문제였지만, 조직 내의 어느 누구도 그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고민한 문제는 진실한 뉴스 보도를 가로막는 진보적인 편향 보도였다. 나는 물론 '댄 사람들'이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저녁 뉴스와 기타 TV 프로의 편파 보도에 관해서 헤이워드 CBS 뉴스 사장과 몇몇 사람들에게 수년 동안에 걸쳐 여러 차례의 이야기를 했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앵커들에게 내가 직접 말할 수는 없었다. 앵커들은 일반적으로 비판을 잘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느 기자가 '댄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면 그들은 그 기자의 방송 출연을 막을 수도 있다. 그건 TV 기자로서는 치명적인 일이다.
기자들이 노숙자들의 숫자를 부풀려 결국 노숙자를 위한 로비 활동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숙자 대부분이 알코올중독자, 마약중독자,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자들은 왜 노숙자들을 보통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일까? 기자들은 왜 공포의 전염병인 에이즈가 동성연애자가 아닌 보통 미국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파될 것인지를 과장하여 보도함으로써 에이즈에 대해 로비성 홍보를 하는가? 에이즈가 동성이 아닌 이성 간의 섹스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저녁 뉴스 시간에 NOW(진보적인 전국여성조직)와 같은 여권주의 조직에게는 많은 방송시간을 내주면서도 낙태를 반대하는 보수진영 여성들에게는 왜 좀처럼 방송시간을 주지 않는가?
공중파 방송의 언론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진보적이라기보다는 사물을 관찰하고 통찰하는 올바른 방식으로 분류한다. 한마디로 모든 선은 그들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중도파(격노한 중도파)이며, 다른 모든 사람들(조지 W. 부시 후보를 지지한 주(州)에 사는 사람들)은 극우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실명으로 「월스트리트저널」에 칼럼을 썼다. 일률과세를 싫어하는 것은 민주당원들과 공화당의 일부 대통령후보들만이 아니다. 성공한 많은 기자들도 마찬가지로 일률과세를 반대한다. 일률과세는 기자들을 짜증나게 만든다. 물론 그 짜증이 뉴스 보도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괜찮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는 진보적인 편향 보도를 상세하게 거론했을 뿐 아니라, 엥버그 기자의 뉴스 보도를 꼼꼼히 분석하여 그 보도가 얼마나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밝혔다. 그런 다음 공중파 뉴스들이 신문에서 모든 논제를 도둑질한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사실 「뉴욕타임즈」나 「워싱턴포스트」가 일률과세를 반대하면 TV 뉴스는 신문이 주장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벗어나려고 애를 쓰지도 않는다.
"기자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1995년에 앨라배마 주에서는 죄인들의 발을 쇠사슬로 묶는 옛 제도가 부활되었다. 이것은 대단한 이야깃거리였다. 댄 래더와 함께 CBS 저녁뉴스를 만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민감하고 진보적인) 뉴욕의 뉴스제작자들이 흥분 상태에 빠진 것은 당연했다. CBS 뉴스는 마이애미에 있던 래리 도일을 앨라배마 주로 즉시 파견하여 이 사건을 취재하게 했다. 도일은 해군 대령 출신으로, 강단 있고 원칙적인 사내였다. 또한 CBS 뉴스를 포함한 TV 뉴스 방송계에서,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뉴스에 있어서는 가장 우수한 제작자 중 하나였다.
도일과 다이애나 곤잘레스 기자는 앨라배마로 날아갔다. 교도소의 농장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도일과 곤잘레스를 기쁘게 받아들였으며 쇠사슬에 묶인 죄수들을 촬영하는 것도 허용했다. 죄수들은 CBS 뉴스 카메라를 정면으로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것 때문에 당신들을 증오한다." "나는 제기랄, 개가 아니고 인간이다."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다니, 나는 노예와 마찬가지다." 도일과 곤잘레스는 제임스 주지사와도 인터뷰를 했다. 그는 앨라배마 주의 전역에 걸쳐, 죄수들의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는 수형제도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제작자인 도일은 곤잘레스 기자의 원고에 쇠사슬로 묶인 죄수의 사진을 넣었고, 보도내용을 비디오로 편집하는 과정을 감독한 다음, 완성된 비디오를 위성을 통해 뉴욕으로 보냈다. 이 비디오는 CBS 저녁뉴스로 방송되었다. 도일은 그것으로 일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선임 제작자 앨 버맨은 이 보도가 죄수들을 공정하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도일에게 물었다. 도일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버맨은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는 더 조심해야 한다. 거기에 있는 죄수들이 모두 흑인이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곤란하다." 도일은 날카롭게 날선 목소리로 버맨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앨라배마 주에서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찍었다."
버맨이 도일에게 다음에는 더 주의하라고 말한 것은 다음에는 더 많은 백인 죄수들을 뉴스 보도에 포함시키라는 말이다. 하지만 도일이 그곳에서 본 백인 죄수는 한 명뿐이었다! 그러니 그가 어떻게 촬영을 했어야 한단 말인가? 거긴 (흑인들이 많이 사는) 미국의 앨라배마 주이지, 스위스는 아니지 않은가!
도일이 인종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앨라배마 주 당국은 불공정하게 흑인들만을 골라 체포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질문하거나, 또는 "앨라배마 주 당국은 단지 흑인이란 이유 때문에, 흑인 죄수들의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기 위해, 흑인 죄수들에게 '문제 있는 죄수들'이란 딱지를 붙이는 것은 아닌가? 그 때문에 쇠사슬을 찬 흑인 대 백인 죄수의 비율이 10대 1인가?"라고 질문했을 수도 있다.
만약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예."였다면, 그날 뉴스는 대단한 이야깃거리가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실제로 좋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보도에 대해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힘들다.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 작업이다. 뉴욕에 있는 CBS 저녁뉴스 제작자들이 도일 기자를 앨라배마로 보낸 이유는, 좋은 장면이 나오는 보도를 가급적 빨리 만들기 위해서였다. 즉, 그들이 도일을 그곳에 보낸 건 '쇠사슬을 끌고 다니는 죄수들'을 찍기 위해서다. TV 뉴스 시간에 직접 방송하기 위하여 도일은 기자로서의 통상적인 의구심만 발휘하면 되었다. 즉, 주지사는 죄수의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는 수형제도의 장점을, 반대자들은 단점을 말하는 것을 그가 촬영하는 것이다.
CBS 뉴스제작자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단지 이미지뿐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흑인 죄수들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라! 그렇게 보이면 CBS 뉴스는 무감각하고 동정심이 부족해 보일 것이다. 이미지를 뒤틀어라. CBS 뉴스는 차라리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종에 대한 민감성을 보여줬어야 했다. 만약, 인종문제에 민감하고 무언가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CBS 뉴스는 (이미지를 조작하기보다) TV 등장 인물들을 리스트로 만드는 롤로덱스(Rolodex)를 확장해서 흑인들의 이름을 더 많이 포함시켰어야 했다. 즉, 뉴스에서 더 많은 흑인 환경론자들, 더 많은 흑인 과학자들, 더 많은 흑인 사업가들과 흑인 여성들을 등장시켜야 했다. 흑인들이 뉴스에 등장해서 인종문제 이외의 다른 문제들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스포츠를 제외하고) 흑인들이 TV에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흑인들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TV에 등장할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TV 화면에서 보는 흑인과 백인 범죄자가 수적으로 균형이 잡히도록 인종을 할당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솔직할 것이다.
1995년 9월, 쇠사슬을 끌고 다니는 죄수들에 관한 사건 보도가 있은 지 몇 달 후, 도일 기자는 버진 아일랜드의 세인트 토머스에서 '메릴린 허리케인'을 취재했다. 그 섬에서의 문제는 절도였다. 그때 마침 도일 기자와 카메라맨들은 경찰이 도둑들을 체포하여 감옥으로 끌고 가고 있는 순간을 목격했다. 뉴욕 CBS 뉴스제작자들은 도일 기자가 보낸 뉴스 보도가 위성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한 흑인 여자 제작자, 레일레나 필즈는 불만을 제기했다. 도일 기자의 뉴스 보도에 등장하는 도둑들은 모두 자기와 같은 흑인이라는 것이다. 백인 제작자들은 흑인 동료의 감정에 매우 민감하다. 그것은 백인들이 흑인들과는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인종차별주의자로 보이게 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CBS 뉴스 제작실은 도일 기자의 보도에 대해서 협의에 들어갔다. 도일은 뉴욕의 제작자들과의 통화에서 "당신 말이 맞다. 도둑들은 모두 흑인이다. 그리고 도둑을 체포하는 경찰들도 모두 흑인이다. 이 섬 사람의 95%가 흑인이다."라고 말했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난 뒤에 발생하는 절도가 비록 '사소하고 국지적'이라고 해도, 그것을 흑인들이 저지른다고 해도, 뉴스는 뉴스다. 나는 뉴스를 제작할 때, 인종주의자들의 관점에 바탕을 두고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CBS 뉴스는 허리케인에 관한 뉴스를 보도했다. 하지만 그 뉴스는 애초 도일이 제작했던 뉴스는 아니었다. 인종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동료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레일레나 필즈의 주장대로 흑인 절도범에 관한 장면은 삭제된 상태로 보도되었다. 저널리즘이란 관점에서 볼 때, 이것은 의문스러운 짓이었다. 그러나 저널리즘만이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다. 흑인 동료들을 만족시키고, 미국이 3∼4백 년 동안 저지른 인종차별에 대한 죄를 회개하는 문제도 고려되었다. 도일 기자는 내게 "기자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분명히 그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현장에 있는 기자와 제작자들은 뉴욕에서 민감한 문제를 감시하는 사람들로부터 몇 번이고 동일한 음악과 춤을 받아서 보조를 맞추기 때문이다.
(인종문제에) 민감한 것은 나쁘지 않고, 사람들이 (TV에서) 어떻게 묘사되었는지에 관심을 갖는 것이 사소한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인종문제에 대한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은, 평범하고도 고풍스런 친절함보다는 더 복잡하고 깊은 무엇에서 유래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에서 흑인이 아니라 백인이기 때문에 갖는 감사함과 더불어 그 죄의식 때문에, 많은 미디어 엘리트들이 TV 뉴스에 등장하는 쇠사슬을 끌고 다니는 흑인 죄수들의 숫자와 같은 문제에 집착한다.
미국의, 그리고 미디어의 인종적인 죄의식의 역사에서 해방되는 것은 결코 싼값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디어 엘리트들은 자녀들이 아이비리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한, 소수계층 우대조치를 찬성한다. 자신들의 일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한 인종적 우대조치에 따라 일자리를 나눠주는 것도 좋아한다. 그것은 대단한 거래다. 그러나 언제나 댓가는 다른 사람들이 지불한다. 아시아계 미국인 자녀들이 희생을 치르거나, 또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다른 백인 학생들이 대가를 치른다. 한편으로 진보적인 백인 미디어 엘리트들은 꽤 품위가 있다는 칭찬을 얻고 흑인들의 구세주가 되는 것이다.
스토클리 카마이클은 "진보주의 엘리트들이 원하는 것은 지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회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디어 엘리트들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진보주의 엘리트들은 결코 너그러운 사람들이 아니다. 실제로는 대단히 이기적이다. 그들은 억압받은 미국 흑인들의 고통을 완화시켜주기 위해서 TV 화면의 이미지를 왜곡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고통을 완화시키기기 위해서, 스스로 죄의식을 덜기 위해서,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를 통해 자신들이 얼마나 선량하고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한다.
진짜든 가짜든 간에 미국에 희생자가 남아 있는 한,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죄의식의 지배를 받는 기자와 편집자들이 존재하는 한, Me Decade(자기 편향적인 풍조가 지배했던 1970년대)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을 반영하는 미디어나는 뉴스 마피아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도 내가 CBS 뉴스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댄은 나를 저녁뉴스에 출연시키지 않았고, 이것은 TV 기자들에겐 죽음과 같은 일이다. 나의 동료들은 나를 "완전히 죽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 바보 또는 이 모든 것을 합한 것"으로 치부했다. 그래도 그것은 내게 괜찮은 뉴스였다. 정말로 나쁜 뉴스는 반기독교인들, 러시 림버(우익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및 다른 보수 엘리트들이 나를 방어해주기 위해 내 편을 들었다는 점이다. 나는 보수주의자들의 귀염둥이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신문사의 진보주의자들은, CBS 뉴스 경영진들이 나의 방송 출연을 금지시키고 내부 고발자인 나를 해고시켜야 한다고 시사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내부 고발자들을 전국적인 영웅으로 만들어왔었는데, 나는 미디어에 의해서 전국적인 영웅이 되지 못한 첫 번째 내부 고발자가 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