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략 1, 2, 3
차이위치우 지음 | 들녘
모략 1, 2, 3
차이위치우 외 34인 지음/김영수 편역
들녘/2003년 6월/502, 416, 400쪽/13,000원, 12,000원, 12,000원
1. 정치 모략
고요함으로 소란함을 응대한다 - 이정대화
『손자병법』 「군쟁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기 쪽의 자세를 냉정하고 침착하게 가다듬고 나서 적의 들뜬 약점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얘기가 당나라 태종과, 태종을 도와 중국을 재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정이 주고받은 정책 전반에 관한 문답을 기록한 책인 『당태종이위공문대』에도 보인다.
가까움으로 먼 것을 응대하고, 휴식으로 피로를 응대하며, 배부름으로 굶주림을 응대한다. 그것이 그 개요이며 용병에 능한 자는 이 세 가지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확대할 수 있다. 끌어들이는 자세로 오는 적을 응대하고, 냉정한 자세로 적이 초조해지기를 기다리며….
여기서 말하는 '이정대조'와 '이정대화'는 같은 의미를 지닌 모략이다. 차분히 안정된 자세로 기회를 잡아 들떠 있고 불안한 적을 공격하거나, 냉정한 태도로 불안정한 국면을 휘어잡는다. 617년 수나라 양제 대업 13년, 이세민은 곽읍(지금의 산서성 곽현)으로 진격했다. 2만 명의 정예병으로 곽읍을 지키고 있던 호아장 송노생은 성문을 굳게 닫은 채 싸우려 들지 않았다. 이세민은 형 건성과 함께 수십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곽읍성 밑에 와서 채찍을 휘두르며 성을 포위할 듯한 자세를 취하는 한편 큰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그러자 송노생은 버럭 화를 내며 2만 명을 거느리고 성을 나왔다. 결국 그는 화를 내고 경거망동하는 바람에 대패하고 말았다. '이정대조'를 활용한 전투의 한 예다.
383년, 전진의 왕 부견은 90만 대군으로 동진을 공격했다. 당시 동진의 군대는 15만을 넘지 않았다. 전세는 위급하게 돌아갔고 전국이 동요했다. 그러나 조정의 일을 주도하던 재상 사안은 태연스럽게 평소와 다름없이 친구 사현을 찾아가 바둑을 두었다. 그런 다음 혼자 나가 밤늦게 돌아왔다. 이때 그는 전진 군대의 위 아래가 마음이 맞지 않고 전투에 염증을 느끼고 있음을 간파했다. 그는 침착하고 과감하게 군대를 움직여 전진군을 크게 무찔렀다.
당황하고 서두르면 실수하는 법이다. 군주의 마음이 흔들리면 신하의 마음이 흔들리고, 장수의 마음이 들뜨면 사병들의 마음도 들뜨게 마련이다. 자고로 모략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침착하게 중심을 유지하고 어떤 일이 닥쳐도 놀라지 않는 것을 수양의 중요한 원칙으로 여겼다.
2. 통치 모략
백성을 보호할 줄 알아야 왕 노릇을 할 수 있다 - 보민이왕(保民而王)
『전국책』 「조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나라 왕 왕건이 조나라로 사자를 보내 위후에게 문안편지를 올렸다. 그러자 위후는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먼저 물었다. "금년에 흉년은 들지 않았는가? 백성들은 모두 별탈 없는가? 왕도 역시 안녕하신가?" 사신은 약간 불쾌해하며 대꾸했다. "제가 우리 왕의 사명을 띠고 왕후께 왔는데 우리 왕의 안부는 묻지 않으시고 먼저 곡식과 백성을 물으시니, 어찌 천한 것을 먼저 물으시고 귀한 것은 미루십니까?" 위후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만약 흉년이 든다면 어찌 백성이 있겠으며, 또 백성이 없다면 어떻게 왕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럴진대 본(本)을 버리고 말(末)을 취하는 물음이 어디 말이나 되는가?"
조나라 위후는 백성이 없으면 군주도 없으므로 백성이 근본이라는 사상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이는 군주를 귀하게 여기고 민을 천하게 여기는 사상과는 상반된다. 위후는 또 왕이 "백성을 기르고 그들을 편히 쉬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민생과 민심에 유익한 현자를 중용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하지 않고서 "어떻게 제 나라 임금으로 떳떳하게 행세를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맹자는 '백성이 중하고 군주는 오히려 가볍다'는 인정(仁政) 사상을 제기하면서 인화(人和)야 말로 승리를 얻는 근본이라 했다.
역사를 훑어보면 '보민이왕'이야말로 통치술 중에서도 귀한 보배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민심을 얻는 자 천하를 얻을 것이요, 민심을 잃는 자 천하를 잃을 것이다."라는 말은 역사상 현명한 제왕과 장수, 그리고 재상들이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인 것이다.
3. 외교 모략
싸우지 않고 굴복시킨다 - 부전이굴인(不戰而屈人)
『손자병법』 「모공편」에 보면 대단히 의미심장한 대목이 나온다.
백 번 싸워 이기는 것만이 최상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선이다.
여기서 '싸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무장을 포기하고 전쟁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적과 직접 맞붙어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전쟁에 대해 손자가 갈망하고 있던 가장 이상적인 경지다. 부전이굴인 사상은 바로 국가와 군대를 안전하게 보전하는 상책으로 통치자와 군사전문가들이 중시해왔다.
기원전 630년, 진(秦)․진(晉) 연합군은 정(鄭)나라를 포위했다. 정나라는 두 나라 대군에 의해 국경을 압박당하는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정나라 대부 촉지무는 진․진 두 나라가 이익을 놓고 근본적인 모순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교묘하게 파악하여, 진(秦)나라의 앞날과 이익에 관심이 있는 척 꾸며 진(秦) 목공에게 이해관계를 일깨워줌으로써 두 나라의 동맹을 이간질했다. 그 결과 진(晉) 문공이 주도적으로 계획한 정나라 정벌은 물거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나라는 진(秦)나라와 동맹관계를 맺고 정나라 안에 진(秦)나라의 대장군 세 명을 체류시켜 혹 있을지도 모를 진(晉)의 공격에 대비했다. 이로써 정나라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기원전 627년, 정나라를 습격한 진(秦)나라 군대는 중도에서 정나라 상인 현고를 만난다. 현고는 자기 군주의 명을 받고 군대를 위문하러 왔다며 네 장의 쇠가죽과 열두 마리의 살진 소를 진나라 군에 주면서 정나라는 일찌감치 충분한 전쟁 준비를 갖추고 있음을 은근히 암시했다. 그리하여 현고는 정나라가 위기상황에서 벗어나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이상은 모두 외교수단으로 '부전이굴인'의 목적을 달성한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부전이굴인은 결코 무력을 무시하지 않는다. 실력도 없이 그저 입만 놀려서 전쟁과 혼란을 막으려 하는 것은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끝까지 전란을 피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 모략을 운용하려면 전승(全勝)의 사상을 갖춘 다음, 강력한 군사 실력을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한다.
4. 언변 모략
마음을 공략하여 복종시킨다 - 공심복적(功心服敵)
'공심복적'은 상대방의 심리를 응용하는 대책이다. 당신이 만약 자신의 말솜씨만 믿고 논쟁의 초반부터 상대의 의견을 압도하여 상대로 하여금 겉으로는 굴복하지만 마음으로는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적 상태를 만들어버리면, 인식의 통일은 대단히 어려워진다. 그래서 맹자는 변론 과정에서 상대의 심리를 어루만지는 것을 대단히 중시했다. 맹자는 상대방의 말문이나 대화 자체를 막아버리는 방법이 아닌 상호 의사를 자연스럽게 소통시키는 방법을 썼다.
맹자가 재물, 여자, 오락, 전쟁을 좋아하는 제(薺)나라 선공에게 그저 무턱대고 인의 정치를 펼칠 것을 주장했다면 쌍방의 관점은 어긋나 평행선을 달렸을 것이다. 맹자는 이러한 선공의 결점을 모두 인의의 정치를 시행해 천하의 왕 노릇을 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말해주었다.
제나라 선공의 측근 신하인 장포가 맹자를 만났다. "제가 왕을 뵈었사온데, 왕께서는 좋아하시는 음악을 가지고 말씀을 하셨으나 저는 대답할 길이 없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맹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왕께서 음악을 좋아한다면 제나라는 잘 되어나갈 것입니다." 얼마 뒤 맹자는 제나라 선왕을 만나 물었다. "장포에게 음악을 가지고 말씀하셨다는데 그렇습니까?" 왕은 얼굴색이 달라지며 다음처럼 답변했다. "과인이 선왕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었소. 그저 세속적인 음악을 좋아할 뿐이오." "왕께서 음악을 좋아하신다면 제나라는 잘 되어나갈 것입니다. 지금 음악이나 옛날의 음악은 같은 걸요." "그래요? 그에 관한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을까요?" "혼자 음악을 들으며 즐기는 것과 몇몇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듣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 "그야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이 낫겠지요." "그럼, 몇몇 사람과 음악을 듣는 것과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듣는 것은 어느 쪽이 낫겠습니까?" "여러 사람과 함께 듣는 것이 좋겠지요."
"그럼 이제 음악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왕께서 여기서 음악을 감상하시는데 백성들이 종과 북소리 및 관악기 소리 등을 듣고는 모두 골치를 앓고 인상을 찡그리며 서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임금은 음악을 좋아하면서 어째서 우리들을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것일까? 부자 간에 서로 만나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식은 헤어져 흩어져버렸으니.' 또 왕께서 사냥을 하시는데 백성들이 수레와 말소리를 듣고 또 호화로운 깃발을 보고는 다들 골치 아파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이렇게들 말합니다. '우리 임금은 사냥을 좋아하면서 어째서 우리는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것일까? 부자 간에 서로 만나지 못하고 형제와 처자식은 흩어져버렸으니.' 이렇게 말하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과 함께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음악을 듣고 다들 즐거워하며 '우리 임금께서 제발 편찮으시지 말아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음악을 즐기신단 말인가?'하고 말하고, 사냥에 대해서도 '우리 임금께서 제발 편찮으시지 말아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사냥을 나가신단 말인가?'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백성들과 함께 즐기기 때문입니다. 왕께서 백성들과 함께 즐기신다면 천하의 왕 노릇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맹자는 교묘하게 음악으로부터 정치를 끌어내어 제나라 선왕이 백성과 함께 즐겁게 지내도록 함으로써 나라를 잘 다스리게 하려는 목적을 달성했던 것이다. 언변은 진리를 선전하기 위해 상대방의 활동, 이성, 의식에 정확한 영향력을 행사해 최후에는 '그 마음을 빼앗아'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상대방이 마음으로까지 설복하지 않으면 이상적인 전과를 올렸다고 할 수 없다.
5. 간사 모략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꾸민다 - 무중생유(無中生有)
'무중생유'라는 말은 『노자』 제40장의 "천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나며,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는 대목에서 나온다. 뒷날 사람들은 '무중생유'에 포함된 뜻을 변화시켜가며 사용해 왔다. 무중생유는 정치모략의 하나로서 흔히 음모가들이 널리 활용해 왔고 지금도 활용하고 있다. 송나라 때의 위대한 장군 악비가 이른바 '날조된 죄명'이란 뜻의 막수유(莫須有)로 처형된 것이나, 청나라에 대항했던 영웅 원숭환이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여러 해 뒤에야 비로소 누명을 벗은 것은 음모가들이 사용한 무중생유의 음모 때문에 빚어진 비극이었다.
『36계』에서는 무중생유를 전술의 하나로 취급하고 있다. 거짓이나 가짜 또는 허점을 가지고 상대에게 착각을 일으키게 하거나 속이는 것이다. "무중생유는 거짓이나 허점을 진짜로 변화시켜 적을 패배시키는 것이다."
『자치통감』 「당기(唐紀)」에도 이 전술을 활용한 사실이 나온다. 때는 756년, 안사의 반란 때 반란군 장수 영호조는 당의 장수인 장순을 옹구에서 완전 포위하여 곤경에 빠뜨렸다. 당시 영호조의 군사는 4만이었고 장순은 2천에 지나지 않아서 세력으로는 도저히 비교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전투가 계속됨에 따라 성을 지키고 있는 장순의 군대는 결정적인 무기인 화살을 거의 다 소모하고 말았다. 상황은 갈수록 긴박해졌다. 이때 장순은 부하들에게 짚이나 풀로 1천여 개의 허수아비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는 이 허수아비에 검은 옷을 입히고 줄을 매달아 밤에 성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내게 했다. 영호조의 군사들이 멀찌감치 보고는 성 안의 군사들이 포위를 돌파하려고 내려오는 줄 알고 일제히 활을 쏘아 허수아비를 맞혔다. 이렇게 몇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영호조는 장순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순은 허수아비를 이용하여 수십만 개의 화살을 적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그 뒤 장순은 다시 밤에 성 위에서 허수아비를 내려보냈다. 적군은 이번에는 속지 않는다며 경계하지 않았다. 이렇게 상대의 방심을 확인한 다음 장순은 5백여 명의 정예군으로 선발 결사대를 조직하여 허수아비 같이 검은 옷을 입혀 성 밖으로 내려보냈다. 허수아비로 인해 감각이 무디어진 적이 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5백여 명의 결사대가 적진 깊숙이 침투해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불을 질렀다. 영호조는 이를 미처 막지 못하고 결국 대패하고 말았다. 장순이 '허수아비로 화살을 얻고 결사대로 적진을 짓밟은' 것은 바로 이 무중생유를 구체적으로 활용한 사례였다.6. 경제 모략
낯선 곳에 가면 그곳의 풍속을 묻는다 - 입경문속(入境問俗)
송나라 때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의 「밀주사상표(密州謝上表)」에 보면 "어느 곳에 가든 풍속을 물어라. 언제 다시 그곳을 지나갈지 아는가?"라는 구절이 있다. 『예기』 「곡례(曲禮)」에는 "국경에 들어서면 해서는 안 될 사항이 있고, 나라에 들어서면 풍속을 묻고, 남의 집 대문에 들어서면 무엇을 꺼리는지 물어라."는 내용도 있다. 다른 지역에 가면 먼저 그 지역의 습속, 금기사항 등을 물어서 귀찮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다. 특정 제품이 어느 한 지역에서 고객을 얻고 단단히 잠겨 있던 시장의 문을 열려면, 그 지역의 풍속과 인심, 소비성향 및 기호 따위를 잘 이해해야 한다.
『한비자』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노나라 수도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남편은 짚신을 잘 만들었고 아내는 베를 잘 짰다. 그들은 조나라가 농수산물이 풍부하여 살기 좋은 땅이라는 소문을 듣고 조나라로 이사를 가서 장사를 해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이웃 사람이 그들에게, 조나라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맨발로 다니고 너나 할 것 없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며 모자도 쓰지 않는데 누가 너희들의 짚신과 베를 사겠느냐고 충고했다. 이 충고를 듣고 그 부부는 조나라 행을 포기했다.
이 이야기는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민족의 풍속과 민심의 차이에서 출발하여 특별한 기능을 갖춘 '차별 상품'을 생산함으로써 '차별 이윤'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아랍 국가에서는 이슬람교도들이 매일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는데, 시간을 어기거나 거르는 법이 없다. 기도를 올릴 때 그들은 바닥에 까는 양탄자 위에 무릎을 꿇는데, 얼굴은 반드시 성지 메카 쪽을 향해야 한다. 1984년 초, 벨기에의 한 양탄자 회사는 기발하게도 나침반이 딸린 기도용 양탄자를 만들어냈다. 더 기발한 것은 이 나침반이 남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성지 메카 쪽을 가리킨다는 사실이었다. 양탄자는 단숨에 2만 5천 장이 팔려나갔다.
이러한 경제모략을 운영하는 관건은 시장 요인을 분석하고 시장의 특성을 탐색하여, 기업(생산품)의 특성(차별화)을 무기로 상대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데 있다. 따라서 적절한 시기에 특정한 기능을 갖춘 차별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 이는 경영자에게 특별한 결단력을 요구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경영자는 시장의 다양한 요인들에 대한 민감성과 통찰력을 갖추어야 함은 물론 여러 방면에서 박학다식해야 한다.
7. 군사병법 모략
최상의 방법은 적의 모략을 분쇄하는 것 - 상병벌모(上兵伐謀)
『손자병법』 「모공책(謨功篇)」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최상의 전쟁은 적의 계획을 분쇄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적의 외교를 파괴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무기로 정복하는 것이고, 가장 못한 방법은 적의 성곽을 공격하는 것이다. 성을 공격하는 방법은 부득이한 경우에나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