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
도로시 버틀러 지음 | 보림
제1장 태어나서 6개월까지쿠슐라는 1971년 12월 18일 새벽 2시 40분에 태어났다. 아기 몸무게는 2.975kg이었다. 쿠슐라가 태어났을 때 드러난 결함은 두 손에 관절 없는 손가락이 하나씩 더 달렸다는 것뿐이었다. 곧바로 기형 손가락을 실로 '묶었고', 며칠 지나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쿠슐라는 심한 황달에 걸렸는데 원인은 뇌혈종이었다. 황달이 더 심해져서 국립 부인 병원으로 옮겨져서 치료를 받았다. 쿠슐라 부모는 딸이 건강한 아기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쿠슐라가 태어난 지 7일째 되는 날, 쿠슐라 부모는 매우 기뻐하며 병원에서 아기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기는 끊임없이 보챘고, 소리 지르며 울다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도 했다. 숨쉬기가 힘들어져 잠을 자지도 못했다. 젖을 제대로 먹일 수도 없었고 밤낮으로 아기에게 매달려 있어야 했다.
쿠슐라 부모는 아기의 시각과 청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쿠슐라는 마치 바깥 세계와 단절된 것 같았다. 다행히도 쿠슐라는 태어난 지 6주가 되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초점을 맞출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면, 웃었다. 태어난 지 2개월째에 쿠슐라가 이따금 발작성 경련을 일으킨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나 몸무게가 늘지 않고 끊임없이 귀와 목이 병에 걸리는 것이 더 마음에 걸렸다. 쿠슐라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기의 상태가 너무 걱정스러워 개인 전문의에게 진찰을 받기로 하였다. 진찰 결과, 쿠슐라는 심장에 조그만 구멍이 나서 천식이 생겼고 이 때문에 습진성 발진도 생겼다고 한다.
태어난 지 서너 달이 지나도 쿠슐라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정상아보다 발육이 훨씬 뒤떨어졌다. 손발을 조절하지 못했고 손발의 활력도 없었다. 정상아처럼 '매달리지도' 못했고, 등과 다리는 '흐늘거렸다'. 경련도 자주 일어났다. 쿠슐라는 머리를 들어올리지도 못했고 초점도 맞추지 못했다. 얼굴에 바짝 들이댄 물건에만 초점을 잠깐 맞추는 정도였다. 쿠슐라 부모는 아기가 깊이 잠들어 있을 때를 빼고는 언제나 쿠슐라를 품에 꼭 껴안아 주었다. 혼자서 울게 내버려 둔 적은 없었다. 손닿는 곳에 밝은 색 장난감을 매달아 놓고 손을 끌어다가 장난감을 만지게 해서, 쿠슐라가 장난감을 입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쿠슐라 부모는 쿠슐라가 태어난 지 4개월째에 책을 처음 보여 주었다. 쿠슐라는 책을 보려고 했고 귀 기울여 들었다. 놀랍게도 4개월이 지나면서 쿠슐라는 다리에 힘이 붙고 다리를 조정하는 것도 좋아지는 것 같았다. 엎어놓으면 돌아누우려고 애를 썼다. 쿠슐라 어머니는 이런 모습을 보고 힘을 얻어 다리와 궁둥이를 뒤집어 주어서 쿠슐라에게 돌아누울 수 있는 걸 '보여 주려고' 했다. 5개월째에 쿠슐라는 혼자서 뒤집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성과다. 이것이 쿠슐라가 태어나서 6개월까지의 모습이다. 그 뒤로 쿠슐라는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1972년 6월 24일, 쿠슐라는 오클랜드 병원에 입원했다. 상태가 나빠진 원인은 요도가 감염되었기 때문이었다. X선 검사로 쿠슐라의 비장이 찌그러지고 부풀었으며 뇌파에 이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쿠슐라 부모는 딸이 태어나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커다란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다. 쿠슐라는 병원에 입원했다. 쿠슐라 부모는 아이에게 '치료 방법'이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신지체가 아닐까 하는 말도 나왔다. 이 기간 동안 쿠슐라 부모는 도서관에서 '장애아'에 관한 책을 빌려와 다가올 일에 준비했다.
제2장 8개월에서 9개월까지태어난 지 35주째에 쿠슐라는 10주에 걸친 입원 생활을 끝내고 퇴원하였다. 입원 중에 쿠슐라의 뇌파에 이상이 있다는 게 드러났다. 쿠슐라는 집에서 오클랜드 대학교 심리학자인 아널드 게젤이 만든 게젤 발달 검사표(독자적인 검사 도구를 써서 유아의 정신 발달 단계를 조사한다. 운동 능력, 적응 행동, 언어 발달,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만들기 등을 측정한다)로 검사를 하였다. '개인-사회성' 검사에서, 쿠슐라는 24주 된 아기 수준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태어난 지 35주 된 정상아는 스스로 우유병을 잡아서 우유를 먹고, 과자를 집어주면 빨아먹지 않고 깨물어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쿠슐라는 두 손을 전혀 쓰지 못했고, 먹을 것을 넣어 주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적응성 검사는 '눈으로 보고 확인하면서 손끝을 쓰는 운동' 능력을 재는 검사인데 쿠슐라는 0점을 받았다(쿠슐라는 이중의 장애를 짊어지고 있었다). 운동 분야에서 쿠슐라는 ""다리 움직임이 28주 수준"으로 평가되었는데, 팔 동작에서 0점을 받은 것과는 대조가 된다. 35주 된 정상아는 등을 받쳐 주지 않아도 앉고, 가구를 붙잡고 일어서고, 서너 걸음 정도는 기어다닐 수 있다. 그러나 쿠슐라는 그러지 못했다.
언어 분야에서 쿠슐라는 32주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쿠슐라는 자기 이름을 부르면 반응하고, 주위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흉내냈다. 게젤 검사에서 쿠슐라는 신체지체가 아주 심하다는 게 드러났다. 그러나 입원하기 전인 5개월 반째에 쿠슐라가 두 팔을 거의 쓰지 못하면서도 돌아누웠다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궁둥이와 다리를 버둥거려서 몸을 뒤집었는데, 이 시기에 보상 수단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쿠슐라가 언어 점수에서 35주 된 정상아의 수준에 크게 뒤지지 않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입원한 동안 식구들이 돌보아 주면서 들려준 풍부한 말 - 이야기, 노래, 그림책 읽어주기 - 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쿠슐라의 발성 점수가 정상아보다 3주 가량 늦기는 했지만, 쿠슐라 어머니는 "쿠슐라가 정상아와 똑같이 말하고 듣는다."고 자신의 느낌을 기록했다.
사회성 발달에서 가장 커다란 장애는 쿠슐라가 초점을 맞추기 어려웠다는 점일 것이다. 얼굴 가까이에 다가가면 쿠슐라는 더듬는 것처럼 물끄러미 보다가 느닷없이 환하게 웃었다. 그것은 아주 힘들여 찾아내려고 한 것을 갑자기 찾았을 때 느끼는 기쁨, 바로 그런 것이었다. 눈 앞의 얼굴이 쿠슐라의 눈에서 멀어지면(46Cm 정도), 보통 때처럼 서먹서먹한 얼굴로 되돌아가는데, 아니 난처하고 불안한 얼굴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쿠슐라는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그러다 초점이 맞으면 그제야 자기라는 걸 알아보았다.
쿠슐라 어머니는 작은 나무 침대를 거실에 두었다. 침대 가장자리와 가장자리 사이에 끈을 팽팽하게 매고 색색 가지 장난감을 달아 주었다. 장난감을 만지게 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옆에서 계속 도와주지 않으면 쿠슐라는 주위에 있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경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쿠슐라가 두 손으로 물건을 감싸 쥐게 하고, 물건과 쿠슐라의 두 손을 받쳐서 입가에 가져가는 연습을 하여, 쿠슐라가 정상아처럼 물건과 두 손을 입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무렵 쿠슐라 부모는 배낭처럼 생긴 '아기 주머니'를 만들어 쿠슐라를 등에 업어 보았다. 실패였다. 유모차에 태우는 것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쿠슐라에게서 받은 전체적인 인상은 손과 눈과 입으로 가까이에서 사물과 접촉하지 않으면 바깥세계와 '단절된다'는 것이다.
쿠슐라 부모는 아기를 안고 집 안팎으로 다니면서 아기가 관심을 보일 만한 사물(바깥에서는 나뭇잎이나, 꽃, 집 안에서는 그림, 장식물, 거울)에 주의를 기울이게 했다. 쿠슐라가 처음으로 특정한 사물에 강한 매력을 느낀 때가 바로 이때다. 쿠슐라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물을 자세히 보려고 할 때 온 정신을 쏟았다. 할머니 집에 가면 부엌에 걸린 달력을 넋을 잃고 보았다. 달력에 가까이 데려다 주면 컬러 그림 밑에 있는 커다란 검은 숫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 숫자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 보는' 것처럼 보는 데에 몇 분이나 걸렸다. 할머니 집에 있는 물건 중에 쿠슐라가 또 좋아한 것은 마오리(뉴질랜드 원주민) 여자를 그린 커다란 흑백 초상화였다.
쿠슐라의 많은 친척들은 쿠슐라에게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쿠슐라를 깊이 사랑했다. 퇴원한 뒤부터, 쿠슐라는 깨어 있는 긴 시간 동안 그림책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쿠슐라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잠자기 전뿐만 아니라, 낮이든 밤이든 늘 책을 읽어주는 가정에서 자랐다. 그래서 9개월 된 아기에게 규칙적으로 책을 보여 주는 게 이르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주었고, 한 장 한 장씩 책을 쿠슐라의 눈에 가까이 보여 주었다. 달력을 볼 때처럼 쿠슐라는 책을 자세히 보았고 때때로 그림의 한 부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딕 부르너(네덜랜드 그림책 작가)의 『B는 Bear의 B』는 알파벳을 가르치는 책이다. 왼쪽 흰색 면의 아랫부분에는 검은 색의 커다란 소문자 글씨가 있다. 오른쪽 면에는 사물을 단순하게 그린 그림(곰, 오리, 물고기, 우산 등)이 하나씩 있는데 배경과 대조되는 밝은 원색 그림이다. 쿠슐라는 이 책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글자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그런 다음에 그림을 아주 신중하게 보았다. 같은 작가의 『글자 없는 그림책 A Story to Tell』도 아주 좋아했다. 이 책에는 왼쪽과 오른쪽 두 쪽에 걸쳐 단순한 그림이 하나씩 그려져 있다. 글은 없지만, 그림만 보아도 이야기 내용을 알 수 있다. 『셀 수 있어요(I Can Count)』는 『B는 Bear의 B』의 방식과 비슷한데 글자 대신 숫자가 있는 게 다르다.
쿠슐라에게 글자 없는 그림책을 보여 줄 때면 그림의 사물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어 주었다. 쿠슐라는 그림이 더 보고 싶을 때면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하였다. 쿠슐라가 그림을 보면서 웃은 적은 없었다. 늘 온 신경을 다 모아서 그림을 보았다. 노래 글을 실은 책을 보면 쿠슐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올빼미와 새끼 고양이(The Owl and the Pussycat)』의 리듬 있는 노래 글과 『잭이 지은 집』의 되풀이되는 글은 쿠슐라의 마음을 달래 주는 듯이 보였다. 특히 책을 읽어 주는 어른이 리듬에 맞추어 몸을 흔들 때는 더 그랬다. 이러한 시와 자장가와 노래는 책이 없을 때에도, 예를 들어 차를 타고 갈 때에도 자주 되풀이하여 들려주었다. 이때 이후로 쿠슐라는 시나 노래를 들려주면 늘 무슨 시인지 무슨 노래인지 알겠다는 표현을 했다. 신경을 집중해서 들은 다음, 무슨 시인지 노래인지 알면 다리를 흔들며 웃어댔던 것이다.
『빨간 바퀴가 달린 상자(The Box with Red Wheel)』는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 가운데 쿠슐라가 맨 처음 좋아한 책이다. 이 책은 그림의 형태가 놀랄 만큼 분명한 그림책이다. 등장 인물(주로 농장 동물)은 분명한 선과 풍부한 색채로 그려졌고, 쪽마다 빨간색 장식 테두리로 꾸며 놓았다. 쿠슐라가 마음에 들어 하는 책은 모두 수백 번씩 읽어 주었다. 아기에게 책을 읽어 준 것은 책이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아무것이나 해보자는 절망감 때문이었다고 쿠슐라 어머니는 말한다.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계속할 힘을 얻었지만, 어머니와 아기가 긴 시간을 채워야 했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음악도 들려주었지만 책만큼 온 신경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책은 쿠슐라와 바깥 세계를 연결하는 하나의 고리가 되었다. 이 시기를 돌이켜 보면 쿠슐라 부모가 딸에게 장애가 있다는 현실에 직면하고 이를 받아들인 시기였다. 이때 시작한 보상 프로그램은, 한편으로는 '쿠슐라를 바깥 세계와 접촉시키기' 위한 결심에서, 또 한편으로는 쿠슐라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을 때울 필요에서 시작되었다. 맨 처음 동기가 무엇이든 보상 프로그램은 이 시기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상호 작용하는 과정이었다. 쿠슐라와 쿠슐라 부모는 질긴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제3장 9개월에서 1년 6개월까지이 기간 동안 쿠슐라의 건강은 나아지기 시작했다. 10개월째에 쿠슐라는 마룻바닥에서 몸을 뒤집는 것을 다시 배웠다. 정확히 12개월째에 식탁용 의자에 잠깐 앉을 수 있었고, 식탁 위에 있는 가벼운 물건을 손으로 집어 올려 입으로 가져가는 걸 배웠다. 그러나 물건을 입에 대기도 전에 떨어뜨렸다. 11개월과 12개월 사이에 경련은 마침내 사라졌다. 9개월에서 18개월 동안, 쿠슐라는 늘 귀와 목이 아파서 고통받았으며, 여전히 잠자는 시간이 아주 불규칙했다. 쿠슐라 부모는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써 보다가 결국 그만두었는데, 딸의 신체 기능을 최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15개월쯤에 쿠슐라는 기는 자세를 익혔다. 팔뚝을 마룻바닥에 대서 몸을 받치고 팔을 가만히 둔 채 무릎으로 서너 번 기어갔다. 그런 다음 팔을 앞으로 쭉 내밀고 이런 과정을 되풀이했다. 쿠슐라는 이런 식으로 아주 조금씩 움직였다(20개월 때부터는 혼자서 두세 걸음 정도 기었다. 쿠슐라는 언제나 왼쪽 팔뚝만 썼다). 그러는 동안에도 날마다 걷기 연습을 시켰는데 쿠슐라는 늘 그렇듯이 열심히 했다. 17개월쯤에는 어른이 한 손만 잡아 주어도 몇 걸음 걸었다. 쿠슐라는 조금씩 팔을 앞으로 내밀어 손을 쓰려고 했다. 12개월쯤에는 읽어주는 책의 책장을 넘기려고 했고, 15개월쯤에는 책장을 제법 잘 넘겼다. 그림 속의 사물을 가리키는 것도 이 시기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쿠슐라는 18개월이 지나서야 손뼉을 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손뼉을 잘 친 건 아니다. 그렇지만 두 손이 부딪치는 순간, 굳은 얼굴이 깜짝 놀라는 듯한 기쁜 얼굴로 바뀐다. 쿠슐라가 만족하는 것만큼이나 쿠슐라 부모도 딸의 성공을 기뻐했다.
여러 달이 지나면서 쿠슐라가 잘 보는 책과 보지 않는 책으로 나뉘었다. 『B는 Bear의 B』와 『글자 없는 그림책』은 여전히 중요한 책이었고, 『올빼미와 새끼 고양이』와 『잭이 지은 집』은 쿠슐라를 기쁘게 해 주었다. 빌 마틴의 『무얼 보고 있나요?(Brown Bear, Brown Bear, What Do You See?)』는 쿠슐라가 금방 마음에 들어 했다. 11개월 때의 일이다. 쿠슐라가 『B는 Bear의 B』를 열심히 보는데 쿠슐라 어머니가 책을 거꾸로 돌려놓았다. 쿠슐라는 곧바로 머리를 빙 돌려서 책을 똑바로 보려고 했다. 쿠슐라가 잘 아는 책을 가지고 와서 처음부터 그림을 거꾸로 보여 주었다. 쿠슐라는 잘못된 것을 알아채고 똑바로 보려고 했다. 15개월쯤에 이것은 놀이가 되었고, 쿠슐라는 발음은 엉망이었지만 '거꾸로'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한 살 무렵, 아주 갑작스레 쿠슐라는 그림을 가리키면서 명사 첫 글자를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했다. 자극을 준 책은 『B는 Bear의 B』였다. 그 책에 눈을 가까이 대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fish를 보고 'fff'라고 하고, pig를 보고 'p'라고 말했다.
『소리책(The Noisy Book)』은 각 쪽마다 소리를 그린 그림이 있다. 쿠슐라는 이 책을 재미있게 보았다. 사실 이 책은 책을 보며 재미있게 소리를 낼 줄 아는 어른만이 다룰 수 있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이와 어른의 관계를 아주 친밀하게 해주는 놀라운 책이고 쿠슐라는 이런 경험을 좋아했다. 보마 출판사의 『놀이 책(Manipulative Book)』두 권을 이 시기에 보여주었는데, 쿠슐라가 손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기 위해서였다. 『집은 어디야?(Where Is Home?)』는 '날개가 붙은' 책으로 쪽마다 붙은 날개를 펼치면 그림의 나머지 부분이 드러나고 답이 나온다. 『작고, 크고, 아주 크고 (Little, Big, Bigger)』는 책장마다 폭이 다르다. 맨 처음 폭이 좁은 책장을 넘기면 앞쪽에 그려진 사물의 반을 잘라 놓은 그림이 나오고, 다음 책장을 넘기면 나머지 부분이 다 드러나는 독특한 구성이다. 그런데 쿠슐라에게는 그다지 즐거움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림이 분명하고 밝으며 종이가 아주 두꺼워서 쿠슐라는 책장을 자신 있게 잘 넘겼다. 몇 달이 지나 두 살이 된 뒤에는 이 책을 아주 좋아했다.
『초록 앵무새는 어디 있을까요?』는 18개월이 되기 바로 전에 보여 주었다. 쿠슐라에게 눈에 명확히 보이지 않는 사물을 찾는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초록 앵무새는 더 찾기 힘들다. 쿠슐라는 처음에는 누가 도와 주어야 앵무새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뒤부터는 혼자서 그림 한 장 한 장을 살펴보면서 앵무새를 찾아내고 아주 좋아했다. 이 시기에 쿠슐라는 아주 좋아한다는 걸 나타낼 때 손뼉을 치거나 즐겁게 소리내어 웃었다. 이럴 때면 쿠슐라는 손을 내리고는 다시 한번 그림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책장에 눈을 가까이 댄다. 그러면 명랑했던 얼굴이 진지하게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