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콕토의 다시 떠난 80일간의 세계일주
장 콕토 지음 | 예담
장 콕토의 다시 떠난 80일간의 세계일주
장 콕토 지음/이세진 옮김
예담출판사/2003년 3월/380쪽/9,800원
제1장 이탈리아에서 이집트로의 여행
너무 버거운 도시 로마
1936년 3월 28일, 드디어 우리는 여행길에 올랐다. 1914년 『포토막Le Potomak』을 출간한 이후로 자진하여 혼수 상태와도 같은 깊은 잠에 틀어박혀 있던 내게 이 기차 여행은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로마를 둘러보았다. 로마를 처음 찾는 파스파르투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밤에 찾은 로마는 죽음의 도시, 침묵의 도시이다. 눈 멀고, 귀 먹고, 혀 잘린 이 도시는 무솔리니의 찡그린 얼굴 하나로 표현될 뿐이다. 한때 사랑으로 충만한 도시 로마가 분수의 물줄기를 통해 불평과 탄식을 토해낸다. 니체(1844~1900)가 한밤에 그 분수의 속삭임을 듣고서 인간의 언어로 읊조리지 않았던가. 광장마다 뿜어내는 분수의 물소리가 내게 카니발의 도시 로마, 오페라의 도시 로마를 되찾아주었다.
망령이 출몰할 듯한 지하감옥이나 회랑, 달빛과 피에 물들어 있는 것 같은 콜로세움의 모습도 여전했다. 생 탕주 다리의 얼룩진 천사상들과 교황, 스페인 광장, 시인 키츠(1795~1821)의 생가 등을 비롯해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였다. 나는 피카소와 재회했다. 우리는 밤의 로마를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로마는 더 이상 내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다만 이 도시의 진수를 분수의 노랫가락에서 느낄 수 있다. 그날 밤 내가 귀 기울여 들은 것은 로마의 혼(魂), 바로 그 음성이었다. 과거 무솔리니 정책의 갈고리를 용케 피한 지하묘지, 그것이 진정 지금의 로마이다. 켜켜이 해골들이 쌓여 있는 도시, 기근과 열병과 페스트와 버러지가 들끓는 도시, 저주를 부르는 보석의 도시, 죽음을 예고하는 흉조의 도시. 다시 본 로마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파시즘은 진공청소기처럼 작동했다. 로마는 좌절을 통해 우리를 단련시킬 속셈은 아니었을까?
파르테논 신전의 피
피레에프스(그리스에서 가장 큰 아테네의 항구로,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대도시 남서쪽 팔리루 만에 위치해 있다)에 도착했다. 안개 때문에 아크로폴리스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테네와의 상투적인 첫 대면을 피한 데다, 나중을 위해 진미를 남겨둔 셈이니 자축할 만한 일 아닌가. 우리 배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부둣가에 정박했다. 그리스는 별로 변한 게 없다. 졸음이 밀려왔지만 버스가 요동치는 바람에 잠들 수도 없었다. 갑자기 내 눈이 번쩍 뜨였다. 여체(女體)의 형상 속에 반쯤 부서진 조그만 새장 같은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파르테논 신전이었다! 바짝 긴장한 채 그저 침묵 속에서 파르테논이 스쳐 가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미네르바 여신을 가두기 위해 만든 파르테논 신전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테네 시내로 들어선 우리는 콩코드 광장에서 내렸다. 후추나무가 우거진 이 경쾌한 도시를 초고속으로 둘러보고, 붉은 벽과 기둥들이 있는 박물관까지 둘러보았다. 로마가 너무 무겁고 버거운 도시인데 반해, 아테네는 가볍고 경쾌한 도시이다.
드디어 안개 한 점 없이 선명한 하늘아래 그 유명한 언덕배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이런 장소가 선보이는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떠들고 공연히 신화화한다. 바로 이런 혐오스러운 풍습이 이런 장소를 사람들에게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신전 입구까지 나 있는 발판을 한 걸음에 네 칸씩 올라가면서 그 곳에 있는 신들에게로 다가갔다. 파스파르투는 아테네가 과거 반달족에게 기습당했던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확실히 그곳은 파괴되었을 뿐, 유적이라고 할 만한 분위기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개양귀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핏방울이 풀밭과 암석, 대리석상의 수족에까지 튀어 있는 듯했다. 좌우를 막론하고 언덕배기는 온통 돋을새김으로 뒤덮여 있다. 대리석 시체, 대리석 물병, 대리석 저장통, 고대 신문과 물건을 싸는 기름종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대리석이었다. 그것은 신이 소풍을 마치고 남긴 자취였다.
우리 코앞에는 파르테논 신전이, 왼쪽으로는 에렉테움이 보인다. 에렉테움의 여상주(女像柱)는 우리 쪽을 향해 신전을 떠받치고 서 있다. 햇살이 신전에 내리꽂혀 나중에 만들어진 가짜 기둥의 고색을 희미하게 만들고, 진짜 기둥에는 더욱 고색창연한 빛을 부여한다. 깊은 인상을 받은 나는 상처 입은 채로 서 있는 기둥 하나에 입을 맞추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였다. 달밤에 보았던 로마의 콜로세움은 밑으로만 가라앉는 느낌을 주었다. 그런데 대낮에 보는 아테네는 어떠한가. 아크로폴리스를 통째로 바닥에서 들어내 상공으로 띄우는 듯하다. 하지만 조각상이니 낙석이니, 이런 것들에 흥분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나 버림받은 듯한 측면이 오히려 위대한 유적들을 인간적으로 느끼게 만들어, 결국 우리와의 거리를 좁혀준다는 것이다. 눈물, 슬픔. 다시는 그런 형식을 요구하는 제례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확신, 내가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져온 추억은 그것이 전부이다. 아테네 도로의 먼지 외에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영광의 교차로 로도스 섬
로도스 섬에 있었다는 아폴론 신의 대형 동상은 실제로 존재했을까? 동상이 한낱 우화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여정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세계적인 구경거리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배는 어느새 거대한 아폴론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로마가 다이아몬드라면 아테네는 진주, 내일 둘러볼 이집트는 스카라베, 그리고 로도스 섬은 목걸이를 장식하는 최고급 바로크석이다. 로도스 섬의 비너스가 한쪽 무릎을 괸 채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있는 이곳은, 온갖 인종과 도시가 만들어내는 영광의 교차로가 되어왔다. 거리에 펼쳐진 동양의 멋진 삶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로도스 섬을 기점으로 하여 볼거리가 이어진다. 이 동양 거리의 무대에 제일 자주 오르는 장면은 이발하는 광경이다. 종교적 분파가 이발하는 행위 하나에도 영향을 주어 미묘하게 신경 써야 할 사항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주변 곳곳에 장화가 널려 있다. 갖바치들의 가게에도, 이발소에도 하나같이 ‘수상(무솔리니)’의 초상이 걸려 있다.
아폴론상의 발바닥은 항구의 양쪽 가장자리를 딛고 있으며, 그곳에 두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한쪽 기둥에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로마의 전설적인 건국자들. 전설에 따르면 이들은 알바롱 가의 왕인 누미토르의 딸 레아 실비아가 낳은 쌍둥이 아들이다. 레아는 전쟁의 신 마르스와 관계하여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가 암늑대의 젖을 빨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또다른 기둥에서는 청동 수사슴 한 마리가 사냥과 장미의 섬을 바라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꽃줄로 뾰족하니 장식된 담벼락과 탑, 순찰도로로 도시는 완벽하게 둘러싸여 있다. 어느 이탈리아 병사 하나가 파스파르투에게 카메라를 챙기라며 소리를 질렀다. 파스파르투가 찍고 싶어했던 것은 성채가 아니라, 비잔틴식 우물의 테두리 돌에 기댄 채 담배를 피우고 있던 늙은 모슬렘 노파였다. 독신(瀆神)이라는 말을 떠올릴 만했다. 거대한 성수반(聖水盤) 옆에서 여신도가 담배를 피우는 격이니! 나는 이 섬에서 처음으로 터번을 보았다. 부둣가에서 일하는 하역 인부들은 머리통에 수건을 두르고 있다. 이집트 신들이 머리에 두르고 있는 화강암 수건을 연상시키는 그것은, 이집트의 첫 숨결이다.
죽음의 도시 카이로
지도를 보면 이집트는 무덤의 평석(平石)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인상적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한 공군하사가 이집트를 비행했다. 그는 스핑크스, 피라미드, 오벨리스크, 델타가 신들의 상형문자이며 그러한 문자들을 담은 납작한 돌판 모양의 이집트는 신들의 텍스트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카이로는 죽음의 도시이다. 우리는 이집트에 도착하자마자 죽음이야말로 이집트의 기반 산업이라는 사실을, 이집트 자체가 하나의 공동묘지인 셈이고 무덤에 대한 생각이 이집트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우리는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둘러볼 예정이다. 일식 때문에 검푸른 달빛이 사막을 흠뻑 적시는 그런 밤이었다. 우리가 안장에 오르자 낙타가 일어섰고, 이리하여 우리의 카라반은 길을 나섰다.
피라미드의 파수꾼 스핑크스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전체 맥락에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그런 까닭에, 가이드 압둘이 “저게 스핑크스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적잖이 낭패감을 맛보았다. 낙타 위에 올라타 있었기 때문에 사막 전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달빛은 내 왼쪽으로 조용히 케오프스의 피라미드를 비추어, 네 측면 중 하나를 터무니없이 길어 보이게 했다. 또 저 멀리 오른쪽으로는 온전하게 남아 있는 두 번째 피라미드 꼭대기를 비추어, 그 끄트머리는 비스듬하게 구부러져 보였다. 그런데 스핑크스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 퍼즐에서 형태를 찾아내듯, 내 눈이 갑자기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여객선 뱃머리 같은 것이 천천히 옆모습을 드러냈다. 스핑크스의 머리가 나타났다. 넓적다리, 위로 구부러진 꼬리, 뒷다리, 길고 네모진 앞다리, 가슴받이 구실을 하는 대리석판이 보였고 지골(肢骨)이 갈비뼈 부위와 배를 갈라놓았다.
1926년에 스핑크스의 발 부위가 발견되었고, 이후로 스핑크스는 벽으로 둘러싸인 묘혈 속에 매장되어 있다. 베르사유의 스핑크스가 발을 토시 속에 감춰왔듯,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수세기 동안 발을 모래 속에 감추고 지내왔던 것이다. 스핑크스는 수수께끼가 아니다. 질문은 필요 없다. 오히려 스핑크스는 하나의 대답이다. 스핑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기에서 무덤을 지키며 서 있노라.” 납작코가 인상적인 스핑크스의 얼굴은 지극히 평범한 이집트 촌부(村夫)의 용모, 모래폭풍 속에 검은 베일을 드리운 여인의 데스마스크 등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으리라.
개미집 같은 피라미드
과거 나는 이집트의 거대한 상들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에서 보니, 이집트의 거상들이란 인간 세계의 균형을 깨뜨릴 정도로 압도적이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스핑크스는, 확실히 눈에 확 띄는 모양새를 당당하게 자랑하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축제를 벌일 때 스핑크스를 금송아지인 양 에워싼다. 별빛은 눈발이 흩날리듯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위로, 모래사막 위로, 우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피라미드는 이집트 왕자들이 건축가와 토목업자, 기하학자, 점성학자들로 조직된 팀에게 명령하여 만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곤충들의 작업, 이를테면 개미집 같았다. 그러나 숙소로 돌아와 호텔 발코니에서 멀리 바라보니, 피라미드가 다시 마법을 되찾은 듯했다. 한 치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육중한 설화석고(雪花石膏)와 화강암 벽돌을 가지고 그 옛날 십장들은 어떻게 공사를 진행했을까. 다음날 우리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다시 둘러보았다. 구멍을 통해 거대한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람구멍을 포함한 동굴 내부의 신비한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수수께끼로 남는다.
미라가 세월의 표면으로 떠오르다
최초의 석관들은 그저 길이가 짧은 상자에 지나지 않았다. 제3왕조 시대에는 시체를 태아와 같은 자세로 만들어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투탕카멘의 보물을 묘사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것은 실제로 접했을 때의 이미지와 그 이전의 생각과는 전혀 딴판이기 때문이다. 파라오는 고작 17살이었다. 그의 사후세계에서의 삶은 최상의 호사를 맛볼 수 있게끔 마련되었다. 우리는 그의 가구, 전차, 보석, 의복 등을 손상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이집트 왕은 민중들이 몰려드는 미스터리 극장의 온통 황금을 두른 스타였다. 어린 파라오를 에워싸고 있는 완벽한 차림새, 이것이 곧 분장이요, 연극이다. 우리는 음모의 희생자이자 수혜자인 어린 왕 투탕카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는 왕들의 무덤 계곡에서 손상되지 않은 채 유일하게 남아 눈부신 영광도 결국 무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투탕카멘의 방을 둘러보고 경악에 가까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투탕카멘은 에나멜 눈을 부릅뜨고 뻣뻣한 팔을 몸에 붙인 채 발을 모으고 있다. 금속으로 싸인 발가락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품을 일으키며, 세기의 벽을 넘어 미래로 잠겨든다.
제2장 인도에서 싱가포르까지
문둥이들의 계곡 아덴
젊은 소말리아인들이 현문(舷門) 주위에 나무껍질로 만든 배 여러 척을 대놓았다. 귀여운 아기 천사 케루빔과 꼬마 악마가 지옥의 입구 아덴에서 온다. 아덴, 그곳에 우리를 데려다준 이들은 곱슬곱슬한 금발머리와 장밋빛 뺨, 잘 조각된 입술과 콧구멍, 아치처럼 드리워진 속 눈썹, 섬세한 손목과 발목을 지닌 검은 대리석 목신들이다. 아덴은 문둥이들의 계곡이다. 광물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광산이다. 척박한 토양은 무엇을 심든지 그러한 씨뿌리기의 노력을 경멸할 뿐이다. 이곳은 다양한 인종과 상인들이 마주치는 교차로요, 비행기와 전함과 대영제국의 파수대가 만나는 장소이다. 인도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아덴은 별 볼일 없는 곳이다. 전갈, 선인장, 인종들이 뒤죽박죽되어 있어서 혈통을 가늠할 수 없는 곳, 그 정도면 아덴을 설명하는 데 충분하다. 포근한 맛도 없고 특별한 대책도 없는 곳. 희망도 없고 광신적이며 씁쓸한 아덴이여, 너는 세상에 덩그러니 꽂힌 한 자루 단도 같구나.
봄베이에서의 세 가지 추억
봄베이를 구경할 시간이 앞으로 네 시간 정도 남았다. 말라바르 힐, 침묵의 탑이다. 저곳은 죽음의 여신이 사는 성으로, 성밖으로 절대 나갈 수 없는 사제들이 죽음의 여신을 시중들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왕들은 죽음이 사는 이곳, 말라바르 힐에 들어갈 수 없다. 말라바르 힐에 들어가려면 ‘파르시’라는 카스트 계급에 속해야 한다. 우리는 일정에 쫓겨 충분히 둘러보지 못했다. 삯마차는 최고의 시스템이다. 봄베이에서의 첫 번째 산책은 처음으로 아주 먼 곳까지 와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우리의 여정은 더 이상 『80일간의 세계일주』도 아니고, 이제 우리는 동화 나라에 들어와 있다. 『신밧드의 모험』의 세계로. 시럽과도 같이 흐르는 강물처럼 끈적끈적한 거리 양쪽으로는, 무대 앞부분처럼 생긴 연단이 보이고 말뚝 위로 긴 의자도 놓여 있다. 거기에 아마옷을 입은 뚱뚱한 장사치들이 널브러져서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떤다. 코끼리 코를 단 신, 플루트를 연주하면서 호랑이들을 유혹하는 시바, 숱한 여신들이 다리를 꼬고 팔로 바람개비 모양을 만들고 있다. 표식은 다양한 계급과 정화기간을 나타낸다. 붉은 점 모양도 있는가 하면 노란 사각형 모양도 있고 선, 얼룩 등 머리 모양이나 고약 붙인 형태가 다양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봄베이 여자들은 예외적인 부류를 제외하면, 모두 콧구멍에 다이아몬드를 박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베일을 두르고 다닌다. 남자들이 공들여 하는 작업이라고는 오직 터번을 풀었다 감았다 하는 것이 전부이다. 목동이 흰 소에 멍에를 씌워 끄는 수레를 모는 모습이 보이는데, 방향을 틀 때마다 소꼬리가 뒤틀린다.
봄베이 거리와 광장에선 정오의 태양이 도시를 진공 상태로 몰아넣는다. 그곳을 둘러보고 기억에 남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영국작가 키플링(1865~1936)이 묘사한 코브라와 몽구스의 피 튀기는 대결 장면이다. 누군가 갈대피리를 연주한다. 고리버들 바구니가 갑자기 부르르 떨며 뚜껑이 덜그럭거린다. 몽구스의 분홍색 낯짝은 독사 모가지를 악착같이 물어뜯는다. 코브라는 몽구스를 향해 똑바로 겨눈 권총처럼 일어섰다. 몽구스가 펄쩍 뛰어올랐고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두 번째 기억은 바닷가 기념 계단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그리스 신전에 대한 것이다. 비문이나 조각상 같은 것도 없었다. 정오의 태양을 받은 건물 벽과 기둥, 병사들의 기념비로 눈이 부셨다. 이 신전과 계단은 드라마틱한 초상의 주춧돌이 되었다. 세 번째, 조그만 소년이 원숭이와 북을 들고 있다. 살아 있는 이 조그만 조각상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있다면, 가면에 뚫린 구멍 같은 까만 눈과 입술이 벌어질 때마다 보이는 새빨간 불꽃뿐이다. 하지만 인도의 ‘집 없는 아이’, 약장수 킴(Kim)군이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그 애가 데리고 있던 원숭이의 손이 워낙 기이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꼭 그 소년 자신의 손 같은 인상을 주었다. 우리에게 자비를 구하던 그 조그마한 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