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와 코스모스
요아힘 부블라트 지음 | 생각의나무
카오스와 코스모스
요아힘 부블라트 지음/염영록 옮김
생각의 나무/2003년 2월/267쪽/29,000원
우주로부터의 위협
지구의 진화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수소로 이루어진 별이 연소될 때 그 별은 수축되다가 마침내 폭발해 버린다. 그 전에는 수소와 헬륨만 있던 것이 이 폭발을 통해서 탄소를 비롯해 무거운 우라늄에 이르기까지 행성계의 다른 모든 원소들이 생겨난다. 그리하여 생명체가 진화하는 데 필요한 선결 조건들이 갖춰지게 되었다. 그 재앙 - 어떤 별의 최후 - 으로부터 마침내 지구도 탄생하게 되었다. 이때 원동력이 되는 힘이 바로 중력 - 질량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 - 이다. 중력에 의해 먼지들이 밀도 있게 뭉치다가 마침내 태양, 즉 하나의 새로운 발광항성(發光恒星)이 형성되었다. 핵융합이 이루어지면서 그로 인해 에너지가 방출되기 시작한다. 태양 주위의 나머지 먼지들은 한 곳에 압축되어 행성이 된다. 또한 행성들 사이에는 이리저리 떠다니는 물질 조각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역학 관계상 한 곳에 뭉쳐서 보다 커다란 천체를 구성할 수가 없다. 그 물질들은 아주 조금씩 조금씩 행성들을 향해 끌려가다가, 마침내 삼켜져 버리고 만다.
우리 행성계에서 일어났던 대재앙의 시기는 이제 지나가 버렸다. 수백만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행성들 사이의 공간의 먼지들은 중력으로 인해 제거되었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조각들도 결국에는 행성들 중 하나에 추락함으로써 그 여정을 마감했다. 오늘날 우리 행성계는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다. 떠돌아다니는 물질 조각들 가운데 지구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것들은 매우 극소수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구가 충돌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잠재적인 위험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화성과 목성 사이의 지역인 소행성대(帶)에 있다. 행성계를 이루고 남은 물질 조각들이 이 지역에 감춰져 있으며, 수백만 개에 이르는 이 물질 조각들은 각각 자신의 궤도에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조각들의 직경은 몇 백 킬로미터 이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1킬로미터 이하의 크기이다. 직경이 몇 미터에 불과한 작은 운석들은 빈번하게 지구와 충돌한다. 그렇지만 그 운석들은 지구의 대기권을 통과하는 동안 매우 열을 받아서 달궈지고 녹아 버린 나머지 겨우 몇 센티미터의 작은 조각으로 떨어지거나 아예 완전히 증발해 버린다. 이보다 훨씬 더 큰 운석이라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소행성과 운석이 지구 위의 생명체를 위협하는 유일한 천체는 아니다. 혜성 또한 지구와 충돌하면 치명적인 파괴를 야기할 수 있다. 혜성은 주로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종종 ‘지저분한 눈덩이’라고 불린다. 게다가 그 혜성들은 직경이 몇 킬로미터에 이른다.
1994년에 일어난 사건을 통해 혜성과의 충돌이 얼마나 극적인 결과를 낳는지를 알 수 있다. 그 당시 슈메이커-레비 9(Shoemaker-Levy 9) 혜성이 초당 60킬로미터의 속도로 목성과 충돌한 일이 있었다. 거대한 몸체의 목성이 지닌 어마어마한 중력은 그 혜성을 산산조각으로 부숴 버렸고, 그 조각들이 수백 개의 원자폭탄의 폭발력과 맞먹는 에너지로 목성과 충돌한 것이다.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운석이나 혜성이 지구에 가할 충돌의 충격이 파괴적일 수 있기 때문에 행성계 안에서 운석 충돌의 위협이 전혀 없는 공간이야말로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선결 조건이다.
거친 발생 단계가 끝난 후 행성들은 조용히 자신의 궤도를 따라 주기적으로 운행을 하고 있다. 혼돈 속에서 질서가 싹튼 것이다. 그리고 소행성과 혜성 또한 태양의 중력장 안에서 예측할 수 있는 궤도를 돈다. 그것이 바로 자연과학자들에게는 천혜의 조건이다. 이런 궤도는 계산이 가능하고, 그 계산을 통해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러한 궤도 운동이 미래에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계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결같은 규칙성 - 질서 - 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언제든지 다시금 중력장 안에서 어떤 흔들림이라도 생기게 되면, 즉 어떤 행성이 스쳐 지나가기라도 하면 그때 새롭게 재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런 재앙을 예견하는 것 - 미리 계산하는 것 - 은 자연과학에 커다란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어떻게 하면 그런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낼까, 과연 그런 일이 성공할 수 있을까.
질서, 일종의 환상일 뿐인가?
자연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관찰해 보면, 처음에는 그 사건이 대단히 다채로워 보이기 때문에 세계가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법칙을 수립하는 것이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어지럽게 뒤섞인 상황들을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부분적인 상황들로 쪼개고는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복잡하게만 보이던 사건들의 진행 과정을 인간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화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자들이 하는 방식이 바로 이와 같다. 과학자들은 자연 안에서 일어나는 전체 사건의 개별적인 흐름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복잡한 현실성으로부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조들을 끄집어낸다. 이런 관찰 방식은 결코 자의적인 것이 아니다. 자연 자체가 그 방식의 의의를 뒷받침해 준다. 즉, 자연은 어떤 하나의 현상에는 오직 하나의 개별적인 관계만이 주도하고 있을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수많은 사례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자들은 자연의 흐름에 대한 이런 표상을 수학과 결부시킨다. 수학적 형식의 도움을 빌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힘의 작용 아래서 변화하는 위치와 속도를 계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런 경우에 쓰이는 수학적인 수단을 운동방정식이라고 부른다.
자연과학의 방법은 자연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일종의 기술(技術) 양식으로 발전되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원하던 바였다. 인간은 불확실한 존재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즉, 겉보기에는 통제되지 않은 채로 굴러가는 축구공과 같은 존재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미래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예를 들어 어떤 행성이 어디로 운동할 것인지, 차례대로 어떤 사건이 지구 위에서 일어날지 등을 정확하게 가늠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확실성을 가져야만 비로소 인간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삶을 형성해 나갈 수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바에 따라서 그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뉴턴 이후 줄곧 묘사되는 세계상, 즉 힘들과 입자들에 의해 규정된 세계상은 운동방정식을 통해 통제되었으며, 과학자들 사이에는 낙관론적 분위기가 팽배했다. 수많은 과학자들은 이런 분위기에 휩싸여서는 급기야 전체 우주가 인간의 정신에 굴복하고 말 거라고 믿기까지 했다. 그러나 20세기가 시작된 후 어떠한 신호도 빛보다 빠르지 않다는 실험 결과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는 당연한 사실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그 조건을 토대로 상대성이론을 전개했다. 어떤 신호도 빛보다 빠르게 운동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뉴턴의 세계상은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된다. 왜냐하면 뉴턴의 세계상 안에서는 힘의 변화가 즉각적이고 찰나에 일어난다는, 빛의 속도까지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일어난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확고부동한 한계속도에 일관성 있게 주의를 기울인 결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그림을 전개할 수 있었다.
상대성이론에서 질량 사이의 인력은 공간이 가진 고유한 속성으로 변환된다. 질량은 공간을 비튼다. 즉, 질량은 공간을 움푹 들어가게 만든다. 그리고 이 비틀린 굴곡을 통해서 우리가 우주 안에서 관찰할 수 있는 작용들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질량에 의해서 공간이 비틀린다는 아인슈타인의 사유 모델은 뉴턴과는 다른 기하학에서 출발한다. 즉, 삼각형에서 내각의 합은 더 이상 180도가 아니며, 가장 짧은 거리는 더 이상 직선이 아니라 대원(大圓: 구의 중심을 지나는 평면과 구면과의 교점들의 집합을 말하며, 구면기하학에서 대원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직선과 같은 역할을 한다)인 것이다. 이러한 구면기하학(球面幾何學)은 또 다른 척도를 설정한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거시 세계, 즉 거시 우주의 경우에는 타당하다. 그러나 미시 세계 안에서는 결정적인 세계상의 변화가 있었다. 원자와 분자의 경우에 운동방정식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그 때 입자에 작용하는 힘은 입자를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하도록 힘을 가한다. 위치 규정은 측정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입자에 충돌하는 빛은 그 입자를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렇지만 미시 세계에서는 - 측정 대상의 미세함 때문에 - 측정하는 동안 충돌하는 빛의 입자가 측정 대상의 위치를 바꿔 버린다. 우리는 측정하는 입자의 속도가 측정 대상의 입자를 변화시키는 것을 일종의 폭격을 가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입자의 위치와 속도는 동시에 정확하게 규정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입자의 운동을 측정할 때 그 위치와 속도는 측정 행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시 우주를 모델에 맞게 기술하는 양자물리학은 확률에 근거하여 이론을 전개한다. 입자의 위치는 단지 특정 확률로만 제시된다.
양자물리학 안에서도 운동방정식의 구도는 여전히 견지되고 있지만, 뉴턴 식의 세계상이 제시한 정확한 위치 좌표는 파동 함수로 대체된다. 파동 함수는 입자의 위치를 불확실하게 만든다. 즉, 그 입자는, 특정 영역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은 완전히 또 다른 세계를 펼쳐놓는다. 미시 세계의 불확정한 성질로부터 도출된 사실은 원자와 분자는 자신의 상태 안에서는 일반적으로 정확하게 규정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이란 그저 불확실성을 전제로 이리저리 가늠해 보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오늘날 이론물리학, 즉 세계에 대한 사유모델을 산출한 이론물리학을 살펴보면, 새로운 이론이 낡은 이론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거대한 물체들 사이의 운동은 여전히 뉴턴 식 사유모델에 따라 계산된다. 그러나 특정한 경우에서 올바른 해(解)에 도달하기를 바란다면 확장된 세계상, 즉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의 복잡한 방정식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어떤 문제에 있어서 물리학적인 과제를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매우 실용적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최근 몇 십 년 동안 더 추가된 사실이 있다. 우리의 이론이 얼마나 불확실한 기반 위에 성립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식,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자연의 전혀 다른 행동 방식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며, 그때는 어떠한 법칙성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으리라는 또 다른 극적인 인식이 대두된 것이다. 자연화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 즉 무언가를 예견할 수 있으리라는 자부심은 자연에 내재하는 이런 현상들로 인해 호되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분명히 자연 안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한 방법이 그런대로 잘 먹히는 질서의 영역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예측 가능성으로 무장한 이 고립된 섬들의 주위는 온통 믿을 수 없는 혼돈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런 통찰은 자연과학적인 인식의 한계와 관련된 또 다른 무언가와 연관되어 있으며, 날씨와 같은 자연의 일상적인 흐름에 있어서는 아이러니컬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세계상을 뒤흔드는 날씨
최근 몇 십 년 동안 일기예보를 위한 제반 조건들이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왔다. 기상 위성은 지구 대기권의 흐름을 관찰하며, 기상 관측용 기구(氣球)는 대기권 높이 상승하는 동안 서로 다른 기층에서의 기온과 습도, 중요한 날씨의 매개변수를 기록하고, 지구 전체에 걸쳐 설치된 수천 개의 위성 지구국은 확보한 자료를 기상 센터에 전송한다. 조밀하게 짜여진 관측망이 대기권을 두루 관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상학자들은 매우 빈약한 수확물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열흘이 넘는 기간에 대한 장기적인 예보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다. 기상학에서는 오랫동안 견지되어 온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은 바로 태양 둘레를 도는 행성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물리학 법칙의 도움으로 언젠가는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물리학의 다양한 갈래 학문 - 열역학, 유체역학 등 - 을 통해 진작부터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대기의 변화는 기체의 역학 상태라든가 상태 변화와 관련이 있다. 물론 기온, 기압, 습도, 풍향 등을 측정하는 자료에 대해 보다 정확한 지식을 확보함으로써 일기예보가 더욱 정교해지게 된다면 비록 장기간의 예보일지라도 실제의 날씨와 일치할 수 있을 것이다. 관측망을 통해 얻어진 보다 정확한 자료들은 대기권의 물리학적 상태를 기술하는 수학적 방정식에 대입되었다. 이 방정식은 과학자들이 대기권의 기상 흐름에 관해서 만들었던 사유모델의 수학적 모상(模像)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날씨 모델을 개선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자연을 모델에 맞게 기술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혼돈을 발견했으며, 그것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표상을 결정적으로 바꿔 버렸다. 우주에 대한 우리의 새로운 시야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런 인식에 도달하게 된 것은 최첨단의 계산 장치 덕분이다.
이제 경미하게 구분된 결과들을 슈퍼컴퓨터에 입력해서 다음날 기상 상태의 진행을 미리 계산하게 해보자. 그렇게 하면 바람이 기단을 몰아 오고, 그것을 통해서 기온이 바뀌게 되고, 공기 중의 습도는 증가하거나 감소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앞에서 일기도로 그려진 날씨가 컴퓨터 안에서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예기치 않은 결과로 끝나고 만다. 비록 계산 작업의 초기 상황들 - 초기 자료들 - 이 서로 아주 조금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뜻밖의 결과가 나오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미세한 차이가 기상학자들이 대기권에 대해 마련한 모델에 받아들여진다면,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결과를 낳는다.
원칙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날씨와 같이 위력적인 체계에 뚜렷하게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한 나비의 날갯짓은 - 세계 어느 곳에서 날갯짓을 하든 상관없다 - 어떤 지점에서는 파괴적인 힘을 가진 허리케인을 발생시킬 수도 있고, 또 다른 지점에서는 상쾌한 산들바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예를 들게 되면 자연 안의 모든 흐름을 적당한 물리학적인 모델로 계산해 낼 수 있으리라는 바람까지도 무너지게 된다. 겉보기에는 얌전하고 질서 있게 잘 정돈된 자연이 여기에서는 그야말로 불확실하고 혼돈한 세계로서의 정체를 드러내며, 가까운 장래를 넘어서서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오늘날 일기예보와 같은 예에서 도출된 인식은 여기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즉, 원자 영역 바깥에서의 - 거시적인 체계 또한 - 운동의 흐름도 역시 예측 불가능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거침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 장치처럼 작동하는 세계라는 표상은 마침내 그 토대가 무너지고 만다. 그렇다면 일기예보자들이 대기권에 대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또 다른 물리학적인 체계에 있어서 이런 인식은 어떤 작용 결과를 가질까?
행성계에 깃든 혼돈
생명체를 이루는 데 있어서 선결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질서정연하면서 변함 없이 되풀이되는 흐름이다. 가령 기후나 계절과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지구상에서 이러한 상대적인 안정성이 이루어진 까닭은 상당 부분이 달의 영향 때문이다. 모의실험을 통해 살펴보면, 수성, 금성, 화성 - 이 행성들은 달을 갖고 있지 않다 - 의 회전축이 과거에는 매우 불규칙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회전축이 불안정하게 흔들렸으며, 축의 기울기가 80도가 되었던 때도 있었다. 반면 커다란 달을 갖고 있는 지구는 매우 안정적이었다. 지구의 회전축은 혼돈 속으로 비틀거리며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달의 영향이 없었더라면, 지구의 회전축은 여타 다른 행성들처럼 불규칙적인 처지에 놓였을 것이며 매우 가파른 기울기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구 위에서 생명이 존재하는 데 또 다른 중요한 인자는 소행성이나 혜성과의 충돌로 인한 폭격 상태가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우리의 행성계는 ‘질서의 섬’이라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 태양 둘레를 도는 행성들의 공전이 평형 상태를 이루는 것 역시 지구 위에서 생명체가 존재하는 데 하나의 선결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행성이 태양 둘레를 도는 궤도가 아주 미미하게만 어긋난다면 지금과 같은 형태의 생명체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