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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가지 테마로 보는 우리미술

김경자 지음 | 다른세상
*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아그랍다'는 말은 전체적으로는 부드럽고 연약한 느낌을 주지만 창칼 앞에서도 꿋꿋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한국 미술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저자가 사용한 경상도 지역의 사투리입니다. 겉모습만이 전부가 아닌 또 다른 상반된 면모들을 지닌 인물이나 작품을 아그랍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늘의 언어가 땅의 언어로 : 한국의 <단청>과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한국의 그림, 나아가 회화라는 장르를 통틀어 '최고 하나만 내놓아라' 하면 주저 없이 단청을 내보일 것이다. 그리고 단청의 사상과 언어가 만국 소통어일 수 있는 가능성을 태극에서 찾고, 나아가 몬드리안의 세계에서 이를 확인하고자 한다.

단청이란 사찰과 궁궐 등에서 처마나 천장, 닫집 혹은 공예품 등을 오래 보존하고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하여 칠하는 울긋불긋한 채색을 말한다. 우리 나라 목조건축의 주재료인 소나무는 건조하면 갈라지고 벌레가 먹기 쉽기 때문에 그 단점을 보완해 왔던 것이 바로 단청이다. 원래 단청이란 단사와 청확이라는 광물질에서 따온 말이다. 암채 혹은 석채라고 부르는 전통 단청 안료는 특히 발색과 보존성이 좋아 애호되어 왔다. 그렇지만 단청을 칠할 때는 동물성 유기질 안료와 아교 등을 섞는다. 마찬가지로 단청의 기본 색은 단(丹)과 청(靑)이지만 반드시 붉고 푸른색만을 쓰지는 않는다.

단청이 그토록 화려한 것은 오채의 화려함에서 온다. 그것은 인간적인 취향보다도 우주의 이치에 합일하는 한국의 색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단청에 있어서 붉을 단(丹)은 양(陽), 푸를 청(靑)은 음(陰)을 의미한다. 거기에 백(白), 흑(黑), 황(黃)이 덧붙여져서 단청의 기본 오채를 이룬다. 오채를 오방에 배치하면 오방색이 된다. 이로써 오방색이 연합한 어휘일 때 단청을 양으로 크고 강한 역할, 흑백은 음으로 작고 약한 역할, 황은 중간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주역의 대원리가 고스란히 조형화된 것이며, 바로 이 오방합일의 황홀함이 한국미술의 원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미술을 분류하는 시각에 따르자면 다분히 디자인처럼 그려진다. 즉, 몇 개의 도식적인 색면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열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그 안에는 찬란한 오케스트라가 있다.

그 이유를 보다 극명하게 대비하기 위해 현대작가인 몬드리안을 살펴보자. 단청은 고대의 유산이요, 몬드리안은 20세기의 작가이다. 단청과 몬드리안은 지향하는 바가 같다. 어떻게 하면 우주가 가진 가장 쉽고 간단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조형적인 질서로 표출할 수 있을까? 그러한 고뇌 끝에 얻은 결실이 단청과 몬드리안의 작품이다. 그 속에 우주와 인간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배어 있는 것이다. 몬드리안은 '데 스틸'이라 부르는 추상미술운동의 선구자이다. 오늘날 몬드리안은 1970년대 세계미술을 풍미했던 미니멀 아트와 하드 에지(hard edge)의 선조로 추앙되고 있다. 미니멀 아트란 밋밋한 몇 개의 기하학적인 면을 그 이상 단순화할 수 없을 만큼 단순한 조형 요소로 환원하는 미술의 한 형태이고, 하드 에지는 포스터처럼 단순화한 색면을 주장하는 회화적 경향을 일컫는다.

내가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처음 본 것은 뉴욕 근대미술관에서였다. 화보에서 보았을 때 너무나 깔끔한 디자인으로 보였던 그림이었는데 직접 보니 마치 가문의 저수지 바닥처럼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닌가? 화면의 옆에서 본 그림에는 붓자국으로 덕지덕지 층이 진 물감의 두께가 보였다. 하지만 이내 이러한 놀라움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뒤 거기에서 몬드리안의 그림을 발견한 것이다. 여기서 '부기우기'란 8박자를 한 소절로 하는 흑인의 재즈 리듬을 말하며, '브로드웨이'는 뉴욕의 거리 이름이다. 이 둘을 결합해 보면 마천루에서 내려다본 브로드웨이의 시가지가 재즈의 선율이 극도로 절제된 무대처럼 펼쳐지는 듯하다. 그것을 확인한 것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내려다본 브로드웨이 풍경이었다. 그렇다. 그것이 공기라는 것이었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화보에서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 즉 모든 예술이 그 땅과 공기를 떠나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즉, 철저하게 사실적인 작품에서 시작하되 지엽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면 언젠가 그 본질이 나타날 것이라는 일종의 현상학적 본질 환원에 대한 신념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숱한 시행착오와 미련한 정도로 그어댄 붓질을 통해 몬드리안이 찾아낸 것이 바로 우주의 질서였다.

이러한 태도는 다분히 동양의 인간과 우주의 합일, 나아가서는 우리가 단청에서 보았던 음양오행에 대한 동양인의 자세를 연상케 한다. 사실 수평선과 수직선의 이원적 요소는 동양의 음양에, 그리고 그것의 황, 청, 백, 적, 흑과 회색은 단청 오행에 따른 오채(五彩)와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몬드리안의 작품에 비하여 단청에는 그러한 인간의 고뇌라기보다는 오랜 극기와 수련의 결과로 터득한 하늘의 마음이 있다. 비유하자면 단청에는 마치 우주 밖에서 우주를 봤을 때의 느낌이 전해져 온다. 고대인에 의해 발견된 음양과 오행의 질서가 있다. 그리고 그 질서는 오늘날의 과학문명과도 공존할 수 있는 질서요, 원리인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문명은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고뇌를 담고 있고, 음양오행은 하늘의 순리를 읽으려는 인간의 고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양의 고뇌하는 마음이 발견한 것이 태극이요, 단청이었다.

뼈 속에 묻어둔 그리움의 언어 : 김정희의 <세한도>와 사걀의 <나와 마을>



추사 김정희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예술과 학문에 일가를 이루어 후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새로운 시대의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여 조선시대의 실사구시 변혁을 주도한 사람이었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북학파의 한 사람으로서 결학, 금석학, 불교학 등 다방면에 걸친 학문체계를 실학적 신념으로 구축했으며, 문인화와 서예에도 능하여 추사체를 창안했기 때문이다. 추사체는 모든 서체의 장점을 살려 만들어낸 독창적인 서체이다.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만능의 대가이면서도 그는 두 번에 걸쳐 12년 간의 유배를 당한 불운의 인물이었다. 자유인이 된 말년에도 과천에 은거, 서화와 선학(禪學)에만 몰두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불운의 세월이 <세한도> 같은 불세출의 걸작을 남긴 저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김정희의 위대함이 더욱 돋보인다.

국보 제180호인 <세한도(歲寒圖)> 혹은 <완당세한도(阮堂歲寒圖)>는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당시 청나라에 가 있던 역관 이상적 만이 사제간의 의리를 지킴으로써, 이에 감탄하여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세한도>에는 그리움이 묻어 있다. 추사체의 호방한 글씨나 부작난(不作蘭)의 무심한 일기(逸氣)보다 <세한도>의 갈필은 뼛속으로 스며드는 고독을 담고 있다. 정말 그런 풍경이 있다면 먼저 치솟는 눈물을 참느라 헛기침이라도 해야 할 만큼 뼈저린 풍경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가슴 저미는 고독 때문에 그리움의 한을 품는다. 샤갈 역시 러시아를 떠나 파리의 지붕 밑을 떠돌면서 김정희와 같은 향수와 그리움을 느꼈을 것이다. 샤갈은 내면의 시적 호소력을 상징적이고 환상적으로 결합한 그림, 판화, 무대장치, 스테인드 글라스 등을 제작했다. 그 소재와 영감의 원천은 공간적으로 고향이요, 시간적으로 어린 시절에 대한 동경이었다. 그래서 샤갈 그림의 주제를 향수라고 일컫는다.

샤갈은 <나와 마을>을 발표하면서 수틴, 들로네, 레제, 모딜리아니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에콜 드 파리'를 형성하게 된다. 샤갈의 그림은 입체주의, 오르피즘, 초현실주의의 양식으로 빚어진 동심이라 할 수 있다. 입체주의의 분할기법을 빌어 샤갈은 몇 개로 나뉜 커다란 공간 속에서 조각조각 분해된 사람과 사물을 그렸다. 오르피즘은 광선주의라고도 하는데, 샤갈의 그림에서는 들로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강렬한 색띠로 그려지기도 한다. 초현실주의는 꿈을 그리듯 샤갈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려도 좋다고 부추기는 것 같다. 이 모든 기법을 감싸안으면서 샤갈은 일관성 있게 고향과 어린 시절의 향수를 앞으로 내세워 세계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샤갈 자신은 자신의 그림이 환상이나 상징으로 표현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정신을 표기하는 방식, 그것이 샤갈의 관심사였다.

추사와 샤갈은 사람들에게 고독의 의미를 되새김하게 해주는 서로 다른 단초를 제공한다. 그리하여 추사와 샤갈이 보여준 고독은 다같이 곰삭은 젓갈 같지만 샤갈은 하늘을 나는 화려함으로, 추사는 뼈 속 깊이 묻어두는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추사가 그리움을 뼈 속에 묻은 것은 그것이 한국인의 그리움을 표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먼저 <세한도>는 시서화 일체의 극치를 보여준다. <세한도>를 보면 갈필로 그린 집 한 채와 소나무 두 그루, 그리고 철선묘의 붓질 하나만 눈에 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조선이 남긴 가장 위대한 예술품이며 형사와 신사를 동시에 성취한 동양화론의 대표적인 역작이라 할 것이다. 형사(形似)란 형체의 닮음을 말하고, 신사(神似)란 정신의 닮음을 뜻한다. 그러니 담백하면서도 당당한 구도, 극도로 절제된 붓놀림, 절절한 여백의 묘미를 살린 <세한도>가 형사와 신사를 동시에 성취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을 가슴에 담아 그림으로 옮긴다는 흉중구학(胸中邱壑)의 차원을 넘어서서, 생각을 옮겨 신묘함을 얻는다는 천상묘득(遷想妙得)의 경지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한도>에는 문질(文質) 빈빈(彬彬), 즉 형식과 내용의 절대조화가 있다. 그리고 형사와 신사가 뼈 속으로 묻어 들어가는 철선, 갈필의 아그랍은 붓놀림이 알알이 날개를 펴고 조형세계로 내려앉아 마치 뼈 속에 가라앉은 부처님의 사리와도 같음을 느낄 수 없다면 <세한도> 한 점을 낳기 위해 왜 한국미술 5천 년이 필요했는지 알아챌 길이 없을 것이다.

조각 같은 회화, 회화 같은 조각: 불교의 <수미단>과 마티스의 <파란 누드 Ⅳ>



오늘날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는 플라톤의 이론 중에 이데아론이 있다. 이 이론은 오늘날 미학에서 '오브제'라는 현상에 대한 개념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오브제는 영어로는 object이고 프랑스어로는 objet가 된다. 우리말로는 대상, 혹은 물건쯤이 되지만 미술에서는 '미적 감수성과 향수를 일으키는 대상'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책상이 있다' 하면 그것은 실상이 아닌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현상을 넘어선 이데아라는 진실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구조 속에도 그와 같은 면이 없지 않다. 그 예로 수미단을 들 수 있다. 수미단(須彌壇)이란 대웅전의 불단(佛壇)을 말하는데, 수미산을 본떠 만들어졌다 해서 수미단이다. 수미산은 세계의 중앙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수미산은 아홉 산과 여덟 바다 가운데에 있다. 고대 인도의 우주관에 따라 맨 꼭대기에는 제석천이 머물고 그 아래 33천으로 구성된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금륜, 수륜, 풍륜 등이 자리잡는다고 보았다. 수미단, 즉 불단의 위에는 본존이 좌정하고 그 위에는 닫집의 천개를 만들어 화려하게 치장하였다. 천개에는 보상화문과 연꽃무늬를 정교하게 조각하여 천우보화(天雨寶花)를 상징하였다.

수미단은 현상적으로는 입체 조각이지만 개념적으로는 회화이다. 여기에 본생담이나 불전설화, 그리고 경정의 사상과 나아가서는 불법의 적실한 뜻을 담은 불교의 이야기가 담긴다. 결국 오브제와 장엄과 본생담, 설화 등을 통하여 유추될 수 있는 이데아가 거기 있다는 것이다. 수미단에는 꽃, 새, 짐승이나 길상동물, 구산 팔해의 길짐승과 날짐승, 물고기, 설화동물 및 스님, 동자승, 비천상, 도깨비 등도 나타난다. 나아가 당초, 보상무늬 등과 함께 연화무늬, 안상무늬, 구름무늬, 만자무늬 등 연속무늬를 간결하게 구성하기도 한다. 법계의 만유라 할 만하다. 그 만큼 폭넓은 조형현상과 사상의 조화를 보여주는 도상인데, 그 같은 동질성을 마티스의 종이조각에서도 본다.

마티스는 20세기 프랑스 화가 중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라고 일컬어진다. 다리파라고도 불리는 브뤼케 그룹과 청기사 그룹을 거느린 야수파 운동의 지도자였으며, 단조로운 색면과 굴곡이 심한 윤곽선을 바탕으로 하여 색채의 표현력을 극대화했다고 평가된다. 사실 마티스는 색종이 그림이라고도 불리는 이 그림작업을 위해 순색에 가까운 과슈를 평평하게 칠하여 말린 종이를 사용했다. 즉, 화방에서 살 수 있는 색종이가 아니라 자신이 칠한 색종이였다. 그런데 실제 마티스가 오리는 것은 종이겠지만 이 오린 종이가 만들어내는 조형은 전통적인 기준으로 보면 조각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는 마티스의 종이 오리기를 조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마티스가 종이 오려붙이기를 통하여 회화적인 성취, 즉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산드로 보티첼리를 대립시켰던 문제를 해결했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마티스는 종이를 오려붙임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단순화와 생략을 통해 이미 확립된 마티스의 세계는 자연의 특성을 파괴하지 않고 동시에 자연의 이미지를 단순화하면서 삶의 기쁨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또 하나, 마티스의 종이 오려붙이기에 대하여 회화나 조각으로 분류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당시 미술계의 풍조와도 연관이 있다. 마티스뿐 아니라 피카소나 드가 등은 화가로 활동하면서도 뛰어난 조각을 남겼다. 자코메티나 헨리 무어 등은 전통 조각가이면서 화가보다 우수한 소묘나 회화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서양의 이와 같은 현대의 불이(不二) 현상은 우리의 수미단에서 이미 해결되고 있었다. 수미단은 입체로 표현된 그림이다. 많은 수미단에서 음각, 양각, 부조를 이용하든 혹은 투각 기법을 도입하든 그것은 이미 조각이 아니라 그림이기 때문이다. 마티스의 종이 오리기는 입체로 표현된 그림이다. 그렇다면 수미단과 마티스의 종이 그림이 뭐가 다른가? 엄밀히 말해서 동양에서 술이부작이라고 할 만큼 전례와 전거에 의존한다면, 서양 종교에서는 창작의지로 접근한다. 반면 그 둘을 하나로 묶는 것이 있다. 바로 아그랍음의 불이성(不二性)이다. 불이라는 용어는 선화(禪畵)에서 남종 문인화적 요소와 북종 화원화적 요소라는 이원적인 요소가 원융무애(圓融無厓)하게 조화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나타나는 것이 발묵일격(潑墨逸格)의 면과 선이었다. 발묵이란 수묵의 피어남이요, 일격이란 초월적인 경지이다. 문인화에서는 여백을 기운생동과 기운이 깃들이는 장소로 생각하는데, 이 여백에서 발묵과 일격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구현된다는 것이 불이성의 의미이다.

다시 말하자면 플라톤의 이론을 만족시킬 만큼 현상과 개념을 관통하는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수미단이요, 종이 조각이라는 것이다. 만약 수미단을 마티스의 그림에 옮겨놓는다면 어떨까? 그리고 마티스의 종이 그림을 한국의 사찰 수미단에 장식한다면 어떨까? 무엇으로 그러한 변화를 이룰 것인가. 바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이 땅만의 아그랍음을 감지하는 순간부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 고구려의 <현무도>와 에른스트의 <인간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위대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 중에서도 <사신도(四神圖)>가 특히 눈부시다. 특히 강서대묘는 <사신도>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환상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사신이란 동 청룡(靑龍), 서 백호(白虎), 남 주작(朱雀), 북 현무(玄武)이다. 전국시대부터 진한시대에 걸쳐 정착된 것으로 보이며, 동서남북의 사방에서 우주의 질서를 진호(鎭護)하거나 죽은 자의 영혼을 수호하는 상징적인 동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사신도>는 고구려 벽화의 정채 있는 부분이지만 <사신도> 중에서 가장 아그랍은 그림은 단연코 <현무도>이다. <현무도>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북방을 수호하는 지신이나 수신으로 나타난다. 현무란 거북과 거북의 속성을 말한다.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서도 통구 4호분과 5호분에는 해와 달의 상징을 이고 있는 일신, 월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일신과 월신의 하반신은 용이나 뱀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어서 <현무도> 역시 단순히 거북과 뱀이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아닌 또 다른 모습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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