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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가지 테마로 보는 우리미술

김경자 지음 | 다른세상
단청이나 <현무도>와는 다른 의미에서 가장 한국적인 그림으로는 <수월관음도>를 꼽고 싶다. 우리의 <수월관음도>는 서양의 성모상과는 전혀 다른 아그랍음의 표징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 소개되는 고려불화의 거의 대부분은 일본에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몇 점은 사실 고려불화에서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다. 한국에도 물론 국립중앙박물관과 호암미술관, 그리고 용인대학교에 몇 점의 고려불화가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일본에 소장된 고려불화를 대적하기에는 수적으로나 대표성에서 지극히 열세이다. 안타깝게도 고려불화는 일본인에 의해 수집되고 소장되어 평가돼 왔으며 앞으로도 그 추세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무엇이 그토록 고려불화에 이끌리게 하는가? 분명 그것은 아브락사스 같은 이중성 때문일 것이다. 아브락사스(abraxas)란 단어로 보이는 그리스 문자들을 나열한 것으로서, 주술적 효과를 노려 부적이나 장식물에 새겼다. 이집트에서 아브락사스는 최고신으로 숭앙되었으며, 헤르만 헤세는 알을 까고 비상하는 새로 보고 이 새를 이상을 향하는 열정의 신으로 보았다. 헤세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신적 인간상은 남녀의 양성이 원융한 아브락사스적인 인격체로 표상되고 있다. <수월관음도>는 언뜻 보면 여성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여성적인 얼굴에 수염이 그려지기도 하여 양성의 모습을 띠곤 한다.

그렇다면 <수월관음도>는 왜 그렇게 양성적인 모습으로 제작되었을까? 간단한 이유를 들자면 우선, 대승경전에서 관음보살에 대한 구체적인 성징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지역 혹은 경전의 해석방식에 따라 남성으로 인식하거나 여성으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관세음보살'이라는 명칭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수월관음도>는 장르로 보아 엄연한 회화인데 공예라는 성질이 그 속에 들어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장르가 다른 장르에 들어가면 부조화의 조화를 이루어 눈에 확연히 드러나거나, 아니면 부조화를 이루어 전혀 예술적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수월관음도>에 내재된 공예성은 회화성과 완전한 합일을 이루어 원융하게(한데 통하여 아무 구별이 없다는 뜻) 자리하며, 이는 곧 회화의 극치로 여겨진다. <수월관음도>는 이를테면 다름의 원융이다. 이 같은 다름의 원융, 합일이 가우디의 건축에서 발견된다.



가우디는 19세기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건축가이다. 그 중에서 <성가족성당>은 가우디가 일생을 바쳐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만다. 1926년 어느 날 저녁기도를 하러 가다가 전차에 치어 죽은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 일흔다섯 살이었다. 이 작품이 우리 나라에서 큰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모사품 전시회에서였다. 나는 바르셀로나의 실물보다 오히려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의 모사품으로 봤을 때 차분히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매번 볼 때마다 다름을 맛보는 것이 인간의 시각의 한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에 비친 역광의 모습, 조개껍질 공예품 같은 정면, 내부 장식 등 갖가지 모습을 보았지만 어떤 것을 보아도 모두 공예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공예성을 함축하고 있는 <성가족성당>은 민족적인 각성과 구조해석의 기법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으로 평가된다. 투각 세공으로 장식한 높은 첨탑과 함께 포물 아치로 이루어지는 독특한 지지구조는 '곡선은 신의 것이고, 직선은 인간의 것이다'라는 가우디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가우디의 건축이 매우 기괴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가우디 건축의 원리와 요소, 사상들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들을 나타난 그대로 보면 마치 회화와 공예가 한 건축에 혼용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고 보면 회화 속에 공예가 들어 있거나 공예 속에 회화가 들어 있어서 공존관계를 이루는 그 표상 방식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우디의 건축과 마찬가지로 <수월관음도> 역시 복잡한 사상과 시대정신, 그리고 민간신앙이 결집된 것이지만 가우디 건축과 <수월관음도>는 다른 장르를 수용한 점에서는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수월관음도>에서는 회화와 공예가 둘이 아니다. 즉, 회화가 공예이며 공예가 회화여서 불이미(不二美)의 극치를 이루지만, 가우디의 건축물은 다름의 상호보완을 보인 합일체의 극치이다.서양의 그림을 보면 다 그린 뒤에 '내가 이 그림을 그렸노라' 하고 사인을 한다. 그래서 사인은 작품의 가장 정채(精彩) 있는 부분이 된다. 반면에 동양의 그림에서는 마지막으로 점을 찍는다. 낙관은 동양화에서 또 하나의 여백이다. 그런 배경에서 동양화가 성립되기에 제발(題跋:제사와 발문)과 함께 낙관을 칠 수 있다. 그래도 그림은 훼손되지 않는다. 이미 화가가 찍은 마지막 점에서 작품은 생명을 얻어 스스로 자기 성을 쌓고 유유자적하기 때문이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점은 그 자체가 명사로서 오브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동사가 되기도 한다. 점이라는 것이 점이기도 하고 점을 찍는다는 말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이 점이란 점정(點睛)에서 보듯 인물화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인물화를 그릴 때야 인물의 눈이 그림을 죽이고 살리는 관건이 된다. 산수화도 마지막 태점으로 인해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산수화의 태점은 인물화에 있어서의 눈동자와 같다. 태점(苔點)이란 땅과 하늘을 구분하기 위해 먼저 수묵담채로 경계면을 만들고 그 위에 준찰을 따라 점을 찍는 것을 말한다. 인물화의 점정과 다른 것은, 점정은 오직 눈동자에만 점을 찍어 작품의 완성도를 극대화하지만 산수화의 태점은 우주의 기에 눈을 찍는 것과 같다고 할까.



김명국의 <달마도>는 인물화의 점정이라기보다는 초월적 의미의 인물에다 태점을 찍은 것이라 하겠다. 김명국은 도화서 화원을 지냈으며 두 차례에 걸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이 중 <달마도>는 김명국이 통신사로 일본에 갔던 해 일본인의 요청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이후 일본에서 유전되던 것을 해방 후 다시 사들였다. <달마도>의 굳세고도 거친 준법, 분방하게 가해진 준찰( 擦), 또한 전신사조(傳神寫照)의 화법과 기운생동(氣韻生動)의 필의를 잘 보여준다. 전신사조란 그려지는 형체에 비추어 정신을 전한다는 말이다. 기운생동은 그려진 그림에서 살아 있는 듯한 필치와 의취(意趣)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달마도>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 눈에서 어떤 공허함을 보았다.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무서운 속도의 시선이 거기 있었다. 그리고 곧 반 고흐의 <자화상>이 떠올랐다. 눈의 정기를 표현한 김명국이나 고흐는 그 작품의 깊이가 막상막하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김명국의 <달마도>는 반 고흐의 <자화상>이 아니다. <달마도>의 눈동자는 고흐의 눈동자가 아니다. 달마는 태어난 우주와 교감한다. 마치 우주 전체가 점을 찍는 그 점정의 순간에 멎은 듯 핑핑 소리가 나도록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눈동자이다.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렘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한 화가라 일컬어진다. 그는 뚜렷한 윤곽선으로 둘러싸인 형체, 격정적인 붓터치, 강렬한 색채 등을 통하여 표현주의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고흐는 세잔, 고갱 등의 화가들과 함께 후기인상주의로 분류된다. 후기인상주의란 용어는 영국의 로저 프라이가 붙여준 명칭이다. 밝은 색채, 붓터치를 살리는 묘법, 전통적인 주제로부터 탈피 등의 공통적인 특징 위에서 인상주의보다 항구적인 회화적 질서, 자연 속에 내재하는 굳건한 조형적 질서, 그리고 20세기적인 시각을 탄탄하게 구성했던 화가들이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고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슈퍼스타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좋아하는 화가를 한 사람만 꼽으라면 80퍼센트는 고흐를 든다. 그러나 고흐의 작품에서 많은 사람들은 불행을 읽는다. 나처럼 죽음을 예고하는 눈동자를 읽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불행을 공감할망정 그것 때문에 고흐를 불안하게 생각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화상>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마지막 대화장소이다. 그러나 김명국은 우주의 순간과 영원을 한꺼번에 받아들인다. 제행(諸行) 무상(無常)이라,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은 무상하지만 그 무상까지 초월하는 곳에 영원의 자유가 존재하는 것이니 그렇게 한 우주를 열어젖히는 것이 김명국의 <달마도>요, 달마의 눈동자였던 것이다.생명의 탄생을 주제로 다룰 때 동양과 서양의 사상은 동질성을 보이다가도 다양한 시각차이를 보인다. 사임당의 <초충도>에서 수박이 씨를 토하는 장면과 칼로의 <나의 탄생>이 바로 동·서양 정신세계의 차이를 여지없이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신사임당은 사대부 부녀의 덕행과 재능을 겸비하였을 뿐 아니라 율곡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널리 칭송받는, 어머니상의 귀감이다. 사임당이 칭송받는 것은 모법이 될 만한 여성이라는 사실 이외에도 그 자신이 위대한 여성이기 때문이다. 조선이라는 봉건 유교사회 속에서도 교양과 학문 및 예술적 재능을 한껏 발휘했을 뿐 아니라 조선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뛰어넘어 21세기 밀레니엄형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 선구자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임당은 일곱 살 때 안견의 그림을 스스로 사숙(私淑)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포도, 묵죽(墨竹), 묵매(墨梅), 초충(草蟲) 및 난초와 산수를 즐겨 그렸을 뿐 아니라 자리(紫鯉), 노안(蘆雁), 연로(蓮鷺), 요안조압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남겼다.



사임당의 <초충도>는 가지, 수박, 포도 등을 소재로 하여 우주의 생명을 그린 그림이다. 수박을 그리되 수박 하나가 아니라 수박밭을 그렸으며, 또한 수박밭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우주 속의 수박을 그렸다. 왜냐하면 동양화에서 <초충도>는 단순한 사실묘사가 아니라 이름과 생명을 지닌 생명체 자체를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초충도>는 이름 그대로 풀벌레 그림이다. 그의 <초충도> 가운데 하나인 <수박과 들쥐>는 몰골법과 구륵진채를 적절히 이용한 작품이다. 즉, 수박과 들쥐는 윤곽선 없이 묵선으로만 그리고(몰골법), 수박잎과 나비는 윤곽선을 그린 뒤 안쪽에 채색을 함으로써(구륵진채) 생동감을 실어주었다. 수박이 놓여 있는 땅에는 수묵으로 먼저 바탕을 깔고 태점을 찍어 안정감을 주었으며 주변에 화초와 곤충들을 그렸다. 이 그림을 보면 들쥐가 갉아먹은 수박이 마치 씨앗을 뱉는 것처럼 그려져 마치 수박이 스스로 생명을 토해내는 듯하다. 수박 씨앗 중에서 다행히 들쥐의 시신을 피할 수 있었던 몇 개는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수박씨는 자신의 생명을 들쥐의 이빨에 온전히 맡겼으니 그 얼마나 처절하고 가슴저린 운명이겠는가! 그와 같은 고통의 절정을 프리다 칼로의 작품 <디에고와 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자극적인 장면과 강렬하고 화려한 색조의 자화상으로 유명하다. 칼로는 기교가 뛰어나다기보다는 솔직한 자아표현과 힘있고 영감에 찬 색채와 구도 등을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개발한 화가로 평가된다. 죽음에 이를 만큼 고통스러운 수술과 여섯 살에 걸렸던 소아마비 그리고 허약 체질과 평생을 불구로 지내는 고통, 유산, 남편의 바람기 등을 섬뜩하게 표현한다. 특히 칼로의 예술은 끊임없는 자기분석을 통해 고통받는 자아의 문제를 다루었으며 그 상징성은 멕시코 혁명 후 식민지 시대의 잔재를 청산하고 멕시코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나간 기념비적 성과로 인정받았다. 그 고통스러운 생애가 담긴 가장 극적인 작품은 1943년 <테우아나 민속의상을 걸친 자화상>이며 1949년 <디에고와 나>에서 그 절정에 이른다. 그 이중적인 처절한 성격묘사 때문에 내가 '아그랍다'라고 서슴지 않고 표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임당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한국적인 아그랍음이라기보다는 고통을 초월한 평화의 의미를 함축한 아그랍음이다. 칼로에게서 보이는 양면성은 고대 멕시코 신화에서 비롯된다. 낮과 밤, 태양과 달, 어두운 것과 밝은 것, 생명과 죽음 등의 효소는 동양의 음양을 연상케 한다. 고대 멕시코의 원주민들이 아시아에서 건너간 몽골족이라는 인종학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칼로의 작품에는 우리가 오늘날 동양적이라 일컫는 음양사상 등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담겨 있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아마도 그러한 동양적 배경이 유추될 수 있기에 칼로의 그림에서 아그랍다는 표현이 가능했을 것이다.



신사임당도 괴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대신 자연스럽고 즐겁게 어우러지는 소재와 기교를 통해 고통 속에서 세계와 합일되는 우주를 그렸다. 반면 프리다 칼로는 고통 그 자체를 공중에 띄우듯이 그려냈다. 그것이 동과 서의 차이일 것이다. 독수리처럼 강인하고 뱀 같은 지혜가 있으면서도 비둘기처럼 보이는 아그랍음은 서양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칼로의 그림에서 아그랍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조상의 원류라 할 수 있는 몽골로이드 문화에서 칼로의 예술과 사상이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우리 나라 사람들은 죽음을 <감로탱>의 그림처럼 생각한다. 바꿔 말하면 <감로탱>이라는 그림은 우리 백성들이 생각하는 죽음에 대한 관념을 불교의 도상양식을 빌어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감로란 아귀 혹은 지옥 중생에게 감로수(甘露水)를 베푼다는 뜻이지만 원래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감로의 의미가 <감로탱>에 쓰이면서 지옥도의 의미를 띠게 되는데, 이는 지장사상과 연관이 있다. 지장보살은 석가세존이 입멸한 뒤로부터 미래의 미륵불이 세상에 다시 올 때까지, 즉 부처가 없는 이 세상에서 육도의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이다. 석가세존이 살아계실 때 그 뜻을 위촉받은 지장보살은 매일 새벽 중생의 삶을 관찰하며 특히 지옥도에 빠진 중생을 교화한다고 했다.



<감로도>, <감로탱> 혹은 <감로왕도>라 부르는 그림은 불교의 육도, 즉 여섯 세계 가운데 아귀의 세계를 묘사한 불화를 가리킨다. 여섯 세계란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계를 말한다. <감로도>는 삼단으로 구성된다. 상단에는 감로왕여래 등 칠여래상을 중심으로 <아미타극락래영도>와 인로왕보살이 연을 타고 있는 <극락접인도>를 도설하고, 중단에는 칠여래상의 성반과 보살이나 신중이 퇴공을 받는 장면, 하단에는 아귀와 함께 지옥과 현실의 고통을 <육도도>라는 이름으로 묘사한다. 이 가운데 제일 재미있는 곳이 역시 하단이다. 하단은 산 사람들이 추측하는 지옥의 풍경과 당시의 시대상과 세태를 잘 보여주는 풍속도나 민초들의 생생한 모습이 그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장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마치 결혼식 그림처럼 재미있다. 바로 이러한 불이성, 중화성, 노련, 유현성으로 인해 이 그림은 아그랍다. 불이성이란 저승이 이승과 다름없다는 것이요, 중화성이란 그토록 지독한 지옥풍경인데도 흥겹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노련은 <감로도>란 이름의 그림에는 한결같이 어수룩한 상황 설정이 순진한 아이들의 동작 같음을 보인다는 것이요, 유현성이란 오늘날의 디자인처럼 단순화하여 그려진 인물과 채색인데도 깊은 회화적 풍취가 배어나온다는 말이다. 이 모든 말을 모두 모으면 아그랍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왜 지옥 풍경을 그린 <감로탱>이 이렇게 아그랍을까? 그것은 지옥사상이 반어적으로 극락왕생사상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감로탱>은 산 사람들이 산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교훈을 주어 살아 있을 때 조그만 악업이라도 쌓지 못하게 하려는 바람과 신앙적 목적을 담고 있다.



서양의 미켈란젤로 역시 <최후의 심판>에서 지옥을 그렸다. 그것은 끔찍한 지옥이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산 사람의 지옥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지옥이다.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을 그린 곳은 시스티나예배당이다. 시스티나예배당은 로마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의 바티칸 궁에 자리한다. <지옥도>는 단테의 『신곡』에 묘사된 최후의 심판을 4등분하여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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