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노쿠니 어린이 마을
호리 신이치로 지음 | 민들레
입시교육에서는 구체적 생활에서 동떨어진 추상적인 지식 암기가 강요된다. 아이들은 창조적인 지적 체험의 기쁨을 알지 못한 채 성장한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천해서 확인하고, 잘 안 될 때에는 가설을 다시 세우고 검증하는 경험이 매우 부족하다. 그 결과 공식을 잊어버리면 속수무책이 되고 입학시험에 합격한 순간 그 동안 축적해 왔던 지식은 잊어버리고 마는 대학생이 된다.
키노쿠니에서는 오히려 구체적인 작업이나 실제적인 과제에 몰입함으로써 삶의 기쁨을 맛보게 하고 정서적 해방과 안정을 꾀하고 창조성이나 탐구능력의 기초를 길러 주려 한다. 그 결과 살아있는 폭넓은 지식이나 기능을 몸에 배게 하는 공부가 되는 것이다. 체험학습의 원칙은 도덕성이나 사회성을 기르는 데도 적용된다. 자치적인 공동생활을 중요시하는 것이 그것이다.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은 마음과 마음의 교감을 희생하면서까지 극심한 경쟁으로 치닫는다. 이래서는 민주사회에 적합한 서로 존중하는 인간관계나 생활태도가 길러지기 어렵다. 우리 학교의 아이들과 어른들은 더불어 사는 기쁨을 맛보면서 서로의 욕구를 조절하고 힘을 합치는 일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배워 간다.·교육평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 교육에서 평가의 대상은 아이가 아니라 교사 자신이다. '잘 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를 조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더군다나 선별작업이나 서열화를 위해서도 아니다. 평가의 본래 목적은 교사가 자신의 교육활동의 성과를 점검하고 자기의 계획이나 방법에 대해 반성하고 한층 더 충실하게 하기 위해서다. 만일 어떤 교실에서 수학 평균점이 65점이라 한다면 그것은 아이들이 65점이라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가르치는 방법이 65점이라는 뜻이다. 키노쿠니 학교의 이상은 '자유로운 아이'다. 따라서 평가의 목적은 아이들이 우리가 뜻하는 대로 자유롭게 자라고 있는가 하는 관점에 서야 한다.
·자유로운 아이로 자라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 키노쿠니는 '새로운' 학교다. '자유로운 아이'라는 새로운 이념을 내 건 학교. 그러니까 이 학교의 교육 성과는 아이들의 지식의 양으로는 판정할 수 없다. 키노쿠니의 교육 평가는 아이들이 '자유로운 아이'로 자라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관점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우리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자유로운 아이는 앞에서 말한 대로 '감정적으로 해방된 아이' '자유로운 지성을 발달시키고 있는 아이' 그리고 '민주사회에 적합한 도덕성을 기르고 있는 아이'이다. 아무튼 아이들이 "산다는 일은 아주 멋지다. 인생은 이렇게 즐겁다."고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가장 큰 것이다.· 인류생활의 기초적인 것, 특히 의식주에서 주제를 찾는다. 인류가 쌓아온 여러 가지 분야의 과학이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뿌리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적 흥미를 자극하고 탐구 의욕과 흥미를 기르려는 것이다.
· 몸으로 하는 작업이 중심이 되거나 출발점이 된다. 인류가 축적한 지식이나 기술은 본래 구체적인 행위이거나 실험결과로 창조(획득)된 것이다. 최근에는 통합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인간', '평화'같은 주제를 설정하고 폭넓게 학습하는 방법을 도입하는 학교도 드물지 않다.
· 아이가 흥미를 느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지적 탐구이다. 활동 그 자체에 내재적 가치가 있고, 아이가 그런 느낌을 실감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활동의 유용성이나 필요성이 아이에게 생생하게 느껴질 때, 비로소 아이의 지적 탐구 의욕이 솟구치게 된다. 단지 몸이나 손과 발을 쓰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 교사의 주도와 관리에 의한 신체적 작업에 그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 이미 있는 지식을 활용하여 자기 자신의 지식을 창조한다. 수행과정에서 이미 있는 지식이나 기술을 도구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또 그 성과로 창조된 지식이나 기술을 여러 방면으로 펼쳐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지식이나 기술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다. 프로젝트를 통해 축적된 지식이나 기술은 보통 학교에서 전달받는(주입식) 지식이나 기술과는 달리 아이 자신이 창조한 귀중한 재산이다.
· 활동의 선택이나 모둠 편성에 유연성을 갖게 한다. 프로젝트가 자발적인 지적 탐구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든 교사든 제한에서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활동의 종류가 풍부해야 한다. 나이에 따른 학급 편성보다는 아이의 개성이나 관심, 과거의 경험을 고려해서 그룹을 짜는 일도 필요하다. 또한 평가의 관점도 개별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어른들도 즐거운 학교아이들이 위험하다
'기본으로 돌아가라'의 참뜻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아이들참된 사회성의 기초는 놀이를 통해 길러진다행함으로써 배운다
교육은 무엇을 목표로 하나?평가의 관점키노쿠니에 들어온 이유 - 다니모토자기결정·개성화·체험학습첫 번째 이유는 수업방식이 많이 달라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도 하고, 모두가 어떤 일을 할 때 함께 생각하기도 하여 아주 재미있는 일뿐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밥이 맛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친구들이 모두 재미있어서 아다치 군이나 사가 군과 함께 마음껏 웃곤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입학한 것입니다. 끝.사무실은 언제나 떠들썩하다. "이 곳은 키노쿠니의 직원실입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곳입니다. 특히 겨울이 되면 따뜻해서 아이들이 떠들썩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만든 학교 소개 비디오의 한 구절이다. 키노쿠니의 사무실, 곧 교직원실은 일반 학교와는 천양지차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하늘이고 어느 쪽이 땅인가? 우선 아이들이 "실례합니다."라든가 "방해해서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전혀 하지 않고 마구 들어온다. 우르르 들어와서는 혼자서 의자를 두 개씩이나 차지하고 책을 읽거나 장기를 두거나 신문을 읽는 등 여러 가지를 한다. 조용히 무엇인가를 하고 있으면 그래도 좋은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얌전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덜컹 덜컹…. 슈-웃, 문이 닫힙니다." 교무실은 히로도가 전차놀이 하는 곳이다. 덜컹 덜컹 커다란 사물함을 흔들어 대는 아이가 있다. 그 사물함은 바로 얼마 전까지 체육관에서 쓰던 것으로 유키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 기구였다. 컴퓨터를 만져 보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 그밖에 왠지 자기도 이유를 모르지만 그저 교무실이 마음에 드는 많은 아이들. 이런 이유로 교무실은 날마다 시끌벅적하다. 간혹 아무도 안 오면 조용해서 일은 되지만 왠지 마음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과연 어느 쪽이 하늘이고 어느 쪽이 땅일까?왜 사각형은 '가로 X 세로'이고 평행사각형은 '밑변 X 높이'인가? 어째서 삼각형은 2로 나누는가? 그런 질문은 잊혀져 있다. 그저 공식을 외우고 계산하기에만 열을 내고 있다. 아이들은 공식을 암기하고 수를 조작할 수 있지만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일은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공식을 잊어버리면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식이 아니라 왜 그런 공식이 나오게 되는가를 아는 일이다. 설혹 공식을 잊어버렸더라도 그 공식을 끌어낼 수 있는 일이 중요하다.
보통 학생들이 강요받고 있는 계산은 계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계산방법이다. 그러나 키노쿠니에서 계산은 도구이다. 자기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해 계산 지식을 이용하는 것이다. 지식이나 기술은 본래 인간이 더 윤택하게 살 수 있도록 배양되고 그 뒤에 생활에서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다."기초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s)!"라는 운동이 있다. 기초학력을 중요하게 생각하자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기초학력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만일 계산의 정확성이나 신속함이 수학의 기초학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수학 본래의 매력을 송두리째 없애버리는 것이 아닐까? 계산보다 더 기초적인 것은 수로 생각하는 태도와 능력이다. 국어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쓴 문장을 암기나 어떤 명작의 감상보다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말과 글을 사용해서 자기를 표현하거나 마음을 주고받는 즐거움이 아닐까.
다시 한번 말하겠다. 키노쿠니에서 수학 교육의 기초라고 하는 것은 수나 도형을 사용하는 즐거움과 재미에 있다. 국어교육의 기초는 말을 써서 하는 표현과 교류의 즐거움이다.자기결정을 중요시한다개성을 존중한다체험과 일을 학습의 중심에 둔다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하는가놀이는 또한 다른 아이들과 마음의 교류를 갖는 데서 오는 기쁨을 맛보게 하고, 이것을 기초로 해서 참된 사회성이 길러진다. 보통 사회성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것은 규칙을 지킨다거나 협동심을 길러야 한다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나 단지 규칙을 지킨다거나 다른 아이와 잘 동조한다고 해서 참된 사회성이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약속이나 규칙이 있는 것이 좋다'고 하는 실감이 중요하다. 규칙이 생활을 유쾌하게 하고 충실하게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야만 비로소 그 규칙들을 자발적으로 지키게 된다."사람이 모든 인습과 미신과 위선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비로소 처음으로 교육받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명령에 따르기는 쉽다. 자기 자신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자기 길을 걸어가면서 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사는 일, 그것이 이상이다." 이것은 니일의 말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이런 시대에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이들이 진정한 자유인으로 자라도록 돕는 일이 아닐까? 안일하게 사회풍조에 동조하고 비판 없이 권위에 의지하고, 피상적인 현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어서는 자립적인 인간으로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인 자세로 늠름하게 서서 마음과 마음의 교류를 소중히 하면서 사는 태도와 능력을 기르기를 바라고,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곧 감성 면에서나 지성 면에서나 사회성 면에서나 진정 자유로운 인간으로 자라는 일을 돕는 일을 목표로 해야 한다.우리가 현대 학교 교육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학교는 교사중심주의(관리주의), 획일주의, 교과서 중심주의로 일관되어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좀 다른 학교생활을 누리게 해 주고 싶다.' 키노쿠니는 이런 생각을 가진 교사와 부모들이 시작한 학교다.지식이나 기술을 창조하거나 활용하는 기쁨을 빼앗기고 기계적인 훈련이나 암기를 위한 암기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결국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까.
아직 봄이라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춥지도 않고 맑게 개인 날이었다. 교문을 열자 수험생들이 몰려들어 왔다. 수험생들이 저 길 건너에서 곧장 교문을 향해 오고 있었는데, 교문 앞 도로는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의 통학길이었다. 그러니까 바로 문 앞에서 초등학생들과 수험생들이 교차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생들에게 길을 양보하는 수험생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어린 초등학생들이 멈춰 서서 수험생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날이다. 머리 속은 시험 생각으로 가득 차있을 것이다. 주위로 눈이 돌아가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학 수험생이라면 이제 어른이라 해도 좋은 나이가 아닌가? 정말 긴급한 사태가 아니라면 어린아이와 부딪치려 하는데도 어른이 길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그것도 어쩌다 한두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학생들이 다 그랬다. 게다가 어린 학생들에게 길을 양보 받으면서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는 사람이 없다. 참으로 이상하고 등골이 오싹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심각한 것은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다. 한 개인으로서 성장하는 데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다. 아이들의 놀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 놀이의 가장 큰 매력은 자유로운 활동에 있다. 어른들의 지시나 여러 가지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이 주인공'으로서 마음껏 움직이는 기쁨. 그리고 그런 활동을 통해 여러 가지 지식이나 힘을 획득해 가는 만족감이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따라서 놀이에 대한 의욕상실은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인간의 가장 절실한 소망을 어린 시절에 이미 잃어버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키노쿠니에서는 강제는 물론 성급한 개입, 지시, 유도를 삼가고, 아이 자신의 발상과 실험 그리고 자기 평가를 중요시한다. 이런 관점에 서게 되면 당연하지만 실패도 중요한 권리로서 인정된다.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자기결정의 자유는 속임수다. 덧붙여 말하자면 어른들은 흔히 아이에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한다. 이 말은 상당히 비겁한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의 자유에 대한 책임은 교사와 부모가 져야 하는 것이 옳은 방식이다. 그것이 월급을 받는 자의 본분이고 아이를 낳은 자의 책임이다. 아이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할 때, 생각해야 할 또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아이의 자유를 인정하려고 한다면 우선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어른이 준비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이라고 한다면 평가기준을 가능한 한 다양하게 마련해 다양하고 풍부한 교육을 창조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물론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이라 해도 학습진도의 개별화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최근 자주 화제에 오르는 '개별학습'에서도 정해진 내용을 각 아이들의 진도에 따라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자칫하면 좋지 않은 능력주의에 빠질 위험도 있다. 획일적인 학습 내용과 개성 존중은 서로 모순된 것이다. 개성 존중 또는 개성화 교육이라 할 때는 학습내용의 다양화가 이론으로나 실천으로나 빠질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키노쿠니에서는 모두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좋은 것'으로 인정하고 그 아이의 고유한 장점이나 능력에 주목하고 이를 존중하려고 한다.공무점에서 하고 싶은 일키노쿠니에는 '선생님'이 없다
'선생님'이 없는 학교키노쿠니의 뿌리 -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학교 '서머힐'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 아이들의 환성이입학시험은 없다진짜 집을 지어 그 안에서 지내고 싶다체험은 학습의 보고기른다, 먹는다, 조사한다
콩 연구 - '맛있는 요리 만들기 모임'두부가 떠오른다!키노쿠니를 말한다
일년 동안에 온갖 일들이 있었습니다 - 사가우리는 남자도 여자도 모두 목수다 - 아다치우리 학교에는 '선생님'이 없다. 교사도 있고 기숙사 보모도 있고 교장도 있지만 아이들은 아무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처럼 키노쿠니는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어른들이 없는 신기한 학교이다. 이 신기한 문화는 십 년 전에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모임'이 만들어지고 어떤 학교를 만들까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던 무렵부터 다짐한 대전제이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하고 묻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교사의 권위는 어떻게 하나? 최소한 학생과 선생 구분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걱정하는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과 이렇게 관계를 맺으면서 교사로서 어렵다고 느낀 적은 조금도 없다. 어려움보다는 오히려 아이들과 같은 지평에 서서 서로 마음이 통하는 기쁨을 듬뿍 맛보고 있다.
학교의 교사를 꼭 '선생님'이라고 불러야만 하는 걸까? '○○씨'라고 부르거나 별명을 부르면 안 된다는 말인가? 재미있는 일로 보통 학교에서는 교사들끼리도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선생님'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사람' 또는 '높은 기량과 식견을 가진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젊은 교사가 교장이나 선배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장이 어린이들 앞에서 교육실습생인 대학생들까지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스꽝스럽다'까지는 아닐지라도 어딘가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도대체 권위란 무엇일까? 사전에 따르면 '상대방을 복종하게 하는 힘'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