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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쿠니 어린이 마을

호리 신이치로 지음 | 민들레
키노쿠니에는 '선생님'이 없다



'선생님'이 없는 학교




우리 학교에는 '선생님'이 없다. 교사도 있고 기숙사 보모도 있고 교장도 있지만 아이들은 아무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처럼 키노쿠니는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어른들이 없는 신기한 학교이다. 이 신기한 문화는 십 년 전에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모임'이 만들어지고 어떤 학교를 만들까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던 무렵부터 다짐한 대전제이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하고 묻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교사의 권위는 어떻게 하나? 최소한 학생과 선생 구분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걱정하는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과 이렇게 관계를 맺으면서 교사로서 어렵다고 느낀 적은 조금도 없다. 어려움보다는 오히려 아이들과 같은 지평에 서서 서로 마음이 통하는 기쁨을 듬뿍 맛보고 있다.

학교의 교사를 꼭 '선생님'이라고 불러야만 하는 걸까? '○○씨'라고 부르거나 별명을 부르면 안 된다는 말인가? 재미있는 일로 보통 학교에서는 교사들끼리도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선생님'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사람' 또는 '높은 기량과 식견을 가진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젊은 교사가 교장이나 선배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장이 어린이들 앞에서 교육실습생인 대학생들까지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스꽝스럽다'까지는 아닐지라도 어딘가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도대체 권위란 무엇일까? 사전에 따르면 '상대방을 복종하게 하는 힘'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무엇에 의해 따르도록 하는지에 따라 권위도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그 사람이 가진 물리적인 힘이나 그에 대한 공포, 불안에서 비롯하는 권위이고, 또 하나는 인품이나 역량이 자연스럽게 빚어내는 권위이다. 앞의 경우를 '외적 권위'라고 한다면 뒤의 경우를 '내적 권위'라고 할 수 있다. 외적 권위는 그 사람 자신의 역량이나 식견이나 성품에서 유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권위자 자신이 추구해서 스스로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권위자라는 사실을 끝없이 과시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사람들에게 심리적 효과를 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의식이 생겨난다.

한편 내적 권위는 그 사람이 스스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스스로 권위자임을 고집하는 일도 없다. 그러니까 마음이 편하다. 어떤 아이가 나를 두고 '바보!'라 불렀다고 해서 화가 나지도 않는다. 그 애가 나를 정말로 경멸하고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또 교사로서의 나의 기량이나 경험을 무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바보!'라는 말을 주고받는 가운데 신뢰관계로 뒷받침된 자연스러운 권위가 우러나게 되는 것이다.

키노쿠니의 뿌리 -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학교 '서머힐'



서머힐은 런던에서 동북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레이스턴이라는 시골에 있다. 5살에서 16살까지 모두 65명의 아이들밖에 없는 작은 학교다. 1921년에 세워졌으니 벌써 7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서머힐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학교'로 주목받아왔다. 무엇이 어떻게 자유롭다는 것일까? 우선 수업에 출석하느냐 안 하느냐가 완전히 아이들의 뜻에 달려 있다. 몇 년 동안이나 교실에 들어가지 않아도 강요도 설득도 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의사결정 방식이다. 교칙이나 행사 계획에서부터 작은 싸움을 해결하는 일까지 모든 사람이 모인 회의에서 의논하고 결정한다. 거기다 다수결로 정하는 경우에는 5살짜리 아이의 한 표나 교장 선생님이 한 표나 똑같은 힘을 갖고 있다. 이 학교에는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어른은 모두 '존'이나 '쟈넷'이라고 불린다.

'교사들 저마다 최선을 다하는 학교' 이것이 서머힐이며 교사가 중심이 되어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보다 공작(주로 목공), 미술, 연극, 댄스 같은 것들은 더 중요하게 여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전달보다 창조를 중시하는 학교다. 또한 서머힐은 학교라기보다는 오히려 공동체라 불리기를 좋아한다. 교과서나 노트로 하는 공부보다 나이, 역할(교사, 부모, 아이들), 성, 가정배경, 국적이 다른 일흔 명의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하는 가운데 서로 서로 배우면서 삶의 지혜와 사물을 보는 방식을 구축해 가는 것, 이것이 중요한 목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머힐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자유로운 학교'를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비판도 받았다. '제멋대로 학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젖혀두고라도 비교적 호의적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도, 그런 온실 같은 곳에서 자라 사회에 나갔을 때 곤란하지 않겠는가, 학력은 괜찮겠는가 하고 걱정들을 한다. 하지만 내가 조사한 바로는 졸업생들은 사회에 나가 충분히 훌륭하게 잘 살고 있다.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 아이들의 환성이




와카야마현 하시모토시 히코다니 51번지. "일본에도 서머힐과 같은 자유학교가 있었으면…."하던 바람이 이 곳에서 열매를 맺었다. 하시모토시는 와카야마현 북동쪽 끝에 있는 인구 5만 정도인 작은 시다. 하시모토 시에서도 가장 변두리에 있는 히코다니는 산 속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키노쿠니(나무의 나라)'라는 이름이 나타내고 있듯이 학교가 있는 곳은 숲이 많은 산골이다. 주위는 숲이 우거진 산으로, 사시사철 갖가지 들꽃들이 피고 휘파람새나 들새들이 운다. 이 곳에 오렌지색, 빨강색, 초록색 지붕의 목조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조금 떨어진 능선에는 빨강색 지붕의 건물이 다섯 채 서 있는데 이 곳이 기숙사다. 학교 건물은 모두 다섯 동, 그 중 세 동이 교실이고, 나머지는 식당과 체육관이다. 기숙사는 교실에서 걸어서 5분 정도 올라간 능선 위에 다섯 동이 나란히 서 있다. 모두가 나무로 지어진 목조건물이다. 교사(校舍)안의 칸 구분은 개방설계(Open Plan) 방식으로 되어 있다.

입학시험은 없다



키노쿠니는 아이의 '자기 결정'과 '개성'과 '체험학습'을 기본방침으로 하는 학교다. '이 학교의 분위기나 교육 방법이 마음에 든다'고 하는 아이, 그리고 학원의 이념과 방침에 전적으로 찬성해 줄 수 있는 보호자가 이 학교를 선택한다. 따라서 흔히 말하는 시험에 의한 선발은 하지 않는다. 이것도 서머힐과 같다. 또 이전 학교에서의 학교생활이 어떠했는가가 입학허가를 좌우하는 일은 없다. 그 결과 실제로는 지금껏 '괴로운 학교생활'을 해왔던 아이도 이 곳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키노쿠니에도 학부모 회의가 있다. 참가는 자유롭지만 대부분이 부모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명칭은 좀 특이해서 '히코다니 프로젝트'라고 한다. 키노쿠니가 학부모들의 모든 요구를 다 충족시켜 줄 수는 없으며, 그럴 힘도 없다. 또 우리들이 하는 방식이 완전무결하다거나 "교육을 모두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의도도 없다. 말하자면 키노쿠니는 백화점이 아니라 작은 전문점이다. "우리들의 특제 상품이 마음에 드는 분은 어서 오세요."라는 것이 기본 자세다. 특제 상품은 '자기 결정'과 '개성'과 '체험학습'에 의해 감성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자유로운 인간으로 자랄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이다.

키노쿠니의 어른들 - 이상에 얽매이는 사람은 사절



키노쿠니의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별한 자격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 교사 자격증이 있을 것 둘째, 자동차 운전면허가 있을 것 셋째, 배우자나 정해진 상대가 있을 것 넷째, 술을 마실 수 있을 것 다섯째, 이상(理想)이 높지 않을 것. 어느 것이나 절대 조건은 아니다. 그런데 마지막 조건은 매우 중요하다. '교육에는 격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라든가, '교사로서 하루라도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키노쿠니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또 '어떤 학교든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라든가 '최소한 이것만은'이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사람도 키노쿠니에서는 일하기가 힘들 것이다.

이렇게 '구속'이 너무 강한 사람은 아이들과 동료들에게도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장 나쁘다. 어떤 학교의 교사든 이상이 너무 높은 사람이나 이상이 너무 확고한 사람은 어느 쪽이나 다 힘든 존재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나는 키노쿠니의 어른들에게 자주 말한다. 항상 합격점을 받으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평균 70점 정도면 좋다고 하는 기분으로 해 나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오히려 조금씩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 가는 기쁨을 맛보는 편이 교사로서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키노쿠니의 실제 생활



·체험학습 주제에 따라 학급을 고른다 : 일반학교와는 달리 키노쿠니에는 '몇 학년 몇 반'이라는 학급이 없다. 1학년에서 6학년까지 연령의 아이들이 있지만 학급은 전부 4개밖에 없다. 키노쿠니에서는 교과서나 문제집을 사용하는 학습보다도 체험학습(프로젝트)을 더 중요시한다. 학급도 체험학습 주제에 따라 편성한다. 우선 연초에 교사 8명(강사 포함)이 프로젝트라 부르는 체험학습의 주제를 준비한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밭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목공일에 흥미가 있는 사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 원예를 좋아하는 사람 등 여러 부류이다. 그래서 비슷하게 통하는 주제를 가진 교사가 두 명씩 짝을 지어 하나의 학급이 이루어진다. 4월 초, 아이들이 담임들의 얼굴과 각 학급의 '프로젝트 주제'를 보고서 그 해에 자기가 활동할 학급을 고른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똑같은 한 표씩 : 회의에서는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모두 똑같이 한 표씩 행사한다. 만약 아이와 어른의 의견이 완전히 대립하게 되면 반드시 어른이 지게 되는 체제다. 그래서 어른들은 진지하게 회의에 참석하고 또 정성을 들여 토론을 해나간다. 적당히 출석해서 '교사의 말을 들어라'는 태도로 나오면 대개 패배를 맛보게 되어 있다. 이런 교사는 신뢰를 잃고 뒤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불행한 교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회의에서는 어린아이들의 다수 찬성으로 어른 편에서 보면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결론이 나오는 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심한 불편이나 위험이 없는 한 어른들이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불합리한 결정은 결국 곤란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때 다시 문제를 제기해서 논의하면 되는 것이다.

만들기를 즐기는 아이들, 공무점



'공무점이 뭐지?'




먼저 주로 내가 담임해온 공무점 학급의 활동을 소개한다(편집자주-'공무점'이란 집을 짓거나 수리하는 일, 이밖에도 목수 일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도맡아서 하는 가게를 일컫는 말이다).

공무점에서 하고 싶은 일



커다란 집이나 침대나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고, 무, 야채, 과일도 심고 싶고, 분수, 방갈로, 별장이나 작은 상자도 만들고 싶고, 나무나 꽃도 심고 싶고, 「월간 공무점」도 내고 싶고, 온실도 만들고 싶고, 생일축하를 위해 과자도 만들고 싶습니다(다케우치). 이 글은 2년째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공무점'으로 옮겨온 한 아이가 쓴 글이다. '모두'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먼저 '자기'를 소중히 하는 학교, 그 곳이 '키노쿠니'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도 참으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진짜 집을 지어 그 안에서 지내고 싶다



개교 이듬해 1학기, 공무점에 든 31명 아이들 가운데 '별장 만들기'를 선택한 아이들은 모두 10명(여자 4명, 남자 6명)이었다. 곧장 서로 토의에 들어갔다. 먼저 별장의 크기와 모양을 정한다. 마루바닥에 누워보기도 하면서 많이 의논한 끝에 사방 180cm, 곧 한 평 크기로 짓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은 꿈도 크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주의자이기도 한 것이다.

별장 만들기에는 진짜 목수가 등장했다. '호리공무점'의 호리 히도시라는 분이다. 학교에서 가까운 하시모토시에 사는 예순 가까운 베테랑 목수다. 칠판 위에다 기둥 골격 짜기 그림을 그리고 각각의 이름과 의미를 설명하고, 지붕의 기울기, 비스듬히 교차하기, 어긋매김의 방향까지 알기 쉽게 가르쳐주었다. 분명한 이미지가 떠오르자 아이들은 다소 힘이 들어도 참고 힘을 낸다. 듀이도 말했듯이 흥미와 노력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흥미를 느낄 때, 곧 마음과 대상이 확실히 서로 연결되었을 때 아이들은 힘든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롭게 실감하게 되었다. 듀이는 내가 이 학교의 이념이나 기본 방침을 정하는 데, 니일과 함께 많은 것을 가르쳐 준 미국의 교육학자다. 특히 프로젝트 수행을 중심으로 삼고 학습을 해나가는 방법은 그의 '행함으로 배운다(learning by doing)'는 이론을 응용한 것이다.

체험은 학습의 보고



· 프로젝트가 목표로 하는 것 - 이 별장은 작지만 아주 제대로 지어져 있다. 견학 온 사람들도 놀라며 감탄하면서도 "그렇지만…."하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간혹 있다. "분명히 훌륭하게 잘 만들어졌어요. 아이들도 즐겁게 작업을 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런 일만 하면 공부는 어떻게 하죠?" 키노쿠니가 체험학습 중심이라는 방침에 동조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키노쿠니의 생활과 학습의 기본 원칙은 '자기결정'과 '개성'과 '체험', 이 세 가지이다. 이 3대 원칙을 충분히 관철시키기 위해 설정한 학습형태가 바로 프로젝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학습 능력은 대체 어찌 되는가?"라는 의문에 제대로 대답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별장 만들기에서는 복잡한 계산을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별장 만들기를 하는 아이들은 머리로 계산을 하기보다 실천적으로 '해낸다'. 종이 위에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줄자로 직접 해낸다. 여기에서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아이들은 별장을 만들기 위해 계산을 하는 것이지 계산 그 자체를 위해서 머리를 짜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곧 목적은 별장을 만드는 데 있다. 계산은 그것을 위한 수단이다. 이러한 계산이나 사고의 결과로 얻어진 것은 그 아이 자신이 창조한 지식과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하는 기쁨을 알고 있는 아이는 동시에 자신감이 있는 아이이며 감정 또한 해방된 아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기른다, 먹는다, 조사한다



콩 연구 - '맛있는 요리 만들기 모임'




'맛있는 요리 만들기'는 이름 그대로 요리 만들기가 중심이다. 그렇지만 목적이나 방법이 요리교실하고는 크게 다르다. 분명히 요리해서 먹는 일이 중심적인 활동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목적은 아니다. '먹는다'고 하는 일,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생활 속의 이 일을 통해 생활의 다양한 면을 경험하고 여러 가지 자립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요리는 '통합학습'의 주제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키노쿠니의 '맛있는 요리 만들기'(이 모임 말고 다른 학급의 요리 만들기에서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떤 맛으로 할 것인가, 어떻게 즐기면서 먹을 것인가' 같은 것을 아이들이(어른의 도움말도 들어가면서) 결정해 간다. 실패하면 다시 시작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일반 요리교실의 요리 만들기에서는 실패하지 않도록 하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매우 부자유스럽다. 하지만 키노쿠니의 요리 만들기는 아이들이 확인하면서 그리고 실패하면 재도전하면서 해나간다. 과학적이며 자유롭다.

두부가 떠오른다!



4월이 시작되면 두 사람의 담임은 '좋아하는 요리 만들기'라는 것으로 한 해의 학급활동을 시작한다. 이 때 선택한 주제는 '콩 연구'('콩 시리즈'라고도 부른다)였다. 우선 먼저 두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처음에 교사가 미리 준비해 놓은 두부 만드는 집을 찍은 비디오를 함께 보았다. 아이들은 두부 만드는 사람의 생활을 보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아침에 엄청 일찍 일어나는 것이라든지 투박한 손에 흥미를 느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교실에서 자신들이 실제로 두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여하튼 간단한 예비지식을 머리에 넣고 작업을 시작한다. 어른들로서도 첫 경험이었고, 아이들에게는 아주 불안하기만 한 시작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생각지도 못한 사태가 차례차례 일어난다. 콩물을 태워버린 아이, 두부를 짤 때 데인 아이, 야단법석이다. 그러나 만들어진 것은 바람구멍 난 스폰지 같은 두부, 두툴두툴한 두부, 마지막에는 물 위로 떠오른 두부였다. "이게 뭐야?" 아이들은 이처럼 완전히 실패한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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