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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혁명

리저허우 지음 | 북로드
류짜이푸 : 미국에 온 후로 저는 20세기 문학, 특히 창조사의 혁명문학과 1930년대의 좌익문학, 옌안의 농민문학 그리고 해방 후의 사회주의, 현실주의문학에 대해 약간의 반성과 새로운 평가를 해 보았습니다. 다름 아니라 정치성이 너무 강하다 보니 문학이 정치와 동일시되고, 문학창작이 곧 정치 이데올로기의 전달이 되고 말았다는 점이지요. 사실 이것은 정치식 글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롤랑 바르트는 『글쓰기의 영도(Writing Degree Zero)』라는 책에서 정치식 글쓰기에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했는데, 하나는 프랑스혁명식 글쓰기로 이는 유혈혁명을 변호하는 저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식 글쓰기로, 이것이 진일보한 형태가 바로 스탈린식 저작입니다.

리저허우 : 정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문학마저 압도한 것이지요.

류짜이푸 : 「옌안 문예좌담회에서의 연설」은 정치와 문학을 구분하는 이원론을 비판하면서 정치일원론을 주장하여, 문학을 정치의 부속물로 규정하고 문학을 정치에 복속시켜 문학이 정치의 도구 또는 다른 형태의 군대가 될 것을 요구했습니다.

리저허우 : 저도 문학의 주체성을 논하면서, 현실적인 차원에 있어선 작가도 자기의 정치적 입장과 태도를 가질 수 있고 정치집단에 가입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적 인격을 가진 인간, 예술주체의 자격으로 창작에 일해야 한다는 겁니다.

리저허우 : 그런 관점을 지지합니다. 작가도 자신의 정치신앙과 태도를 가질 수 있지만 정치신앙으로 문학에 간섭하거나 문학을 대신해서는 안 되지요. 정치가 제대로 되어야 학술적 관점도 정확해지고 문학창작도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입니다. 저는 1955년에 쓴 글에서 요우궈언이 『굴원(屈原)』의 작품에서 '민(民)'자가 얼마나 나오느냐 하는 조사결과를 근거로, 『굴원』의 '인민성'을 설명했던 사실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황당하고 슬픈 일입니까?



류짜이푸 : 예술적 감각을 지닌 수많은 작가들이 일원론의 곤경에 빠져 있습니다. '사상진보, 예술퇴화'의 현상은 중국의 당대 작가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문학예술의 존재가치는, 그것이 역사의 차원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데 있습니다. 문학예술은 역사의 차원을 초월하여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역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만 자유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일원론은 이러한 거리를 없애고, 작가를 완전히 현실과 역사의 차원에서 묶어두려 하지요.

리저허우 : 역사의 요구와 정치의 요구는 둘 다 대단히 명확하여 모호함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문학예술은 필연적으로 모호함을 추구하게 되지요. 확실하고 명확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문예가 될 수 없습니다.

류짜이푸 : 제가「성격의 명확성과 모호성을 논함」이란 글을 쓴 것도 이런 논지를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문학이 입장을 확실하게 하고 태도를 분명하게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학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요구 하에서는, 모든 것이 대단히 명확하고 분명하며 투철해야 합니다. 정치적 도해가 예술적 감각을 대신하게 되면, 이건 당연히 퇴보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리저허우 : 트로츠키(러시아의 혁명가)는 정치와 예술의 이원론을 주장했는데, 정치적으로 매우 급진적이었고 두려운 인물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예술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류짜이푸 : 루쉰(근대 중국을 대표하는 문학가.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루쉰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空轉)이 없는, 현실에 입각한 강인한 사고가 뚜렷하게 엿보인다)도 처음에는 트로츠키를 소개하면서, 그의 문예사상이 비교적 관용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옌안 문예좌담회에서 한 연설은 바로 트로츠키를 비판한 것이었고, 루쉰도 마르크스의 계급론을 받아들인 이후부터는 정치적 태도가 분명해졌습니다. 사상이념이 예술적 감각을 압도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혁명문학의 소아병을 발견했던 인물이 바로 루쉰이었지요. 결국 그는 대문학가로서 문학에 대해 아주 깊은 인식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리저허우 : 중국 정부가 수립된 1949년 이후에는 또 한 차례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문학이론과 문학비평, 심지어 미학이론을 제시했지만 최소한의 예술적 감각도 갖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류짜이푸 : 정치일원론 이후 문예계에서 비평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정치의 표준으로 모든 것을 계량하려고 했지만, 예술의 영역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지요.

리저허우 : 예술감각이 없는 비평과 이론은 실제로 문학비평이나 문학이론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저 정치적 토벌이라고 하는 게 적당하겠지요. 저는 1956년에 처음으로 쓴 미학논문에서 문예비평과 비평가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날카로운 예술감각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류짜이푸 : 1949년 이후로 모든 작가들이 그들의 정치병독에 감염되어 피해를 입었거든요. 이처럼 천재가 용재에게 사기 당하는 것이 20세기 중국문학의 두드러진 현상이었지요.

리저허우 : 정치와 예술을 분명하게 이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지요. 문학이론이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선 바로 이 점을 지적하여 일원론을 저지해야 합니다.

류짜이푸 : 음악은 결국 '어록가(語錄歌)'로 발전했고, 시가는 천편일률적으로 홍태양(紅太陽 : 마오쩌둥을 미화하는 말)의 공덕을 찬양했으며, 소설은 두 가지 계급과 노선의 투쟁을 해석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리저허우 : 문인이 붓대가 된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겁니다. '붓대'라는 것은 집필은 남이 하고 자신은 붓의 손잡이만 잡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요. 다시 말해 남의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류짜이푸 : 개성화된 사상이 집체화된 사상에 의해 대체되고 침몰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붓대와 총대를 나란히 놓으면, 붓대는 화약 냄새가 짙은 붓대가 되고 맙니다. 때문에 문화비판이 무력화된 비판이 되고 문학이론도 무학(武學)이론이 되어, 모든 글에 '진지', '보루', '총을 든 적', '총을 안 든 적' 등의 군사용어를 사용하게 되지요. 화약 냄새와 연기 냄새가 인성과 문학의 냄새를 압도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리저허우 : 인류가 문학을 필요로 하는 것은,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과학의 진보가 지나친 이성의 병독을 보충하고 해소할 만한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과학기술과도 다르고 사회과학과도 다르며, 심지어 인문과학과도 다르다 할 수 있지요. 사실 문학예술에서는 '진보'라는 것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관념이 극단에 이르게 되면 문화대혁명 때 과거의 문학예술을 일률적으로 '봉건주의', '자본주의', '수정주의', '명분주의', '양귀(洋鬼)' 등으로 매도하고 당시의 모범극만을 가장 진보적이고 위대한 예술형태로 떠받들었던 행태를 반복하게 될 겁니다. 예술이란 인류의 감성 본체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서 감성 본체의 물태화(物態化)된 대응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느 한 시대, 한 지역의 정치와 윤리, 종교의 기능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절대로 이렇게 하지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류짜이푸 : 문학을 정치와 동일시하고 현실과 동일시하는 것은 애당초 문학의 장점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리저허우 : 결국 문학과 정치는 서로 대체하거나 고하를 따질 수 없는 것이지요.제3부 이념이 지배한 세기 - 역사와 문화의 주인은 오로지 사람이다

불안한 개인주의의 운명 - 이제 비로소 사람이다제4부 혁명이 아닌 개량을 위한 철학 - 투쟁을 위한 철학은 늘 빈곤하다

투쟁을 위한 철학 - 역사는 스스로를 변화시킨다리저허우 : 마오쩌둥 시대가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이러한 현상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적어도 마오쩌둥 시대에는 사회적 평등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빈곤의 평등화이긴 했지만 지금은 그마저 사라졌거든요. 또 다른 이유로는 시장경제 사회로 전환하면서 개개인의 운명과 미래, 경제적 성장을 전망할 수 없게 되자 신적인 존재의 보호를 기대하게 된 것입니다.

류짜이푸 : 마오쩌둥은 분명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고, 동시에 커다란 역사현상이기도 합니다.

리저허우 : 그는 아주 복잡한 인물이거든요. 그에게 이상과 낭만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현실을 극도로 중시했고 실용주의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었지요. 문화대혁명과 1958년의 대약진운동은 한편으론 그의 낭만주의 유토피아 이상의 표현이면서, 한편으론 전쟁 시기의 현실 경험에 대한 집착을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류짜이푸 : 마오쩌둥이 중국의 인민에게 준 정신적 고통은 너무나 컸습니다.

리저허우 : 마오쩌둥이 군중의 집체주의 열정을 불러일으켜 희생적인 노동에 나서도록 했던 것은, 중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1958년 대약진운동의 결과 수천만의 사람들이 굶어 죽긴 했지만, 대규모 수리 사업을 통해 농업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으니까요. 약 30년에 달하는 마오쩌둥의 통치기간 동안 중국 인민이 계급투쟁이나 문화비판, 이데올로기에 낭비한 시간과 정력은 너무나 컸습니다. 마오쩌둥은 반드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류짜이푸 : 마오쩌둥은 자신을 20세기 구원의 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토피아식의 '전략'을 추진했고 반이성(反理性), 반인성(反人性), 반천성(反天性)의 경향을 띠게 됐습니다. 문화대혁명은 역사상 전례가 없는 대규모 광란의 발작이었고 사악한 인성의 표출이었습니다.

리저허우 : 마오쩌둥은 소련과 다른 노선을 시도했지만, 소련보다 더 좌경화되어 있었습니다. 대약진운동이나 인민공사, 문화대혁명 그리고 크메르 루즈(Khmer Rouge)의 지지 등이 그랬지요. 크메르 루즈는 화폐마저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도시 주민들을 전부 농촌으로 내몰아 백만 명 이상을 죽이기도 했지요.

류짜이푸 : 최근 중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전국적으로 시장경제가 형성되어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분명히 시장경제와 상품경제를 배척했습니다. 덩샤오핑 노선과 마오쩌둥 노선, 최근 15년과 그 이전 30년간 중국은 엄청나게 다르지요.

리저허우 : 마오쩌둥의 재기와 지략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문제는 '사회주의'에 경제적 번영과 성장의 방식을 찾아 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는 끝내 그 길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실험이 완벽한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는 경제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 지나치게 이데올로기를 맹신했습니다. 마오쩌둥의 가장 커다란 비극은 바로 이 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대약진 운동: 1958년 중국 정부의 경제성장정책을 일컫는다. 제2차 5개년계획이 시작된 1958년, 마오쩌둥에 의한 경제의 대약진을 위한 전국적인 대중운동이다. 1960년부터 류사오치(중국의 정치가인 그는 마오쩌둥 다음가는 이론가로 손꼽혔다)의 주도로 수정노선을 채택, 대약진운동의 완전실패를 선언했으며 마오쩌둥도 전면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마오쩌둥에 의해 무자비한 정치적 보복이 단행되었고, 중국의 경제는 더욱 악화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정부는 천안문사건으로 물러났던 덩샤오핑을 복귀시켜 새로운 수정주의 노선을 채택, 이로써 본격적인 개혁개방의 계기가 마련된다.류짜이푸 : 중국이 부유하고 강대해져야 한다는 것이 지난 백 년 동안 중국의 지식인들과 인민 전체가 가졌던 꿈이었지요.

리저허우 : 과거 중국의 문제는 정치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데에 있습니다. 경제, 즉 의식주가 근본이고 이는 인류 생존의 가장 중요한 자발적 활동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이지요. 상부구조의 혁명이나 이데올로기, 문화비판 같은 것들이 중국의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류짜이푸 : 1980년대 이전의 중국에서는 정치와 사상이 본이라고 강조하면서, '근본'을 잊는 동시에 이데올로기를 지나치게 맹신했던 것이지요. 이러한 사고와 행동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정점에 이르러, 대륙 전체가 엄청난 동란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리저허우 : 경제라는 근본을 상실했다는 시각에서 소련과 동유럽, 20세기 말 중국이 얻은 교훈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요즘 제가 '밥 먹는 철학'을 강조하면서 투쟁철학에 반대하는 것도 바로 근본에 철저하고자 함입니다.



류짜이푸 : 최근 중국은 이데올로기의 맹신에서 벗어나 경제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변화가 바람직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회와 인생의 상식과 자연의 이치에 부합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실용이성'에 부합한다는 점입니다. 실질적인 노동과 창조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리저허우 : '실용이성'의 특징은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 교훈에 귀를 기울인다는 점이지요. 중국을 비롯하여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반드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즉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서구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다른 점이기도 하지요. 결국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마오쩌둥은 길은 달랐지만, 귀착점은 같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문화대혁명이라는 문화비판 운동을 발동시킨 데에는 관료체제를 타파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관료기구를 대체할 출구를 찾지 못한 것이 바로 그의 비극의 출발점입니다.

류짜이푸 : 당시에 그가 착안한 것은 정치, 즉 이데올로기였습니다. 다시 상식과 '밥 먹는 철학'으로 되돌아가게 된 것이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닙니다.

리저허우 : 마오쩌둥이 "정치가 모든 것을 지도한다."는 구호를 제시하자, 중국 인민들은 정치나 이데올로기가 의식주와 직결되어 있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지요. 정치의 약화 현상은 중국이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정치가 경제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정치를 좌우하게 된다면 이거야말로 진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류짜이푸 : 사회평등과 사회발전 사이에는 분명히 모순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럴 때 윤리주의 원칙 즉, 사회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변혁에 반대한다면 개체의 적극성도 사라지고 말지요. 좌경 사조가 경제 분야에 표현된 것이 바로 '공(公)'할수록 좋다는 명제입니다.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는데 '공유'와 '공평'입니다. 이러한 의미가 극단에 이르면, 시장 조절 기능과 물질의 장려를 부정하게 되지요. 리저허우 : 양자를 어떻게 적당히 결합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도(度)'의 문제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 조사와 계급분석을 주장하려 합니다. 지금 계급분석을 진행한다는 것은 계급적 조화와 협력을 이루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것이 혁명은 그만두고 개량을 해야 한다는 저의 일관된 주장입니다.

류짜이푸 : 계급적 조화와 협력은 사회적 평등과도 관련이 있지요. 현재 중국의 경제개혁 방식은 위로부터 아래로의 개량이지만, 앞으로 갈등과 충돌이 격화된다 하더라도 끝까지 개량과 조화의 방법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이 조화나 공평보다 더욱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효율', 즉 경제의 강대함이지요. 공평과 효율은 확실히 서로 모순되는 면이 있지만, 마오쩌둥 시대에는 지나치게 공평을 강조한 결과 효율을 잃고 말았습니다.

리저허우 : 중국이 당면한 급선무는 역시 경제발전이며, 사회의 근본인 경제의 고속 발전 추세가 일정 기간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이것은 첫걸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음은 경제발전을 기초로 개인의 자유를 증강시키는 것이지요. 그리고 최종적인 문제는 바로 '정치적 민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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