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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성생활

자닌 모쉬-라보 지음 | 이마고
우리가 만난 이슬람 여성들은 이슬람교 문화권에서 자랐으며, 현재는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다. 교육적이나 사회적으로 유무형의 재산을 갖고 있는 이 엘리트 여성들은 성 문제에 있어서, 불우한 환경의 이슬람 여성들과 상당히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이슬람교에 밀착되어 있는 정도에 따라 그 관념의 차이를 보였다. 한 그룹의 여성들은 독실한 이슬람 신도였다. 금식기간인 라마단을 지키면서 일상생활에서 신도로서의 의무를 실천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 문제에 있어서는 이슬람교의 규정을 어기고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어떤 때는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이유는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그룹의 여성들은 여전히 신앙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다. 이들은 다양한 성생활을 하면서 이미 이슬람교의 규범에서 멀어져 있었다. 스스로는 '신앙인'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종교 그 자체보다는 이슬람교의 문화적 측면을 강조했다.



이제까지 살펴본 이슬람 여성들은 어떤 경우이든 완전히 이슬람교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슬람교를 완전히 부정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카리마는 성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슬람 문화권의 종교적 규범을 많이 위반한 경우이다. 그런데 딸을 카톨릭 계열의 사립학교에 보내고 있는 카리마 역시, 딸의 문제가 대두되자 전통적 가치를 새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를 종합해 보면, 교육적·사회적 토대가 보다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정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문화적 자유주의는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발달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슬람 여성들이 남성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보다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인정하기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다음의 생활은 이성애자들과 같이 별 무리 없이 진행된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자신들도 훌륭히 아이를 기를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자신들의 사랑도 인정받고 싶어한다.레즈비언은 남자에게 느끼지 못한 친밀감을 여성에게 느끼면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인식하고,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그들에게도 역시 부모와의 문제나 아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레즈비언은 애정을 우선시한다. 그래서 이성애자처럼 일부일처제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레즈비언은 여러 가지 면에서 게이와 다르다. 레즈비언의 파트너 수가 적다는 점은 만남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게이들의 만남은 거의 성적 욕구를 위한 것인 반면, 레즈비언들은 성과 사랑을 동시에 추구한다. 이런 차이점들은 이미 1970년대에 있었던 논쟁(오직 육체적 쾌락만을 위해 성관계를 갖는 게이들을 비난하는 레즈비언들에 의해 시작된 논쟁)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었다. 레즈비언들은 사랑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이는 그들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이유이다. 우리가 만난 레즈비언들은 거의 일부일처제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레즈비언에게 있어서 '성을 위한 성'은 드물며, 게이와는 달리 진정한 인간관계를 원한다. 레즈비언과 게이는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의지와 애정에 대한 요구 등에 있어서 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레즈비언의 이러한 특징이 여성 이성애자와 크게 다른 것일까? 사람들은 레즈비언이라고 하면 여자 돈 후안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사실과 먼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이성애자에게는 무엇보다 애정이 중요했다. 마찬가지로, 여성 동성애자에게도 애정은 최대 관심사이다. 또한 많은 여성 이성애자가 그랬듯이 여성 동성애자 역시, 상호 신의를 지키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성 동성애자들은 성, 애정, 신의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관계 등에서 여성 이성애자들과 다르지 않다.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레즈비언들에게 있어서 아이 문제와 관련된 조치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 강요된 것이지만, 앞으로는 많은 변화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남성을 사랑하는 남성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지며 살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남성 동성애자들이 아이를 기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과연 무엇으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구분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정형화된 이미지로 안이하게 판단하는 것과는 달리, 성적 쾌감의 문제에 있어서 동성애와 이성애는 더 이상 구분해서 언급되지 않는다. 성 정체성의 차이 정도로 인식될 뿐이다. 물론 인체의 해부학적 차이로 인해 다양한 차이점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성 파트너의 수를 고려해 구분해 볼 수는 있다. 1991∼1992년 ACSF의 조사에 의하면, 이성애자의 경우는 1인당 11명이고 동성애자는 13.7명이었다. 우리가 만난 대부분 남성 동성애자들은 젊은 시절 한때 이후로는, 한 파트너와 신의를 지키며 다른 파트너를 만나지 않고 있었다. 이른바 '성적 소비'라 불리기도 하는 게이들의 만남에는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이성애자들은 진정한 사랑을 적게는 한 번에서, 많게는 네 번까지 경험하기도 했다. 동성애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물론 여러 가지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게이들이 사랑의 감정 없이 오직 섹스만을 위해 남자 파트너를 만난다는 생각은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의 방식에 따라 감정을 경험하며 사랑을 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이제 프랑스에서는 법적인 정식 부부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그들에게도 가족 개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1988년 미카엘 폴록(Michael Pollak, 프랑스의 역사학자)은 "동성애와 관련된 대부분의 문제는 그들에게 가족제도가 없기 때문에, 애정과 성의 분리 현상으로 인해 발생하게 된다."고 보았다. 미래 사회에서는 동성애자들을 마치 게토(중세 이후의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지역)에 사는 이방인처럼 느끼는 분위기도 줄어들 것이고, 다른 모든 인간들과 똑같은 인간으로 취급될 것이다.우리가 만난 양성애자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모두 평온을 되찾은 상태였다. 얼른 보아서는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좀더 쉽게 상황을 견뎌왔던 듯싶다. 카트린 데샹의 보고에 따르면, 후일 '비코즈'로 확대되는 양성애자 모임 '비(Bi)'를 결성했던 세 여성은 처음에는 게이레즈비언협회 자원봉사자들이었다고 한다. 이 세 명의 여성은 자신들을 양성애자라고 소개하자 다른 동성애 자원봉사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고, 그래서 별도로 양성애자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이다. 남성 양성애자들은 여성 양성애자들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처음에 남자를 만나다가 다시 여자를 만나려고 하는 경우에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것은 이미 그들에게 '게이'라는 딱지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자연히 여자들은 그런 남자를 기피하게 된다.



배우인 30세의 리샤르는 상당히 어려운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언젠가는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알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이중성'을, 그의 말을 빌리면 '성적 모호함'을 발전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내 그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 그 결과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많은 모험을 끝낸 그는 지금, 여자든 남자든 자신과 함께 길을 가 줄 수 있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양성애 자체가 아니라 그를 평생 괴롭혀온 불안정한 삶, 바로 그것이었다.샤를로트는 현재 33세이다. 그녀는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사내아이로 태어났고 당시 이름은 샤를로트가 아니라, 이 이름의 남성형인 샤를이었다. 샤를은 "적어도 육체적으로는 정상"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당시 15세였던 샤를은 한 성전환자에 대한 르포 프로그램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보게 됨으로써 성을 바꾼다는 것이 실제로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해 동안 성을 바꾸기보다는 사회적, 육체적으로 프로그램된 상태 그대로 몸을 간직한 채 사는 것이 더 쉽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에 드는 한 여자를 만났다. 당시 샤를의 나이는 20세였다. 컴퓨터 기술자였던 샤를은 직장을 잡았고 결혼을 해서 세 아이를 두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자신의 남성성이 거북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결국 샤를은 자신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자신의 느낌을 알아보고 싶어서 정신과 의사를 찾기로 했다. 이 치료를 통해 자신이 이중의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샤를은 더 이상 남자 흉내를 내지 말고,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96년 말(우리와의 인터뷰는 2001년 9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샤를은 성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여러 절차들을 밟아나갔다. 성을 바꾸려면 정신과 의사가 발행하는 일종의 허가서가 있어야만 한다. 정신과 의사에게 1∼2년 정도 진찰을 받아야 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 의사가 모든 질병 가능성을 배제시키고 순수한 성전환 욕구로 판정을 해주어야만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가 있다. 샤를은 다음 단계인 내분비과 의사를 만나러 갔다. 내분비과 의사는 필요한 처방을 내리면서 혹시 처방이 다른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세세한 목록을 작성해가며 검사했다. 검사가 끝나자 의사는 샤를에게 발정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처방했다. 그 다음 단계는 몸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그 후 생식기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샤를의 입장에서 보면 생식기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샤를은 사라지고 샤를로트가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샤를의 가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샤를이 자신의 결심을 알렸을 때 아내는 깜짝 놀랐다. 샤를이 변신을 하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서로 적응해 나갔고 상대방을 새롭게 발견했다. 어쨌든 이제는 샤를로트의 아내를 아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호적상의 성을 바꾸기 위해서 두 사람이 이혼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혼을 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계약을 맺고, 이전처럼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이제 변신은 성공적으로 완전히 끝났다. 그러나 샤를로트는 아직도 밟아야 할 절차를 남겨두고 있었다. 다시 말해 호적을 정리해야 했던 것이다. 이 일이 끝나기 전까지 샤를로트는 임시 등록증을 발급 받기 위해, 사회보험공단을 찾아가 얼마나 싸움을 했는지 모른다. 샤를로트는 아라비아 숫자 1로 시작하는 자신의 보험번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샤를로트는 자신의 변화를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각종 서류들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미 사회문제가 되어 있었다. 2000년 11월 29일, <반음양자(半陰陽者), 변장 취향자, 남녀 양성자, 이들은 성의 경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르포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내분비과 의사인 브뤼노 마즈노 박사는, 남성 성전환자들이 사회적 성과 자연적 성을 일치시키기 위해 성전환 절차를 밟으면서 수술 허가를 받기까지 얼마나 큰 괴로움을 겪는지 설명해 주었다. "저건 내가 아니다."라고 부인해야 하는 사람이 당하는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이유에서 그것을 변태라고 불러야 하는가? 자유와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인간을 더 이상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어느 성전환자의 이야기남자에서 여자로 다시 태어나다사람들이 성에 눈뜨는 시기와 계기는 다양하다. 그러나 남성들에게 있어 성과 관련된 가장 큰 사건은 자위행위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남성들에게 자위행위는 사춘기의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의 하나이다. 죄의식까지 수반하는 여성들의 첫경험과는 달리, 남성들은 대부분 첫경험을 해야 비로소 남자가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성적 쾌락을 느낄 때성관계에 따르는 위험들 : 임신, 성병, 에이즈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시작되었다. 남자들은 4∼5세 때부터 이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남성들의 경우, 성과 관련된 가장 큰 사건은 자위행위를 알게 되는 것이다. 유년기가 지나고 중학교 시기에 훨씬 심각한 일들을 겪게 된다. 사춘기 여성들과는 달리, 같은 또래의 남성들에게 자위행위는 중요한 성행위로 자리잡게 된다. 사춘기는 성욕이 아주 강하고 동시에 성 파트너를 구하기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대부분 자위행위는 일상적 행위가 될 정도이다. 남성들은 다양한 단계를 거친 끝에 첫경험에 이르게 되는데, 나이에 따라 첫경험을 하는 시기나 양상이 많이 달랐다. 대부분 첫경험을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여성들과 했다.



남성들에게 첫경험은 반드시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 가지 긍정적인 면이 있다. 먼저 어떤 이들은 첫경험에서 성적 쾌락을 경험했다. 그리고 대부분 첫경험은 '이제 치렀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들은 마치 승리를 거둔 것처럼 여긴다. 왜냐하면 하나의 벽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첫경험을 통해 친구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이제 나도 남자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조사에 응한 남성 이성애자들 중 5명은 첫경험의 파트너와 5년 정도 관계를 지속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첫경험 한 번으로 관계가 끝나거나 한두 번 더 만나는 정도였다. 관계가 지속되지 못한 데에는 물리적이고 환경적인 요인들이 작용했다. 이는 사랑이 아니라, 그저 낯선 세계로의 모험이기 때문이다.에이즈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제4부 그들에게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

남성 동성애자, 게이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모두 다 같은 인간일 뿐이다여성 동성애자, 레즈비언가장 나이가 젊은 그룹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시절에 처음으로 성을 알았다. 가장 연령이 높은 그룹은 달랐다. 대부분 사춘기 때가 되어서야 성을 알았고(서로 몸이 스친다든가 하는 가벼운 접촉 등을 통해), 가장 빨리 성을 인식한 나이라고 해도 10∼12세 정도였다. 어린 시절이 지나면 풋사랑의 시기가 찾아온다. 개인이나 세대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대략 12∼16세에 풋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나이가 젊은 여성일수록 풋사랑의 시기가 길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상대도 여러 명이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직접 성교를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자위행위와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ACSF의 조사에 따르면, 남성과 비교해 여성들은 자신이 자위행위를 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훨씬 소극적이다. 즉, 84%의 남성들이 고백을 하는 반면 여성은 겨우 51%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들은 자위행위를 성에 대한 발견이나 인식과 관련된 행위로 간주하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들어와 자위를 한 여성들은 대부분 자위행위를 하면서 죄의식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성교육이 많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성적 쾌락에 대한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혼자 즐기는 쾌락에 대한 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첫경험을 몇 살에 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1991∼1992년 ACSF의 조사에 의하면, 가장 나이가 많은 50∼69세의 여성들은 평균 21.3세에 첫경험을 한 반면 가장 나이가 어린 18∼19세 여성들은 18세에 첫경험을 했다. 다시 말해 첫경험을 겪은 나이도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지만, 여성들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연유로 첫경험을 겪게 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ACSF의 조사에 의하면, 64%의 여성이 사랑하는 남자와 첫경험을 한 반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성과 첫경험을 한 남성은 겨우 33%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들의 관점에서 보면, 첫경험이 단순히 첫 번째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 남자와 일정 시간 함께 있고, 적절한 사전 교감 같은 것이 작용한 경우에나 쾌락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여성들이 토로한 첫경험의 고통에는 죄의식이라는 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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