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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한가운데

윈스턴 S. 처칠 지음 | 아침이슬
폭풍의 한가운데

윈스턴 S. 처칠 지음/조원영 옮김

아침이슬/2003년 2월/471쪽/13,900원



너무나도 소중한 삶의 순간들

이따금 지나간 어느 시기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그러한 순간들이 내게 다시 찾아온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주어진 외부적인 상황이 과거와 똑같은 것이라면 아무리 연륜이 쌓인 지금의 나라고 할지라도, 당시와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외부적인 상황에 변화가 있다면 당연히 내 선택도 달라질 것이고, 그 이후의 내 인생도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이 되겠지만 말이다.

한편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실수가 득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똑똑하다고 한 짓이 큰 손해를 초래하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만약 다시 인생을 살게 된다면 담배 만큼은 확실히 멀리할 것이다. 담배에 들인 돈만 해도 도대체 얼마인가? 하지만 한번 따져보자! 담배가 나의 신경계통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그 숱한 껄끄러운 개인적인 만남이나 협상 테이블에서 침착하고 예의바르게 처신할 수 있었겠으며, 극도로 초조하고 긴장되었던 순간들을 차분히 넘길 수 있었겠는가? 지금 와서 얘기지만 플랑드르에서 방공호에 두고 나온 성냥갑을 가지러 다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백 미터 전방에 정확히 내리꽂힌 폭탄 생각을 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지나온 삶이 행복했고, 생기에 차 있었으며, 흥미진진한 것이었음은 틀림없지만, 그 힘들고 위험했던 길을 다시 한 번 걸으라고 한다면 결단코 사양할 것이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일련의 실수들과 멋진 모험, 그리고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 한들 나를 유혹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태껏 이토록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던 행운이 새로운 인과의 숱한 사슬 중 어느 한 고리에서 잠적해 버리지 않는다고 그 누가 보장할 것인가?

우리 모두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에 만족하고, 살아남아 있음에 모두에게 감사하자. 우리가 걸어온 자연의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자. 우리를 끊임없이 따라다닌 신비스런 운명의 흐름을 이 세상, 이 공간, 이 순간에 꼭 있었어야만 할 필연적인 것들이었다고 인정해 주자. 기쁨은 소중히 간직하고, 슬픔 앞에서는 울지 말자. 어둠이 없이 어찌 빛의 영광이 있을소냐? 삶은 총체적인 것, 선이든 악이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삶의 여로는 즐거웠고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단 한 번만.



정치인의 지조

우리가 보통 정치적인 신조에 일관성이 결여되었다고 할 때는 크게 두 가지 경우를 분리해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우선은 정치인이 현실 정치세계에서 부닥치는 크고 작은 여러 상황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목적하는 바를 꾸준히 추구하기 위해 때로는 무게의 중심을 완전히 어느 한쪽으로, 때로는 전혀 반대쪽으로 치중하며 전체적인 균형과 틀을 유지해 나아가야만 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구체적인 개개의 상황에서 그가 펼친 주장들을 직접 비교해 보면, 그 입장들의 성격이나 방향이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비쳐지더라도 근본적인 목적에 있어서 만큼은 철저하게 일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방법론상으로는 표현이 모순되게 비쳐졌을지언정, 결의에 있어서나 추구하는 바, 또는 전체적인 시각에 있어서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이런 경우를 두고 일관성이 없다든가 지조가 없다고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는 오히려 이런 경우야말로 진정 일관성 있는 태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수시로 변화하는 정치상황 속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향하는 바에 충실하면서 구체적인 변화의 흐름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에드워드 버크(1729~1797, 영국의 정치가․정치사상가)만큼 이 문제와 관련하여 화려한 이력을 남긴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의 저서들은 각각 가장 대표적인 자유주의 견해 및 보수주의자들의 가장 강력한 대응 전략의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 한편으로는 ‘자유’의 사도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권위’의 옹호자로서 행세하여 왔던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조금만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그리고 버크의 ‘자유’에 관한 견해와 ‘권위’에 대한 이론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그 일관된 사회적․정치적 이상 추구는 물론, 서로 방향을 달리하여 극단적인 공격으로부터 그것들을 지켜내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흔적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자고로 어떤 정책을 추구해 나가다 보면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는 경우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이때 기존의 방식과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새로운 해결책이 강력한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으며, 그 새로운 대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과거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일관성의 포기는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행위로 나타나야 하며, 과감하게 공포되어야 한다.

요컨대, 정치가라면 마땅히 다음과 같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강제적인 방법은 실패로 끝났다. 이제는 화해할 수밖에 없다.”라든지 아니면 반대로 “화해는 더 이상 없다. 앞으로는 강제적으로 죄어들어갈 수밖에 없다.”라든지…. 자고로 정치인은 항상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가에 최선이라고 믿는 바를 실행에 옮길 의무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이전에 깊이 신봉하던 원칙까지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일반적으로 당적의 변경은 단순히 정치적인 견해를 바꾸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변절로 간주된다. 정치인에게 있어 정당과 더불어 가는 변화는 제아무리 일관성이 결여된 것일지라도 최소한 숫자의 힘에 보호받을 수가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대한 주제를 앞에 두고 시대의 정당한 요구에 부응하느라 자신만의 신념을 따르는 행동은 그 어떠한 장애도 뛰어넘어 성실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더구나 그 신념이 본질적으로 옳고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라면 정치인의 입장에서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나 다름없다.

요컨대, 오늘날 일관성이니 정치적 지조니 하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사회주의 정당을 창설한 인물이 근대 의회정치사에 유래 없는 절대 다수의 보수당을 이끌고 있는 데다가, 어제만 해도 파운드화의 가치 유지를 내걸어 정권을 쟁취했던 정부가 지금은 오히려 그 가치의 상승을 억제함으로써 정권의 수명을 연장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변절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으로 충분하고도 남는다. 우리 모두 “때로는 굴곡지고 왜곡돼 보여도 급작스럽고 채울 수 없는 틈 보이지 않네.”라고 노래했던 조지 크랩(영국의 시인)의 싯구를 생각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속죄를 청해 보자.



근위보병연대와 함께

영국 정부가 다르다넬스 해협의 군사행동과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세웠던 모든 계획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후, 갈리폴리 반도 철수작전이 임박해오자, 나도 지금까지의 군사자문 역할을 끝내고 일선 군대생활로 복귀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나는 당시 불노뉴 근처에서 숙영하면서 프랑스 작전구역에 배치되어 있던 기마의용군 연대에 복귀하겠다는 복무신청을 냈다.

곧 나는 총사령관의 요청으로 사령부에 도착하여 그와 긴 시간 최근 전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마치 내가 해군장관이었던 시절, 당시의 치열했던 순간으로 되돌아간 듯 긴장과 열기가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나는 우선 참호전에 관한 경험을 쌓은 다음 여단을 지휘하기로 하였다.

근위연대는 당시 멜빌 바로 전방의 전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한겨울철 이 근방의 전황은 매우 치열했다. 될 수 있는 대로 간편하게 짐을 꾸려 행군하고 있는 부대와 합류, 그들과 보조를 맞추었다. 11월의 음산한 오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평원에는 차가운 이슬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전선이 가까워오자, 단속적으로 울리는 포성에 맞춰 대포에서 뿜어나오는 붉은 섬광이 도로 양편의 음울한 풍경을 예리한 칼로 찌르듯이 갈랐다.

한참을 더 가다보니 드디어 주변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주변 들판에 나 있는 포탄 자국이 점점 많아지면서 도로가 끊어지고 그 잔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거주하는 마을을 뒤로 하고 전진하는 우리 앞에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가옥들은 완전 폐허로 변해 있었다. 어둠이 내리자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행군하는 발소리와 간간히 터지는 포성만이 귀를 자극했다.

장병들은 박살난 폐허 자리에 대대 본부를 설치했다. 잘 곳을 알아보기 위해 방공호를 둘러보고 오는 동안에도 전선을 타고 오가는 총알은 연신 바람을 갈랐다. 이들 장병들과 완벽하게 같이 어울려서 허물없이 지내는 데 성공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우정을 쌓았다는 데 대해서 나는 큰 자부심을 느낀다. 그들이 품고 있는 정치인, 그것도 진보성향의 정치인에 대한 당연한 편견을 불식시키는 데에만 꼬박 48시간이 걸렸다. 직업 군인의 생리를 체험으로 알고 있고, 또 다양한 인생 경험을 쌓아온 나로서는 의도적으로 나를 골탕먹일려고 애를 쓰는 그들의 모습이나, 전선에서는 오로지 계급과 자신의 행동 이외에는 기댈 곳이 없다는 진리를 나에게 깨우쳐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모른 체하며 감상하는 일이 그렇게도 보기 흐뭇하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연대 장교식당에 불쑥 나타난 지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아서 이미 완벽한 직업군인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친 김에 참호 생활을 보다 절실하게 체험해 보기 위해서 직접 일선 중대에서 대원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우연이란 것의 존재를 믿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사에 개입하는 이 전능한 요소가 단지 단순한 사건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일 뿐이라고 간단히 믿기가 어려워진다. 우연이나 행운, 숙명, 운명, 운수, 섭리와 같은 말들은 같은 내용을 여러 가지로 달리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즉 인간의 의지적인 삶 자체가 끊임없이 외부의 초월적인 힘에 의해 이끌어지고 있다고 느낀다는 이야기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인생을 십 년만 돌이켜 보더라도 하잘 것 없는 작은 사건이 결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어놓았던 기억을 하나쯤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평상시와 달리 전쟁이라는 삶의 격렬한 현장에서는 우연이란 요소는 평소의 베일과 가면을 벗어 던지고, 매순간 모든 사건의 직접적인 중재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 보인다.

전선의 중대에 배치된 지 일주일 정도 되는 어느 날 오후, 나의 오랜 친구인 군단장이 만나자고 청하여 나갔다 오는 사이 내 은신처가 포격을 당한 일이 있었다. 소형 초고속 폭탄이 지붕을 뚫고 들어와서 사병의 머리를 날려버렸다는 중사의 설명을 듣고는 누군가가 손을 뻗어서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를 치명적인 장소에서 끌어내 주었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선거 이야기

선거라면 내가 누구보다도 전문가라고 할 수 있으며, 실제로 하원의원 선거를 나보다 많이 치른 현직 의원도 없다. 성년이 된 지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매번 선거 때마다 1개월 이상을 소비한 셈이니 결국 따지고 보면 모두 합해서 1년이 넘는 세월을 이렇듯 긴장되고 힘든 작업에 쏟아 부었다는 이야기가 되며, 바꾸어 말하면 성인이 된 다음부터 평생 한 달에 하루씩을 이 괴상한 일에 바쳤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밖으로 나가 유권자들을 접촉하는데 때로는 600~700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는 장소에서 지극히 둔감한 표정을 한 20~30명의 청중만을 놓고라도 연설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소란스러운 회합도 없지는 않으며, 사실은 이런 모임이 갑갑한 숨통을 터주기도 한다. 이런 모임에서는 우선 틀에 박힌 연설을 할 필요가 없다. 이곳에는 들뜬 군중이 있고, 시기심으로 꽉 차 있는 반대파가 있으며, 그들의 턱은 분노에 찬 고함과 욕설로 뒤틀리고 있고, 당신을 자극하고 약 올리기 위해서 별의별 모욕을 다 퍼붓는다. 당신의 과거 행적은 물론이고 정치적인 신조나 때로는 개인적인 성격까지 물고 늘어지기 일쑤다. 야유와 비웃음이 터져나오고, 악의에 찬 창백한 얼굴의 청년들과 짧은 머리에 불독 상을 한 젊은 여성들이 머리를 짜내서 만들어낸 기기묘묘한 추잡한 질문들을 마구 퍼부어댄다.

대개의 경우 나는 상대 후보자들과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선거를 치른다. 나는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에는 상대방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며, 실제로 상대방의 존재 자체도 거의 인식하지 않는다. 그러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일단 선거가 끝나면 사람이 너그러워질 수가 있게 되는 법이다. 만약 패자가 된 경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 크게 상심하고 비통해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고, 오히려 상대방만 더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일이다.

밸푸어가 삼촌 솔즈베리 경에 이어 총리직에 올랐을 때는 이미 20년에 걸친 보수당 정권이 막을 내리는 시점이었다. 워낙 많은 실정과 폭력이 보수당 정권에 의해 저질러졌던 관계로 그 어떤 처방도 그들의 패배를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시 선거에서 보수당을 이끌었던 인물은 이제 갓 총리의 자리에 오른 밸푸어였고, 체임벌린의 자유 무역 제도에 대한 공격에 즈음하여 나는 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겼는데, 자유당에서 돋보이는 인물은 나 이외에 별로 없었던 시기였다. 경쟁은 결코 만만치 않았으나 결과가 그토록 완전히 일방적인 것이라고 예측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맨체스터의 선거 결과는 그대로 전국적인 현상으로 나타났고, 장기집권을 해왔던 보수당은 참담하게 무너졌다.

그러나 여론이란 항상 믿을 것은 못 되는 것으로 기회만 생기면 어느 때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론이다. 1908년 봄, 통상장관으로 국무위원이 된 나는 당시의 관행대로 재선거에 의해서 유권자의 지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맨체스터 서북구에서 치러진 나의 두 번째 도전은 결국 몇 백 표 차이로 분투를 삼켜야 했고 뒤이어 나는 던디 시의 자유당 후보로 출마했다. 나는 그곳에서 다섯 번에 걸친 유권자들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안정적으로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1922년 패배 이후 다시는 던디로 돌아가지 않았다.

정치의 부침 현상은 여기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그 당시 나는 자유당과 보수당이 연합한 연립내각의 비중 있는 각료로서 2년에 걸쳐서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의 정정을 안정시키고, 아일랜드 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다. 1922년도 의회회기는 내가 각료로 활동한 기간 중 가장 활발한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졸지에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진 나는 병상에서 의식이 회복되자마자 보수당과의 관계가 결렬되면서 하루아침에 정부가 해산되고, 보수당과 원수가 되어버렸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각료가 아니었다. 그러고 나서 몇 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그토록 오랜 기간 성심껏 나를 지지해 주었던 유권자들이 결정적으로 나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이다. 의원으로서 뿐 아니라 각료로서도 생애에서 가장 성공적인 해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눈 깜박할 사이에 장관 자리도, 의원직도, 정당도, 맹장까지도 잃어버린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1924년, 보수당이 선거에서 완패하자 이번에는 자유당이 사회주의자와 연합하여 헌정 사상 최초로 노동당 정권을 창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마침 웨스트민스터 애비 선거구의 보궐선거에서 보수당에 복귀할 결심을 굳힌 나는 무소속으로 반사회주의 기치를 높이 내걸고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조직은 물론, 구체적인 조직 계획도 없었지만 실질적이고도 자발적인 여론의 움직임이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각계 각층의 내로라 하는 인사들이 나의 선거 캠프에 몰려들었고, 보수 연합의 분열은 곧 보수당 자체의 분열로 이어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이번 선거의 개표 과정만큼 흥미진진했던 기억은 일찍이 없었다. 개표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지만 결국 나는 총 투표수 40,000표에서 40표 차이로 지고 말았다. 나는 이번 패배로 세 번 연속해서 패배하는 기록을 세웠다. 던디, 웨스트 레스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웨스트민스터. 이번까지 해서 만 2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네 번이나 선거를 치른 셈이었는데 누구라도 이 정도로 자주 옮겨 다니면서 선거를 치러보았다면 더 이상의 방황은 원치 않았을 것이며, 나 또한 이번 선거를 치른 에핑을 마지막 정치적 보루로 삼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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