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교사는 지성인이다

헨리 지루 지음 | 아침이슬
교사는 지성인이다

헨리 지루 지음/이경숙 옮김

아침이슬/2001년 12월/422쪽/15,000원



1부 학교 언어 다시 보기

학교 언어 다시 생각하기

비판적이고 해방적인 교육이론이라면 그 교육이론은 행정과 순응이라는 기존 언어를 뛰어넘는 담론을 반드시 생성해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육이론은 주어진 것, 현상적인 것을 넘어설 수 있는 언어나 분석을 포함하지 않았다. 교육자의 관심은 형식적인 교육과정에 있었고, 그 결과 등장하는 문제들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것들이다. 학교 교육과 교육과정에 대한 전통적 관점은 지식은 단지 소비해야 할 어떤 것, 학교는 학생들에게 사회에 나가 써먹을 수 있는 ‘공통’ 문화와 기술을 전달하는 교육적 장소라고 생각하면서 효과성, 행동주의적 목표, 학습 원리에만 관심을 갖는다. 전통적인 교육과정 이론과 학교 교육은 기술적 합리성의 논리에 매몰되어 특정 지식의 학습, 도덕적 합의의 창출, 기존 사회를 재생산하는 학교 교육의 제공 등을 가장 철저하고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에 역점을 둔다.

교사, 학생, 사회의 여러 대표자들이 어떻게 의미를 생성하는가 하는 논제는 다른 사람이 정한 의미를 어떻게 숙지할까 하는 논제에 묻혀버리게 되고, 이런 합리성은 편협한 합리성이며, 교육의 보편적 원리를 도구주의나 이기적인 개인주의의 풍토에 머물게 하려는 시도에서 합리성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 사회학을 향해

지배적 교육과정 패러다임에서 말하는 이론으로는 주어진 사회의 ‘사실’을 비판할 수 있는 합리적 토대를 제공하지 못한다. 지배적인 교육과정 모델에서 지식은 자기 자신의 의미를 생성하는 자기 형성적 과정, 즉 앎의 주체와 알려진 대상 간의 해석 관계를 포함하는 과정과는 거리가 멀다. 앎의 주체적인 측면은 사라지고, 오직 축적과 범주화가 지식의 목적이 된다. 따라서 가치나 규범이 배제된 지적 탐구와 조사 연구는 있을 수 없다. 가치와 사실의 분리 혹은 사회적 탐구와 윤리적 사고의 분리는 적절하지 않다.

새로운 교육과정 사회학 집단은 학교가 학교보다 더 넓은 사회적 과정의 일부이며, 반드시 특정한 사회경제적 틀 속에서 판단되어야 하며, 교육과정은 광범위한 문화 가운데서 선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비판가들은 교육과정, 학교, 사회 간의 관계를 철저히 재검증할 것을 요구한다.

교사들은 자신의 교실 경험과 학생들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상식 수준의 가정에 따라 행동한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의미를 어떻게 인식하고 생성하는가 하는 문제 역시 무시되어 왔다. 마찬가지로 특정 교실 자료들이 어떻게 교사와 학생, 학교와 사회 간의 의미를 중재하는지에 대해서도 문제삼지 않았다. 이런 식의 행동 양식에서는 교사들이 교육과정과 교수학에 대한 자신의 기본 가정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그들은 질문이 필요 없는 고정적인 태도와 표준과 신념들을 그저 전달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제도적인 억압을 자신도 모르게 강화하는 인지발달과 성격발달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새로운 교육과정 사회학 운동은 보다 유연하고 인간적인 교육과정을 개발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우리는 학교 교육과 인간, 삶 둘 다의 질과 목적에 대한 비판적인 담론을 장려하는 교육과정 모델을 개발해야 하고, 학교 교육과 인간 삶의 영역을 지배하기보다는 풍성하게 만드는 폭넓은 관점을 개발해야 한다. 즉, 개인적 요구와 사회적 요구는 서로 연관을 맺고 중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육과정 모델들은 특정 문화에 속하기 마련인 집단들과 개인들의 구체적인 개별 경험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교육과정과 교육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가치 편중적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자신의 가치관을 다른 사람들에게 억지로 집어넣는 부과에서 우리 자신이 해방될 수 있다. 이는 현실이 결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질문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달리 말하면, 지식은 문제제기적이어야 하며, 토론과 의사소통이 허용되는 교실 사회관계 속에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단의 문제는 우리가 추구하는 윤리적 결론에 종속되어야 한다.

교실에서 하는 사회화 교육

새로운 사회교과 프로그램을 뒷받침하는 요소들을 새로 구성하는 개발자들은 공식적 교육과정과 ‘잠재적 교육과정’ 간의 모순을 이해해야 한다. 공식적 교육과정은 공식적 수업에서 명시하는 인지적 목표와 정의적 목표를 말한다. 그리고 잠재적 교육과정은 의미의 잠재적 구조를 통해 그리고 학교와 교실 생활에서의 사회관계와 공식적 내용을 통해 학생들에게 진술되지 않은 채 은밀하게 전수되는 규범, 가치들, 신념들을 말한다. 교육자들은 잠재적 교육과정의 기능을 알아야 하고, 사회교육의 목표를 훼손하는 잠재적 교육과정의 세력도 알고 있어야 한다.

사회교과의 교육적 변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학교의 잠재적 교육과정과 공식적 교육과정의 모순을 검토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잠재적 교육과정에 대한 모든 분석들은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의 상호관계를 좌우하고 통제하는 조직적 구조 역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학생-교사 상호관계에 집중해보면, 집단생활을 위한 학습은 여러 모로 학생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은 자원을 사용하기 위해 꾹 참고 기다리는 걸 배워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욕망을 미뤄두거나 아예 포기하는 걸 배우게 된다. 교실에서 끈질긴 방해가 있어도 학생들은 조용히 할 것을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집단 활동을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학생들은 집단 속에서 혼자가 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조건 아래서 학생들이 배우는 본질적인 미덕은 인내심이다(인내심은 중재를 통해 얻는 제약이 아니라, 권위에 대한 부당한 복종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학교는 대부분 학생들이 현 상황에 순응하도록 사회화하는 그야말로 부수적 세력이다. 현대 학교 교육의 구조, 조직, 내용은 학생들이 관료적으로 구조화된, 즉 위계적으로 조직된 노동시장에서 요청하는 인성 조건을 갖추도록 한다. 그렇다면 대안적 가치와 교실에서의 대안적인 사회과정은 무엇인가. 우리의 관점에서, 이 대안들은 이기적 개인주의와 소외를 부추기는 사회관계에서 벗어나 집단적이고 민주적인 사회교육의 기초를 말한다. 사회교육을 이론적으로 옹호하는 가치들과 사회적 과정들은 학생들이 도덕적 헌신, 집단적 연대, 사회적 책임성을 존중하게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 또 권위적이지 않은 개인주의가 조장되어야 하되, 이 개인주의는 집단적 협력과 사회적 각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선택권을 발휘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게 하고, 상황의 한계를 깨달은 가운데 선택을 하게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교육과정 자체는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교육 과정을 검토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로워야 한다.

학생을 능력별로 편성하는 잘못된 실천을 없애야 비로소 교실에서 민주적 과정을 실시할 교육 토대가 만들어진다. 능력과 교사가 파악한 성취 행동에 따라 학생들을 분류하는 이런 학교 전통은 교육적 가치에서 보면 의문 투성이다. 능력별 편성을 하지 않으면 교실에서의 권력이 분산되고, 위계적인 역할이 무너지면서 학생과 교사 모두 전통적 교실에서는 드물었던 민주적 관계를 펼칠 수 있게 된다.

민주적 과정이 만들어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가능하다면 외적 보상은 줄이고, 성적을 보상으로 삼지 않고서도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 과정을 직접 이끌어 가는 경험의 기회를 학생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 교실에서 사회적 관계는 교사가 주는 성적과 복잡하게 얽힌 권력에 근거해 있다. 이때 성적은 교사 자신이 바라는 가치, 행동 패턴, 신념을 학생에게 집어넣는 최종적인 훈육 도구가 된다. 대화를 통한 성적 매기기는 전통적 성적과 같은 해로운 관습을 없앨 수 있다. 왜냐하면 대화를 통해 성적을 매기는 것은 학생들에게도 어느 정도 성적에 대한 통제권을 주어 성적과 권위 간의 전통적인 일치를 허물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성적 매기기를 대화적이라고 부른다.

이런 교육적 변화는 학교제도, 노동현장, 정치세계 간에 존재하는 함수 관계에도 적용된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회교과 교육자들이 잠재적 교육과정의 사회적 과정과 가치에 맞설 만한 구조적 토대를 개발해야 한다. 교육 개혁자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교육이론과 실천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해서는 안 된다. 이들 교실과정은 목표, 교수학, 내용, 구조의 상호작용을 고민하는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과정과 가치들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행동주의 목표와 인본주의 목표를 넘어

그리스에서 “교육이란 성숙한 시민참여의 즐거움과 책임감을 다 포함한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비판적․정치적 의식을 계속 이어나가게 하는 거시적 목표의 개발은 칸트의 생각에 많은 부분 기대고 있다. 그는 청년이 “인간의 현재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 바로 인간성 실현이라는 이상을 위해 교육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에게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토대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방법론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적이란 그 사회에 적극 참여하기 위한 인지적, 지성적 도구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2부 문해, 글쓰기 그리고 목소리의 정치학

글쓰기 교육, 발상을 바꾸어라

객관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 사회교과 교육 과정의 많은 부분이 지배적인 규범, 가치들, 관점을 보편화한다. 그런데 이것들도 따지고 보면 역시 사회 현실에 대한 해석적․규범적 관점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사회교과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법을 ‘순진한 생각’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순진한 생각’의 교육에서 재현하는 학습법은 지배적인 범주의 지식과 가치를 인정할 뿐 아니라 누군가의 세계관을 구조화하는 이론적이고 비변증법적인 접근을 강화한다. ‘순진한 생각’의 교육은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을 애써 만들기보다는 비판적 사고활동을 두려워하거나 아예 할 수 없는 사람을 양산해낸다.

진보적인 교실 사회관계를 펼치려면, 무엇보다도 학생들 개개인이 교실에 가져오는 언어와 문화자본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의 통로를 개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이 문화적으로 비문해 상태임을 시사하는 신념과 가치, 언어에 끌려 다닌다고 치자. 그러면 학생들은 비판적 사고활동은 거의 배우지 못하고, 프레이리의 말처럼 ‘침묵의 문화’만 잔뜩 배우게 될 것이다. 요컨대 학생 자신의 존재 조건에 의미를 주기 위해 학생들이 스스로 지식을 활용하게 하려면, 막신 그린이 지적했듯이 교육자들은 ‘이론적인 것으로 도약을 시도하기’ 앞서 학생들의 가치, 신념, 지식을 학습 과정의 중요한 일부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역사에 대한 글쓰기는 역사를 이해하는 비판적 능력을 낳는다. 이는 초보 전문역사가를 위한 건전한 학습 원리이며, 역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어떻게 쓰고, 배우고, 재구조화하는지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교육적 근거를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어떤 역사가 왜 사태가 그러한지 - 무엇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의미를 설명하려는 저자의 시도 - 판단하는 것을 학생에게 가르쳐야 한다.

학생들에게 비판적 글쓰기와 사고활동 방법을 가르치는 과제는 대안적인 의사소통과 대화를 북돋우는 교육 구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교실 사회관계가 억압적이지도 위계적이지도 않아야만, 학생과 교사들이 두려움이나 위협 없이 자기 언어와 자기 문화의 맥락 속에서 의사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민주적인 교실 사회관계의 발전과 함께 학생들은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벗어날 기회를 제공받아야 한다. 그 방법은 자신의 참조체제와는 다른 참조체제를 통해, 자신의 삶을 형성하는 기본 가정을 검토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것이다. 프레이리가 주장했듯이, 지식을 문제삼을 수 있는 학생들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읽기’, 즉 ‘반성’을 실천한다.

어떤 주제를 ‘전문가’가 작성해서 학생들은 멀리서 구경만 하도록 만든다면, 그 주제는 어떤 매력도 정당성도 없어진다. 그러나 이 글에서 제시한 교육 모델을 사용함으로써 학생들은 한 주제에 대해‘속사정’을 파악할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고, 그래서 그 자료를 나름대로 해석하게 된다.

새로운 비문해의 등장과 비판적 읽기

문화 정치는 지배체제의 신념과 태도를 재생산하고 분배해서 합의를 조장하는 방식이다. 그람시는 이런 형태의 통제를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라 불렀다. 지배문화는 지배사회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으로서, 소비지상주의와 실증주의 풍토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 20세기 초반 지배문화가 산업화되면서, 지배문화의 메시지를 널리 퍼뜨릴 새로운 의사소통 형식들이 나타났다. 상품 생산은 상품 생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의식의 지속적인 재생산을 동반한다. 게다가 20세기 자본주의는 대중광고를 만들었고, 그 광고를 통해 소비지상주의 복음을 줄기차게 떠들어대기 때문에 모든 사회존재의 영역에는 산업자본주의의 새로운 합리성이 순식간에 퍼지게 된다.

산업문명이 일상생활을 빠른 속도로 바꾸어놓았다면, 과학적 경영은 전통적인 노동형태를 바꾸어놓았다. 20세기의 발전은 더 이상 인간 조건의 향상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물질과 기술의 성장에만 몰두했다. 정당화의 한 방식으로서 기술적 합리성은 널리 퍼진 문화적 헤게모니가 되었다. 널리 퍼져 있는 의식으로서, 기술적 합리성은 인간과 자연보다 기술을 우위에 놓아 순용적 삶과 노동생산성을 드높이는 것에 찬사를 보낸다.

영상문화는 어떤 의사소통 양식을 다루는 데 필요한 비판적이고 고유한 기능을 갖고 있지 않아도 되게끔 만들었다. ‘대중문화’라는 바로 이 개념은 양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 물론이고, 사고와 경험을 단지 구경꾼 수준으로 전락시킨다. 이때 생기는 병이 무기력이고, 그 치료책은 대량생산된 현실 도피이다. 노먼 프루처는 이렇게 적고 있다. “주로 영상으로 된 유사현실이 스펙터클이다. 개인들은 유사현실을 만나고 유사현실 속에서 살며, 유사현실을 대중적이고 공식적인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매일매일 사람들이 겪는 착취, 고통, 불안과 같은 사적 현실을 가능한 한 밀쳐낸다.”

관리와 통제의 담론에서 새로운 교육담론으로

적합성 담론에서는 특히, 학생의 경험은 일탈적이라든가 천박하다거나 무례하다고 쉽게 비난받는 담론으로 밀려나기 쉽다. 결론적으로 학생들이 학교 실패의 책임을 져야 하고, 행정가와 교사들이 문제의 학생들에게 떠넘겨버린 그 문제가 실제로는 행정가와 교사들 자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는 점에 대해 이론적으로 질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 자신이 지배 논리를 구현하는 경험들을 어떻게 생산하고 정당화하는지 검토하기를 거부하는 적합성 담론에서는 학생, 특히 종속집단 출신 학생에 대한 이런 무비판적 견해가 그대로 반영되기 마련이다. 이런 적합성 담론에서 나온 실천 방식 중 하나는 교사가 본 학생의 문제점을 이유로 교사는 학생들을 꾸짖고, 동시에 교실에서 학생들의 참여를 끌어낼 욕심으로 교사가 학생들에게 굴욕감을 주는 것이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적합성과 통합성의 담론은 기능론적인 학교 교육관 때문이다. 이 입장은 학교가 틀림없이 지배사회의 요구에 복무한다고 보면서도, 지배사회의 성격이라든가 지배사회가 학교 교육의 일상 실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다. 이런 기능주의 때문에 치르는 이론적 대가는 아주 크다. 한 가지 분명한 결론은 한 사회의 특징인 긴장과 적대감을 학교가 배제한다는 점이다.

파울로 프레이리 다시 읽기 - 교육의 정치학을 위하여

프레이리에게 교육은 학교 교육의 개념을 포함하지만, 또한 그 개념을 넘어선다. 학교는 교육이 일어나는 중요한 장소이며, 이곳에서 사람들은 특별한 사회적․교육적 관계를 만들기도 하고, 그 관계의 산물이 되기도 한다. 교육의 역동성은 개인과 집단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나온다. 교육은 비판의 언어와 가능성의 언어를 결합하는 활동 형식으로 비판적 반성과 행동을 사회적 프로젝트의 근본적인 부분으로 만들기 위해 교육자들의 열정적 헌신을 필요로 한다. 프레이리의 연구가 이론적으로 독특하다는 건 바로 이 사회적 프로젝트의 독특성 때문이다. 프레이리는 비판과 가능성의 담론을 결합함으로써 역사와 신학을 결합했다. 그리하여 희망과 비판적 반성, 집단투쟁을 담은 진보적 교육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