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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청산가자

진회숙 지음 | 청아출판사
시공을 초월한 위대한 사랑의 찬가,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지난 2000년 11월, 세계 예술영화의 메카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이 개봉되었다. 소리예술인 판소리를 영상미학으로 승화시킨 <춘향뎐>은 당시 「르 몽드」, 「르 피가로」, 「리베라세옹」과 같은 프랑스 유력 일간지의 찬사를 받으며 드 비엥브뉘 극장을 비롯한 22개 극장에서 절찬리에 상영되었다. 영화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날카로운 비평안을 가지고 있는 파리장과 파리지엔느들이 이 영화에 매료된 까닭은 무엇일까?

<춘향뎐>은 소리예술인 판소리 <춘향가>를 영상으로 옮겨놓은 판소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판소리는 배경음악이 아니라 영상의 내용과 이미지를 결정하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예부터 내려오는 서사적인 노래의 텍스트를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영화는 아마 서양에서도 별로 시도된 적이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일 것이다. <춘향뎐>을 본 서양 관객들은 우선 한국 고유의 전통예술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의 오리지널한 측면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영화 <춘향뎐>은 <사랑가>로 시작한다. <사랑가>는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라는 가사로 시작하는데,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이것은 템포를 빨리 해서 부르는 <자진 사랑가>에 속한다. 이 <자진 사랑가>가 나오기 전에 진양조 장단에 가곡성 우조로 부르는 <사랑가>가 나온다. 이것을 <자진 사랑가>와 구별하기 위해서 <긴 사랑가>라고 부르는데, 여기서는 이 <긴 사랑가>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가사는 야하다. 이렇게 야한 가사가 심원한 진양조 가락에 실리면서 세상에 없는 거룩한 사랑의 찬가가 되었다. 여기서 음악은 사설이 지닌 관능적인 이미지를 은근하고 진득한 사랑의 위대함으로 바꾸어 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춘향이와 이도령의 사랑은 영혼과 육체를 어우르는 지고한 사랑이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봉황, 흑룡, 청학 등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징들이 총동원되어 이 두 사람의 사랑이 그저 평범한 사랑이 아니라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이자 우주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사랑가>는 우리 노래 중에서 거의 유일한 사랑의 찬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노래에서 사랑은 늘 이별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있었다. 우리는 오로지 실연이나 이별을 통해 사랑의 존재 가치를 느껴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노래는 멀리 있는 임이나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는 가사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사랑가>는 다르다. 이 노래는 사랑 그 자체의 신비로움과 위대함을 축복하고 찬양하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찬가라 할 수 있다.

<사랑가>가 이토록 눈부신 후광을 지니게 된 데에는 음악의 역할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진양조 장단에 맞추어 가곡성 우조로 부르도록 되어 있다. 판소리의 조(調)는 크게 계면조, 평조, 우조로 나뉘어지는데, <사랑가>는 이 중에 우조에 속한다. 여기서 계면조, 평조, 우조라는 것은 단순히 음계의 구성음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르는 방법과 전체적인 곡의 분위기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계면조는 애절하고 비통한 느낌이고, 우조는 장중하고 온화한 느낌이며, 평조는 화평정대한 느낌이다.

그런데 <사랑가>는 우조 중에서도 가곡성 우조로 부른다. 가곡이란 사대부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지던 전통 성악곡의 하나로 화이트칼라들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데, 목을 누르지 않는 자연스런 목소리로 점잖고 담담하게 불러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가곡성 우조로 부르는 노래들은 대부분 진양조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진양조는 장단 중에서 가장 템포가 느린 것으로 느린 장단은 그만큼 가락을 수식할 여지가 많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판소리에서 내용이 심오하고 음악적 수준이 높은 가락들은 대부분 이 진양 장단에 맞추어 부르도록 되어 있다. 만약 <사랑가>가 진양보다 빠른 장단에 계면조로 되어 있었다면 춘향이와 이도령의 사랑은 속된 관능의 늪으로 빠졌을지도 모른다. 관능적인 사랑마저 위대한 사랑의 상징으로 바꾸어 놓은 힘이 바로 진양과 가곡성 우조에 있었던 것이다.

영화 <춘향뎐>에서 조상현 명창의 소리에 북을 맞춘 사람은 명고(名鼓) 김명환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이 있다. 판소리에서 고수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그저 박자에 맞추어 기계적으로 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북을 치는 데에도 나름대로 법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법(鼓法)이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김명환은 고수로서는 처음으로 판소리 고법의 인간문화재가 된 사람이다.

판소리는 긴장과 이완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판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소리를 밀고 달고 맺고 푼다'고 얘기한다. 판소리에서는 소리를 밀어서 들고 나가고 달거나 늦추어서 다시 졸라맨 다음 풀어나가기 때문에 북 장단도 소리를 따라서 맺거나 풀어주어야 한다. 소리를 맺어줄 때 '딱'하고 긴장감을 조성한 북 가락은 마지막 장단에서 '궁궁'하고 부드럽게 소리를 풀어주어 듣는 이의 감정을 이완시킨다. 김명환은 이런 면에 있어서 뛰어난 직관력과 음악성을 가진 고수였다. 소리꾼의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며 이 가락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를 예견하고 그에 적절히 대응했다.

다른 판소리가 그렇듯이 <춘향가>도 역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도령은 춘향을 한양으로 불러들여 열녀로 포상하고, 남원골 백성들에게는 부역을 면해 주어 모두가 천년만만세를 누렸다고 한다. 그런 다음 '그 뒤를 뉘 알소냐. 더질 더질'이라는 가사로 끝을 맺는다. 이것은 비단 <춘향가>뿐 아니라 판소리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관형적인 사설이다. '더질더질'은 그 뜻과 어원이 불분명한 말인데,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다. 마치 '그 뒤를 뉘 알소냐'라는 말을 감각적인 의성어로 바꾸어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그 뒤를 뉘 알소냐'라고 했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후 춘향이와 이도령은 가장 이상적인 가족구도인 삼남이녀(三男二女)를 낳고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한다.

가을밤의 외기러기 소리, <심청가> 중 <추월만정(秋月滿庭)>



판소리 대목 중에 가을의 서정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노래가 있다. <심청가> 중에 나오는 <추월만정>이 그것이다. 이 소리는 황후가 된 심청이가 가을밤에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를 그리며 눈물짓는 장면에서 부르는 것인데 가을, 달밤, 청천, 외기러기, 울음, 편지, 눈물, 한숨…. 그 울림만으로도 가슴 시린 단어들이 이 노래에서는 줄줄이 나온다. 보통 사람도 가을밤이면 만감이 교차하는 법인데, 효심이 지극한 심청이야 그 심정이 오죽하랴.

<추월만정>은 사설의 내용이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음악적으로 예술성이 높은 판소리 대목들은 그 사설이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한문투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때로는 발음이 와전되어 뜻이 모호해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본래 민중의 것이었던 판소리가 양반의 비호를 받으면서 그 사설이 양반의 기호에 맞게 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월만정>은 높은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사설이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추월만정>은 서늘하고 쓸쓸한 노래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달을 바라보고 눈물짓는 심황후의 쓸쓸함이 그대로 가슴에 전해지는 듯하다. 전통음악 중에서도 판소리는 사설의 의미를 가장 리얼하게 소리로 표현하는 장르로 알려져 있다. 서양음악에서는 이것을 음화(音畵 : word painting)이라고 했는데, 헨델과 같은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이 주로 이런 기법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산과 골짜기'라는 단어가 나오면 '산'은 높은 음으로, '골짜기'는 낮은 음으로 처리하는 식이다. 판소리에서도 사설을 이런 식으로 처리해 표현의 사실성을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추월만정>에서도 이런 소리의 리얼리즘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판소리에서 소리의 리얼리즘이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은 역시 사물의 소리나 동작을 묘사한 의성어, 의태어가 아닌가 싶다. 여기서는 '뚜루루루 낄룩' 하는 기러기 울음소리가 나오는데, 이것을 실제 울음소리와 똑같이 묘사함으로써 사설의 사실성을 높이려고 한 점이 눈에 띈다.

장단과 함께 소리의 특징을 규정하는 요소는 조(調)이다. <추월만정>은 계면조로 되어 있다. 계면조는 슬프고 애절하고 비통한 느낌을 주는 가락이다. 판소리에서는 이 계면을 다시 평계면, 단계면, 진계면으로 나누고 있는데, 평계면은 약간 애조를 띤 정도이고, 단계면은 슬픈 것이며, 진계면은 슬프다 못해 비통한 것이다. <추월만정>은 이 중에서 단계면에 해당된다. 슬프기는 하지만 통곡할 정도의 슬픔은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서 심황후의 슬픔은 품격 있는 슬픔이다. 그런 고상한 슬픔이 이 노래의 고고한 분위기와 어울린다. 그래서 <추월만정>은 단계면으로 불러야 제 맛이 난다. 만약 이 노래를 피를 토하듯 통곡하는 진계면으로 부른다면 '추월'의 격조 높은 쓸쓸함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할 것이다.

<추월만정>은 일제 시대의 명창 이화중선(李花中仙)이 잘 불렀다고 한다. 그녀는 일제가 이 땅에 서서히 침력을 손길을 뻗치기 시작한 시기에 태어나 그 암울한 시대를 소리와 함께 살다 간 사람이다. 나라 잃고 고통 당하는 민중들에게 그녀의 소리는 삶의 위안이자 기쁨이었다. 본명은 이붕학으로 화중선이라는 이름은 판소리 광대가 되고 나서 지은 예명이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열 다섯 살 되던 해에 박씨에게 시집을 갔다. 어느 날 창극단체인 협률사의 공연을 보고 가출을 결심한다. 집을 나온 이화중선은 남원으로 갔다. 당시 남원에는 장득주라는 명창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의 동생 장학주와 백년계약을 맺고, 이것을 인연으로 시아주버니인 장득주에게 소리를 배우게 되었다. 장득주에게서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세 바탕을 모두 배운 이화중선은 남편과 헤어지고 서울로 올라와 다시 송만갑, 김정열에게 소리를 배웠다.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주최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당대 최고의 여류 명창으로 눈부신 활동을 벌였다. 여러 단체를 따라 다니며 순회공연을 했고, 일본에 건너가 레코드 취입을 하기도 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무렵인 1943년, 이화중선은 일본에서 징용생활을 하고 있는 조선인을 위한 위문공연에 나섰다. 당시 큐우슈우로 떠나던 배는 정원을 초과해서 사람을 실었는데, 그 바람에 배가 그만 침몰하고 말았다.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구름 위에 달이 떠 있는 듯 수월하게 소리를 잘 냈다'고 회상하고 있다. 1920년대에 녹음된 음반을 들어보니 정말 그랬다. 그러나 그녀가 부른 <추월만정>을 듣고 나서 다소 당황했다. 그녀가 부른 <추월만정>은 아주 쓸쓸하고 애절한 분위기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는데 소리를 수월하게 잘 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음색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남성적이고 담담했다. 약간의 바이브레이션과 비성(鼻聲)이 섞여 있어 애조를 띠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절절하고 처연한 정도의 애조는 아니었다. 그런데다가 그녀가 부르는 것은 템포가 너무 빨랐다. 템포가 빠르니 아무래도 소리에 그늘이 실리지 않는다. 이것은 비단 이화중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음반으로 나와 있는 옛 명창들의 소리를 들어보면 지금보다 가락이 훨씬 단순하고 템포도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르면서 판소리가 그만큼 음악적으로 변한 것이다. 진양조는 훨씬 템포가 느려졌으며, 가락의 붙임새는 보다 정교해지고 복잡해졌다. 슬픈 소리에 드리워진 계면의 그늘도 훨씬 짙어졌다. 이에 따라 우리의 미감(美感)도 변했다. 이제는 이화중선 정도의 그늘로는 애절한 슬픔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우리의 감수성이 바뀐 것이다. 더 느리게, 더 세련되게 슬퍼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아폴로 신전에 깃든 디오니소스, <거문고 산조>



옛날 고대 그리스인들은 혈기에 충만하고, 신비적이며, 내세적인 동시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지적인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극단적인 두 가지 성향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출한 것이 바로 아폴로 제전과 디오니소스 제전이었다. 서로 상반되는 성격을 띤 두 제전을 통해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갈등했던 그리스인들의 양면성을 볼 수 있다. 아폴로 제전은 이성, 절제, 침착성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르라는 현악기를 사용해 단순하고 정적인 음악만 연주한다. 디오니소스 제전은 이와 반대이다. 아울로스라는 피리 종류의 악기로 열정적이고 관능적인 음악을 연주한다.

그 이후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는 예술의 고전적인 측면과 낭만적인 측면을 대변하는 단어로 쓰였다. 예술에서는 감정의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아폴로적 이상과 자유로운 감정 표출을 추구하는 디오니소스적 이상이 끊임없이 갈등과 대립을 계속해 왔는데, 시대에 따라 주도권이 바뀌기는 했지만 이 두 가지 이상은 늘 예술 속에 공존해 왔다.

우리 전통예술, 그 중에서 특히 고급예술을 이런 시각에서 평가한다면 아무래도 디오니소스보다는 아폴로 쪽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폴로적인 것은 그 취미가 너무 고상해 일반 대중이 잘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 악기 중에서 고전주의적 이상에 가장 근접한 악기를 들라면 누구나 거문고를 들 것이다. 한때 거문고는 본격적인 연주 악기라기보다 선비들의 심미적 이상주의를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우리 옛 그림을 보면 거문고를 연주하는 장면보다 그것을 들고 있거나 줄을 고르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온다. '거문고의 정취를 얻기만 한다면 어찌 애써 줄 위의 음을 다루리오'라는 도연명의 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옛 선비들은 거문고의 정취를 얻는 것을 예술적으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 의미에서 거문고는 이데아를 상징하는 악기였으며, 소리가 지나치게 크거나 화려하면 안 되었다.

그런데 이런 거문고의 존재 방식에 질적 변화를 가져올 대사건이 조선 중기에 일어났다. 연주법의 변화였다. 경안법(輕按法)에서 역안법(力按法)으로 바뀐 것이다. 경안법이란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왼손으로 괘를 가볍게 짚고 오른손으로 술대를 쳐서 소리를 내는 방식을 말하고, 역안법이란 요즘처럼 거문고를 무릎에 비스듬히 세워 놓고 왼손으로 괘 위의 줄을 밀고, 오른손으로 술대를 쳐서 소리를 내는 방식을 말한다. 이 변화는 거문고 음악에 질적 전환을 가져왔다. 역안법으로 바뀌면서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농현(弄絃 : 줄을 떠는 것)과 소리의 끌어내림이 가능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술대로 세게 줄을 내려치는 대점(大點)이 첨가됨으로써 거문고는 이제 보다 풍부한 표현력을 갖추게 되었다. 원초적인 투박함과 꿋꿋한 남성미로 대표되는 고구려식의 역동성을 넘어 이제 거문고는 내면의 힘과 우아함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주법의 변화가 거문고의 존재 방식을 갑자기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거문고는 조선 왕조 내내 양반의 명분과 유교적 이념에 얽매어 자신의 음악적 가능성을 충분히 시험해보지 못했다. 이런 거문고가 서서히 반동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였다. 역안법으로 전환한 지 수세기 만에 드디어 '예술을 위한 예술'로서 새로운 존재방식을 모색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거문고 산조다. 거문고 산조는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거문고의 명인 백낙준이 만들었다고 한다.

봉건적 사회질서가 곤고하던 시대에는 거문고의 고상한 명분에 도전장을 내는 것이 어려웠다. 그 변화는 단지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잠재해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20세기 초, 봉건 질서가 느슨해지고, 사람들의 의식이 자유로워지면서 유교적 명분이나 체면, 고상한 음악에 대한 귀족 취향이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과도기에 음악인들의 인식 전환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바로 가야금 산조였다.

가야금 산조가 모델이었기 때문에 거문고 산조의 기본적인 틀도 가야금 산조와 비슷하다. 비단 거문고 산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쟁이나 대금, 해금, 피리 등 산조는 모두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진양에서 시작해 점점 빨라지는 악장의 구조도 그렇고, 선율을 구성하는 원리도 그렇다. 뿐만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는 가락의 흐름까지도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악기가 달라지면 음악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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