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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 제국의 파노라마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 시아출판사
파라오 제국의 파노라마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임헌 옮김

시아출판사 / 2001년 2월 / 374쪽 / 9,000원



서문

이집트는 태양의 딸이다. 태양은 신 라의 모습이며, 신 라는 창조의 원칙이다. 이집트인들은 태양의 움직임을 모델로 그들의 신학을 만들었다. 태양이 땅 아래로 사라지면서, 다시 부활을 준비하듯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또한 이집트는 거대한 연꽃이다. 남부에서 발원하는 나일강 상류가 그 줄기라면 하 이집트는 그 꽃이다. 독일의 이집트 전문가 에르만과 랑케는 “독일 문명, 아니 유럽 문명 전체가 불가분하게 이집트와 연계되어 있다.”고 썼다. 이집트는 우리의 가장 깊숙한 기억과 정신에서 막대한 역할을 한다.

1789년은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시작한 해이다. 많은 이들이 파라오 문명의 신비를 꿰뚫으려고 하였다. 특히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중 한 병사에 의해 발견된 로제타 석은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 거대한 현무암 조각에는 비명이 3개의 언어(그리스어, 데모치크어,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 문명을 여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이집트는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답은 이집트 사상의 핵심을 말하는 것이다. 이집트인은 끊임없이 영원성과 불멸성을 추구했다. 그들에 있어 중요한 것은 날짜가 아니라, 파라오가 우주적 질서 속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파라오 왕조사는 신들의 지배로 시작된다. 그러고는 반신적 존재들, 빛의 존재들이 이어진다. 뒤이어 마침내 첫 번째 인간적인 왕, 메네스의 통치시대가 열린다.

이집트의 사상과 역사, 사회의 중심에는 왕이 있다. 파라오는 하늘에서 땅을 지배하는 신들의 후손이다. 신적인 자격으로 파라오는 지상에서 가장 값진 보물인 이집트를 보호하는 것이다. 파라오는 태양신 라에 의해 점지되며, 지명된다. 따라서 파라오는 무엇보다 종교적 역할이 으뜸이다. 파라오의 종교적 의무는 사원의 건축과 보수, 기획에서 드러난다. 신전은 단지 종교적 실체로서 뿐 아니라 주된 경제적 장치로서도 필수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고대 이집트에서는 정신영역과 물질영역 사이에 구별이 없었다는 점이다.

『왕권과 신들』이라는 책에서, 프랑크포르트는 이집트 왕은 무엇보다 인간과 초자연적 힘 사이의 조화를 보호하는 자라고 말했다. 왕이 사라지면, 조화는 무너지고 인간의 삶은 혼돈 속으로 침몰한다. 파라오의 이집트는 이런 생각을 믿었으며, 이런 법칙에 의거하여 살았다. 파라오 속에는 신격과 인격이 결합되었다. 그러한 신격과 인격의 결합이 파라오의 독특한 개성을 형성했으며, 수천 년에 걸쳐 문명의 촉매로 만들었다. 이제 그들을 찾는 여행을 떠나자.



1장 전갈왕. 문명의 새벽

5천 년 전, 이집트는 전체가 바다 밑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물이 빠진 선사시대의 이집트는 하나의 거대한 오아시스였으며, 주변의 대지는 점차 사막으로 변했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의 문명이 태어나게 될 것이다. 갑자기, 한 왕이 등장했다. 상 이집트의 흰색 왕관을 쓰고, 엄숙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그는 단순한 족장이 아니라 군주며, 그의 왕관은 ‘속이지 않는다’는 징표다. 그의 이름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전갈 모양의 상형문자로 쓰여져 있어 전갈왕이라고 부른다.

투구 두 번째에는 전갈왕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 모습은 거대하고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런 전갈왕의 모습은 이집트에서 경제적 행위의 토대인 운하를 파는 것과 함께 땅의 신성한 소유권을 상징하는 것이다. 전갈왕은 이집트를 선사시대에서 이끌어내고, 자연현상을 막대한 부의 원천으로 길들이는 방법을 이집트인에게 가르쳐 주었다. 농사에 필요한 물을 끌어대고 운하를 파고 관리하는 것 등을 모두 파라오가 지휘했던 것이다.

파라오 이집트의 골격은 전갈왕이 통치하던 때부터 형성되었다. 그러면 전갈왕이 통치했던 ‘왕조시대 이전’은 얼마 동안 지속되었을까? 고고학자들마다 주장이 다르지만, 메네스 이전에는 이집트가 통일되지 않았으며 전갈왕은 상 이집트만 지배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전갈왕의 보호 아래, 점차 경작이 가능해졌으며, ‘상형문자의 탄생’이라는 또 하나의 혁명이 뒤이어 일어나게 된다.



2장 메네스. 민족의 탄생

‘왕조시대 이전’은 끝났다. 그 때 한 사람이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를 통일했다. 이것은 이집트 민족이 탄생했다는 뜻이다. 이 사실은 히에라콘폴리스 유적에서 발견된 ‘나르메르왕’의 팔레트에 담겨 있다. 팔레트에서 보면 나르메르는 전갈왕을 이어받아 남쪽에서 힘을 보강한 후, 이집트 전체에 힘을 행사했다. 그러나 왕조 목록들은 첫 파라오로 메네스를 기록하고 있다. 이후 오랜 논쟁 끝에 사람들은 메네스와 나르메르가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메네스는 그가 지배하는 새로운 국가에 어울리는 도시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멤피스를 나일강에서 멀지 않은 서쪽 연안에 세웠다. 멤피스라는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신성의 상징이었다. 제1왕조부터, 멤피스는 종교적․정치적 중심이 되었다. 그곳에서 왕들의 대관식이 이루어졌다. 메네스는 위대한 행정가였다. 그는 나라를 ‘노메스’라 불리는 여러 지방들로 나누었다. 그 지방을 표현하는 상형문자는 격자형 네모인데, 이것은 관개용 운하들로 구획되어진 땅을 표현한다. 전갈왕이 처음 시작한 작업들을 메네스 또한 계속 추진하였다. 그는 이집트에서 관개가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강력한 중앙권력을 만들어 국가적 사업을 추진했다. 이집트 전역에 제방이 세워지고 운하를 건설했다.

메네스의 죽음에 관해서 알려진 사실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메네스의 아들이 장성해서, 멤피스의 궁전을 세웠으며, 그가 사제계급에 속했다는 것이다. 메네스가 죽은 후 첫 두 왕조는 그의 작업을 계속 추진한다.



3장 제제르. 장엄한 파라오

파라오 제제르가 옥좌에 오르면서, 이집트의 고대제국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27세기이며, 제3대 왕조 초기이다. 그를 파라오로 섬기는 동안 고대 이집트는 가장 빛나는 역사 중 하나를 경험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시기를 ‘제제르의 세기’라고 한다.

가디너는 제제르를 3대 왕조의 진정한 설립자라고 한다. 고대 이집트의 종교, 예술, 사회 진보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 바로 3대 왕조다. 제제르에게 평화는 중요한 것이었다. 흔히 이집트 문명은 이상을 예술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평가되는데, 어떤 파라오도 문명의 ‘평온한 균형’을 그보다 더 잘 상징하지 못했다. 문명과 예술에 있어서도 진정 지혜의 세기였다.

그의 이름의 의미는 ‘권위 있는, 찬탄스러운, 신성한’이라는 뜻이다. 그는 다른 이름인 ‘네테리에르케르’로도 불렸다. 이는 ‘신보다 더 신성한’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이름에서 파라오는 자신을 보통 인간들보다 뛰어난 신성한 권력을 위임받은 왕으로 확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엄청난 유적을 창조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천재적인 건축가 임호텝이 있었다. 임호텝은 계단식 피라미드인 사카라를 위해 우선 모래를 퍼내고 석회암반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에 의해 구상된 수만은 건축물 중 계단식 피라미드는 즉각 시야에 들어온다. 파라오의 죽은 육체가 모셔지는 곳은 바로 피라미드 아래였으며, 태양과 맞닿는 꼭대기에는 파라오의 불멸의 정신이 모셔지게 된다.

장엄한 파라오 제제르는 이집트에 수천 년 동안 지속될 숨결을 불어넣었고, 피라미드 형태를 창조했다. 신성과 인성을 불가분하게 엮고자 했던 제제르의 의지는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장엄한 파라오 제제르, 그는 죽어서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돌로 생명을 전했다. 영혼의 풍경 속으로, 영원한 축제로 들어간 것이다.



4장 스네프루. 건축가 파라오

기원전 2575년경, 스네프루라는 왕이 4왕조를 세웠다. 그의 통치는 기원전 2551년까지 지속되었으니 적어도 24년 동안 통치했다. 많은 자료로 보건대, 스네프루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가였다. 그의 통치는 가공할 건축활동과 평화의 정신, 조화로운 경제발전을 결합하는 것이었다. 이집트인의 정신 속에서 스네프루는 좋은 왕, 너그러운 군주로 남는다. 4왕조의 첫 파라오는 선량함에서 비롯된 자연스런 권위를 누리며 황금시대를 열었다. 천재적인 건축의 대가였던 스네프루는 계단식이 아닌 미끈한 피라미드 형태를 창조했다. 그리고 그 기법에 따라 하늘을 향해 치솟은 세 개의 피라미드를 세웠다. 그는 영원히 세 피라미드의 파라오로, 그리고 삶과 창조라는 행복의 절정에 있었던 이집트인으로 남아있다.



5장 케옵스, 케프렌, 미케리노스. 거인들의 지배

스네프루의 황금시대를 이어 세 거인들이 등장했다. 케옵스와 케프렌, 미케리노스. 케옵스는 기원전 2551년, 미케리노스는 2471년에 왕위에 올랐다. 이들이 80년 동안 통치하는 동안 이집트는 장엄하면서도 평온했다.

케옵스 왕의 이름은 ‘쿠푸’이다. ‘신께서 나를 보호해 주시기를’, ‘크눔께서 나를 보호해 주시기를’이라는 의미이다. 그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의 상실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따라서 케옵스 체제에 대한 역사 또한 어둠에 묻혀 있다. 단지 우리는 그가 베두윈족의 기습에 대항하여 시나이 광산을 보호했으며, 상 이집트에 있는 덴데라와 델타에 있는 부바스티스의 신전들을 보존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의 대 피라미드는 높이가 147m에 이른다. 정상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표면만 4헥타르에 달했다. 그 건축물에는 “케옵스는 지평선에 속한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그의 대 피라미드의 지리적 위치는 매우 독특하다. 경도상, 지구상에서 육지가 가장 많고, 바다가 가장 적은 곳으로 지구의 땅을 정확히 둘로 나누고 있다.

케프렌은 케옵스의 바로 뒤를 이은 파라오는 아니다. 케프렌의 이름은 ‘라 신이 태어날 때’라는 뜻이다. 이 파라오의 모습은 기자 피라미드 계곡의 신전에서 발견한 섬록암 조각상으로 전해졌다. 옥좌에 앉아 있는 왕은 진정 살아있는 듯 하다. 그의 피라미드는 케옵스의 것만큼이나 높다. 단지 토대가 15m 더 낮으며 경사가 약간 더 가파르다. 그리고 꼭대기의 석회암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케프렌의 피라미드는 내부구조가 케옵스의 피라미드보다 훨씬 복잡하다.

케프렌에 곧이어 미케리노스가 왕위에 올랐다. 20년 정도 이집트를 통치한 그는 대 피라미드의 세 건축가들 중 유일하게 헤로도토스의 칭송을 받은 파라오이다. 조각가들은 미케리노스의 육체를 멋지고 강인하게, 그리고 안정된 힘과 자연스러운 위엄을 표현했다. 그의 모든 조각상에는 평화로운 세계와 확고한 왕권, 영원성에 대한 믿음 속에서 공감하는 국가를 표현하는 이미지들이 있다. 그의 이름은 ‘라 신의 생명력은 영원하시다’는 뜻이다. 기자 언덕 위의 세 번째, 그의 피라미드는 앞의 두 선임자들보다 훨씬 작다. 높이는 66m 정도이며, 분묘촌은 완공되지도 않았다.



6장 페피 2세. 역사상 가장 긴 통치

이집트 6대 왕조는 일곱 명의 왕이 통치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은 어려서 왕위에 올라 무려 94년 동안이나 통치한 페피 2세이다. 그는 가장 오래 통치했으며 이로써 이집트인이 매우 오랫동안 살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페피 2세 시대 초기에는 고대제국의 토대가 탄탄했으나, 94년이 지나 와해되려 했다. 페피 2세는 좋은 징후를 보이며 자신의 통치를 시작했다. 6대 왕조의 파라오들은 계속해서 피라미드를 세웠다. 케옵스나 케프렌의 것보다는 낮지만, ‘신성한 삼각형’ 형태로 만들어진 웅장한 유물들이다.

페피2세에게 많은 문제를 제기한 누비아의 국경 지역은 중요했다. 특히 엘레판틴은 노마르크가 아니라 그 지역을 위해서 특별히 임명된 관리가 통치했다. 엄격하게 국경을 감시하면서 그 지역을 개발하고, 탐험가 히르쿠프가 개척한 도로를 관리하면서, 새로운 교역 통로를 발견하기 위해 체계적인 원정을 시도했다. 페피 2세 시대 이집트 교역 활동은 누비아뿐만 아니라 푼트 지방이나 비블로스과도 이루어졌다.

페피 2세는 특히 종교건물 건설에 몰두했는데, 그것과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면제했다. 이러한 특권은 페피 2세의 왕권 약화 과정, 즉 왕의 권위가 치명적으로 줄어드는 것의 단초를 제공했다. 아무도 왕의 권위를 부정하진 않았지만 조금씩 벌레가 좀먹기 시작했다. 이러한 점은 두 가지 사실이 말해준다. 첫째는, 노마르크가 파라오 옆이 아닌 자신들의 지방에 묻히기를 선택한 것이고, 둘째는 노마르크가 자신의 권리를 세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7장 세조스트리스. 중기제국의 미소

거대한 카르낙 공사장의 고고학적 기적 중 하나로 ‘정자’를 들 수 있다. 이것은 11대와 12대 왕조를 포함하는 중기제국(기원전 2134~1785년)의 왕들 중 한 명인 세조스트리스 1세가 휴식을 취하던 신전이다. 중기제국은 이집트 언어가 고전적으로 확립된 문학적 시대였다. 그 정자는 미소를 짓는 듯하다. 장중함과 신성함에도 불구하고, 내적 환희와 조화에 대한 강한 취향을 담고 있어서 그 돌들에는 미소가 담겨 있는 듯하다.

세조스트리스는 자신의 풍모와 관련된 전설이 형성됨으로써 세계적인 파라오가 되었다. 신의 축복을 받으며 세계를 통치했기 때문에 그는 이집트 국경을 훌쩍 뛰어넘어 명성을 날렸다. 우선, 그는 리비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건축에도 소홀하지 않고 많은 신전을 세웠으며, 둑을 만들고, 운하를 팠다. 조세제도는 공평했으며, 농정은 효율적이었다. 그의 너그러운 기질로 전쟁포로는 해방되었다. 그로써 그는 평화와 안정의 상징이 되었다. 세조스트리스는 이집트인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목동이었다. 따라서 신격화된 왕을 상징하는 거대한 조각상이 세조스트리스 3세부터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대제국의 파라오들과 마찬가지로 세조스트리스 1세는 그의 무덤으로 피라미드를 세웠다. 높이가 약 60m에 이르고, 지하의 방들에서는 혁신적인 기법이 돋보이는 피라미드다. 세조스트리스 시대의 이집트는 한마디로 문화의 세계였다. 이 중기제국 시대에 예술적 천재성은 유감없이 표현되었다. 특히 보석 세공술은 과히 황금시대였다. 무덤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보석이 이를 말해준다.



8장 아모시스. 해방자

파라오 아모시스의 명성은 거의 전문가들에게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제국 시대에 가장 위대했던 파라오들은 그에게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모시스는 이방인에 의해 점령된 이집트의 진정한 해방자이기 때문이다.

동쪽에서 온 힉소스족은 이집트를 침입해 델타를 점령했다. 기원전 1650년경, 테베의 17대 왕조는 이집트 땅에 이런 이방인이 있는 사실을 견디지 못했다. 테베의 왕들은 남부 지방을 통일시켜 재조직하고, 군사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17대 왕조 마지막 파라오였던 아모시스는 또한 18대 왕조의 첫 파라오다. 그는 신제국의 새벽을 알린 인물이다.

아바리스를 점령한 것은 ‘달이 태어나다’는 뜻을 지닌 아모시스였다. 이 사건은 이집트에서 왕조를 바꿀 만큼 매우 중요한 것이다. 빛나는 성공에 만족하지 않은 아모시스의 군대는 3년 후 다시 포위작전을 감행하여 팔레스타인 남서부 요새인 사루헨을 점령했다. 아모시스의 병사들은 이집트의 고대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했다. 화력과 병사들의 이러한 열정으로 드디어 새로운 영광의 시대가 열렸다.



9장 하쳅수트. 여왕 파라오

기원전 1490에서 1468까지, 이집트는 20년이 넘은 기간 동안 한 여인의 지배를 받았다. 그녀의 이름은 하쳅수트다. 그녀가 이집트 최초의 여왕이 아님에도 그녀가 두드러지는 것은 부유하고 강력한 이집트의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하쳅수트는 투트모시스 2세와 결혼했는데 투트모시스 2세의 통치는 매우 짧았다. 그는 매우 강력한 왕이었지만 일찍 죽음을 맞았고, 그의 죽음은 이집트를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그에게는 두 딸과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 투트모시스 3세가 왕위에 오르기엔 너무 어린 나이었다. 그렇게 하여 하쳅수트가 섭정을 하게 되었다. ‘왕의 딸, 왕의 누이, 신의 아내. 왕국의 위대한 아내’로서, 그녀는 나라를 이끌겠노라 서약했다. 그러나 섭정은 이집트 정신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한 사실을 안 하쳅수트는 왕이 되기로 결심하고 남장을 하여 여왕이 아닌 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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