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한 약속
로버트 라이시 지음 | 김영사
1. 사회계약의 새로운 모색미국 역사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9. 11 사태만큼 미국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준 사건은 없었다. 현재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동시에 침체에 빠진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 국민들은 모두 한 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지만 말이다. 지금과 같이 최대 규모의 군사비를 투입하고 치안을 강화하는 한편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부시 대통령은 소득세와 자본 이득세에서 약 6천억 달러의 추가 삭감 계획을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세금 감면 조치들은 모두 대기업과 일부 부유층에게 유리한 조치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대가는 누가 치르게 될까? 바로 중산층과 저소득층에 속하는 국민들이다. 요컨대 현재 부유한 사람들의 소득세와 자본 이득세를 감면해줄 경우, 급여세 인상이 불가피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경제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세를 보일지 모르지만, 그 동안 경제적 타격을 받은 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현재 사회복지 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정부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안타깝게도 미국인들은 지난 1990년대의 호황기를 거치면서 경기 침체에 미리 대비하지 못했고, 그 결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서민층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미국 국민들은 과거 1930년대의 대공황이나 제 1·2차 세계대전, 냉전 등과 같이 국가적인 문제에 직면했을 때 모두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사회보장제도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빈부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고용 불안이 이어지면서 이러한 인식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원천인 '사회계약(social contract)', 즉 사회복지에 관한 미국 사회의 합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지난 1990년대에 미국 사회가 엄청난 호황을 누리기는 했지만, 실제 소득 수준으로 볼 때 하위 50%의 국민들에게는 나아진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이 직장을 잃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평균 소득 수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세금을 공제하고 받을 수 있는 실질 임금, 즉 평균 임금이 1989년 이후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근무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근로 시간이 늘어났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생활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고용 불안 문제는 과거보다 훨씬 심각해졌다.
이와 같은 문제는 경제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부모들은 항상 바쁘므로 자녀에게 신경을 쓰지도 못하게 되고 가난한 유권자들은 정부의 비효율성과 낭비에 분노하게 되므로, 이러한 사실은 원래 남에게 관대했던 미국인들의 약자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는 것과 미국 정치가 이전투구로 얼룩져 추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도덕적인 결과이다. 오늘날의 잘못된 현상은 미국 국민들의 가치관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으며,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미국 국민들의 신념을 비웃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과거의 모습이 아니며 급속도로 사회의 가치관이 해체되고 있다. 컴퓨터와 생산 자동화는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빠르게 낮추고 있다. 그러나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모든 사회와 국가에는 나름대로 사회계약이 있게 마련이다. 사회계약은 각 사회 구성원들 간의 의무를 정해놓고 있다. 사실상 어떠한 사회나 문화든지 모두 사회계약에 의해 결정된다. 이때 사회계약은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러한 사실이 명백한 진리라고 규정한다. 우리의 평화와 자유가 위기를 맞았다. 그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와 같은 생각이 사회계약 속에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필수적인 원칙들이 점차 빛을 잃어가면서 사회계약의 정확한 취지와 원칙을 더욱 깊이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자본주의에는 도덕적인 핵심 원칙이 있는데, 그 원칙은 세 가지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째, 기업의 경영 실적이 좋으면 종업원들의 생활수준도 향상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경영자들이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둘째, 종업원들에게 자신과 가족들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을 만큼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 미국 사회가 그러한 이상적인 단계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약50여 년간 대부분의 미국 국민들은 열심히 일했음에도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국가에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셋째, 인간이라면 누구나 국가에서 제공하는 공교육을 통하여 자신의 능력과 자질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것들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회계약은 페어플레이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지 부의 재분배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사회계약은 이제 해체되고 있다. 기업들은 종업원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과거와는 달리 '정리해고'라는 용어는 복직을 시키지 않는 형태로 변하고 있다. 어쩌면 이제는 완전히 해고해버린다는 의미에서 '캐스트오프(cast off, 정리해고와 달리 경기가 좋아져도 다시 복직시키지 않는 해고 제도를 빗대어 표현한 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미국 기업들이 노동 비용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왜냐하면 인건비가 전체 생산 원가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회사측으로서는 경비를 절감하고 수익을 늘려야만 하는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고위 경영진과 전문인력, 고급 기술인력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꾸준히 늘어났다. 대기업의 경우, 지난 1990년대 최고경영자의 연봉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더라도 거의 매년 10%씩 인상되었다.
사회계약의 두 번째 약속 역시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현재 최저 임금의 실질 가치는 지난 1970년대 말과 비교해봤을 때 약 20%가 낮아진 셈이다. 실업보험은 더 이상 영구적으로 정리 해고된 사람들과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또한 사회계약의 세 번째 약속인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 역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 미국 연방정부가 초·중등학교의 공교육에 투자하는 금액은 총 소요 비용의 8%에 불과하다. 그 나머지는 각 주 정부와 지방자치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공공교육은 현재 심각한 재정난으로 인해 교육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등록금 또한 평균적인 가정의 임금 수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상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사회계약이라는 안전망이 붕괴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첨단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인력과 그렇지 못한 인력이라는 양극화를 낳은 기술의 발전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 모순을 설명할 수는 없다. 오늘날 부유한 투자자들과 고급 전문 인력은 단지 경제 성장의 수혜자가 아니다. 그들 역시 점차 붕괴되어가는 미국 사회의 일원이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사회계약이 붕괴되는 것을 방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 스스로도 명확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두 가지의 가설을 제시할 수는 있다.
첫째, 새로운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는 남들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거나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남들보다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들의 지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현저히 낮아져, 다른 사람들의 생산성을 최대화하는 데 관심을 가질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 둘째, 어떠한 사회계약이든 모두 "나에게도 똑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경제적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화되면서 신분 변화의 가능성은 수십 년 전에 비해 훨씬 낮아지고 있다.
또한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 행위는 미국의 생존에 큰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빈부격차의 심화는 그보다 더 미국 사회의 안정에 위협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점차 심화되고 있는 미국 사회의 빈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즉, 미국의 사회계약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많은 국민이 정치에 환멸을 토로하며 정치에 냉소적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유권자에게는 무관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그들에게 거액의 정치헌금을 기부하는 대기업을 위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한다. 해결책은 단 한 가지, 국민 개개인이 모두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반드시 신념을 밝히고 투표하여 깨끗한 사람들이 정치에 입문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다시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평범한 시민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 기업의 사회적 책임빌 게이츠 귀하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미 법무부의 반독점 금지 결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앞으로 더 많은 소송이 제기될 것입니다. 저는 그다지 많은 주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주 중 한 사람 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제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의 가치를 극대화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마이크로소프트가 로비 활동이나 정치적 활동에 사용한 모든 자금은 - 제 돈까지 포함해서 - 바로 저를 위한 것입니다. 이는 소비자들을 위해 새 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에 돈을 사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만은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귀하가 제 돈을 가지고 한 일에 불만 이 많습니다. 저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들에 대해 반독점 금지법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소액 주주가 되었을 때 제 돈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주가를 올려달라고 부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단지 기 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능한 최선을 다해 주가를 올려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고 주주들의 이익만 위하여 정부 정책을 몰아가는 행위는, 미국 국민이 대기업과 맺은 소중한 약속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정치적 전술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거대 기업들이 공공의 이익에 대해 더욱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경우 최악의 상황이 발 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귀하의 건투를 빕니다. 로버트 라이시 올림 마이크로소프트 주주 겸 시민
지난 2000년 진행된 대통령 선거 이후 워싱턴에서는 힘의 균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기업들이 정부의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기업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 대통령을 지원한 대가를 바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 핑계를 대면서 재계의 압력을 거절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한편 부시 행정부는 앞으로 테러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미국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민들이 미국 기업들의 주식을 매입하고 많은 상품들을 구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시장 애국주의(market patriotism)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를 늘려 애국심을 보여준다는 논리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이제 테러와의 전쟁에 있어서 애국심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저축을 줄이고 소비를 늘여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안타깝게도 바로 지금 애국심에 호소하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많은 중산층 국민들은 지난 1990년대 호황기에 이미 과도한 투자를 한 나머지 더 이상 여력이 없다. 만약 정치인들이 시장 애국주의를 과시하고 싶다면, 가장 적합한 대상은 정리해고를 계획하고 있는 기업들일 것이다. 전시와 같은 긴급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에게 정리 해고를 자제하도록 요청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존속되었던 사회계약의 첫 번째 약속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점을 전제로 종업원과 지역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부정적인 현상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일부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인기를 얻고 있다. 엔론 사태는 기업의 무책임한 경영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따라 선거 자금 개혁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이는 과거 미국이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3. 사회보장 제도의 확충미국의 사회보장 제도는 1935년 당시 프랜시스 퍼킨스 노동부 장관이 처음으로 주창하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면서 발효되었다. 실업보험과 사회복지 등은 최초의 계획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다. 반면에 메디 케어는 그보다 30여 년 뒤에 존슨 대통령이 시행한 제도이다. 올바른 사회라면 개인적인 불행이 닥칠 때 최대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모든 필요한 자원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일반적인 상업성 보험과 마찬가지로 시민들은 각자 능력에 따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보험은 나중에 필요하지 않더라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가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보험과 다르다.
아무리 저축을 많이 하더라도 소득 자체가 너무 적어서 생활을 할 수 없는 가정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불치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불구가 되거나, 갑자기 직장이 폐쇄되거나 아니면 주식 시장이 폭락하는 경우와 같은 돌발적인 사태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민간 보험 회사들은 위험 부담이 큰 고객들은 피하는 한편 위험 부담이 작은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보험 회사들과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의료보험)는 자선 단체가 아니다. 그들은 수익을 내야만 한다. 따라서 사회보장 제도가 없다면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민들이나 사고 위험 부담이 큰 사람들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35년 통과된 사회보장 제도에 의한 사회 안전망은 이미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그리고 사회보장 제도와 메디 케어 역시 표류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현재 젊고 건강하고 돈 많은 사람들은 선택에 따라 탈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들 제도를 민영화하고 싶어한다.
미국에서 근로 활동은 미국 시민으로서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적 책임이다. 근로 활동이야말로 프로테스탄트 정신의 핵심이며, 가치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다. 일단 국민이 이러한 책임을 다하게 되면, 그 다음에 튼튼한 경제를 구축하는 것은 사회가 담당한다. 이를 통해 근로 활동을 뒷받침해온 암묵적인 도덕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바로 정치적 타협의 결과나 자유 시장제도에 대한 인위적인 조작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주는 도덕적인 기준이라는 사실이다. 열심히 일할 의사가 있고, 실제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남보다 앞설 수 있어야 한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나 그 가족이 가난을 겪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최저 임금을 인상하고, 근로소득공제제도 혜택을 확대하는 한편 저임금 근로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하고 경제 성장을 추구하며 교육의 기회를 늘려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실천된다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이들 요소들을 어떻게 적절하게 조화시킬 때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노력만 한다면 분명히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