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이옥순 지음 | 푸른역사
서설 '인도'라는 이름의 거울2001년 어느 봄날 아침 내게 다음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뮤지컬 스타들이 27일 단체로 인도행 비행기를 탔다. 이들은 인도의 문화를 9박 10일간 체험할 예정이다. 뮤지컬 배우들의 개인이 아닌, 집단 인도행은 이례적이어서 관심을 끌 고 있다. 박 대표는 "우리와는 달리 시간이 멈춘 듯, 여유롭게 사는 인도인의 삶과 문화 를 통해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정원은 "인도를 다녀오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도 있어 이번 여정에서 새로운 충격과 자극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글을 읽는 내 가슴은 다시 한번 서늘해졌다. 단 한 번의 인도여행으로 인도를 알고 깨닫는 사람들에 비해, 인도에서 7년이나 공부하고, 해마다 한두 차례씩 그곳을 다녀오는 나는 얼마나 무능력한가? 그러나 난 그들이 인생을 바꿀 만한 상식적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리라는 걸 짐작한다. 우리 나라 영토의 17배나 넘는 넓은 땅에서 10억 인구가 '시간이 멈춘 듯이 여유롭게' 살고 있다면 그건 꿈이거나 천국이리라.
이런 인도의 신비한 이미지는 본래의 특징이 아니라 누군가가 상상하고 역사적으로 구성한 말 그대로의 이미지임이 틀림없다. 나는 우선 이 이미지의 '간파'와 '유포'의 혐의를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둔다. 그에 따르면,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서양 간의 인식론적 구분을 창조하고 확인하는 데 기여한, 서양의 동양에 대한 연구와 서양에 의해 재현되고 지지된 어떤 이념적 관점"을 말한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서양이 동양에 대해 가진 본질적인 이미지, 서양이 상상하고 날조하는 동양을 말한다. 오리엔탈리즘은 힘센 서양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와의 관계 속에서 힘없는 동양을 정의하고 구성한 담론임을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대상을 보고 정의하는 자와 그에게 보여지고 정의되는 자는 대등하지 않다. 이 관계 자체가 전자가 후자보다 우월함을 전제한다. 아는 것이 힘이고 지식이 권력이듯이 보고 말하고 판단하는 것도 권력과 연계되기 때문이다. "적당하게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관찰자는 보고 판단하고 말하지만, 관찰되는 대상은 말할 수도 말하지도 못한다. 이런 까닭에 사이드의 말을 빌리면, 수동적인 동양은 역동적인 서양의 부정적인 '새김장식'으로 정의된다. 곧 서양이 우수하면 동양은 열등하며, 동양이 후진적/비합리적이면 서양은 진보적/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열등한 동양은 서양의 우월한 정체성을 확인하고 완성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이분화는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 드러난다. 타자화 과정은, 곧 정상인과 합리적 자아를 정의하기 위해 미친 사람을 가두거나 침묵하게 만들면서 탄생했다고 파악했다. 비슷한 논리로 사이드는 서양을 중심에 두고 그 합리성을 정의하기 위해 동양의 비합리성을 타자로 만드는 이분화 과정이 동양을 정복하고 지배한 근대 서양의 제국주의적 전략과 깊이 연관된다고 간파했다.
서양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동양을 상상하고 창조했듯이, 인도를 지배한 19세기 영국은 인도를 자신의 반대 이미지로 만들었다. 특히 1857년에 세포이 반란을 필두로 퍼진 인도인의 격렬한 반영투쟁을 겪은 영국은 '우리'와 '그들'의 경계와 구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통치 기술로 인도 정복과 지배를 합리화하고, 영국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이념의 창조가 이루어졌다.
호미 바바가 '식민담론'이라고 부른, 식민주의와 연계된 오리엔탈리즘의 목표는 영국의 인도 "정복을 정당화하고 행정과 교육제도를 세우기 위해 식민지인을 퇴보하는 인종으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국의 우월성을 돋보이는 방법을 통해 인도는 열등하고 부정적 타자로 굳어졌다. 인도의 본 모습으로 '상상된' 부정적 이미지는 점차 본질적이고 비역사적인 것으로 박제되었다. 발전과 변화를 모르는 불변의 땅이라는 영국의 믿음은 인도에 대한 이중의 억압, 이중의 모욕을 전제하는 것이다. 인도는 문명국인 영국과 다르므로 열등하다. 그렇다고 영국을 닮거나 같으면 '진정한 인도'가 아니다. 나는 1장에서 다룰 이러한 영국의 담론을 박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
영국이 상상한 인도는 '신비한 인도'의 이미지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인도의 합리성의 부정,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영국의 지배에 인도를 종속시키려는 전략이었다. 쉬운 예로 셜록 홈즈 시리즈의 「주홍색 연구」를 살펴보자. 셜록 홈즈의 친구 왓슨은 인도 군대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한 자신의 이력을 소개하며 "봄베이에 내릴 때 나는 내 부대가 카이버 협곡을 지나서 이미 적의 나라에 깊이 들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며 인도를 '적의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치명적인 마이완드 전투'에 참가했다가 총알을 맞고 "살인적인 가지부족의 손에 붙잡힐 뻔" 하지만 '헌신적이고 용감한 영국 간호병'의 도움으로 부대에 귀환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왓슨은 다시 "우리가 소유한 인도의 저주, 장티푸스"에 걸리고 만다. 『소공녀』의 주인공 세라의 부모가 병에 걸려 죽는 곳, 『비밀의 화원』에 나오는 마리의 부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장소도 인도다. <시티 오브 조이>라는 미국 영화를 보면, 우리는 주인공인 미국인 맥스의 시선으로 빈곤한 인도의 캘커타 시를 관찰한다. '지독하게 가난하고 더럽고 혼란스러운 인도. 그래도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어린애처럼 행복을 잃지 않는다.' 이 영화 속에서 인도는 열등한 대상이자 우리의 타자이다.
인도를 열등한 타자로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인도를 정복하고 지배한 영국인의 시선을 닮았다. 우리는 봄날에 인도를 찾은 뮤지컬 배우처럼 '왔노라, 보았노라, 느꼈노라'라고 외치는 주체이지만, 광대한 인도는 단번에 목도되고 언급되는 수동적 대상이다. 인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순진하지도 대등하지도 않다. 나는 이러한 우리의 '인도 보기'를 복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명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오늘날 인도를 영국 재배자의 오만한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나는 일제 식민지의 아픈 경험을 잠정적인 답으로 제시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인도는 부정해야 할 '동양'이거나 지우고픈 아픈 기억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보다 발전하지 못한 인도를 우리의 '동양'과 타자로 바라보면서 대영제국의 공범이 되어 심리적 보상을 얻는 것이다. 영국이 인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여 긍정적인 자기 정체성을 강화했듯이, 우리도 인도를 열등한 '동양'으로 타자화하면서 우리 자신을 발전한 서양과 동일시한다.
이 글에서는 내가 우리의 복제 오리엔탈리즘을 19세기 영국의 박제 오리엔탈리즘과 연계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이다. 나는 이 글에서 영국이 인도를 지배한 시대에 영국이 창조한 인도의 부정적 이미지를 분석하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어떻게 복제되고 재생산되는지 살펴본다. 이 책이 언급하는 복제 오리엔탈리즘은 비서구의 전통을 가진 서구의 타자이며 '동양'인 우리가 다른 '동양'인 인도를 보고 말하는 방식이다.
1장 박제 오리엔탈리즘 - 영국의 인도
두 얼굴의 인도우리는 흔히 인도를 신비한 나라, 미지의 나라라고 부른다. 그러면 '미지의 나라', '신비한 나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는 불가해한 이 땅을 모험하고 정복하려는 근대 서양의 권력 의지가 얼룩져 있다. 신비한 인도는 무기력하고 역동성이 없는 인도, 발전하지 않은 불변의 인도, 과거에 박제된 무역사적 인도를 상징하는, 서양이 인도를 보는 차별적 시선의 산물이다. 타자인 인도의 합리성을 부정하고, 지배자 영국의 우월성을 증명한 이 이미지는 합리적인 서양 지배자의 역이며 반대 명제이다.
인도를 보는 근대 영국의 시선은 상반된 두 개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신비한 동양'과 '더럽고 가난한 나라', '세상 저편의 이상향'과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에 나오는 '어둠의 중심'이 그것이다. 이것은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의 갈등이다. '젊은이여, 가라! 동양으로!' 그러나 이 환상과 동경의 땅에 내린 영국은 냉정한 현실에 직면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영국이 취한 방법은 인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인도가 무엇을 가졌기에 영국은 환상을 깨고 인도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냈을까? 나는 이것을 보이지 않고 감지할 수도 없는 광대한 인도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이방을 통치하는 모든 통치자가 느꼈을지도 모를 불안과 위협은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던 초기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불안과 두려움이 영국으로 하여금 인도에 대한 '거리 두기'를 장려하게 했다. 불안을 눅이는 방법은 문명화의 사명을 수행하는 영국을 이상적인 지배이념으로 만들고 인도를 부정적인 존재로 이분화하는 것이었다.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에서 아델라는 "어떻게 그러한 나라를 마음으로 파악할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영국인이 광대한 땅 인도에서 느낀 불안과 위협을 잘 요약해 준다. 메아리가 울리는 어두운 마라바르 동굴에서 아델라가 느낀, 이름할 수 없는 공포는 그것이었다. 거대하여 쉽게 감지할 수도, 알 수도 없고, 신비하여 혼란스럽고 불가사의한 낯선 세계가 인도였다.
나는 대영제국을 가장 신뢰한 키플링이 제국의 해체를 가장 두려워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신화를 가장 창조적으로 세운 사람들 자존과 서양이 가진 비서양의 이미지에 대한 책임을 유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인도의 신화를 창조한 대표적 작가는 키플링일 것이다. 키플링은 식민주의자의 권위와 경멸과 질시의 시선을 잘 배합하여 인도의 이미지를 가장 부정적으로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인도에 대한 판에 박힌 이미지를 가장 널리 전파한 장본인이었다.
오,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니 그 둘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쌍둥이. 땅과 하늘이 신의 심판대에 설 때까지
키플링이 노래한 「동과 서의 발라드」는 세상의 종말이 올 때까지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동양과 서양의 별리를 상징하며, 지배하는 영국이 지배를 받는 인도에 대해 가진 사회적·심리적 거리를 보여준다.
영국이 인도를 통치한 시대의 문학 작품은 영국 식민주의와 양립하고 그 문화를 영속할 수 있는 견해와 관점을 담았다. 또한 영국인의 자아와 인도인 타자의 극단적 구성에도 깊이 관련되었다. 사이드는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제국과 소설이 서로를 견고하게 지지하여서 어떤 식으로든 한쪽을 다루지 않고서는 다른 쪽을 읽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영문학은 식민 문화를 만들고 확산하는 구심점이었다. 비스와 나탄이 인도에서 영문학이 어떻게 인도 교육의 중심을 차지하며 영국의 식민주의와 밀접한 연계를 가졌는지 보여준 것처럼, 이 세대 영어로 씌어진 다양한 텍스트들은 지배자가 통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인도를 창조하였다.
그곳 - 정글은 악이다인도와 관련한 가장 흔한 이미지는 위험과 이어지는 어둠이었다. 『인도로 가는 길』의 마라바르 동굴은 콘라드의 '어둠의 중심'처럼 알 수 없고 위협적인 어둠을 상징한다. 그 어둠은 '범주화하고 계량화하여 다룰 수 있는 부분'으로 만들 수 없는 지배자의 불안을 보여주는 어둠이고, 프란츠 파농이 '자아에 내재하는 어둠', '나쁜 본능을 대표'한다고 여긴 어둠이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 불가해한 인도는 늘 불안한 대상이었다. '백인의 짐'을 소리 높여 외친 제국주의자 키플링의 내면에도 늘 미지의 것과 분명하지 않은 인도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했다. 키플링은 여러 왕궁의 비좁고 어두컴컴한 방들, '자객이 적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구석이 딸린 좁은 통로'를 경계했다. 인도에 거주한 화가 스미스가 그림이 아닌 글로 그려낸 인도 풍경은 정체를 감지하기 어려운 나라에서 느끼는 지배자의 불안한 내면 풍경을 잘 보여준다. 존재하지만 늘 부재하는 인도인 랄은 화자인 영국인에게 미지의 인물이다.
이 시대의 많은 소설들이 이처럼 영국인 지배자와 인도인 피지배자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문화적 소원함을 주제로 삼았다. 인도라는 동일한 공간에 살지만 인도인과 영국인은 동질적이지 않고, 그래서 언제나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부정적이고 사악하며 잔인한 열대의 자연 환경이 수반하는 돌발적이고 파괴적인 죽음과 재앙은 이 시대 소설에 반복되어 나타난다.
영국이 주도해 창조해낸 이런 이미지는 이 시대 모든 백인의 사고를 관통했다. 19세기 말에 미국인 마크 트웨인이 호칭한 '경이의 나라 인도'는 인도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모든 부정적인 특성을 포괄하는 종합선물로서의 인도를 의미했다. 트웨인은 "인도를 그 안에 든 특수성을 기준으로 '터그의 땅, 역병의 땅, 기근의 땅, 거대한 환영의 땅, 장대한 산맥의 땅"등으로 이름표를 붙인다. 그리고 인도에는 또 다른 특성이 나타나기 때문에 새로운 이름표가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최고의 접근 불가능성 땅"인 반문명적이고 원시적인 땅으로 인도를 바라보았다. 이런 이유로 고대를 인도의 황금시대라고 간주하고 현재의 인도를 그 영광이 쇠락한 결과로 그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인도는 질병이 만연한 땅으로 그려졌다. 인도를 배경으로 한 여러 작품의 등장인물은 어느 날 갑자기 콜레라, 성홍열, 말라리아, 일사병 등의 열대 질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난다. 버넷의 『소공녀』에 나오는 사라의 부모, 『비밀의 화원』에서도 마리의 부모는 모두 인도에서 병에 걸려 죽는다. 반면 19세기 영국인의 여행기에서는 인도를 시간이 멈춘 신비한 공간이나 동화의 세계로 묘사했다. 하이더라바드, 자이푸르, 우다이푸르 등지의 영웅적 왕의 이야기와 공예품처럼 정교하게 건축한 난공불락의 성이나 왕궁에 대한 묘사는 인도를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은 환상의 세계로 만들었다. 이러한 이국적 묘사를 통해 관찰자인 여행가의 희망은 달성되고, 제국의 문제는 해결된다.
여행자들은 한결같이 변화와 발전을 멀리하고 과거를 보존하는, 라자스탄처럼 근대화하지 않은 인도를 사랑했다. 수공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고통과 비애는 접어두고, 현재에서 과거를 창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그 생산품만 언급한 것이다.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지고, 생명력을 느낄 수 없는 그곳은 발전한 도시의 반대 이미지이자 이해와 통치가 가능한 인도를 의미한다. 때로 꿈은 현실을 가리지 않는다.
상황과 이익에 따라 동·서양을 가르는 차이성의 기준은 변했다.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은 인도를 신비한 나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그러나 여기에 묘사된 인도는 근대 서양 물질문명의 대안으로 떠오른 행복한 '정신주의의 나라'가 아니다. 앞에서 말한 어둠의 상징이다. 이 어둠은 인간이 살 곳이 못 되는 인도를 지배하고, 이 인도에게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 모순 속에 위치한 영국의 불안한 권위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 - 뭔가 부족하다인도인의 능력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여 영국인의 우수성을 확인하려는 전략의 기초는 인도인을 불완전하고 부족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그 기준은 늘 완벽한 영국인이다. 영국인은 인도라는 유혹적인 존재에 직면하여 지배자로서 '영국인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무능력한 인도인을 '발견'하였다. 오류와 결점이 없는 완벽한 영국과 그 거울로서 인도인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은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필요조건이었다.
포스터는 『인도로 가는 길』에서 더운 법정에서 큰 부채에 연결된 밧줄을 밀고 잡아당겨서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을 '영원한 인도의 상징'이라고 표현했는가 하면, 땅을 가는 농민을 '진짜 인도인'이라고 불렀다. '진짜 인도'에 사는, 현재와 동떨어진 과거인의 인도인을 미화하는 것은 현재 인도인의 열등함을 입증하는 고도의 수법이었다.
키플링, 페린, 스틸의 작품을 비롯하여 인도를 다룬 소설에는 언제나 유모, 마차꾼, 요리사, 거지, 도둑 등 부정적이거나 하찮은 신분의 인도인만 등장한다. 그들은 인도에서 영국 식민주의의 현존에 위협이 되지 않는 '과거'에 속하는 주변인물들로 지배자에게 충성하는 종속적 존재이다. 문명의 사각지대에 있는 인도인들은 정치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동시에 영국이 가진 문명화의 사명을 정당화해 주었기 때문이다. 반면 19세기 후반부터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가장 먼저 반영투쟁을 전개한 벵골인 지식인에 대해서는 미움과 두려움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