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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이옥순 지음 | 푸른역사
여행기는, 인도로 가는 길?3장 상상의 '동양'을 넘어서인도인의 능력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여 영국인의 우수성을 확인하려는 전략의 기초는 인도인을 불완전하고 부족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그 기준은 늘 완벽한 영국인이다. 영국인은 인도라는 유혹적인 존재에 직면하여 지배자로서 '영국인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무능력한 인도인을 '발견'하였다. 오류와 결점이 없는 완벽한 영국과 그 거울로서 인도인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은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필요조건이었다.



포스터는 『인도로 가는 길』에서 더운 법정에서 큰 부채에 연결된 밧줄을 밀고 잡아당겨서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을 '영원한 인도의 상징'이라고 표현했는가 하면, 땅을 가는 농민을 '진짜 인도인'이라고 불렀다. '진짜 인도'에 사는, 현재와 동떨어진 과거인의 인도인을 미화하는 것은 현재 인도인의 열등함을 입증하는 고도의 수법이었다.



키플링, 페린, 스틸의 작품을 비롯하여 인도를 다룬 소설에는 언제나 유모, 마차꾼, 요리사, 거지, 도둑 등 부정적이거나 하찮은 신분의 인도인만 등장한다. 그들은 인도에서 영국 식민주의의 현존에 위협이 되지 않는 '과거'에 속하는 주변인물들로 지배자에게 충성하는 종속적 존재이다. 문명의 사각지대에 있는 인도인들은 정치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동시에 영국이 가진 문명화의 사명을 정당화해 주었기 때문이다. 반면 19세기 후반부터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가장 먼저 반영투쟁을 전개한 벵골인 지식인에 대해서는 미움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지식인을 여성적 이미지로 채색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사이드가 말한 대로 동양은 언제나 '여성적'인 존재로 그려졌고, 이는 모든 식민지가 비슷했다. 정복자와 지배자만이 유일한 남성이자 지적인 주체라는 인식은 데카르트 시대 이후 서구 사상의 일관된 흐름이었다. 반면 식민정부에 위협이 되지 않는 라지푸트족, 시크교도, 파탄족은 '진짜 인도인'이자 남성다운 인도인으로 칭송되었다.



그러나 스스로 남성성을 주장하면서도 인도 지식인을 여성적이고 나약하다고 폄하한 영국 지배자의 심리는 자기 부인의 의혹이 짙다. 키플링의 '뱅골보리수처럼' 기괴한 모습이라는 표현이 시사하듯이, '여우에게서 교활함을, 개에게서 아부와 오만을, 양에게서 비겁함을, 원숭이에게서 모방성을' 배웠다고 할 정도로 정치적으로 영국에 위협적이었던 그들을 인도인 중에서 가장 여성적이라고 왜곡한 것이 그 명백한 증거이다.



인간적 약점이 많은 인도인을 범죄자로 상정하는 것은 이 시대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방식이다. 셜록 홈즈의 활약이 보이는 코난 도일의 「네 사람의 서명」은 특히 범죄를 인종 차별적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범인을 추적하는 셜록 홈즈는 비과학적인 '다른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그리고 1857년 대반란을 다룬 수많은 영국인의 기록과 기억은 반란에 참여한 인도인을 열대 질병처럼 돌발적이고 폭력적인 무리로 표현했다. 반면 폭동을 진압한 영국인은 참을성이 많고 자기 통제가 뛰어난 존재로 묘사했다.



19세기 서양 지식인들은 백인 남성과 검은 피부의 인도 여성이 결합하여 낳은 아이는 순수한 백인 혈통을 더럽힌다고 여겼다. 실제 인도 여성과 영국 남성의 결합은 꽤 많았다. 앵글로-인도인이라는 집단은 정치적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분을 흐리게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검은 백인'이라 불리고 있다. 곧 루소가 말한 '고상한 야만인'이었다.



키플링의 소설에 나오는 인도인은 유년기에 머무는 '자라지 않은 소년'이다. "키플링의 지배적인 위치는 종종 동양과 동양인에 대한 지식을 정형화하고 범주화하며, 보편화하는 서구의 유리한 관점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내면화한 타자, 언제나 불가피하게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인도인 소년의 유리한 관점이다."



어둠과 같다고 인도를 두려워한 키플링은 검은 피부를 가진 야만인과 사회적 거리를 두어야 백인의 자아와 순수성을 보호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러한 시각은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에서 "영국인과 인도인이 사회적으로 친밀해지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을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제국주의를 신뢰한 키플링의 글에는 인도인에 대한 부정적 관점이 가득하다. 영국 지배자의 시선을 가진 그에게 모든 인도인은 타자이며 피지배자였다. 인도인들의 연합과 유대가 수반할 정치적 위험성을 잘 아는 그의 인식은 '분열된 인도'를 바라는 영국 지배자의 무의식을 반영한다."유럽도서관에 있는 한 서가의 책이 인도와 아랍에 존재하는 모든 문학을 합친 것보다 더 훌륭하다."는 매콜리의 선언은 인도 사회와 문화를 평가절하한 사례다. 1830년대부터 식민정부가 인도인에게 영어와 서구화 교육을 실시한 것도 야만과 문명의 구분이 그 기준이었다. 인도인을 '갈색 피부를 가진 영국인'으로 만들려 한 매콜리의 전략은 『전통의 근대화』를 저술한 루돌프 부부의 "그들이 얼마나 전통적인지를 검증함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근대적인지를 인식"한다는 표현에서 드러난다. 또한 인간 생존에 부적절한 땅, 신비한 원시성과 위험한 본능을 소지한 인도는 특히 힌두교와 같은 비합리적 종교로 상징되었다. 제임스 밀이 브라만 계층을 '미신의 토대 위에 세워진 사제'라고 비난한 것은 그 연장선이었다.



인도에 덧씌워진 또 다른 상투적인 이미지는 희생자로서의 인도 여성이었다. 19세기 후반에 영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인도 여성을 가부장적 인도 남성의 희생자로 그리고 있다. 인도 여성의 이러한 이미지가 인도 사회와 문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제국주의적 관점의 소산이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발전한 영국 여성의 반대 이미지였음은 물론이다. 남편과 함께 화장하는 사티, 여자 영아 살해, 여자아이의 조혼과 성적 이용 등은 인도의 야만적 문명 상태를 예증해 주는 증거였다. 영국인은 인도 여성을 이러한 억압에서 구해내야 한다고 믿었다. 그 결과, 인도 여성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인도 사회에 대한 식민정부의 개입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했다. 스틸의 『키르포의 인형』, 『개혁가의 아내』 등의 작품에는 인도의 남성과 가부장제에 희생되는 인도 여성의 삶을 풍자하며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국 여성의 자아를 드러낸다.



문명의 기준은 늘 영국이었다. 스틸이 20년간 인도에 거주하며 많은 지식을 얻었다고 자부하나, 그의 소설이나 글에는 영국과 인도를 분리해서 보는 인종차별적 시선이 짙게 배어 있다. 인도를 사랑한 것으로 알려진 포스터도 인도인의 미학적 취향을 낮추어 보았다.



인도에 사는 영국 여성들은 인도 여성의 모든 것을 더럽고 야만적이라고 싫어했다. 이는 자신이 야만인과 동일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영국 여성들은 인도의 날씨를 싫어했고, 음식을 싫어했으며, 인도인을 싫어했다. 영국인 사회는 인도에서 생산된 모슬린, 실크, 면 같은 옷감은 물론이고, 꽃이나 장신구를 사용하는 것조차 저속한 취향이라고 무시했다.



이렇게 인도 사회와 문화는 영국보다 열등한 존재로 구성되고 박제되었다.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는 관찰하고 판단하는 영국 지배자의 희망을 달성하고, 통치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주는 근거이자, 인도에 대한 이중적인 억압의 출발점이었다. '인도는 우리 영국과 다르므로 우리보다 열등하다' 그러나 '우리 영국을 닮은 인도는 더 이상 진짜 인도가 아니다'. 이러한 모순된 영국의 이미지 구성과 박제는 인도인에게는 이중의 구속이었다. 그리고 이 박제된 이미지는 점차 인도의 본질로 여겨졌다.동양과 서양의 차이, 그리고 후자에 대한 우리의 신뢰는 강석경의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에 반영된다. 소설 주인공 성자는 결혼할 영국인 죤의 부모와 자신의 부모 사진을 비교하면서 문명과 야만의 잣대를 들이댄다. 열등한 동양과 동일시되는 것을 두려워한 성자는 우월한 서양과의 동질성을 열렬히 욕망한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남성에게 목도되는 수동적 존재로서 서양과 서양 남성을 세상의 중심에 올려놓는 데 기여한다. 서양인을 유색인보다 우월하게 여기는 성자의 태도는 이제 당연하게 여겨져서 독자도 이 왜곡을 자각하지 못한다.



스티븐스 감독이 만든 <강가딘>이란 영화를 본 브레히트는 정복자의 시선으로 비서양을 바라보는 백인의 딜레마를 지적하고 있다. 그의 고민은 결국 우리 모두의 고민이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면서 관객과 독자는 발전한 나라와 그곳에 사는 주인공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고, 미개한 토착민을 타자로 동양화한다. 자신을 초월적 주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구도 소설의 성격을 지닌 송기원의 『안으로의 여행』에 그려진 인도 역시 정복하고 지배받아 마땅한, 야만적 인종이 사는 곳으로 표현된다. '인간이지만 완전한 인간은 아닌', 동물과 구분이 모호한 인간 군상이 가축처럼 맨발로 온갖 더러움 속에서 '굶주린 아귀'처럼 '문명 이전의 본능적 생활을 영위한다'는 묘사는 헤세의 '냉철한 시선'을 연상하게 한다. 인도에 사는 사람을 인도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꼭 토착이라는 말을 붙여 부르는 송기원의 시각에는 멀리 유럽에서 왔던 영국인처럼 아웃사이더의 환멸이 가득하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인도인과 다른 사회 집단이라는, 다름을 강조하는 것이다.



강석경과 송기원의 소설에 나오는 인도는 더러움과 빈곤이 가득할 뿐, 즐거운 일이나 사람다운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먼지와 더러움에 대한 혐오는 식민지시대 인도에 거주한 백인들의 '불안한'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인간의 세상인 인도를 혐오하는 송기원과 강석경은 자연의 세계 히말라야에겐 마음을 덥석 내준다. 그것은 그들보다 150년 전에 히말라야를 찾았던 영국인 여행가 파니 팍스의 시선과 동일하다. 이들이 히말라야를 좋아하는 이유는 산이 많은 우리 땅과 비슷해서 향수를 느끼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잃어버린 과거의 향수이며, 인도의 저잣거리에서의 즉각적인 도피일 것이다.



우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늘 구원을 얻기 위해 '갑자기' 인도로 간다. 송기원의 주인공, 강석경의 두 여주인공 문희와 주원, 은희경의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의 강 선배도 모두 위기와 절망의 순간에 내적 갈등을 해결하려고 인도로 도망가는 것이다. 그들에게 인도는 그저 추상이며 실존하지 않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인지, 인도를 찾은 소설의 주인공들은 원시의 땅에서 별다른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존재의 분열 없이 그저 인도의 이방인으로 인도를 보고 경험하고 전처럼 이방인으로 귀국할 뿐이다. 인도를 찾은 우리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교육을 받은 '문명인'이다. 그들은 후진 사회를 누비면서 우리가 낫다는 비교우위의 행복론을 확인하고 위안을 얻는다.



그래도 우리 작가들은 허상이며 추상인 인도의 진기한 장면을 묘사하여 인도를 동양답게 '인도답게' 만든다. 은희경의 단편에 나오는 강 선배는, "야, 서로 자유롭게 잘만 살더라. 질서 따위가 뭣 땜에 필요하냐."라고 인도를 변호하며 인도의 혼란과 무질서를 당연시한다.



인도를 죽음의 땅으로 묘사하는 것도 송기원과 강석경의 소설에는 약속이나 한 듯이 갠지스 강가에서 시체를 화장하는 장면이 길게 그려져 있다. 강석경에게 인도는 '비합리적이지만 본질적'이며 '반문명적이고 원시적인 자연의 문명'이다. 인도는 때로 깨달음을 주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이미지와 일화가 너무 익숙하게 인도 전체와 연계되고, 그러면서 인도를 반문명, 반현대의 이미지로 본질화한다는 점이다. 때묻지 않은 공간을 그리워하는 작가들의 행로는 발전하지 않은 인도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며 인도에 다른 의미의 때를 입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앞에서 언급한, 송기원과 강석경의 소설은 저자의 욕망과 집착이 반영된 자기 세계를 통해 타자의 세계인 인도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것은 결국 인도가 아닌 티베트의 라사로 드러난다. 이처럼 인도에 가지만 인도인과 소통하지 않는 작가들에게 인도는 깨달을 것 없는 불모의 땅이다. 두 작가의 소설에는 환상의 인도는 있지만 실제의 인도는 없다.우리 나라의 신문과 잡지는 부정적이고 발전하지 못한 인도의 이미지를 재생산하여 대량으로 유포하는 복제 오리엔탈리즘의 중요한 수단이다. 문자 미디어를 통해 사실처럼 보도되는 인도의 이미지는 자연 재해와 질병, 각종 사건과 사고로 인한 죽음이 일상인 후진국의 것이다. 이렇게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점에서 신문과 잡지와 같은 미디어는 앞에서 살펴본 소설과 여행기와 같은 기능을 담당한다.



우리 신문이 가장 많이 보도하는 인도 관련 기사는 홍수, 지진, 가뭄, 무더위, 말라리아 등 자연재해와 항공, 열차, 버스 사고 등의 교통사고, 화재와 폭발, 붕괴 등의 각종 사고이다. 이런 보도는 인도를 사고와 재난의 나라로 고정한다. 그러면서 후진국 인도는 발전한 서양 시스템을 비교 우위에 올려놓는 수단이 된다.



「한겨레신문」의 어떤 기자는 "'땅의 신의 분노'가 휩쓸고 지나간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이라 언급하여 마치 인도인의 잘못에 대한 판결인 것처럼 썼으며, 2001년 5월 27일자 「한국일보」도 '정치경제위험자문공사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도가 최악 10점 만점에 8.32점을 받아 아시아 최고의 오염국이라고 전했다. 이렇게 부정적인 사실을 빠지지 않고 보도하며 미디어는 후진국 인도를 그렇지 않은 '이곳'과 구분한다. 또한 「중앙일보」는 인도가 어린이 성매매 인구 40만 명으로 전 세계 최다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핵 문제와 관련할 때는 적나라하다. 1998년 인도가 핵실험을 하자 우리 나라 언론은 "빈곤한 나라가 무슨 핵 실험을…." 등의 눈길을 반복했다.



우리 언론은 반세기가 넘게 진행되는 인도-파키스탄의 갈등과 분쟁을 정치적·군사적인 측면보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종교적 투쟁으로 보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인도의 각종 분쟁과 반정부운동, 분리주의운동을 다룬 기사는 은연중에 인도를 정치적으로 낙후한 후진국으로 치부한다. 「세계일보」의 '인도의 망국병, 분열과 대립'이라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19세기의 '문명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종종 인도인을 인간과 동물의 중간자로 표현한다. 2001년 2월 「한겨레」에 실린 글은 가축과 다름없는 인도인의 삶을 그려낸다. "집으로 들어서는 대문도, 방으로 들어가는 출입문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방바닥은 흙바닥 그대로다. … 사실 가축우리와 사람이 자는 방이 뚜렷이 구별되지 않았다. 닭 같은 조그마한 가축들은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



이처럼 우리의 미디어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것은 서양의 것으로, 비생산적인 것은 인도의 소속으로 구분 짓는다. 특히, 게으르고 나태한 인도인의 이미지는 우리 신문의 영원한 화두이다! 또한 우리 언론이 다루는 긍정적인 인도는 '과거'의 인도이다. 문화면에서 언급되는 인도 역시 살아있는 인도가 아닌 정체된, 죽어 넘어진 인도이다. 인도를 명상과 종교의 나라로 박제하여 '이성적'으로 반듯한 영국의 통치를 정당화한 논리가 우리 나라에서도 끊임없이 복제되고 있는 것이다.



신문과 잡지에서 보이는 우리의 태도는 한마디로 지배적이다. 지배적 태도란 넓은 영토에 사는 수많은 사람과 문화를 동질적인 집단과 문화로 그리는 것이다. 우리가 인도의 대표음식으로 알고 있는 카레는 인도에 없다. '진짜' 카레는 지역과 기후에 따라 그 종류가 수백 가지에 이르는, 걸쭉한 소스가 들어있는 모든 음식을 지칭한다.



이처럼 언론은 어떤 대상의 이미지 형성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우리의 신문과 잡지는 19세기 영국제국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하여 부정적인 인도, 비생산적인 인도, 부정부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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