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유시민 지음 | 개마고원
「조선일보」는 노무현을 싫어한다. 노무현을 좋게 보도하는 일은 절대 없다. 조그만 약점이라도 보이면 집요하게 파헤쳐 물고 늘어진다. 약점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조져댄다'. 왜 그럴까?「조선일보」는 노무현을 너무나 잘 안다. 잘 알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다.「조선일보」는 노무현과 잘 지낼 수가 없는 신문이다. 둘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 것은 그런 면에서 필연적이다.「조선일보」가 도대체 어떤 신문인지를 알면「조선일보」가 노무현을 싫어하는 이유를 저절로 알게 된다.
「언론연보」를 비롯한 여러 자료에 따르면「조선일보」는 친일 기업인 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 앞으로 발행허가가 났으며 1920년 3월 5일 고율 소작료로 치부한 예종석을 발행인으로, 나중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조진태를 초대사장으로 창간되었다가, 5개월만에 배일파(排日波)인 권병하-유문환 체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불과 8개월 후인 1921년 4월에는 고종의 양위를 강요해 나라를 일제에 바친 대표적 '친일 매국노' 송병준이 인수해 3년간 운영했다.「조선일보」가 민족지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젊은 민족주의자 신석우(申錫雨)가 인수하여 이상재를 사장으로 하여 새출발한 1924년의 일이다. 신석우는 월남 이상재를 사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부사장에 취임했다. 이를 계기로「조선일보」는 크게 발전했다.「조선일보」는 일제에 타협적인 태도를 취한「동아일보」보다 더 민족적이고 진보적인 노선을 취했다. 그러나 경영난에 시달리던「조선일보」에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힌 사건이 터졌다.「조선일보」경영진이 만주 동포들이 보낸 의연금을 신문 만드는 데 유용한 것이다. 사장이 구속당하고 경영진이 재산을 압류당하는 파국을 겪은 끝에「조선일보」는 1933년 광산업을 해 떼돈을 번 사업가 방응모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조선일보」의 민족지 시대는 방응모 체제의 등장과 더불어 종말을 고했다.노무현과「조선일보」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오는 그날까지, 그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계속 될 것이다. 불리한 쪽은 노무현이다. 그는 거대한 앙시앵 레짐과 맞서고 있다. 그는「조선일보」가 이끄는 수구-보수신문과 권좌 복귀를 노리는 낡은 특권세력의 정치적 카르텔과 맞서고 있다.한나라당은 국민이 선출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권력을 이미 장악했다. 시골 군청에서부터 서울시청과 국회까지 완전히 한나라당 판이다. 남은 건 청와대 하나뿐이다. 한나라당은 한국의 권력 대부분을 지배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사상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한나라당이 아니라「조선일보」다. 노무현은「조선일보」를 한나라당 기관지라고 한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한나라당을「조선일보」정치위원회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는 자가 결국은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한국 사회는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한다. 3김의 리더십은 박정희 시대의 산물이다. 김종필은 군사독재정권의 제2인자로서, 김영삼과 김대중은 그에 도전하는 민주세력의 리더로서 정치적 지도력을 획득했다. 그들은 길게 보면 1971년 대통령 선거 이후 30여 년, 짧게 보아도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15년 동안 한국 정치를 전적으로 지배했다.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과 역할은 그 시대의 역사적, 정치사회적 조건과 상호작용하면서 구현된다.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이 시대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구심점이 되는가 하면, 그 시대의 구조적 한계를 넘지 못하고 무력해지거나 오히려 정치사회의 발전에 질곡이 되기도 한다.
3김 시대의 한국 사회는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 직업과 생활방식, 이해관계와 가치관의 다양화가 첫 번째 변화다. 두 번째는 높은 학력과 민주화 체험을 보유한 젊은 유권자 집단의 등장이다. 세 번째는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찾아온 매체 환경의 변화다. 우리는 정보통신혁명과 쌍방향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양김 이후' 정치적 리더십은 바로 이런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그 첫째는 민주적 리더십이다. 조직 구성원들이 다양한 견해를 자유롭게 표출하도록 만들고 이견과 대립을 조정하고 절충하여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 인격적 카리스마가 아니라 비전과 제도화된 절차를 통해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둘째, 수평적 리더십이다. 국회와 내각과 사법부에 대한 지배력을 포기하고 분산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각급 지방자치단체와 장관과 행정부처에 넘김으로써 3권분립의 원칙을 존중하고 자율의 정신에 따라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리더십만이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셋째, 개방적인 네트워크형 리더십이다. 디지털 시대의 지도자는 다양한 사회집단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 국민들과 멀리 떨어진 구중궁궐에 살면서 민심과 어긋나는 지시와 명령을 내리는 지도자가 아니라 참모들과 격의 없이 토론하고 각계각층의 오피니언 리더는 물론이요 일반 유권자들과도 정신적 일체감을 형성해야 한다.
'노무현 바람'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반영한다. 노무현은 독자적 비전과 정책적 패러다임을 완전하게 체계화하지는 못했지만 그 가능성을 보유한 새로운 리더로 떠올랐다. '노무현 바람'의 진원지와 지지층의 특성을 뜯어보면 한국 사회에 일찍이 없었던 신주류가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주류는 앞서 언급한 '합리적 개혁세력'이다. "개혁의 중단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와 보다 효율적인 개혁을 기대하는 시민들의 집합"이다. '신주류'는 '구주류'와 기존의 정치적 리더들이 만들어 놓은 지역주의 정치구도와 특권적 권력문화, 제왕적 리더십을 거부하고 불신한다. '노무현 바람'은 기존 지도력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만들어낸 정치 현상이다.
국민 경선에서 일어난 노무현 바람은 누군가 여야를 막론하고 낡은 정치를 때려 엎어주기를 기대하는 민심의 폭발이었다. 노무현이 구시대적 지역연합을 추진하는 세력과 정면승부를 벌여 이러한 민심의 요구에 부응한다면 지지율은 다시 올라갈 것이다. 노무현이 낙선한다고 해도「조선일보」가 웃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노무현이 벌였던「조선일보」와의 일전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개혁, 국민통합과 한반도의 평화를 가로막고 훼손하는 앙시앵 레짐의 실체를 백일하에 드러냈기 때문이다. '밤의 대통령'으로 군림했던「조선일보」의 그 '좋았던 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노무현의 언론관「조선일보」는 민주화운동 전력을 가진 사람을 싫어한다.「조선일보」는 박정희를 민족의 지도자로 숭배하며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필요악이 아닌 필연으로 규정한다. 전두환의 쿠데타와 양민학살까지도 내놓고 지지했다.「조선일보」의 시각으로 보면 노무현은 '입으로 민주화를 떠드는 시끄럽고 무책임한 선동가'에 속한다.「조선일보」는 "국군 탱크가 평양 주석궁에 진입함으로써 통일은 완성된다."고 믿는다. 내놓고 북한을 경멸하고 비난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사상적으로 의심한다. 노무현은 김대중의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해서 발전시키겠다고 공언한다. '좌경 용공분자'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이것이「조선일보」가 노무현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다. 노무현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겠다고 말한다.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다.「조선일보」가 '사상검증'의 덫을 씌워 공직에서 축출하려고 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정치적 견해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조선일보」가 노무현을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조선일보」는 기득권층의 이익이 곧 사회 전체의 번영이라고 믿는다. 재벌과 명문학교 출신의 지배권을 위협하는 모든 사상과 행동은 불온하다. 민주노총, 전교조, 인권운동과 소액주주운동, 이런 것들은 모두 개혁을 내걸고 있지만 사실은 성장과 번영을 위협하는 교란요인이라고 본다. 그런데 노무현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인물로서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노동조합을 후원하며 소외계층의 복지를 강조한다. 당연히 환영할 수 없는 인물이다. 더욱이 노무현은 언론사 소유지분을 제한하고 독립된 편집위원회의 설치를 법제화하자는 등「조선일보」사주의 기득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위험인물' 아닌가. 노무현은 초선의원 시절부터「조선일보」에 대들었다. 게다가 감히 언론사 소유지분을 제한하고 독립된 편집위원회를 의무화하자는 시민단체의 견해에 동조한다.「조선일보」입장에서 볼 때,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록 방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노무현은 1991년「주간조선」기사를 두고「조선일보」하나와 싸웠다. 그때 다른 언론사들은 구경만 했다. 10년 후인 2001년 2월 '언론과의 전쟁 불사' 발언 이후 세무조사와 언론개혁이 가장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던 몇 달 동안 그는 조중동과 '패싸움'을 했다.「한겨레」와「대한매일」,「경향신문」등 소위 '한경대'는 노무현을 노골적으로 또는 넌지시 거들었다. 다른 신문사들과 방송은 최소한 적대적이지 않은 중립을 유지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노무현은 다시「조선일보」하나하고만 싸우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노무현이「조선일보」에 대한 입장을 정리된 형태로 제시한 것은 2001년 6얼 7일자「미디어오늘」이영태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였다. 이 인터뷰에는 노무현의 '언론관'과 '조선일보관'이 잘 드러나 있다. 언론의 역할, 좋은 언론과 나쁜 언론을 가르는 기준, 언론개혁의 목표와 원칙에 대한 노무현의 생각을 들어보자.언론에는 좋은 언론과 나쁜 언론이 있다. 정당을 나눌 때 보수와 진보로 구별한다. 그러 나 이를 나누기 전에 정당은 정통성 합리성 신뢰성을 갖춰야 하며 이는 언론도 마찬가지 다. 언론이 기본적으로 합리적이고 정당한 방법으로 보도하는가,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가, 사실의 취사선택에 있어 합리적 균형을 유지하는가, 일관된 관점을 견지하는가 등이 중요하며 이 원칙을 지키면 좋은 언론, 합리적 언론이라 할 수 있다. 언론은 사회에 미치 는 영향력이 크고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만큼 정확한 사실과 가치 있는 보도를 해야 한다. 정치인을 비판하기에 앞서 스스로 과거를 고백하고 사죄해 겸손하고 품위 있는 언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언론이 달라지면 정치도 달라지고 국민도 달라진 다.지금 과거 군사독재 하에서 국민들에게 온갖 박해를 가하면서 특혜를 누렸던 수구 기득권 세력이 국민의 정부를 흔들고 있습니다. 한나라당과 일부 특정 소수 언론이 우리 정부의 공은 십분의 일로 깎아 내리고 잘못은 열 배로 부풀리고 있습니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감히 국회에서 발설하고, 일부 언론은 이 유언비어를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실어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국민의 정부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음은 인정해야 합니 다. 과거 군사정권이 걸었던 잘못된 길을 답습한 잘못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제 달라졌습니다. 지금도 특권을 누리는 수구언론들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일어나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 권력이 언론을 개혁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 정권은 국민의 지지 위에 탄 생합니다. 국민의 지지를 얻어나가는 전 기간 동안 우리 당의 후보를 공격하는 언론과 우 리 당원들이 맞서 싸운다면 언론은 민심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민심은 언론개혁의 제도적 장치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면 국회에서 2003년 언론개혁 법안이 통 과될 것입니다. 저는 기대합니다. 여러분이 해낼 수 있습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싸 워 나갑시다.3. 「조선일보」는 왜 노무현을 싫어할까?「조선일보」는 민주화 운동가를 싫어한다「조선일보」1938년 6월 16일 사설 : 조선 통치사의 새로운 기원을 이룬 것이자 미나미 총독의 일대 영단 정책 하에 조선에 육군특별지원병제도가 실시된 것에 대하여 이미 본란에 수차 우리의 찬성의 뜻을 밝힌 바 있거니와 …종래 조선 민중의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지 못하고 있던 병역의무를 실현케 하는 것이다. …황국신민 된 사람으로 그 누가 감격치 아니하며 그 누가 감사치 아니하랴. …황국에 대하여 갈충진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국방상 완전히 신민의 의무를 다 하여야 할 것이다.「조선일보」의 친일 행각은 방응모 체제가 들어선 1933년 이후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조선일보」는 신석우-이상재-안재홍이 이끌던「조선일보」와 제호만 같을 뿐 내용은 전혀 다른 신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조선일보」는 바로 이 '방응모의「조선일보」'에서 자라난 것이다. 따라서「조선일보」를 향해 "천황폐하를 모시고 일제에 아부"했다고 말한 노무현의 독설은 역사적 근거를 가진 것이다.「조선일보」는 개혁 정치인을 싫어한다5.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조선일보」의 힘은 의제 설정 능력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2001년 1월 11일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을 언급한 후 국세청은 중앙 언론사 모두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이것을 언론탄압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정면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언론에 찍히지 않게 입조심을 하고 있던 민주당의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던 노무현은 거리낌없이 세무조사를 옹호하면서 '수구언론'을 개혁의 적으로 몰아세웠다. 독자들께서는 아마도 '언론과의 전쟁 불사' 발언 파문을 기억하실 것이다. 노무현은 해양수산부 장관이던 2001년 2월 6일 출입기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언론과의 전쟁선포를 불사할 때가 됐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이 이틀 뒤인 2월 8일 처음 언론에 보도되자, 다음날인 2월 9일 아침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노무현을 비판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여기에는「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뿐만 아니라「한국일보」
까지 가세했다. 그런데 노무현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언론과의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말은 했다. 그 말은 권력이 언론과 전쟁을 하라는 뜻은 아니고 개인 시민이나 정치인이 너무 언론에 굽실거리지 말고, 눈치보지 말고,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는 말이었다. 거기서 전쟁이라는 말은 언론을 억압하거나 박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론의 횡포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야기한 것이 다.「조선일보」의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노무현이「조선일보」와 싸우는 것은「조선일보」가 이회창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보도를 통해 그 의도를 실행하고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조선일보」를 "언론도" 아니라 "한나라당의 기관지"에 불과하다고 규정했다.정치는 즐길 만한 가치가 있는 싸움인 동시에, 그 결과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반드시 눈여겨 보아야 할 중요한 싸움이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정치싸움은 5년에 한 번 절정을 이루는데, 그것이 대통령 선거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모든 흥미로운 싸움이 그러하듯, 정치싸움에도 관중이 있다. 승패를 결정하는 최종적 권한을 가진, '유권자'라는 이름의 관중이다. 그러나 유권자 혼자 판정을 내리는 건 아니다. 그 판정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막강한 존재가 있다. 심판과 해설자 노릇을 하는 언론과 언론인이다. 우리는 지난해 봄 이후 유력한 대통령 후보와 자칭 '대한민국 1등 신문' 사이에서 벌어진 '정언충돌'을 목격하고 있다. 바로 노무현과「조선일보」의 싸움이다.
이 싸움이 본격화한 것은 2001년이지만 그 서막이 열린 지는 이미 10여 년이 지났다. 노무현과「조선일보」의 싸움은, 박정희 시대 이후 4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했던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 구체제)'을 역사의 시험대에 올려놓은 싸움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1987년 6월항쟁 이후 15년 동안 빠른 속도로 변화한 유권자 집단의 의식과, 세월의 흐름을 망각한 채 지속되어온 낡은 정치 지형 사이의 심각한 불일치가 빚어낸 필연적 갈등이기도 하다.
2002년 대통령 선거가 몰고 올지도 모를 극적인 드라마의 최대 흥행요소는 노무현과 이회창이라는 두 인물의 충돌이 아니라 노무현과「조선일보」의 싸움에 숨겨져 있다. 노무현은「조선일보」와의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