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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피카소

훼르낭드 올리비에 지음 | 청년정신
아무도 원하지 않은 아이(1896년 6월∼1898년 9월)



1897년 6월




내 친구 앙뜨와네뜨는 단둘이 있게 되자 옷을 벗고 자신의 가슴을 보여 주었다. 예뻤다. 가슴이 그렇게 매력적일 줄이야. 하지만 내 가슴은 맘에 들지 않는다. 지금은 자신이 있지만 예전엔 내 외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햇살이 빛날 때면 햇살과 사랑에 빠지고 싶고, 비가 오면 우수에 젖어 온갖 꿈을 꿀 수 있으니 또 좋다.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모든 것들을 좋아한다. 나는 이제 열여섯이다. 그리고 학교를 마치면 여기를 떠날 것이다.

1897년 7월에서 8월



이틀 전에 고모부와 함께 메루로 왔다. 메루는 버지니아 덩굴식물과 등나무가 꽉 들어찬 숨막히는 동네이다. 작은 시골인 이곳에서 여름 소나기를 만나는 것도 행복했다. 물기에 전어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머리칼과 속옷을 적시며 스며드는 빗물. 젖은 옷이 다리에 달라붙어 걷기에 힘들고, 눈이든 귀든 가리지 않고 빗물이 스며들었지만, 그러다 씻은 듯 비가 멈추고 푸른 하늘에 무지개가 뜨면 나는 넋을 잃었다. 이런 시골 풍경들은 얼마나 사랑스러웠던지.

브로스 아저씨 집에서 지낸 것도 이틀이 지났다. 나는 다락방에서 사촌과 함께 잠을 잤는데,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무서움을 느껴서 그랬던 것 같다. 어제 아침 사촌은 6시에 산책을 나가고 나 혼자 있을 때였다. 내 잠을 깨우는 브로스 아저씨의 늙은 얼굴을 보자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또다시 그가 들어온 것이다. 그는 나를 자기 손녀처럼 사랑한다면서 내게 키스하며 나의 가슴을 만졌다. 나는 공포에 질린 비명을 질렀다. 마침 사촌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면서 밖으로 나갔다.

1898년 6월에서 7월



다행히 높은 점수(10등 이내)로 필기시험을 통과했다. 시험관이 너그러운 사람이어서 훌륭하게 해낼 수 있었다. 전공과목을 선택하란다. 마침내 모든 것이 끝났고, 나는 루드쥬에 있는 소피-게르만 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1898년 8월에서 9월



휴가는 끝났다. 파리로 돌아왔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 우리 옆집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젊은 남자다. 그는 병든 누이를 돌보면서 창문을 통해 나를 지켜보곤 했다. 이제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고만 있는 그 남자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어쩌면 내게 말을 건네고 싶겠지만, 나는 혼자 있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눈동자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를 만나고 싶고, 그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흘 뒤에는 드디어 소피-게르만 학교가 시작된다. 왜 선생님이 되어야 하지? 나는 배우가 되고 싶은 데……, 혼자서 대사를 낭송하고 고전 작품에서 긴 문장들을 익혔다.

헬렌과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가 내게 자기의 시동생을 소개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는 28세이다. 만일 이런 사실이 알려진다면 고모는 헬렌을 쫓아낼 것이다. 고모는 결혼도 하지 않고 남자와 함께 사는 헬렌을 사악한 여자라며 욕을 해댔다. 어떻게 욕을 할 수 있으며,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1899년 5월



고모부 가게에서 일하는 경리 모리스와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고모는 내 뺨을 후려쳤다. 그와 결혼하면 내 인생이 확 필 것이라고 고모는 장담하지만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고모는 흥분해서 고함을 질렀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피차 못할 말까지 해버렸다. 고모와 사촌을 안 보기 위해서라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

결혼(1899년 6월∼1900년 4월)



1899년 6월 월요일




나는 지금 커다란 곤경에 빠져 있다. 헬렌의 시동생에게 납치되어 조그만 아파트에 갇혀 있는 중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그의 이름은 폴 포르쉐롱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곱슬머리이다. 헬렌의 부탁과 호기심 때문에 그를 만났지만, 만나는 그 순간 실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폴과 함께 차를 마시고, 케이크와 푸딩을 먹었다. 시간이 7시 15분전이었다. 세상에!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면 고모가 자주 위협했던 것처럼 나를 갱생원이나 수도원에 보낼 시간이다. 내가 울기 시작하자 폴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자고 다음 날 함께 고모에게 가자고 설득했다. 고모부에게 나와 결혼하겠다고 말하겠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결혼이라니. 어떻게 이런 사람과 결혼을……. 그는 나를 어지럽게 끌고 다니다가 마침내 6층의 작은 그의 아파트에 데려갔다. 아, 공포와 혐오로 짓눌렸던 그날 밤! 불과 몇 시간 전에는 아이에 불과했는데, 어떻게 그런 소름끼치는 역겨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이곳에서의 지옥 같은 생활도 일주일이 지났다. 삶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다. 사랑이란 정말 이런 것인가? 이처럼 잔인하고 야만적인 것이란 말인가? 남자들은 모두 그런 짐승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만족을 채운다는 말인가? 나는 종일 혼자다. 폴은 외출에서 돌아오면 다시 나를 '사랑'(그는 그 짓을 그렇게 부른다)하며 밤을 보낸다. 끔찍하고 역겹다. 폴과 지내는 밤만 없다면, 그런대로 즐거운 생활이 될 텐데. '사랑'하는 게 뭐가 좋을까? 더럽고 혐오스럽기만 한 그 짓이! 그는 내가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 같다고 한다. 신에게 감사해야 하나?

1899년 7월



마침내 헬렌의 연락을 받은 고모가 나타났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뺨을 후려쳤다. 난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모리스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면 폴과 결혼하라고 윽박지르며 폴에 대하여 물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했다.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폴이 돌아왔다. 그가 결혼하겠다고 말하자 고모는 승낙했다. 헬렌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위로했다. 모든 것이 끝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끝이 바로 절망의 시작인데…….

1899년 8월 9일 수요일



모든 것이 끝났다. 어제부터 나는 폴의 아내가 되었다.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나도 울었다. 그의 눈물은 환희 때문이었다면, 나의 눈물은 절망 때문이다. 결혼식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욕지기를 느꼈다. 헬렌은 몇 달 뒤에 예쁜 아기가 나오겠다며 반겼다. 그녀의 말을 듣고는 행복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일까? 믿을 수 없다. 하지만 폴은 그 말을 듣고는 화가 난 듯했다.

1899년 10월 월요일



그는 자주 내게 주먹을 휘둘렀고 나는 무방비 상태로 얻어맞았지만 전처럼 소리치거나 울지 않았다. 그는 주먹을 휘두르고 나면 나를 침대로 끌고 가 온갖 외설스러운 말을 지껄이면서 나를 범한다. 나는 냉담한 태도로 그가 하는 짓을 내버려 둔다. 구역질이 나지만 그것 역시 내 인생이 아닌가.

헬렌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애인을 사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경악했다. 어떻게 두 남자와 동시에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을 속인다는 게 그렇게 간단할까? 어떻게 그런 일을 꾸밀 수 있지? 헬렌은 나에게 자신의 정부의 친구를 소개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폴에게 들킬까 겁이 났지만, 나는 헬렌을 따라나섰다. 내게는 천성적으로 알 수 없는 호기심이 있는가 보다. 그는 카페의 매니저였고, 내가 살고 싶은 우아한 독신자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는 매우 부드럽게 애무했고, 나는 차츰 기분이 좋아져서 꿈을 꾸듯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수요일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매우 부드럽게 행동했고 그와 함께 알몸이 되어 나는 예전엔 생각하지도 못했던 감정과 느낌에 몸을 떨었다. 토요일, 결국 점심이 아니라 키스를 위해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내게 키스하고 옷을 벗겼다. 똑같은 절차, 똑같은 오르가슴 그리고 마지막의 혐오감! 그의 손길과 섹스에 반응하기 시작하는 내 몸이 싫었다.

드디어 큰 일이 벌어졌다. 폴의 형 앙리가 헬렌의 부정을 알게 된 것이다. 앙리는 헬렌과 결별했고 내게는 헬렌과 만나지 말 것과 폴이 그 사실을 알면 나를 죽일지 모른다며 다시는 파리에 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무섭다. 헬렌이 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1900년 4월 월요일



폴은 점점 더 난폭해졌다. 나는 언젠가 도망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폴은 어딜 가든 잡아와서 혼을 내줄 것이라고 위협하며 나를 소파로 끌고 가서는 치마를 들치고 짐승처럼 강제로 추잡한 욕심을 채우면서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눈을 감는다. 남편이야 꼴도 보기 싫지만, 마음속에선 서서히 희망이 자라고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야 한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내 앞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아직 젊고 지금부터는 바보같이 굴지도 않겠다. 실수에 대한 대가는 이미 충분히 치렀다. 마음속으로 희망이 밀려오고 무언가가 나를 따뜻하게 비춰주는 기분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소망하던 모든 일들은 틀림없이 꼭 일어날 것이다. 떠나야한다. 이제 정말 떠나야 한다. 비록 하녀로 일한다 할지라도, 잡을 수 있는 어떤 직업이라도 잡아서 하루 빨리 여기서 멀리 떠나야 한다. 반드시 떠나야만 한다!

자유로운 세상으로(1900년 4월∼1901년 늦가을)



1900년 4월




마침내 그 지옥을 벗어났다. 폴은 그가 내리친 유리병에 맞아 피를 흘리던 나를 강간하기 위해 소파로 끌고 가다 피가 멈추지 않자 겁이 나서 행위를 중단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소지품을 작은 가방에 챙겨 넣고 바스띠에 행 10시 기차를 탔다. 이제야말로 정말로 끝이 다가온 것이다! 나는 '끝'이란 단어를 그와 함께 보냈던 시절의 맨 마지막에 깊이 새겨 넣었다.

직업소개소에 찾아가 일을 얻는 데 필요한 서류를 맡기자 오후 4시에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거리를 배회하다가 정오가 지난 무렵 제과점 쇼윈도에서 고통스런 허기를 느꼈다. 그때 누군가 나를 제과점 안으로 밀어 넣었고 나는 허겁지겁 핫초코와 노란 빵 몇 개를 먹었다. 나와 마주 앉은 남자는 턱수염을 기른 젊은 남자였다. 그는 조각을 하는 로렌 드비앙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자신의 모델이 되어 줄 것을 제안했다.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 예술가와 알고 지내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매혹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고, 그런 삶이 너무나 근사해 보여서 언젠가는 꼭 그들의 세계에 동참해보고 싶었다.

그는 몽파르나스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나를 기거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를 위해 포즈를 잡아주면 된다고 했다. 나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첫 밤을 깨지도 않고 잘 잤다. 나는 로렌을 위하여 포즈를 잡았다. 하루 종일 포즈를 취하고 있으려면 지루하고 피곤했다. 로렌이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도 볼 수가 없다. 어제는 로렌이 스튜디오를 나서면서 부드럽게 키스해주었다. 나는 그의 키스를 받으면서 잘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자 로렌은 내가 좋은 모델이기에 오히려 자신이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가 내 곁에 누웠지만 거부감은 없었다. 자연스러웠다. 로렌의 부드러운 키스도 역겹지 않았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느낌은 여전했다. 나는 다만 그가 최후의 섹스만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키스와 스킨십은 좋았지만 섹스만은 여전히 거부감이 들었고, 더욱이 난 아직 그와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는 내가 원하는 대로 섹스만은 자제했다. 나는 평화롭게 잠들 수 있었고, 그에 대한 신뢰감이 생겼다. 바로 이런 것이 연인과 함께 지낼 때의 진짜 생활이 아닐까.

1900년 초여름



어제부터 일을 시작했다. 이제부터 나는 진짜 모델이다. 오전에는 조각가 앞에, 오후에는 화가 앞에, 저녁을 먹은 후엔 로렌 앞에 앉았다. 일요일은 쉬었지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체중이 줄고 몸도 피곤했지만, 로렌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하루에 10프랑을 벌어 통 속에 넣어두면 언제나 로렌이 다 갖다 썼다. 그 통은 언제나 밑이 빠진 것처럼 텅 비어있다. 그는 너무 이기적이다.

오늘은 로렌과 처음으로 싸웠다. 그가 힘이 더 세서 대항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나를 소파로 끌고 가더니 남편이 하듯이 그렇게 끝을 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남자들은 화가 나면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걸까? 곧 이곳을 떠나 독립을 해야겠다. 몽마르트로 이사할 예정이다. 모델 일에 대한 제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많이 들어오니까.

1900년 9월



로렌이 또 화를 냈다. 내가 집안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싸우고 나서 서로 포옹하는 일도 없다. 나는 그가 먼저처럼 또 다시 강간하려 하다면 이곳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벌써 5개월째 그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그의 옛 애인 리타가 찾아와 나에게 욕을 하며 추태를 부렸지만 나는 지지 않았다. 한바탕 설전을 벌인 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화가 친구를 소개해줄 예정이다.

1900년 가을



지금은 몽마르트에서 산다. 이곳에는 야망을 품은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새 집에서 로렌이 가구를 옮기고 벽에 못을 박으며 일하는 모습이 종교의식을 치르는 것 같다. 그토록 신중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나를 스튜디오로 데려갔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데려가 같이 지내면서 모델 일을 가르치고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소개한다면, 자신의 평화로운 생활을 파탄낼 수도 있는 생활고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것쯤은 충분히 계산했을 게 뻔했다. 로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남자로서 그는 이기적이고 잘난 것도 없다. 뚜렷한 개성이 없는 그는 조각가로서도 마찬가지다.

조르주의 여자친구는 좋은 가문 출신이다. 그녀의 이름은 레노였다. 나와 레노는 친해졌다. 그녀는 자상하고 자질한 선물도 많이 주었지만 내 맘에 꼭 드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로부터 조르주를 "훔치기 위해"(그녀의 표현이다) 그를 유혹했다고 고백했다. 그가 이미 여동생들 가운데 한 명과 관계를 맺어, 자신도 그의 사촌 가운데 한 명에게 몸을 던짐으로써 확실한 복수를 했단다! 그러면서 조르주가 아니면 오르가슴을 느낄 수가 없다며 다시 그에게 돌아갔다.

1901년 봄



로렌이 스튜디오를 1층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모델 일을 계속하고 있다. 모델 일을 하다보면 가끔씩 곤란할 때도 있는데, 나와 육체적인 관계를 원하는 화가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일전에도 화가 한 명이 내게 카스하려 했는데, 모델 일을 그만두겠다고 위협하자 얌전해졌다.

1901년 여름



역겹다. 일을 일찍 끝내고 집에 돌아와 보니, 로렌이 모델로 썼던 열두세 살 된 계집아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진저리가 났다. 예술을 한다는 것이 로렌처럼 잠이나 자고 공상하며, 자신의 존재만을 찬양하는 일일까? 아직 이 세계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지만 내가 아는 예술가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활동적이고 열심히 일했다.

1901년 가을



로렌의 친구 가운데 나보다 적어도 서른 살이나 나이가 많은 가수로 몽마르트에서 일하는 자크라는 근사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안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요람처럼 편안하게 포옹하고, 사랑하고, 의지하고 싶었다. 혼란스럽다! 오늘 그를 만났는데 또 보고 싶다. 나는 따뜻함과 보호가 필요하다. 이런 것이 사랑일까?

목요일



그가 옳았다. 인정하기는 부끄럽지만 미몽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자크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일종의 착각이었다. 언제나 사랑의 마지막 행위는 달콤했던 감정들을 파괴시키고 만다. 수요일이 되었을 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자크의 집을 방문했다. 나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고 그의 품을 원했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시도할 수 없는 섹스 전까지는 즐거웠다. 하지만 섹스가 끝나는 순간, 나는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찌든 담배와 맥주냄새를 풍기는 한 매력 없는 늙은 남자 곁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서둘러 옷가지를 걸친 채 침대를 빠져나왔다. 자크뿐만 아니라 내게도 심한 역겨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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