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오셀로를 닮은 남자 헤라를 닮은 여자

데이비드 버스 지음 | 청림출판
1장 위험한 열정



녹색 눈의 괴물 : 질투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혹은 과거에 경험했던 헌신적이고 낭만적인 관계를 떠올려 보자. 그리고 그 낭만적인 관계의 상대방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상대방이 다른 사람과 감정적으로 깊이 교류하며 서로 믿고 의지하는 상황과, 그저 새로운 상대와 성욕을 불태우는 상황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화나고 실망스럽겠는가? 물론 두 상황 모두 반가운 것은 아니지만 어느 쪽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가? 우리가 조사 대상으로 삼은 여성들 대부분은 감정적인 배신 행동에 대해 훨씬 화가 많이 난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경향은 적어도 여성에게 있어서는 분명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은 상대의 성적 배신을 더 괴로워했다. 상대의 배신에 대한 반응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성별 차이는 인간의 짝짓기 전략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질투에서 나타나는 성별 차이는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해온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 생식의 생물학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성별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수정은 남성이 아닌 여성의 몸 안에서 일어난다. 고대의 남성들에게 있어 인간의 이런 특징은 곧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문제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고대 남성들의 시각에서 볼 때, 생식의 측면에서 아내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는 성적 배신, 즉 외도였다. 반대로 여성들은 자신이 아이의 어머니라는 것을 100퍼센트 확신한다. 대신 고대의 여성들은 남편이 다른 여성과 그 자녀들에게 헌신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는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감정적 유대가 이런 비참한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는 신호인 까닭에 여성들은 다른 여성에 대한 남편의 감정을 알려주는 단서들에 예민하다.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질투심을 발휘했던, 그리고 남성의 헌신을 확신하고 싶어했던 고대 여성들로부터 진화해왔다.

질투를 미성숙한 감정으로 여기면서 불안정, 신경증, 혹은 성격 결함의 표시로 간주하는 이론도 있다. 하지만 질투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의 조상이 되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은 질투심 많은 경쟁자에게 밀려 진화에서 도태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질투란 곧 적응이다. 진화심리학에서 '적응'이란 생존이나 생식에 관련된 반복적인 문제들을 풀기 위해 진화된 해결책이다. 질투는 위협적인 언사와 매서운 눈초리로 경쟁자를 얼씬거리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질투는 경계를 강화하거나 배우자에게 애정 공세를 퍼붓는 등의 전략을 동원하여 한눈을 팔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질투는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배우자에게 변치 않는 애정을 알려서 결국 사랑의 유지라는 중요한 목적을 달성하도록 한다. 성적 질투는 때로는 파괴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 조상들이 끊임없이 부딪쳐야만 했던 문제에 대한 성공적인 해결책이기도 하다.

오셀로 신드롬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나름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질투라는 감정은 부부 혹은 연인을 극단적인 위험에 몰아넣기도 한다. 아내가 외도를 저지를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거센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들은 질투의 어두운 측면을 보여준다. 심지어 남편의 질투로 아내가 살해당하는 경우까지 있다.

질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설문조사 결과 우리는 거의 모든 남녀가 최소한 한 번씩은 격렬한 질투를 경험했다는 것을 알았다. 전체의 31퍼센트는 때로 질투를 통제하기가 아주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현재 질투를 느끼고 있다는 사람의 38퍼센트는 그 질투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질투를 일컫는 말로는 오셀로 증후군, 병적 질투, 정신병적 질투, 병리적 질투, 부부 편집증, 색정적 질투 증후군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파괴가 반드시 병리와 똑같다고 볼 수는 없다.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극단적인 질투의 병리적 측면은 질투 자체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이 부정을 저질렀으리라는 망상이다. 사실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부정 행위를 직접 발견했을 때 느끼게 되는 분노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질투를 병리적으로만 보게 되면 실제 위협에 대처하는 중요한 방어 수단으로서 질투가 맡는 역할을 간과하게 된다. 질투는 항상 발견된 외도에 대한 반응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외도 행위를 방지하는 예방적 반응이 될 수도 있다. 배우자의 부정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질투를 그저 병리적으로만 본다면 질투가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부정을 차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지나친 질투는 대단히 파괴적일 수 있다. 하지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절한 질투는 헌신적 관계의 특징이다.

2장 질투의 패러독스



질투란 무엇인가?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심리학자인 고든 클랜턴은 질투를 "짝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혹은 짝이 제3자와 관계를 맺었거나 맺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표현되는 불편한 감정"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는 짝을 잃을지 모르는 위협, 그리고 제3자의 존재라는 질투의 두 가지 중심 요소를 포함한다. 실제로 질투 상황은 질투를 느끼는 사람, 그 배우자, 그리고 경쟁자라는 세 사람이 관여된다는 점에서 종종 '영원한 삼각관계'라 불리기도 한다.

온타리오에 있는 맥마스터 대학의 진화심리학자인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질투를 "가치를 부여하는 관계 혹은 지위에 대한 위협을 감지했을 때 발생하며 그 위협에 대한 대처 행동을 유도하는 상태"라고 정의하면서 '그 가치를 부여하는 관계가 성적이라면 성적 질투가 된다'고 했다. 이 정의는 질투의 세 가지 측면을 부각시킨다. 첫째, 질투는 일종의 상태이다. 다시 말해 영구적인 고통이 아니라 일시적이거나 일회적인 경험이라는 뜻이다. 키나 머리 색깔 같은 신체 특성은 변하지 않고 유지되지만 늘 질투심에 차 있는 사람이란 없다. 둘째, 질투는 특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관계에 위협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 보이는 반응이다. 그저 알고 지내는 관계나 임시적인 관계에 대한 위협으로 인해 질투를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셋째, 질투는 그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행동을 불러온다.

하지만 이 정의 역시 질투라는 복잡한 인간 감정의 모든 면을 잡아 내지는 못한다. 한 예를 들어 보자. 낭만적인 관계에 대한 위협은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 성적 위협, 감정적 위협, 경제적 위협, 심지어 지적 위협 등. 질투의 역설을 꿰뚫어보자면 결국 질투가 겨냥하는 위협의 정확한 본질을 이해해야만 한다.

일부 학자들은 질투라는 개념을 때로 유사한 개념인 시기(envy)와 혼동하기도 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정의를 보면 시기란 "행복, 성공, 명성 등 가치 있는 것을 누리고 있는 사람의 우월함에 대해 불쾌함과 악의를 느끼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시기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한 사람에 대해 느끼는 탐욕, 악의, 나쁜 감정 등을 포함한다. 반면 질투는 자신이 이미 가진 소중한 것을 경쟁자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포함한다.

3장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의 질투



다양한 성 상대를 원하는 남성, 감정적 유대를 원하는 여성




남성과 여성의 짝짓기 전력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여성은 헌신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며 감정적 관계와 사랑을 중심으로 하여 헌신을 확인하려 한다. 남성은 성 상대를 다양하게 가지려는 욕망을 진화시켰고, 이것은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 여성의 욕망에 위반됐기 때문에 양성 간에 심각한 갈등을 낳았다. 여성의 젊음과 아름다움은 생식 능력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에 남성은 이런 자질을 갖춘 여성에 대해 강한 욕망을 진화시켰다. 마지막으로 남성은 배우자의 성적 정절에 가치를 둔다. 배우자가 외도를 저지른다면 아이 아버지로서의 지위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의 성적 전략들은 질투의 심리적 설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전략이나 목표를 차단하거나 방해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전략적 간섭이라는 개념을 다시 떠올려 보자. 분노, 공포, 질투와 같은 소위 부정적인 감정은 전략적 간섭이라는 경보를 울리는 탐지 장치이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성적 전략을 진화시켰다면 질투나 분노를 느끼게 되는 상황도 서로 달라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감정적 관계에 대한 여성의 욕망은 남성이 자기를 하룻밤 상대로 여기는 경우에는 침해당한 것이다. 그리고 배우자의 성적 정절을 원하는 남성의 욕망은 배우자가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때 침해당할 것이다.

질투의 딜레마 : 소피의 선택



질투에 있어 성별 차이가 분명하다는 우리의 이론은 여성이 배우자의 외도에 무관심하다거나 남성이 배우자가 다른 남성과 맺는 감정적 유대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남녀 모두 배우자의 성적 외도나 감정적 유대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그러면 배우자의 성적 외도와 감정적 외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화나는 일인지 선택해야 할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두 가지는 물론 본성상 서로 연관되어 있다. 사람들은 성관계를 가진 사람과 감정적으로 친밀해지는 경향이 있고 또 감정적으로 가까운 사람과 성관계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신의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 것과 감정적으로 유대를 맺는 것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이런 상황을 질투 딜레마에서 '소피의 선택'이라고 부른다. 영화 <소피의 선택>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여자 주인공은 두 자녀 중에서 어느 쪽이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런 딜레마는 어느 부모라도 당면하고 싶지 않은 비극이다. 하지만 소피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이 딜레마는 다른 상황에서라면 절대 밝혀지지 않았을 특정 자식에 대한 선호 감정을 결국 드러내게 만든다.

질투 딜레마는 어떻게 보면 이 <소피의 선택>과 비슷하다. 물론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자신의 배우자가 성적이든 혹은 감정적이든 간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악몽 같은 일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화나는 일이냐는 질문을 던지면 남성과 여성에게서 다른 대답을 얻게 된다. 다음은 우리가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에게 물은 내용이다. "사랑하는 상대가 옛 애인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음 두 행동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용서하기 힘들겠습니까? ① 상대가 옛 애인과 열정적인 성관계를 맺은 경우. ② 상대가 옛 애인과 깊은 감정적 유대를 형성한 경우." 총 530명의 남녀 중에서 남성의 67퍼센트는 상대의 성적 외도가 더 용서하기 어렵다고 대답했지만 여성 중에서 같은 선택을 한 경우는 44퍼센트에 불과했다.

우리는 60명의 남녀를 심리생리학 실험실로 오게 했다. 그리고 두 가지 유형의 외도에 대한 상상이 얼마만한 생리적 고통을 주는지 측정하기 위해 얼굴을 찌푸릴 때 수축하는 부위인 이맛살 근육에 전극을 연결했다. 오른손의 엄지와 중지에도 전극을 연결해 움직임이나 땀흘림을 측정했고 엄지에서는 맥박과 심장 박동을 측정했다. 그 후 실험 대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성적 외도와 감정적 배신에 대해 상세하게 떠올려보도록 했으며 분명한 느낌과 연상이 이루어지면 버튼을 눌러달라고 부탁했다. 버튼을 누른 후 20초 동안 생리적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실험 결과 남성들은 성적 외도에 보다 큰 생리적 고통을 받았다. 반면 여성들의 경우에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감정적 배신을 떠올렸을 때 더 큰 생리적 고통을 느꼈다. 결국 심리적 그리고 생리적 반응 측정 결과는 예상되었던 성별 차이를 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과 여성은 똑같이 질투를 느낄 수 있지만 질투를 유발하는 사건은 서로 다른 것이다.

4장 오셀로 신드롬



왜 상대의 부정 행위에 민감한가?




인간은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자신의 감각에 의존해서 세상으로부터 정보를 취합하고 정보처리 능력을 통해 세상의 진정한 모습을 추론한다. 우리의 생존과 관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것이 무엇인지 늘 분명하지는 않다. 정보란 늘 불명확하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숲 속을 산책하다가 앞쪽 오솔길에서 무언가 미끄러지듯 지나간다고 느꼈다. 실제로 가능한 상황은 두 가지다. 앞쪽에 위험한 뱀이 있을 수도 있고, 위험한 뱀이 없을 수도 있다. 당신이 인식한 불완전하고 모호한 정보를 바탕으로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한 것이다. 정말로 위험한 뱀이 있다면 피해야만 한다. 뱀이 없다고 결론짓는다면 계속 걸어갈 것이다. 두 가지 가능한 현실과 두 가지 가능한 추론이 존재한다.

추론이 틀릴 가능성도 두 가지이다. 똑같이 틀릴 수 있는 판단이지만 그에 따른 비용은 매우 다른 것이다. 이런 상황이 평생 동안 수천 번 반복될 뿐만 아니라 인류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수십억 번이나 거듭되었다고 하자. 실제로 뱀이 없는데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뱀이 있는데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크다. 그 결과 불확실한 상황에서 뱀이 존재한다고 추론한 조상들로부터 오늘날의 우리가 나오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있거나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의 불확실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외도는 물론 늘 베일에 싸여 비밀리에 이루어진다. 남의 마음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대체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짝의 배신에 대한 불확실성은 바삭거리는 나뭇잎들 아래에 위험이 잠복해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훨씬 더 크다. 이러한 오류 처리 이론은 결국 자연선택이 조금만 이상해도 남편의 부정을 추론하는 신중한 여성 쪽을 편들어주었다고 설명한다.

오류 처리 이론은 오셀로 증후군의 중요한 측면들을 잘 설명한다. 그것은 왜 남성과 여성이 때로 아무 잘못 없는 상대의 부정 행위에 대한 망상을 갖는지를 설명해 준다. 또한 왜 그렇게 남녀 모두 배신 신호에 민감한지 알려 준다. 하지만 오류 처리 이론 그 자체는 애인의 배신 가능성에 대해 갑자기 민감해지게끔 하는 특정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지는 못한다.

5장 내가 가질 수 없는 여자라면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다



배우자 살해에 대한 진화적 설명




배우자를 살해하는 혐오스러운 행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아차 실수(slip-up) 가설'이라는 설명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배우자 살해는 가해자에게 적응적인 행동도 아니고 적응적이었던 행동도 아니라고 한다. 그 죽음은 극단적으로 전개되는 위험한 게임에서 아차 하는 순간에 발생한 실수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남성은 여성을 통제하고 자기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폭력을 사용한다. 그런데 때로 그렇게 동원된 폭력이 죽음을 부르는 것이다.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남성은 여성을 통제하려 하고, 여성은 그 억압에 저항해 자신의 선택을 고수하려 한다. 이러한 경쟁관계 속에서 극단 상황이 벌어져 재앙의 위험이 싹튼다. 배우자 살해는 이 위험한 게임에서 발생한 경미한 실수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후의 저작에서 "이러한 배우자 살해에서 치명적인 결과는 치명적이지 않은 결과를 위해 선택된 심리적 과정의 부산물로 보인다."고 주장을 보다 명확히 했다. 이러한 설명이 사실에 잘 부합하는가? 혹은 충분한 설득력이 부족한가?

조슈아 던틀리와 나는 윌슨-데일리의 '아차 실수' 가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우리는 배우자 살해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을 검토하는 것에서 출발해 '아차 실수' 가설이 그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예를 들면, 많은 수의 살인은 사전에 계획되었고 단순한 우연이나 실수로는 보이지 않았다. 많은 살인자들은 희생자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와중에 "내가 널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널 가져서는 안 돼."라는 식의 말을 내뱉었다. 배우자 살해가 정말로 위협과 통제라는 위험한 게임에서 나타나는 '아차 실수'라면 그토록 많은 배우자 살해가 사전에 계획된다는 점이 설명되지 않는다. 던틀리와 나는 남성들이 배우자 살해 모듈이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진화시켜왔다고 결론지었다. 그 기능은 위협이나 예방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배우자의 죽음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