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주의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
마이클 루스 지음 | 청년정신
제1장 다윈주의
사실로서의 진화영국인 찰스 로버트 다윈은 진화론의 역사와 우리가 할 논의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다.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당시에 대표적인 학자였던 천문학자 존 허셀과 역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였던 윌리엄 휘웰이 있던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들 두 사람은 훌륭한 과학적 논증을 위해서는 휘웰이 '귀납의 일치'라고 부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였다. 이것은 어떤 이론이나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증거를 끌어 모아야 하는데, 그 증거들은 가설에 의해 설명되고, 그 가설은 또한 증거에 의해 입증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허셀과 휘웰로부터 영감을 받은 다윈은 생물학적인 스펙트럼 전반에 걸쳐 진화의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모았다. 이에 따라 생물학은 진화로 설명되었고, 진화는 생물학으로 입증되었다.
원인으로서의 진화찰스 다윈은 원인으로서의 진화의 개념과 관련해 자신의 견해를 완성했다. 1838년에 철저한 탐사를 마친 후 그는『종의 기원』에서 핵심적인 개념으로 등장하는 설명 기제인 '자연도태' 또는 그의 동료 진화론자인 허버트 스펜서의 제안에 따른 '적자생존'의 개념을 도입하여 동식물의 서식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개선하는 방식, 즉 최선의 가장 바람직한 군체들만이 선택되어 번식하는 방식을 유추하여 자연에서도 유사한 과정이 일어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과정이 의식적인 존재의 자의적 의도와 설계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어떻게 발생하게 된다는 것인가? 이 질문은 『종의 기원』보다 몇 해 앞서 발표되어 주목을 받아오던 정치사상가인 토머스 로버트 맬더스 목사의 인구폭발이론으로 간단하게 답변할 수 있다. 이 이론은 인구의 성장이 활용 가능한 자원을 넘어서게 됨으로써 생존경쟁이 불가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기체의 재배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연발생적인 변이가 일어남을 확신하게 된 다윈은 생명의 또 다른 보편적 특징으로 서식자들이 도태를 겪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다윈 이후사람들은 매우 빠르게 그리고 쉽게 진화를 사실로 수용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유전이었다. 다윈은 많은 변이가 일어나며 그들 대부분은 소규모적인 것이고 특정한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다고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러한 변이의 원인이나 세대를 거쳐 이루어지는 유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 역시 각 세대는 양쪽의 부모로부터 받은 특징들이 함께 뒤섞이는 경향이 있다는 가정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도태의 관점에서 아무리 유익한 변이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 효과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큰 진전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무명의 모라비아교 수도승인 그레고 멘델의 견해가 알려지고 진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세기말부터이다. 요컨대 새로운 변이는 반드시 뒤섞이지는 않으며 세대를 거쳐 온전하게 전달될 수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그로 인해 자연도태의 개념은 새로이 부각될 수 있었다.
현대의 진전그 어느 때보다도 지난 반세기 동안 진화론의 영역은 더욱 확장되었다. 발전의 주요한 자극제가 된 것은 1953년 제임스 와트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분자의 이중나선모형을 발견한 분자생물학 분야였다. 이 분야는 진화론 분야에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의 발전을 가져오는 데 기여했다. 또한 고생물학 분야 역시 새로운 방법이 고안되고 화석자료가 잇따라 발견됨으로써 크게 진전했으며 미생물학도 급속도로 발전하여 도태에 관한 실험에 기여하고 있다.
다윈주의의 정의'다윈주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날 누가 다윈주의자인가? 가장 원론적인 답변은 진화를 사실로 수용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새들은 공룡에서 진화한 것인가 아니면 파충류에서 진화한 것인가? 그러나 이 같은 논쟁은 집안싸움에 불과하며 다윈주의에 대한 궁극적인 신뢰와 믿음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다윈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는 현재나 과거, 또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적응력을 기대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다윈주의자들 역시 인간을 특별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도태가 자연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제2장 기독교
예수 그리스도기독교는 궁극적 실재가 무엇이며 그것과 연관된 인간의 위치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사회적인 체계를 지니고 있고, 그 구성원들에게 채찍과 당근으로 도덕적 규범을 명하고 있다. 기독교인에게 가장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사건은 2,000년 전에 생존했던 나사렛 예수의 존재, 즉 그의 삶과 죽음이다. 기독교인에 따르면, 예수는 다양한 일련의 기적들을 행했으나, 그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자연의 일상적인 질서를 깨뜨린' 그 자신의 부활이었다. 예수는 왜 죽었는가? 그의 죽음과 그 이후에 일어난 부활의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유대교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유대교에서 하나님은 무로부터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로 그려진다. 창조란 하나님이 오셔서 이미 존재하던 물질에 형상을 부여한 사건이 아니다. 하나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우리 인간은 동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존재이다. 또한 모든 사람은 아담의 원죄를 유전한다는 것이 전통적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우리 모두는 원죄의 상태에 놓여 있기에 예수는 우리를 구원할 희생양이었다. 예수는 인간이지만 원죄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원죄가 성행위를 통해 유전되어 내려오는 것인데, 성모는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하였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구원과 내세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나는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지금보다 나은 삶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의심스럽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내세의 삶이란 황홀한 것이며, 그곳에서 하나님과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어떤 기독교인도 확언할 수 있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예수의 죽음은 영생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해서 성취된 것인가? 우리가 갖고 있는 예수의 기록들(신약에 실린 네 개의 복음서와 서간문)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어떤 도덕적인 짐도 부과되어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기독교의 핵심적인 계율은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 이외에 예수는 어떠한 철학적 체계도 제시하거나 남겨준 바가 없다.
도덕적인 규범이 주어지면 우리는 선한 행실을 통해 천국, 즉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구원은 그가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으로 그의 선한 마음에서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의 호의나 선물에 대해 지불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으며, 단지 신의 은총에 매달릴 뿐이다. 개혁자 마틴 루터와 존 칼뱅에 따르면 하나님만이 구원을 베풀며 구원은 우리의 힘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은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무한히 위대한 것이다. 전지하고 전선한 하나님은 구원받아야 할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결정하는 권한을 쥐고 있기에, 성인과 죄인의 궁극적 운명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이 전능하고 전선한 천지의 창조주라면 우리는 현존하는 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이 악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을 부인하는 것이 되는데, 하나님이 악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곧 그의 본질적 속성 중 어느 하나를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난제를 벗어나기 위한 모종의 방안이 모색되어야만 한다.
종교개혁 이후개신교의 종교개혁은 이론적인 면에서나 물리적인 면에서 잔혹한 전쟁을 벌여온 2,000년의 기독교 역사 중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이것이 집안싸움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수 세기를 거쳐 회고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둘 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신뢰하였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본성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었다. 또한 교리와 그것에 연관된 상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었는데, 이는 개신교가 가톨릭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세기에 들어오면서 기독교는 외부에서 일어나 내부로 침투한 전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주로 사회적인 것이었다. 종교개혁 이후 종교적 변화에 의해 직접, 간접적으로 촉발된 요인들로 인해 사회는 급속도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기독교는 늘 독재 권력과 현상 유지적인 성향의 보수 세력과 결탁해왔으며, 백성들 중에서도 사회와 국가의 번영에서 배제되어 있던 지성인들의 요구를 대변하지 못했다.
계몽주의지적인 차원에서 기독교를 비판했던 유일한 요인이자 가장 중요한 요인이 과학이었던 것은 아니다. 우주의 본성에 대해 성서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본 아퀴나스는 우리의 신앙을 서로 상보적인 관계에 있는 두 개의 신학으로 체계화시켰다. 하나는 신앙을 통한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신에 대한 지식으로서 계시종교 또는 계시신학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을 통한 것이기에 교육받은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는 신에 대한 지식인 자연신학 또는 자연종교다.
성서에는 모순, 생략, 첨언, 양식의 변화, 복수의 저자 등 수많은 문제가 있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으나 자료를 모은 것은 인간이기에 어느 정도 인간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이같이 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문제점들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허구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계시적 기독교에 대한 고등비판이 유행처럼 번진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자연종교 또는 자연신학도 사정이 낫지 않다. 자연신학은 종교개혁 이후 신은 그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며, 따라서 신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고 주장한 데카르트의 존재론적 논변 등에 힘입어 처음에는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론적 논변들은 철학자로부터 철저한 비판을 받았다. 존재를 색상어와 같은 술어로 간주하고 있기에 잘못되었다고 비판한 임마누엘칸트가 대표적이다. 기적 역시 흄으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그는 기적을 신이 개입한 것이 아니라, 무지의 결과이거나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한 결과라고 결론 내렸다. 단순한 신이 아닌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정당화함에 있어 이성이 신앙을 약화시킨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는 지적인 차원에서 볼 때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것, 심지어는 해롭기까지 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난관을 뚫고 가다이 같은 위기를 맞아 기독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처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익숙한 체제에 머물러 가톨릭을 고집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비판을 수용하여 새로운 방식 또는 근대적인 양식으로 기독교를 개조하고자 노력하였다. 보수적인 대처 방안 중에는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는 복음주의도 있다. 대표적인 복음주의자가 빌리 그래햄 선교사이다. 복음주의자는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관심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들은 분명 특정한 색조의 기독교 신학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낙태에 대한 강력한 반대는 오늘날 중요한 논쟁점이 되고 있다.
순풍을 타고 가다또 다른 근대적인 기독교의 대응방안은 계몽주의 논변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진리란 신에게 달려 있는 것으로 종교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사실은 자유주의가 수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신학자 프레드리히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적 인간에게 있어서 주관과 느낌 그리고 자의식의 중요성과 더불어 기독교가 '절대적 의존감'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칸트의 자연신학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고 나섰다.
우리에게는 '인간존재의 세계, 사물의 세계, 시간의 세계'와 '하나님 아버지의 세계, 천지창조의 세계, 구속의 세계'가 있다. 이들 상이한 두 개의 세계는 우리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해 기독교도들 안에서 서로 연결된다. 도덕적인 태도가 분명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루터를 거쳐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바울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독교 신앙의 절대적인 핵심은 바로 은총에 의한 의화였다.
제3장 기원
성서성서에 나오는 다섯 권의 율법서(모세 5경)를 가리키는 토라(Torah)는 하나님의 사랑과 미래의 보살핌에 대한 약속으로서 구원서이자 민족의 역사서이며, 삶의 규범이었다. 이 문서들은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쓰여진 것으로, 우연적인 진리를 넘어서는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성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그리스도의 출현을 고대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의 필연성을 주장하고 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6일 만에 모두 창조하였다고 말한다. 정확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기독교인의 상상력을 동원하면, 대략 6,0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 외에도 흥미 있는 이야기는 소수의 사람과 동물을 제외한 모든 것을 파괴한 대홍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분명 이 이야기는 유기체가 45억 년이란 진화의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고 보는 진화론과 도저히 양립될 수가 없다. 물론 진화론 역시 인간의 종이 가장 최근에 출현했음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최종적인 것이거나 법칙을 따라 일어나는 창조가 이제 끝났음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다윈의 진화이론과 성서의 갈등은 좀처럼 해결될 것 같지가 않다.
가톨릭만일 창세기를 곧이곧대로 문자적으로 읽으려고 고집한다면 이는 결국 성서 안에서뿐만 아니라 성서와 과학적 신념 사이에 모순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될 것이다. 지난 4세기 동안에 이루어진 과학의 성공으로 인해 과학과 성서 사이의 긴장에 대해 중도적인 접근방식이 요구되고 있으며, 19세기 말 이래로 갈릴레오의 중도적인 견해는 가톨릭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거의 수용되고 있다. 오늘날 교황청은 다윈의 진화론을 우리가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충분히 근거 있는 견해로 수용하고 있다.
개신교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설화에 대한 개신교의 입장은 가톨릭에서보다 더 큰 긴장관계를 보여준다. 루터가 성서를 자신의 모국어로 번역한 번역가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루터가 <야고보서>를 '쓸모 없는 책'으로 언급했듯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문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기초한 신앙이었다. 17세기에 들어와 근대과학이 진보를 이루면서 기독교와 과학 사이에 활발한 조정이 이루어진다. 개신교와 과학의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해독하는 것이 경험적인 증거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히 밝혀졌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썼던 당시, 구약은 더 이상 과학적 실재에 대한 사실적 기술로 수용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성서를 세속적인 문서처럼 보아 창세기의 설화를 자연주의적으로 설명하는 고등비평을 수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성인들은 창세기의 첫 번째 창조 이야기(기원전 600년 바빌론 유배시기)를 하나님의 권능과 그가 소외된 백성을 돌보심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리고 창세기의 두 번째 창조 이야기(기원전 1,000년경의 다윗 왕 시대)를 백성(아담을 제외한 피조물들)들에 대한 왕(아담으로 상징)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이야기로 이해하고 있다.
기원을 좇아『종의 기원』이 출간되었을 때, 왜 그토록 많은 종교적 논란이 있었는가? 여기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로 답할 수 있다. 하나는 실제로는 그렇게 많은 종교적 논란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윌버포스와 헉슬리 간의 가장 유명한 충돌은 그들이 잡은 용이 실제보다 더 큰 것임을 자랑하려는 승리감에 도취한 진화론자들이 조작해낸 이야기였다. 두 번째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종의 기원』이 출간된 이후 논란이 된 대부분의 문제는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회한 성직자들은 종종 창세기의 창조적 설화와 그와 연관된 이야기들이 노아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처럼 진화론의 진위 여부를 고려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창조과학'에 관한 논의를 전적으로 간과하고 한 말이 된다. 만약 『종의 기원』이 출간되었을 때처럼 모든 상황이 우호적이었다면 왜 내가 1981년에 알칸소로 갔겠는가? 왜 오늘날까지도 극단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존재하는가? 이들에게는 다윈주의와 기독교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가는 것이며, 진화론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