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기술
카타리나 침머 지음 | 이마고
사회적으로 불안한 사람, 소심하고 고독한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르게 생각한다. 그들은 모임에서 중요한 사안에는 전혀 집중하지 않고 단지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비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진다. 그것은 그들을 매번 더 불안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황을 보다 현실적으로 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관찰이나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진짜 중요할 일에 집중한다. 자신들의 실제 능력보다 스스로를 덜 신뢰하는 경향이 있는 소심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객관적인 평가를 듣는 것이 도움이 되고 중요하므로 객관적인 피드백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무해한' 상황에서 당신에게 호감을 표한 사람에게 미소로 응답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시험하고, 그런 다음 자기 자신을 검토해 보라. 당신의 태도는 전혀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비슷한 것을 가능하면 자주 시험해본다면 당신은 용기를 주는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는 데 성공할 것이고, 점점 더 많은 자신감과 신뢰를 가지게 될 것이다.우리는 생각과 느낌을 검토할 때 그것을 실제 상황과 일치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임에서 누군가가 미소를 짓는다고 해서 그가 우리를 우습게 여긴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현실적인 생각은 우리가 이 같은 결론에 이르도록 이끌어 준다. 자가치료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려면 우리는 자신의 방법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도 보통 사람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약간 지루하게 여긴다고 해서 전혀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그런 일로 자신을 싫어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동료들이 자신을 진지하게 여기는지 아닌지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 당신이 처음부터 끔찍한 것만을 예상한다면 한 가지 일이 정말 잘못되었을 때 당신에게는 더욱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불유쾌한 체험들은 매일매일의 일상사에 속하는 것이다. 상황과 추측 가능한 결과를 보다 현실적으로 평가하는 데 익숙해져라. 자신의 생각만 가지고 현실의 상황을 그렇게 과장하지 않도록 노력하라.악몽에 시달리지만 않는다면 잠은 기분 좋은 행위이다. 그렇다면 잠은 원래 사람이 혼자서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교제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과 잠에 대한 생각은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들에게 잠든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사라지는 죽음과도 같은 것이다. 기이한 것은 그 문제에 대해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던 어떤 사람도 낮에 잠시 졸 때 혼자 있는 상태로 빠져드는 불안감을 느꼈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잠드는 것이고, 대부분은 어둠 속에서 잠들지 못하는 것에 대해 더 두려워한다.
밤에 혼자 있는 상태에서의 체험을 프랑스 작가 모파상처럼 제대로 묘사한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단편소설 「오를라(Horla)」에서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의 공포와 환상을 묘사했다. '오를라'는 '바깥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허구의 이름이다. 붙잡을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형태 없는 인물인 것이다. 고통을 받는 밤의 몽상가는 매일 밤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놓아둔 우유 컵이 다음날 아침이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존재를 확인한다.
밤이면 우리의 시계가 낮과는 다르게 째깍거린다는 것을 시간생물학자들은 입증했다. 그들은 하루의 시간이나 계절의 시간이 신진대사 과정, 잠과 맥박, 호흡, 두뇌의 흐름, 체온과 분비물, 그와 더불어 정신적인 체험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리듬에 따라 진행되는 이 과정은 빛과 어둠에 의해 조절된다.
보는 것과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사물이나 상황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가장 본질적인 행위이다.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균형감각을 위해 근육 수축을 위해 촉각과 다른 감각의 인지를 검토하고 수정하기 위해 시각을 사용한다. 어둠이 우리를 어느 정도 불안하고 무기력하게 만다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한몫 한다고 봐야 한다. 어둠 속에서는 똑바로 서는 동작이 훨씬 힘들고, 계속 선 자세로 있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어둠 속에서 더 피곤해진다. 그러므로 누워 있어야 균형체계가 모든 인지 기능들과 함께 가장 이상적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외부 인지가 점점 필요 없게 되고 불가능하게 되면 모르페우스(잠의 신)는 우리를 자신의 팔에 안고 데려간다. 우리는 혼자이다.
밤이면 여러 가지 두려움이 더해진다. 불면은 마치 저주와도 같이 우리를 덮친다. 불면이 계속될 때는 내버려졌다는 느낌이 나타난다. 더구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나 고독한 사람의 고통은 그런 상태가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심각해진다. 사람들은 위기에 처했다는 느낌을 받고 나 자신, 다시 말해 주체가 없는 상황에 내맡겨진다. 혼자 있을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서로 연결되어 있던 모든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우리는 고립된 존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은 태어난 첫날부터 다른 사람을 찾는다. 우리는 항상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지하지만 우리에게 저항하고 도전하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의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혼자 있는 것이 사람을 병들게 한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혼자 있는 것 역시 정상적인 '사회적' 상황이다. 그것은 과도기적인 경험으로 모든 인간의 삶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전에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사람들, 부모와 가족, 사회 공동체의 친절한 보호가 이 과정을 이겨내도록 우리를 준비시킨다. 과거에 보다 신뢰할 만한 보살핌을 받았다면 우리는 훨씬 더 자율적으로 되고, 혼자 있게 되는 다양한 상황에서 보다 잘 지낼 수 있다. 과거에 안전하게 보살핌을 받은 사람은 혼자 있게 되는 상황을 훨씬 쉽게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사람들이 내적으로 혼자 있는 상황이나 혼자 버려진 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는 명백한 결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사람이 애당초 혼자 있는 상황에 맞도록 창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인류학자와 인종학자들이 우리에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혼자 사는 것은 건강하게 만들지도 병들게 하지도 않으며, 강하게 하지도 약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에 반해 혼자 사는 것이 불러오는 부수적인 현상들, 예를 들면 사회적인 고립이나 활동의 부족, 열악한 주거 상황, 가난이나 허약함 그리고 자아확인·성공·사랑의 결핍 등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시간이라는 요소는 혼자 있는 우리의 체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간은 어떤 추상적인 시간이 아니라 계절이나 낮과 밤의 변화라는 지구상의 시간을 의미한다. 이미 암시한 것처럼 특정한 시간에 완전히 혼자 있는 상황은 특히 '약자'들에게 저항력을 약하게 만든다. 추위나 수면 부족이 우리를 병에 걸리기 쉽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난 50년 동안 시간생물학자들은 이 같은 연관관계를 입증했다. 1937년 학자들은 논문을 통해 특정한 신체 기능은 낮 동안 리듬에 따라 나누어져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인간의 신체는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처럼 작동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기능들은 하루라는 시간뿐 아니라 수천 가지 다른 요소들에 의존한다고 생각했다. 건강과 심리적인 평안에 미치는 시간 요소의 중대성을 아직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한 가지 사실에 완전히 집중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선 편안하고 긴장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명상이나 간단한 호흡훈련을 하거나 조용한 음악을 들어라. 이런 훈련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통제력을 얻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불안을 붙들어매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당신의 목표는 이렇게 훈련된 집중력을 여러 가지 상이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이용하는 것이다.
우선 의식적으로 일상적인, 보다 간단하게 극복해낼 수 있는 상황에서 집중력을 훈련해야 한다. 당신의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고 당신이 어떻게 비칠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도록 하라.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이 규칙을 따르게 되면 당신의 머릿속에서 '항상 주제에 머무는 것'은 다음 제2의 천성이 될 수 있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 자신에게 머물러 있지 않도록 노력하라. 그리고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생각지 마라. 당신은 이 훈련을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심지어는 몇 년 동안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서 불안감 없이 행동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해질 것이다. 당신 자신이나 집중력을 믿을 수 있으면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정말 흥미로워질 것이다.우리의 내적인 시간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은 내면의 시간을 항상 제대로 맞추기 위해서는 시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익숙한 시계가 없으면 시간은 다르게 간다. 가장 강력한 시간설정자(하루의 시간을 일정하게 나누기 위한 보조물을 시간생물학자들이 일컫는 말)는 빛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빛의 리듬 속에서 비슷하게 조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도 바다 속에 있는 개체들과 마찬가지로 이른 첫새벽에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우리가 빛을 다른 시간에 비치게 한다든가, 어둠을 더 일찍 혹은 더 늦게 찾아오게 함으로써 외부에 있는 이 시계를 바꾸어놓는다면 생물체의 내적인 시간은 다르게 맞춰진다.
빛과 어둠의 교차는 사람에게는 멜라토닌이라는 특별한 호르몬의 분비에 영향을 미치고, 그 호르몬은 다시 체온과 같은 다른 리듬에 영향을 준다. 인간은 밤과 겨울에 더 많은 멜라토닌을 생산한다. 멜라토닌이 수면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그 밖에도 이것은 젊어지게 하는 물질이다!) 잠을 조절하는 다른 일련의 '메커니즘'을 조절한다. 멜라토닌은 체온과 함께 기분에도 영향을 미쳐 많이 분비되면 우리 기분의 바로미터는 심하게 내려간다. 이 말은 사람이 자신의 시간생물학적인 리듬과 반대로 살면, 다시 말해 의미 있는 활동이나 사회적인 접촉의 결핍으로 인해 다른 시간에 깨어나거나 잠을 자면 그로 인해 기분이 분명히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분은 우울해지고, 생활은 점점 더 불규칙해진다. 빛이 질서를 부여하는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어느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우리, 특히 우리 눈의 망막 위에 바쳐야 한다.
'시간설정자', 즉 하루의 분할은 젊거나 나이 들었거나 혼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이 유일한 시간설정자는 아니다. 사람에게는 '사회적인 시계'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이나 작업 시간의 시작, 신문, 쓰레기 수거, 점심식사 약속, 라디오와 텔레비전 그리고 수천 가지 다른 요소들이 사회적인 시계 역할을 하며 우리는 여기에 무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을 맞춘다. 나이 들거나 병든 사람, 실업자와 고독한 사람들에게는 이 같은 일련의 사회적인 시계가 제 역할을 못할 수도 있다.불안은 고독하게 만들고, 혼자 있는 상태는 불안을 만든다. 불안을 홀로 내버려졌다는 느낌을 수반하고, 고독은 수천 가지 불안과 함께 찾아온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체험이 불안과 공포를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때의 체험이 성인으로서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리고 그것은 혼자 있는 상태에 대한 우리의 개인적인 체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해답은 우리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찾아야 한다. 신경과학자 조지프 레두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유형의 기억들이 있다. 그 중 두 가지 유형이 특히 흥미로운데 그는 이 두 가지를 명시적, 다시 말해 '설명하는' 기억과 '내재적' 기억 그러니까 '함께 포함된' 기억이라고 명명한다. 명시적인 기억은 우리가 기술할 수 있는 사건, 사물 그리고 감정적인 체험에 대해 의식된 기억을 저장한다.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함께 내재적 기억을 만들었고, 오늘날 유사한 상황에서 다시 일깨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는 기억이 아니라 우리 속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는 느낌, 감정, 정서 자체가 문제가 된다.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것을 다시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다시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레두에 따르면 내재된 무의식적 기억들이야말로 우리 속에 가장 집요하게 존속한다. 이 내재적 기억은 그때의 정서를 저장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이를 잃지 않는다. 만약 아이가 까무라칠 때까지 울더라도 엄마가 30분이 지나서야 온다면 아이에게 엄마의 존재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신경계가 너무 흥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기가 다시 진정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같은 체험이 반복되면 여기에 수반되는 감정들, 고통과 죽음의 불안 또한 저장된다. 이 아이가 어른이 되면 나중에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재적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정서의 기억은 남아 있다. 그 결과 그는 자기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신뢰감을 갖기 못하게 된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단지 혼자 있는 것은 슬프고 고통스럽다고만 그리고 위협적이라고만 느낀다. 왜냐하면 아기 때 겪은 이런 감정의 첫 번째 체험에서 실제로 그의 생명이 위협받았기 때문이다.혼자 있는 것에 대한 불안, 혼자 내버려진 것에 대한 불안은 우리의 원초적인 불안 중의 하나이다. 근대가 시작되기 전 혹은 데카르트의 생존 시기에는 혼자 있는 것이 오늘날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녔다. 어떤 사람은 감옥에 들어가거나 추방당함으로써 고독을 강요당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혼자 있겠다는 결단은 그의 내면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때의 고독은 종교적인 의미를 지녔다. 황야로 간 은둔자나 예언자, 그리고 기둥 위에서 고행한 전설적인 성인들을 생각해 보자. 모든 외형적인 것을 포기한 채 오로지 신에게 헌신하기 위해서였다. 이 사람들은 독신으로 살고 있는 오늘날의 '즉석 자아실현가'들과는 정반대였다. 그들은 항상 신과 함께 있었고, 신은 그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혼자가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모든 것이 개인의 경제적·법적·정치적 그리고 상징적 자율성 위 에 근거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최고의 자기 만족과 자아 도취 외에 '자기 실현'을 실현하기 위한 어려움들을 동시에 발견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자아' 혹은 '나'가 이전에는 결코 겪어보지 못할 정도로 해체되는 현상의 증인이다. 완전한 붕괴는 아니더라도 심리적인 장애, 우울증, 점점 더 잦아지는 청소년 폭력 행위, 수치심을 모르는 경제적 착취, 문화적 불쾌감 그리고 이미 나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 같은 부자유와 불평등의 새로운 형태는 간과될 수 없다.
개개인은 혼자서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 게다가 이 같은 요구에 가차없이 내맡겨진 새로운 세대가 아직 미성숙하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데에는 종종 모범적인 대상의 상실에 그 책임을 돌릴 수 있다. 모범적인 대상이란 어머니나 아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 혹은 참된 정치적·사회적 개념, 도덕 적이고 윤리적인 모델, 문화적 혹은 정치적 선구자들, 종교적인 소속감 등 사람들이 자신의 바탕을 그 위에 둘 수 있는 대상들이다. 지금까지 개개인에게 자신의 기원을 밝혀주었을 뿐 아니라 의지할 수 있고, 때로는 그것에서부터 벗어나거나 그것에 반대하기를 원했던 이 같은 상징적인 '상대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젊은이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지 않으며, 그들에게 때로는 반드시 필요한 '반대'조차 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청소년들은 정신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타자'를 추구하지 않는다. 지극히 예민한 청소년들은 우울증, 주의력 결핍 등의 증세를 겪거나 심한 경우 폭력적이 되기도 한다.
한편 어른들도 현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활동적이기를 요구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