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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기술

카타리나 침머 지음 | 이마고
1. 우리는 대립을 감행한다



혼자 사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




현대인은 예전에 비해 훨씬 자주 혼자 살아야 할 상황에 직면하게 되거나, 또 놀라울 정도로 자발적으로 혼자 살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대중 속에 섞여 살아가면서 예전보다 혼자라고 느끼는 경우도 많아졌고, 그를 뒷받침해 주거나 도와줄 수 있는 부모와 자녀, 동료, 기관이나 국가로부터 혼자 내버려졌다고 느낀다.

싱글들은 같은 연령대의 다른 사람들보다 자아실현과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훨씬 더 많이 노력하는 반면 질서와 의무 수행이나 안정성에는 적은 비중을 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명의 독신자 중 네 명만이 혼자 사는 것을 가족과 함께 사는 것 못지 않게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새로운 종인 독신에 대해 몰두하는 것은 우리 자신도 그들에게 속한다는, 달리 말해 자발적이거나 자의식을 가지고 택하지 않았음에도 우리 자신도 혼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불안은 우리가 최상의 사회에 속해 있고,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라는 것을 확인하면 훨씬 쉽게 이겨낼 수 있다. 혼자 있거나 혼자 내버려진다는 불안감이 우리 혼자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아프고 가난하고 나이 들고 버림받으며 살고 있고, 결국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누구에게 위로가 될 수 있겠는가?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혼자 있는 것을 무엇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만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과의 정신적인 대화에서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 예를 들면 철학자, 시인이나 예술가, 은둔자 그리고 그 외에 여러 부류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설문 조사와 개인적인 대화를 통해 만나본 결과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혼자 살고 있으며, 그 수는 지난 몇십 년 사이에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들은 인생의 절정기인 20∼30대의 사람들인 경우가 많지만 그들 모두가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은 아니다. 그렇다면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혼자 있는 것에 대한 갈망과 나란히 있다고 보아야 한다. '자기 스스로를 실현하려는' 사람, 스스로의 욕구에 따라 살려는 사람들도 자아실현 후에 자신을 기다릴 수도 있는 공허함을 두려워한다. 우리가 혼자 있고 고독할 때면 내면의 감정과 상처가 건드려지고, 그로 인해 특정한 연상작용과 기억 혹은 모호한 감정들이 일깨워진다. 우리가 즐겨 혼자 있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고 심지어 어떤 상황에서는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혼자'라고 해서 고독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혼자'라고 말하고, 그것으로 자신이 '고독하다'는 것을 표현하려 한다. "나는 정말로 혼자라고 느껴요."라고 말이다. 나이 든 사람이나 중병에 걸린 사람들이 사용하는 '혼자'라는 단어는 모든 내적인 생명이 죽어버리고 결국은 한 사람을 파멸시키는 진공에 의해 삼켜진다는 것을 뜻한다.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말이다. 이것은 모든 감정과 좌절의 저편에, 심지어는 절망의 저편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절망은 적어도 희망을 상상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고독의 심연과 망상, 그 속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느끼지 못한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혼자 있다는 감정 속에서 자신을 잃게 되면 공포감과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한 채 좌절감에 사로잡혀 칼이나 면도칼, 혹은 유리조각 등으로 자해하는 가장 극단적인 행위를 시도한다. 마침내 자기 자신으로부터 뭔가를 느끼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이 같은 육체적인 고통을 하나의 구원으로 느낀다. 그 같은 응급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는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자해행위를 많은 사람들에 대해 성급히 판단하는 것처럼 그들을 피학증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그것은 끝없이 고독하다는 느낌에서 나오는 도움과 사랑을 향한 절규일 것이다. 그 같은 순간에 신경계는 더 이상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신경학적으로 관찰하면 이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센서 상의 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인지체계 그리고 두뇌 속의 영역도 장애를 일으키고, 부분적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다시 말해 패러다임이 되어버린 '관계의 부재'로 취약해진 깨어지기 쉬운 신경계일까 아니면 냉담과 사랑의 부재가 점점 더 그들의 신경계를 좀먹고 그들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것일까?

개인을 가치 있게 평가하지 않는 사회, 다시 말해 삶의 방향과 가치가 와해된 사회에서 정체성의 결핍은 구조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인 연관성을 상실한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고독하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후에 많은 사람들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로워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혼자 사는 사람의 수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언급한 바가 있다. 그러나 고독한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울증이 있는 사람, 중환자나 장애를 지닌 사람, 그리고 노인에 대한 임상학적인 연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조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 우리가 고독을 두려워하는 이유



우리는 혼자 있는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




혼자 있을 수 있는, 혹은 혼자 있는 상태를 수준 높고 풍요롭게 체험하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능력을 습득해야 하고, 이 과정은 오래 걸린다. 그 과정은 유년기에 시작되며, 몇 가지 긍정적인 전제조건을 필요로 한다.

영국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도널드 W. 위니코트에 따르면 인간의 창조적인 자율성은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엄마와 맺는 관계와 함께 시작된다. 혼자 있는 상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미래의 능력을 위한 열쇠가 여기에 놓여 있다.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면 아기는 엄마가 자기를 눕혀놓고 방에서 나갈 때와 같이 잠시 동안 엄마와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가 사라지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아기는 엄마가 매번 돌아옴으로써 엄마를 신뢰할 수 있게 되고 이 경험을 자신의 기억 속에 저장한다. 그렇게 해서 아기는 신뢰감을 배우고, 엄마가 같은 공간에서 다른 일로 바쁠 때라도 짧은 시간 동안 혼자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혼자 있다는, 이처럼 짐짓 모순되는 능력은 한 사람의 존재 속에서 자신과 화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또한 하나의 관계를 맺거나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율성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말하자면 고독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것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다른 사람이 독점하게 만들지 않고, 자신도 다른 사람을 독점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소아심리학자 대니얼 N. 스턴은 "실제로 우리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생애의 최초 몇 년 동안은 혼자인 경우가 드물다. 갓난아기들은 때로는 실재 인물과 함께, 때로는 상상 속에서 불러낸 인물과 함께 늘 상호반응하고 있다. 발달은 두 인물 사이의 지속적인, 흔히 말하는 대화를 전제로 한다." 이렇게 해서 "정신적인 상태의 지속적이고 건강한 구성요소들이 형성되며, 나아가 "지속적인 성장과 형성 과정이 생겨나고, 기억의 적극적인 요소는 경험을 코드화하고, 통합하며 기억해내고, 이 같은 방법으로 태도를 결정하게 된다."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생각과 감정, 경험과 함께 하고, 혹은 우리가 작품을 통해 아는 작가나 예술가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혼자 있는 상태 속에서 우주를 창조하는 일이고, 하나의 고정된 상(像)이나 정적인 그림 같은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의 전개가 우리에게 달려 있는 살아 있는 것, 어떤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씨앗이 되는 유아기의 첫 몇 달과 몇 년 사이에 우리는 혼자 창조적으로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때 부족했던 것이 나중에 우리가 혼자 있는 상황에 이르면 결핍으로, 공허함으로 혹은 상실로 고통스럽게 와 닿는다.

그러나 만약 유아기가 불행했다 하더라도 사춘기에 부모가 성숙한 권위를 가지고 그들에게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면 청소년은 자신의 능력에 믿음을 갖게 된다. 그러면 그는 새롭고 알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잘 처신하고 혼자 내버려졌다고 느끼지 않게 된다.

3. 잠 못 이루는 자의 고독



밤에는 아무도 혼자 있기를 원치 않는다




악몽에 시달리지만 않는다면 잠은 기분 좋은 행위이다. 그렇다면 잠은 원래 사람이 혼자서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교제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과 잠에 대한 생각은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들에게 잠든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사라지는 죽음과도 같은 것이다. 기이한 것은 그 문제에 대해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던 어떤 사람도 낮에 잠시 졸 때 혼자 있는 상태로 빠져드는 불안감을 느꼈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잠드는 것이고, 대부분은 어둠 속에서 잠들지 못하는 것에 대해 더 두려워한다.

밤에 혼자 있는 상태에서의 체험을 프랑스 작가 모파상처럼 제대로 묘사한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단편소설 「오를라(Horla)」에서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의 공포와 환상을 묘사했다. '오를라'는 '바깥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허구의 이름이다. 붙잡을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형태 없는 인물인 것이다. 고통을 받는 밤의 몽상가는 매일 밤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놓아둔 우유 컵이 다음날 아침이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존재를 확인한다.

밤이면 우리의 시계가 낮과는 다르게 째깍거린다는 것을 시간생물학자들은 입증했다. 그들은 하루의 시간이나 계절의 시간이 신진대사 과정, 잠과 맥박, 호흡, 두뇌의 흐름, 체온과 분비물, 그와 더불어 정신적인 체험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리듬에 따라 진행되는 이 과정은 빛과 어둠에 의해 조절된다.

보는 것과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사물이나 상황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가장 본질적인 행위이다.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균형감각을 위해 근육 수축을 위해 촉각과 다른 감각의 인지를 검토하고 수정하기 위해 시각을 사용한다. 어둠이 우리를 어느 정도 불안하고 무기력하게 만다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한몫 한다고 봐야 한다. 어둠 속에서는 똑바로 서는 동작이 훨씬 힘들고, 계속 선 자세로 있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어둠 속에서 더 피곤해진다. 그러므로 누워 있어야 균형체계가 모든 인지 기능들과 함께 가장 이상적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외부 인지가 점점 필요 없게 되고 불가능하게 되면 모르페우스(잠의 신)는 우리를 자신의 팔에 안고 데려간다. 우리는 혼자이다.

밤이면 여러 가지 두려움이 더해진다. 불면은 마치 저주와도 같이 우리를 덮친다. 불면이 계속될 때는 내버려졌다는 느낌이 나타난다. 더구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나 고독한 사람의 고통은 그런 상태가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심각해진다. 사람들은 위기에 처했다는 느낌을 받고 나 자신, 다시 말해 주체가 없는 상황에 내맡겨진다. 혼자 있을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서로 연결되어 있던 모든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4. 혼자 사는 삶에 대한 학문적 답변들



혼자 있는 상태는 사람을 병들게 하는가?




우리는 고립된 존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은 태어난 첫날부터 다른 사람을 찾는다. 우리는 항상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지하지만 우리에게 저항하고 도전하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의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혼자 있는 것이 사람을 병들게 한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혼자 있는 것 역시 정상적인 '사회적' 상황이다. 그것은 과도기적인 경험으로 모든 인간의 삶 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전에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사람들, 부모와 가족, 사회 공동체의 친절한 보호가 이 과정을 이겨내도록 우리를 준비시킨다. 과거에 보다 신뢰할 만한 보살핌을 받았다면 우리는 훨씬 더 자율적으로 되고, 혼자 있게 되는 다양한 상황에서 보다 잘 지낼 수 있다. 과거에 안전하게 보살핌을 받은 사람은 혼자 있게 되는 상황을 훨씬 쉽게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사람들이 내적으로 혼자 있는 상황이나 혼자 버려진 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는 명백한 결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사람이 애당초 혼자 있는 상황에 맞도록 창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인류학자와 인종학자들이 우리에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혼자 사는 것은 건강하게 만들지도 병들게 하지도 않으며, 강하게 하지도 약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에 반해 혼자 사는 것이 불러오는 부수적인 현상들, 예를 들면 사회적인 고립이나 활동의 부족, 열악한 주거 상황, 가난이나 허약함 그리고 자아확인·성공·사랑의 결핍 등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시간이라는 요소는 혼자 있는 우리의 체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시간은 어떤 추상적인 시간이 아니라 계절이나 낮과 밤의 변화라는 지구상의 시간을 의미한다. 이미 암시한 것처럼 특정한 시간에 완전히 혼자 있는 상황은 특히 '약자'들에게 저항력을 약하게 만든다. 추위나 수면 부족이 우리를 병에 걸리기 쉽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난 50년 동안 시간생물학자들은 이 같은 연관관계를 입증했다. 1937년 학자들은 논문을 통해 특정한 신체 기능은 낮 동안 리듬에 따라 나누어져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인간의 신체는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처럼 작동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기능들은 하루라는 시간뿐 아니라 수천 가지 다른 요소들에 의존한다고 생각했다. 건강과 심리적인 평안에 미치는 시간 요소의 중대성을 아직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밤에는 자고 낮에는 깨어 있으라



우리의 내적인 시간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은 내면의 시간을 항상 제대로 맞추기 위해서는 시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익숙한 시계가 없으면 시간은 다르게 간다. 가장 강력한 시간설정자(하루의 시간을 일정하게 나누기 위한 보조물을 시간생물학자들이 일컫는 말)는 빛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빛의 리듬 속에서 비슷하게 조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도 바다 속에 있는 개체들과 마찬가지로 이른 첫새벽에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우리가 빛을 다른 시간에 비치게 한다든가, 어둠을 더 일찍 혹은 더 늦게 찾아오게 함으로써 외부에 있는 이 시계를 바꾸어놓는다면 생물체의 내적인 시간은 다르게 맞춰진다.

빛과 어둠의 교차는 사람에게는 멜라토닌이라는 특별한 호르몬의 분비에 영향을 미치고, 그 호르몬은 다시 체온과 같은 다른 리듬에 영향을 준다. 인간은 밤과 겨울에 더 많은 멜라토닌을 생산한다. 멜라토닌이 수면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그 밖에도 이것은 젊어지게 하는 물질이다!) 잠을 조절하는 다른 일련의 '메커니즘'을 조절한다. 멜라토닌은 체온과 함께 기분에도 영향을 미쳐 많이 분비되면 우리 기분의 바로미터는 심하게 내려간다. 이 말은 사람이 자신의 시간생물학적인 리듬과 반대로 살면, 다시 말해 의미 있는 활동이나 사회적인 접촉의 결핍으로 인해 다른 시간에 깨어나거나 잠을 자면 그로 인해 기분이 분명히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분은 우울해지고, 생활은 점점 더 불규칙해진다. 빛이 질서를 부여하는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어느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우리, 특히 우리 눈의 망막 위에 바쳐야 한다.

'시간설정자', 즉 하루의 분할은 젊거나 나이 들었거나 혼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이 유일한 시간설정자는 아니다. 사람에게는 '사회적인 시계'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이나 작업 시간의 시작, 신문, 쓰레기 수거, 점심식사 약속, 라디오와 텔레비전 그리고 수천 가지 다른 요소들이 사회적인 시계 역할을 하며 우리는 여기에 무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을 맞춘다. 나이 들거나 병든 사람, 실업자와 고독한 사람들에게는 이 같은 일련의 사회적인 시계가 제 역할을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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