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루트 실크로드
정수일 지음 | 효형출판사
돈황(敦煌)은 서역으로부터 동쪽으로 향하는 오아시스로의 남·북로가 합치는 곳으로, 오아시스로 동단의 인후라고 하였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로 돈황은 동서 문명이 만나는 곳, 동서 문물의 보고이다. 그리고 문명교류의 요지로 만든 장본인은 '돈황석굴'이다. 돈황석굴은 막고굴과 서천불동 및 안서유림굴을 총칭하는 것이고, 대표적인 것이 막고굴이다. 막고굴에 소장된 문화재 유물은 남북조시대부터 송대에 이르는 시기의 유불선의 경전, 각종 필사본 문서, 서역·인도·페르시아 등의 문자, 불화, 판화 등 다양하며, 이들은 모두 문명교류와 관련된다.실크로드 3대 간선 중 가장 오래된 초원로는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 초원지대를 동서로 횡단하는 동서문명교류의 통로이다. 1만여 년 전에 비너스상이 서유럽으로부터 초원로를 따라 동시베리아의 바이칼호 부근까지 전파된 것으로 보이고, 초기 농경문화에 속하는 아나우문화(3,500~3,000 B.C.)도 중앙아시아의 서남부에서 이 길을 거쳐 우즈베키스탄과 중국 접경지대까지 전해졌다. 또 기원전 1,000년기의 청동기시대에 이 동단 길에서 번성한 카라수크 문화는 중국의 은·상 문화와 교류하였다.
기원전 8세기경에 일어난 스키다이 문화도 초원로를 따라 몽골고원을 지나 중국 화북지방 일대까지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4세기말에 흉노는 '호한문화'라는 특유의 유목기마문화를 낳고 초원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며 이 문화를 서구에까지 유포시켰다.
흉노에 이어 6세기 경 몽골고원의 돌궐은 초원로를 따라 중국 화북지방과 견마무역을 하였고, 중앙아시아 소그디아나를 정복하였으며, 동로마제국과 사절교환도 이루어졌다. 13세기 몽골의 서방정벌로 인해 초원로는 전성기를 맞았으며, 16세기 후반에 와서는 시베리아로 진출하여 '모피의 길'이라 불릴 만큼 많은 문물교류가 이루어졌다.실크로드의 해로란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지중해에서 홍해와 아라비아해를 지나 인도양과 태평양 및 대서양에 이르는 광활한 해상에서 문명교류가 이루어진 바닷길을 가리킨다. 해로는 실크로드 개념이 확대되면서 2차대전 이후 남해로가 실크로드 3대 간선의 하나로 인정되었고, 서쪽 끝은 로마, 동쪽 끝은 중국의 동남해안으로 설정되었다. 포괄 해역은 지중해, 홍해, 아라비아해, 인도양, 중국 남해로 동서 항로의 길이는 약 15,000km로 추산된다.
남해로는 구대륙의 도서를 관통하는 한정적인 바닷길로서 이 길을 통한 문명교류는 구대륙에만 국한되었다. 이후 15세기부터는 남해로가 동서로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연장되어 '신대륙'까지 이어져 문물의 교류되었다.
해로의 한 구간인 동단은 인도양과 중국 남해 일원인데, 이 구간에 위치한 나라들은 일찍부터 항해에 종사하여 많은 해상교역의 흔적과 기록이 남아있다. 중국의 경우, 진나라 때부터 남해 교역을 하였으며, 전한 시대에는 남인도 동해안의 황지국까지 항해하면서 황금, 비단을 인도의 구슬, 유리와 물물교환하였다.
기원초기에는 로마 상선이 인도와 말레이 반도를 거쳐 인도차이나 반도 남단까지 와서 중국과 교역을 하고 사절도 파견했다. 중세에는 이 동단해로를 통해 동양의 특산물이 전해졌다.장안은 중국 최초의 계획도시로, 동서교류의 요지이다. 이곳에 있는 반파유적지에서는 서역과 관련 있는 채도, 호인상의 토용 등이 출토되었다. 장안을 오아시스로의 동단으로 간주하는데, 이것은 전한의 장건 사행을 비롯해 각 왕조 때마다 많은 서역 행각이 이곳에서 출발하고, 서역과 관련된 사변들이 이곳에서 일어났으며, 당나라 시대에는 동서교류의 종착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서역교류 뿐 아니라 서역인들이 상주하여 호악, 호복, 호식 등의 서역문물을 전파했다. 불교, 경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이슬람교 등 서역의 여러 종교들도 이곳에 유입된 후 각지로 교세를 넓혀 갔다.유럽의 '대항해시대'의 개막과 함께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문화는 짓밟히고 약탈대상지로 변하였다. 아메리카는 유럽의 첫 식민지로 변하였고, 그것은 그곳으로 해로가 개척된 결과였다. 1492년 콜럼버스 선단이 아메리카 대륙 바하마 제도에 도착한 이래 이 해로의 서단로를 따라 아메리카 대륙을 항해하였다. 또 마젤란의 세계주항을 계기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해로의 동단로가 개척됨으로써 아메리카대륙은 지리적으로 해로의 동·서항 종착지로 되었고, 이 대륙을 고리로 환지구적 문명교류 통로로서의 실크로드가 완결되게 된다.
이탈리아 출신의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1499~1504년 사이 세 번 중남미 일대를 탐험하여 이곳이 신세계라고 발표하였고, 그 결과 이 신대륙을 아메리고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America)'라고 명명하였다. 해로의 개척으로 아메리카 대륙은 새로 범지구적 문명교류권에 편입되어 서구의 선진 기술을 도입하게 되었으나, 전통문화의 파괴나 인명피해, 보물의 약탈 등 식민화의 후환이 초래되었다.이슬람문명은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성장한 문명이다. 이 문명은 여러 민족과 나라들의 고유 문화가 이슬람이란 하나의 용광로에서 만들어진 다원적 문명이다. 이슬람은 초기(7~8세기)의 군사적 정복활동으로 시작하여 상인, 이주민, 여행자들에 의해 각지로 파급되었고, 오아시스 육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해로를 통해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연해에 전파되었다. 100여 년 간에 걸친 이슬람군의 정복활동은 7세기 정통 칼리파시대, 그리고 8세기 전반 우마위야조시대의 파고를 타고 추진되었다. 동·서 정벌지는 인더스강 유역에서 이베리아 반도까지이다. 3대륙을 망라한 이슬람군의 정복활동은 이슬람 세계의 출현과 이슬람문명 전파라는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이슬람문명의 광범위한 전파는 범세계적인 문명공동체인 이슬람 문명권을 형성하였다. 또한 이슬람 문명권은 이슬람의 발상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활모양을 이루면서 권내 성원들은 지정학적으로 서로 연계되어 있다.24. 실크로드의 완결, 아메리카 대륙기원전 3,000년 경부터 북방 유라시아 지역의 유목기마민족은 자신의 문명을 싹틔웠고, 다원적인 문명을 누리게 되었다. 특히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에 이르는 동안 유목기마민족들의 활동은 동서남북 간의 문물교류를 활발하게 했다.
기원전 8세기부터 1세기 사이에 활동한 스키타이는 페르시아문명을 비롯한 고대 오리엔트문명과 그리스 고전문명을 흡수·융화하여 고유의 유목기마민족문명을 싹틔운 후 동방에 전하였고, 동방무역로를 개척하여 동서 간의 무역을 활성화시켰다.
흉노의 후예인 훈족은 동남유럽에 강한 훈제국을 세웠고, 훈족의 유럽 유입으로 인해 유럽민족의 대이동이 유발되어 로마제국이 붕괴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유라시아 역사의 전개와 동서 문명교류에 영향을 미쳤는데 중국의 농경문화와 자신의 기마문화를 융화하여 '호한문화(胡漢文化)'를 형성한 후 유럽에 전했다.고대 메소포타미아는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로 나뉘며, 바빌로니아는 북부 아카드와 남부 수메르로 나뉜다. 수메르에서는 역사상 가장 오랜(기원전 3000년 경) 도시문명이 발생하였는데, 대표적 유적은 우르왕묘이다. 기원전 19세기에 바빌론 제1왕조가 세워지면서 이 지역의 민족이동이 일어나 여러 민족의 융합문화가 형성된다.
기원전 9세기 앗시리아의 통일제국은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앗시리아를 계승한 신바빌로니아는 기원전 6세기에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에게 멸망하고, 기원전 4세기 후반에 와서는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정벌군에게 점령되고 말았다. 이로써 고대 메소포타미아문명은 맥이 끊기고 그 요람지는 여러 세력으로 나뉘었다.
메소포타미아문명은 바빌론의 공중정원과 바벨탑, 이슈타르문, 함무라비 법전, 원통 인장 등 풍부한 문화유산을 남겨놓았다.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육로와 해로의 서단을 둘러싼 지역에서 번성한 메소포타미아문명은 일찍부터 이 길을 따라 문명 요소들을 주변에 전파하고 또 다른 문명 요소들을 받아들였다.8. 이슬람문명의 저력9. 빛나는 유적·유물들을 남긴 페르시아문명10. 문명의 요람이자 온상이었던 중앙아시아7. 가장 오랜 도시문명의 발상지, 고대 메소포타미아일본은 오래 전부터 해로를 통해 대륙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타문물과 서로 교류해왔다. 일본에 있는 많은 서역 물건은 대부분 오아시스 육로와 해로를 통해 유입된 것이다. 육로의 경우 중국에 전파된 후 한반도를 거쳤거나, 아니면 견당사나 중국 상인들과의 교역에 의해 전해진 것이다. 해로의 경우 중세 이전에는 주로 한반도나 중국을 거쳤다. 그 후 1543년 포르투갈 상선이 일본에 다다른 이래 일본은 서구인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1549년 예수회 선교사의 상륙으로 기독교 뿐 아니라 많은 서구문물도 유입되었다.
태평양을 인류가 확인한 것은 500년도 채 안 되었다. 1513년 스페인의 남미 지배자 발보아가 이 대양을 직접 보고는 남해라 이름하였다가 1521년 마젤란이 태평양을 '평화의 바다'라고 한 데서 '태평양'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인류가 태평양을 알기 이전부터 원주민들의 끊임없는 거주 이동과 문화 이동도 있었다.
마젤란 항해 이후 2세기 동안 태평양은 스페인의 활동 무대였다. 16세기 중남미 지역과 더불어 필리핀 제도까지 점령하여 유럽 최초의 광대한 식민제국을 건설하였다. 스페인은 '대범선무역'을 했고, 이 시기 중국과 중남미 간 대범선무역이 진행된 항로를 '태평양의 비단길'이라 한다. 이러한 바닷길을 통해 16세기 이래 아시아와 아메리카, 구대륙과 신대륙 간에 교역이 진행되어 문명교류의 통로 역할을 하게된다. 이때부터 해로를 포함한 실크로드는 환지구적 문명교류 통로로 기능하게 되었다.고대부터 한반도와 북방 유라시아나 서역 및 동남아시아 간에는 일련의 교류가 있음이 빗살무늬토기, 농경문화 등으로 밝혀지고 있다. 또한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서역으로부터도 육·해로를 통해 여러 가지 문물이 유입되고 상호 교류가 행해져 사실상 문명교류의 통로로서 실크로드가 한반도까지 이어졌음을 입증하고 있다.
북방 초원로의 동쪽 끝인 한반도로의 길은 두 갈래인데, 하나는 동시베리아 초원지대를 지나 대흥안령과 소흥안령에서 남하해 송화강 유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오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몽골 초원지대에서 동남향으로 내몽골과 요녕성 일원을 지나 한반도로 이어지는 길이다.
오아시스 육로도 중국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한반도까지 이어졌다. 중국 연나라 화폐인 명도전이 한반도 경내까지 널려 있는데, 교역의 상징인 화폐의 출토지를 연결한 길이 바로 오아시스로의 동단이라 할 수 있다. 이 길을 따라 서역문물이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전해졌고, 고려·조선시대 금속활자 기술이 중국에 알려지기도 했다.
해로의 동단에 해당하는 한·중 해로도 일찍이 고조선시대부터 개통되어 교류통로 역할을 했고, 삼국시대 이후에는 중국뿐 아니라 아랍을 비롯한 서역과의 직·간접 교역통로로 이용되었다. 근세 이후엔 구미열강들이 '개항'의 미명 하에 해로의 동단을 한반도 침투의 통로로 삼았다.동서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한 페르시아는 수많은 흥망성쇠를 거듭했으며, 그 가운데 페르시아 문명은 다원적인 융합문명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고대 오리엔트의 전역을 지배한 페르시아 통일제국인 아케메네스조(550~330 B.C.) 왕조는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비롯해 이집트문명, 인더스문명 등 주변 문명을 수용하여 상당히 발달된 페르시아문명을 창조하였다.
페르시아문명은 아케메네스조 이후 창조된 페르시아 고유의 문명을 말하지만, 사실은 메소포타미아문명과 비견되는 상당히 발달된 문명이 존재하였다. 기원전 5000년 경의 신석기시대에는 독특한 채도문화가 출현하였고, 청동기도 제작되었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서 번성한 페르시아문명은 실크로드의 육·해로를 타고 동·서양으로 전파되었다. 아케메네스조 시대 창출된 조로아스터교(일명 배화교)는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중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파르티아조는 중국 한왕조와 로마제국 간의 비단무역을 조절하는 중계자 역할을 했으며, 사산조 특유의 대칭문양이나 유리, 모직물은 한반도까지 전해졌다.11. 그리스풍의 불교 미술, 간다라 미술17. 분주하고 역동적인 길, 초원로18. 바닷길, 그 광활한 해상에서의 문명교류19. 바그다드와 비견되던 국제도시, 장안20. 몽골이 단행한 대규모의 서방 정벌21. 세 번에 걸친 기독교의 중국 전파22. 실크로드와 한반도역사적으로 중앙아시아는 대국들의 각축장이었고, 유목민과 농경민의 접촉·이동 경로였으며, 세계 3대 원정(알렉산드로스의 동방정벌, 이슬람군의 동방정벌, 몽골군의 서방정벌)의 교전장이기도 해 무수한 나라와 여러 문명(오리엔트문명, 페르시아문명, 그리스·로마문명, 헬레니즘문화, 이슬람문명, 불교문명, 힌두문명, 한문명, 유목기마민족문명)들이 출몰하고 어울린 곳이다. 중앙아시아는 오아시스 육로와 초원로의 중단에서 동서남북으로 뻗은 실크로드의 십자로와 중추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인류 문명교류사에서 유대와 요충지 역할을 했다. 중앙아시아는 동서교역의 중개지, 동서문물의 집산지였고, 문명의 단순한 경유지가 아니라 문명의 요람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오아시스로와 초원로의 연변에서 여러 문명들의 교류상을 말해주는 성벽이나 공예품, 미술품 등의 유물들이 많이 발견된다.몽골은 40여 년 간(1219~60) 3차례에 걸쳐 대규모 서방정벌을 단행하여 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4대 칸국을 세움으로써 13세기 후반 세계적인 몽골대제국이 되었다. 1차 서방정벌(1219~25)은 '징기스칸 서정'이라 하며, 2차 서방정벌은 (1235~44)은 '바투 서정'이라 한다. 3차 정벌은(1253~60) '훌레구 서정'이라 한다.
몽골의 서방정벌은 동서 문명교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유라시아에 대제국이 세워지고 동서남북에 4대 칸국이 출현함으로써 통일적인 권력구조 하에서 동서 문명의 융합과 교류가 촉진되었다. 또 이러한 구조 하에서 인위적 장애가 제거되어 교통이 크게 발달했다. 이러한 교통의 발달은 역참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교통의 발달로 동서 문물의 순조로운 교류가 있어 4대 발명품을 비롯한 중국의 선진 문물이 직접 유럽에 전해졌고, 천문학, 의학, 건축,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서구문물이 유입되어 동서교류가 활발해졌다.
왕대연의 『도이지략(島夷志略)』이나 북경에 설치된 회회사천대의 천구의 등은 서방정벌에 의한 동서교류 증진과 실크로드의 발달을 실증하는 대표적인 문헌과 유물이다.기독교의 중국전파는 세 번에 걸쳐 있었다. 첫 번째는 당대 기독교 일파인 네스토리우스파(경교)가 페르시아를 거쳐 오아시스로를 따라 장안 등지에 유입된 것이다. 두 번째 계기는 원대에 가톨릭의 프란체스코파가 새로이 유입되면서 기독교가 흥기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몽골과 기독교 국가들은 이슬람 세력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기독교를 매개로 한 상호접근과 제휴를 기대했다. 선교사들은 바닷길과 오아시스로를 통해 원대를 오갔다.
세 번째 계기는 명말 청초 여러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16세기 중엽 서세동점 속에서 중국에 오기 시작한 서방 선교사들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여 1581년부터 1712년까지 예수회 소속 선교사는 약 250여 명이나 되었다. 이들 선교사에 의해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주국에 전파되었고, 서학도 소개되었다. 또한 중국의 문물, 전통사상이 유럽에 전해졌다. 선교사들은 대부분 해로를 통해 왕래했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와 '중화제국신도(中華帝國新圖)' 등이 이러한 기독교 전파의 실증적 유물이다.23. 실크로드와 일본| 해로의 동단 태평양1. 환지구적 문명교류의 통로, 실크로드2. 대항해시대의 개막6. 다원적인 문명을 이룬 유목기마민족지금으로부터 약 4만 년 전에 출현한 현생 인류는 후기 구석기시대(35,000~12,000년 전)에 들어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