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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색깔

이진 지음 | 개마고원
노무현은 대통령 후보가 되고 난 뒤 참모들을 모두 모아놓은 자리에서 "이제부터는 나와의 싸움이다. 너희들도 몸에 붙어 있는 타성과 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말했다. 구태의연하고 낡은 사고와 싸우라는 '주문'이었다. 별 문제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지나치기 쉬운 잘못된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무총리 서리로 지명되었던 장상 씨나 장대환 씨 모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과거의 몇 가지 행적들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것이 그 예이다. 별 고민 없이 해온 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들이 결국 훗날 자신의 발목을 잡는 주적이 된다는 것이다. 공직자들의 도덕성에 대한 기준과 요구가 유래 없이 높아져 있는 지금, 몸에 배어 있는 타성을 각 개인이 저마다 버리는 것이야말로 사회 변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의 주문을 참모들은 얼마나 소화해 내고 있을까? 구태의연한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것을 인지하고 있을 때 가능하다. 내부로부터 '참모 다지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노무현은 당 내 사람들로부터 적잖은 충고와 조언, 요구들을 들어왔다. 그가 후보가 될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부터 노 캠프 안에서는 '곧 인사 조치가 있을 것이다. 자리 재배치가 있을 것이다'는 소문에 대한 저마다의 불안감이 꽤 컸었는데 결국엔 거의 전원이 당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것을 두고 민주당 직원들은 "노무현 군단이 점령군처럼 들어왔다."며 불쾌해 했다.



실제로 노무현 캠프는 민주당으로 들어가면서 한동안 업무 파악과 역할 분담이 제대로 안 되는 등 자리매김을 놓고 난항을 겪었다. 노무현과 그의 비서실을 두고 "5월 한달 동안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언론의 비판은 그들의 이런 자리매김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 부분에 대한 노무현의 변은 이렇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그 사람들의 역량을 평가하고 이 사람이다, 아직까지도 편하다 하는 것이거든요. 더 보충하면 되지 굳이 왜 쫓아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자꾸 쫓으라고 해요. 신뢰가 쌓인 사람은 그 사람이 흠이 없으면 쓸 수 있는 것을 용납해주어야지 나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다 자르라고 그러면 앞으로 누가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하겠습니까? 공정하게 하면 되는 거죠."



캠프 경영 문제 못지않게 노무현이 심각하게 부닥친 문제는 '당 장악 능력'이다. 우리 나라는 지금 3김식 카리스마형 리더십에서 실용적 리더십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시기에 있다. 노무현이 주장하는 네트워크형 리더십 또는 디지털 리더십이 그런 것들이지만 변화는 항상 격렬한 혼란의 시기를 거쳐 이루어진다. 반노, 비노, 영입, 분당, 신당 창당, 탈당 등 마치 꽁꽁 얽힌 실타래처럼 풀 길이 없어 보이는 민주당이고 보면 노무현의 디지털 리더십이 자리를 잡는 데에는 적잖은 세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을 만난 뒤 시간이 흐르면서 내 머릿속에 가장 남는 그의 말은 "대통령이 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음에도 몇 가지 안 되는 일, 그러나 획을 긋는 그 몇 가지로 기억된다는 것이었다. 노무현이 하고 싶은 일은 국민통합이다. 그리고 좀더 많은 개인의 행복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적 판을 벌여주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을 하기 위해 그가 넘어가야 할 산은 첩첩산중이다. 마지막 인터뷰 말미에 그에게 물었다.



"지금 현재 후보님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이 뭔가요?" 그러자 노무현은 예의 그 촌스러운 웃음을 허허허 하고 웃었다. 그런 뒤에 "사람!" 했다. 그러곤 침묵했다. "투신. 투신할 사람", 그렇게 한마디 뱉고는 다시 말이 끊겼다. 그러고는 뜻밖에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내가 아주 외로울 거라고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생각이 외로운 사람은 인생도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장기표 씨 반대했지요."

8·8 보궐선거에서 장기표 씨가 영등포 을구 출마 공천권을 신청했을 때 이야기였다. 노무현에게 역시 가장 큰 장애는 학맥, 인맥이었던 듯도 했다. 최종적으로 장기표 씨의 공천이 확정된 날, 노무현은 침묵한 채 후보실에 밤늦도록 남아 있었다. 어렵게 띄엄띄엄 말을 하는 노무현의 표정에는 공천 과정에서 그가 했던 고민들의 그림자가 역력하게 나타났다.



"아직 기존의 정치판에서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신청하고 있다. 기존의 거물들을 내세워 이름을 들먹거리니까 올 만한 사람들도 다 안 오지 않느냐. 왜 그들을 발굴해서 적극적으로 국민을 설득하려 해보지 않는가, 했습니다. 이번엔 승리하는 것이 좀 비관적이라고 봤기 때문에 2004년에 가더라도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인물을 키우자, 했던 것입니다."



"선거 한 번에 인물은 쑥쑥 큽니다. 상향식 공천이 일을 전부 망쳐놨다고 덮어 버렸지만 하향식 공천 중에 나쁜 것이 지방자치 질서 속에서 성장하는 사람의 길을 막아 버린다는 겁니다. 나는 지방 의원들이 올라오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 따라, 진보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지방의원들의 성장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진보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나한테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수평적 리더십이 됐든 네트워크형 리더십이 됐든 이 새로운 리더십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고백에서 보듯 벽에 부닥친 것처럼 보인다. 리더십이란 그 과정을 어떤 방식으로 가져가든 이견이 있는 사람들을 조화시켜 하나로 묶어세우고 이끌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당내 갈등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대통령 타령이냐, 대통령이 되려면 당내 지도력부터 보여줘라."(「한겨레21」 9월 26일자)는 식의 공박이 나오게도 생겼다. 그러나 '민주적'이란 것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얻어지는 것이라던가. 우리는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권위적이고, 통제적인, 이를테면 군사문화식의 리더십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에 맞춰 그러한 마인드를 바꿔나가는 과정을 낯설고 불편해 하는 것 아닐까? 유시민의 표현대로 "죽거나 혹은 바꾸거나"임에도 말이다. 그러나 매사에 '압축 성장'을 당연시 해온 우리의 마인드에 비춰볼 때 노무현에게 남은 시간은 그 새로운 리더십을 인식시키기에 충분한 걸까, 아니면 턱없이 모자란 걸까?2. 노풍연가 주인공 권양숙 스토리



"여보, 나도 도울게."3. 망원경으로 본 노무현



다양성으로부터의 도피 부추기는 정치판 유감패러다임의 변화, 그 자그마한 일상의 뒤척임들사람이 첫인상을 바꾸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며, 어떤 사람에겐 평생 가는 일이 되기도 한다. 70년대에 국제적 구설수에 올랐던 한 경제인은 30년이 지난 작금에 자신의 이미지를 쇄신해보려고 했더니 한 PR펌으로부터 20만 달러가 들 것이라는 견적을 받기도 했다.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노무현이 보여준 모습은 서민과 진보적 지식인들에게는 신선하고 강렬했지만 그 강렬함은 보수우파들에겐 극단적인 인물로 보여지게 한 면이 있다. 소외된 자들에 대한 배려를 하겠다고 '벼르는' 것부터 기득권자들을 긴장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 불안감과 노무현이 빨갱이라는 그들의 단정은 통하는 점이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노무현이 빨갱이는 아닌 것 같다. 1980년대에 운동권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진보적인 철학과 경제 학습을 했고, 그들 중 적잖은 이들이 이제는 노무현의 참모 노릇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를 빨갱이라고 여길 만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 노무현의 정치 비전이나 그의 세계관을 듣고 있으면 중도주의에 가깝다.



노무현 본인은 '빨갱이'란 공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그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노동자들 편 들었으니까 그렇지요. 그리고 그 말에 대해서는 별로 유감이 없어요. 그러나 그것이 냉정하고 균형 잡힌 평가라고 보진 않습니다. 자기들이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적대감을 표현하는 거니까 과장되어 있다, 지나치다라고 생각을 하긴 하지만 별로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튄다, 거짓말한다, 교만하다, 까분다, 독불장군이다, 이런 험담들이 억울하고 분하지요. 이건 아주 교묘하고 악의적인 것입니다."



노무현은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분명히 제가 추구하는 것과 그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 사이에는 논리적인 인과관계는 없지만 정서적으로 반감을 갖는 것이 근거가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적대적 이해관계도 별로 없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요. 내가 노동자들에게 가서 단결해라, 각성해라, 권익을 쟁취해야 한다 하고 권리 투쟁을 부추기고 해대니까 당연히 그렇게 느끼는 거지요. '노무현은 왜 노동자 편 드느냐, 밉다' 그렇게 말하는 건 좋은데 '노무현은 완전히 불안하다, 튄다, 독불장군이다, 자질 부족이다' 그거야말로 진짜 악의적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이 노동자 편의 안전지대에 있다고도 볼 수 없다. 그는 적대적인 사람들로부터 빨갱이라 누명 씌워져도 괜찮을 만큼 전적으로 노동자 편이지도 않다. 지난해 대우차 부평 공장을 방문했다가 몇몇 노동자들로부터 받은 계란 세례가 그렇고, 삼성차 살리기 운동에 관한 그의 입장이 노동자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노무현은 좌파에서 보기에는 우파 같고, 우파에서 보기에는 좌파 같은 면이 분명히 있다. 노무현은 그것을 균형의 시각으로 설명한다. 양쪽에서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중간 다리가 되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말을 곧잘 해왔고, 현장 정치를 하겠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노무현은 "내가 인생을 살고 있는 이유는 개개인의 행복을 최대한 보장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노사 가리지 않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사회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책 분석을 도와주는 한 학자는 양자를 모두 거두려하지 말고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득표에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아무래도 노무현은 서민 쪽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으니까 그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분명히 노동자 편이라는 선을 그어주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개인이 최대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제도적 판을 깨끗하게 만들어줌으로써 자본가나 노동자가 부담 없이 재미있게 살게 하겠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자신을 빨갱이라 하는 것에 이의가 없다. 다만 자본가와 노동자, 그 두 측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화합의 장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현 정치판에만 이의가 많은 사람이다.노무현이 양천구에서 유세를 하고 있을 때였다. 더운 햇볕을 피해 중년의 아주머니 세 명이 골목길 모퉁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 여고생들처럼 웃고 이야기하느라 노무현이 연설하는 줄도 모른다. 슬몃 다가가 정부에 바라는 게 뭐냐고 물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줌마들은 각자의 바람을 쏟아낸다. "노인복지 문제, 노인들이 갈 곳 있게 하는 거", "깨끗한 정치", "진짜 자기를 희생할 줄 알고 아픈 부분을 감싸줄 수 있는 사람", "아파트 가격 안정 좀 해주는 거", "맞벌이, 탁아문제 개선해 주길…."



시큰둥한 모습으로 앉아있던 세 아주머니의 평범한 바람은 두고두고 되새겨보아도 의미심장하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일상의 잔잔한 변화이다. 체감할 수 있는 삶의 질이 좀더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들어보면 큰 꿈도 아닌데 정치인들이 그 서민들의 등을 참 못 긁어준다.



한국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이제 우리들은 '먹고 살 만하다'. 여유가 좀 생겼다. 붉은악마에 대한 소위 사회과학적 고찰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 핵심은 결국 '재미'였다. 노무현 말대로 "나는 버스 타고 리프팅 하러 간다." 할 수 있는 여유, 내가 삶의 주체라는 독립성,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형태의 삶을 인정해주겠다는 자유방임성, 그리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낙천적 삶의 태도는 정치권에 대한 바람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많은 유권자들이 네거티브 캠페인에 넌더리를 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변화하는 패러다임에 노무현은 얼마나 부합할까? "현실에 없는 정치인처럼 보여지는 가장 현실에 맞는 정치인"이 노무현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국민경선 때에 「경향신문」이 "노풍, 태백산맥 넘었다."고 했을 만큼 폭발적인 힘을 얻었던 것은 그가 2002년 현재 한국인들이 원하는 현실 정치에 가장 부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노무현은 이회창, 정몽준에 이어 인기도가 세 번째로 내려앉아 있다. '태백산맥 넘던 노풍' 시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여러 가지 변인이 있겠지만 내가 그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당의 대권주자가 되는 순간부터 그만이 가지고 있던 색깔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정치권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대권주자로서의 모습을 갖추라."는 주문에 그만 자기 색깔이 탈색되어 버린 꼴이 되었다.



그가 애초에 원했던 것은 국민과 수평적 관계를 이루고 있는 현장에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고, 그러면서 가슴속엔 '이룰 수 없는 이상'을 품고 사는 대통령이었다. 은행원들이 5일제 근무에 들어간 날에 노무현도 대통령 되면 5일제 근무를 하고 싶은지 물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답했다. "대통령은 직무 중에 위기관리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통의 근무시간 관념하고는 다를 수 있지요. 그러나 대통령이 어느 날 보따리 싸 가지고 휴가를 떠나기도 하고, 그러다 급한 일이 생기면 휴양지에서 허겁지겁 달려오기도 하고 이런 모습이 좋은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조금 속도가 늦어 보이고 느슨해 보이는 지도자의 모습이 그 사회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안도감이거든요. 안정감, '지금 안전하다, 편안하다' 이겁니다. 말하자면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있다, 그런 뜻이 되거든요."



청남대를 개방할 생각이 있는가도 물어봤다. 청남대는 충주에 있는 대통령 별장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 지역 주민들과의 마찰이 대단히 많았던 곳이기도 하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내가 가까이에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권력의 크기가 아주 달라 보이지도 않고, 위세가 엄청나게 보이지 않고…. 그래서 청남대 같은 곳은 아무도 못 들어가는 곳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갈 수 있는 곳에 있고, 이런 것이지요. 때때로 편안한 모습,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회, 그래서 대통령이 자기 직무의 한계를 깔끔하게 정리한 상태에서 일상의 일들을 느슨하게 또박또박 해나가는 모습이 필요하죠."



한국의 변화하는 패러다임이란 사실 거창하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사회, 부정과 부패가 없고, 내가 남에게, 남이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회, 그러면서 낙오자가 없도록 서로 조금씩 도우면서 살 수 있는 사회, 양천구 아주머니들이 가족들을 위해 저녁 식탁에 올릴 반찬 몇 가지를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거기에 대통령이 있어 주면 되는 것 아닐까?4. 노무현의 세 가지 고민



'죽기보다 싫은' DJ 돕기투신할 사람이 필요하다노무현이 대통령 후보가 되자마자 직면한 매우 힘든 문제는 DJ와의 관계, 「조선일보」와의 대립, 마지막은 참모진에 관한 것이다. 우선 DJ와 관계를 살펴보자.



6·13 지방선거, 8·8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가장 주된 원인은 DJ의 세 아들의 부정부패였다. 한나라당은 노무현을 겨냥하지 않고 오로지 DJ 자식들을 놓고 '부정부패를 척결하자'고 웅변했고, 이는 아주 적절했다. 노무현이 아무리 링에 올라와 자신과 겨루자고 해도 한나라당으로서는 부정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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