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정치 반란 노사모
노혜경 지음 | 개마고원
1. 노사모가 걸어온 길 - '정치혐오'의 진흙탕에서 피운 '정치사랑'의 연꽃2000년 4월 13일, 신혼여행을 마치고 밤늦게 김포공항에 도착한 새신랑이 있었다. 그는 부인과 함께 택시를 잡아타자마자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노무현 어떻게 됐어요?" 운전기사는 "아, 노무현이요. 힘든 것 같던데요"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안양 신혼집에 들어오자마자 텔레비전을 켰다. 각 방송사마다 제16대 총선 개표 상황을 내보내고 있었다. 지역마다 돌아가며 개표 상황을 알려주는데 부산 북 강서 을구 중간 개표 결과가 나왔다. 노무현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에게 크게 뒤지고 있었다. 반전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는 크게 낙담했다. 그가 알기로 노 후보는 선거기간 내내 실시된 12번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늘 부동의 1위였다. 이번만은 당선 가능성이 엿보였다. 노 후보의 당선을 결혼선물로 달라고 빌기까지 했다. 그런데 악령같은 지역감정 바이러스가 막판 기승을 부린 것이다.
12시가 넘어 더 이상 텔레비전을 볼 필요가 없었다. 노무현 낙선! 지역구도의 철벽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는 이 같은 상황을 다음날 "울분이 소낙비처럼 쏟아지고 있다."라는 헤드라인 기사로 뽑아 전했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 가운데는 부산 시민들조차도 가슴 아파하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오늘만큼 내가 부산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내 주위 사람들의 그 고리타분한 지역감정이 이렇게나 답답할 수가 없다. 노무현 의원님. 전 다신 부산에서 나오지 말라고는 말씀드리기 싫어요. 한번만 더 나와 주세요. 그래서 지금 느끼는 이 더러운 기분. 그 때 확 씻어버릴 수 있게. 한 번만 더 부산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세요.(부산 사람)"
네티즌들에게 노무현의 좌절과 시련은 단지 그에게만 국한되는 사안이 아니었다. 어떤 논리와 이성도 통하지 않는 지역감정의 철벽을 그대로 두고서는 한국 정치와 사회의 발전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고 누구나 한마디씩 하지만, 정작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여야 정치권은 지역감정을 나무라면서도 적극적으로 이를 악용해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이 같은 현실에 맞서 위험을 무릅쓰고 민주당 깃발로 부산지역에 출마했고, 떨어졌다. 혈혈단신으로 세 번이나 온몸을 던진 바보였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친 이 바보짓에 네티즌들은 오히려 희망을 발견해내고 있었다.
바보를 따르는 '바보들의 행진'이들에게 노무현은 '진정한 영웅'이었다. 그는 "한국 정치의 질곡과 모순과 담판을 벌인 사람"이기에 그 누구보다 이 문제 해결에 자격을 갖고 있었다. 네티즌들은 그에게 위로를 보내면서 다시 일어설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노무현이 바보라면 자신들도 기꺼이 바보가 될 각오가 되어 있다고. 이는 바보의 외로운 행보에 동참하는 '바보들의 행진'이라 할 만했지만 그들 가운데 누구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사실 노무현으로서는 이 세 번째의 좌절 앞에서 정치를 계속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던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이 혼자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주위에 말없이 그를 지켜보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 노무현은 자신의 진솔한 심정을 담은 답변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 "노무현 인사드립니다. 참 할 말이 많은데, 무슨 말씀부터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저에게 과분한 애정과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신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합니다. 이 아픔 잊는 데는 시간이 약이겠지요. 또 털고 일어나야지요.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저는 이 나라와 부산을 사랑합니다. 우리 또 함께 힘을 모아 나갑시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이 노무현의 글은 이젠 거꾸로 네티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들은 우리 정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확인 앞에서 안도하고 환호했다. 그리고 그를 기꺼이 지지하고 도와 주겠다는 각오를 했다.
국내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 탄생모두들 게시판을 통해 '바보 노무현'과 함께 다시 시작하자고 외쳤다. 몇몇 네티즌들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광주에서 인터넷 꽃배달 서비스업체를 하고 있는 '늙은 여우(이정기)'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노무현의 홈페이지에 쏟아지는 글을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분노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마음을 통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는 인터넷에서라도 노무현의 지지자들이 모이길 바랐다. 4월 15일 새벽에 '노무현 팬클럽'을 제안하고 회원을 모집했다. 회원가입을 원하는 네티즌들이 줄을 이었다. 노사모는 이때를 한국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이 탄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팬클럽은 폭주하는 네티즌들의 방문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다문(황의완)'이 서버와 도메인을 제공하고 '런컴(장영세)'이 게시판 통합용 홈페이지를 제작하면서 정비가 되었다. 유례가 없는 인터넷상의 정치인 팬클럽으로 출발한 노사모가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이런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민주적인 토론과 절차를 통한 의사결정 방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회원들은 지역별로 소모임을 만들고,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갖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렇게 모인 '의견'을 '현실화'하는 데는 일부 네티즌들의 헌신적인 자세가 큰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2000년 5월 7일 전국 준비모임지역별 팬클럽이 지부 형태로 꾸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전국 모임에 대한 논의가 제기되었다. 대전에서 준비모임을 갖자는 의견이 채택됨에 따라 이때부터 대전은 노사모 행사 단골 지역이 되었다. 전국 각 지역의 중간 지점이라는 지리적 이유도 있었지만, 지역 갈등이 심한 나라의 중간 지대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기에 노사모의 행사지로 적격이었다. 5월 7일 대전시 고속터미널 앞 레스토랑 하야로비로 전국 지역 노사모 회원들 40여 명이 바쁜 일상을 뒤로 하고 달려왔다. 온라인상의 '노무현 신드롬'이 오프라인에서도 그 실체를 드러내는 자리였다. 10대 여고생부터 40대 후반 장년층까지 각계각층의 사람이 모인 이 자리에서 그들은 노무현의 열성팬이 되기까지의 심정을 밝히며 모임의 활성화 방안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즉석에서 '드래거(장용호)'가 사회자로 선출되었다. 팬클럽 명칭은 준비 모임 전부터 온라인 상에서의 열띤 토론 주제였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노무현 유권자 연대',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지역 통합 연대'등 다양한 명칭이 제시되었다.
대전 준비모임에서는 그 동안 논의되었던 명칭들 가운데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채택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때부터 '노사모'로 축약된 이름이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홈페이지 구축에 대한 필요성과 함께 도메인 이름은 세 가지가 거론되었다. 'babo.or.kr', 'nomuhyun.org', 'nosamo.org'가 그것으로, 그 가운데 'nomuhyun.org'를 메인 이름으로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자리에서 전국 조직으로서 '노무현 팬클럽'의 향후 운영에 대한 기본 설계도가 그려졌고, 창립총회 개최가 합의됐다.
감격의 창립총회, "노사모, 나는 너를 희망이라 부른다"드디어 노사모의 정식 출범을 알리는 창립총회가 6월 6일 대전에서 열렸다. 장소는 한남대 정문 앞에 있는 '넥서스'라는 PC방이었다. 인터넷 모임이라는 성격을 잘 반영해서 결정된 노사모다운 장소 선정이었다. 서울과 부산,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김밥과 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달려온 100여 명(당시 전국 회원은 500여 명)의 회원들로 50평 남짓한 행사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댔다. 모두들 감회 어린 표정들이었다. 행사장 한 쪽에선 「오마이뉴스」기자가 창립총회 내용을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기사화했다. 한국 정치사상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창립총회였기에 어느 네티즌들에게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이날 노사모는 노무현을 지지하며 그와 함께 동서화합과 참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기로 결의했다. 총회는 오후 4시가 넘어서 마무리되었다. 모두들 노무현과 함께라면 철벽같은 지역구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다. 창립총회장 사인첩에 누군가 이렇게 썼다. "노사모, 나는 너를 희망이라 부른다."
국민 경선 대책위원회 결성노사모가 정치인 팬클럽으로 가장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인 것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 경선제였다. 노사모는 민주당이 땅에 떨어진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국민 경선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직과 자금이 부족한 노무현이 대선 후보로 선출될 수 있는 길은 어찌 보면 국민 경선제뿐이었다. 드디어 2001년 12월 22일 민주당 국민 경선제 도입이 확정되었다. 노사모는 쾌재를 불렀다. 노무현을 대선 후보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노사모는 민주당 국민 경선을 일종의 '노무현의 게릴라 콘서트'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다. 국민 경선을 국민 모두가 즐겁게 참여하는 축제의 장으로 보고, 노무현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전략을 세웠다. 노사모의 활약상은 극성으로 비쳐지기도 했고, 그래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뒤에서 누군가 자금 지원을 해줘 특급호텔에서 숙식한다는 음해도 있었다. 선거관리위 직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회원들은 십시일반 정신에 따라 먹는 만큼, 자는 만큼 각자 경비부담을 했다. 그들은 국민 경선제를 노사모 협찬 노짱 주연의 16부작 '국민통합, 민주개혁' 드라마로 만들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박을 터뜨렸다. 4월 27일 민주당 전당대회를 겸한 서울 경선에서 노짱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이다.
노사모의 향후 진로노사모의 존재와 활약상은 민주당 국민 경선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언론에서 노사모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노사모가 노무현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만드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음을 확인하면서 돈과 조직이 좌우하는 우리 정치판에 자발적인 정치인 팬클럽이 일으킨 새로운 흐름에 주목했다. 선거법과 관련된 노사모 활동은 제약을 받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오프라인상의 활동을 선거법 위반으로 경고한 바 있다. 일부 언론과 야당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현재 노사모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대목은 노사모의 정체성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노사모의 자리매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 중이다. 팬클럽 형태를 유지하되 시민 단체들의 공명선거운동이나 선거참여유권자운동과 같은 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데 대체적인 합의가 되어 있다. 노사모는 인터넷상의 정치활동에 대한 선거법 규정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사이버 세계에 맞는 바람직한 선거법 개정을 위한 세미나도 가질 계획이다. 여기에서는 인터넷 정치활동과 선거법 개정, 정치인 팬클럽에 대한 방향 정립이 논의될 예정이다. 노무현의 대선 승리야말로 노사모의 최대 역점 사안임은 공지의 사실이다. 과연 국내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통해 새로운 정치혁명을 일궈내며 성과를 올릴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2. 노사모의 정체성 - 노무현? 없어도 된다, 시스템의 정치!2000년 초여름,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가 전국 규모로 결성되었다. 이 팬클럽은 불과 2년 만에 폭발적인 주목을 받으며, 느리지만 확실하게 정치풍토의 변화를 불러올 태풍의 핵으로 자리 잡았다. 노사모에 쏟아지는 관심은 엄청났지만 노사모는 극히 최근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정체성을 외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자기규정 작업을 거의 해오지 않았다.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그러나 최근 노사모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강렬한 규정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노사모 현상' 자체가 사회적 재정의를 필요로 하는 정치적 현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사모는 노무현의 팬클럽이라는 특수한 입지를 넘어서서 장차 우리 사회의 정치참여의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낼 한 원형으로 제시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후원회나 사조직 등의 형태로 정치인과 관련을 맺은 모임들은 많이 있었으나, 노사모에는 기존의 정치인 관련 단체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우선, 노사모는 이익을 매개로 한 집단이 아니다. 정치인에 대한 열광적 지지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비정치적 요소가 훨씬 강한 집단이며, 이념적 집단이 아닌 점도 독특한 특성이다. 조직 자체의 비조직성과 개방성 또한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특성은, 노사모 자신들이 노사모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 시선의 독특함은 두 개의 슬로건으로 나타낼 수 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라는 말과 '노무현? 없어도 된다, 시스템의 정치!'라는 슬로건이다. 이 두 슬로건은 노사모의 정신이 기존의 정치적 결사들과는 다른 가치관 위에 있음을 알려준다. 우선은 노사모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기존의 정치적 모임의 구성원들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노사모 사람들은 노무현이라는 정치가에 종속된 사람들이 아니라 '시민 정치가'로서 '직업 정치가'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위탁한 사람들이라는 자각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음은, 노사모를 움직이는 시스템 자체가 여타 정치적 결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대개의 정치결사가 원스프링 방식의 침대처럼 한 인자의 움직임이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활동이 엄격히 통제되는 것과는 달리, 노사모는 포켓스프링 방식의 침대처럼 개별 회원들의 활동은 노사모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다 함께 하나의 침대를 구성하는 대등한 자격의 존재들이다. 이런 차이가 노사모를 정치인의 사조직과 구별할 수 있는 큰 특성이다.
느슨하고 자율적인 연대의 정신노무현이라는 코드와 화합이라는 코드, 그리고 노사모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코드 가운데 어느 하나의 공통점만 있어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이러한 느슨한 울타리는 기존의 정치적 결사의 대표적인 형태인 확고한 신념과 이념의 공유라든가 보스에 대한 충성도 같은 기준과는 엉뚱할 정도로 다르다. 이것은 회원 개개인이 스스로의 생각대로 행동할 자유를 보장하되 스스로가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며, 그 '일'의 핵심적 의미는 바로 "국민의 올바른 정치적 관심을 이끌어내고 참여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일"이다. 노사모 회원인 네가 열정을 지니고 하려고 하는 그 일이 노사모 회원인 내가 보기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 함께 하겠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네 시도가 나빠서라기보다는 내 여건이 네 일에 동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네가 노사모의 근본정신을 위협하는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닌 한, 너에게는 모든 일을 할 자유가 있다. 적극적으로 하라.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노사모가 말하는 자유롭고 느슨한 연대의 정신이다. 국민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 일사불란하게 통치하려는 낡은 정치는 이미 다원화되고 국가라는 울타리를 넘어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는 새로운 국민들을 통제하지도 설득하지도 못한다. 그러한 정치의 결정적 특징은, 낡은 정치적 레토릭의 강요를 통해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조직적으로 양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재앙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참여의 정신이, 잘 짜여진 정체성의 습득에 의거한 정치적인 이념의 학습과 토론보다 서로의 다름에 대한 무한한 관용을 통해 더 잘 성취되고 있다는 것이 노사모라는 아주 특별한 정치적 공동체의 실험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점이다.
새로운 시스템의 실현노사모가 노무현과 함께 국민통합을 이루자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노사모의 내부통합을 이루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통합의 방법은 전례가 없는 방법이었다. 개인의 자율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느슨하게 연대한다. 대단히 쉬운 말 같지만, 각자 스스로의 판단과 결단으로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하는 개인들, 소위 민주사회의 주권자들은 어떻게 해야 서로를 괴롭히지 않으면서 자기 노력을 관철시킬 수 있을까? 노사모의 실험은 바로 이러한 공존과 재구성을 실현시키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바쳐져 있다. 노사모를 노사모 답게 만드는 가장 특정적인 요소는 바로 노사모를 움직이는 시스템이라 할 만하다. '일몽'이란 아이디를 쓰는 한 노사모 회원은 이를 "시민정신의 사관학교"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