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차이
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 이프
1. 프로토콜 - 내 불감증에는 이유가 있다
저렇게 좋은 남편이 어디 또 있니?힐데가르트를 만나보라고 추천한 사람은 내가 잘 아는 남자였다. 그녀에 대해 들은 얘기는 남편이 최근 정교수로 임명되었다는 것, 딸만 둘이고 전업주부로 아이들만 열심히 키우고 살다가 몇 달 전 교육대학에 등록을 하고 정식으로 공부를 시작했다는 게 전부였다.
별다른 고민 없이 그녀는 인문계 학교에 진학했지만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이 딸린 여관에 일손이 부족해지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월급 같은 건 전혀 없었고, 하다못해 용돈 한푼 받아 본 적이 없었지만 사업체로 등록되어 있는 만큼 연말이면 꼬박꼬박 각자 앞으로 세금고지서가 날아오곤 했다. 아버지로서는 시집 가면 그만일 딸들이니 학교를 보낼 이유도, 노후 연금을 들어줄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엄마와 자기들에게 툭하면 손찌검이었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에 찾아왔다가 추근대는 손님으로부터 그녀를 구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알게 된 남편과의 결혼 후 4년 정도 지났을 무렵, 둘째가 태어난 직후부터는 조금씩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어도 남들 눈에는 무척 행복하고 이상적인 가정을 꾸려 온 셈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너는 참 알뜰살뜰 열심히 사는 주부가 되었구나. 남편 올 시간 맞춰 저녁 준비해 놓고 물끄러미 앉아 시계만 쳐다보며, 남편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여자를 보게 됐어요. 다들 비슷할 거예요. 증세가 언제 시작되느냐가 다를 뿐이지. 그러다 또 잊어버리죠.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거려니…. 그러다 또 그 생각에 빠지게 되죠. 그래, 도대체 너는 누구냐. 집안 청소 끝내 놓고 멍하게 앉아서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너는 대체 누구냐.
마음을 잡아보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고, 그러던 어느 날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남편한테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요. 그래, 하루 종일 집에 처박혀 있는 나한테 뭐 좋은 일이 있고 새로울 일이 있겠어! 온종일 집안에 갇혀 가정부 노릇하고 살고 있는데, 그걸 몰라 매일같이 똑같이 하루 종일 뭐 했냐고 물어보는지. 나더러 무슨 대답을 하라고 매일같이 억장을 무너뜨리냐고 악을 썼어요."
그녀는 이런 절망에서 벗어날 생각으로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지만 남편이 연구소 교수직으로 임명되어 이사를 하게 됨에 따라 이 시도도 무산되어 버렸다. 생활은 한결 윤택해졌지만 그녀는 누구누구의 마누라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손수 이룩한 어떤 것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넌 정말 남편 복이 터지는 애다. 저런 남편이 어디 또 있니? 세상에 뭘 더 바랄 게 있어." 시집간 언니들은 모두 집안일을 돕는 힐데가르트의 남편을 보며 그녀를 부러워했다. 혼자서 별 생각을 다해보았지만 현실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집안일은 끝없이 쌓이게 마련이고, 아이들 챙기는 일도 한이 없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점점 더 대립적으로 되었다.
그녀는 한 심리치료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그녀에게 닥친 난관이 자신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한 문제가 아니며, 아주 자연스런 과정일 따름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힐데가르트는 무사히 시험을 치를 수 있었고 결과는 크게 나쁘지 않았으며, 그 동안 그녀는 교육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녀는 모든 게 어렵고 자신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도 해소되고 편안해졌다. 차츰 자의식이 뚜렷해지면서 남편과의 생활에서 주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사랑의 길을 함께 걷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삶과 가족의 문제도 낙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남편과의 성생활에서 오르가즘도 느끼고 있다.
이 시대 여성들이 겪고 있는 갈등을 이야기하면 일언지하 말문을 막아버리는 논조가 있다. 그게 다 배불러서 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중산층 여자들은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온갖 혜택을 누리고 한편으로는 또 가난한 여성을 착취하면서도 고마워하기는커녕 사사건건 말썽만 일으키는 철면피들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나온 힐데가르트는 전형적인 중산층 여성으로 그런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경우이다. 힐데가르트의 경우 계층적 특권은 남편이 허용하는 한에서 함께 누릴 수 있다. 남자가 원할 경우 여자는 잘 지낼 수 있고, 남자가 원할 경우 여자는 생활의 기반조차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힐데가르트의 아버지는 딸들을 제 소유물로 여기고 그들의 노동을 착취하며,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지만 이 상황에서 발을 빼는 순간, 딸들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운명이다. 청소부로 나서는 일 말고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을 딸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다. 많은 여성이 이 폭발적 힘을 가슴속 혹은 뱃속에 품은 채 끙끙거리며 살고 있다. 이러한 생명력을 폭발시키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의 조성. 이는 무엇보다 시급한 여성운동의 과제 중 하나이다. 여성들이 겪고 있는 갈등과 고통이 절대로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몹시 중대한 사회적 안건임을 깨닫고 이를 공공연히 드러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 다른 별에알렉산드라는 능력 있고 야무지며 직업적으로도 성공한 편이다. 게다가 통상적인 남자들의 기준으로도 그녀는 아주 예쁘고 매력적이다.
"여태까지 사귄 남자들은 다 그랬어.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더 이상 함께 자고 싶은 생각이 없어. 아무 소리 안 하고, 내 문제를 분명하게 얘기하지 않는 건 물론 나의 비겁함이기도 하지. 그렇지만 사실은 두려운 거야. 관계가 끝나 버리고 혼자 남는 것, 직장 동료들로부터 겪어야 할 귀찮은 일들. 그걸 전부 감당할 자신이 없으니까 웬만하면 적당히 넘어가며 관계를 지속하는 쪽을 택하는 거지. 어쩌면 우리 관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도 이런 식으로 갈등을 드러내지 않는 그 점일 거야. 아무것도 달라질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나는 직장에서도 늘 부드럽고 착한 여자 행세를 하며 입지를 지켜온 셈이거든. 그게 내 주특기여서 이렇게 버티는 거야. 사람들이 모인 곳에 이 남자랑 함께 가는 경우 나는 문득 그런 식의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해. 내 생각에 그건 생존의 전략이야. 바깥에서 탈없이 지낼 수 있는 비결인 거지. 여자가 억척스러워 보이면 그에 마땅한 징벌이 따르잖아. 여자가 아닌 거야. 무성의 존재, 중성적인 존재로들 대접을 받는 거야. 그럴 경우 버텨내기가 훨씬 힘들어져."
"남자랑 함께 사는 동안 여자는 남자를 행복하게 해줘야 한대." 얼마 전에는 남자가 이런 말을 했는데 성관계와 다른 생활에서도 다 그렇다는 뜻이다. 알렉산드라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한다. 자신도 남자친구에게 정직한 게 아니지만 그도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그녀는 짐작을 한다. 이런 미묘한 감정을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편안히 얘기할 수가 없다.
"결국 여자와 남자는 감각구조가 서로 그렇게 다른 모양이야. 더욱이 심리구조는 닮은 구석이 전혀 없고 말이야. 나는 이 남자 입술이 조금만 떨려도 금세 알아채거든. 숨소리 하나 달라지는 것도 다 특별한 신호이고, 그의 눈빛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 남자 몸짓과 태도가 모두 중요해. 표정 하나만 봐도 이 남자가 뭘 원하는지 바로 알아챈단 말이야. 그리고 또 뭘 원하는지 물어보곤 해. 그런데 늘 그건 일방적이지. 이 남자는 그런 데 도통 관심이 없어. 다른 남자도 그건 다 똑같지 뭐. 그런 게 도무지 안 보이는 걸. 그런 식의 감각이 전혀 없는 거야. 그러니까 여자들은 가슴앓이를 하다가 결론을 내리는 거지. 남자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알렉산드라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지만 다른 여자들이 겪는 것과 비슷한 문제를 똑같이 안고 있다. 그녀의 경우를 보면 자신의 일을 갖는 건 중요하지만 이를 통해서 반드시 성해방이 되는 건 아닌 셈이다. 함께 사는 남자가 그 낯설고 이상한 남성적 매너에 길들여진 사람인 경우, 게다가 우리 자신이 통상적인 '여성스러움'의 기준을 벗어나지 못할 경우는 아무리 좋은 직업을 가졌다 해도 별로 소용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또 두드러진 점은 억척스럽게 일을 해내는 여성들이 직장에서 겪는 수난이다. 알렉산드라는 그런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상사와 남자친구 앞에서 절대로 뻣뻣하게 굴지 않는다. 어떤 분야에서든 다소곳하게 지내지 않는 경우, 더욱이 성공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여자라면 그 값을 톡톡히 치러야 한다. 남자들이 받는 것과 똑같은 방식의 중압을 견뎌야 할 뿐 아니라 여자라서 겪는 부당한 대우도 함께 소화해야 한다. 여자와 남자의 이중역할을 힘든 쪽으로 동시에 모두 맡아야 하는 것이다.
알렉산드라는 전문 분야의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남자와의 관계와 성문제는 곧 여자 역할을 얼마나 잘 하느냐 못 하느냐로 축약되고 만다. 특히 성문제는 남자가 남자 노릇을 하고, 여자는 여자 노릇을 해야 하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알렉산드라에게 성문제는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그녀는 속수무책 모든 것을 내주고 만다. 모든 상황을 똑바로 인식하지만 남자들에게 그런 얘기를 털어놓을 용기가 없다. 그녀 자신이 결코 내키지 않는 '여자 노릇'. 그렇지만 어느 하나도 규범을 벗어나지 못하는 무력감, 이러한 이율배반 사이에서 그녀는 거의 마비상태에 빠지고 만다. 직장에서는 스스로를 기만하는 쪽으로 내숭을 떨고, 그렇게 길들어 버린 '여성스런' 태도는 집에서 이중의 부담으로 그녀를 짓누르는 것이다. 사회 혹은 생활에서 부딪히는 남자와의 문제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알렉산드라 및 다른 여성들의 태도는 자기 스스로를 규정하는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녀가 남자들에게 의존적인 까닭은 남자라는 존재가 그녀에게 그토록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직도 '누구누구의 여자친구'일 따름이지, 그녀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여전히 '안사람' 노릇을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별것도 아닌 얘긴데, 들어줄 사람이 그렇게 없어이름가르트는 전형적인 가정주부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흔 둘이고, 남편은 잘 나가는 엔지니어였다. 원래 그녀는 간호사였는데 그 일은 일찍 그만두었고, 남편이 학업을 마치는 동안 뒷바라지를 하느라 10년 가량 식당에 나가서 일을 거들며 생활비를 충당하였다. 그 동안 아이 셋이 자연 유산되고, 하나는 인공 유산을 했으며, 대신에 나의 아이를 넷이나 입양해 키우면서 15년째 가사에만 전념하고 있다.
이름가르트는 더할 나위 없이 집안을 깔끔하게 꾸며놓고 아이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며 남편과도 좋은 관계였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글쎄요. 언제부턴가 옛날 같지가 않은 거야. 아무리 일을 해도 끝이 안 나. 전에는 안 그랬는데 내가 바지런하고 깔끔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도대체 일할 맛이 안 나는 거라. 그리고 사사건건 서러워서 자꾸 울음이 복받치는 거라. 별일도 아닌데 눈물부터 나. 전에는 내가 살림밖에는 모르는 여자였는데 지금은 어디 훌쩍 떠나서 혼자 있고 싶은 생각뿐이야.
마침 여성피정의 집이 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봤더니 한번 와서 있어 보라고…. 그 얘기를 듣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일단 떠나자는 생각이 들어 그냥 가보았어요. 사실은 벌써 2년 전쯤부터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여기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오고 난 다음부터 뭐라도 좋으니 하루 한두 시간쯤 어디 가서 일 좀 했으면 싶더라고요. 나는 사실 간호사였어요. 물론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어떻게 그 일 좀 다시 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져서 적십자에 찾아가 어떻게 보충교육을 좀 받고, 하루 한두 시간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없을까. 나도 이제 어떻게 좀 사회생활을 해봤으면, 조금 다른 분위기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아무튼 남편한테 그 얘기를 본격적으로 꺼냈어요. 내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하느냐며 계속 만류하던 그가 내가 계속 이야기를 하자 결국에는 자기가 남편이라서 내가 일하러 가는 걸 금지할 권리가 있대요. 꼼짝 말고 집에만 있으라는 거예요!
나는 솔직히 말해서 그 여성해방인지 뭔지 그런 데 관심 없었어요. 내가 뭐 어디 갇혀 사는 게 아니었으니까 어디서 해방될 것도 전혀 없었지. 그렇지만 그게 내 문제가 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요. 많이 생각했어요. 이대로 참을 수는 없다. 아니 어떻게 자기 아내가 일하러 나갔다는데 그걸 못하게 금할 수가 있어? 나는 오랫동안 공부를 하는 남편을 대신해 생활비를 벌고 집안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생활했어요. 그의 친구들이 숙제를 한다는 명목으로 모여 단 하나뿐이었던 방에서 늦게까지 가지 않았을 때조차도 말이예요."
여성피정의 집에서 한 주일을 머물고 돌아온 후 그녀는 자신의 결심을 다시 굳혔다. 부잣집 마나님 노릇만 하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내가 행복해지는 일이면 기꺼이 할 참이에요."
1974년 가을 이름가르트는 노동부의 재교육 과정을 수료했고, 아이들의 양육을 책임지고 싶어하는 그녀 자신의 고집을 지키며, 그리고 부인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는 남편과 아이들의 무관심과 싸우면서 살고 있다. 우리가 만났다 헤어진 뒤 몇 주 후부터 이름가르트는 일자리를 구해서 나가기 시작했다. 먹자골목 한쪽에서 감자튀김을 파는 일인데 오후에 4시간씩 매일 나가야 한다.
"첫 날은 다리며, 허리며 안 아픈 데가 없었지. 그래도 다음날 아침 6시에 눈이 딱 떠지는 거예요. 서둘러야 오전에 집안일 끝내고 나갈 수 있잖아요. 남편한테는 아무 소리 안 했어요. 말해 봤자 좋은 소리 못 들을 테니까……. 우연히 친구 집에 들렀다가 당장 결심하고 시작했어요. 우리 친구는 애를 열 하나를 낳고는 계속해서 뚱뚱해지는데 정말 눈뜨고 보기가 민망해요. 다만 몇 년이라도 집구석에 퍼지고 앉아 그 꼴이 되고 싶지는 않더라구요. 내 발로 꿋꿋이 일어서겠어! 그리고 나도 내 손으로 번 돈을 만지고 싶어요."
이름가르트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가정주부 네 명 중 셋은 남편의 구두를 닦아놓으며, 네 명 중 셋은 남편이 자기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독일 여성 네 명 중 셋은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설문조사에 응답을 한다. 그에 비해서 여성피정의 집에서 추정하는 바로는 독일 여성 열 명 중 최소 한 명은 심신의 피로가 한계상황에 이른 상태라 한다.
이름가르트가 겪는 위기상황과 그에 따른 병적 증세는 아주 전형적인 사례이다. 반 데어 펠데 교수의 전문적 용어로는 이를 '가정주부 증후군'이라 부르며, 가정주부로 지내는 동안 쌓인 불만과 우리 사화에서 여자 노릇을 하는 사이 누적된 분노가 이렇게 표출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과로 때문에 신체적으로 지쳐버린 상태에서 이렇게 된다고 한다.
이름가르트의 경우 그녀의 남편은 아주 예외적인 상황 말고는 권력을 남용하는 적도 별로 없다. 그리고 행여 남편이 그런다 해도 이름가르트는 그걸 삭여버리는 쪽으로 길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여태껏 모든 정열을 남편이 출세하는 쪽으로만 쏟아부었다. 그 결과 남편을 떼어놓고는 자신의 일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눈곱만큼이라도 남편에게 부담이 돌아가는 일은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 대해 아무리 정확한 판단이 서고 자신의 문제를 똑바로 볼 수가 있다 하여도 결국은 혼자의 넋두리 쪽으로 물러서고 만다. 그녀 스스로가 그렇게 말하듯 이름가르트는 자신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며 겪어야 할 복잡한 문제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차라리 그 길에서 물러나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고 마는 것이다.
여성피정의 집으로 무작정 떠났던 시절. 이름가르트가 당면한 위기는 다른 여자들의 경우 아주 끔찍한 사고를 저지르는 상황과 비슷한 수위였다. 이렇게 끔찍한 기사가 실리곤 하는 걸 우린 가끔씩 다음날 신문에서 발견하곤 한다. "아이들을 살해한 후 자살을 택한 여인. 남편은 말을 잊고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경찰에 진술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부족한 게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