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50년
존 브록만 지음 | 생각의나무
앞으로 50년
존 브록만 엮음/이한음 옮김
생각의나무/2002년 10월/428쪽/17,500원
1. 이론적으로 본 문제
우주론의 문제들 : 우리는 혼자인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앞으로 10년 내에 우주 탐사선이 화성으로 가서 그곳 표면을 연구한 뒤 시료를 갖고 지구로 귀환할 것이다. 로봇 우주 탐사선을 보내 화성의 거대한 달인 타이탄의 대기와 목성의 달인 유로파의 얼음으로 뒤덮인 바다 같은 우리 태양계의 다른 지역을 탐사한다는 더 장기적인 계획들도 있다. 이런 탐사선들 중 하나가 우리 태양계 행성들 중 어느 곳에서 설령 가장 단순한 형태의 생명체라고 해도 그것이 독자적으로 탄생했다는 것을 밝혀낸다면 그것은 생명체가 은하계와 그 너머에 널리 퍼져 있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 태양이 은하수에 있는 수십억 개의 별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른 별을 도는 행성들 중에 우리가 화성에서 찾아낼지 모를 무언가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낯선 형태의 생명체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그런 행성들에 우리가 지성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살 수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로서는 불가지론이 이 문제에서 유일하게 합리적인 입장일 것이다. 우리는 지능을 가진 외계인이 있을지 여부를 말할 수 있을 만큼 생명의 기원을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
지적 외계 생명체로부터 오는 신호를 포착하려는 노력은 미확인 비행 물체 등을 다루는 별난 단체들이 그 주제에 개입한 탓에 매우 어려운 편이었다. 물론 우리는 그 전달된 신호가 ‘의식을 가진’ 무엇인가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그 신호가 도달하기 오래 전에 멸종한 종이 남긴 인공물에서 온 것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 지구처럼 복잡하고 난해한 생물권을 가진 행성들을 거느린 빛나는 다른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저 멀리 있는 별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우리 앞에는 많은 시간이 놓여 있다. 우리는 10만 광년 거리에 펼쳐져 있는 은하계 전체를 우리가 최초의 영장류로부터 진화했다고 하는 기간보다 더 짧은 기간에 푸르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태양이 죽으려면 50억 년은 더 있어야 한다. 그것은 현재 생물권을 만들어내는 데 걸린 기간보다 5배는 더 긴 시간이다. 그 영겁에 가까운 기간에는 더 큰 질적 도약들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인위적으로 이끌어 나간다면 미래의 변화는 훨씬 더 빠르게, 문화적이나 역사적 시간 단위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생명체가 스스로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할지 예측할 수 없다. 생명체는 소멸할 수도 있고,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지배력을 획득할 수도 있다. 후자는 과학 소설의 영역이지만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과학의 그늘
오늘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른바 지구촌 문화를 만들어낸 과학과 기술 그리고 기업의 강력한 동맹이다. 우리는 실제로 과학 지식의 적용과 자본주의를 추진하는 팽창 엔진을 통해 부와 상품을 생산함으로써 모든 인류를 가난과 굶주림에서 해방시킬 수단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만사가 예측한 대로 잘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가난과 굶주림 속에 사는 사람들이 많으며, 오히려 이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농지와 천연 자원은 점점 더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 토양과 바다와 대기오염은 지구의 모든 생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민족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은 상품과 용역의 장벽 없는 세계 무역을 강요하는 국제 기구들의 등장으로 약해지고 있다. 경이로울 정도로 팽창한 우리의 정보 기술은 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심지어 정부를 무력화시킬 정도로 투자와 자본을 유동화시키는 상황을 만들어 왔다. 이외에도 다양한 문제들로 인해 우리는 30년 전쟁보다 훨씬 더 위험한 암흑 시대로 빠져들고 있다. 붕괴가 이제 지구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징후들은 가시적인데 이에 대한 낙관적 혹은 비관적 예측 대신 덜 가시적이지만 어렴풋이 출현하고 있는 현재 상황의 측면들을 파악하는 일에 노력하자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내 목표는 앞으로 50년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미래상이 없어도 현재 어렴풋이 존재하면서도 당장 창조적인 행동을 요구할지 모를 것을 살펴보는 것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외계 생명체 관련 문제를 연구하고 있던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제임스 러블락은 1960년대 지구의 대기 조성이 다른 행성들과 다르며, 그것은 살아 있는 생물들과 무기 환경 사이에 무언가 심오한 관계가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준다고 간파했다. 그는 「네이처」에 생명체가 자신이 뿌리를 두고 있는 행성의 주어진 조건에 단순히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는 그 조건들을 바꾸고 안정화하여 영속시킨다는 주장의 글을 실었다. 그리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마걸리스와 함께 1974년 이 깨달음을 ‘가이아 가설’이라는 이름으로 과학계에 제출했다.
당시 두 사람의 주장은 당시 과학자들로부터 무시당했지만 지금은 이들의 이론에 ‘지구 체계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여 받아들이고 있다. 일종의 애니미즘으로 여겨졌던 이 개념은 과학에서 절대적으로 금지되어 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감정 없이 우주의 재료인 물질과 에너지가 죽은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세계의 많은 측면을 탐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행위는 자연의 여러 측면들 중 행동의 규칙성을 설명해줄 수 있는 방식인 수학적 형식으로 짤 수 있고, 정량화할 수 있으며, 측정할 수 있는 측면들만이 이 세계를 확실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양적 과학은 지구의 모든 거주자들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상품을 만들어낼 능력을 주었지만 세계적으로 삶의 질이 급속히 떨어지는 상황을 가져왔다. 앞으로 우리는 현재 과학의 그늘 속에 있는 질적 과학 - 관찰되고 있는 것이 주관적인 생각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상태라는 판단들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방법 - 의 요소들이 양만이 아니라 질에도 의존해 판단을 내림으로써 우리 일상 생활에서 정서적 판단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만큼 과학에서 자신의 지위를 다시 찾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이런 복원은 감정이 우리에게만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자연의 다른 것들에게도 속해 있다는 인식과 함께 앞으로 과학 지식, 기술, 기업과 정치 활동에 극적인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아이들이 과학자에게 가르치는 것
인간은 어떤 식으로 또는 누군가로부터 배운 자기 주변 세계에 대한 지식에 대해서도 대단히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외에도 우리는 화성의 암석이나 바이러스 혹은 뉴런처럼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을 초월하는 것들에 관해서도 배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많은 것을 어떻게 아는가? 세계로부터 우리에게 직접 도달하는 유일한 정보는 우리의 망막에 부딪히는 아주 미세한 광자들의 패턴과 우리의 고막을 진동시키는 공기의 교란뿐이다. 그런 한정되고 일관성이 없는 정보로부터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열이 빵을 굽고, 물이 식물을 자라게 하고, 예약 취소가 치과 의사를 짜증나게 한다는 일상적인 진리들을 알고 있다. 꼭대기에 뇌가 있는 피부 덩어리인 물리적 대상과 토스터나 페튜니아나 치과의사 같은 다른 물리적 대상 사이의 일련의 상호작용에 불과한 것을 통해서 어떻게 한 대상이 다른 대상을 배울 수 있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한 발달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오랜 연구로 인해 우리는 아이들이 인과관계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세계에 관한 우리 지식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그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 지식이 우리 뇌에 어떻게 부호화하는지 꽤 많은 지식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지식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것이 어떻게 우리 외부 세계의 진정한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인과적 지식의 경우 어떤 사건은 항상 다른 사건에 뒤따라오지만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또한 실제 생활에서 인과 관계가 단 두 사건만을 엮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리학자들은 두 살밖에 안 된 아기들도 똑같이 이런 인과 논리를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50년 내에 어른과 아이가 어떤 연산을 수행하는지 알게 되면, 우리는 그들의 뇌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 어떻게 그런 연산을 하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뇌 영상 기술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연산 과정을 점점 더 알게 되면서 우리는 우리의 뇌가 어떻게 그런 연산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지 알기 시작할 것이다. 그 해답은 신경과학에서 나타날 가장 큰 돌파구와 관련이 있을 듯 싶다.
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의 입력에 대응해 변화하는 능력이며, 이것은 우리가 가장 잘 모르고 있는 뇌의 측면 중 하나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죽은 심장의 해부 구조를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살아 있는 심장이 어떻게 피를 내보내는지 거의 모르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뇌는 학습을 하는 기관이며, 어떻게 학습이 이루어지는지 안다면 우리는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문제에서도 중요한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포괄적인 인간 이해를 위한 과학
신기술들은 훨씬 더 폭넓은 범위에 걸쳐 인간의 주관적 경험들을 확인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 결과 훨씬 더 풍요롭고 더 정확한 인간 본성 모델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과학자들이 실제 사유와 감정을 의미 있는 사회적 상황에서 연구할 때에만 그렇다. 예를 들어 뇌 영상 촬영법은 우리가 실험실에서 특정한 정신작업을 할 때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을 띠는지 보여줄 수 있다. 지금까지 그런 작업들은 대부분 표준 지각심리학이나 인지심리학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참여자에게 본질적인 의미를 지닌 것은 없었다.
우리는 현재의 뇌 영상 촬영 기술이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상황들과 관련된 유동적이고 복잡한 사유와 감정을 연구하는 데 충분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이 가능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장치의 공간적 및 시간적 해상도를 높이면 어느 정도까지는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세제곱밀리미터 단위로 밀리초마다 뇌의 활성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면 훨씬 더 미묘한 심리 과정들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의식의 복잡성을 규명하는 또 다른 핵심 기술은 유전자 발현 패턴을 지도로 작성하는 기술일 것이다. 각각의 뇌 세포는 모든 유전자를 갖추고 있지만 그 유전자들 중 특정 시기에 발현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즉 일부만이 RNA로 전사되어 단백질을 만들어 낸다. 더구나 각 뇌 부위마다 유전자 발현 패턴이 서로 다르며, 이런 유전자 발현 패턴은 배아에서 어른으로 발달하는 과정에서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 그리고 이번 달과 다음 달의 상황에 따라서도 변한다. 사회 환경, 신경생리, 유전자 발현, 행동 사이에는 되먹임 고리들이 있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친구가 죽었을 때, 중요한 자리로 승진을 했을 때 우리 뇌의 유전자 발현 지도가 달라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몇 시간 이상 지속되는 정신상태는 거의 모두 유전자 발현 패턴의 변화를 수반할 수도 있으며, 과학자들은 이런 변화를 추적하는 일을 아직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기술이 개선되어 우리가 실시간으로 유전자 발현 패턴을 추적할 수 있게 된다면 심리적 복잡성의 신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우리는 현대의 사회 상황과 그것들이 이끌어낼 유전적으로 진화한 행동 능력 사이의 상응 관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는 ‘해결할 수 없는’ 천성과 양육이라는 무의미한 혼전 속에서 빠져나와 특정한 상황과 사유와 감정이 어떻게 특정한 유전자들을 활성화시키는지, 유전자 활성이 역으로 그런 것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더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호의적으로 사용할 용기를 갖고 있다면 뇌 영상 촬영법과 유전자 발현 지도 작성법에서 이루어질 새로운 발전들은 인간 경험을 훨씬 더 폭넓게 규명해 줄 것이다. 현재 일시적이고 특이해 보이는 의식 상태들에서 객관적인 신경적 및 유전적 표지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런 상태들은 인간 본성의 보편적인 부분이 되어 더 진지하게 고찰될 것이다.
과학이 만드는 행복
유전자의 존재를 추측하기 훨씬 전부터 농부들은 부모의 형질이 자손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은 최상의 표본들을 선택적으로 교배함으로써 호박의 수확량을 늘리거나 돼지의 몸집을 키울 수 있었다. 이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은 쉬웠다. 사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회는 ‘우생학’이나 ‘유전공학’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수 있는 것을 실행해 왔다. 과거의 사회들은 우수한 아이들을 낳을 가능성이 높은 개인들에게 특권을 몰아줌으로써 살아남았다. 가장 보편적으로 이루어진 행위는 부모가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으며, 친척들이 아이들의 양육을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혼인 이전에 결혼 지참금이나 신부대(brideswealth)를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러시아 정교회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벌거벗은 신생아를 찬물에 담그는 의식을 통해 덜 건강한 아기를 유전자 풀에서 제거하는 부수적인 결과를 낳은 의식처럼 전혀 다른 목적을 지닌 듯이 보이는 문화적 행위들이 실질적으로 우생학적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이런 행위들은 대부분 각기 다른 형질들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어떻게 전달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이루어졌지만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수십 년 내에 극적으로 변할 것이다. 현재 인문학에서는 정신분열증이나 이혼 성향, 정치적 신념 나아가 행복 같은 행동 형질들이 얼마나 유전되는지 확인하려 애쓰는 행동유전학과 이런 형질들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선택되고 전달되는 메커니즘을 탐색하는 진화심리학이라는 두 분야가 가장 활기를 띠고 있다.
유전학이 더욱 발전하면 앞으로 학습 보다는 유전자 쪽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더욱더 확대될 것이다. 비록 중요한 형질 중에서 하나나 단 몇 개의 유전자의 작용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은 형질은 거의 없다고 해도 일부 유전공학자들은 ‘맞춤 아기’의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고 확신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내 동료들만이 아니라 유명한 인간 유전학자들은 자기 연구가 논란거리가 되는 측면을 거의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거의 한결같이 자신들이 유전공학의 잠재적인 적용 문제에 책임이 없으며, 그것이 사회가 내리는 정치적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비록 사회가 제대로 알고서 결정을 내릴 만한 전문지식이 부족하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준비가 되어 있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 선택은 곧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그런 선택들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현재의 물질적 성공이나 사회적 성공의 전제 조건이 되는 추상적인 추론 능력을 유전적으로 강화할 방법을 찾아낸다면 이를 가진 사람과 보통 사람과의 격차는 커질 것이며,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모든 사람의 지능을 강화하는 방법이 발견된다면 인류 전체는 어떻게 될까?
이보다 더 근본적인 현안은 수단을 갖고 있을 때 우리가 인간 유전체를 다루면서 획일성을 추구할 것인지 다양성을 추구할 것인지의 여부이다. 모든 사람이 지적이고 좋은 외모와 야심을 구비하고 장차 성공할 아이들을 갖고 싶어하는 획일성에 대한 압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생존이라는 냉엄한 관점에서 볼 때도 위험을 가지고 있다. 예측이 불가능한 미래를 대비하는 최상의 전략은 우리 자신을 앞으로 출현할지 모르는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다양한 풀(pool)에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에 전사와 노동자와 게으름뱅이가 사회에 얼마나 있어야 할지를 중앙 컴퓨터가 직접 결정하는 대신에 시장이 인간 유전공학의 추진력이 된다면 행복한 아이를 낳고자 하는 열망이 가장 강한 선택압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 집단에서 행복의 전반적인 수준은 다양한 조건에 영향을 받지만 유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행복의 정의 중 하나는 그것이 다른 어떤 것을 원하지 않는 상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