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와 태도
토머스 프리드먼 지음 | 창해
경도와 태도
토머스 L. 프리드먼 지음/김성한 옮김
창해/2002년 11월/494쪽/17,000원
프롤로그 - 거대담론
나는 이른바 거대담론(super-story) 이념의 신봉자이다. 거대담론이란 거시적인 사고의 틀을 의미한다. 9 · 11 사태는 이유 없이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 체제로 인해 생겨났다. 위에서 언급한 세계 체제로 모든 현상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어떤 원인보다도 다양한 측면에서 많은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다. 새로운 세계 체제란 이른바 ‘세계화’를 의미한다. 세계화는 1980년대 후반에 떠오르기 시작해 제2차 세계대전 말기부터 시대를 지배했던 냉전 체제라는 국제 질서를 바꾸어 놓았다. 이 새로운 체제가 내가 9 · 11사태를 설명하는 렌즈, 즉 거대담론이다.
나는 세계화를 이전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규모의 시장, 운송 시스템과 통신 시스템의 거역할 수 없는 통합으로 규정하고 싶다. 이를 통해 개인, 기업, 국가는 보다 멀리, 보다 빠르면서도 깊게, 그리고 더욱 저렴한 비용으로 세계 곳곳에 도달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은 직 · 간접적으로 이 새로운 국제 체제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결코 그것을 통해 모두가 이익을 얻지는 못한다. 세계화가 확산될수록 세계화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세계화로 인해 모두가 획일화되고 세계화의 물결에 압도당하며, 세계화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반발하는 것이다.
분할(지역구분)과 통합으로 대변되던 냉전 체제와 세계화 체제 사이의 차이점은 힘이 생성되는 방식에서도 다르게 나타난다. 민족국가 중심으로 힘이 형성되었던 냉전 체제와 달리 세계화 체제는 서로 영향을 미치는 세 개의 힘을 기반으로 구축된다.
첫 번째는 국가들 사이에 이뤄지는, 전통적인 힘의 균형이다. 세계화의 질서 속에서 미국은 유일하고 강력한 ‘초강대국’이며 다른 나라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그 아래 종속되어 있다. 미국과 여타 국가들, 혹은 여타 국가들 사이에서 이동하는 힘의 균형은 세계화 체제의 안전성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힘의 균형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신문 1면의 뉴스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두 번째 힘의 균형은 국가와 세계 시장 사이에 존재한다. 세계 시장에는 단 한 번의 마우스 클릭으로 전 세계 어디로든 막대한 자금을 이동시킬 수 있고, 한 국가 정권의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백만 명의 투자자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전자 투자가 무리(Electronic Herd)’라고 부른다. 이들은 월 스트리트, 홍콩, 런던,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같은 세계 금융 중심지에 모여 있다. 나는 이러한 세계 금융 중심지를 ‘초강대시장’이라고 부른다.
세 번째 힘의 균형은 개인과 국가 사이에서 발생하는 힘의 균형을 뜻한다. 이 세 번째 힘이 가장 중요하며 9 · 11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계화로 인해 사람들의 이동을 방해하던 각종 장벽들이 무너졌고, 세계는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 묶였다. 이제 한 개인이 500달러짜리 인공위성 수신기능을 갖춘 GPS 장치만 구입하면 납치한 비행기를 통제할 수 있고, 인터넷만 접속하면 누구든 지금까지는 국가 통제로 불가능했던 무기 제작법도 쉽게 입수할 수 있다. 그로 인해 개인들이 시장과 국가에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초강대개인‘이 등장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 질서를 이해하려면 이러한 세 가지 힘의 균형, 즉 초강대국과 초강대시장, 그리고 초강대개인의 존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사마 빈 라덴은 1990년대 후반 미국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생각해 보라. 1998년 어느 날, 라덴을 목표로 미국이 대당 1백만 달러나 하는 75개의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일은 초강대국과 분노에 찬 초강대개인 사이에 벌어진 최초의 전투였다. 그리고 9 · 11 사태는 그 두 번째 전투였다.
이제 우리는 이 세 가지 힘 사이의 복잡한 상호관계, 즉 국가 간의 힘 겨루기, 국가와 초강대시장 사이의 힘 겨루기, 초강대개인 대 초강대시장과 국가라는 3자 사이의 힘겨루기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할 경우, 세계화 체제는 커녕 조간신문의 1면조차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칼럼
9.11 사태 이전 (2000년 12월 15일 ~ 2001년 9월 11일)
클린턴이 보낸 마지막 편지
수신 : 아랍인 여러분
발신 : 빌 클린턴 대통령
아랍인 여러분, 지난 몇 년간 나는 아랍의 지도자들과 자주 서신을 교환했습니다. 이제 재임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기에 여러분께, 그리고 아랍 대중께 마지막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계속되는 분쟁으로 고통이 많으실 것입니다. 나 또한 계속되는 분쟁에 점점 무뎌지고 있습니다. 나는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공정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이끌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랍 쪽에서 계속 투쟁만을 고집하고 요구조건의 95퍼센트나 들어 줬는데도 협상을 거부한다면, 나 역시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현재 아랍 거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정말로 실망스럽습니다. 나는 아랍의 거리에서 현대화, 세계화, 민주화, 그리고 정보혁명에 대한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어떤 일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랍 사회를 상대로 한 행동은 장차 중동 지역 전체의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아랍인 여러분, 다른 국가들이 세계적인 수준의 경쟁력 있는 기업을 건설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을 때, 여러분은 경쟁력도 없는 자국의 기업들을 보호하려고 여전히 애쓰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세계와 교역하고 있는 지금, 여러분은 아랍권내 교역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을 때, 여러분은 오히려 언론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이 교육을 장려하여 정통성을 세우고 있는 지금, 여러분 대부분은 여전히 종교적 충돌을 일으켜 정권의 정통성을 세워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라의 엘리트들은 이런 현실에 대해 분명히 토의해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식인들, 전문가들, 학자들은 진실되게 이 문제에 접근하기보다는 변명거리를 찾기에 급급한 형편이었습니다.
여러분 나라의 지식인들은 진정한 결론을 도출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약점을 감추기 위한 변명으로 일관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알 아크사 사원을 누가 점령하고 있느냐는 현재 모든 아랍인과 팔레스타인의 존엄성에 있어 매우 민감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어떤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가, 어떤 식의 경제체제를 확립할 것인가, 어떤 식으로 법치주의를 확립할 것인가는 현대 세계에서 여러분의 존엄성과 지위를 결정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과거의 문제들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들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뿌리를 망각한 사회는 결코 안정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뿌리에만 얽매인 사회 역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뿌리가 있는 땅 속에서 나와 햇빛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아랍 국가의 지식인들은 이 점에 관해서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쨌든 기득권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기득권층은 여러분들의 시야를 가립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미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는 지도자들을 따르는 행위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사담 후세인이 한 일들과 그가 자국민을 죽이기 위해 독가스를 사용한 사실을 상기해 보십시오. 그가 과연 모범적인 기득권층의 본보기가 될 수 있습니까? 그가 아랍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조만간 팔레스타인의 독립뿐만 아니라 아랍의 교육, 언론자유, 법률엄수,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인티파다(‘민중봉기’를 뜻하는 아랍어로 팔레스타인의 반이스라엘 봉기 운동을 말한다)를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아랍 대중의 관심이 어린이들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는 나라 만들기에 모아지기를 희망합니다.
- 여러분의 친구 빌 클린턴 드림, 2002년 1월 12일
장벽들
내가 얼마 전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었을 때, 10대인 내 딸이 어디를 가냐고 물었다. 나는 “이스라엘”이라고 말했다. 딸은 걱정스러워 얼굴을 찌푸리며 “아빠는 왜 그런 곳을 가야 하죠?”하고 물었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이스라엘에 자주 왕래했다. 내가 「타임스」 지국장으로 근무할 당시 이스라엘에 있었는데, 딸도 그 곳에서 얻었다. 그런데 지금 딸은 이스라엘을 코소보와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자살 테러와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이 계속된다면, 이스라엘과 유대인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겠는가? 정통 유대교인이나 나와 같은 중동 매니아는 계속 이스라엘을 방문하겠지만 다음 세대 유대계 미국인들은 유대인의 국가 이스라엘과 친밀한 연대감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유대계의 결속을 위해 뉴욕에서 아무리 많은 시가 행진을 벌인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내가 이 이야기를 연관짓는 까닭은 그것에 제2의 인티파다와 오슬로의 몰락으로 인해 세워진 많은 ‘작은 경계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현재 직면한 문제는 진정한 외교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부시 행정부, 아랍 국가들은 문제를 해결할 힘과 의지가 부족하거나 유대 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로 크게 구분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 사실, 현 상태는 팔레스타인 지도자인 아라파트와 이스라엘 총리 샤론 모두에게 정치적으로 견딜 만한 상황이고 부시에게도 참을 만하다. 하지만 지도자들이 현상 유지만을 원하는 동안, 일반 국민들은 점점 그것을 참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은 수백만 조각으로 분열됐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장벽을 쌓고 있다. 이에 대해 어느 이스라엘 국민은 “모든 사람이 스스로 국방부장관을 자처하고 있다.”고 말했다.예수살렘 교외에 위치한 사고트에서는 라말라가 잘 보인다. 라말라 언덕의 가옥들은 총격을 대비한 콘크리트 장벽과 샌드백을 설치해 놓고 있다. 남쪽으로 차를 몰아 닿을 수 있는 하 길로의 예루살렘 주변과 아랍인 마을 바이트 잘라 사이에는 저격수들의 총격을 차단하는 긴 콘크리트 장벽이 있다. 그 벽에는 유대어로 ‘새로운 중동’이라고 적힌 벽보가 붙어 있다. 어떤 커피숍은 폭탄 테러에 대비해 입구에 경비원을 세우기도 한다.
내가 이스라엘 출신 기자와 함께 하 길로로 이동할 때, 분기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하나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고 하나는 아랍 마을로 가는 길이었다. 거기서 실수로 아랍 마을로 들어서자, 이스라엘 병사가 화난 표정으로 우리를 세웠다. “죽고 싶어 환장했어요?” 그 병사는 우리에게 외쳤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우리가 들어갈 뻔했던 아랍 마을은 동예루살렘과 연결된 부분이다. 그곳은 공식적으로 예루살렘의 일부이기는 하나, 유대인에게는 진입이 금지된 곳이다.
이스라엘 정착촌은 서안 전역에 퍼져 있기 때문에 한 쪽의 힘만으로는 칸막이를 설치하기가 매우 힘들다. 하지만 계속되는 폭탄 테러와 보복공격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 모두 지쳤고, 사람들은 가능한 모든 지역에 장벽으로 칸막이를 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 둘레에 장벽을 둘러 자신의 집을 보호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신의 도로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격리시키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더반으로 가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세상에서 격리시키려고 한다.
이곳 이스라엘에는 수많은 장벽들이 생겨나고 있어 서로 구분하기조차 힘들다. 과연 누가 누구를 가두고 있는 것일까? - 2001년 9월 11일
9.11 사태 이후 (2001년 9월 13일 ~ 2002년 7월 3일)
제3차 세계대전
이 제3차 세계대전에서 우리는 다른 강대국과 싸우지 않는다. 이번 전쟁은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자 자유주의와 자유시장 체제의 상징적 존재인 미국과 분노한 초강대개인들의 싸움이다. 초강대개인들은 대부분 소외된 이슬람 또는 제3세계 국가 출신이다. 그들은 우리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이슬람 사람들의 삶과 정치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에 대해 분개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나라가 현대화되지 못한 것에 대해 미국을 비난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막강한 힘을 제공한 건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네트워크화된 세계, 인터넷과 첨단 기술을 천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테러리스트들과 싸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먼저 우리가 소규모 테러 집단들의 동태까지 파악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 관리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와 급진세력을 통제할 수 있었던 시기는 아라파트와 팔레스타인 정부가 그들을 추적하여 감금했던 때뿐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테러를 진압하기 위해 테러리스트가 속한 사회의 도움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이러한 테러집단들이 미국의 정책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를 증오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 화요일의 참사를 일으킨 사람들은 악마적인 잔혹성과 명석한 두뇌를 겸비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대담하고 혁신적이고 꾸준한 자세로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최선의 마음을 다해(가령 제3차 세계대전 맨해튼 프로젝트) 애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중동 우방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중 전선을 용인해 왔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 시리아 같은 나라는 반드시 결단이 요구된다. 시리아는 다마스커스의 헤즈볼라 대사관과 미국 대사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우리는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들과 이슬람 세계가 왜 낙후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사하라 남부를 포함한 전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이슬람 세계만큼 자유 선거가 보장되지 않는 곳은 없다. 아랍의 지도자들은 왜 자기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가? 자기 자녀들에게 이스라엘과 투쟁하되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이슬람 지도자는 왜 없는 것인가? 확실히 이슬람은 유럽 세계가 저질렀던 유대인 집단학살 같은 만행을 행하지 않은 종교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자살 폭탄 테러국가로 왜곡되어 비춰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우리가 제3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들이다. 제3차 세계대전은 명석하고 적개심이 가득 찬 적들과의 전쟁이다. 쌍둥이 빌딩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정확히 충돌시킨 그들의 기술이 대단하다고 말하자, 한 이스라엘 장교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이륙하고 나면 조정 기술 습득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보세요. 그들은 착륙 기술을 익힐 필요가 없었어요.” 그렇다. 그들은 항공기를 착륙하는 법은 몰랐을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파괴였으니 말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개방 사회를 보호하며 효과적으로 싸워야 한다.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고 안전하게 착륙해야 한다.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적과 싸워야 하는 반면, 시민들이 테러리스트가 없는 것처럼 느끼도록 개방 사회를 지켜야 한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선의 전략, 최고의 외교술, 그리고 용감한 군인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충성! - 2001년 9월 13일
테러리스트의 사고 방식 - 아랍에미레이트 연합 두바이에서
이곳 걸프 지역에서 사려 깊고 자유분방한 아랍 친구와 커피를 마시던 중 그 친구가 심각한 문제를 털어 놓았다. "11살짜리 아들이 빈 라덴을 훌륭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