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와 게릴라
이강원 지음 | 예지
탱고와 게릴라
이강원 지음
예지/2002년 10월/283쪽/9,500원
People
나라도 자기의 사주가 있다?
콜롬비아의 저녁 뉴스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총질, 피, 죽음, 통곡, 관들로 모자이크되어 있다. 그것도 40여 년의 세월을….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이것이 외국의 침략도 아닌 같은 민족끼리 벌이는 내전이라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희생된 숫자가 4만 명이고 난민은 100만 명, 납치와 부상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콜롬비아는 사람 죽는 것이 별로 뉴스 가치가 없는 곳이다.
콜롬비아는 위치적으로 남미의 관문이다. 북미대륙에서 시작, 잘록한 중미를 거쳐 남미대륙으로 내려갈 때 이 나라가 빗장을 열어주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풍부한 자원과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어쩌면 신의 편애를 받은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의 축복만큼 악마의 저주도 함께 받았으니 녹록치 않은 팔자로 태어났다고나 할까? 세계 최고의 에메랄드와 커피, 백금 생산 세계 4위, 중남미에서 셋째 가는 원유 생산 등 신이 이곳에 내린 축복은 다양하다. 한편 이 나라의 운명을 쥐고 있는 마약은 질과 양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다. 그리고 막강한 군사력(1만 7,000여 명의 대원)과 예산, 정부군보다 더 최첨단 무기를 가졌다는 최대 게릴라 집단 FARC(무장혁명군), 늘 검은 스키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활동하는 ELN(민족해방군)과 그 공격력이나 잔인함에서 위 두 좌익집단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극우 단체 AUC(민병자위대)가 난마처럼 얽히고 꼬여 있다. 나라 곳곳이 이들의 필요에 따라 전선으로 변하니 이들로 인해 나라는 쑥밭이자 멍든 사과로 변한다.
폭력과 죽음은 늘 싱싱하게 그 비늘을 번뜩이고 있고, 선과 악은 경계 없이 넘나드니 법은 정부가 부여잡고 있는 전시용 언어에 불과할 때가 많았다. 그곳에서 보낸 2년 동안 비행기가 아니면 보고타를 벗어날 수 없었으니 2,800m 창살 없는 보고타 고원감옥에 갇혀 산 것이나 다름없다. 사고는 모두 예고없이 우발적으로 발생해서 누구도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없으니 각자 알아서 처신해야 했다.
실제로 그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차에서 보낸 시간과 그나마 안전하다는 보고타 주위의 골프장뿐이다. 외교행사도 거의 낮에 치러졌고 밤 외출은 될수록 피했다. 소설 같지 않은 삶이 없고 굴곡의 역사 갖지 않은 나라가 없지만 이 나라의 경우는 좀 심한 경우다.
'콜롬비아에 1주일 있으면 장편소설 한 편, 한 달 머물면 단편소설 한 편, 1년 살면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들여다볼수록 복잡미묘하고 아리송한 곳이죠. 그러니 이곳에 대해 쓰실 거면 빨리 서두르세요.' 어느 디너 테이블에서 구스타보 벨 부통령이 해준 이 말에 '그러나 이곳의 노벨상 수상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현존하는 최고의 화가 보테로 모두 신이 이곳에 내린 축복과 저주의 세례 없이 어찌 태어났겠어요. 저도 사는 동안 이곳의 복잡미묘함이 감추고 있는 영감의 광맥을 찾아내겠습니다.'라며 큰 소리쳤다.
꼬마벌과 딸랑이들
"이젠 총이 곁에 없으면 허전해서 잠이 오지 않아요. 지난해 이곳에 왔을 때 새벽 훈련에 총을 늦게 가지고 나가서 많이 혼났거든요.14세가 된 안드레스가 갈색 눈을 반짝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바로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안드레스는 콜롬비아 남부 지방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매일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하긴 했지만 강가에 나가서 미역도 감고 바나나 서리도 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어느 오후 FARC 게릴라의 방문을 받기 전까지는….
가난이 지긋지긋했던 안드레스는 먹을 것과 월급도 주고 돈도 줄 테니 함께 일하지 않겠냐는 그들의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정글로 끌려갔다. 안드레스는 제대로 들기도 무거운 소총, 익숙하지 않은 군복과 군화를 신고 지옥 같은 군사훈련을 받은 뒤 실제 전투에 투입되었다. 물론 그들의 달콤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안드레스의 손바닥과 열 손가락에는 굳은 살만 남았을 뿐이다.
"왜 어른들이 어른답게 행동하지 못하죠? 평화협상 한다고 떠드는데 왜 더 힘들어지나요? 저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요. 심지어는 죽은 동료의 시체에서 내장을 제거하는 일까지 했는걸요. 그렇게 강에 버려야 시체가 떠오르지 않는대요. 정부군에게 사망한 숫자를 속이기 위한 방법의 하나지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어요."
15살에 게릴라에게 납치되어온 3년차 게릴라 빠블로, 그리고 11살부터 이 지옥같은 생활을 한 노리타는 콜롬비아 40년 내전이 빚어낸 수많은 비극 중에서도 가장 비인도적인 비극의 희생자인 '니뇨스 게리제로스(미성년 게릴라)'들이다. 이들이 공식적으로는 6천 명이라고 하지만 3개 게릴라 단체 단원 중 그 반수가 18세 이하의 미성년자라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대충 계산해도 세 개 단체가 3만 명 정도 되니 이들 숫자는 쉽게 1만 명을 넘는다. 이들이 게릴라가 된 것은 무엇보다 가난과 가정불화가 그 주범이다.
반군의 공격으로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주민들은 도시 난민으로 전락했으니 고질병인 큰 빈부 차는 나날이 그 골이 더 깊어졌다. 실제로 보고타 인구의 반 이상이 사는 달동네 시우다드 볼리바는 행정력도 미치지 못하는 마을이다. 도시의 폭력과 매춘은 거의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곳을 방문해 그곳 사람들을 보고서야 나는 게릴라의 유혹에 빠지는 아이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법이나 학교는 꿈꿀 수도 없는 사치였다. 굶어 보신 적 있어요? 가난이 지나치면 살 속을 파고듭니다. 감정이 모두 사라진 저 아이들의 표정 좀 보세요. 저 아이들 중에는 친척이나 이웃에게 성폭행당한 아이들도 많아요.
현재 콜롬비아에는 3백만 명의 아이들이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고, 250만 명이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으며, 30만 명이 넘는 거리의 아이들이 있다. 심지어는 마약 배달부로 일하는 어린이들도 수십만 명에 달한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이런 환경의 아이들이 게릴라 집단이 쳐놓은 덫에 빠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런 어린이들이 게릴라들에게는 몸이 작고 가벼워서 보초나 스파이로 활용, 정보수집을 시키면 제격이다. 또한 지뢰 탐색견처럼 이들을 미리 보내 지뢰가 묻혀 있는지 여부를 알아내는 데 활용한다. 그래서 이들을 꼬마 벌들이나 딸랑이로 부른다. 초반에 이 과정을 통과하면 그 다음엔 인간방패로 최전선에 투입된다. 실제로 게릴라와 교전을 끝낸 뒤 피해상황을 보면 사상자의 반 이상이 아이들이라고 한다.
이 상황의 주범은 물론 게릴라 집단이지만 법과 정의가 실종된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콜롬비아에서는 법과 정의는 박물관에 들어간 지 오래이므로 당장 해결책이 보이기는커녕 지루하게 연명해오던 평화협상까지 물 건너간 형편이다. 이제 미국의 입김까지 가세되어 콜롬비아는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더 두터운 안개 속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오늘도 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정글을 뛰어다닐 어린이들은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백년 동안의 고독
잠시 빌려 살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나는 지금까지 여덟 나라에서 살았다. 이 타향살이를 모두 합치면 25년의 세월이다. 낯선 풍토와 사람들의 모습만큼 생소한 언어, 사고, 문화의 물결을 보듬고 올라타느라 고단하기도 했지만 실핏줄까지 흘러들어오는 새로움과 경이로움에 잠시도 지루하지 않은 세월이기도 했다.
25년 중 10년을 라틴 문화권에서 보낸 나는 어느새 그 문화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음을 느낀다. 흉보면서 닮는다고, 느슨하고 나태하고 촌스럽다고 투덜거리던 것들이 여유와 멋으로 느껴지는 지경까지 왔다. 이런 특유의 여유와 틈새가 중남미 문학의 큰 줄기인 마술적 리얼리즘의 주춧돌이 되지 않았을까.
콜롬비아에 있을 때인 1999년 1월, 남쪽 정글의 한 마을에서 가보(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애칭)를 만났다. 그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으며 가슴앓이까지 했던 나에게 그 만남은 산신령이라도 만난 듯 느껴졌다. 많은 콜롬비아 사람들은 한번 그의 손을 잡으면 놓지 않고 그 손에 얼굴을 비비고 가슴에 갖다대곤 했다. 여론조사에서도 그는 항상 대통령 후보 0순위에 오르곤 한다. 끝이 안 보이는 내전과 죽음의 그림자에 시달려온 그들에게 가브리엘은 기댈 수 있는 큰 거목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전립선암 치료 중이었던 그는 조금 지쳐 보였지만 눈빛은 너무 형형해서 콧수염까지 풀을 먹인 듯 빳빳해 보였다. 대통령과 게릴라대장의 평화협상이 열리는 곳이어서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백년 동안의 고독』은 어느 초현실주의나 상징주의의 화폭보다 더 큰 파괴력으로 내 사고와 고정관념의 울타리를 허물어 준 책이다. 현실이 지루하거나 붓끝이 무뎌지면 내 마음은 괴나리봇짐 둘러메고 백년 고독의 마을, 콜롬비아 북쪽에 있다는 환상의 마을 마콘도로 떠난다. 지금도 그곳 어딘가에서 독 오른 혼을 틀고 있을 부엔디아 가(家)의 누군가를 만나 내 머리 위에 환상의 꽃다발을 가득 얹기 위해.
Culture
탱고 聖地 -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탱고는 국가(國歌)에 버금가는 의미가 있다. 목동이 양떼를 일사분란하게 끌고 가듯 탱고는 이들의 정신적인 흐름을 이끌어 준다. 이곳에서는 원하면 탱고를 자장가 삼아 잠들고 wake-up call로 불러와도 된다. 라디오와 TV에서는 'Solo Tango(Only Tango)'라는 이름으로 24시간 연속 방송한다. 사무실, 거리, 슈퍼마켓에도 늘 이 음악이 흐르니 하루 온종일 젖어 지낼 수 있다. 그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탱고가수 깔로스 가르델이 비행기 사고로 요절함으로써 죽은 지 70년이 되건만 그에 대한 신비로움과 인기는 날로 더욱 높아진다. 이곳에선 그의 생일인 12월 11일을 탱고의 날로 정해서 기념하고, 탱고의 주역악기인 반도네온의 명 연주가 아니벨 뜨로일로의 생일인 7월 11일은 반도네온의 날로 정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개최한다. 이제는 탱고 뮤지컬과 탱고 오페라까지 등장했다.
'탱고는 그저 춤이 아닙니다. 그 속에는 시와 음악, 춤 그리고 삶의 철학이 녹아 있지요. 이 중 한 가지만 빠져도 진정한 탱고라 할 수 없습니다. 우수가 가르쳐 주는 삶의 지혜라고나 할까요.' 탱고 시인 일다 게라의 이 말은 조금도 틀림이 없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안 만난 탱고 시인, 가수, 연주가, 댄서들은 모두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쳤다. 이 중 한 가지만 소홀해도 탱고의 맛과 멋은 망가지기 때문이다.
탱고는 이민선(移民船)의 역사와 일란성 쌍둥이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인 이민자들의 우수와 향수, 여기에 새로운 땅에서 적응하기 힘든 고통과 가난을 위로받으려는 데서 탱고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 출생지가 빈민촌이다 보니 처음에는 건달들과 창녀들이 많이 추었고, 상류사회 사람들은 이를 무시했다. 여기서 탱고 역사를 얘기할 때는 꼭 뒷골목 건달들, 꼭 끼는 바지에 포마드를 발라 반지르르하게 올백으로 넘긴 그들의 건달 걸음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러나 1930년대 초 우연히 이 춤을 보게 된 빠리지엔들이 열광적으로 빠져들자 자신을 유럽인이라고 굳게 믿으며 사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때부터 탱고를 재수입해서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0년 탱고의 지평을 넓힌 아스토르 피아솔라의 등장으로 탱고는 다시 한 번 탈바꿈한다. 그의 작품은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래머, 첼리스트 요요마 등 수많은 연주가들을 탱고 앞에 무릎꿇게 했다. 그를 베토벤과 비틀스에 버금간다고 예찬하는 음악인까지 생겼다. 탱고 연주자들도 시나위처럼 골격은 그대로 두고 매번 허물어서 연주하여 새로운 탱고 음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잘 맞는 한 쌍의 탱고 댄서의 춤을 보면 그 속에 철학 외에 수학의 정확성과 과학 이론까지 들어있는 것을 느낀다. 춤 하나에 보통 50~70가지의 정교한 발동작이 들어가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넘나든다. 그 움직임은 마치 계산기를 두드리듯 정확하다. 이러다가 탱고 고수가 되면 모든 스텝에서 자유로워진다. 음악에서도 그 열정과 우수에서도 해방되는 것이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탱고는 안개 위에 뜬 구름처럼 무게도 없고 형체도 없어진다. 탱고 속에는 이런 깊은 멋이 있으니 세계 곳곳에서 광적인 탱고 마니아가 늘어나는 것은 너무 당연한 현상이다.
이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탱고의 출생지이자 성지(聖地)가 되었다. 탱고 러버(Tango Lover)들의 성지 방문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가 파산을 선언하고 거리에 실업자들이 넘쳐 흐르는 요즘, 이 어려울 때 수출전선에서 탱고는 연 4억 불의 외화를 끌어올리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거리는 이들이 뿜어내는 우수로 더욱 무겁게 가라앉는 듯하다.
포퓰리즘의 종말
남반구의 8월은 냉기가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겨울의 막바지다. 국가 위기의 늪에 빠져서일까. 이번 겨울은 한층 음울하고, 그 밤은 더 길고 깜깜하게 느껴진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넘치는 부를 주체하지 못했던 곳, 캐나다와 호주를 따돌리고 세계 5대 강국의 자리까지 차지하며 남미의 진주라는 명성을 얻었고, 수도를 각종 건축양식과 조각의 박물관으로 꾸며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던 곳, 세계에서 가장 넓은 18차선 도로와 1913년에는 남미 최초의 지하철을 건설하고 자랑하던 나라, 5살짜리까지도 지정 정신과 의사를 두고 지내며, 1년에 수 차례씩 유럽 여행과 쇼핑을 즐기고 세탁물까지 유럽으로 보내는 사치를 누리던 나라, 그곳이 바로 아르헨티나이다.
하지만 이런 지난날의 영화는 오늘의 비참함을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게 만든다. 입에 올리기도 엄청난 외채, 두 집 건너 실업자, 서서히 대량학살당하고 있다고 비명을 지르는 빈곤층, 그리고 국가위험도 세계 챔피언 획득이 오늘, 아르헨티나의 모습이다.
이런 자신의 추락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르헨티나의 겉모습은 아직도 너무 찬연하고 아름답다.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이며, 세계자연유산 유적지인 이과수 폭포, 남미 최고봉인 아콩카구아, 노다지 대평원 팜파스 등의 조건을 가지고도 IMF 앞에 쩔쩔매는 것을 보고 기가 찬 쿠바의 카스트로 대통령이 '국민 수 2배에 달하는 5,000만 두의 가축과 비료가 전혀 필요없는 기름진 팜파스 평야, 6천만 톤의 옥수수와 곡식 등을 쿠바가 가지고 있다면 이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1억의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는 자원을 갖고도 외국에 빌붙고 있다.'고 드러내놓고 비난해서 파문을 일으켰지만 이 나라를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비판에 동의할 것이다.
세계 5등에서 꼴찌 그룹으로 추락할 때까지 아르헨티나인들은 여러 번 울렸던 경보의 종소리도 듣지 못했다. 설마 病과 지난날 도취증이 눈, 귀를 모두 막은 것이다. 악화된 경제를 400억 달러의 IMF 구제금융으로 땜질했고, 비싼 외채를 빌려 싼 외채를 갚는 자살골 같은 임시 처방도 마다하지 않았다. 잘되면 내탓이고, 못되면 조상탓이라는 우리의 속담은 이곳 정치 지도부가 크게 외치고 있는 주제가다. 곳간에 쌓여 있는 부를 중장기 국가개발에 재투자하지 않고 노동자의 입막음으로 써버리는 등 방만한 국가운영을 시작한 페론 대통령의 인기주의(포퓰리즘)의 뿌리는 너무 깊어 오늘날까지 뽑아내지 못했고, 지도자마다 표피적 인기에만 급급해서 곶감 빼먹듯 하다 보니 빚이 어느새 1,400억 달러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