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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의 역사

로리 롤러 지음 | 이지북
1. 최초의 신발 - 샌들과 모카신



우리는 종종 신발을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장 먼저 신발을 신은 사람은 누구이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는가? 신발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 아프리카 남쪽 끝에서 시작됐다. 인도양 부근 클레이지 강 어귀에 암석으로 된 거주지와 동굴 속에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최초로 공동체를 이루며 무리지어 살았다.

클레이지 강 유역은 사냥감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화했기 때문에, 거주자들은 옷을 거의 입지 않았을 것이고 신발도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후 7만년 동안 해변가 생활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지구 전반에 걸쳐 기후 변화가 일어나 기온이 내려가고 빙하가 팽창하자 해수면 수위가 낮아지면서 새로운 해안선이 나타난 것이다. 해안선이 거의 65킬로미터 밖으로 멀어짐에 따라 동물들은 먹을 것을 찾아 무리를 지어 이동했고, 초기 사냥꾼들도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나서거나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대규모 이주와 재정착 과정은 수천 년에 걸쳐 되풀이되었다. 사람들은 모래뿐인 뜨거운 사막과 암벽으로 된 높은 산, 춥고 눈이 많은 툰드라, 습하고 바람이 많은 초원 등 다양한 지역을 맨발로 수백 또는 수천 킬로미터나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결국 그들은 신발이라는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가장 간단하고 빠른 방법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덩굴이나 길고 질긴 풀을 이용해 발에 묶었다.

그리고 수년에 걸친 시도 끝에 누군가가 샌들을 고안해 냈다. 손으로 만든 신발 중 가장 오래된 이 초기의 샌들은 두 가지 기본 형태로 되어 있다. 하나는 야자, 파피루스 또는 풀을 엮어 만든 것으로 발가락 주위에 식물의 섬유질 부분을 구부려 이은 고리가 달려 있다.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이러한 형태의 샌들은 일본과 폴리네시아 지역에서부터 클래머스 인디언과 유트족 그리고 현 애리조나 지역의 선사시대 거주지를 포함하는 북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다른 하나는 손질된 가죽을 잘라 가장자리에 구멍을 내고, 이를 가죽끈으로 연결한 형태다. 가죽끈은 샌들이 벗겨지지 않도록 졸라매는 역할을 했다. 이런 종류의 샌들 중 하나가 안데스 고원지대인 페루에서 발견되었다.

어떻게 같은 모양의 샌들이 그토록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발견될 수 있었을까? 몇몇 고고학자들은, 원시시대 사람들이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지구 구석구석을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서로 신발 만드는 법을 차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최초의 샌들이 어디서 기원되었는지는 과학자들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샌들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그림 속에서 최초의 샌들 형태 중 하나가 발견되었다. 당시 이집트에서 샌들을 만드는 것은 커다란 사업이었다. 이집트의 샌들 제조공은 부와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지만 자신도 사회에서 존경받는 특권을 누렸다.

고대 이집트의 특권층 사람들이 환상적인 샌들을 신고 돌아다니는 동안 먼 북쪽의 추운 지역에 사는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신고 다녔을까? 기원전 8,000년 이후, 원시 사냥꾼들은 지금의 스페인 동쪽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털이나 가죽으로 된 부츠를 신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들도 샌들을 신고 이주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날씨가 점점 추워짐에 따라 샌들과 함께 급하게 '양말'을 신었을 것이다. 이때의 양말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가죽이나 헝겊끈으로 발 주위를 감쌌는데, 샌들이 발바닥 보호를 위한 커버였다면 양말은 발의 보온 유지를 위한 싸개였다. 또한 이들은 한겨울 다리가 푹푹 빠지는 깊은 눈밭에서 사냥을 하면서 샌들을 더 넓고 크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스노 슈즈이다. 좀더 추운 지역으로 여행할 때는 가죽으로 된 긴 양말을 만들어 신었을 것이라는 가설도 있다. 결국은 이 가죽 양말이 스노 슈즈가 벗겨졌을 때 그대로 신발, 즉 부츠가 되었다는 것이다.

2. 보호용 신발 - 부츠에서 나막신까지



전 역사를 통틀어 군인들은 두 다리와 발을 보호하기 위해 부츠를 신었다. 시골의 거친 길을 행군하기 위해, 결빙된 강 위를 걸어서 건너기 위해, 말을 타고 하는 긴 여행을 위해 부츠를 신었다. 이런 형태의 신발류에 대한 가장 초기의 기록 중 하나가 2700년된 사르곤 2세(Sargon II, 721∼705 B.C.)의 궁궐 벽화에서 발견되었다. 사르곤 2세는 페르시아 만에서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아시리아 제국을 확장시킨 군사 지도자였다. 벽화에 새겨진 그의 전사들은 모두 무릎에서 발등까지 따뜻하게 감싼 부츠를 신고 있었다.

몇몇 역사가들은 고대 그리스와 아시리아 이전부터 부츠를 신었다고 주장한다. 4500여 년 전, 아마도 부츠는 추위를 막고 가시덤불로부터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분리 가능한 레깅스를 부착시킨 모카신의 한 형태로서 개발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모카신과 레깅스를 한 몸으로 하여 정강이 중간 혹은 무릎까지 오는 부츠가 된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부츠가 북아시아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곳의 혹독한 기후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초기 부츠가 베링 해협을 건너 알래스카와 북아메리카에 전해져 이누잇족과 아메리카 원주민에 의해 변형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부츠는 안장에 앉아 여러 날을 보내야 하는 기수들을 위한 보호장비였다. 카우보이 부츠는 1876년 경 미국에서 개발되었다. 초기의 카우보이 부츠는 캔자스의 한 부츠 제조공이 멕시코 바케로(vaquero : 카우보이)의 승마용구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 이 소박한 검은색 또는 짙은 갈색의 소가죽 부츠는 환상적이진 않았지만 매우 실용적이었다.

일하는 동안 사람들의 발을 지켜주는 신발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2,000여 년 이상, 나무로 만든 클로그(나막신)와 나무 밑창을 댄 신발들이 방앗간, 광산, 채석장, 농장, 부두와 세탁소 등에서 일하는 남녀의 보호용으로 적절히 사용되어 왔다. 이 신발은 나라마다 다르게 불렸는데 프랑스에서는 그 명칭이 사보(sabots)였다. 클로그는 완벽한 보호라는 용도 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된 적도 있었다. 유럽 산업혁명 초기에 프랑스와 벨기에의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사보를 기계 속에 던져 넣어 공장문을 닫게 함으로써 부당 해고에 저항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사보타주(Sabotage)'라는 새로운 단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3. 신발과 권위 - 지도자가 신었던 것



프랑스의 왕 루이 14세는 양말만 신고 일어섰을 때는 키가 160센티미터 정도였을 정도로 작았지만 생각만큼은 원대했다. 그리고 그 원대한 생각을 실행에 옮겨 위대한 업적들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세계를 압도하고 싶어했다. 찬란하고 장엄하며 강력한, 그리고 '키가 큰' 군주로서….

그는 이러한 키 문제를 해결하고자 위로 치솟은 가발을 쓰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었다. 공식적인 자리에 나설 때면 그는 특별히 약 13센티미터 높이의 코르크로 만든 굽이 달린 구두를 신었다. 그 코르크 굽에는 승리했던 프랑스의 전투(대부분 그가 이끌었던)를 상징하는 그림이 축소판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굽은 대부분의 경우 붉은색으로 염색된 가죽으로 싸여있었는데, 붉은색은 이후 귀족의 상징 색이 되었다.

루이 14세의 붉은 굽처럼 구두 색으로 권력을 상징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800년경 샤를마뉴는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신성로마제국의 왕권을 이어받았다. 이때는 대부분의 유럽을 점령한 후였다. 샤를마뉴는 보석이 박힌 왕관과의 조화를 고려해 금과 에메랄드로 장식한 놀라운 붉은색 가죽 신발을 신었다.

자주색은 왕족을 상징하는 또 다른 색이었다. 로마제국 초기에는 황제만이 찬거(tzanga)를 신을 수 있었다. 이는 자주색 가죽 샌들로 금실로 수를 놓고 발등 쪽에는 황금색 독수리로 마무리를 했다. 감히 이와 같은 특수한 신발을 신는 사람은 로마법에 따라 추방당하고 모든 재산을 잃게 되었다.

몇몇 로마 통치자들은 하인의 신발 색과 장식에 대해 매우 까다롭게 굴었다. 아우렐리아누스(212∼75) 황제는 자기 자신과 후계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붉은색 신발을 신을 수 없도록 했다. 헬리오가발루스(205∼22) 황제는 최고위층 귀족을 제외한 모든 여성들이 금과 보석으로 신발을 장식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신발은 이렇듯 정치적 지위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지도자의 정치 철학을 대변하기도 한다. 토머스 제퍼슨은 성대한 리셉션에서 구두끈이 달려 있는 신발을 신었다. 미국의 모든 저명인사들이 관습적으로 사용한 은으로 된 버클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가? 제퍼슨에게 유행을 선도하려는 의도가 없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단지 1785년에서 1789년까지 미국 공사로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목격한 새로운 혁명 정신에 고무되었을 뿐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은으로 된 버클을 포기하고 구두끈을 선택했다. 그들은 구두끈을 좀더 '민주적'이라고 생각했고 제퍼슨은 바로 그 의미를 취했던 것이다.

4. 신발과 지위 - 맨발에서 전족까지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발로 노예와 자유민을 구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철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맨발은 노예의 비천함의 표시이다."라고 썼다. 노예는 신발을 신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스의 자유시민은 노예로 오해받을까 두려워 누구도 신발을 신지 않고는 공공장소에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신발은 한 개인의 부를 표현했으며, 이를 통해 그의 사회적 지위, 정치 성향, 심지어는 종교까지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270년 전 황소 가죽으로 된 구두를 신고 있었던 영국의 한 소녀는 높은 굽의, 끈이 달린 구두를 자랑하는 젊은 여성과는 자신이 아주 다르다고 생각했다.

세계의 가난한 노동계층 사람들에게 구두는 쉽게 가질 수 없는 사치품이었다. 1748년의 영국 노동자들의 구두바닥에는 무거운 징이 박혀있었으며 뒤꿈치는 금속제 '말굽'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는 가능한 구두를 오래 신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궁핍한 사람에게 구두를 선물하는 것은 지극히 너그러운 행동으로 인식되었다. 600년 전, 영국의 브리스톨 마을의 시민인 존 리차드는 1411년 3월 23일 작성한 유언장에 "나는 나의 장례식 때 스물네 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물네 켤레의 구두를 증여하겠다."고 밝혔다.

역사를 통해서 보았을 때, 특정 형태의 구두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가장 부유한 계층에 속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폴란드 도시 크라코프의 이름을 따서 붙인 '크레코(crackow)'는 뾰족하고 끝이 굽은 구두코가 있는 신발이다. 이는 14세기 유럽에서 남성들이 주로 신었다. 그것은 전혀 육체적인 일을 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것을 나타냄으로써 구두 끝이 길면 길수록, 그 구두를 신은 사람은 더 큰 부자임을 의미했다. 이에 영국의 에드워드 3세 때는 새로운 신발법이 공포되었다. 왕자는 그가 원하는 만큼 길고 뾰족한 크레코를 신을 수 있으며, 귀족은 60센티미터, 신사는 30센티미터, 보통 사람들은 15센티미터까지 허용되었다.

부를 표현하는 것과 함께 신발은 특정한 정치색을 표출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높은 굽에 발목을 죄는 신발이 대유행이었다. 이 유행은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된 1780년대까지 이어졌다. 왕과 왕비, 그리고 좌파, 우파의 귀족들이 빠른 속도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자, 겨우 살아남았던 부자들은 버클이 눈이 확 띄도록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신발을 신는 것이 과연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치 전략상 적절한 신발은 평평하고 굽이 없으며, 단순한 끈이나 애국적인 붉은색, 흰색, 파란색 리본으로 조이는 형태였다.

400년 전, 네덜란드의 청교도들은 검은색에 어울리는 평이한 가죽끈으로 묶는 높은 모자를 쓰고, 수수한 색의 코트를 입고, 평평하고 발끝이 뭉툭하게 모가 난 신발을 신음으로써 자신들의 진지한 정치성을 알리려고 했다. 300년 전 터키의 마호메트 추종자들은 노란 부츠나 슬리퍼를 신었는데, 이는 무슬림으로서의 굳건한 신앙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으로 가보자. 전해 오는 바에 의하면, 전족을 한 중국 여성들이 신던 손바닥만한 신발은 11세기 타키 여왕이 작고 비틀린 발로 태어났을 때 처음으로 등장했다. 미래의 여왕이 당혹스러워하지 않도록, 왕은 아주 작은 발을 가진 여성만이 진정으로 바람직한 여성이라고 말했다. 이 새로운 포고에 따라 궁궐의 모든 젊은 여성들이 최대한 발을 작게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발을 묶었고 결국은 발 모양이 뒤틀리게 됐다는 것이다. 기원이야 어찌됐든 발을 묶는 것은 결국 중국 여성들에게는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런 여성들은 어른이 되어도 발 길이가 10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되었다. 전족을 한 여성들은 점프나 달리기를 할 때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했고, 성장해서는 하인의 도움이나 긴 막대에 의지해야만 겨우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이 풍습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단지 아주 작은 슬리퍼가 유물로 남아 있을 뿐이다.

5. 신발과 유행 - 힐과 그 이상의 것



유행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가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신발의 형태는 우리의 감정뿐 아니라 우리의 희망과 꿈까지도 이야기한다. 혼돈과 분쟁의 시대에는 딱딱하고 실용적인 부츠가 선택되는 경향이 있다. 300여 년 전, 유럽은 끊임없는 전쟁과 사회적 불안으로 술렁거렸다. 미래 역시 매우 암울해 보였다. 어느 비평가의 말처럼, 왕권을 잃고 영국의 시민전쟁 중 처형된 찰스 1세 치하의 영국에서는 군 장교부터 마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윗부분이 술로 장식된 괴물 같은 넓은 부츠에 반쯤 파묻혀 걸어다녔다.

그렇다면 신발의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옛날에는 왕이나, 왕비, 그리고 몇몇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1600년대에 찰스 2세는 "영국의 왕 중 가장 영리하면서 또 가장 게으른 왕"이라고 불렸다. 승마와 도박, 그리고 예쁜 여성과의 유쾌한 어울림을 즐겼던 찰스 2세는 끝이 뭉툭한 신발 윗부분에 비단으로 만든 장미를 붙였다. 궁정의 다른 부유한 남녀들은 이 신발 형태를 빠르게 모방했다. 화려한 색상과 장식으로 보다 돋보이고자 노력하면서….

때로는 노동자 계층의 신발과 유사한 형태가 유행하기도 했다. 펌프는 1555년 영국에서 '얇은 신발'로 묘사되었다. 마차가 멈췄을 때 문을 열 준비를 하기 위해 주인의 마차를 따라 달려야 했던 하인을 위해 코르크나 가죽으로 된 밑창이 있는 목이 낮은 신발이 고안되었던 것이다. 1730년까지 젊고 부유하고 활동량이 많은 사람들은 이 신발을 벨벳으로 바꾸어 많이 신었다.

굽의 발명은 가장 극적인 유형의 변화 중 하나를 가져왔다. 근본적으로 굽은 비와 눈, 진흙 속에서 스커트 자락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근동의 여성들은 이미 500여 년 전에 초핀(chopines)이라는 것을 개발했다. 터키 여성들이 신었던 나무로 된 초핀은 높이가 20센티미터 정도고, 진줏빛 파란 조개와 은으로 선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 샌들의 끈과 비슷한 가죽밴드로 발 주변을 둘러싸 고정시켰다.

이러한 초핀이 유럽으로 전파되어 16세기 이탈리아의 베니스에서는 너무도 많은 여성이 초핀을 신고 다녔다. 그래서 운하와 배의 도시 베니스의 부유한 여성들은 어딜 가든 걷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만약 걸으려고 했으면 이 초핀 때문에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인의 보조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곧 이 유행은 프랑스와 영국으로 번져갔는데, 이곳에서는 초핀의 높이가 무려 45센티미터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초핀에 대한 변화는 1500년대 초 이탈리아의 한 무명 구두 디자이너에 의해 일어났다. 그는 높이를 조절하여 초핀의 불편함을 없앰으로써 화제를 불러모았다. 이것은 밑창의 앞쪽에 쐐기형 코르크를 붙이고 뒤꿈치 쪽을 좀더 높게 만든 형태였다. 이후 높은 굽의 신발은 구두 제조공이 양쪽 발에 서로 다른 창을 만들어 대면서 급속히 퍼져나갔다. 코르크나 나무로 만들어진 8∼13센티미터 높이의 이 새로운 굽은 처음에는 너무 불편해서 신으면 다리가 퉁퉁 부었다. 그리고 여성들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꼭두각시같이 죽마를 탄 듯한 걸음걸이로 비틀거리며 걸었다. 프랑스인들은 이 새로운 신발을 아치 모양 때문에 '브리지 슈즈' 또는 신발이 내는 소리 때문에 '클리킹 슈즈'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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