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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

존 콜라핀토 지음 | 바다출판사
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

존 콜라핀토 지음/이은선 옮김

바다출판사/2002년 9월/304쪽/10,000원



1부 게임이 되어 버린 인생

페니스를 잃은 아이

론 라이머와 재닛 라이머의 부부생활은 누구보다도 밝고 희망차게 시작됐다. 두 사람은 1964년 12월 19일에 슈타인바흐 시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로부터 약 1년 후인 1965년 8월 22일, 재닛은 12분 차이로 브루스와 브라이언 쌍둥이 형제를 낳았다. 브루스와 브라이언 형제가 생후 7개월로 접어들었을 때 재닛은 두 아이가 소변을 볼 때마다 칭얼댄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저귀가 젖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기저귀를 갈아주어도 여전히 징징거려 두 아이의 페니스를 살펴보았더니 포피가 끝 부분을 막고 있어서 소변을 보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아이들을 진찰한 소아과 의사는 포경 수술을 받으면 쉽게 고칠 수 있다고 조언하여 부부는 두 아이에게 포경수술을 시켜주기로 했다. 1966년 4월 27일 소아과전문의 대신 일반의였던 휴오 박사가 집도하는 수술이 브루스에게 먼저 행해졌다. 휴오 박사는 브루스의 수술에서 수술용 메스가 아니라 소작기(燒灼器)를 썼다. 소작기란 바늘처럼 생긴 날카로운 침을 전기로 달군 뒤 절개 부위를 지져서 혈관을 봉합시키는 기구를 말한다. 그러나 수술 도중 이 소작기가 오작동하여 브루스의 페니스가 화상을 입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고 이후 며칠 동안 브루스의 페니스는 서서히 마르더니 차츰 부서지기 시작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초보적인 성기 재건수술의 수준과 정상적인 성생활의 어려움 등을 듣게 된 부부는 낙담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CBC 방송에 나온 존스 홉킨스 병원의 존 머니 박사가 성전환수술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 것을 지켜보았다. 존 머니 박사는 불완전한 생식기를 가지고 태어난 신생아의 경우 수술과 호르몬 치료를 통해 아이에게 적합한 성을 부여하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방송을 보고 난 부부는 편지를 썼고, 존 머니 박사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찾아오라고 답장을 했다. 그들 부부에게 이 편지는 “한 가닥 지푸라기”와도 같았다.

악연의 시작

라이머 가족의 처지를 알게 되었을 당시 존 머니는 불완전한 생식기로 인해 빚어지는 정신적인 문제점에 관한 최고 권위자로 명성을 날렸고, 선구자격인 존스 홉킨스 성전환수술 전문 클리닉을 설립한 인물로 전 세계 언론 및 방송에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머니의 주된 관심은 성 정체성을 결정짓는 것이 천성인지, 환경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논문에서 양성으로 태어난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생식기를 달고 태어난 어린이들도 신생아시기에는 성 정체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은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는 이론이 있지만 양성 환자들을 관찰한 결과로 알 수 있듯이 심리학적으로 볼 때 출생 당시 중립적이었던 섹슈얼리티는 성장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남성 혹은 여성으로 구분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머니의 주장에 대해 1950년대 중반의 의학계와 과학계는 거의 만장일치로 찬성표를 던졌다. 성은 후천적으로 결정된다는 환경론이 그 당시의 대세였기 때문이다. 남녀 호르몬을 근거로 한 천성론은 호르몬상의 차이점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이 잇따라 실패하면서 점차 설 땅을 잃었으며, 프로이트와 근대 심리학이 등장하면서 사회 습득 모델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라이머 부부가 텔레비전을 통해 존 머니와 첫 대면한 1967년 2월 무렵, 머니의 명성은 사실상 하늘을 찌를 정도였으며, 성의 구분이 모호한 머니식 치료법을 의학계는 만장일치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무렵 존 머니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밀턴 다이아몬드라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양성 신생아는 일반적인 신생아와는 달리 신경학적으로 남녀 양쪽 모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고 논문을 통해 주장하면서 머니의 이론을 반박했다. 게다가 다이아몬드는 논문 끝 부분에서 매우 기본적인 부분을 짚고 넘어갔다.

“‘정상적인 어린이도 신생아시기에는 심리적인 성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이론을 뒷받침하려면 정상적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으로 자란 남성이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근거가 될 수도 있는 사례가 바로 브루스의 경우였던 것이다.

브루스에서 브렌다로

1967년 초 론과 머니 부부의 방문을 받은 머니 박사는 쉬운 용어와 도표, 실제로 수술을 받은 어린이들의 사진을 동원하여 이들에게 성전환수술의 이점을 설명했다. 그는 브루스에게 “성행위는 물론이거니와 오르가슴을 포함한 모든 쾌감을 즐길 수 있는” 완벽한 여성 생식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브루스는 아이를 낳을 수는 없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고, 남성에게 성욕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존스 홉킨스 팀은 그때까지 양성으로 태어난 신생아를 대상으로 시술을 했을 뿐 브루스처럼 정상적인 생식기와 신경계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의 성을 바꾸는 수술을 해본 적이 없었다. 론과 재닛은 양성으로 태어난 아이와 브루스가 어떻게 다른지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고 털어놓는다.

성전환수술 제안을 좀더 생각해보겠다는 그들에게 머니는 재촉하는 기색을 보였고 부부는 결국 아들을 딸로 바꾸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여자들 성격이 훨씬 부드럽다고 생각했어요. 착각이었죠. 그리고 상처도 있고 하니까 브루스를 딸로 키우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1967년 7월 3일, 새로 태어나는 ‘브렌다(브루스의 새 이름)’는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페니스 절제 수술을 받았다. 론과 재닛은 아이가 여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모든 불안을 털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머니 박사 또한 브렌다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수술 한 달이 지난 후 썼던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볼티모어에서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나고 쌍둥이의 두 번째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드레스를 입힌 것을 시작으로 론과 재닛은 브렌다가 여자로 자랄 수 있도록 인형을 사다주고, 깔끔하고 단정한 습관이 몸에 배도록 가르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자라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브라이언이 나중에 말했듯이 “브렌다는 여자다운 구석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브렌다는 남자아이들이랑 어울려서 성 쌓기, 눈싸움, 군대놀이를 하며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브렌다는 항상 브라이이언의 장난감과 옷을 호시탐탐 노렸고, 이 때문에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전 제가 남동생이랑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저를 남자아이라고 생각했다기보다는 우린 그냥 ‘형제’라고 생각한 거죠. 드레스를 입고 있건 뭘 입고 있건 간에 마찬가지였어요.”브라이언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야 누나가 보통 여자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브라이언은 누나의 말괄량이 기질 때문이라는 엄마의 설명을 받아들였지만 유치원 친구들은 그렇지 못했다. 브렌다는 남녀 모두의 놀림감이 되었고, 심지어는 선생님들마저도 브렌다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서서 소변을 보려는 브렌다의 고집 때문에 부부는 머니 박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박사는 흔히 있는 일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고쳐진다는 답변을 해줄 뿐이었다.

그리고 여자와 남자로 양분된 유치원으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브렌다는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브렌다의 고민은 유치원 성적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유치원 생활 기록부를 보면 브렌다는 사교성, 수업 태도, 듣기․말하기․읽기 능력 모든 항목에서 기준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브렌다가 유치원을 더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는 통지서가 날아오자 부모들은 머니 박사에게 도움을 청해 머니 박사의 추천서를 유치원에 보냄으로써 겨우 브렌다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브렌다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고 브렌다의 학습 및 사회 장애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있으면 달라는 요구가 학교와 어린이 지도 클리닉 양쪽에서 빗발치자 결국 두 사람은 브렌다의 사고 소식과 성전환수술 사실을 밝혔다. 이 때문에 클리닉과 학교 측은 비로소 브렌다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브렌다는 1학년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거짓은 거짓을 낳고

1972년 머니 박사는 한 심포지엄에서 인간의 성 정체성을 결정하는 으뜸 인자는 천성이 아니라 학습과 환경이라는 주장을 제시했고 그 근거로 쌍둥이케이스를 소개했다. 머니 박사는 브렌다가 겪고 있는 학습․사회․정서상의 장애를 극복하고 여자로 자라나고 있다고 설명했으며, 이 사례는 남자와 여자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길러진다는 이론의 ‘결정적인 증거’로 급부상했다. 수십 년 동안 성차별에 반대해왔던 여성 운동계도 이를 적극 수용했다. 뿐만 아니라 쌍둥이케이스는 사회과학에서부터 소아비뇨기과학, 내분비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의 교재에 실리기 시작했으며, 머니는 이 사례가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최대한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 사례로 인해 ‘신생아시기에는 성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이론뿐 아니라 생식기 장애가 있는 신생아의 성전환수술까지 학계 전반에 걸쳐 인정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존스 홉킨스에서만 시술되던 성전환수술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현재는 중국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주요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계속되는 연구를 통해 정상적인 신생아의 성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밀턴 다이아몬드 등의 주장은 머니 박사의 엄청난 선전공세와 쌍둥이케이스의 충격에 밀려 사장되고 말았고, 그의 선전공세는 계속되었다.

만들어진 성에 관한 보고서

브렌다가 성전환수술을 받은 이후 라이머 부부는 머니 박사의 조언에 따라 브라이언과 브렌다를 데리고 정기적으로 존스 홉킨스 병원을 찾았다. 쌍둥이는 병원을 찾아가면서 부모님, 머니 박사, 그리고 박사의 스태프에 이르기까지 모두 뭔가 숨기고 있다는 확신을 품게 되었다. 쌍둥이가 보기에 머니 박사와 스태프들은 온갖 것에 특히 머니 박사는 남녀 생식기의 차이와 아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브렌다는 머니와 스태프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터득하여 거기에 맞게 대답했다. 머니 박사는 브렌다와 브라이언이 자라날수록 성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들에게 포르노를 보여주거나 삽입과 교미 흉내내기 방법도 강요했다. 특히 후자의 경험은 현재는 어른이 된 브렌다 즉 데이비드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어린이가 성 정체성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생식기의 생김새가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고 생각한 머니 박사는 육체적으로 완전한 성전환을 위해 브렌다에게 요도를 내리고 질관을 형성하는 수술을 권유했지만 브렌다는 이를 거부했다. 브렌다는 자신이 여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결코 여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파괴된 가족

차림새와 몸가짐을 놓고 부모와 브렌다의 견해가 심각해짐에 따라 집안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브렌다에게 쏠리는 양가 친척들 및 주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브렌다에게 쏠린 관심 때문에 반항적으로 되는 브라이언, 점점 악화되는 브렌다의 상황 때문에 그들 가족은 브리티시 컬럼비아로 이주했다. 머니 박사는 브렌다의 사례를 완벽한 것으로 포장하여 소개하였지만 그 동안 라이머 가족은 나날이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부부관계의 악화, 브라이언의 반항적 태도, 남성의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브렌다의 변화 때문에 나날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2부 출생의 비밀을 찾아서

저항하는 실험 대상

라이머 가족은 1976년 위니페그로 돌아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브렌다와 브라이언은 작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브렌다는 입학하자마자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불안해하는 모습이 교장의 눈에 띄어 어린이 지도 클리닉에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머니 박사의 ‘쌍둥이케이스’에 대해 알고 있던 치료진들은 사실과 너무도 다른 현실에 의아해했지만 머니 박사의 연구업적을 반박할 수는 없었으므로 머니 박사의 조언에 따라 치료를 계속했다. 그리고 존스 홉킨스 병원에 가는 것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는 브렌다를 위해 머니 박사를 설득해 위니페그에서 2차 성전환수술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리고 라이머 부부는 머니의 요구대로 존스 홉킨스 병원을 찾아가 정기적으로 면담을 받기로 했다.

눈 뜨는 성

브렌다가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봄 브렌다의 담당의사가 재니스 잉기문슨 박사로 바뀌었다. 잉기문슨 박사는 여자로서의 태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한편 남자다워지고 싶어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브렌다의 극단적인 대답을 듣고 당황스러웠다. 또한 브렌다가 수술에 대해 날카롭게 거부하자 충격을 받았지만 잉기문슨 박사 역시 브렌다가 여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을 확립했다는 머니 박사의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박사는 브렌다에게 ‘너는 여자’라고 강조하는 한편, 빨리 수술을 받기를 권유했다. 브렌다가 수술을 거부하는 이유가 진실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박사는 라이머 부부에게 사고를 알려 줄 것을 권유해 론이 이를 조심스럽게 시도하지만 당시 브렌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뜻하는 바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브렌다의 학교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브렌다가 느끼는 이질감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잉기문슨 박사와 수술을 놓고 줄다리기가 시작된 지 석 달째로 접어들던 시점의 상담기록을 보면 당시 브렌다의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대화에 끌어들이려고 해도 전혀 반응이 없다. 말이 없고 고개를 돌린 채 허공을 멍하니 쳐다볼 따름이다. 사무실 안이 답답하다고, 나가고 싶다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다.”

마지막 저항 그리고 해방

1977년 여름, 머니 박사는 브렌다에게 정상적인 여자아이가 되려면 호르몬 약을 먹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어깨가 넓어지고 엉덩이가 좁아지는 등 점점 남성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브렌다에게 여성의 2차 성징을 유도하려면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먹여야 한다는 것이 머니의 생각이었다. 거부하는 브렌다의 고집을 꺾고 이 약을 먹이기 시작하자 가슴과 엉덩이가 커지기 시작했는데 이를 수치스럽게 생각한 브렌다는 이 모습을 가리기 위해 폭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브렌다의 목소리는 점점 허스키하게 변해갔다. 남성 호르몬 분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환이 없는 데다 에스트로겐 치료까지 받고 있는데 남성의 2차 성징이 나타나다니 의학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현상이었다.

브루스 라이머가 브렌다 라이머로 바뀐지 11년이 지났지만 위니페그의 의료진 중에서 존 머니와 직접 만나 의견을 주고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브렌다의 호르몬 투약을 담당하고 있던 윈터 박사는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열린 세미나의 강사로 초대되면서 존 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윈터는 머니의 알 수 없는 자신감과 머니가 브렌다에게 보여주었다는 포르노 사진 때문에 심란하기는 했지만 호르몬 치료를 계속하기로 했다. 하지만 존스 홉킨스와 수술에 대한 브렌다의 반발은 점점 커졌고, 마침내 1978년 이루어진 면담에서 머니 박사가 성전환수술을 받은 트렌스젠더 여성을 소개하자 수술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한 브렌다는 머니 박사를 다시 만나라고 하면 죽어버리겠다고 가족들에게 말하기에 이르렀다.

혼돈에서 깨어나다

위니페그로 돌아오자마자 라이버 부부는 잉기문슨 대신에 브렌다의 상담을 맡은 쉴러 캔터 박사의 폭탄선언, 즉 성전환수술에 대한 실패를 인정해야만 하며, 원래의 성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골치를 앓아야했다. 부부의 거부로 이는 무산되었고, 부부는 지그문슨 박사의 진료를 거부했다.

위니페그에는 믿을만한 여성 정신과 의사가 없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진들이 애쓸 즈음 브렌다는 새로 시작된 중학교 2학년 생활에서 여성스러운 옷차림을 시도했다.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기 시작한 것이다.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트렌스젠더 여성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브렌다가 수술을 받지 않기 위해 여자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게다가 여자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면 정말 여자다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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