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꾸러기 돼지들의 화학피크닉
조 슈워츠 지음 | 바다출판사
장난꾸러기 돼지들의 화학피크닉
조 슈워츠 지음/이은경
바다출판사/2002년 7월/352쪽/10,000원
고양이 오줌으로 불내기
과립 모양이거나 덩어리 형태인 흰색의 각광(석회광, limelight)은 열을 받으면 빛이 난다. 그래서 전기가 실용화되기 전 극장 무대는 산화칼슘에 열을 가해 발생되는 빛으로 조명을 대신했다. 활활 타오르는 석회 앞에 커다란 렌즈를 놓고 그 렌즈에 빛을 모아 배우들에게 비춰주는 방식이었다. 그 빛은 매우 호화찬란했으며, 빛을 만드는 화학장치도 그만큼 커서 조금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석회에 의지할 필요가 없지만 석회 자체는 여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왜냐하면 석회는 우리 생활 곳곳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농업에도 광범위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널리 쓰이는 석회는 석회암(탄산칼슘)을 가열해서 만든다. 석회는 알칼리성 혹은 염기성으로서 칼슘 함유를 증가시키거나 산성화된 토양을 중화시키는 데 첨가된다. 산성비 문제가 특히 심각한 스웨덴에서는 호수에 석회를 뿌리는 일이 흔하다. 산성비는 대개 산업용 아황산가스 배출이 원인이며 이 가스는 물과 합해지면 황산을 생성한다. 그러므로 아황산가스가 공기 중에 배출되기 전 단계에 공간을 만들고 여기에 석회용액을 뿌려 아황산가스를 파괴시킨다면 산성비 문제는 상당히 줄어든다.
이 외에도 석회는 강철을 만들 때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그리고 옥수수빵을 만들 때 칼슘 섭취율을 높이기 위해 쓰인다. 그리고 마취효과를 내거나 접착제를 만들 때도 쓰인다. 산화칼슘의 쓰임새가 다양하고 흥미롭기는 해도 석회가 물과 만나 반응하여 수산화칼슘(소석회)을 만들어낼 때 어마어마한 양의 열을 발산한다는 사실을 알면 정말 놀라게 된다. 이런 반응이 나타날 때는 열이 너무 강해 섭씨 700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러므로 석회를 보관할 때는 완벽하게 건조시키고 이를 계속 유지해줘야 한다. 만일 물과 닿기라도 하면 화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형 나무범선들은 저장해둔 석회에 물이 새어들어가 뜻하지 않은 화재를 당하기도 했다.
석회에 얽힌 가장 특이한 이야기는 고양이 오줌에 관한 것이다. 몇 년 전 한 농부가 창고를 왕창 태운 적이 있었다. 창고에는 토질을 좋게 하려고 석회 주머니를 보관해두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화재의 원인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불에 타 죽은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석회 주머니 옆에서 발견되었다. 고양이가 석회 주머니에 소변을 봤기 때문에 불이 난 것이었다. 하필이면 석회에다 실례를 하다니…. 쯧쯧.
돼지들의 장난감
폴리에틸렌이라는 화학명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겠지만 그것은 쇼핑백이나 눌러 짜내는 플라스틱 용기, 마가린 튜브, 클링필름(식품 포장용 폴리에틸렌 막, 상품명) 또는 베개나 매트리스의 꼬리표 등에서 아주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물질이다. 이 물질의 발견에 대한 이야기는 1933년의 어느 월요일 아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에 있는 임페리얼 화학 산업에서 근무하는 두 명의 유기화학자들은 지난 주말에 착수한 실험을 검사하는 일로 한 주를 시작했다. 그들은 높은 압력에서의 화학 반응에 초점을 두고 연구하고 있었는데 에틸렌이라는 석유에서 추출해낸 가스에 다른 시약을 섞는 실험을 하다가 새로운 플라스틱, 폴리에틸렌을 발견했다.
이후 대량생산을 위해 필요한 기술이 개발되었고, 이 새로운 물질은 비행기에 레이더를 설치하기 위한 절연체, 먹다 남긴 음식물을 쉽게 저장할 수 있는 폴리에틸렌 용기에 쓰였다. 품질이 떨어지는 폴리에틸렌은 훌라후프에 사용되었고, 이 훌라후프라는 둥근 고리 하나가 온 미국인들을 매료시켰다. 로큰롤 때문에 미국은 새롭게 변화하는 중이었고 모든 사람들은 엘비스처럼 엉덩이를 흔들어대고 싶어했다. 훌라후프는 그 기술을 익히는 완벽한 도구였다. 1958년 매일 2만 개의 훌라후프가 조립라인에서 쏟아졌다. 동시에 14개의 훌라후프를 돌려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사람까지 생기는 등 굉장한 대중성을 얻었다. 하지만 많은 근본주의자들은 엉덩이를 흔드는 행동이 성적인 의미를 풍긴다고 훌라후프를 반대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부적절한 열정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훌라후프 돌리기를 금지시키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폴리에틸렌을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쓰레기 봉투와 쇼핑백 그리고 클링필름은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또 병 속에 넣는 긴 대롱 때문에 아기들은 더 이상 트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아기들은 이제 우유를 먹으면서 공기를 함께 빨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돼지 농장 주인들까지도 폴리에틸렌 기술 발달의 덕을 보았다. 좁은 우리에 갇혀 사육될 때 돼지들은 서로 괴롭히는 경향이 있었다. 서로의 꼬리를 물어 잡아당겼던 것이다. 이런 행위는 감염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돼지 사육자들은 종종 돼지우리에 고무 타이어나 볼링공을 놓아두어 돼지들의 관심을 돌리곤 했다. 게다가 돼지들은 이런 장난감들을 밀고 당기고 굴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했다. 이로 인해 몸무게가 증가하고 적당하게 근육이 발달되어 육질도 좋아졌다. 이후 고밀도 폴리에틸렌 개발으로 새롭게 향상된 돼지 장난감공도 나왔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사실 돼지는 더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공은 물로도 쉽게 닦이고 구멍이나 바느질 자국도 없어 쉽게 더러워지지도 않는다. 또한 돼지가 자라남에 따라 크기를 조절할 수도 있다.
마술사들이 진짜 비둘기를 만들어내듯 화학적 마술을 이용해 플라스틱 비둘기를 만들어내면 어떨까. 그 날개를 무엇으로 만들겠는가? 그래, 폴리에틸렌! 이런 날개를 좀더 크게 만들 수 있다면 아마 돼지에게 붙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틀림없이 돼지들은 폴리에틸렌 공을 굴리는 놀이보다 훨씬 더 즐거워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얘기하는 폴리에틸렌이 과연 언제쯤 그 사용처가 바닥날까? 답은 확실하다. 돼지가 훨훨 날 때까지다.
샴페인 거품 속에 숨겨진 미학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샴페인 하우스를 여행하면서 안내원에게 전통적인 받침접시 모양의 샴페인 잔이 실제로 루이 15세의 애첩인 퐁파두르 부인의 가슴 모양을 본뜬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샴페인 잔의 실제 기원이 무엇이든 샴페인 잔은 샴페인을 따라 마시기에 부적당한 모양이라는 것이다. 이 고상한 음료의 가장 끌리는 점이라면 거품이 인다는 것인데 받침접시 모양의 잔에 술을 따르면 술이 공기와 접촉하는 면이 넓어지고 거품이 빠져나가는 비율로 공기와 섞인다. 그러므로 샴페인은 길고 좁은 잔으로 홀짝홀짝 마셔야 이상적이다. 이산화탄소의 용해성은 기온이 올라갈수록 줄어들므로 샴페인을 차갑게 해서 내놓으면 우리가 잔에 따르기 전에 빠져나가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최소화시켜 샴페이 따뜻한 입에 들어왔을 때 짜릿한 느낌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음료를 따를 때 생기는 작은 공기 거품은 붙잡아둘 수 있으며 용해된 이산화탄소는 이 거품들 속으로 증발된다. 그리고 이산화탄소가 주변의 용액보다 밀도가 낮기 때문에 거품이 표면에 뜨게 된다. 같은 이유로 휘젓는 막대기 역시 표면에 많은 결점을 만들 수 있으므로 샴페인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샴페인은 주로 프랑스의 샹파뉴 지역에 있는 피노트누아 포도가 압착되어 하얀 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18세기에 장님 수도승인 돔 페리뇽은 포도주가 발효되기 전에 포도주 병을 완전히 밀봉하면 완벽한 마무리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렇게 하면 이산화탄소 거품이 빠져나가지 못하므로 거품이 많이 생기는 샴페인을 생산할 수 있다. 그는 여러 가지 다른 즙과 신중하게 섞어가면서 포도주의 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 샴페인은 돔 페리뇽이 처음 쓰던 방법 그대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섞여진 즙은 여과 과정을 거쳐 병에 담긴다. 핑크색 샴페인은 붉은 포도주를 첨가해서 색깔을 낸다. 코르크 마개를 끼워 철사 틀로 고정시키기 전에 두 번째 발효를 시키기 위해 설탕과 이스트를 포도주에 조금 더 섞는다. 두 번째 발효가 완성되면 병목은 냉동용 소금 용액에 담겨 병목 안의 포도주와 침전물이 굳어질 때까지 잠겨 있게 된다. 그 뒤에 뛰어난 기술자가 병의 코르크 마개를 딴다. 마개가 갑자기 튀어나오도록 말이다. 병이 재빨리 열린 순간 설탕이 첨가되는데 이때 첨가되는 양에 따라 단맛, 쌉쌀한 맛, 덜 쌉쌀한 맛과 같은 샴페인의 맛이 결정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샴페인은 몇 년이 지난 후 코르크 마개가 열리면서 선을 보인다. 코르크 마개를 열 때는 마개를 움켜쥐고 빼낸 후 병을 부드럽게 돌려 주면서 샴페인을 따라야 거품이 정확히 잔에 떨어진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한 프랑스 발명가는 압력을 빼내면서 잡아당길 수 있는 끈 달린 코르크 마개를 고안했다.
이제 샴페인의 거품과 코르크 마개 그리고 두 번째 발효에 대해 모두 알았으니 샴페인에 대해 한 가지만 더 알아보자. 샴페인을 마시면 빨리 취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한마디로 예스다. 이산화탄소는 알코올이 혈액으로 가는 속도를 가속화한다. 샴페인에서 나오는 가스는 위로 들어가 위와 작은창자 사이의 판막을 열리게 한다. 위보다 창자에서의 흡수가 더 빠르므로 알코올의 효과가 거품이 나지 않는 다른 음료에 비해 더 빨리 느껴진다. 비행기에서 샴페인을 마시면 특히 더하다. 왜냐하면 비행기에서는 압력이 낮아 거품이 훨씬 빨리 방출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마디. 병을 열기 전에 샴페인 병을 흔드는 것은 세련되지 못한 행동이다. 슈퍼볼이나 스탠리 컵 혹은 월드 시리즈에서 승리한 후 누군가의 머리 위해 샴페인을 들이붓겠다고 생각한 경우에만 용납되는 행동이다. 그런 사내들은 거품을 쏟아버릴 여유가 있으니까.
하느님의 발냄새
프랑스 시인 레옹 폴 파르그는 캐멈베어 치즈를 들고 숨을 깊이 들이마셔 냄새를 맡은 다음 외쳤다. “음, 신(神)의 발냄새!”라고. 이 치즈의 향을 낙산(酪酸)과 메틸 메르캅탄(악취나는 유기황 화합물)을 섞어놓은 듯한 냄새라고 말한다. 이 무시무시한 합성물의 냄새를 땀이 밴 발에서도 맡을 수 있다.
캐멈베어, 브리, 로크포르, 림버거 같은 치즈는 곰팡이와 박테리아로 숙성된다. 이런 미생물들은 효소를 만들고 효소는 치즈 속의 지방과 단백질을 천천히 분해시켜 냄새는 고약해도 풍미는 다양한 합성물을 만든다. 동시에 이런 화학물질은 치즈를 부드럽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표면이 숙성된 치즈들은 항상 겉을 얇게 벗겨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부의 핵심부분은 단단해지는 반면 겉층은 진액처럼 흐르게 된다. 이런 치즈를 먹기에 가장 알맞은 때는 효소 활동이 막 중앙에까지 이르러 약간 무르게 된 시점이다. 치즈의 지방에서 낙산을, 그리고 단백질에서 메틸 메르캅탄을 방출시키는 미생물은 사람의 발가락 사이에 숨은 유기체와 매우 흡사하다. 여러 실험 결과 발톱의 추출물과 림버거 치즈가 매우 유사한 지방산 구조를 가졌음이 밝혀졌다. 훨씬 더 재미있는 사실은 벌거벗은 지원자들을 모기의 미끼로 사용해 관찰했는데 주로 발목이나 발 쪽을 주요 식사 거점으로 하는 유형의 모기들은 림버거 치즈에도 잘 달라붙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치즈가 인기 있는 식품이 되자 사람들은 대량으로 생산했고 두고두고 먹기 위해 저장하기 시작했다. 저장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장소는 동굴이었다. 동굴의 서늘한 기온이 부패를 늦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는 공기로 운반되는 곰팡이 포자가 특정 치즈를 이상적인 번식지로 삼아 치즈 표면을 보풀이 인 것같이 탁한 층으로 감싼다. 용감한 사람들이 그 탁한 표면을 맛보고 맛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렇게 해서 표면을 발효시키는 치즈 산업이 생기게 되었다. 로크포르 치즈 얘기도 있다. 프랑스 로크포르에 있는 페니실리엄(푸른 곰팡이속의 곰팡이) 포자의 잠복처인 석회암 동굴과 이런 곰팡이 포자들이 그 고전적인 치즈를 만들어 냈다. 요즘에는 곰팡이 부유물을 치즈 위에 뿌린 후 스테인리스 바늘로 구멍을 뚫어 곰팡이가 잘 파고들게 한다.
미친 수도승과 잠자는 개
‘미친 수도승’ 그리고리 라스푸친은 러시아 니콜라스 황제의 궁정에 속한 매우 활기 넘치는 사내였다. 이 문맹의 시베리아 농부는 니콜라스 황제의 아들 알렉시스가 허벅지에 상처를 입고 쇠약해져가고 있었을 때 그의 생명을 구했다. 그로 인해 억센 머리카락과 제멋대로 자란 턱수염, 그리고 건장한 몸의 라스푸친은 로마노프 왕가의 인정을 받았다.
알렉시스는 어머니인 알렉산드라에게서 혈우병을 물려받았는데 그녀는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였다. 라스푸친이 제정 러시아의 왕후인 빅토리아 여왕에게 이야기한 증손자의 생명을 구하는 방법은 의사들에게 기대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 충고는 적절해서 의사들이 여기저기를 찌르는 등의 검사를 그만두자마자 알렉시스의 내부출혈이 멈추었다.
라스푸친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기이한 행동이 심해지자 궁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라스푸친의 적들이 마지막으로 잡은 지푸라기는 황제가 정치적인 문제에 관해 그의 충고를 받아들였을 때였다. 유소포프 왕자는 라스푸친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꾸몄다. 라스푸친은 전에도 칼에 찔리는 상처를 입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후 왕의 총애를 받고 있어서 왕자와 공모자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왕자는 라스푸친을 파티장으로 꾀어내 청산가리로 장식한 케이크를 대접했다. 라스푸친은 먹고 또 먹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경악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공모자 한 명이 그에게 총을 쏘았는데 그가 정말 죽었는지 보려고 유소포프가 몸을 구부리자 그 ‘시체’가 벌떡 일어나 유소포프를 쫓아오기 시작했고 두 발의 총성이 더 울린 후 마침내 쓰러진 그는 네바 강에 던져졌다. 부검 결과 익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왜 청산염이 말을 듣지 않은 걸까? 청산염은 악명 높은 살인마이며 인체 내의 가장 중요한 효소 가운데 하나인 시토크롬(세포의 산화 화원에 작용하는 색소 단백질) 산화제를 활동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 효소는 세포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중요한 화학반응을 촉진시키며, 비활성화되었을 때는 심장과 폐 같은 신체 주요 기관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발생되지 않아 곧 죽음이 뒤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독살이 실패한 확실한 이유로 공모자들이 오래된 청산가리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너무 오래 반응해서 이미 제 기능을 못하게 된 청산가리였다는 말이다. 이런 상태에서 청산가리는 천천히 탄산칼륨으로 전환되어 공기 중에 시안화수소 가스를 배출한다. 신빙성 있게 들리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있다. 라스푸친이 사고를 당하기 바로 2년 전 러시아의 서커스 코끼리가 미쳐서 처분해야만 했다. 그 코끼리는 크림 케이크를 상당히 좋아해서 코끼리를 죽여야 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은 수 백개의 밀가루 반죽 케이크에 청산가리를 넣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코끼리가 케이크를 다 먹었는데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결국 그 불쌍한 코끼리는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대개 청산가리는 매우 ‘신뢰할 만한’ 독이다. 그래서 냉전 중에 소련의 KGB 요원들은 정적을 없애는 데 청산가리를 사용했다. 1957년 망명 중이던 우크라이나의 정치 지도자이자 뮌헨 정책을 기초로 한 반소체제 신문의 출판인이 바로 청산가리로 살해당했다. 출판인을 처치할 임무를 맡은 KGB 요원은 청산가리와 황산을 섞어 시안화수소 가스를 배출하는 기계를 갖고 있었다. 시안화수소 가스는 곧장 희생자의 면전으로 보내지고 그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밝혀졌다(우연히도 이것은 나치의 가스실에서 사용하던 것과 같은 화학반응이며, 미국의 일부 중에서 사형을 집행할 때 쓰인다).
그렇다면 어째서 KGB 요원은 암살할 당시 자신은 가스에 영향을 받지 않은 걸까? 방독면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공개적으로 누군가에게 몰래 접근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어야만 했는데 소련의 화학자들은 인체가 소량의 청산염을 제거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토대로 독창적인 해독제를 만들어냈다. 암살하는 날 아침, 요원은 아침식사로 소량의 티오황산나트륨을 섭취했다. 운명적인 만남을 갖기 바로 직전 입안에서 아질산 아밀 앰플을 깨문 다음 숨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이렇게 하면 혈액 내에서 메테모글로빈이라는 변형된 헤모글로빈의 합성이 일어난다. 메테모글로빈은 청산염에 매우 강한 친화력이 있어 청산염이 분해되어 소변으로 배출되는 반응에서 필요로 하는 이온인 티오황산염으로 전환되어 제거될 수 있을 때까지 독을 붙잡아둔다. 해독제의 복용량은 정해진 분량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양을 초과해서도 안 된다. 해독제인 아질산 아밀 자체가 매우 유독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청산염의 독을 처리하는 데 아질산 아밀을 깊이 호흡한 후 질산나트륨(마찬가지로 메테모글로빈을 발생시킨다)과 티오황산나트륨을 정맥주사하는 방법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