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
에릭 J. 카셀 지음 | 들녘
고통받는 환자와 인간에게서 멀어진 의사를 위하여
에릭 J. 카셀 지음/강신익 옮김
들녘/2002년 4월/515쪽/23,000원
제1장 흔들리는 질병관 : 근대적 질병관의 대두와 몰락
질병을 하나의 일반적 현상으로 볼 것인지, 국소적 실체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의학의 역사를 통틀어 잠시도 멈춘 적이 없었다. 첫 번째 개념은 질병의 근원을 병든 사람 내부와 외부의 자연적 힘의 불균형에서 찾는다. 두 번째 개념은 질병을 어떤 실체를 가진 것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실체는 외부에서 침입해서 의학사상을 번갈아가며 지배해왔으며, 때로는 어떤 한 개념이 수백 년 동안 의학사상을 지배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가 사람의 몸을 이해하는 방식은 위대한 해부학자와 초기 생리학자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의학의 기본이 되는 이론이 실제 상황에 얼마나 잘 적용되는지의 여부는 의사업무의 효율성, 의사의 행동, 환자와의 관계, 의료 전문직 내부의 관계, 심지어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권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인간 행동은 반드시 이론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의료행위 역시 이론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데 이는 의사들이 질병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믿음 위에서 의료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들이 이론을 경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더라도 사실은 정확한 진단을 내리려는 노력에서 보는 것처럼 어떤 종류의 이론에 따른 행동이다. 의사와 일반인이 질병과 원인, 치료에 관한 하나의 이론에 대해 강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때 그 이론에 더 힘이 실리고, 의사라는 직업 역시 더 강하게 통합되고 견고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의사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기본적 이론이 분열되고 약점이 노출되기 시작하면 의사라는 전문인 집단 전체는 일반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그들 내부에서의 응집력마저 잃게 된다.
180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질병이론은 의사들 사이에 공통된 이해의 기반을 마련했을 뿐 아니라 의학에 과학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 질병이론에 따르면 임상의사의 목표는 병든 사람에게서 질병이라는 특별한 원인을 지닌 특별한 현상을 찾아내어 진단과 치료의 토대로 삼는 것이다. 당시 과학은 ‘과학을 통해 질병의 본질과 원인, 치료법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환상’에 도취되어 있었다. 진단의 정확성을 향한 끝없는 추구는 그후 의학의 특성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의학계가 공유하던 질병이론에도 두 가지 약점이 있었는데 첫 번째는 하나의 질병에는 오직 하나의 원인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신체 또는 자연계의 모든 기능은 구조에서 비롯되고 따라서 기능의 변화는 구조의 변화에 따르는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첫 번째 개념에서 전염병은 가장 완벽한 모델이기도 했는데 이 개념은 항생제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환상적 치료법도 질병의 원인에 직접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설득력을 잃었다. 두 번째 개념은 환자가 아무리 고통스러워하더라도 구조적 변화가 없다면 질병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약점으로 작용했다. 전통적 질병이론에서 구조-기능 관계가 차지하던 중심적 지위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그것이 이론적으로 부족해서가 아니라 새로이 발견된 과학적 증거와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에 걸쳐 문화적, 사회적 요인이 질병의 발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견이 의학교육을 바꾸지는 못했다. 서구의 과학적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질병 - 해부학적이든 생화학적이든 특정한 원인과 장소를 가지고 있는 실체 - 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20세기에는 질병이론뿐만 아니라 의학에 대해 일반인이나 의사들이 기대하는 책임 역시 크게 확대되었다. 공중보건운동의 초기 성과에도 불구하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미국에서 의학의 대 사회 인식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후 빈민, 이민자, 노동자들의 질병은 바로 사회환경의 결과이며, 따라서 의학은 사회환경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많은 의사들이 의학은 개인의 질병치료를 넘어서 사회적 발전에 기여해야 할 기본적 역할을 가진다고 믿게 됨에 따라 여러 대학에 공중보건과 예방의학을 담당하는 학과가 설치되었다. 이 새로운 경향은 대공황의 충격과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소비 확대로 인해 사라져버린 듯 하다가 1960년대와 1970년대 사이에 상승과 하강을 경험했다. 하지만 개인의 생활습관과 사회환경을 떠나서는 질병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신념은 계속 살아남았다.
제2장 바람직한 의사상의 변화
예전엔 의사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환자가 거의 없었으나 지금은 많은 환자들이 의사들의 의도와 판단에 대해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을 보낸다. 과거에는 의사들에게만 맡겨졌던 의사결정 과정에 이제는 환자들도 참여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치료방법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하며 치료의 결과에 대해서도 많은 기대를 한다. 이러한 기대치의 상승은 대중매체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해 의학연구의 성과를 과대 선전했던 의료계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환자의 의식변화는 의료 서비스 전반에 걸쳐 그 효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상업의료의 등장, 독립채산제에 의한 응급의료센터의 운영, 광고와 의료마케팅의 대두, 의사와 의학에 부여되어 있던 신비적 요소를 제거하려는 노력 등을 통해 그 구체적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50년의 역사는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1920년대의 위대한 의사들은 의학에 든든한 지적 바탕을 부여하기 위해 과학에 접근하면서도 그들의 내부에 간직해온 인도주의적 이상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후 과학이 자연의 모든 비밀의 해법과 모든 질병의 치료법을 줄 것이라고 믿게 됨에 따라 의학적 주체로서 의사의 중요성은 빛을 잃었다. 과학은 의학을 주도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의과대학 교육이 지향하는 기본 가치가 되었다. 하지만 의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성장함에 따라 의학에서의 윤리적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의학은 치료받는 사람의 안녕과 복지에 일차적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도덕적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의학은 스스로를 도울 수 없는 사람이나 극히 약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치료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법을 발전시킬 수 없는 지식은 근본적인 의미의 의학지식이라고 할 수 없다. 과학과 윤리는 의학에서 통합된다. 의학은 과학만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넓은 의미의 인간에 봉사하는 것이므로 의학에서 과학이 지배적 위치를 점할 수는 없다. 올바르게 이해된 과학은 인간의 필요에 반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리고 이상적인 의사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토대는 의학의 목적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마련될 수 없다.
제3장 고통의 본질
고통이 무엇이며, 고통의 해소를 위해 의사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료종사자나 의료비판자 할 것 없이 먼저 전통적으로 믿어온 몸과 마음, 주체와 객체, 인간과 사물의 이분법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마음과 몸의 이분법은 몸을 의학의 영역에 배당하고 마음은 그런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 사고방식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했으며, 이로 인해 인간을 마음에 배당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인간이란 개념은 이렇게 마음, 정신, 주관적인 것과 동일시되었는데 이는 의학이 객관적인 범주에만 관계하게 됨에 따라 인간이 위치할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몸과 마음의 이분법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한 고통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의학의 영역에서 추방되거나 아니면 단순히 육체적 통증과 같은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게 된다. 고통을 육체적 통증과 동일시하는 태도는 고통받는 환자를 비인격화시키는 잘못을 범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이분법을 거부하지 않으면 육체적 통증이 인간적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의 존재조건을 의학적인 것(육체와 관계된 것)과 비의학적인 것(육체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나누는 발상으로 인해 의사들은 육체의 질병에만 관심을 집중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환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그리고 기억과 과거의 경험이 질병과 치료에 관계된 것일 때 그것은 곧바로 현재의 질병과 치료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전에 앓았던 병, 의사와 병원과의 관계, 복용했던 약물, 기형과 장애의 경험, 기쁨과 성공, 또는 슬픔과 실패와 같은 삶의 경험들이 병앓이의 방식을 결정한다. 질병과 치료에 대한 인간적 의미는 현재뿐 아니라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생겨난다. 인간은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음식, 환경, 사회적 행동양식 등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요소들이 질병의 양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어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신념과 가치체계, 역할, 사람들과의 관계, 일반적 의미의 권리와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개인으로서의 위치 등은 고통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이다.
치료의 결과로 고통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의사들보다도 통증의 경감이나 잃어버린 기능의 회복에 더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 반드시 요구되는 이해와 지식이 부적절하고 부족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의학이 목적이 인간을 고통에서 구해내는 데 있다면 온갖 어려움이 있어도 이 작업을 해내야만 한다.
제5장 의사-환자 관계의 미스터리
이 장에서 말하는 의사-환자 사이의 관계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 - 한 사람은 환자이고 다른 사람은 의사라고 하는 - 를 가리킨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다른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인간적인 관계들은 모두 이 기초에서 파생된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마음이 면역과 그밖의 신체적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으며, 따라서 의사가 환자의 생리적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병원에서 시행되는 치료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관계가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대체적으로 거부되거나 과소평가되거나 무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의학적 치료는 매우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것으로만 여겨진다.
환자의 질병에 내재된 의사에 대한 위협 요소 중 하나는 환자에 대한 의사의 책임이다. 의사는 그들이 습득한 특별한 지식으로 인해 환자의 신뢰를 받는 동시에 사회로부터 일정한 권력을 부여받았으며, 이로 인해 상응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언제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의사들은 환자를 위협하는 상황에 대해 동일한 위협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의사와 환자는 상호적인 관계로 얽혀 있다. 효율적 진료를 위해 의사는 환자와 함께 일하는 데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병력을 청취하고, 환자와의 일치된 교감을 이루고, 심한 불쾌감을 유발할 수도 있는 치료법에 대해 환자의 동의를 얻어내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환자의 요구사항에 민감하며, 감정적인 지지를 보내는 등의 능력이 없는 의사는 믿을 만하지도 않고, 제대로 된 의사라고 할 수도 없다.
좋은 의사는 의학 지식에 통달하고 병자를 인간적으로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의사인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충분히 통달하고 있어야 한다. 형식적인 교육으로 좋은 의사의 덕목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성공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에게 가까이 다가갈 필요가 있다. 친밀성이 이러한 접근을 가능케 한다. 위대한 임상의사의 재능 중 하나는 윤리적으로 허용되는 최대의 친밀성을 유지하여 환자에 접근하면서도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환자를 위한 최대한의 치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제7장 질병에 집착할 것인가, 병든 사람을 보살필 것인가
대부분의 의사들이 환자가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구체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주로 환자가 앓고 있는 병을 일으킨 원인 - 질병 - 을 찾는 데만 신경을 쓴다는 사실에 환자들은 자주 불만을 터뜨린다. 언뜻 생각하면 문제를 발견하는 일과 질병을 찾아내는 일은 똑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둘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이 둘은 질병이 병환의 직접적 원인일 때만 일치한다. 증상의 원인이 될 만한 질병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의사들이 그 증상의 원인을 끝까지 추적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질병을 어떻게 진단하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증상은 의사에게 진단을 내릴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정보임에 틀림없다. 의사는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근거로 진단을 위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증상은 질병의 가장 직접적 표현으로 간주된다. 기침은 폐렴에 의한 기관지의 자극 때문에 생기며, 숨이 찬 증상은 폐기종 때문에 폐활량이 감소하여 생기는 현상이다. 증상을 이처럼 질병의 직접적 표현으로 이해하게 되면 질병과 증상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게 된다. 따라서 분명히 허리가 몹시 아픈 데도 여러 가지 검사결과 추간판이 신경근을 압박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면 그 통증은 실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만약 어떤 증상이 아주 심각한 질병을 의심케 한다면 진단을 위해 시행하는 여러 가지 부가적인 검사를 통해 의사들은 질병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때 환자는 증상을 주관적으로 느끼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왜곡시키기 때문에 환자가 표현한 증상을 질병의 직접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의사들이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환자가 호소하는 허리의 통증이 신경계의 이상과 아무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증상을 질병의 직접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는 종말을 고했어야 했다. 정신착란, 아주 위험한 상황, 아주 중요한 목표를 추구하는 경우 등에는 심각한 병적 증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질병이론과 과학적 의학은 전통적으로 질병의 객관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에 의학은 아직도 병리학적 과정으로만 증상을 보고 있다. 증상에 대한 의학의 개념 역시 보편성에 근거를 두는 과학적 의학의 경향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의사들은 일반적으로 과학적 의학의 관점에 따라 증상을 이해하는데 이는 개별 환자가 이해하는 증상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이 때문에 환자들이 느끼는 증상 - 평소와 다른 비정상적인 몸의 느낌 - 을 의사들은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질병 과정에서 변화하는 생리적 현상은 환자의 개인적 의미가 추가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개별화한다. 따라서 개별 환자가 느끼고 의사에게 보고하는 어떤 질병의 증상은 결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다른 사람과 같을 수 없다. 그래서 마치 아기를 분만하듯이 질병을 환자의 복잡한 상황에서 따로 떼어내 관찰하고 치료하고자 하는 의사들의 바람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의사가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실체로서의 질병은 구체적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 속에만 존재하며, 결코 환자의 생활 현실로부터 독립된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임상의사가 연구하고 치료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지금 여기에 있는 바로 이 병든 사람이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추상적 질병은 아닌 것이다.
제8장 치료의 대상
전통적으로 의사들은 각각의 질병을 일으키는 특정 원인을 찾아냄으로써 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질병 과정의 어떤 지점에 개입하여 그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들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항생제를 이용해서 어떤 감염성 질병을 치료할지라도 그 과정이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직선적으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환자의 성격, 사회적 요인, 그리고 질병이 발생하는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치료방법은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질병 이외의 요인에 의해서도 치료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치료법의 선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무작위 대조표준 임상실험이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치료한 환자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비교하는 대조표준 실험으로 인해 이렇게 증명된 치료법이라도 나중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지만 이 방법은 새로운 치료법을 채택할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