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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긷는 샘물여행

최성민 지음 | 김영사
미국 국립공원 어디엔가 간헐적으로 물이 솟는 온천이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도 그런 샘물이 있다.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에 있는 때때수가 그것이다. 때때수는 '기다림'이라는 미덕을 가르쳐 주는 샘물이다. 이 샘물은 한 번 솟구치면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다시 솟는다. 아무리 성질 급한 사람이라도 진득한 마음으로 다시 물이 솟기를 기다려야 한다. 물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해 일정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금덩어리를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도를 닦는 심정이 아니면 하지 못할 일이다. 그런 뒤에 얻어 마시는 물. 뭐든지 후딱후딱 해치우는 '빨리빨리 문화'가 횡행하는 요즘 때때수는 우리에게 참을성을 길러준다.



때때수가 솟는 간격은 일정하지 않다. 장마 때는 약 40분, 가뭄 때는 2∼3시간 간격으로 물 솟음이 일어나고, 물 솟구치기는 각각 20∼30분 동안 지속된다. 샘물의 이름도 '때때로 솟는 물'이라고 해서 '때때수'라고 불린다. 계촌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갈수기인 겨울철이나 물의 양이 많은 여름철에도 샘물이 솟구치는 시간만은 일정하다고 한다. 물의 양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쉬는 것을 반복하니 자연의 신비함이 놀라울 뿐이다. 온천이 아닌 보통 샘물이 간헐적으로 솟는 예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일이라고 한다.



때때수는 청태산 구제사라는 절 안 오른편 언덕에 있다. 샘물은 오래된 물푸레나무가 몇 그루 서 있는 바위 절벽 위쪽 작은 굴에서 나온다. 솟구친 물은 푸른 이끼가 낀 4∼5m 절벽 아래로 대통을 타고 떨어지는데 마치 작은 폭포처럼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옛날에 어떤 나병환자가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들어와 3년 동안 이 물을 마시고 깨끗이 나았다고 해서 '때때 약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때때수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은 땅 속에서 솟아난 물이 지표면 근처에서 흔들리거나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함지박 같은 자연 돌확(돌을 우묵하게 파서 절구 모양으로 만든 물건)에 고였다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바깥으로 쏟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전남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에는 마을 사람들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자랑하는 명물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김재식 옹이고, 다른 하나는 '방울샘'이다. 김 옹은 이름을 말하면 웬만한 사람은 금방 알 만한 사람이다. 그는 전라남도 도지사를 지냈고 국회의원도 역임했다. 그런 그가 말년에 고향에 낙향하여 은거하고 있는데 여느 노인네처럼 아랫목이나 차지하고 유유자적 지낸다면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세계적'이니 뭐니 하면서 열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서울에 가족을 두고 내려와 태어난 집에서 혼자 지낸다. 혼자 빨래도 하고 숙식도 직접 챙긴다. 그의 요즘 본업은 농사꾼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혁 농사꾼'. 농촌에 개량종 볍씨를 보급하고 농민신문을 직접 만들어 다른 지역 농사꾼 및 일본 등 외국의 농촌과도 최신의 농사 정보를 주고받는다. 큼직한 공직을 다 거친 칠순 노인이 농사를 짓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사정은 뭔가 우리 농사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 쌓아놓은 인맥을 이용해 일본의 우수한 벼 종자나 토마토 씨앗 등을 어렵게 들여다가 이 땅 풍토에 맞게 품종을 개량하여 농민 후계자들에게 무료로 분양하고 있다. 현대판 문익점이라고나 할까? 김 옹은 도지사 시절 "우리 농사는 시대에 맞게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김 옹이 늘그막에 고향에 붙어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데는 무엇보다도 집 담장 너머에 있는 '방울샘'이라는 샘이 큰 위안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방울샘은 물이 솟는 모습이나 샘의 모양이 매우 희귀한 샘이다. 이름 그대로 물구멍에서 물이 날 때마다 물방울이 뽀글뽀글 솟아오른다. 2∼3분 간격으로 그렇게 물이 솟으니 일종의 간헐천인 셈이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물이 솟는 샘은 위에 말한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때때수'와 이곳 장성 방울샘 두 곳뿐이다. 때때수는 나병을 낫게 할 정도로 피부병에 효험이 있는 샘이고, 방울샘은 정기가 좋은 샘으로 이름이 나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방울 샘물을 마시고 김재식 옹을 비롯해 판검사 3명, 국회의원 2명이나 나왔다고 자랑한다.제주도는 '삼다도'라 해서 다른 곳에 비해 많은 것도 있지만 예로부터 물이 귀한 섬이다. 화산섬이어서 눈이나 비로 내린 물이 잔구멍이 많은 화산석인 현무암으로 다 빠져버린다. 그러나 사람이 사는 곳에 필시 좋은 샘이 있거늘 제주도에 탐라국 이래로(또는 그 이전부터) 많은 사람이 살아왔으니 그들의 뿌리를 적셔준 샘이 어찌 없었겠는가. 제주도의 옛 마을들은 대부분 해변가에 자리잡고 있다. 현무암 사이를 흘러내린 물이 바닷가에서 용천으로 샘솟기 때문이다.



한국 장수마을의 하나로 유명한 애월읍 곽지리도 제주도 북서해안에 있는 마을인데 마을 앞 모래밭에서 솟아오르는 '과물'이라는 물이 바다를 메울 기세로 팡팡 솟는 샘을 두고 있다. 이런 샘이 '용천'이다. 이밖에 제주에는 구시물, 장수물, 오래물, 운랑천 등 옛 문헌에 기록된 좋은 샘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고, 새마을운동인가 시멘트바르기운동인가 하는 것 때문에 지금은 사라졌지만 '가락천'이라고 해서 제주 사람들이 '전설 속의 샘'으로 여기는 샘도 있었다. 이렇게 보면 제주에 물이 귀하기는 하지만 다른 곳에 없는 독특한 샘들은 많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물맛이 뛰어난 제주의 샘들 가운데서 산방산 산방굴 거꾸리샘의 물맛을 으뜸으로 친다. 이 샘은 수량은 적지만 다른 샘과는 개념부터가 다른 샘이다. 물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굴 천장에서 솟아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거꾸리샘'이다. 소주 내리듯 한 방울씩 바위 천장에서 떨어져서 10m 아래 바닥에 고인다. 나는 이처럼 천장에서 솟아 떨어져 내리는 샘을 두 군데 더 본 기억이 난다. 전남 해남 달마산 '총창샘(물이 떨어지면서 '총- 창-' 소리를 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과 경북 영양군 청량산 김생굴 옆에 있는 '청량샘(일명 '김생수')'이 그것이다. 각기 주위 환경과 물맛의 개성이 독특하니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신방굴 거꾸리샘 역시 여느 샘이 갖지 못한 신령스런 기운을 안고 있다. 우선 산방굴과 산방산은 범상한 곳이 아니다.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가파도와 마라도가 코앞에 바라다보이는 곳에 있는 산방산은 제주의 많은 볼거리 중에서 아무리 봐도 싫증이 안 난다는 곳이다. 바깥 벽은 온통 풍화작용에 깎이고 먹혀 들어가서 하르방 조각을 닮았다. 제주의 수많은 기생 화산들 가운데 분화구가 없는 산이어서 별난 해석도 달고 있다. 원래 한라산의 봉우리였던 것이 뽑혀서 산방산이 되었고, 그 뽑힌 자리는 백롬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산방산은 조각품처럼 아기자기하면서도 육중한 몸체에 마라도 쪽 수평선을 걸치고 있어서 더욱 아름답다. 그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 산방산 남서쪽 중턱 벼랑에 산방굴이 있고, 그 굴 안에 거꾸리샘이 있다. 이 굴 안에 맑은 산 공기와 남태평양의 싱싱한 바닷바람이 들어와 샘물에 녹아든다. 산방굴의 너비는 20여 미터, 높이는 50미터쯤 된다. 굴 입구에는 수백 년 된 아름드리 노송 한 그루가 굴 안을 살짝 가려줌으로써 굴 안에서 바라보이는 마라도 쪽 풍치에 운치를 얹어준다.이처럼 살 생(生) 자 그 자체인 자연 속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몸의 피로가 씻겨질 텐데 그 굴 천장 바위 틈에서 거꾸로 솟아나 떨어지는 석간수 중의 석간수를 한 모금 떠 마시고 마라도를 바라보면 그야말로 물맛이란 게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거꾸리샘의 물맛은 온몸이 싸늘할 정도로 차고 질감은 마치 비단이 목젖을 휘감고 넘어가는 듯하다.



샘이 물맛의 총기에 있어서나 물이 나는 내력에 있어서나 범상치 않다보니 특별한 효능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물맛이 차고 투박하고, 물빛이 투명한 것으로 보아 산방굴 거꾸리샘은 좋은 양수(숫물)임에 틀림없는데 산봉우리 석간수가 다 그러하듯 이 물도 예로부터 남성의 양기를 강하게 해준다는 믿음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직접 체험한 일은 아니지만 거꾸리샘의 효능에 대해 한 가지 단언(?)할 수는 있다. 산방굴에 올라와서 탁 트인 남태평양의 파노라마를 마주하며 마시는 거꾸리샘물 한 모금은 어떤 피로회복, 강장제보다 훨씬 효능이 좋은 생명수라는 것을!



그런데 내가 얼마 전 이 산방굴 거꾸리샘을 찾아갔을 때 그 아래에 있는 절 산방굴사 주지 김수만 스님이 거꾸리샘 물의 효능에 대해 확실한 증언을 해주었다. 엄숙하게 다문 입술,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그 스님은 매우 도가 깊은 분 같았다. "물이 약효가 좋답니다. 피부병이 죄다 낫지요. 또 힘이 좋아서 이 물을 마시면 아들을 잘 낳습니다." 정말 수만 스님은 팔순이 다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혈색이 발그레해서 스물을 갓 넘긴 처녀 같았다. "그래, 누가 이 물 마시고 아들 낳는 것 직접 보셨습니까?" "나도 아들을 여섯이나 낳았으니께…."샘물과 건강장수의 관계가 훤하게 드러나는 곳이 이른바 '장수마을'이다. 보건복지부나 예산기획처 통계국은 해마다 한국의 장수마을들을 뽑아 발표한다. 마을의 모든 인구에서 노인 수가 차지하는 비율이 큰 곳이 장수마을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청년들은 다 도회지로 나가고 노인들만 남아서 된 '장수촌'도 있을 수 있다는 서글픈 사연도 있다. 어쨌든 당국이 이런저런 사유를 다 고려하여 뽑은 장수촌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좋은 샘물이 우선이고, 채식 위주의 식생활과 즐겁고 끊임없는 노동,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넉넉하고 여유 있는 마음씨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사는 것이다.



이 가운데 장수촌의 샘물은 일명 '오래살이 물'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맑고, 차고, 가볍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무색, 무취, 무미에 샘의 자연미도 뛰어나다. 전국 최장수마을로 여러 번 뽑힌 적이 있는 전남 구례군 마산면 상사마을 '당물샘'은 오래살이 물일 뿐만 아니라 일찍이 '안 죽는 물'로 소문이 나서 일제 때 콜레라가 남부 지방을 휩쓸었을 때 이웃 마을 사람들이 이 샘가로 피난 겸 물동냥을 왔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장수마을들과는 달리 상사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병장수의 으뜸 요인을 오로지 당물샘이라고 믿고 있다. 상사마을에선 70객은 장년이고 환갑 노인은 아직 청년 취급을 받는다. 100살이 다 된 이양순 할머니는 논둑길을 지나갈 때 건장한 다리로 마파람을 일으키고 고희 지난 아들의 건사는 물론 그 며느리에게 바늘귀를 다 꿰어서 준다.



상사마을은 는개구름에 덮여 있는 지리산 왕시루봉 자락에 안겨 있다. 마을 사람들은 지리산 산삼 뿌리에 씻겨 온 물이 당물샘으로 모인다고 믿고 있다. 당물샘은 상사마을의 생명수다. 10여 년 전 고려대 예방의학팀이 당물샘물의 수질을 분석했을 때 대장균이 한 마리도 없는 '전국 최상의 급수원'으로 판명되었다. 이 마을 토박이인 의성 김씨의 선조가 조선시대 말엽 남원, 구례 등 전라도 일대의 고을들을 돌아다니며 명당을 찾던 중 당물샘물을 약저울로 달아보니 무게가 가장 무겁고 물이 맑아서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좋은 샘이 다 그렇듯이 당물샘은 늘 수량이 일정하다. 삼년대한이나 6월 장마에도 줄거나 넘치지 않는다. 또 길어다가 한 달 넘게 독에 담아두어도 물때가 끼지 않는다. 샘가에는 좀개구리 한두 마리가 간혹 물을 찾아오지만 자기들이 오래 있을 곳이 아님을 깨닫고 곧 물러난다.



상사마을 노인들은 당물샘이 아니더라도 천성적으로 장수의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 당물샘이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외지인들이 물을 길러 오거나 텔레비전 카메라가 줄지어 찾아와 들이대어도 허허 웃을 뿐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화를 내거나 돈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 당물샘의 넉넉한 기운을 받아 심성이 모두 후덕해진 탓일 것이다. 당물샘은 언제나 지리산 여행길에 물 길러 들르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고 가까이에 있는 지리산 플라자 호텔에서는 트럭으로 물을 퍼 가기도 한다. 이양순 할머니를 비롯한 상사마을 노인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사진 모델 주문을 받으면서 유명인사가 되었는데 "사람에 치여 명대로 못 살겠다."고 가끔 농담 섞인 아우성을 치신다.차(茶)는 동양이 자랑하는 마실거리다. 동양의 정신문화가 그윽하기 그지없는 것은 차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치통이나 두통을 앓을 때 할머니들이 대밭에서 훑어다가 우려 주시던 그 '만병통치약' 또한 찻잎이었다. 서구의 커피의 카페인 중독성 문제와는 달리 동양 차의 카페인은 중독성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일찍이 서양인들이 동양의 식민지에서 눈독 들여 가져간 것 가운데 하나가 차다. 홍차는 영국이 인도에서 차를 실어가던 항해길 도중에 떠서(발효) 된 것이다. 아편전쟁도 사실은 동양의 차를 확보해 가져가기 위한 전쟁이었다.



한국에서도 일찍이 차가 전래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통일신라시대 때 김대렴이 당에서 씨앗을 가져다가 심은 것이 퍼진 것이라고 알고 있으나 차는 백제 때 불교의 전래와 함께 들어왔다는 게 오랜 세월 차와 더불어 온 스님들의 판단이다. 따라서 한국 차의 시배지(처음 심은 곳)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삼국사기』에 지리산 일대라고 했는데 그 중에서도 하동 쌍계사 주위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순천(승주) 선암사 주지 지허 스님에 따르면 백제 때 들여온 차는 벌교 가마금 징광사 주변에 심어져 전라도 일대를 중심으로 퍼졌다고 한다.



우리 차가 언제 들어와 어디로부터 퍼졌는지 확실하게 정리하고 있지 못한 터에 우리에게서 차를 배워간 일본은 '다도(茶道)'를 창출해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써먹고 있다. 일본인 야부기타가 일본 풍토에 맞게 개량한 차나무 야부기타종이 일제 때 한국에 역수입되어 보성다원이나 oo화학 설록차 단지 같은 곳에 진을 치고 있다. 차나무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몇몇 다도 유파들이 한국에 지부를 두고 사범수료증을 발급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국보로 숭상한다는 '이도챠완'이라는 찻잔은 임진왜란 때 잡혀간 조선 도공들이 만들었거나 조선에서 들여간 것이라고 하는데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새미골이라는 곳에 가면 이 이도챠완의 본고장임을 입증하고자 유적(도자기 파편과 몇몇 무덤)들을 발굴해 두고 있고, 이도챠완을 복원·생산하는 가마들이 차려져 있다. 그곳 도예가들의 일부는 일본에 유학 가서 이도챠완을 배워왔다는 경력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조상들의 뛰어난 예술혼을 전승·발전시키는 일이 왜 훌륭한 일이 아니겠는가마는 혹시라도 그런 일이 일본인들의 구미에 호응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



우리 선조들은 "차는 차일 뿐"이라고 해서 다도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다도라는 것은 일본의 형식주의와 상업주의가 낳은 말이다. 또 인삼차니 유자차니 하는 것도 일본 쪽에서 요새 나온 말이다. 차는 차 한 가지일 뿐 인삼차니 유자차니 하는 것은 '인삼탕'이나 '유자즙'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

전라남도 해남 대둔사 일지암은 '한국 차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일지암을 찾는 사람들은 늘 끊이질 않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드높여진 우리 차의 향취를 음비해본다든가 초의 선사의 '선다일미(禪茶一味)' 사상의 참뜻을 되새겨보고자 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일지암 차밭에 대한 관심보다 유선여관 진돗개가 따라오는지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 그것이 바로 한 '베스트셀러'가 퍼뜨린 지적 허위의식의 정체다. 일지암에 들른 발길을 가장 뜻깊게 하는 것은 일지암 차밭에서 찻잎 몇 개를 따서 씹은 뒤 일지암 초당 뒤란에 있는 젖샘(유천) 물을 한 모금 마셔보는 일이다. 한국 전통차의 상큼한 내음과 우리 샘물의 젖 같은 단맛에 새삼 놀랄 것이다.강진 다산초당(와당)의 경우가 그렇듯이 일지암에서도 초의 선사의 체취와 혼을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는 유일한 물건은 차나무와 젖샘이다. 일지암 초당은 복원한다고는 하지만 상상해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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