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은 화가 날수록 웃는다
김경일 지음 | 바다출판사
녹색은 주로 하층민이 입는 색상이다. 녹색은 파장이 짧아 차가운 이미지를 동반하는 색으로 중국인에게 차가움은 책벌의 의미다. 차가움은 누구나 꺼리는 이미지이며, 녹색이 하층민을 상징하는 것에는 계급적 냉대가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 남성에게 녹색 모자를 선물하는 것은 큰 실례다. 현재 중국 서민 남성들의 의복 색상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녹색 계통이다. 과거에는 천민의 색상이었지만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전 인민을 대변하는 메인 컬러로 변한 것이다. 공산혁명 이후 녹색은 모두를 평등하게 만드는 정치적 색상으로 변모했다. 또 찡쮜의 얼굴 그림에서 녹색은 의리와 용맹을 뜻한다. 그런데 이 의리와 용맹은 충성의 붉은색과는 다소 다르다. 요즘 정치권에 자주 등장하는 끼리끼리의 충성과 맹세, 그러니까 조금은 뒷골목적인 냄새가 나는 그런 의리와 용맹의 색이다.
중국인에게 검은색은 단순한 무채색이 아니다. 고대에 황제가 입는 웃옷은 검은색이었는데 그것은 하늘이 밝아올 때의 여명의 상징이다. 중국인의 검은색은 다양함의 융합색이다. 중국인의 검은색은 라오지가 말하는 玄(현)색과 같은 색이다. 라오즈는 표현하기 힘든 도의 세계를 설명하면서 "검고 또 검다"고 했다. 즉 블랙홀의 색상이 바로 현색이며, 중국인의 검은색이다. 중국인들은 그을음으로 먹을 만들고 먹색만으로 예술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검은색은 식자층의 색이며, 철학의 색이다. 하지만 마오쩌똥 시대에 검은색의 '헤이(黑 흑)'는 반동을 뜻했다. 혁명과 전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란 뜻이었다. 그러나 중국인에게 검은색은 또 침착함과 깊음의 상징이다. 찡쮜의 얼굴 그림에서 검은색은 정직하고 고상한 인품, 공평 무사의 상징이다.
백색 역시 철학의 색이지만 결백과 터부의 색이기도 하다. 고대에 백색은 결단의 색이었다. 제후들이 맹약을 할 때는 백마를 잡아 그 피로 글씨를 썼다. 결백의 색상이다. 그러나 현재의 일상생활에서 백색은 가장 꺼려지는 터부의 색이다. 중국인들에게 백색은 죽음의 색이다. 흰 양초는 장례 때만 쓰며, 흰색 봉투는 조의금을 낼 때만 사용한다. 이러한 터부 때문에 찡쮜 얼굴 그림에서 백색은 주로 간사하고 거친 성격을 나타낸다. 『삼국지』의 차오차오(조조)가 얼굴에 온통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찡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만 봐도 즐겁다. 중국인들은 경극 속에서 자신들의 자화상과 우상을 본다. 붉은 꽌위의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충성과 깊은 의리, 딱 편 어깨에 민초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검은 포청천의 얼굴, 그리고 간악한 차오차오의 빤질거리는 하얀 얼굴. 일곱 색깔 중국인을 이해하는 기초는 바로 이 색채 심리학이다. 중국인들은 전혀 촌스럽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색깔을 분명히 할 뿐이다. 중국인들이 체크 무늬를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찡쮜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찡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중국인의 원색 선호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중국을 무엇으로 특징지을 수 있을까? 서구학자들이 골머리를 싸매고 연구하는 주제다. 그래서 만들어진 제목이 '무엇이 중국을 중국으로 만들었는가?'다. 제목은 그럴싸하지만 답들을 보니 신통치 않다. 역사를 헤집고 인물들을 철학적으로 분석한다고 해서 중국이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국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중국 철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 속에서 중국을 오해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의 중국을 오해(?)하려면 이른바 제자 십가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놓지 못한 번역서들을 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물론 필자도 이 과정을 거쳤다. 착실하게.
제목에 썼지만 현대 중국 사회엔 네 명의 '자'만이 현역으로 있을 뿐이다. 공자, 노자, 투자, 놀자. 나머지는 모두 은퇴 상태. 많은 한국 사람들이 공자의 나라, 중국에서의 공자 분위기에 대해 궁금해 한다. 아니, 공자야 이미 '공려쨔 지유(공부가주)'의 술병 모델로 나섰으니 더 이상 궁금할 건 없고, 유교의 흔적이 궁금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의 유교 사상은 풍비박산난 상태다. 우선 유교 문화의 폐해를 딛고 일어선 공산당에 의해 그 가치가 부정되었고, 다시 1966년부터 10년 동안 있었던 '원화 따거밍' 때 공자와 유교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물론 몇몇 학자들에 의해 리바이벌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수직윤리와 여성차별의 원죄 때문에 되살아나기는 어렵게 생겼다. 따라서 하버드의 뚜웨이밍이 아무리 중국은 새로운 유교 문화를 창조해가고 있다고 우겨도 세 식구 살기도 빠듯한 공간에 친부모나 시부모를 모시는 것은 아예 엄두도 못 낸다. 유교의 뭉쳐 살기 문화가 빚어놓은 모순은 점점 더해가기만 할 뿐 해결책은 모호하다. 게다가 중국 역사 속에서 한번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혈연, 지연, 학연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부패 문제 역시 유교 문화가 낳은 역기능의 생명력이 얼마나 질긴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혁명과 강제에 의해 뿌리가 잘린 유교 문화. 그러나 그 질긴 생명력은 여전히 중국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이번에는 노자를 보자. '우웨이 쯔란(무위자연)', 살라는 건지 죽으라는 건지 알쏭달쏭한 뜻 때문에 그 해석만 가지고도 수천 년의 세월을 허송한 중국인들. 노자의 생각이 결국 가난을 낳고 말았다는 깨우침이 조금 드는가 싶었는데 문제는 더욱 복잡해져 있다. 자연과 풍광을 자랑하던 노자의 나라, 중국이 이제는 환경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의 하수처리와 쓰레기 문제는 그렇다 치자. 사람 많고 원래 지저분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노자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쌍썬 루오웨이(상선약수 :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를 떠들며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자랑도 없고', '늘 낮은 데로만 흐르는 겸손 그 자체'로 물 자랑을 하던 중국인들이 먹을 물도 없어 허둥대는 광경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런커우 원티(인구 문제)', '환찡 원티(환경 문제)', '쑤쯔 원티(소질 문제 : 국민들의 의식수준 문제)'. 이른바 중국의 3대 문제 중 '환찡 원티'는 최고의 환경전문가인 노자가 만들어 냈고, '쑤쯔 원티'는 위선자들을 대량생산해낸 공자와 서로 못 믿고 속이게 만든 공산주의가 책임져야 한다. '런커우 원티'는 책임을 물으려야 물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인구의 자연증가와 함께 발생하게 될 교육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대규모 실업사태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이번엔 투자를 보자. 투자 열기야말로 현대 중국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떵샤오핑이 시작한 '가이거 카이fang'은 다른 말로 하면 '외국이여, 이곳에 투자하라. 우리가 배우겠다.'다. 떵의 뒤를 이은 짱저민의 임기 중 최대 업적은 '인찐 와이쯔(인진외자 : 외자유치)'다. 역대 중국 지도자 중 가장 많이 해외 출국을 하는 그의 활동은 사실 중국 투자설명회다. '중국은 세계에서 마지막 시장이요, 개척지가 아니냐? 빨리 빨리 줄서라!' 그러면서 세계를 돌아다녔다. 사실 요즘 중국인들을 만나보면 크나 작으나 '터우쯔(투자)' 이야기들뿐이다. 부동산에 투자하고, 주식에 투자하고, 영어 학습에,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에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고, 투자하고, 투자하고. 모두들 마치 주인 없는 금 덩어리 주우러 가는 심정으로 들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기회는 언제나 위기와 함께 하는 법. 전문가들의 예측에 의하면 WTO와 함께 중국에는 약 4,000만 명의 실업자가 새로 생긴다. 주로 '궈요우 치이예(국유기업)'가 민간기업으로 정리되면서 쫓겨날 사람들이다. 이른바 정리해고다. 철의 사나이 쭈롱지가 경제를 관리하면서 부실 국유기업을 정리하자 1990년대 중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수천 만의 '싸강(하강 : 실업자)'들이 국내 요인의 '싸강'들이라면 WTO를 기점으로 생겨나는 이 4,000만의 '싸강'은 국제 요인에 의한 '싸강'들이다. 실업인구만 해도 남북한 인구에 육박하는 이들 '싸강'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그들이기에 서슴없이 '한국에서 이민 좀 받아가라'는 농담을 던진다. 공자에서 시작한 나라가 결국 이 '놀자'패들 때문에 발전의 발목이 잡힐 수도 있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싸강'들은 '망리유(맹류)'라 불리는 무호적 인구들과 함께 중국 내의 이른바 '띵스 짜딴(정시작탄 : 시한폭탄)'들이다. '강한 놈은 살아남고 약한 놈은 도태되는'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와 사회보장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사회주의 사이에 낀 연약한 인생들의 삶이 폭발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놀 수밖에 없는', 그래서 본의 아니게 '놀자'가 되어버린 그들. 그들은 분명 공자에게 배반당한, 공산당에게 버림받은, 그리고 '투자'에게 비웃음을 사고 있는 노자의 자식들이다. 수천 만이 넘는 어떻게 보면 1억에 가까울 '싸강'과 '망리유'의 '놀자'패들도 모자라선지 최근에 타이완에서 흘러들어 온 새로운 '망리유'들까지 등장했다. 이름하여 '타이리유(대류)'. 이들은 중국에 투자하면서 들어온 타이완 기업의 직원들로 사업이 망해 현지에서 해고된 사람들이다. 또 타이완 등지에서 경제나 폭력 사범 등으로 수배받다 도피해온 사람들이다.
공자에서 시작했지만 공자 본인은 술집 마담이 되어 버렸고, 노자에게 맡겨 보았지만 남은 건 갈증, 이제 옛 성현의 시대는 가고 '투자'와 '놀자'라는 새로운 성현들이 등장했으니 그들의 새로운 '자왈'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투자 왈 "일류 투자가가 중국에 오면 일류로 남지만 이류 투자가가 중국에 오면 삼류로 떨어진다. 삼류 투자가가 중국에 왔다면 '망리유'에 합류할 게다."공자, 노자, 투자, 놀자『삼국지』는 가짜다. 『삼국지』는 원래 서기 184년에서 280년까지 약 100년간에 걸친 전쟁실록이다. 전쟁이란 본래 사연이 많은 법이다. 전쟁에 얽힌 인물들에 대한 해석이 이 동네 저 동네 사랑방 별로 구구했고, 그 구구한 사연을 모아 소설로 엮은 것이 바로 『삼국지』라는 책이다. 따라서 『삼국지』는 내용이 고정된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엿가락처럼 저마다 한 가닥씩 제 소리를 넣을 수 있는 특이한 소설이다. 이것을 '핑디엔(평점)'이라고 한다. 평도 해보고 점도 찍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핑디엔'의 공간 때문에 『삼국지』에는 가짜 이야기들이 많다.
『삼국지』는 중국 대륙, 타이완, 홍콩 할 것 없이 꾸준히 읽힌다. 특히 얼마 전 비디오가 나오고부터는 이른바 '『삼국지』 열풍'이 불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삼국지』를 읽는가? 마치 『삼국지』를 안 읽으면 상식이 부족한 사람으로 찍히는 듯한 분위기가 우리에게는 있다. 각 대학의 권장도서에는 언제나 『삼국지』가 들어 있다. 늘 방학만 되면 마음으로 꼽는 베스트셀러의 상위권에 랭크된다. "한번 읽어야지." 하면서도 끝까지 안 읽는 것이 『삼국지』다. 사실 『삼국지』는 그리 재미있는 소설이 아니다. 현란해 보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내용이다. 표현도 단순하고 만날 싸움질이지 별 게 아니다. 그러면 왜 중국인들은 이 『삼국지』에 죽고 못 사는 것일까? 거기에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묘한 감각이 있다.
『삼국지』에는 차오차오, 리유뻬이(유비), 쏜취엔(손권)이라는 세 인물이 나온다. 『삼국지』에는 원래 호랑이 같은 18제후가 있었다. 이토록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데 이 세 명만을 대표로 꼽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중국의 지역적 특성과 관계가 있다. 중국은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다. 이 넓은 땅덩어리를 동서남북으로 다녀보면 완전히 별나라다. 보면 볼수록 그들의 지역색이 만드는 문화적 특성이 너무나도 선명하다. 전 세계 중국인들이면 누구나 다 아는 속담이 있다. "베이징 사람 눈에 다른 지역 사람들은 모두 아랫것들이고, 상하이 사람 눈에는 다른 동네 사람들은 모두 촌놈이고, 광저우 사람 눈에 남들은 죄다 가난뱅이들!"중국은 가는 곳마다 느낌이 다르다. 특히 『삼국지』로 구분되는 세 덩어리 공간은 참으로 개성이 뚜렷하다. 말 다르고, 음식 다르고, 기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고, 인심도 다르다. 북방 사람들은 어깨가 넓고 엉덩이가 퍼져 있다. 남방 사람들은 어깨가 좁고 코도 좀 납작하다. 엉덩이가 좁고 위로 올라붙어 있다. 이른바 북방 몽골형 혈통과 남방 말레이 혈통의 차이다. 베이징 사람들은 고마울 때 호들갑을 떨며 "아, 쎼쎼 쎼쎼."한다. 상하이 사람들은 다소 새침하게 "야야농."이다. 남쪽 끝으로 내려가면 살살 웃으며 "뚜오쌰."다.
차오차오와 리유뻬이, 그리고 쏜취엔은 전혀 다른 세 사람이다. 그들은 사용하는 사투리가 다르고 즐기는 술과 차가 다르다. 그들은 성격이 다르고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가 각각 별나다. 지역적 차별성에서 만들어진 서로 다른 선명한 캐릭터가 『삼국지』를 재미있게 하는 진짜 이유다. 단순히 이리저리 쳐들어가서 이기고 지고 하는 병정놀이가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각 지역의 사람들은 '우리 편 이겨라' 하는 응원심리를 가지고 『삼국지』를 보는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삼국지』를 읽어보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팅구오(청과)"로 대답한다. '들어보았다'는 말이다. 들어보다니? 중국인들은 『삼국지』를 책으로 읽는 것보다는 경극 등을 통해 소리로 듣는 것을 훨씬 즐긴다. 희한하게 꼬이는 억양과 사투리가 섞인 사운드는 겨드랑이가 간질간질할 정도로 죽여준다. 이렇듯 중국인들은 『삼국지』를 책으로 보는 것보다는 경극이나 '썅성(상성 : 두 사람이 하는 개그)'으로 많이 듣는다. 각 지역의 말투나 정서를 소리로 들으면서 재미를 배가하는 것이다. 시나 속담 등이 지니는 지방 정서와 짜릿한 느낌도 『삼국지』를 읽고 들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의 재미다. 우리 나라의 호남 사람들도 동편제, 서편제 해가면서 소리의 맛을 갈라 음미한다. 소리맛에 빠진 그들의 '얼쑤'는 억지로 되는 게 아니다. 『삼국지』의 맛은 바로 요런 데 있다.
이런 면에서 한국어로 된 『삼국지』는 재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또 구어체의 느낌과 지역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의 표현이 천편일률적이다. 또 다양한 문화풀이가 결여되어 있다. 원전에서 느끼는 감흥은 사라지고 한국적 상상력들만 살아 있다. 또 말들이 너무 점잖다. 『삼국지』는 전쟁 야사들이다. 전쟁터에서 나오는 용어들이 오죽하겠는가? 대륙, 홍콩, 타이완의 중국인들이 『삼국지』를 자꾸 보고 싶어하는 이유는 바로 말투, 표현 등에 묻어 있는 지역 지역의 재미와 향수 때문이다.
여기에 반해 일본인들의 『삼국지』 읽기는 한 단수 위다. 그들은 지도를 동원하고 어휘 분석 등을 해가며 『삼국지』가 담고 있는 진짜 맛을 느껴보려고 애쓴다. 중국인들의 진짜 삶의 모습에서 우러나오는 침 튀기는 표현을 읽으려 한다. 우리도 좀 깊이 들어가 보자. 깊은 곳에 진짜가 있다. 필자는 앞으로도 배낭을 메고 중국을 헤맬 것이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진짜 『삼국지』를 제대로 한번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1. 하나의 중국은 없다
『삼국지』로 읽는 중국, 중국인중국인도 모르는 중국어중국에는 커다란 강이 둘 있다. '황허(황하)'와 '창쟝(장강)'이다. 河(하)는 뭐고 江(강)은 뭔가? 같은 물인데 왜 이름을 달리 했을까? 이것은 남북 사투리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그것은 마치 김치를 전라도 지역에서 '짐치'로 부르는 현상과 동일하다. 중국인들과 한두 마디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출신지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 대개 성격이 짐작되고 풀어갈 화제도 대충 정리가 된다. 광주 가서 DJ 욕하면 눈치보이고, 대구 가서 YS 칭찬하기 힘든 것처럼 한두 마디 듣고 다음 동작을 결정해야 한다.
중국에는 커다란 방언 갈래만 일곱 개다. 이들은 거의 외국어다. 다시 작은 방언 갈래로 나누면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