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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혁명, 그 열림과 닫힘

홍성욱 지음 | 들녘
네트워크 혁명, 그 열림과 닫힘

홍성욱 지음

들녘/2002년 5월/256쪽/10,000원



1. 네트워크 혁명과 네트워크 기술의 세계화

네트워크 혁명은 사람과 사람이 인터넷같이 빠르고 값싼 정보통신기술의 네트워크로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가진 정보와 활동 사이에 새로운 상호연관과 상호의존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컴퓨터가 상용화된 지 약 50년이 되었고, 개인용 컴퓨터가 만들어진 지 25년이 지났지만 네트워크 혁명은 인터넷이 상용화된 1990년대 이후에 시작했다. 이제 10년도 채 안 됐다. 인터넷을 쓰는 사람은 아직 전 세계 인구의 6%에 불과하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이제 걸음마를 막 시작한 헤라클레스다.

정보통신 네트워크가 전지구적이기 때문에 네트워크 혁명도 본질적으로 전지구적이다. 이 네트워크 혁명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법칙이 있다. 첫째, 무어의 법칙. 컴퓨터의 파워가 18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으로 인텔의 공동 설립자 고든 무어가 처음으로 주장했으며, 지금까지도 대략 들어맞고 있다. 이 법칙은 18개월마다 같은 값으로 두 배로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살 수 있다거나 18개월마다 컴퓨터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진다는 식으로 해석된다. 둘째, 메트칼피의 법칙. 네트워크의 가치는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법칙으로 근거리 통신망 이더넷의 창시자 메트칼피에 의해 제창되었다. 네트워크에 기초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특히 주목해야 할 법칙으로 많은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기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가 됨을 시사한다. 셋째, 카오의 법칙. 창조성은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는 다양성에 지수함수로 비례한다는 법칙으로 경영 컨설턴트 존 카오가 제창한 법칙이다. 이는 지금까지 무어의 법칙이나 메트칼피의 법칙에 비해 덜 주목받았지만 창조적인 지식 생산이 사회와 경제의 각 영역에서 점차 중요하게 되면서 앞으로 지식기반사회를 관통하는 중요한 법칙으로 부상할 것이다.

인터넷의 범지구적 확산으로 대표되는 네트워크 혁명은 미래 사회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정보통신 네트워크의 확산을 통해 미래의 사회가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고, 풍요로울 것이라고 예측한다. 나는 미래 사회가 현재보다 더 진보한 사회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 진보는 정보통신 네트워크가 자동적으로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트워크 혁명은 기존의 부와 권력을 재분배하고, 중심-주변의 경계를 새롭게 그리는 효과를 낳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와 권력의 더 큰 집중을 낳고 새로운 중심의 힘을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이 강력하게 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정보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도 하지만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감시의 시선을 더 강화하기도 한다. 지금 발전하는 새로운 네트워크가 어떤 방향으로 쓰이는가는 이를 둘러싼 제 사회 세력들 사이의 끊임없는 힘 겨루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미래가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를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작업은 어떻게 네트워크 혁명의 ‘열린’ 측면을 극대화하고 ‘닫힌’ 측면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2. 네트워크 경제의 변화 ―지식, 생산, 돈의 유동성 증대

‘정보적 생산양식’과 지식기반경제

마누엘 카스텔스는 지금의 사회를 ‘네트워크 사회’라고 규정하며 네트워크 사회의 경제를 ‘신경제’라고 파악한다. 신경제는 19세기에 발달한 산업자본주의 경제와 본질적으로 다른데 핵심적인 차이는 신경제의 생산양식이 ‘정보적 생산양식’이며, 전지구적이고 네트워크의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는 것이다. 정보와 지식은 네트워크 경제의 키워드다. 네트워크 경제의 핵심 인력은 정보와 지식, 심벌과 이미지, 비트를 다루는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지식기반경제라는 말은 이제 상식적인 용어가 되었지만 인간의 경제활동에 지식이 사용된 것은 사실 무척 오래되었다.『지식 사회』를 쓴 니코 스테어는 근대사회에서 지식이 3단계를 거치며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단계는 ‘의미의 단계’로 세상에 대한 더 좋은 이해를 추구했던 계몽사조의 시기에 해당하고, 두 번째 단계는 ‘생산의 단계’로 지식이 산업에 응용되기 시작한 19세기이고, 세 번째 단계는 지금 ‘실행의 단계’로 지식이 기계에 포함되어 모든 활동을 수행하는 단계이다. 19세기 후반에 산업에 응용된 자연과학의 지식이 자본과 노동에 비해 경제 발전의 부수적인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지식은 생산과정에 직접 개입해서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혁신과 성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

생산의 세계화

국경을 넘나들며 기업활동을 하는 초국적 기업은 이미 1970년대에 중요한 경제 행위자로 등장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이러한 경향이 훨씬 더 가속화되고 있다. 그것은 정보통신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이 초국적 기업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유리한 다입지 유연성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음성, 텍스트, 이미지 등 각종 데이터 통신 비용의 하락으로 원거리 조정이 용이해졌고, 특히 사내 인트라넷의 발달은 지역적으로 떨어져 있는 기업조직 간의 통신을 수월하게 했다. 원거리 조정이 쉬워지면서 기업이 생산이나 정보처리작업을 여러 지역에 나누어 수행하는 일이 잦아졌다. 생산을 분산시킨 형태로 취함으로써 기업은 각국의 환율 변동에서 덜 영향을 받고, 국가마다 규제 체계가 다른 틈을 이용할 수 있으며,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고, 정부나 노조의 압력에 대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보통신기술은 원거리 조정만 용이하게 한 것이 아니다. 공장에 도입된 컴퓨터와 로봇은 지식집약적이고 소프트웨어에 기초한 생산라인을 가능케 함으로써 생산품의 빠른 전환과 차별화를 가능케 했다. 생산관리뿐 아니라 생산과정도 비교할 수 없게 유연해진 것이다. 정보통신 네트워크는 마케팅을 일국가적인 것에서 초국가적인 것으로, 무차별적이고 확률적인 마케팅에서 개개인의 특성에 맞추어진 마케팅으로 바꾸었다. 기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단위를 연결한 네트워크와 비슷한 형태가 되고 기업활동이 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에 더 의존하면서 작은 기업도 이런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전 지구의 고객에게 접근할 기회가 커졌다.

금융의 세계화

1970년대 이전까지 세계 금융은 각국의 금융기관들이 소수의 연결점을 가지고 약간의 신용, 화폐, 주식을 사고 파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정보통신 혁명은 금융을 생산으로부터 독립시켜서 통신 네트워크를 따라 이윤이 가장 많이 남는 곳으로 신속하게 이동하는 존재로 탈바꿈시켰다. 네트워크를 따라 이동하는 금융자본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1년간의 국제 무역량은 2조 달러 가량인데 반해 세계 금융시장의 1일 거래량이 1조 달러다. 국경을 넘나드는 거래의 97%가 순수한 금융거래임을 보여준다. 카스텔스는 이런 금융시장을 “제멋대로 움직이는 기계”같다고 표현했다. IMF나 세계은행 같은 영향력 있는 세계 금융기관이 존재하고 자본가와 대기업 매니저들이 세계 시장의 주역처럼 활동하지만 실제로는 이들도 모두 이 기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형편이라고 카스텔스는 개탄한다. 이 괴물 같은 기계는 수요공급의 시장의 법칙도 따르지 않는다. 대신 이것은 시장의 법칙, 기업과 정치권의 전략, 군중심리, 합리적 예측, 비합리적 행위, 투기, 정보 요동 등이 뒤섞여 작용하는 예측하기 힘든 힘을 받아 움직인다. 금융시장은 국가뿐 아니라 아예 인간의 통제도 점차 벗어나고 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금융시장은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돈이 한 나라에 자유롭게 들어오고 또 자유롭게 빠져나갈 수 있으며,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 비합리적 요소에서 많이 기인하기 때문에 일국 정부가 이를 통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 대부분의 거래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비합리적 요소에 반응이 빠르고 이러한 부정적인 효과가 급속도로 축적되기도 한다. 금융시장 자체는 상대적으로 쉽게 회복될 수 있으나 이런 변동을 겪은 나라의 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 최근의 예가 1994~5년 멕시코 경제위기, 1997~8년 아시아의 외환위기다.

최근 이러한 범세계 금융자본을 길들이는 방법으로 몇 가지 제안이 나오고 있다. 그 한 가지는 통신 네트워크를 통한 국제적 단기 금융거래에 토빈세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또 다른 조치는 덜 개발된 나라에 들어간 자본이 자유롭게 빠져나갈 수 없게 제한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금융시장을 통제하고 국제적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세계금융감독원과 최종적인 구제수단의 제공자로서 세계중앙은행을 만든다거나, G7의 금융조정 기능을 강화한다든가, WTO의 역할을 자유무역의 원리를 기계적으로 관찰하는 기관에서 자본주의 운영법칙의 기본 틀을 정하고 이를 감찰하는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든가, 국제적 환경친화정책을 관철한다든가, 정치적 다원주의에 역행하는 미디어 제국의 힘을 제어한다는 것 등도 국제 금융을 ‘길들이는 데’ 한몫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안인 현재 미국 정부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금융 시스템을 규제하고 이에 세금을 매기려는 어떤 개입도 무역을 통제하려는 보호주의적 조치를 정당화한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 그러나 이는 자유금융과 자유무역을 구분하지 않는 생각이다. 금융시장의 작동방식과 무역의 작동방식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상품과 서비스 시장에는 자기 조절 경향이 있지만 이미 일국 내 금융시장은 이러한 자기 조절 경향이 상당히 약하고 전지구적 금융시장에서는 이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상품과 서비스 시장을 개방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본 통제는 필수적이다.

신경제 또는 네트워크 경제의 부상

①네트워크로 연결된 무리의 힘을 이용하라. ②대규모 단일 네트워크를 구축하라. ③희소성보다는 풍요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라. ④모든 것을 무료로 배포하라. ⑤먼저 네트워크의 가치를 키워라. ⑥현재의 성공을 잊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라. ⑦지구 전체를 무대로 사유하고 활동하라. ⑧조화가 아니라 흐름에 투자하라. ⑨기술로 시작해서 신뢰로 끝내라. ⑩효율성보다 기회를 택하라. 이것은 케빈 켈리의 신경제 10대 법칙으로 ①~⑤는 신경제가 네트워크 경제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⑥~⑩은 신경제의 전지구적 측면과 그것의 역동적인 특성을 표현한 것이다.

신경제가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경제라는 것은 이처럼 네트워크의 특성과도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신경제의 상품이 ‘정보 재화’, 즉 디지털화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보재화는 비경합적일 뿐 아니라 여간해서 잘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한 번 판매하는 것으로는 지속적인 이익을 기대할 수 없고 업그레이드, 서비스, 연관 정보재의 마케팅 등을 통해서 고객을 붙잡아두어야 한다. 정보 재화는 높은 고정비용과 낮은 재생산비용이라는 또 다른 중요한 특성을 갖는다. 즉 정보는 처음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드는 반면 재생산하는 데에는 거의 돈이 들지 않는다. 또한 정보 재화의 가치는 소비자에 따라 크게 달리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정보 재화의 경우에 개인화된 가격과 버전의 차별화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며 또한 매우 중요하다.

정보 재화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고착’이 잘 일어난다는 것이다. 특히 정보재의 경우 특정 제품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 생기는 고착과 특정 정보 데이터베이스 때문에 생기는 고착이 중요하다. 또 다른 종류의 고착은 신경제가 네트워크의 경제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에 나타난다. 여기서 핵심적인 개념이 선순환의 개념이다. 선순환은 강자를 더 강하게, 약자를 더 약하게 만듦으로써 승자와 패자의 간극을 벌리는 메커니즘으로 특히 하이테크 산업에서 눈에 띄게 작동한다. 이 고착을 푸는 방법으로는 후방호환성을 제공하면서 좀더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기존의 소비자를 흡수하는 방법과 기존 상품보다 훨씬 더 성능 좋은 상품을 내놓는 방법이 있다. 시장이 계속 변화하는 경우에는 전환비용이 싼 소비자를 집중적으로 겨냥하는 방법도 있다. 표준을 설정하는 데 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컨소시엄 등을 통해 표준이 설정되면 기업들 사이의 경쟁은 시장을 선점, 독점하는 경쟁에서 시장의 몫을 놓고 이를 분할하는 경쟁으로 그 본질이 바뀐다.

네트워크의 법칙은 경제활동 외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포털사이트뿐 아니라 개인 홈페이지를 보아도 처음에 특별한 계기를 만들어서 ‘손님’을 많이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처음의 관심을 계속 유지하고 이를 증폭시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네트를 이용한 사회운동도 마찬가지다. 네트워크 혁명의 시기에 넘쳐나는 것은 정보이고, 부족한 것은 관심이다. 끊임없는 혁신이 없으면 사람들의 관심은 곧바로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 신경제, 디지털 문화, 네트워크를 통한 운동은 비슷한 법칙에 의해 작동한다.



3. 새로운 문화, 새로운 공동체와 정체성

새로운 정체성

네트워크 사회의 형성과 더불어 개개인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으며, 이 와중에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고 있다.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과학과 같은 중심적 권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개개인의 삶의 질, 선택, ‘자기 표현’ 같은 가치관이 중심적인 가치관으로 부상한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은 하나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접하게 되고 이러한 의견들의 타당성을 성찰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여성 정체성, 급진적 개인주의, 위험하고 조각난 삶, 다중적 정체성, 만들어 나가는 정체성, 무기력과 불확실성, 성찰적 정체성, 협동적이고 이타적인 개인주의 등이 네트워크 혁명의 시기에 새롭게 부상하는 정체성이다.

가상 공동체

20세기 후반의 범세계적인 통신 네트워크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같은 대중매체가 균질한 ‘대중’을 만들었다면 인터넷은 대중 공동체를 서서히 탈대중화시키고 있다. 즉 텔레비전의 ‘브로드캐스팅’이 국민들에게 한 가지 ‘거국적’ 관점을 공유하게 했다면 인터넷은 다변적인 시각을 ‘내로우캐스팅’한다. 무엇보다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통신기술 네트워크는 ‘컴퓨터에 의해 매개된 통신’에 기초한 가상 공동체를 가능케 했다. 가상 공동체는 통신기술에 의해 매개된 ‘공존’이다. 즉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기술을 매개로 온라인 글쓰기, 토론, 채팅을 하면서 같은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공유하는 공동체다. 가상 공동체의 번성은 20세기 후반에 은행, 집, 직장, 동네 가게 등 지역과 인간적 접촉을 매개로 한 ‘인간적 공간’이 기계와 통신 수단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익명의 ‘비공간’으로 점차 대체되고 있는 상황의 연장으로 파악할 수 있다. 가상 공동체는 이러한 의미에서 ‘비국소적인 비공간’이다.

대부분의 가상 공동체는 텍스트에 바탕한 소통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야기할 때 접하는 표정, 억양, 제스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소통이 불안전하다. 많은 경우 불완전한 부분은 독해자의 상상력이나 감정으로 채워진다. 따라서 가상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소통은 논문을 읽고 이해하는 식이 아니라 소설의 스토리에 자신을 동화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가상 공동체에는 이를 막기 위해 오랜 시간을 두고 개발된 장치들이 있다. ‘^_^ -_-;;; T.T' 같은 이모티콘은 이를 위해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이다.

가상 공동체의 또 다른 특성은 익명성이다. 익명성은 매우 미묘한 문제다.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하는 프라이버시의 자유와 대화 상대에 대해 알기를 원하는 권리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익명을 쓰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자신이 말하는 내용이 실정법에 저촉되는 경우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비리나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데 용이하며, 자신이나 자신의 조직의 명예를 훼손시키기 않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는 것이 익명의 이점이다. 그렇지만 익명성에도 단점은 있다. 간단한 정보를 물어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익명의 메시지가 지니는 신뢰성을 한두 단계 낮춰서 생각한다. 정보의 제공이 아니라 개인들 사이의 대화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명의 상대와 대화를 지속적으로 나누는 것을 원하지도,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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