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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 블루스

윌리엄 더프티 지음 | 북라인
종교 재판관과 마녀 사냥꾼이 급증하면서 자연히 반발이 일어나 공포와 혐오감이 넘쳐났다. 이 참극에 출연한 의사와 카톨릭 사제들은 이제 서로 불편한 동반 관계로 변했고 사람들은 그들의 피묻은 손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와중에 이전의 이단적 가르침이 새롭고 다양한 분파의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되어 제도권에 진입했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교회를 떠나자 왕은 일요일 예배에 불참하면 법률 위반으로 무거운 벌금을 물렸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마구잡이로 마녀를 불에 태우고 엑소시즘 의식을 벌였음에도 신들림과 광기가 해결되지 않자 의사와 사제는 압력을 받았다. 사람의 두뇌를 괴롭히고 정신 장애를 일으키는 슈거 블루스 증세가 왜 생기는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1710년 익명의 사제 겸 의사가 그 해답을 제시했다. 간단하고 확실한 설명에 의사와 사제들은 열광했다. 덕분에 이들은 계속 행복하고 바쁘고 부유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들의 해답은 '자위행위'였다. 자신들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한 이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약간의 종교적 위협을 가미하며 행동에 들어갔다. 게다가 자위행위를 해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성공 사례를 제시해 이 이론을 뒤엎으려면 수년 동안 자위를 했음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미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감히 누가 이런 시도를 하겠는가.



시간이 흐르자 의사들이 합세하여 구약성서의 의식인 할례를 되살리고, 급기야 1850년대에는 여성의 음핵을 도려내는 수술을 개발했다. 자위행위는 의료인에게 완벽한 안전 밸브 역할을 했다. "당신을 고칠 수 있지만 만일 자위 행위를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한다면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병이 낫지 않으면 정신 병원에 갇혀 자위행위를 치료하기 위해 구속복을 착용하고 낮에는 정조대를, 밤에는 가시 달린 바지를 착용해야 했다.



이렇듯 의료계의 역사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보고 있으면 속이 불편해진다. 수세기에 걸쳐 고통받는 영혼을 마녀라고 불에 태우고, 귀신에 사로잡혔다고 엑소시즘을 행하고, 미쳤다고 감금하고, 자위행위 때문에 정신병에 걸렸다고 고문을 가하고, 정신 이상이라며 정신병 치료를 하는가 하면 정신분열증 환자에게는 전두엽 절제수술까지 행했던 것이다.1662년이 되자 영국의 설탕 소비량은 겨우 2세기만에 영(0)에서 1,600만 파운드로 급증했다. 그 후인 1665년 역병이 런던을 휩쓸었다. 같은 해 9월까지 역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3만을 헤아렸다. 다른 이들은 도시를 빠져나갔다. 모든 것이 절반으로 줄었다. 다만 설탕을 먹을 일이 없었던 시골 사람들은 역병에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이 전염병을 '도시 설탕병'이라고 불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왕권과 무역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교수형에 처해졌을 게 분명하다.



역병이 유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토마스 윌리스(해부학자이자 영국 왕립 학회 최초 멤버 중 한 명이며 왕립의대의 명예 회원)는 런던의 세인트 마틴 가에 병원을 개업하여 당대 최고의 의사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윌리스가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부유한 유명 인사들의 소변이 전에 없이 달짝지근해졌다는 사실을 최초로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두 번째 의서인 『이론 약리학』에서는 이 증후에 '당뇨병(diabetes mellitu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어인 디아베테스(diabetes)는 단순히 소변이 많이 배출된다는 뜻이고, 이 단어에 결합시킨 라틴어 멜리투스(mellitus)는 '꿀의 달콤함'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윌리스가 라틴어로 '설탕으로 인한 염증'이라는 의미의 '폴리우레아 사카리티스(polyuria saccharitis)'라고 명명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당시 영국은 국왕을 참수형에 처하고 왕자가 왕위를 물려받은 참이었다. 윌리스는 의회파에 맞서는 열렬한 왕당파로 활동했으며, 나중에는 찰스 2세의 주치의가 된 인물이다. 엘리자베스 1세 이래의 모든 왕족처럼 찰스 2세도 수지 맞는 설탕 무역에 목을 매고 있었다.



왕과 고위 관리들이 당신의 환자이며 이들이 설탕 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돈줄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써가며 설탕이 새로운 병의 원인이라고 넌지시 이야기함으로써 단골 손님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겠는가? 그래서 토마스 윌리스는 그리스어를 사용한 것이다. 설상가상인 것은 꿀벌을 비난했다는 점. 꿀은 태초부터 존재했으며 벌을 쳐서 막대한 돈을 버는 사람은 없었다. 벌에 책임을 둘려 꿀로 인한 염증이라는 뜻의 난해한 이름을 붙이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의학 역사상에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의학적 신망도 두터이 할 터였다."분유를 먹고 큰 아이는 엄마보다 젖병을 좋아하게 된다." 흑인 무슬림 예언자 엘리야 무하마드의 말이다. 키 크고 잘생긴 백인 조지가 그 좋은 사례이다. 그 역시 분유를 먹고 컸다. 고무 젖꼭지를 통해 난생 처음 설탕을 먹었다. 이빨이 난 후에는 시리얼과 오렌지 주스, 달걀과 케첩에 든 설탕을 먹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부모는 케첩에 설탕이 들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폴란드인인 외할머니는 특별한 식이요법을 한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다른 사람들만큼 초콜릿 도넛을 드셨다. 조지는 외할머니가 꽃무늬 드레스 치마를 걷어올리고 허벅지에 주사바늘을 꽂던 것을 기억한다. 조지가 열세 살이 되었을 때 외할머니는 쉰아홉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설탕을 조절하려고 노력하던 중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가족의 죽음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조지는 이모와 함께 교회 성가대석에 앉아 딱딱한 사탕을 먹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3년째 되는 해 당뇨병을 앓는 식구가 또 한 명 생겼다. 어린 조지였다. 체중은 금세 74킬로그램에서 63킬로그램으로 떨어졌고, 부모와 함께 병원에 가서 소변 샘플을 제출하고 2분 뒤 당뇨병 판정을 받았다. "차리리 내게 일어난 일이면 좋겠어!" 조지의 어머니는 울면서 말했다.

조지는 주사기, 주사바늘, 알코올, 솜, 클리니스틱스, 인슐린, 각설탕을 완비하고 다녔다. 소변을 볼 때는 오줌 줄기에 클리니스틱스를 대고 흔들었다. 빨간색으로 변하면 혈당이 높으니 빨리 인슐린을 투여하라는 신호였다. 슈퍼마켓에서 일할 때 생긴 일이다. 각설탕을 담은 비닐 박스가 바닥에 쏟아졌다. 옆에 지나가던 노인이 "당뇨병인가 보지?"라고 말했다. 동족은 서로를 알아본다. 비밀스런 동지 의식. 조지는 그 노인과 같은 신세라는 생각에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조지는 대학을 졸업한 후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히피 공동체에 들어갔다. 마루에 앉아 마리화나를 피우다가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고 혈관으로 포도당이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 다음날 같은 일이 또 일어나자 심리학자가 방문하여 자살을 기도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조지는 인슐린에 의존해야 하는 것과 식사 간 시간을 정확히 재야 하는 것이 너무나 지겨웠다. 조지는 누군가를 원망해야 할 때는 자신의 잘못은 잃어버리고 2,000마일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분유를 먹여 키웠기 때문에 주사를 맞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고무 젖꼭지가 주사바늘로…. 조지는 대학 시절 탐닉했던 LSD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1969년 여름에는 LSD를 40차례나 흡입했다. 또한 흥청망청 먹은 결과 인슐린 투여량이 601U으로 높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조지는 동양의 지혜를 좇아 동양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오랫동안 장난삼아 해보던 가르침들이었다. 그것이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의학적으로, 정신적으로 절망적인 상태였거든요." 보스턴 근처의 공동체에 들어가 솜씨 좋은 요리사가 만든 전통 동양 음식을 먹었다. 현미, 채소, 생선 약간, 샐러드, 콩, 해조류, 간장, 된장, 과일…. 그리곤 마침내 설탕이 들어 있지 않은 음식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경지에 올랐다. 설탕에 대한 미친 듯한 갈증은 사라지고 있었다. 2년이 지나자 인슐린 용량을 하루 601U에서 151U까지 줄이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각설탕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경미한 인슐린 쇼크가 오는 듯하면 통밀빵이나 현미를 한 입 먹으면 그만이었다.

어느 날, 비행기 여행 중 조지 옆에는 어떤 꼬마가 앉아 있었다. 조지는 그 아이가 당뇨병을 앓고 있는 것을 알았다. 조지는 10년이라는 세월을 고통스럽게 보낸 후에야 방법을 찾아냈다. 아이는 겨우 아홉 살이라고 했다. 오늘날 인슐린은 점점 더 어린 나이의 환자에게 투여되고 있다. 이 아이는 얼마나 오랫동안 인슐린을 맞았던 것일까? 그는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인류 역사상 최고의 전투부대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전투병 군단은 로마에서 아주 멀리까지 진군했다. 마치 베트콩처럼 한 사람당 곡식 한 자루가 식량의 전부였고 설탕이나 취사 시설 따위는 없었다. 통곡식을 씹으며 행군을 하거나 통곡식을 갈아 로마식 식사를 만들어 끼니를 때웠고, 양배추나 채소를 구하면 끼니에 곁들였다. 로마인이 양배추를 먹은 덕에 수백 년 동안 의사의 도움이 필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설탕의 주산지인 이집트로 진군했던 십자군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잇몸에서 악취가 나고, 피가 흐르며, 피부에 출혈성 반점이 돋고, 다리가 붓는 괴질이 유행한 것이다. 중국인과 몽고군, 로마인은 양배추로 괴혈병을 예방하는 지혜를 알고 있었으나 십자군은 그렇지 못했다. 십자군뿐만 아니라 중세에 신세계 탐험에 동원되어 배를 탄 선원들은 모두 괴혈병으로 죽어 나갔다. 한 예로 1519년 마젤란은 선원 160명과 다섯 척의 배로 구성된 선단을 이끌고 세계 항해 일주를 시작했지만 3년이 지나 귀국했을 때는 그 중 18명만 살아 남았다. 그렇다면 엘리자베스 여왕 이전에도 원거리 탐험을 떠난 바이킹, 페니키아인, 극동 아시아인들은 어떻게 괴혈병의 참극을 피했을까? 이들은 카이사르의 군인들처럼 양배추를 절여서 가져가고 다른 야채를 소금 절임하고, 콩과 씨앗을 가져다 싹을 틔워 먹었기 때문이다. 아스코르빈산, 즉 비타민 C가 그 비결이었다.



괴혈병 이야기에 결코 등장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이킹과 로마 군대, 페니카이인, 극동 아시아의 탐험대들은 이것을 먹지 않았지만 십자군이 이것을 먹고 패했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해군들도 이것을 먹고 낭패를 보았다. 그것은 바로 설탕이다. 채소와 과일, 딸기류, 견과류 속에는 비타민 C라고 불리는 영양소가 자연 형태로 듬뿍 들어 있다. 그러나 사탕수수를 정제해 설탕을 만들면 천연 성분의 90%가 제거되며 아울러 비타민 C도 사라진다. 이것이 설탕과 괴혈병의 상관관계이다.



"설탕에 절였거나 설탕을 많이 넣어 조리한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한다. 설탕의 제조 방법으로 미루어 볼 때 너무 지나치게 많이 먹는 현 상황으로 인해 이렇듯 대규모로 괴혈병이 돌고 있다고 사료된다." 이것은 설탕과 괴혈병의 발생의 연관성에 의문을 품고 최초의 기록을 남긴 의사 토마스 윌리스의 말이다. 그러나 윌리스의 경고에 귀 기울인 사람은 없었다. 영국 해군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해군의 군량식에는 설탕과 설탕으로 만드는 럼주가 포함된다. 그 결과 1740년 영국 해군의 앤슨 제독은 여섯 척의 배와 선원 1,500명을 거느리고 영국을 출발했지만 4년 후에 돌아올 때는 고작 배 한 척과 선원 335명만 살아 돌아왔다. 그럼에도 군량식은 바뀌지 않았고 희생된 수병의 수는 50년 동안 무려 10만 명을 헤아렸다.서양은 제분기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동양과의 자연스런 지리학적 간극을 더욱 넓혔다. 소맥분, 귀리분, 보릿가루, 호밀분, 옥수수분을 놓고 골라먹게 된 것이다. 통곡식이 가루가 되는 순간 천연 에너지인 생명력은 날아간다. 일단 가루가 되면 싹이 트이지 않아 씨를 거둘 수 없다. 통곡식의 껍질을 벗겨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곡식을 빻고 양털로 천에 거르고, 껍질을 제거한 결과 생명력은 곡식과 더욱 더 멀어졌다. 곡식은 씨앗과 배아가 든 열매인데 곡식을 빻고 깎으면 씨앗과 배아가 제거된다. 공정을 거친 최종 산품으로서의 곡식은 생명이 다하여 흙 속에 묻으면 썩을 뿐이다.



새하얀 정백미를 문명이 받아들인 이후 신종 병이 생겨나 '베리베리병'이라고 명명되었다. '쇠약하다'는 뜻의 세네갈어이다. 일본에 백미가 도입된 후 베리베리병이 발생한 것을 보면 원인과 해결 방법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1911년 런던의 리스터 연구소에 근무하던 폴란드인 화학자 카시머 펑크 박사는 복잡한 실험을 고안했다. 그는 4개월 동안 현미 836파운드를 갈고 깎아 쌀겨 170g을 추출하여 수용액을 만들었고, 그것을 베리베리병에 걸려 몸이 마비된 비둘기에게 극미량을 먹였다. 몇 시간 지나 비둘기는 병에서 나았다. 1912년 펑크는 천연 현미 속의 생명 물질이 정미 과정을 거치며 사라진다는 대담하고 급진적인 이론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각 나라 및 대학에서 비슷한 실험들이 고안되었고 그 결과는 한결같았다. 가공하지 않은 통현미에 함유된 어떤 물질을 '비타민'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그렇지 않든 이 물질이 생명과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쌀과 사탕수수가 정제 과정을 거치면 영양소가 사라지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이것들을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 1963년 미국의 상원위원회는 '반 영양소'라는 말로 설탕을 설명했다. 몸과 혈액 순환, 내장 장기의 균형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몸에 실제로 해를 끼치는 것이다.큰 사고로 수 백만 톤이나 되는 설탕이 한동안 바다를 떠다닌 적이 있었다. 이 일은 1793년 설탕을 선적한 화물선이 난파하면서 벌어졌다. 선원 다섯 명이 살아 남아 9일간 고립되었다가 구조되었다. 모두 굶주림으로 탈진한 상태였다. 그들은 설탕과 럼주를 먹으며 버텼다고 한다. 그렇다면 설탕이 그들을 구했는가? 그렇지 않다.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아도 9일 이상 생존 가능하다고 증언할 사람은 많다. 배가 전복되어 남자 두 명이 72일 동안 뗏목을 타고 표류한 일도 있는데 이들은 빗물을 받아 물은 닷새에 한 컵 꼴로, 바닷물은 하루에 한 컵을 마셨고, 땅콩버터는 한 스푼씩 먹었으며, 가끔은 정어리도 먹고 결국 살아남았다. 만약 이들이 설탕을 먹었더라면 죽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생리학자 마젱디는 일련의 동물 실험을 수행한 끝에 1816년 한 논문을 발표했다. 개에게 설탕과 올리브 오일, 물만 먹였더니 모두 쇠약해져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조난 선원의 사례와 동물 실험의 결과 학자들은 계속 설탕을 먹는 것보다는 안 먹고 견디는 것이 낫다고 결론지었다. 같은 기간 동안이라도 물만 마시면 멀쩡하지만 설탕을 같이 먹으면 죽는다.



정제 설탕은 몸에 치명적이다. 설탕에는 영양소는 없고 칼로리만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탕은 없느니만 못하다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설탕을 소화하고 독소를 해독하고 체외로 배출시키려면 몸 속의 귀중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탕을 매일 먹으면 신체는 과다한 산성 상태가 지속되는데 산-염기의 평형을 맞추려면 결국에는 체내 깊숙이 저장된 미네랄을 쓸 수밖에 없다. 혈액을 보호하기 위해 뼈와 칼슘을 꺼내 쓰는 지경에 이르면 이가 썩고 건강이 나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설탕은 온몸 모든 기관에 악영향을 끼친다. 과다한 당은 포도당으로 전환된 후 글리코겐의 형태로 간에 저장되고, 간이 풍선처럼 부풀면 글리코겐은 지방산으로 전환되어 혈액을 타고 온 몸을 돌아다니다 활동성이 떨어지는 배, 엉덩이, 허벅지에 지방산을 옮긴다. 포화상태가 되면 심장과 콩팥 같은 활동성 기관에도 지방산이 쌓인다. 이렇게 되면 활동성이 점점 떨어지면서 조직이 변성하여 지방으로 변하고 온몸의 기능이 약해지며, 혈압이 비정상적으로 변한다.



이밖에도 부교감 신경과 그에 지배를 받는 소뇌 같은 기관의 활성이 떨어지고, 순환계와 림프순환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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